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인간의 시대

과학 2020. 12. 16. 12:07

- 지질학은 시간을 다루는 학문이다. 46억 년 지구 역사를 다 루다 보니 일상의 익숙한 시간 개념을 벗어난다. 한 세에서 다 음 세로 이동하는 데 수백에서 수천만 년이 걸리는데, 기나 대에 비해서는 짧은 편이다. 공식적으로 현재의 지질시대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다. 홀로세는 약 1만 1700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인류에 의해 지구가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변했 기 때문에 홀로세와 구별되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명 명하자는 것이 인류세 담론의 핵심이다. 지질학자, 생물학자, 대기과학자, 철학자 등 각계의 학자들이 인류세를 주장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점은 윌 스테픈처럼 지구시스템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이 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네덜란드의 대기과 학자 파울 크뤼천 Paul Jozef Crutzen이다.
- 인류세를 적극적으로 주창하는 지질학자들은 인류세의 분기점을 두고 농경의 시작, 산업 혁명의 시작, 최초의 핵 실험 이후(1950년 대) 등을 후보로 보고 있었다. 메갈라야절의 등장은 농경이 시작된 시기와 유사한 4200년 전에 새 지질시대가 시작 됐다고 공표한 것으로, 인류세의 분기점 후보를 하나 지웠다. 인류세에 대한 과학적 검토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반강제적 으로 농경의 시작과 인류세는 무관해진 것이다. 또한 인류세가 공식 지질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질학계 내부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홀로세 후 기 메갈라야절이 발표된 사실이 인류세 담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인류세 담론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 중 하나인 지질학자 얀 잘라시에비치Jan Zalasievica는 그런 우려를 일축한다. "메갈라야절은 홀로세 내에서 4200년 정도의 기간을 의미하는 거예요. 홀로세 연구가들 사이에서 몇 년간 논의한 것으로 정한 사실이죠. 인류세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구시스템의 지질학적 변화가 200년 전부터, 주된 변화는 70년 정도 전부터 시작됐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홀로세의 한 시기인 메갈라야절을 인정할지 아닐지는 인류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과는 관 련이 없는 독립적인 이야기입니다." 메갈라야절 인정의 근거가 된 4200년 전의 대가뭄은 작은 규모의 변화다. 인류세는 훨씬 큰 변화다. 지구시스템을 영구 적으로 바꿀 만한 파괴력을 새롭게 명명하는 작업이다. 메갈라 야절이 홀로세 또는 인류세의 하위 단위인 절에 해당하니, 상위 단위인 인류세 공식화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 지질시대를 나누는 것은 생물의 출현과 멸종, 인류가 나타나기 전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첫 번째,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말. 4억 5000만 년에서 4000만 년 전의 일이다. 오소세라스orthoceras 같은 앵무조개류와 삼엽충 이 번성했는데 해양 생물 50퍼센트와 해양 무척추 동물 100여 과가 멸종됐다. 원인은 전 지구적 기후 한랭화와 남반구의 빙 하기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번째, 고생대 데본기 말로 원시어류가 살던 시기이다. 3억 7000만 년에서 6000만 년 전에 발생해 생물종의 70퍼센트가 사라졌다.
세 번째, 고생대 페름기 말, 2억 5100만 년 전인데 해양 생물종의 약 96퍼센트와 육상 척추동물의 70퍼센트 이상이 절멸했다. 역대 대멸종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네 번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로 2억 500만 년 전, 공룡이 출현해 번성하던 시기이다. 공룡, 익룡, 악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파충류가 사라졌다. 대규모 화산 폭발을 원인으로 본다.
마지막이 중생대 백악기 말, 6600만 년 전으로 가장 최근이다. 이 사건으로 공룡이 멸종했다. 원인은 운석 충돌로 추정하고 있다. 진열대 맨 위 칸은 비어 있다. 거기에 인류세가 들어가게 될 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멸종의 원인은 이전의 다섯 번의 대멸종과 같은 운석 충돌, 화산 폭발, 빙하기 도래 등이 아니라 한 생물종일 가능성이 크다. 호모사피엔스는 그렇게 새 지질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새겨 넣을 자격을 획득했다.
- 고생대의 대표적 화석은 삼엽충, 중생대는 암모나이트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주의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지금 시대의 어떤 화석을 발견할까? 현재로서는 '닭 뼈가 유력한 후보다. 동 시간대에 77억 인 구가 약 230억 마리의 닭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 한 명당 닭 세 마리꼴이다. 2008년에는 한국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해 약 1000만 마리의 식용 닭이 살처분돼 매립되기도 했다. 그럼 그 뼈들은 어떻게 될까? 썩거나 화석이 된다. 닭 뼈는 산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보통은 잘 썩지만, 매립지 환경은 산소가 별로 없기 때문에 화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닭 뼈는 지구 전역에서 화석화가 진행 중인데 수적으로 규모가 크고 지리적으로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인류세를 대표할 만한 화석으로 지목된다. 닭이 삼엽충, 암모나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셈이다. 닭 입장에서는 황당할 일이다.
- 캐리 베넷 박사는 닭 뼈가 인류세의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증거로 인간의 선별 개량을 지목한다. 먹기 위해 인위적으로 바꾸다 보니 지금의 닭 뼈는 로마시대, 중세 시대의 닭 뼈와 달리 다리와 가슴 부분만 비대해졌다. 자연적 으로 진화하지 않은 탓에 엄청난 몸무게가 그들의 뼈에 영향을 줘 골절과 뼈 왜곡의 증거가 발견된다. 또한 베넷 박사는 성장률을 언급한다. 2010년대의 닭이 1950년대에 비해 5배나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 새들은 정말 슈퍼 사이즈고 겨우 5~6주 됐을 때 도살당하죠. 아직 청소년기일 때요. 크기가 커서 일찍 도축돼요." 일 년에 약 658억 마리의 닭이 도살된다. 드라마틱한 것은 숫자뿐이 아니다. 급속한 성장에 따른 형태의 변화, 뼈의 다공성, 유전자의 변이 등 그들의 생명 작용은 인간에 의해 크게 바뀌어 있었다. 조상인 붉은들닭과는 아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 들, 식용 닭은 화석학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인 형태종이 되어 버렸다. 캐리 베넷 박사 연구진은 2018년 12월 과학저널 왕립 학회 오픈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식용 닭은 인류가 생물권을 바꿔놓은 상징으로서 지표 화석이 될 만하다"고 결론내렸다.
- 신이 되고픈 인간은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처럼 현실 속 피조물을 만들었다. 이 피조물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으며, 가볍고, 방수 기능까지 갖춘 만능에, 가격도 싸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빚어내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 어 'Plastikos'에서 이름을 딴 플라스틱. 잘 썩지 않기 때문에 짧 게는 450년, 길게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우 리 수군이 플라스틱을 썼다면 아직까지 바다를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바다거북이 장수의 상징이라면, 플라스틱은 불사의 존재다. 더 센 놈이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죽였다.
- 자연 환경에서 플라스틱에 노출된 700여 종의 해양생물을 연구해보니 많은 종이 직접 적이고 물리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다. 화학물질이 플라스틱을 통해 옮겨진다는 것도 명확했다. 바닷물 속에는 비스페놀, 노 닐페놀NPE, 폴리브롬화디페닐에테르PBDE 등의 화학물질이 있는 데 미세플라스틱 표면에 들러붙기 쉽다. 이를 흡착이라고 부른 다. 다만 체내에 들어온 미세플라스틱들이 추가적인 독성 피해 가 있을 정도로 충분한 화학물질을 흡착했는지, 또 얼마나 많은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해야 내분비계가 영향을 받는지 등은 분명하지 않다. 가장 섬뜩한 점은 미세플라스틱이 어류, 야생동물, 그리고 인체에 머물면서 해당 종에 미치는 유해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처드 톰슨 교수가 미세플라스틱의 존재를 밝혀낸 지 겨우 15년 정도, 플라스틱을 먹으면 건강에 어떤 문 제가 생기는지 알아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따져보면 플라 스틱이 발명된 지 대략 150년, 본격적으로 사용된 지는 60~70 년 남짓이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아직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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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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