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세균의 역습

과학 2021. 2. 17. 20:01

- 배 속이 불편할 때 머리가 멍해지는 대표 원인으로 저혈당증을 꼽을 수 있다. 과민성 장증후군을 앓는 대부분의 환자가 탄수화물을 섭취한 후 가벼운 저혈당 증상을 겪는다. 이런 환자를 대상으로 수소 호기 검사를 실시하면 소장 내 수소 농도의 상승 여부를 알 수 있다. 참고로 수소가스는 입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 라 거의 100% 장내세균이 당을 분해할 때 발생한다. 검사를 통해 소장 내 장내세균이 과도하게 증가한 SIBO 상태 에 있다는 사실도 확인 가능하다. 저혈당 증상 정도는 SIBO 중 증도에 비례하는데, 이는 과증식한 장내세균이 저혈당증을 야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SIBO가 발병하면 소장 내에 비정상적으로 증식한 세균이 지질 다당류(Lipopolysaccharide, LPS)라고 불리는 독소(엔도톡신)를 내뿜는데, 이 독소가 장에서 혈액으로 흡수되는 질환을 내독소 혈증(엔도톡신 혈증)이라고 한다. 과민성 장 증후군 환자에게 나타나는 집중력 저하와 흐리멍덩한 정신 상태가 SIBO로 인한 내독소 혈증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SIBO 치료 후 뇌 기능 저하가 개선됐다는 보고와 이를 뒷받침할 의학적 소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담당 환자가 SIBO를 치료한 뒤 머릿속이 멍해지는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를 일상적으로 목격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간 질환으로 뇌증(Encephalopathy)이 발병한 환자다. 뇌증이란 정신 착란(섬망)을 비로 한 뇌 기능 장애가 나타나는 증상이다. 간경변 환자의 예를 살펴보자. 환자의 장에서 장내세균이 생 성한 독소가 혈액을 타고 간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를 간에서 해독하지 못했을 때 뇌증이 발생한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간이 독소를 제거하는 필터 역할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지만, 간경변으로 간부전이 온 환자는 독소를 해독할 수 없는 상태이다. 결국 장내세균으로 인해 생성된 독소가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며 심장, 신장, 간을 포함해 신체 모든 부위에 영향을 끼치다가 급기야 뇌 기능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환자는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고 의학계에서는 이런 상태를 간성 뇌증'이라 부른다.
- 여성은 하복부 통증이 있는 경우 주로 부인과를 찾는다. 하지만 만성 골반통이 반드시 부인과 질환 때문에 일어난다고 단언 할 수는 없다. 물론 골반통이 자궁 내막증이나 복강 내 유착 또는 골반 내 울혈 등으로 생기기도 하지만, 과민성 장 증후군 같 은 소화기 질환이나 간질성 방광염 같은 비뇨기과 질환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의사가 과민성 장 증후군 환자를 부인과 증상으로 오진한다. 부인과적 통증은 자궁 내막증, 난소낭종, 골반 내염증성 질환 그밖에 각종 부인과 질환에서 원인을 찾는다. 따라서 환자는 수술과 같은 침습적인 치료를 받게 된다. 하지만 통증 의 원인인 과민성 장 증후군이 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인과진료 및 치료 후에도 환자의 복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쓸데없이 효과도 없는 치료를 받은 셈이다. 복통을 지닌 여성과 그 주치의는 부인과 증상과 과민성 장 증후군 증상이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지금까지 환자가 겪은 장 증상을 의사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골반통이 혈변이나 변비 등 장 증상과 함께 왔다면 통증의 원인은 실제로 장에 있으며, 이럴 때는 과민성 장 증후군을 의심하는 게 현명하다. 특히 통증이 원활한 배변 활동으로 나아진다면 더욱이 과민성 장 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과민성 장 증후군과 자궁내막증 둘 다 매우 일반적인 질환이므로 양쪽 질환이 다 발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전체 역사를 진화생물학 관점으로 살펴보면 뇌, 그중에서도 대화, 언어, 추론 등 고등 신경 활동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가장 최근에 진화했다. 그에 비해 소화관은 발달 역사가 깊고 그만큼 복잡한 기관계다. 놀랍게도 장은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신경망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뇌와 연결된 신경을 모두 제거한다 해도 소화관은 독립적인 기능이 가능하다. 전형적인 예로 미주신경 절단술을 들 수 있다. 뇌와 장의 연결을 끊는 수술인데, 운동 기능과 감각 기능을 담당하는 미주신경을 절제하는 것이다. 꽤 오래 전 난치성 소화성 위궤양 환자의 미주신경 절단술을 집도한 적이 있다. 위산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인 약이 없던 당시에는 뇌에서 위로 위산을 분비하도록 명령하는 미주신경을 절단하는 게 소화성 위궤양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절단 수술 후 미주신경의 활동이 멈췄어도 소화관은 독립적으로 제 기능을 했다. 즉, 장은 뇌에서 명령을 받지 않아도 자생활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장내세균은 인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장'에 꿋꿋하게 생존 거점을 마련했다.
- 뇌가 위장 등 소화관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 결과로 충분히 알려졌다. 가령 기분 변화는 위액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 불량, 식욕부진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장내세균이 뇌에 영 향을 준다고 발표했다. 손상을 입어 혼란에 빠진 장내세균이 뇌에 강한 스트레스를 줘서 정신적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이로써 뇌와 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쌍방향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종류의 자폐증(대화 능력에 지장을 초래하는 정신 질환의 일종)은 장내세균의 불균형 즉, 디스바이오시스(Dysbiosis)와 관련이 깊다. 이 질환은 의학적 효과를 기대하고 섭취하는 유산균의 일종인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로 치료할 수 있다. 반대로 특정 약을 실험용 쥐에 주사하면 자폐증과 상태가 같은 쥐를 만들 수 있 다. 이 자폐증 모델 실험용 쥐는 현재 장내세균이 교란된 상태이다. 실험용 쥐가 낳은 새끼도 어미와 마찬가지로 자폐증 증상을 보이는데, 유산균 등 프로바이오틱스를 투여하면 증상이 개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장내세균 폭주로 생긴 스트레스나 정신적인 문제는 그 자 체로 소장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등 악순환을 낳는다. 그렇다면 왜 소장의 움직임이 나빠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의 시상하부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부신피질 자극호르몬 분비호르몬(Corticotropin-releasing hormone, CRH)을 분비하는데, 이 CRH가 장에 전달되면 장의 연동 운동이 억제된다. 연동 운동이 느려지면 소장 점막에 장내세균이 달라붙어 균총을 형성하고 세균이 증식하 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소장은 원래 격렬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때문에 소장에는 세균이 정착하지 못하고 증식도 많이 할 수 없다. 게다가 영양분 흡수 역할을 담당하는 소장에 세균이 너무 많이 증식하면 인체에 필요한 영양분을 세균에게 빼앗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대장에 비해 소장의 세균 수가 월등히 적은 것이다. 인체는 소장 내에 세균이 많이 존재할 수 없도록 끊임없이 제어한다. 빠르고 격렬한 소장의 연동 운동은 말 그대로 인체의 방어 기전인 것이다. 그러나 장내세균 균형이 깨지면 스트레스를 받은 뇌는 CRH를 분비하고 소장의 움직임은 둔해진다. 소장의 연동 운동이 느려지면 장내세균이 균총을 이루기 쉬워 결국 세균이 과하게 증식한다. 이는 인체 내에서 자가 복제를 통해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DNA를 늘리고 증식하려는 장내세균의 이기적인 행동이다. 장내세균은 자기 멋대로 장의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소장내 세균 과잉 증식 즉, SIBO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 인간이 먹은 음식물 속 영양소는 소장에서 대부분 소화·흡 수된다. 음식물이 장 속으로 들어오면 인간의 소장 세포와 장 속 장내세균은 서로 먼저 영양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장내 세균은 지금껏 생존을 위해 인간의 흡수 시스템과 싸워온 셈이 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장내세균에게 영양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내세균보다 먼저 영양분을 흡수하는 분자 메커니즘으로 발달했다. 긴 시간 동안 공존하며 장내세균과 인체 다른 세포는 차츰 타 협을 한다. 서로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장내세균은 원래 자기 편의대로 인간을 통제하곤 했다. 그러나 애초에 인간이 죽으면 장내세균도 살아남을 수 없는 법,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기적인 장내세균은 자신이 올라탄 인간이란 배에 되도록 해를 끼치지 않는 방향을 선택한다. 정상적으로 균형을 이룬 장내세균이라면 위의 가정이 성립한다.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거의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불균형에 빠진 장내세균 즉, 교란된(디스바이오시스) 장내세균은 오히려 폭주를 선택해 우리를 질병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장내세균의 정상적인 균형 상태란 무엇일까? 되도록 다양한 종류의 장내세균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장내 세균총이란 꽃밭에 다양한 꽃이 어우러져 있듯이 여러 종의 장내세균이 함께 존재하는 형태인데, 장내세균의 균형이 깨지면 특정 소수의 세균이 갑자기 증가하면서 균의 다양성을 잃게 된다. 장내세균은 인간이 섭취한 음식물 찌꺼기를 먹고 살아간다. 세균마다 선호하는 음식물이 다르기 때문에 다종의 장내세균을 늘려 균형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만큼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섭취하면 그에 맞는 다양한 종의 장내세균이 증식한다. 서른 가지 식품을 먹자는 주장이 한 때 유행했는데, 장내세균 종류를 늘리기 쉽다는 점에서 유용한 제안으로 여겨진다.
- 20여 년 전 호주 병리 의사 로빈 워런과 소화기 전문의 배리 마셜이 “소화성 궤양의 90% 이상은 소화관 내에 서식하는 세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을 때 의학계는 크게 놀랐다. 나중에 이 두 사람의 가설은 타당성을 인정받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고, 지금은 만성 소화성 궤양의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 항생제라는 사실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된 환자는 스트레스로 쉽게 소화성 궤양에 걸린다. 하지만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도 표면이 조금 붉어지는 정도의 위장염만 앓게 된다. 즉, 스트레스와 식생활이 궤양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원인이 될 수는 없다. 가령 몇 년 동안 위 점막이 헐어버릴 정도로 소화성 궤양이 심각했던 환자도 일주일 정도 항생제를 복용하면 거의 치료된다. 게다가 헬리 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제거하면 소화성 궤양은 90% 이상 재발하지 않는다. 현재 의학계에서는 소화성 궤양의 원인을 '헬리코박터 파일 로리균 또는 약'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약은 아스피린이나 진통제(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약, NSAIDS)를 의미한다. 한때는 스트레스나 유전을 원인으로 꼽던 위암 역시 99% 이상이 헬리코 박터 파일로리균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위암 환자 중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관련 없는 위암 비율은 1% 이 하, 정확하게는 0.66% 정도이다. 말 그대로 위암은 '감염병’ 인 것이다.
- 과민성 장 증후군의 원인을 신체가 아닌 정신에서 찾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과민성 장 증후군 연구가 급증한 것은 1970년대인데, 그 시기는 내시경 검사의 적정성을 재평가하던 때였다. 내시경 검사는 장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신축성 광섬유 기술이 도입된 이래로 점차 인기가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내시경 기술이 진보한 덕에 정밀한 장을 시각화하는 게 가능해졌으며, 소화기학계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질병에 급 관심을 돌리게 됐다. 이는 의사들에게 있어서 놀라움과 감동 그 자체였다. 그 이전에는 환자를 진찰할 때 주로 생리 기능 검사'를 시행했는데, 내시경 기술의 진보는 각종 검사의 근본을 뒤흔드는 일대 전환과도 같았다.  이후 조작이 간단하고 결과가 바로 나오는 내시경 검사는 주요 진찰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내시경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만 질환 원인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 검사로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환자는 원인을 규명하 는 데 수고가 들었고, 열심히 찾아도 소득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성가신 환자 취급을 받았다. 위의 과정이 의사가 환자를 바르게 진단하는 바람직한 예는 아니다. 단적인 예로 JMMS(Japan mosapride mega study) 연구 보고에 따르면 위내시경으로 환자의 증상과 명확한 질환을 연결할 확률은 겨우 9% 남짓이다. '위가 아프거나 더부룩한 증상' 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아도 눈으로 확인 가능한 질환은 소화성 궤양이나 위암 등 극히 일부이다. 실제로는 위의 움직임이 나빠지거나 위산에 대한 민감도가 상승(지각 과민증)해서 기능 이상이 발생하고, 그게 증상(기능성 소화 불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진료를 통해서도 눈에 보이 는 질환(기질성 질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환(기능성 질환)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과민성 장 증후군의 원인을 스트레스라 오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트레스가 장 기능과 배변 빈도에 어느 정도 영 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민성 장 증 후군이 아닌 사람도 설사 혹은 구토, 그밖에 다른 소화기 관련 질환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트레스가 장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에 힘을 보태준 것은 결국 1970년대 내시경 검사의 재평가였다. 그때부터 20년 동안 과민성 장 증후군을 심리학 및 스트레스와 연결하려는 연구 무대가 펼쳐진 셈이다.
- 최신 연구에 따르며 무산소 환경에서 메탄을 생성하는 세균 (고세균·메타노젠)만 없애면 과민성 장 증후군 환자의 변비가 해소된다고 한다. 하지만 항생 물질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세균의 과도한 증식이 정말로 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항 생 물질 투여 후 다시 호기 검사가 이뤄져야 한다. 단, 교차 연구 로 메탄을 발생하는 세균이 모두 근절됐는지 확인하지 않는 이 상 변비 완치를 말하기란 매우 어렵다. 메탄이 변비를 일으키는 기전은 매우 흥미롭다. 그중 메탄가스가 장의 움직임을 매우 활발하게 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과민성 장 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호기 검사를 했을 때 메탄 농 도가 높은 환자는 수소 농도가 높은 환자에 비해 소장의 움직임이 약 2배 정도 활발했다. 하지만 소장의 움직임은 배변에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 변을 정상적으로 배설하는 방향의 움직임 즉, 소장에서 대장으 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활동해 배설 과정에 문 제가 생겨 '변비'가 되는 것이다. 변이 소장 내에 정체하는 시간 이 길어질수록 탄수화물과 같은 음식물이 장내세균과 접촉해 발 효하는 시간은 늘 수밖에 없다. 장내세균은 주로 탄수화물을 원료로 가스를 생성하기 때문에 결국 가스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져 환자는 복부 팽창으로 고통받게 된다. 장내세균으로 발생하는 가스는 복부 팽창뿐 아니라 숙주인 인간의 대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메탄가스가 많은 환자에게는 변비가 주로 나타난다. 메타보 체형에 당뇨병 증세가 심한 경우 가 많고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발견된다는 보고도 있다. 특히 만성 변비인 사람은 수명이 짧은 편인데, 발병 15년 후의 생존율 이 약 4분의 3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파킨슨병이나 치매 발병위험도 매우 높다. 하지만 변비를 제대로 치료하면 10년 후 사망률이 약 12%로 감소한다는 것이 다양한 비교 연구로 드러났다. 즉, 장에서 발생하는 가스는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장내 가스를 다스리는 게 예방 의학의 핵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소장 내에서 수소가 발생하는 과민성 장 증후군 환자에게는 설사 증상이 생긴다. 이 환자는 대게 마른 체형이다. 수소가스는 거의 모든 세균이 만들어내지만 메탄가스와 달리 소장 운동 같 은 생리 기능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설사 증상의 중증 도는 소장 내에서 수소를 발생하는 세균 수와 더 관계가 깊다. 수소가스 생산량이 많을수록 설사 증상이 심하다. 메탄가스가 많으면 대사증후군을 앓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로 수소가스 발생이 많은 심부전 환자는 사망률이 높다는 사실이 최근 보고됐다. 그리고 섬유 근육통과 비슷한 증상(전신 통증)이 있는 과민성 장 증후군 환자를 검사한 결과 수소 농도가 매우 높다는 게 밝혀졌다. 수소가 섬유 근육통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수소 농도가 높을수록 세균 수가 많아져 환자의 증상이 심해지기 쉽다.
- 소장에 찬 과도한 가스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를 살펴보려 한다. 본래 가늘고 긴 형태를 띤 소장에 가스가 차면 풍선처럼 부푼다. 식사를 하면 소장 내에 과증식한 장내세균이 음식물을 먹이 삼아 대량의 가스를 생성하는데, 그 가스로 인해 빵빵하게 부푼 상태가 된다. 물론 가스가 소장을 다 통과하면 원래 상태로 줄어든다. 그러나 식사를 하면 다시 풍선처럼 부풀 었다가 또 줄어들기를 반복한다. 풍선도 바람이 들었다 빠졌다. 를 반복하면 막이 얇아지듯이 소장도 마찬가지이다. 점막 벽이 얇아지거나 구멍이 생기기 쉬워지고 이로 인해 소화 흡수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알다시피 소장은 영양분을 흡수하거나 면역력을 좌우하는 등 인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소장을 최대 면 역 기관이라고도 칭한다. 실제로 온몸에 있는 약 2조 개의 면역 세포 중 70%가 소장의 융털 바로 안쪽에 있다. 앞장에서도 설명했지만 소장이 약해지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나 독감 같은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되기 쉽다. 인간을 나무에 비유하면 소장은 뿌리에 해당하는 셈이다. 제 능력을 상실하면 온몸에 그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다.
- SIBO는 치료하기 힘든 새는 장 증후군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다. SIBO가 되면 세균 독소(LPS, 내독소)가 장에서 새어 나와 혈액으로 들어가는데, 미생물을 포함한 이런 유독 물질을 MAMPs'라 한다. 인체의 장벽(腸壁)은 겨우 수십 미크론(m) 밖에 안 되는 얇은 단 일층 구조인데, 이를 장관 상피세포 층이라 부른다. 이 내막이 몸외부와 내부를 구분하고 물 한 방울도 새지 않게 지탱한다. 본래 장은 세균이나 소화가 덜 된 단백질이 장에서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방어벽 기능'을 담당한다. 우선 대장 점액은 장내세균의 공격으로부터 장 점막을 보호한다. 장내세균의 역습 으로 인한 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 방어벽 기능을 높여 야 한다. 대장 점액층은 신기하게도 2층 구조를 이룬다. 장 점막 쪽(안쪽)은 뮤신 으로 이뤄진 점액층(내층, Inner layer)인데, 이곳은 장내세균이 서식하지 않는 일명 '비무장 지대이다. 그리고 그 바깥쪽인 점액층(외층, Outer layer)은 특수 세균만이 서식할 수 있다. 아마도 인간을 돕기 위해 이곳에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내세균은 외층으로는 갈 수 있지만 내층으로는 이동할 수 없다. 안팎을 구 성하는 2층 점액층은 몸 안으로 세균이 접근했을 때, 이들이 장점막 내부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인체의 장을 지켜주는 점액층(뮤신층)은 서양식 식습관으로 점 점 얇아지는 특징이 있다. 이는 서양식이 고지방식'이기 때문이다. 지방은 뮤신층을 얇게 만든다. 그러면 장내세균과 장 점막 상 피세포의 거리가 좁아져 세균이 몸속과 더 가까워진다. 세균이 장 점막과 가깝다는 것은 위험 신호이다. 당뇨병이나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일수록 장 환경이 열악해 뮤신층이 얇고, 세균과 장 점막 사이 거리가 가깝다고 보고된다. 실제로 당뇨병 환자의 약 24%가 균혈증(혈액 속에서 세균이 검출됨) 증상을 보인다. 서양식 식사는 지방 함량이 높다는 것 외에 섬유소가 적은 것도 문제가 된다. 장내세균의 먹이는 식사에 포함된 식이섬유인데, 서양식만 계속 섭취하면 너무도 당연하게 식이섬유 섭취율 이 떨어진다. 장내세균의 영양원이 줄면 어떻게 될까? 장내세균 이 굶어 죽는다. 굶주린 장내세균이 가장 먼저 먹으려 하는 것은 점액에 들어있는 뮤신이다. 식이섬유의 구조와 뮤신이 지닌 당 사슬 구조가 닮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으로 결국 뮤신층이 허물어진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뮤신층이 파괴되면 점액층은 더욱 얇아지고 장내세균이 내뿜는 유해한 독소(MAMPs)는 장 점 막 상피세포를 공격한다. 그 결과 장 점막세포와 세포 사이의 접착(Tight junction, 밀착 연접)이 약해져 장 세포에 틈이 생기게 된다. (장관 투과성 항진' 즉, 새는 장 증후군이 발생하는 것이다. 장내세균은 결국 장 점막으로 침투해 혈액으로 흡수된다.
- 프로바이오틱스는 만능이 아니다. 과민성 장 증후군 환자 중에는 소장 속에 세균이 과다 증식한 SIBO 환자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장 움직임이 나빠서 가만히 있어도 세균이 마구 증식하는데, 유익균까지 추가로 먹었으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아무리 프로바이오틱스라고 해도 움직임이 나쁜 소장에 들어가면 소장에 그대로 머물러 더 증식한다. 결과적으로는 가스나 대사물이 이전보다 더 많이 생겨서 장 트러블이 악화된다.
- 낫토, 요구르트 같은 음식은 고포드맵 식단 구성 식품이다. 이들은 소장에서 잘 흡수되지 않아서 세균의 먹이가 되기 쉽고 장속에서 급격한 발효를 일으킨다. 사람에 따라 가스, 복통, 설사, 변비 등 장 트러블이 나타날 수 있으니 극단적인 식습관은 삼가도록 한다. 원래부터 장이 안 좋은 SIBO 또는 과민성 장 증후군 환자는 고포드맵 식단을 먹으면 오히려 증상이 더 나빠진다. 필요한 사 람에게는 적절한 양의 프로바이오틱스 세균 섭취가 소화관 건 강에 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장에 세균이 과도한 상태라면 복부 팽만, 가스의 과도한 생성, 머리가 멍해지는 현상 등을 일으킬 확률이 높으니 주의하자. 소화관에는 300~500종의 서로 다른 세균이 상호작용한다. 그런데 한 종류의 세균을 투여해 다른 세균의 영향을 상쇄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결과이다. 장내세균은 공생 관계에 있는 세균이 끝도 없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떤 소화기계 질환이라도 여러 세균 중 한두 개가 변한다고 하루아침에 치료되지는 않는다. 바다에 콜라 한 컵을 붓는다고 바닷물 수질이 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소장에서 거의 흡수되지 않아서 쉽게 세균의 먹 이가 되고 급격한 발효를 일으키는 당질을 포드맵(FODMAP)' 이라 한다.  포드맵은 장내세균에게 있어서 패스트푸드와도 같다. 그리고 이 포드맵을 피한 식사법을 '저포드맵 식사'라고 부른다. 저포드 맵 식사는 항간에 퍼진 '장내세균에게 먹이를 줘 장내세균을 늘리자'라는 일반적인 장 활성화 방식과 반대되는 주장을 한다. 지금까지 의사는 배가 부풀어 오르거나 설사를 하는 등 장 트러블로 고민하는 환자에게도 “요구르트를 마시고 우엉이나 아스파라거스 같은 식이섬유를 많이 드세요. 낫토와 김치 같은 발효식품도 꼭 챙겨 드시고요”라며 한결같은 처방을 내려왔다. 그러나 과민성 장 증후군 환자에게 이런 음식들은 소장의 장내세균 증식을 거드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이 영양소가 모두 장내세균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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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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