- 정신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지만 대개는 다른 논리가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버나드 데보토)
- 빛을 구성하는 입자인 광자가 눈에서 전기화학 신호로 바뀌는 순간 부터 감각의 원재료는 우리가 본 세상을 체계적으로 건설하는 프로세스 엔진의 조립라인을 통과한다. | 이 모든 과정은 시각 경로(visual pathway)라고 알려진 신경 회로에 서 일어난다. 이는 눈의 뒷부분인 망막에서 시작된다. 빛은 망막에서 전기 신호로 바뀐 뒤 시신경을 통해 뇌까지 전해진다. 이 신호는 뇌의 감각 배전반인 시상(thalamus)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시상에서 출발한 시각 정보는 뇌의 뒷부분인 뒤통수엽에 위치한 시각겉질(시각피질)로 보내 진다. 시각겉질은 정보 처리과정을 두 요소로 나누어 정보를 해석한 다음 거리, 형태, 색, 크기, 속도 등을 계산한다. 이 과정에서 조금만 방해를 받아도 시각 왜곡이 현저하게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리독증후군(Riddoch syndrome) 환자는 정지된 물체는 지각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물체만 볼 수 있다. 1916년 신경학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전투에서 진격 을 하다 머리에 총을 맞은 중령을 진찰하면서 이 증상을 처음 발견했다. 중령은 오른쪽 뒤통수엽에 총알이 박히면서 시각겉질이 상당 부분 손상 되었지만 움직임을 감지하는 MT 영역은 손상되지 않았다. 중령은 물체 의 시각적 특징은 대부분 인식하지 못했지만 움직임은 지각할 수 있었 다. 중령의 말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에는 뚜렷한 형태가 없으며, 그 물체에 생기는 가장 가까운 색은 어슴푸레한 회색이다.” 공이 눈앞으로 휙 지나갈 때의 흐릿한 형체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 리독증후군 환자가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반대로 MT 영역만 손상되면 운동 지각 능력은 선택적으로 상실된 다. 길모퉁이에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바라본다고 가정해보자. 자동 차가 부드럽게 달리는 모습 대신에 여기에 있던 차가 갑자기 저기에 있는 연속적인 스냅숏이 눈앞에 펼쳐진다. 다시 말해 왼쪽에 있던 자동차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이동했지만 자동차의 움직임은 전혀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사람에겐 길을 건너는 일이 목숨을 거는 모험이나 다름없다. 시각에서 가장 먼저 처리되는 요소는 움직임이다. 뇌는 눈 앞을 스쳐 지나가는 물체의 외관상 특징 대부분을 두루뭉술하게 처리하 지만 그 물체의 움직임은 확실히 보게 한다. 이는 진화적인 데 이유가 있 을 것이다. 초원에서 맹수가 달려온다면 가장 먼저 인지해야 할 것은 맹 수의 털색이나 꼬리 길이가 아니라 맹수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각계는 빛의 패턴을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시각계는 수십억 개의 신경을 계산한 결과를 바탕으로 해석을 보여준다. 뇌는 과거 우리가 보았던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보게 될 사물의 형태를 예상한다. 심지어 카니자 삼각형을 볼 때처럼 뇌는 장면에 빈틈이 있으면 환경 신호를 이용해 그 빈틈을 메우기도 한다. 
- 렘수면에 빠지면 감은 눈을 대신해 꿈 시스템이 시상과 시각겉질을 지배한다. 꿈 시스템은 이미지 처리 센터뿐 아니라 내부의 감각 배전반 도 통제하지만 이미지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다. 신경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꿈을 꿀 때에는 시상의 행 동이 달라진다. 시상은 눈에서 보내오는 신호(어차피 그런 신호는 오지 않는다)에 반응하는 대신에 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중심 줄기인 뇌줄기(뇌간)의 지배를 받는다. 뇌줄기의 중요한 기능은 렘수면을 유지하는 것이고 대개 꿈은 렘수면 상태에서 꾼다. 대다수 신경학자는 렘수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뇌줄기와 시상의 연결이 꿈속 이미지의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신경학자들은 꿈을 꾸고 있는 뇌파를 관찰하면서 PGO(교 - 무릎 - 후두)파라는 특이한 파형을 발견했다. PGO 파는 형태와 크기가 눈에 쉽 게 띈다. 이 파형은 꿈을 꾸는 동안 뇌의 세 영역, 즉 뇌줄기의 다리뇌(교 뇌), 시상의 시각 부분인 가쪽무릎핵(외측슬상핵), 시각겉질이 있는 뒤통 수엽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세 영역은 함께 작동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뇌줄기, 시상, 시각겉질은 자기만의 시각 경로를 형성하지만 어쩌면 시각은 그 과정에서 차단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꿈의 경로는 시각 경로와 비슷하지만 뇌줄기가 눈을 대신해 이미지의 공급원 역할을 한다는 점은 다르다. 꿈의 이미지는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꿈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존 앨런 홉슨 (John Allan Hobson)은 뇌줄기가 신경세포를 무작위로 만들어내기 때 문에 꿈을 꾸는 것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뇌줄기에서 아무렇게나 내보낸 신호는 시상으로 전해지고 시상은 이 신호를 여느 시각 신호와 똑같이 처리한다. 시상은 배전반에 불과하다. 수신하는 신호가 눈에서 오는 것인지, 뇌줄기에서 오는 것인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시상은 신호를 보내야 할 곳으로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 다시 말해 시각겉질로 보내는 역할만 할 뿐이다. 이제 시각겉질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지금은 새벽 2시 이고, 시상에서 보낸 신호가 무더기로 도착한다. 게다가 이 신호들은 질 서도, 체계도 없이 뒤죽박죽이다. 뇌줄기가 무작위로 만들어낸 신호들 이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각겉질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시각 겉질은 시상이 보내는 정보는 전부 눈을 통해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한 다. 이때 시각겉질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시각겉질은 우리가 깨어 있을 때와 똑같이 정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시각겉질은 저장된 지식과 기억을 이용해 서로 다른 신호 조각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통 일된 시각적 장면을 만들려고 애쓴다. 그 시각적 장면은 우리가 경험하는 꿈이다. 뇌는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만든다. 뇌의 무의식계는 패턴을 찾아내
고, 다음 패턴을 예측하며, 맥락의 실마리를 이용해 불완전한 그림의 빈틈을 메우는 뛰어난 재주가 있다. 어쩌면 이런 활동이 총체적으로 작용해 무의식이 수신한 누더기 신호를 바느질해 꿈속 풍경으로 엮어내는 것 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사고, 기억, 두려움, 바람으로 맞춰 이은 조각보가 우리의 정신을 차지하고 가끔은 은유적인 이야기까지 탄생하게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의 꿈은 대체적으로 꽤 기괴한 편이다.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다수 사람과 달리 몇몇 사람의 이마앞엽겉질은 잠을 잘 때도 차단되는 것을 거부한다. 자각몽을 꾸는 사람은 꿈속에서도 자기숙고, 자기통제, 의사결정 능력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매번 꿈을 짜릿 한 가상현실 연습게임으로 바꾼다. 게다가 자각몽은 훈련을 받으면 습 득이 가능한 기술이고, 성공적인 악몽 치료방법으로 이미 쓰이고 있다.  연습만 하면 우리도 귀신과 도끼 살인마에게 꺼져달라고 정중하게 부탁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꿈은 단순히 일상을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꿈은 1퍼센트에서 2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혼란스러운 생각과 시 각적 상상이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합쳐진 것이다. 뇌의 무의식계는 낮 동안의 모든 방햇거리를 차단한 채 개념을 연관시키는 대안을 꿈을 통해 제시한다.
- 우리가 잠이 든 동안 새롭고 위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한순간 떠오른 영감을 적기 위해 허둥거리며 펜과 종이를 찾은 적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가? 두 집단 에게 수학 문제를 냈다. 첫 번째 집단에게는 문제를 받은 즉시 풀게 했고, 두 번째 집단에게는 잠을 푹 자게 한 뒤에 풀게 했다. 그 결과 잠을 자고 문제를 푼 두 번째 집단이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낼 가능성이 더 큰 것으 로 나타났다. 꿈을 꾸고 있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생각과 경험이 독특한 방식으로 조합되는 것인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먼저 잠 이 우리를 외부 자극으로부터 보호하고, 간섭을 막아주며, 상상력을 발휘 할 수 있게 한다. 둘째, 대부분의 이마앞엽겉질이 비활성화 상태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판단과 분석적 엄밀함에 구애받지 않고 더 추상적이고 기괴하기까지 한 생각을 마음껏 하게 할 수도 있다. 셋째, 꿈이 그토록 창의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더 근본적인 해석이 있다. 몇몇 신경과학자의 이 론에 따르면 잠을 자는 동안 뇌에서는 미리 형성되어 있던 시냅스(신경세포의 신호가 다른 신경세포에 전달되는 공간)가 느슨해지면서 기억과 학습된 개념 사이의 관계가 완화된다. 이론적으로 이 상태에서는 신경세포의가 변성이 늘어나 뇌에 새로운 경로가 형성되고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 사실 일부 연구에서 낮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신경 세포가 잠자는 동안에는 가장 잠잠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이론은 느슨해진 시냅스가 꿈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생각을 참신하게 조합할 기회가 생기면서 뇌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꿈은 깨어 있을 때 지각하는 세상과 완전 히 다를 수밖에 없다. 뇌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 문이다. 한편으로는 깨어 있을 때 사용하는 능동적인 의식계가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계가 막을 내리는 순간 통제권을 이어받는 꿈이라 는 수동적인 내부세계가 존재한다. 자각몽은 뇌의 두 시스템을 모두 이 용하는 중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꿈은 대개 잠이 들었을 때 진행되고 잠 에서 깨면 끝난다. 꿈을 꾸면서 의식적 결정을 내리기란 일반적으로 불 가능하다. 잠에서 깬 순간 의식이 우리를 지배함으로써 내부세계의 몽상 에서 벗어난다. 의식계와 무의식계는 통제권을 번갈아 주고받는다. 
- '환각'이라고 하면 정신질환, 신경질환, 불법 약물 등을 가장 먼저 떠 올린다. 하지만 바일러 씨는 뇌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찰스보닛증후군 환자에게 시각적 환각 증상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신경학적 문제가 아니 라 시각적 문제 때문이다. 이 증후군은 아예 앞을 보지 못하거나 부분적 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생긴다. 환각 증상은 몇 초 동안 잠깐 나 타나거나 며칠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간헐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환각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개는 사람, 동물, 건물, 일정한 패턴의 형태가 나타난다. 여러 사람이 환각에서 본 장면을 그 림으로 묘사했다. 예를 들면 화가 세실 라일리(Cecil Riley)는 자신의 주변에서 파란색 눈과 초록색 눈이 위협적으로 쳐다보는 환각을 그림으로 그렸다.
- 찰스보닛증후군은 근본적인 원인과 상관없이 시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의 10퍼센트 정도에서 나타난다. 이 증후군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 인가? 혹시 뇌가 시야의 빈틈을 환각으로 메우는 것인가? 카니자 삼각형 에서 알 수 있듯이 뇌는 시야의 빈틈을 메우기 때문에 우리가 지각하는 것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과 똑같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착시 로 흰색 삼각형을 보는 것과 거실에서 풀을 뜯는 소가 보이는 것은 조금 다르다. 착시를 본다고 해서 환각에 빠지지는 않는다. 뇌는 시각 신호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장면을 추정하고 보완한다. 반면에 환각은 전적으로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 찰스보닛증후군은 눈에서 입력 신호가 들어오지 않아도 시각겉질이 활성화된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먼저 시각 손상으로 앞쪽에서 신호가 들어오지 않아 할 일이 없어진 시각겉질 신경세포가 변덕을 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심심해진 신경세포는 가끔씩 즉흥적으로 전기 신호를 내보낸다. 감각 신 호 입력의 규칙에 구속받지 않는 시각겉질은 자체적으로 신호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른바 '방출 환각(release hallucination)'을 이용해 찰스보닛 증후군의 증상을 일으킨다. 일시적 시각장애로도 방출 환각이 생길 수 있다.
- 찰스보닛증후군이 시각장애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를 설명하는 두 번째 이론은 방대하고 역동적으로 상호연결된 신경세포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과 관련 있다. 우리는 오감을 다섯 개 로 분리해 생각하지만 뇌는 그렇지 않다. 오감 신호는 전송되는 경로가 다르지만 뇌는 시각, 청각, 촉각 신호를 구분하지 않는다. 회로가 제대로 연결되어 있기만 하면 정보는 가야 할 곳으로 전달된다. 뇌에서 오감 신 호는 전부 전기화학 신호일 뿐이며, 신경세포는 송수신하는 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가 오감을 각각 따로 경험하는 이 유(즉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는 이유)는 신경세포 사슬이 조직된 경로 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오감의 경로는 각각 따로 정해져 있지만 가끔 교차로에서 만난다. 이렇게 교차하는 신경 경로를 주 고속도로의 교차로라고 생각하면 이해 하기 쉽다. 주 고속도로는 대부분 쭉 뻗어 있지만 나들목이 군데군데 연 결되어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서로 어우러진 오감을 한꺼번에 경험한다. 예를 들어 커피 한 잔을 마신다고 해보자. 프렌치 로 스트 커피의 향과 맛을 동시에 느끼고, 입술로는 머그잔의 감촉을 느끼며, 눈으로는 당신 쪽으로 기울어진 머그잔을 보고, 귀로는 홀짝이는 소리를 듣는다. 오감은 서로가 완벽하게 다른 감각과 조화를 이루면서 아침의 카페인 섭취라는 감각 교향곡을 만들어낸다. 오감이 완벽하게 분리 되어 있다면 훌륭한 화음의 교향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 다. 경로 어디에선가 오감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시각겉질이라는 고속도로 지도에는 뇌의 다른 시스템과 연 결된 진입 차선과 진출 차선이 존재한다. 이제 시각장애인을 떠올려보자. 뇌 가소성 원칙의 지시에 따라 신경은 활동이 뜸한 영역에서는 슬그머니 줄어들고 활동이 많은 영역에서는 빠르게 늘어난다. 눈이 보이지 않으 면 눈에서 뒤통수엽으로 향하는 시각 정보 입력이 중단되면서 시각 경로 가 퇴화된다. 도로가 텅 빈다. 갑자기 시각 외의 다른 감각 시스템과 연결 된 진입로에서만 차가 들어온다. 이전에는 다른 감각과 연결된 시각겉질 의 비중이 굉장히 작았다면 이제는 그 비중이 커진다. 반면에 시각계의 나머지 감각은 줄어든다. 다른 감각과 연결된 신경세포의 성장은 활동이 뜸한 시각 경로와 뇌의 비시각계 사이의 연결을 강화한다. 이처럼 오감의 회로는 서로 교차점에서 만나기 때문에 가끔은 시각이 아닌 다른 신호가 뒤통수엽겉길로 들어와 눈에서 보낸 시각 정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뇌는 어디서 오는 신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신호가 들어온 경로다. 따라서 이전에 별개였던 회로가 연결되면 다른 감각계가 보낸 신호가 진입 나들목을 통해 시각겉 질로 들어와 시각이라고 처리될 수도 있다. 그 신호가 정원의 꽃향기이 든 지하철 전동차 소리이든 상관없다. 일단 그 신호가 교차로를 통해 시각 회로로 들어서는 순간 그것은 시각적 환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다행히 찰스보닛증후군 환자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들이 보는 모습이 실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꿈을 꿀 때와 는 달리 환각 상태에서도 이마앞엽겉질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자신들이 지각하는 광경이 얼마나 기이한지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실명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이때 나오는 결과가 서문에서 잠깐 소개한 안톤증후군이다. 
- 모든 감각은 정보의 흐름이다. 시각 경로는 청각 경로든, 아니면 다 른 경로든 정보가 어디에서 들어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정보를 상 황적 맥락에 맞게(그리고 지식과 감정, 기억에 맞추어) 해석하고 종합해 세상을 의미 있게 표현하는 것이 뇌의 무의식계에 주어진 과제다. 무의식 의 처리과정은 동시에 들어오는 오감의 흐름을 분석하고 비슷한 특징이 없는지 꼼꼼히 조사한 후 스타워즈 등장인물들을 연관시키는 것과 같 이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추상적 개념을 만들어낸다. 안쪽관자엽은 모든 감각 고속도로의 중요 교차로다. 영장류 뇌의 해 부학 연구도 이 생각을 뒷받침하는데, 여러 감각 경로가 안쪽관자엽에 서 교차하는 신경돌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뇌는 감각 경로의 상호 교차를 허용하고, 그럼으로써 다섯 종류의 지각 데이터를 의미 있는 생각과 경험으로 해석한다. 어떤 사람은 뇌의 감각 혼선이 매우 많아서 감각 하나를 사용하면 다른 감각이 동시에 활성화되기도 한다. 감각 경로가 과도하게 연결되어 생기는 증후군인 공감각(synesthesia)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가령 어떤 사람들은 청각 - 시각이 많이 연결되어 있어 특정 높이의 소리를 들으면 색을 보기도 한다. 게다가 색 하나가 소리 하나와 연관되는 등 두 감각의 연관성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후 각과 시각이 관련된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신선한 레몬향을 맡으면 다각형을 보는 반면에, 산딸기나 바닐라향을 맡으면 원형을 본다. 이 감각의 결합이 다양하기 때문에 공감각도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하지 만 모든 공감각이 보여주는 통찰은 똑같다. 감각 경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감각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는 일상생활에서도 찾아볼 수 있 다. 후각을 잃으면 미각도 둔해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시각과 청 각도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을 때 입 모 양을 보면 그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다. 실제로도 청 각과 시각은 상대 감각에 서로 끼어들기도 한다. 이 현상은 맥거크 효과 (McGurk effect)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소리는 내지 않고 가 - 가 - 가라고 하는 입 모양을 보면서 '바-바바라고 녹음된 음절을 들으면 제3의 소리인 '다-다-다'라고 인식한다. 이것이 맥거크 효과다. 
- 감각계는 생존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 감각 신호는 처음에는 병렬 경로에서 처리되다가 마지막에 하나의 개념적 네트워크로 통합되고 해 석되고 조직된다. 감각들이 합쳐져 세상을 하나로 유연하게 지각한다. 오 감의 협업은 의식적 경험을 강화해줄 뿐 아니라 감각 하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백업 시스템까지 만들어준다. 실명하면 다른 감각계 가 지각의 빈틈을 메우려 작동하기 시작한다. 뇌는 최선을 다해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을 재건한다. 다른 감각들끼리 결합해 제 기능을 잃은 감각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부다.
- 신경과학자들은 줄무늬체라고 알려진 뇌의 가장 움푹한 곳에 위치 한 습관 체계 영역을 추적했다. 쥐가 연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바깥줄 무늬체의 활동이 강하게 나타났다. 동시에 쥐가 같은 연습을 계속할수록 비습관적 행동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안쪽줄무늬체와 해마(기억 형 성 담당)의 활동량은 줄어들었다. 뇌에서 정확히 어떤 영역이 습관을 만드는지 안다면 그 영역을 폐쇄해 습관 형성을 막는 것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병변화(lesioning)라는 신경과학 연구법이 있다. 뇌의 한 영역에 활 동을 억제하는 화학물질을 주입하거나 전류를 정확히 흘려보내 그 영역 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이다. 과학자가 쥐의 바깥줄무늬체에 병변 을 만들어 습관 체계를 비활성화한 후 미로의 북쪽 날개 끝에 놓으면 어 떤 결과가 생길까? 쥐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습관 체계에 행동을 맡긴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로에 놓인 쥐는 더 이상은 자동 길 찾기 장치를 가동해 무조건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막다른 길까지 가지 않았 다. 쥐는 교차점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양쪽을 살핀 후 서쪽으로 이동해 맛있는 간식을 얻었다. 습관 체계는 비습관 체계보다 훨씬 빨리 작동한다. 습관에 지배된 쥐는 교차점에서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동으로 좌회전을 한다. 도로 상황이나 길 찾기에 집중할 필요가 없을 때의 출퇴근길 운전 습관도 마찬가지로 아주 빨리 작동한다. 그러나 북쪽 날개에서 출발한 쥐도 그렇고 새 약속 장소로 가야 하는 상황일 때에도 그렇다시피 습관은 곧잘 실수를 하게 만든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습관 체계는 쥐에게 새로운 상황을 관찰하고 거기에 맞게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해준다. 나란히 존재하는 습관과 비습관은 행동 통제의 업무를 분담하며 어느 쪽이 작동하는지에 따라 행동에 차이가 나타난다. 습관과 비습관은 이론적으로는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길 안내를 담당해 우리를 사무실로 안내하는 동안, 비습관은 전화 통화에 몰두할 수 있게 한다.
- 습관 체계에 통제권을 넘기는 순간 자동으로 먹게 된다. 어쩌다가 습관 체계에 통제권을 넘겨주게 되는 것인가? 습관을 통제할 수 있는가? 절차를 따르는 습관 체계와 신중한 의식계가 행동을 지휘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두 시스템은 따로 움직이기도 하고 함께 작동하기도 하지 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지는 못한다. 의식계는 어떤 때는 운전을 하고 어떤 때는 하루 일과를 곰곰이 생각하지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 지는 못한다. 의식계가 생각에 잠기면 운전은 습관 체계가 대신 맡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그냥 둔 탓에(이른바 멍한 상태) 의식 (비습관 체계)은 행동 권한을 빼앗긴다. 우리는 사건기억에 접속하지 못하 고 마음을 괴롭히는 더 큰 문제에 골몰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상적인 일의 통제권은 습관 체계가 가져간다. 이런 현상은 텔레비전 앞에서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할 때 흔히 일어 난다. 의사들은 과식할 수 있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을 먹지 말 라고 강조한다. 수동적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순간 텔레비전이 의식계의 독점권을 가져간다. 그러므로 텔레비전을 보면서 포테이토칩을 먹으면 습관 체계가 그 행동을 장악한다. 부주의한 운전자가 습관적으로 도로를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도 사인펠드 (Seinfeld)〉 재방송에만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포테이 토칩을 다섯 봉지나 먹을 수 있다. 불행히도 습관 체계는 사건기억에 접 속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복통, 체중 증가, 심장병에 대해서는 아 무것도 모르고, 심지어 적정 한도의 개념도 알지 못한다. 멍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의식적으로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유예 되고 미리 프로그램된 절차에 따라서만 행동한다. 만약 이런 자기통제 능력을 무한정 잃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영구적인 자기점검 능력 상실은 이마엽이 손상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데, 이 영역에 배안쪽이마 앞엽겉질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뇌가 중앙에서 행동을 통제하고 점검하는 능력을 잃으면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도 잃게 된다. 뇌가 습관 모드로 바뀌면서 행동도 습관적인 패턴을 따르게 된다.
- 차를 운전하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습관이 되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훨씬 빠르게 잘할 수 있다. 심지어 더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일부 특정 행동을 자동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의 진짜 장점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습관이 알아서 운전을 하기 때문에 정신이 팔린 운전자는 곧 있을 프레젠테이션 생각에 집중할 수 있다. 빌리 조엘이 피아노와 하모니카를 동시에 연주할 수 있 었던 이유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피아노를 칠 수 있기 때문이 다. 걷는 행동도 어느 정도까지는 연습이 뒤따른 자동행동이다. 길을 걸으며 전화 통화를 해도 넘어지지 않는 것은 다리를 움직이고 발을 내딛 는 데 의식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멀티태스킹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어 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어떤 행동을 온 힘을 다해 연습해 습관으로 만들 고, 그런 다음 그 행동과 다른 두 번째 행동을 같이 하더라도 첫 번째 행동의 효율이나 성과에는 거의 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 생각은 뇌의 비활성 상태가 아니며 마음의 진공 상태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다. 상상으로 하는 모든 움직임의 바탕이 되는 것은 전기 정보 의 흐름이며, 그 정보가 신호를 수행하는 신경세포를 훈련시키고 단련시 킨다. 심상 시뮬레이션은 의식계가 무의식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다. 심적 시연으로 단순한 동작을 연습하면 그 동작을 수행하는 신경 근 육 회로에 습관이 형성되어 회로 기능이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움직임에도 심적 시연이 효과가 있을까? 
- 환상사지증후군이 생기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나마 가장 알맞은 설명은 절단한 팔이나 다리에서 오는 감각을 해석하는 신경 기반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절단 환자는 손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는 알지만 무의식은 아직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뇌는 절단한 손에서 감각 신호를 받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다른 신경 경로에서 오는 신호인데도 특정 신호가 오면 손에서 오는 신호라고 잘못 해석한다.
- 거울신경은 하품 전염과 관련 있다고 여겨진다. 게다가 사회적 친밀 함도 하품의 전염성을 높인다면 사회적 친밀함과 거울신경의 활동에 서 로 연관이 있음을 나타낸다. 오늘날 많은 신경과학자는 거울신경을 이용 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머릿속으로 흉내내는 것이 그 순간의 경험을 체 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주위 사람을 이해해야 할 때 흔히 하는 말처럼 거울신경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영 장류의 사회적 관계와 하품 사이의 연관성은 거울신경이 공감(empathy)의 기초를 마련하는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 거울신경이 공감과 사회적 행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더 간접적인 증거는 사회적 기능이 손상된 사람들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 다. 이미 알다시피 자폐증 환자들은 사회적 상호행동, 소통 능력, 감정 표 현 능력이 손상되어 있다. 이런 유사점으로 인해 신경과학자들은 거울신 경의 기능 부전이 자폐증을 일으키는 하나의 원인이 아닌지 의문을 갖고 자폐증을 설명하는 깨진 거울 이론(broken mirror theory)을 세웠다. 이 이론은 자아 표현에 어려움이 있는 자폐증 환자들이 단순히 자기감정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 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인정할 뿐이다.
- 아직은 이론에 불과하지만 무의식의 심상 시뮬레이션이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방식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조금 씩 밝혀지고 있다. 자폐증이든 자폐증이 아니든 거울신경은 인간 본성의 아주 소중한 특징인 공감 능력을 형성하게 도와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 의 경험을 본능적으로 시뮬레이션해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에 대한 기본 정보를 습득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발달시킨다. 골퍼가 경기 전 에 심적 시연을 해보듯이 우리의 심상 시뮬레이션도 우리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거울신경은 무의식적으로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심상 시뮬레이션은 의식계와 무의식계를 연결하는 다리다. 어느 한 쪽을 이용해 다른 한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포츠선수처럼 훈련의 형태로 심상 시뮬레이션을 사용하면 무의식의 기능이 강화되고 운동 통 제에 필요한 습관적 메커니즘이 미세하게 조율된다. 거울신경을 이용해 무의식적으로 작동되는 심상 시뮬레이션은 우리의 의식적 행동을 만들고 사회적 행동을 조정하며 다른 사람의 경험을 우리의 것으로 내면화하게 도와준다. 스스로 깨닫지도, 동의하지도 않는 사이 무의식계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조용히 시뮬레이션한다. 우리는 그런 시뮬레이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단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나 감정으로만 느낄 뿐이다. 그런 순간의 감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감정이나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머릿속 깊은 곳 어디에서인가 왔다고만 어렴풋이 알 뿐이다.
- 기억은 상호연결되어 있는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변할 여지가 있다. 뇌는 특징이 비슷한 기억을 연결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 을 강조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뇌는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 중에 그 사건들을 재구성할 수 있다. 진공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기억도, 붙박이로 고정된 기억도 없다. 기억은 촘촘하게 얽힌 이야기처럼 나름의 방향과 관점을 갖고 있으며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
- 우리는 감정을 발산한 순간을 기억한다. 9/11 테러 공격 뉴스를 들었 을 때 카푸치노를 마시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에게 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장본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세계를 격 동시킨 뉴스를 들었을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그의 인생사에 한 축을 차지했다. 그날 그의 하루에서 스타벅스에 있었던 것은 중요한 요소였던 반면, 세계무역센터가 정확히 몇 시에 공격당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9/11 테러는 개인 신상에서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9/11테러는 역사를 바꾼 순간이었으며 그 사건을 직접 겪었든 멀리서 뉴스로 접했든 그 공포와 비극을 목격했음. 그 뉴스를 어떤 식으로 접했는지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9/11테러를 기억할 때 그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가장 먼저 말하게 되는 것이다.
-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부정적 감정에 대한 기억은 행복한 감정의 기 억보다 더 빨리 희미해진다. 심리학에는 기억 무시 모델(mnemic neglect model) 이론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자아인식과 일치하는 일은 쉽게 기 억하는 반면, 자아인식과 충돌하는 기억이나 감정은 쉽사리 무시하는 경 향이 있다. 한 연구에 참가한 피험자들은 행동 목록을 본 후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지 평가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목록에는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을 것이다”라는 자아에 위협이 되 는 부정적 행동과 “아픈 친구를 여러 날 동안 간호해줄 것이다”라는 자 기 긍정적인 행동이 적혀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피험자들은 목록 에 나온 행동을 가능한 한 많이 기억해야 했다. 그들은 긍정적 행동은 아주 잘 기억했지만 부정적 행동은 마음 편히 잊어버렸다. 연구팀은 비교 실험을 위해 대조군인 두 번째 집단에게 크리스라는 남자에 대해 설명했 다. 그러고 나서 대조군 피험자들에게 행동 목록(긍정적 행동과 부정적 행 동이 모두 적힌 목록이었다)을 보여주고 크리스가 그런 행동을 할 것 같은지 조사했다. 대조군이 나중에 목록 내용을 기억할 때 그들은 긍정적 행동과 부정적 행동을 비슷하게 기억했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부 정적 행동이기 때문에 기억에서 쉽게 무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뇌는 개인사를 담은 스냅사진을 배열할 때 자아를 보호하는 방식을 자주 따른다. 뇌의 무의식을 뉴스 채널이라고 한다면 이는 한쪽으로 치우친 뉴스 채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원이 진보 성향의 텔레비전을 자주 시청하고 공화당원이 보수 성향의 라디오 대담을 청취할 때가 많은 것처럼 뇌의 무의식계는 우리의 자아인식과 세계관에 들어맞는 경험을 합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뇌는 우리의 관점이 유지되게 도와준다. 뇌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중요시하는 것을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다. 가끔은 시간 순서를 조금씩 뒤섞거나 우리가 믿고 싶은 이야기와 맞 지 않는 사소한 세부 사항을 멋대로 생략한다. 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의식적 사고와 결정 능력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건강하 고 적응적인 기제다. 기억억제는 뇌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생략 오차를 사용하는지 알려주는 극단적 예라고 할 수 있다.
- 자발적 말짓기증이 거의 전적으로 뇌 손상을 입은 사람에게만 나 타난다면 유도된 말짓기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어느 쪽이건 간 에 뇌는 왜 거짓기억을 만들어낼까? 뇌는 왜 기억의 구멍을 있는 그대로 두지 못하는 것일까? 말짓기증은 뇌의 수많은 영역 가운데 안쪽이마앞엽겉질(자기중심 사고와 관련이 있다)이나 눈확이마겉질(감정적 본능과 관련이 있다)같이 어느 한 부분이 손상되면 생길 수 있다. 신경학자들은 고차적 사고와 의사결 정을 내리는 이마엽이 손상되었다는 공통된 원인을 근거로 기억에서 어 떤 스냅사진을 모아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이 사라질 때 말짓기증이 생기 고, 과거와는 다른 왜곡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일부 학자들은 말짓기증이 조현병(정신분열증)에서 생기는 것과 같 은 망상의 한 형태라고 믿는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 지만 주요 신경심리학 이론 가운데 하나에 따르면 말짓기증은 기억의 조각이 사라지거나 왜곡되고 자아의 존재감과 안정성이 위협받을 때 생긴다. 뇌의 무의식계는 날조한 기억으로 구멍을 메우는 것이라 할지라도 다양한 기억의 파편을 모아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엮는다. 개인사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뇌는 어떤 식으로든 통일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 말짓기증은 무의식적 단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기억억제 가 감정적 트라우마에서 자아를 보호하듯이 말짓기증은 기억 손상이나 혼동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경학적으로도 이치 에 맞는 추론이다. 말짓기증은 보통 자기중심 사고를 책임지는 안쪽관자 엽의 손상으로 생긴다. 안쪽관자엽은 열혈 대학 농구팬이 경기를 보면 서 선수와 자신을 동일시할 때 점화되는 영역이다. 안쪽관자엽이 손상되 면 자아의식에 위협을 느낀다. 어쩌면 말짓기증은 뇌가 그런 자아의식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제일지도 모른다. 앞의 가설이 맞다면 말을 지어내는 심리적 동기가 무엇인지도 설명 할 수 있다. 결국 말짓기증은 하나의 방어기제다. 말짓기증은 기억과 인생사의 연속성이 손상되지 않게 보호해준다. 하지만 이런 가설로도 뇌 가 어떤 식으로 왜곡된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거짓기억을 만들 때 뇌는 어디에서 자료를 얻는가?
- 뇌는 기저의 논리에 따라 우리의 경험을 해석하고, 기억을 암호화하 고, 개인사를 기록한다. 무의식계는 우리의 인생을 담은 여러 스냅사진 사이에서 연관성을 만들어내고 각 순간마다 우리의 감정을 관찰해 무엇 을 강조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스냅사진들을 배열하고 정리해 통일되 고 간명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가 의식하는 인생이 된다. 그러나 뇌 손상 때문이든 매우 혼란스러운 경험 때문이든 그 이야기의 일부가 사라지면 뇌는 평상시와 똑같은 논리 수순에 따라 구멍을 메 운다. 조각이 사라진 채 퍼즐 맞추기를 할 때처럼 무의식의 뇌는 빈틈에 가장 설득력 있게 딱 들어맞을 것 같은 기억과 생각의 조각을 방대한 지 식 저장 창고에서 가져온다. 자기중심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그러하듯이 뇌도 그 사람 개인의 신념, 관점, 희망, 두려움에 의지하면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쓰는 작업을 도와준다. 하지만 뇌는 기억에 생긴 구멍이 심각하 게 크고 경험이 혼란스러울수록 이야기를 지어내기 위해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상태의 뇌가 하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 이 듣기에는 허무맹랑할 수 있다. 
- 신경학자들이 수면마비(sleep paralysis, 가위눌림)라는 신비한 현상에 대해 알게 된 지 한 세기가 지났다. 렘수면 동안 근육이 마비되고 가장 생생 하게 꿈에 빠져든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잠에서 깬 순간 중요한 두 가 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다. 전기 스위치를 켜듯이 어느 순간 잠에서 완전히 깼음을 깨닫는다. 둘째, 마비된 상태에서 벗어 나 근육을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의식과 근육 통제를 담당하는 뇌 영역은 다르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두 영역은 동시에 재가동된다. 적어도 대부분은 그렇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의식이 돌아오는 것과 근육 통제가 작동되는 것 사이에 시차가 생길 수 있다. 그때는 잠에서 깨어나 주위 인식은 가능하지만 몸은 몇 초, 길게는 몇 분 동안 마비 상태인 채로 있다. 심지어는 그런 마비 상태가 1시간 넘게 이어졌다는 사례도 있다.
- 학계에서는 수면마비를 겪는 사람이 인구의 8퍼센트 정도라고 추산한다. 미국만 해도 2,000여만 명이 평생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수면마비 를 경험한다. 증상의 심각성은 사람마다 다른데, 대다수는 수면마비 시간 이 고작 몇 초이고 더 이상 길어지지 않아 환각까지는 경험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불안감이 심한 사람일수록 수면마비 동안 낯선 존재가 옆 에 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수면까지 그대로 이어진 스트레스는 쉽 게 잊히지 않을 환각을 더 무서운 것으로 바꾼다. 약한 형태의 사회 공포 증인 사회적 이미지 기능장애(dysfunctional social imagery)가 있는 사람 도 수면마비가 오면 환각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다. 사회적 이미지 기능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항상 자신을 주목하고 재단한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은 수면마비가 찾아오면 외계인이 자신을 실험하고 몸에 무언가를 찔러 넣는 것 같은 환각을 더 심하게 느낀다. 수면마비 증상은 외계인에게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과 기이할 정도로 똑같다. 양쪽 모두 어슴푸레한 형체의 침입자가 옆에 있는 동안에는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 신경과 의사는 관자엽 뇌전증을 앓는 환자들이 겪는 증상을 “과종교 증(hyperreligiosity)” 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관자엽 뇌전증 환자 100명 가운데 한 명에서 네 명은 로버트가 본 것 같은 하늘의 존재가 등장하는 종교적 허상이나 각성 상태를 경험한다. 어떤 환자는 발작의 영향이 이 마엽까지 미쳐 행동방식이 영원히 변하게 된다. 종교의 가르침을 독실하 게 실천하는 신도가 되는 것이다. 심리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사람은 관자엽 뇌 전증이 원인이 되어 성령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 어 빈센트 반 고흐도 관자엽 뇌전증 증상을 많이 보였고, 부활한 예수 그 리스도를 만나는 등 여러 번 종교적 환상에 빠졌다. 마이클 가자니가는 모세, 마호메트, 부처 등 종교적 상징 인물도 그들의 행동으로 판단하건대 같은 질병을 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관자엽 뇌전증은 그들이 되어 능력을 갖게 된 원천이었을까? 마이클 가자니가는 그럴 가능 성이 상당히 높다고 의심한다. 종교나 영적 세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신경신학 분야에서 검사한 종교계 종사자들의 신경 촬영 영상을 보면 그들은 이마엽과 관자엽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연구팀이 관자엽 뇌전증을 앓는 앨리슨의 뇌에 비슷 한 부의를 자극해 그림자 인간을 느끼게 했듯이 신경신학 연구팀도 비슷 한 부위에 전류를 흘려보내 종교인들의 영적 경험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한 연구에서는 피험자들에게 헬멧을 씌워 관자엽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자기장을 흘려보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은 다양한 영적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죽은 친척의 존재를 느꼈다고 말하는 피험자도 있었고, 정신이 몸에서 분리되는 이른바 유체이탈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피험자 도 있었다. 또 어떤 피험자는 다른 실체'가 옆에 있는 것은 느꼈지만 그 존재가 신인지, 다른 영적 방문자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쨌든 뇌 활동을 자극받은 피험자들은 신비한 존재를 만났다.
- 높은 G포스에 노출된 전투기 조종사나 위급한 상황의 심장마비 환자는 환각이 느껴지는 임사 체험을 경험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 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 모두의 뇌에서 갑자기 산소가 빠져나간다. 전투기 조종사는 빠른 속력으로 인해 뇌로 들어가는 혈류가 차단된다. 심장마비 환자는 심장의 알맞은 혈액 순환 기능이 상실된다. 피가 없으면 산소도 없다. 연구에 의하면 시각겉질이나 눈으로 들어가는 혈류에 이상 이 생기면 주변시가 상실되고 중심시가 환해지면서 자신은 깜깜한 터널 에 있고 저 끝에 반짝이는 빛이 보인다는 지각이 만들어진다. 전투기 조종사와 심장마비 환자는 뇌의 산소 부족으로 임사 체험을 하게 된다.
- 임사 체험 연구 결과 뇌와 눈으로 향하는 혈류가 위험한 수준으 로 줄어들면 뇌는 시야의 빈틈을 메우려 한다. 뇌에서는 이른바 렘방해 (REM intrusion) 과정이 진행되면서 꿈이 가장 생생한 단계인 렘수면과 비슷한 활동이 시작된다. 렘방해란 꿈속의 시야가 의식으로 들어와 현실 과 몽상의 구분이 흐릿해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잠을 자는 동안이나 잠 에서 깬 직후 분명 무언가를 보거나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아니 었다고 한 경험이 있는가? 꽤 흔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꿈 내용이 꿈에 서 깬 상태의 정신에 스며드는 렘방해에 해당된다. 연구에 따르면 임사 체험을 한 사람의 60퍼센트는 과거 어떤 형태로든 렘방해를 경험한 적 이 있었다. 이런 환상을 만들어내는 데 관여하는 영역은 뇌줄기에 위치한 청반 일 공산이 크다. 청반은 아드레날린의 사촌 격인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내보냄으로써 스트레스와 공황에 생리 적으로 반응하게 도와준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투쟁 도피 반응이다. 두 려움과 불안감이 생길 때, 저혈압과 산소 결핍 같은 신체적 스트레스원 이 생겼을 때 이런 반응이 일어난다. 우연치 않게 심장마비 환자와 전투기 조종사는 똑같은 스트레스원을 느낀다. 일단 작동한 청반은 노르에피 네프린을 시작으로 연쇄적인 화학 신호를 내보내고 그 신호는 스트레스 를 받는 상황에서 우리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공황이 시작된다. 이 시점 에 이르면 어떤 사람들은 신체가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뇌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려고 안정감을 자아내는 대치 신경전 달물질을 내보낸다. 어떤 식으로인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신경계 의 이런 방해 작용은 렘수면의 중요 요소를 움직여 꿈과 깨어 있는 상태의 사고를 뒤섞는다. 임사 체험의 환각은 뇌가 두려움과 공황을 상쇄하고 평온함을 만들 려고 시도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아마도 카를로는 이혼과정 동안 긴 장감과 비참함이 커지면서 청반이 작동했을 것이다. 신체가 보상을 받으 려다가 방해가 일어났고 카를로는 밝은 빛과 아름다움, 기쁨이 가득한 세상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이 설명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임사 체험이 죽음에 임박한 사람만이 겪는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 임사 체험은 신경전달물질이 신경계를 통제하려고 싸움을 벌이는 순간 의식이 보게 되는 현상이다. 렘방해에 취약한 사람일수록 임사 체험도 더 자주 경험한다. 뇌는 렘방해 상태에서 스트레스의 영향에 맞대응 하려고 하면서 꿈과 비슷한 환각에 빠지게 된다.  임사 체험 증상이 특히 쉽게 일어나기 쉬운 또 다른 유형은 수면마 비를 느끼는 사람들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면마비가 있는 사람들일 수록 렘방해는 물론 임사 체험을 겪을 가능성도 높다. 수면마비와 심장 마비 사이에는 환각에 쉽게 빠지게 만드는 무언가 특별한 연결 고리가, 무의식적으로 죽음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특별한 연결 고리가 있 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둘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두려움이다.
- 자신이 외계인에게 납치당했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며 주장하는 사 람들은 다른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어도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왜 그들은 자신들의 말에 신빙성이 전혀 없는데도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굳 게 믿는 것일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감정적으로 강렬한 기억을 회상 하는 방식은 평범한 기억을 떠올릴 때와는 다르다. 인간은 감정적으로 강렬한 기억은 더 확신하며 떠올리고 이야기에 구멍이 있다는 생각은 거 부한다. 진짜 원인은 수면마비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외계인에게 납치당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 좋다. 수면 마비를 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그들 마음이다. 그런데 왜 하필 외계인 납치인가? 많고 많은 현상 가운데 왜 하필이면 외계인인가?
- 신에게 말을 거는 것은 기도다. 신이 말을 걸어온다면 그것은 조현병이다. (토머스 새스)
- 조현병이 자아인식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조현병 환자들은 스스로 간지럼을 태울 수 있는가? 그들은 자신의 행 동을 외부 존재의 탓으로 돌린다. 그렇다면 스스로 간지럼 태우는 느낌 과 다른 사람이 간지럼 태우는 느낌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지 않을까? 조현병 환자가 자기 손으로 직접 간지럼을 태웠을 때의 느낌과 실험자가 그들 손을 간지럼 태웠을 때의 느낌을 비교한 연구에서 그들은 똑같은 수준의 간지럼을 느꼈다! 조현병 환자들은 자아와 비자아를 구분하지 못 하는 범지구적 문제로 인해 나머지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이루어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간지럼 태울 수 있다.
- 기시감은 사실 실제로 아무 연관 도 없고 자기 것이 아닌 특정 감각의 경험을 개인적으로 연관짓거나 자 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느낌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경험이 아닌데도 자 신의 감각과 경험이라고 인식하는 느낌이다. 신경 신호가 잘못 전달되었을 뿐인데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의식적 경 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각각의 뇌 회로를 말할 때 에는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외관이 기억 속의 모습과 일치한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감각을 느낀다. 어떤 목소리가 자기 목소리와 일치한다면 자기 목소리라고 인정하면 된다. 대단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거짓 정보가 전달될 때 뇌가 무의식적으로 많은 일 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내 뇌가 코네티컷에서 신호를 잘못 전달했을 때 내가 받은 느낌은 익숙함만이 아니었다. 나는 내 개인의 여행사를 더없이 확고히 주장했다. 뇌의 설명은 지극히 논리적이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장소를 깨달았고 그것이 기억 속의 장소와 일치한다면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히 기억하기 힘들지만 오래전 어린 시 절에 왔던 장소였을 것이 분명하다. 누가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왔을까? 아 마도 부모님이겠지. 합리적인 이야기다. 이렇게 무의식계는 거짓 정보로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냈지만 추론 자체는 합리적이다. 내 뇌는 지금 빈 틈을 메우기 위해 이용 가능한 정보로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상황을 합리화시켰을 뿐이다.
- 1843년 제임스 브레이드(James Braid)는 '최면 (hypnotism)'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고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최면 상태의 진정한 기원과 핵심은 추상적 개념이나 정신 집중의 습관 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몽상에 빠지든 즉흥적인 추상 개 념에 빠지는 정신의 힘이 하나의 생각이나 연속된 생각에 완전히 몰두 한 나머지 다른 모든 생각이나 느낌, 일련의 사고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의식적으로 무심하게 다룬다. 다시 말해 최면에 걸린 사람은 특정한 일련의 사고에 집중하기 때문에 외부의 조언이나 제안에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최면은 무의식 상태가 아니라 상상에 극도로 집중한 상태다. 심상 훈련은 스포츠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심상훈련은 강력한 도구다. 최면이란 외부의 어떤 방해도 없이 제3자에 의해 조종되는 심상 훈련이다. 무언가를 아주 골똘히 상상할 때 그 무언가는 실재가 된다.
- 최면은 뇌의 정보 프로세스를 바꾼다. 그렇기 때문에 최면술사는 최면을 거는 대상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에 최면 상태에서 들어오는 암시는 이마엽의 엄격한 의식적 검열이 작동 중인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존 그루질리어도 말했다시피 이런 이유로 인해 최면, 에 걸린 사람은 상상의 매와 싸운다고 믿으면서 셔츠를 찢으려는 우스꽝 스러운 행동도 할 수 있다. 매가 날아들어왔다는 최면술사의 말은 실제 로는 매가 보이지 않는 내 친구의 시각 지각과는 충돌하는 것이었다. 하 지만 친구의 의식은 그 충돌을 인지하지 못했고 상상으로 빈틈을 메웠 다. 의식의 방어 레이더가 무너지고 그 무너진 틈새로 최면술사의 말이 몰래 스며들었다. 최면술사의 말이 정상적일 때의 말보다 훨씬 강한 영 향력(그리고 더 강한 접근력)을 행사한다면 얼마나 더 강하다는 것인가? 최면술사는 그 대상에게 어디까지 명령할 수 있는가? 일단 최면에 걸리면 최면 암시는 의식의 검열을 받지 않고 머릿속으 로 들어갈 수 있다. 머릿속에 들어온 최면 암시는 의식적 분석을 피하는 잠재의식 메시지와 비슷한 수준의 힘을 발휘한다. 잠재의식의 영향력은 그 역사가 길고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그 역사를 통해 잠재의식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다.
- 행동적 관점에서 보면 백워드 마스킹 같은 잠재의식적 프라임 이미 지를 사용하는 기법은 우리가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과 다른 사람을 인식 하는 방식, 상황을 판단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잠재의식 메시 지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효력을 발휘하는가? 뇌 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의식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데도 프라임 이 미지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fMRI를 이용한 연구에 따르면 무서운 얼굴 사진이 의식에 인식되면 뇌 전체의 영역이 점화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눈의 수용체에서 보 낸 신호는 시각로를 따라 올라가 머리 뒤쪽에 위치한 뒤통수엽(시야 확 인 담당)에 이른다. 그런 다음 신호는 이마엽과 마루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한바탕 증폭된 신경 활동으로 인해 눈에 비친 것을 해석하고 분석할 여지가 생긴다. 무서운 얼굴을 보았기 때문에 편도(감정 처리 담당)도 활성화된다. 이런 소동이 모두 가라앉으면 피험자는 사진의 표정을 의식 적으로 인식한다. 사진 속의 위협적 표정을 알아차리고 두려움을 느끼며, 심지어는 저 사람이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혹시 심리요법이 필요 한 사람은 아닌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똑같은 사진일지라도 백워드 마스킹 기법으로 보여줄 경우 뇌의 활동 패턴은 매우 달라진다. 경로의 시작은 똑같다. 눈의 수용체에서 시작된 신호는 시각 경로를 따라 올라가고 관련 시각핵을 통과 한 다음 뒤통수엽에 도착한다. 그리고 여기부터는 이전과는 다른 시나리 오가 전개된다. 신호는 이마엽에서 증폭되지 않으며 fMRI에도 신경 활 동 폭발이 잡히지 않는다. 이마엽은 비교적 잠잠하다. 하지만 다른 영역 이 갑자기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뇌의 저 깊은 곳에 위치한 편도가 밝아 지면서4 의식적으로 보지 못한 사진 속의 무서운 표정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해당 피험자는 사진을 보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마엽에서 는 어떤 분석이나 해석도 하지 않는다. 그가 알기로는 그는 그런 무서운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잠재의식적인 프라임 이미지는 그의 뇌에 각인되었고 편도를 비롯한 신경계는 그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그 사진이 불러일으킨 감정을 분주히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지나치듯 흘낏 보낸 시선,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의 가사 한 줄, 곁눈질로 바라본 포스터 등과 같이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해도 어떤 한순간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 한다. 감각 수용체에 들어오는 어떤 것이든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그만큼 미묘하게 우리의 감정과 거기에 따르는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영향을 알아채지 못한다.
- 잠재의식 메시지는 과장되게 평가절상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뚜 렷하지 않다. 하지만 최면은 매우 분명하고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영향력의 차이는 최면과 잠재의식 메시지가 의식과 상호 교류하는 방식 에 있다. 잠재의식 메시지는 의식적 인식을 완전히 피한다. 그러다보니 대상의 사고를 조종하는 능력에도 제한이 따른다. 사진을 의식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면 그 사진이 뜻하는 대로 행동하거나 거기에 맞게 행동을 조종하는 결정도 내릴 리 없다. 잠재의식 메시지는 신경계에서 편도의 활동에만 영향을 준다. 즉 감정 상태도 조금만 변한다는 것이다. 잠재의 식 메시지가 개인의 행동에 조금 영향을 미쳐 자가 채점 결과가 약간 달 라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결과 전체가 달라질 정도로 커다란 영향은 아닐 수 있다. 의식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잠재의식 메시지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최대치도 낮다. 볼링공의 경로를 구슬치기로 바꾸려는 시도와 비슷하다. 이와 반대로 최면은 볼링공을 던지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 최면은 의식적 인식을 피하지 않는다. 피험자는 자신이 들은 암시를 의식적으로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최면은 의식의 사용 방법을 바꾼다. 피험자는 최 면술사가 설명하는 상상의 이미지에 완전히 빠져 그 말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 최면은 의식적 인식을 회피하기보다는 대상을 진정시켜 검열과 분석을 하지 않게 만든다. 또한 대상자로 하여금 자기 행동을 검열하 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하는 데 정신을 집중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경험 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 환청을 듣는 조현병 환자의 뇌는 정보 처리과정에 빈틈이 있다. 조현병 환자가 목소리를 들을 때 그것이 자기 목소리 임을 깨닫지 못하고 주위에 그 말을 할 만한 사람이 없으면 뇌는 말이 되 는 설명을 하려고 창의성을 발휘한다. 그래서 첩보 요원, 기술적 장치, 영적 존재 등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이런 존재들이 보이지 않는 힘을 동원 해 그의 머릿속에 접속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괴상한 설명은 어떤 면에서는 조현병 환자의 무의식이 불완전한 이야기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나름의 합리적 시도라 할 수 있다. 잠재의식의 영향도 마찬가지다. 연구 결과에서도 밝혀졌듯이 외부 에서 가해지는 잠재의식적 작용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면 그 사람의 뇌는 변화된 행동에 대해 나름의 이유와 동기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 최면이든 광고는 잠재의식 메시지이든 대상을 정해 행해지는 외부 암시는 뇌 활동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백워드 마스킹은 우리로 하여금 있는지도 모르는 감정을 처리하도록 독자적으로 편도를 활성화 시킬 수 있으며, 최면은 상충되는 것을 관찰하는 뇌의 처리과정을 약화시킬 수 있고, 광고의 상징은 안쪽이마앞엽겉질을 활성화시키고 광고가 원하는 식의 선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외부 영향에 지배되는 순간 뇌는 그런 영향을 우리가 자발적 동기라고 믿고 있던 동기와 합쳐버린다. 그러나 앞의 세 가지 기법 가운데에서도 단연코 최면이 가장 강력하다. 어쨌든 최면은 다른 기법보다 훨씬 강력하게 대상자로 하여금 있지도 않은 존재를 인식하게 만들거나 정상 상태에서는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면 따위는 믿지 않는 자원자에게 최면을 걸어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상병이 군사기밀을 누설하게 만들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 살인자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모든 감각 지각을 다 의식하지 못해도 뇌는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이며 지각한 정보를 조사하고 분류한다. 최면은 앞대상겉질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마엽을 차단하지는 못한다. 최면에 걸려도 의 식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기 행동을 어느 정도 감시할 수 있다. 뇌의 무의식계는 해당 사항이 즉시 관심을 쏟아야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하면 의식에 신호를 보내 행동을 취하라고 알린다. 명확히 말하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정신과 병력이나 다른 신경심리학적 질병이 없는 사람도 최면에 빠져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가? 일부러 계획하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없다.
- 뇌의 무의식계는 빈틈을 메우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합리화시키고, 매우 비논리적인 상황을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설명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앞에서 살펴본 여러 사례와 연구들은 그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왜인가? 왜 무의식계는 완전 한 서사를 유지하려 하는가? 왜 무의식계는 혼란스럽거나 모순된 경험

을 억지로 이어 붙이는 해석을 만들어내는가? 이유는 우리의 자아의식 을 지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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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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