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WG는 무엇을 기준으로 홀로세의 종말과 인류세의 시작을 결정 할 수 있었을까? 이 모임의 위원장인 영국 지질학자 얀 잘라시위츠(Jan Zalasiewicz)는 “인류세는 지질학적인 시간과 과정, 지층의 단위로 충분 히 사용될 수 있다. 그것은 구별이 가능하고 그 자체로 뚜렷한 특징을 가진다”고 말했다. 그 증거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방사선 물질과 플라스틱, 그리고 닭뼈다. 놀랍지 않은가. 공룡의 화석이 쥐라기의 증거였다면, 인류세의 증거가 닭뼈라니!! 인류세의 가장 유력한 증거는 방사선 물질이다. 1940년대 후반에 이후로 잦은 원자폭탄 실험이 있었으며, 1945년에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다. 이것이 일회적 사건으로 종료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핵 실험은 지층의 역사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증거를 남겨놓았다. 핵폭발 때 성층권에 올라가 잔류했다가 지표면으로 떨어진 낙진, 즉 방사성 물질이 그것이다. 미래의 지질학자는 현재 지구의 지층에서 그러한 방사성 물질을 대량 검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자 최악의 발명품이 플라스틱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사용된 때는 1950년이었다. 당시에는 값비싸고 귀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대량으로 생산되어 한 번 사용하고 쉽게 버려도 좋은 일회용품이 되면서 전 지구의 표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바다를 떠다니는 플라스틱의 섬, 죽어서 부패한 바다거북의 배에서 쏟아진 플라스틱, 우리의 호흡기로 들어오는 플라스틱 미세먼지 등, 플라스틱의 위협은 끝이 없다. 바다 물고기의 몸에도 방대한 비중의 플라스틱이 있다. 잘라시 위츠의 말을 빌리면,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한 어미 물고기가 새끼들에게 그것을 물어다준다. 이들의 배설물에 들어 있는 플라스틱 일부가 해저에 가라앉는다. 그 결과 지구의 표면이 플라스틱으로 덮여가고 있 다. 설상가상으로 이와 같이 대량으로 사용되는 플라스틱은 분해되거나 썩지 않는다. 정확한 분해의 기간을 확정짓기는 어렵지만 약 500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세의 또 다른 증거인 닭에서 먼저 연상되는 것이 아마 '치맥' 일 것이다. 닭고기는 우리의 일상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한국육계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에 국내에서 도축된 닭은 9억 3600만 마리였다. 대한민국의 인구가 5000만이라면 1명이 매년 20마 리의 닭을 먹은 셈이다. 이와 같이 엄청난 양의 치킨을 먹어치우면서 도 과거의 공룡처럼 닭뼈가 현재를 입증하는 화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앤드루 롤러(Andrew Lawler)의 『치킨로드(WhyDid the Chicken Cross the World?)』에는 미래의 지질학자가 현대의 지층을 조사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가 닭뼈들이 발견된 지층입니다.” 그는 내 코 바로 앞의 검은 지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뼈들은 현대의 것과 전혀 섞이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여긴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전혀 없다고 봐야지요.” 과거의 닭뼈와 현대의 닭뼈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땅을 처녀지라고 한다. 왜 굳이 총각지가 아니라 처녀지인가? 자연과 여성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지구를 어머니로 부르는 것도 그러한 여성=자연의 또 다른 사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 은 고대 희랍의 철학자의 생각이 그러했다. 그는 여성은 자연처럼 물질 적이고 감정적이지만 남성은 지적인 존재라고 주장했다. 임신과 출산 도 성차별적으로 설명했다. 남성의 정자가 태아에게 정신과 형상을 제 공하는 여성의 난자는 단지 영양분만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근대 실험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남성의 과학이 여성의 자연을 정복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 연을 정복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무방하다고 보았다. 『세계의 영혼(The Soul of the World)』이라는 저서의 한 장의 제목이 「유용성의 이름으로: 자연의 착취와 쾌락의 감소」인데, 그는 당시 성행했던 마녀재판을 염두에 두고서 과학자를, 마녀가 죄를 실토하도록 갖은 고문을 가하는 수사관에 비유했다. 그에게 실험은 자연의 꽉 다문 입을 열리도록 만드는 고문술이다. “인간의 손과 기술로 고문을 해서라도 자연이 자신의 본성을 토로하도록 해야 한다. 자연을 쥐어짜서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라.” 가만히 놔두면 자연은 입을 열지 않는다. 완력 을 써서라도 입을 벌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때 과학자는 자연의, “구멍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entering and penetrating into these holes)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그가 사용한 삽입'이라는 어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단 정복을 당하면 여성과 자연은 남성에게 복종하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아내가 고집 센 성격이라고 하자. 남자는 갖은 수단을 다해서라도 그녀가 완벽하게 순종하도록 길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다. 이와 같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고문도 사양하지 않는 과학자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근대적 남성을 대변한 다. 세상과 자연은 험한 파도가 세차가 몰아치는 바다와 마찬가지다. 용감하게 파도와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즉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을 당한다는 전투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남자가 하는 일은 경쟁과 정복, 승리다. 때문에 여성적이고 유약한 남성은 웃음거리가 된 다. 반대로 용감하고 강인한 여성은 남성적이라는 이유로 매도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이 도전적이고 경쟁적 세계관을 가진 서양인들이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동양인을 무시하거나 폄하했다. 서양이 보기에 중국과 한국은 남성적 패기와 숫기가 없고 평화 와 질서를 사랑하며 현실에 안주하기를 좋아하는 나라, 죽음을 불사하며 싸우기보다는 물러서서 항복을 선택하는 나라였다. 19세기 말에 조 선을 방문했던 서양인들 대부분은, 조선의 남성들이 정적이며 여성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일본이 무사의 나라라면 한국은 선비의 나라였다. 선비들이 무기를 들지 않고서 자연을 벗 삼아서 음풍농월을 즐겼기 때문에 일본에게 정복당했다고 생각하는 서양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 와 같이 평화가 아니라 전쟁, 화합이 아니라 정복, 조화가 아니라 경쟁에 가치를 부여하는 서양의 세계관은 동양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 "인류라는 두꺼운 담요가 걷히면, 자연은 크나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다시금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애쓸지도 모른다.” (마이클 테니슨, 『인간 이후, 쌤앤파커스, 2017, 351쪽.)
- 〈은하철도 999)를 보자. 어쩌면 만화로 그려진 서기 2000년대의 지구의 모습은 인간보다 기계가 기득권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만든 기계로부터 소외되고 지배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부의 상징이며 인류의 염원이기도 한 영원한 생명인 기계의 몸을 가진 부유층만이 향유하는 도시인 메가로폴리스를 가기 위한 은하철도 999를 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보다 부와 영생을 위해 인간을 포기하는 순간 이 올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척박해질 지구환경 속에서 인류의 초 근대 과학이 만들어낸 최첨단의 기계화 도시에서 영원한 생명인 기 계의 몸으로 살아가야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만화적 상상력은 인류의 삶의 지표와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를 준 과학기술의 발달이 예고하는 미래일 수도 있다. 영원한 삶에 대한 동경으로 지구를 버리고 기계 몸을 가지지 못한 인간들은 이 풍요한 기계화 도시에서 돈을 벌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 999 열차표를 구해야만 할 수도 있 다. 지치고 거친 지구의 환경에서 살아남아, 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넘긴 철이와 메텔처럼 결국 최후의 목적지인 안드로메다에 도착하는 그날이 올지 모르겠다. 그때 철이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어려운 파도를 헤치고 나갈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서 우린 멀리서 찾지 말고 부족한 내 곁에서 머물러주고 기다려주는 옆자리의 누군가를 기억 해야 한다. 이 외로운 지구에서 살아 버티기 위해서라도...
- 현재 우리의 법 시스템에는 하나의 뿌리 깊은 흠이 있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연존재를 단순한 객체 내지 재산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자연 을 생명의 원천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효용성에 따라 자원, 재산 또는 자연자본으로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자 연파괴를 동반하면서 무한성장을 추구하는 경제 패러다임을 가속화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포스트휴먼 사회에 접어든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기존의 법 시스템은 무언가 불만스러운 점이 많다. 포스트휴먼 사회의 법 시스템은 인간중심적 사회에서 지나치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권리와 힘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을 고유한 이익과 권리를 가진이해당사자로 법체계 내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중심적 권리체계에 대한 강력한 균형조절 장치가 될 수 있다. 지구법은 이러한 균형의 역 할을 자임하고 나선다.
- 2014년 뉴질랜드는 전통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세계 최초로 강에 인간의 지위를 부여했다. 뉴질랜드 의회는 원주민 마오리족이 신성 시하는 북섬의 왕거누이강에 살아 있는 인간과 동등한 법적 권리와 책 임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누군가가 이 강을 해치거나 더 럽히면 사람에게 한 것과 똑같이 처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왕거누이강은 공익신탁이나 사단법인과 비슷하게 취급되고, 마오리족이 임명한 대표자 1명과 정부가 임명한 대리인 1명이 신탁 관리자가 돼 강의 권 익을 대변하게 된다. 정부는 법안에 따라 마오리족에 8000만 뉴질랜드 달러(약 636억 원)를 보상하고, 강을 보존하기 위해 3000만 뉴질랜드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또 강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만드는 데 100만 뉴질랜드 달러 상당의 기금이 조성된다.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긴 왕거누이강은 활화산 통가리로에서 발원해 290킬로미터를 지나 바다. 로 흘러든다. 마오리족은 이 강을 지키기 위해 오랜 세월 싸워왔다. 마오리족이 이 강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법적 보호를 확보하기 위해 싸운 것은 160년에 이른다. 마오리족과 정부의 협상은 2009년 시작돼 2014년에 타결됐다. 인도인들이 신성시하는 갠지스강도 뉴질랜드의 왕거누이강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간과 같은 대우를 받는 강이 됐다.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 고등법원은 갠지스강과 가장 큰 지류인 야무나강에 인간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앞으로 강을 오염시키거나 훼손하면 타인을 해쳤을 때와 똑같이 처벌받는다. 법원은 “갠지스와 야무나 는 태곳적부터 물리적으로, 영적으로 우리에게 자양분이 돼주었다”면 서 강 보존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북부 히말라야산맥 강고트리 빙하에 서 발원한 갠지스는 바라나시, 하리드와르 등 힌두교 성지를 거쳐 동쪽 으로 흐른다. 길이만 2500킬로미터에 이른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를 ‘강가'라고 부르며 여신으로 모신다. 이곳에서 업보를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해 목욕도 하고 시신을 화장해서 뿌리기도 한다. 법원은 갠지스강과 지류의 보존 업무를 담당할 감독관 세 명을 임명하고 석 달 안에 강관리위원회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 러브록에 따르면 당시 화성에 존재하는 생물체의 근거는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체와 같을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여 실험이 진행되었 다. 하지만 그는 다른 문제로 관심을 돌렸다. 만약 화성에 생물이 살고있다고 해도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 다. 그것은 곧 '생명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다. 슈뢰딩거와 같은 학 자들 역시 생명을 정의하려고 노력했는데, 생물이란 개방적이거나 연 속적인 시스템으로 보았다. 생명체란 외부 환경으로부터 취한 에너지와 물질을 사용하고, 분해산물을 체외로 배출시킴으로써 자신의 내부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기능을 갖는 구성원으로 정의 내린다. 흥미롭게도 러브록은 그러한 관점을 생명체를 인식하는 옳은 방향이라 고 판단했다. 어떤 행성에 생물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먹이와 배설물을 통과시키기에 필요한 유체 매질(바다, 공기 등)을 통로로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화성에는 바다가 없다. 그렇다면 대기 조성이 문제였다. 생명체가 있다면 행성의 대기 조성은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러브록은 이 아이디어를 확장했다. 생물체가 존재하려면 대기의 화학적 조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해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지구화학자들은 대기를 지구 형성의 최종 산물로 간주했으며, 무생물적 작용에 의해 현재의 대기가 만들어졌다고 주장 했다. 가령, 산소는 원시 지구 상태에서 수증기 입자가 파괴되면서 만들어졌는데, 이때 가벼운 수소는 우주로 날아가고 여분의 산소만 남겨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생각했다. 즉 그들은 산소를 대기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전통적인 과학자들은 생물체 가 대기에서 기체를 잠시 빌렸다가 다시 되돌려준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러브록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대기권을 포착했다. 그는 대기권 (atmosphere)을 생물권 (biosphere)의 연장체로 생각했던 것이다. 화성의 대기는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었고, 지구의 대기와 는 달랐다. 미국은 화성 생물체 탐사프로젝트를 포기했다. 러브록은 우주탐사의 진정한 성과를 외계로부터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한다. 청록색의 아름다운 구체를 주시하면서 이전과 다른 질문과 해답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탑다운 방식의 시선을 통해 지 구 생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러브록은 1967년 이 가설을 확립하기 시작한다.
지구 대기권의 화학적 조성은 정상 상태의 화학평형에서 기대되는 값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재의 산화성 대기 중에 존재하는 메탄 가스와 아산화질소, 심지어 질소까지도 10의 10승 이상 화학평형의 법칙을 거역하고 있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비평형 상태 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대기권이 단순히 생물체들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구조물에 더욱 밀접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마치 고양이의 털가죽, 새의 깃털, 벌집의 얇 은 벽들과 같이 대기권도 생물계의 연장으로 주어진 환경을 유지시키도록 고안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50쪽)
고양이와 털가죽은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고양이털까지 고양이로 봐야 한다. 그런 것처럼 대지와 대기는 하나로 연결된 가이아다. 달팽이 껍데기가 달팽이의 일부인 것처럼 대기나 암석도 가이아의 일부다. 이러한 사실은 시골 농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도시사람이나 학자들에게는 가설로 정식화해야 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 이었다고 그는 쓰고 있다. 러브록은 1968년 한 학회에서 가이아 가설을 처음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박사만이 호의를 보였다고 한다.
- 산소 농도는 왜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일까? 처음부터 대기권의 조성비율이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일까? 러브록은 그것을 가이아 이론에서 찾는다. 먼저 메탄 가스(CH)의 작용을 살펴보자. 메탄 가스는 소의 방귀 때문이라고 알려진 만큼, 생물학적 작용의 산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메탄가스는 해저, 습지, 하구 등 탄소 화합물이 풍부하게 묻혀 있는 장소에서 혐기성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진다. 혐기성 미생물(anaerobea)이란 산소가 필요 없이 성장하는 미생물을 말한다. 이 미생물에 의해 생산되는 메탄 가스의 양은 매년 5억 톤이나 될만큼 어마어 마하다. 이토록 많은 양의 메탄 가스는 왜 만들어지는 것일까? 산소와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진흙탕 속에서 방울방울 솟아나는 메탄 가스는 혐기성 미생물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신에게 해로운 산소를 내보 내는 것이 된다. 진흙탕 속에 있는 휘발성 유독 물질들이 효과적으로 제거되는 셈이다. 메탄 가스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산소의 농도를 규제한다. 첫째, 성층권에서 일어나는 규제다. 성층권으로 날아간 메탄 가스는 분해되어 물분자를 공급하게 되는데, 물 분자는 산소와 수소로 갈라진다. 산소는 아래로 내려와 대기권 산소 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둘째, 대기권 에서 일어나는 규제다. 지표에서 가까운 대기권에서 메탄 가스의 산화로 매년 약 10억 톤의 산소가 소모된다. 만약 메탄 가스가 없었다면, 공기중 산소 농도는 2만4000년마다 1퍼센트씩 증가할 것이다. 이 시간은 지질학적으로 아주 짧다. 산소 농도 증가가 너무 급속해서 생물학적으 로 상당히 위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메탄 가스는 산소를 증 가시키거나 규제하면서 산소 농도 21퍼센트를 유지하게 한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해저, 호수, 연못의 진흙탕 속에 살아가는 혐기성 박테리아는 지구 생명체의 삶에 큰 기여를 한다. 그들이 없다면 책을 읽을 수도, 쓸 수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없다는 사실 은 흥미롭다. 가이아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생명체는 바로 미생물이다. 박테리아가 생산하는 메탄 가스가 없었다면, 공기 중 산소 농도는 계속 증가하여 지구 전체가 불에 타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테리아에게는 큰 재난은 아니다. 인간은 거의 멸종에 이를 만한 대재난 이겠지만 말이다. 생명체의 호흡과 미생물 발효에 관여하는 기체가 이산화탄소다.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보다 약 50배나 더 많은 양의 이 산화탄소가 바닷물 속에 녹아 있다. 만약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하면, 바닷물 속에 있는 막대한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 어 정상 농도로 회복할 것이다. 현재 인류가 화석연료를 과다하게 사용 하여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되어버렸다. 러브록은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통제하여, 평형상태에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간접적인 방식에 주목한다. 1970년대 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다소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이후 『가이아 의 복수』에서 지구재난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 가이아는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최근 남극해에서 조류 생장이 활발해져 엄청난 양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 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극해의 면적은 전체 대양의 25퍼센트에 불과하 지만, 남극해에 서식하는 조류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전체량 의 40퍼센트에 이른다. 해양학자들은 조류가 이처럼 많은 양의 이산화 탄소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철이 필요한데, 그것이 어디로부터 공급되는지를 몰라 궁금해하고 있었다. 스페인과 칠레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남극 대륙의 암석이 대기 중에 노출되면서 철성분이 암석에서 빠져나와(여기에도 미생물이 개입한다) 바닷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암석의 노출이 최근 거 대한 기후변화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이아 스스로 이 산화탄소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해파리가 이산화탄소를 바다 밑바닥에 저장한다는 연구가 있다. 독일 게오마어 (GEOMAR) 헬름홀츠해양연구소 연구진은 죽은 해파리가 플랑크톤보다 빠르게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이산화탄소를 흡 수해 깊은 해수층에 탄소를 저장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해파리는 지구 생물체 가운데 중요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해파리는 이산화탄소를 적절하게 규제하는 주요한 온도조절장치 중 하나였던 것이다. 가이아는 인간과 상관없이 자신의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다. 가이아는 자신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생 물과 무생물, 바다와 대기, 땅과 바다는 서로 상호의존하면서 작동하면서 생명체를 위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가이아를 알아야 하고, 신뢰해야 한다.
- 가이아 이론은 근대성을 뒤집는 비근대적 사유에 기초해 있다. 근대란 자연과 인간을 이분화한다. 인간은 자연 즉 동물, 사물 등 비인간의 영역이 구성될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인간의 이성적 탁월함은 어 떻게 증명되는가? 그것은 돼지의 본능, 식물의 수동성 등과 같은 자연 비하적 은유와 비교할 때 분명해진다. 이러한 이분법은 끊임없는 위계 질서를 재생산한다. 인간의 자리에 문명, 남성, 백인, 언어가 놓인다면, 비인간의 자리에 야생, 여성, 동물, 감정이 놓인다. 근대의 자연/인간 분리는 근대의 헌법이었다. 그러나 가이아 지구 시스템을 알면, 그러한 이분법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인간의 문명은 거대한 순환 경제 시스 템 속에서 눈에 띠는 것이 아니다. 막대한 양의 식물과 조류가 수억 년 동안 탄소를 저장하고, 산소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며, 소금 역시 같은 농도를 유지함으로써 생명체가 살 수 있다고 할 때, 자연과 인간의 구분이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구분이 지구와 생명체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이아 이론은 근대 개념 자체를 허문다. 가이아는 우리의 통념처럼 생명체를 사랑하는 따뜻한 어머니가 아니다. 지구가 유례없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홀로세의 가이아는 어쩌 면 자애로운 생명의 어머니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러브록에 따르 면 가이아는 사이버네틱 시스템이다. 전기오븐처럼 자동온도조절장치 가 작동되는 루프 시스템이다. 단지 단순한 기계장치보다 피드백에 관 여하는 요소가 복잡하고, 규모면에서 전 지구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이다. 가이아는 반드시 생명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자율적인 조절작용은 생명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생명 진화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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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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