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 미국 펀드매니저였던 마이클 버리는 재앙을 일찌감치 예견했습니다. 주식시장이 폭락할 것을 확신하고 공매도에 나서 1100억원어치를 벌었고, 자기를 믿어준 투자자들에게 총 8200억원어치의 수익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투자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되레 조사를 받았습니다. 위기가 지나간 뒤 원인을 분석하던 시기에도 백악관과 경제신문 어디에서도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0월8일자 A30면 <‘말의 무게’ 1초면 결정된다> 기사는 같은 말을 하더라도 전달자(메신저·messenger)가 누구냐에 따라 신뢰여부가 크게 차이나는 현실을 짚었습니다. “말의 힘은 균등하지 않다.“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 모델이기도 한 마이클 버리는 의사소통에 서툴렀고 사회성이 떨어져서 학창시절 친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예지력(叡智力)이라고 할 만한 통찰을 가졌지만 제대로 전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근거를 갖고 신중한 제안을 하거나 신뢰할 만한 관점으로 정확한 예측을 내놓는데도 무시당하거나, 심지어 조롱거리가 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카산드라의 저주’에 비유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는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면 도움이 될 이들에게 지식을 전해주려고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아폴론의 저주를 받은 탓이었다.” 이런 역설(逆說)이 빈발하는 것은 사람들이 메시지보다 메신저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메신저에게 더 큰 영향을 받는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과거보다 모든 분야가 전문화됐고, 세상이 변화하는 양상이 다양해지면서 모든 정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워졌다. 완전히 객관적인 관점으로 대통령을 뽑는다거나, 집을 사기 위해 현존하는 모든 부동산·금융 정보를 고려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눈앞의 정보가 어떤 메신저의 의견인지, 그 메신저는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를 판단하는 쪽으로 진화하게 됐습니다. “메신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은 결정에 있어 비용 대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경향이다.”
행동심리학자인 조지프 마크스는 ‘메신저 편향’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일깨웁니다. “전문가보다 유명인에게 귀를 기울이고, 단지 매력적인 사람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물건을 구매하고, 가까운 친구의 의견이라서 특정한 정치적 견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가짜뉴스와 형편없는 조언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상당수 사람들이 자기는 ‘메신저 효과’에 면역을 갖추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저 유명할 뿐인 메신저의 의심스러운 메시지에 호응하는 건 다른 사람들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메신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편, 우리는 메시지를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전달할 때도 많습니다. 어떤 메신저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마크스는 메신저의 성공에 기여하는 요소로 사회경제적 지위, 역량, 지배력, 카리스마와 같은 ‘하드 프레임’과 함께 온화함, 취약성, 신뢰성의 ‘소프트 프레임’을 제시합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황에 맞춰 적절한 프레임을 취사선택해야 효과적인 메신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들을 것인가, 어떤 사람을 믿을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
이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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