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의 유전자

과학 2022. 11. 19. 06:55

- 지구의 나이를 추산해보면 약 45억 살이다. 45억 살이라니! 헤아리기도 어렵다. 지구의 역사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 체 기간을 1년이라고 가정해보자. 우리 인류는 12월 31일 늦은 밤, 해가 바뀌기 겨우 30분 전에야 무대에 등장했다. 그리고 등 장한지 25분 만에 지구 곳곳으로 퍼졌다. 마지막 60초 동안에 는 농경을 시작하고, 산업 혁명을 일으키고, 국가를 형성하고, 끔 찍한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치르고, 자연계 대부분을 장악하고 또 파괴했다. 이 모든 인류 역사가 마지막 30분 안에 펼쳐졌다. 그런데 지구에 처음으로 생명체, 그러니까 세포 안에 유전자가 자리한 존재가 나타난 시기는 놀랍게도 3월 중순이다. 각자 복제를 거듭 하던 유전물질 가닥이 진정한 세포로 바뀐 이 과정은 지구 전체 역사에서 딱 한 번 일어났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유기체의 세 포는 하나도 빠짐없이 이 원시 원핵세포의 후예다. 6월쯤에는 첫 진핵세포가 나타났다. 진핵세포는 원핵세포보 다 더 정교한 세포로, 균류와 식물, 동물 같은 복잡한 생명 형태에서 모두 나타난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런 변이도 지구 역사 상 딱 한 번 일어났다. 11월 즈음에는 단독으로 움직이던 세포 가 다른 세포와 연합체를 형성하는 큰 변화를 일으켜 마침내 다 세포 생물이 태어났다. 이 변화는 진화 과정에서 이정표가 된 중요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독립적으로 생활하던 유전물질 가닥이 갖가지 형태와 모양의 생명체로 변모한다.
진화가 일어난 주요 과도기마다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 있다. 이 시기마다 작은 생명 단위가 안전한 곳을 찾아 더 큰 생명 단위 속으로 들어갔다. 마트료시카에 빗대자면 가장 바깥쪽에 새로 생 겨난 껍질이 새로운 수준의 생물 유기체, 즉 새로운 '개체'individual 가 된다. 지구 생명체를 광범위하게 살펴보면 동업, 다시 말해 단 독 개체들이 하나로 뭉쳐 공동 목표를 이루고자 힘을 합친 역사가 종종 등장한다. 이렇듯 생명의 역사는 협력의 역사다.
- 다윈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살다가 죽어도 괜찮다. 하지만 죽기 전에 우리가 애초에 왜 존재했는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다윈주의야말로 반드시 연구해야 할 주제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 사회성 동물의 형질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통틀어 설명하 는 이 틀을 '포괄 적합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이라 부른다. 포괄 적합도의 논리를 적용하면 조력 행동helping behavior 이 어떤 조건에서 진화할지, 누구를 도울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예컨대 일개미는 알을 낳지 못하니 개미굴 밖에서 입구를 메꾸 고 목숨을 희생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식 기회를 잃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러한 일개미의 조력 행동으로 많은 친척이 이익을 보니, 그런 극단적 희생을 선호할 만한 이유가 된다.
- 개체는 모든 부분이 공통 목표를 이루고자 힘을 합치는 통합사회다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
- 사회성 곤충의 군락은 대부분 여왕 한 마리가 이끈다. 여왕 은 군락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의미의 번식을 할 수 있으므로 다 세포 생물체로 치면 난자를 만드는 난소와 비슷하다. 반면 이 여 왕의 딸이자 평생 불임인 일개미들의 역할은 여왕이 알을 더 많 이 낳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개미는 우리 몸의 비생 식 세포인 체세포와 비슷하다. 체세포는 몸의 여러 부위를 생성 하고 몸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관리하고 회복하는 일을 담당한 다. 우리 몸의 비생식 세포와 곤충 사회의 불임 일꾼을 이해하려 면 더 높은 단위인 생물체나 군락 단위에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 살펴야 한다. 군락을 이루지 않는 한 곤충이 불임이라면 진화가 저지른 실수겠지만, 군락에 속하는 곤충이 불임이라면 이야말로 진화가 이룬 기적이다.
- 개체와 한 몸으로 봐도 될 만한 세균이 하나 있다. 바 로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다. 모든 다세포 생물과 협력하는 미 토콘드리아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 속에서 에너지를 만든다. 원 핵세포가 이 자그마한 에너지 발전소를 얻은 사건이 진핵세포가 만들어지는 혁신의 열쇠가 되었다. 지구 역사에서 단 한 번 일어 난 이 사건 덕분에 생물의 계통수에서 모든 동식물을 포함한 다 세포 생물의 가지가 뻗어나갔다.
틀림없이 세균으로 독립생활을 했을 미토콘드리아는 우연히 마주한 진화의 행운 덕분에 세포 속에 안착했다. 이 일이 정확히 어떻게 벌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설득력 있는 가설은 포식세포였던 숙주세포가 더 작은 미토콘드리아를 꿀꺽 삼켰다가 소 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보니 이 소화 불량이 포식자와 피식자에게 모두 이로웠다. 숙주세포는 공짜로 에너지를 공급받 았고 숙주세포 속에 갇힌 미토콘드리아는 외부 세계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미토콘드리아가 공급하는 에너지 덕분에 진핵세포가 원핵세 포보다 평균 1만 5,000배나 커질 수 있었고 새로운 생태 지위를 이용해 작은 다른 세포를 쉽게 집어삼킬 수 있었다. 또 신진대사 가 활발해져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세포의 에너지는 대부 분 단백질 합성에 쓰인다. 진핵세포는 세포 속에 있는 에너지 발 전소에 힘입어 유전체 규모를 키우고 단백질을 빠르게 합성할 수 있었다. 단백질을 빠르게 대규모로 합성하고 여러 방식으로 결합하면 세포의 크기와 복잡성이 커져, 세포 속에 다양한 기관을 만들고 기관마다 다양한 기능을 맡길 수 있다.
세균에서 비롯했지만 미토콘드리아는 다른 미생물 군집과 달리 개체의 일부다. 공생하는 생명체와 평생 운명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가 번식할 유일한 길은 개체를 구성하는 세포와 함께 이동하는 것뿐이다. 이는 왜 개체가 진화의 발명품 인지를 다시 한 번 뚜렷이 보여준다. 개체를 만들려면 개체를 구 성하는 단위 사이의 갈등을 거의 모두 억눌러야 한다. 여기서 가 장 중요한 단어는 '거의'다.
- 어머니 자연은 심술궂은 늙은 마녀다 (조지 C. 윌리엄스 George C. Williams)
- 미토콘드리아와 숙주세포의 갈등은 사소하다. 하지만 이 결합에 잡음이 전혀 없 다는 뜻은 아니다. 유전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핵유전자와 달리 미토콘드리아에 들어있는 얼마 안 되는 유전자는 모계로만 유전 한다. 우리 몸속의 미토콘드리아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할머니 에게서, 할머니의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따라서 수컷 몸속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진화에 아무 쓸모가 없으므로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속 유전자는 수컷 후손보다 암컷 후손을 편애한다.
- 유전체에서 일어나는 이런 편애로 암컷 후손과 수컷 후손의 특성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어머니 의 저주 Mother's Curse'라고 부르는데, 어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암컷 후손에게 유리한 형질을 전달하면 그 유전자는 수컷 후손 에게 심각한 손상을 입히더라도 보존된다. 그 예로 주로 젊은 남성에게 나타나는 레버 유전 시신경병증이 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변이 때문에 일어나는 이 질환이 발병하면 환자는 시력이 약해지다 결국 양쪽 시력을 모두 잃는다.
프랑스계 캐나다인 가운데 이 질환을 앓는 남성 환자들을 추적해보니 모두 1600년대 후반에 퀘벡으로 이주한 한 여성의 후손이었다. 당시 새로운 식민지 누벨프랑스에 여성이 너무 모자 라자 루이 14세가 성비를 바로잡아 남성들을 정착시키고자 여 성들을 보냈다. 그런데 1669년에 퀘벡에 도착한 이들 중 레버 유 전 시신경병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보유한 여성이 있었다. 그 녀는 결혼해 딸 다섯을 낳았고 증손녀 스물한 명을 뒀다. 이들은 모두 같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보유했고 그 유전자가 오늘날 까지도 남성 후손들에게 전달된다.
- 우리가 특히 암을 걱정하는 까닭은 낌새도 없이 온몸에 퍼지 는 탓에 손쓸 길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암은 우리 몸 안에 도 사리고 있는 내부의 적이다. 몸속 세포에 변이가 일어나 생긴 암 세포는 세포가 제대로 성장하고 활동하도록 조절하는 점검과 통 제 기제를 빠져나간다. 종양이 암으로 바뀌려면 세포에 반드시 몇 가지 '특질'이 나타나야 한다.
첫째, 자체 성장 신호를 만들고 종양에 영양을 공급할 혈관 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원래는 정상 세포의 활동에 사용 되어야 할 자원을 암세포가 쏙 빼갈 수 있다. 둘째, 세포가 죽지 않아야 한다. 체세포 대다수에는 세포가 분열한 횟수를 기록하 는 '노화 시계'인 텔로미어 telomere가 들어있다. 정상 세포는 어떤 나이, 그러니까 미리 정해진 분열 횟수에 다다르면 분열을 멈춘 다. 이와 달리 암세포는 노화 시계를 꺼 나이를 먹지 않는다. 셋 째, 회피력도 어마어마하게 세야 한다. 암세포는 세포 밖에서 발 생해 세포의 성장을 제한하는 신호에 반응하지 않을뿐더러 자멸 지시를 모조리 무시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세포 조직으로 퍼져나가 그곳에 새 종양이 자랄 병터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이 특징이 양성 종양과 전이 종양을 가른다.
처음에는 암을 클론(세포나 개체 하나가 무성 증식해 만들어지는, 유전자가 똑같은 세포군이나 개체군)성 질환으로 여겼다. 암은 위험한 변이를 일으킨 암세포 하나가 자신을 복제해 증식하여 생기는 질환이므로, 암세포는 모두 유전자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견 해가 맞을 리 없다. 딱 한 번 변이가 일어난 세포 하나로는 이 모 든 능력이 생겨나기 어렵다. 그보다는 악성 종양이 실제로 갖가 지 세포로 구성되고 이 세포들이 하나로 뭉쳐 이런 특질을 획득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악성 종양을 잘 이해하려면 제 잇속만 챙기는 이기적 클론이 아니라 협력하는 군집으로 봐야 한다.
종양이 실제로는 여러 '하위 클론'으로 구성되었다는 주장은 197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불신에 부닥쳐 30 년 가까이 이 이론을 거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어찌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는 실수다. 암 대다수가 예외를 찾아보기 어려 울 만큼 이질성을 보인다. 그러므로 암을 일으키는 종양은 여러 세포가 서로 도우며 번성하는 다양한 군집이다. 이를테면 A형 하위 클론의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성장 인자를 B형 하위 클론 의 세포가 분비하고, 그 대가로 A형 세포는 B형 세포가 성장 억 제 인자에 반응하지 않게 막아줄 분자를 만든다.
-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여성이 성장이 덜 된 아이를 출산하는 까닭이 태아가 성장할수록 두개골 크기 또한 커져 산도를 빠져나 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2년에 발표된 한 연구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사람의 임신 기간을 아홉 달 로 제한하는 원인은 몸의 구조가 아니라 에너지라는 것이다. 임 신 막바지에 이르면 임신부의 안정기 에너지 대사율이 임신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두 배나 높을 정도로 치솟는다' 최근 한 연구 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의 몸이 요구하는 대사 에너지가 무려 울 트라 마라톤을 뛰는 선수의 몸이 요구하는 대사 에너지에 맞먹었다. 그러니 출산은 태아의 머리 크기 때문이 아니라 임신부의 대사 에너지 요구량이 한계에 이르러 촉발되는 것으로 보인다.
- 다른 종이 그렇듯 인간 수컷도 아이를 돌보려면 대부분 다른 짝짓기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 수컷이 새끼를 돌본다는 것은 다 른 암컷을 만나 자식을 낳는 데 쓸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갓난아이를 애지중지하며 돌보는 남성은 자식에게 그 리 투자하지 않거나 갓난아이를 돌보지 않는 남성에 견줘 호르몬 특성이 독특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이런 효과를 낼 만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짝짓기와 관련해 흔히 떠올릴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다. 물론 갓 아빠가 된 사람의 테스토스테론을 조작하 는 실험은 비윤리적이라 시도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종에서 이 런 실험을 진행한 결과를 보면 모두는 아니어도 많은 경우 수컷 에게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했을 때 짝짓기에 더 관심을 보이고 새끼를 돌보는 데는 관심을 덜 보였다. 차선책으로 사람에게 진 행할 만한 실험으로는 종단 연구가 있다. 연구자들은 영향을 미칠 만한 호르몬의 농도를 여러 시기에 걸쳐 측정해 호르몬의 농 도 변화가 특정 행동이나 관심사의 변화로 이어지는지 알아냈 다. 이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날 때 남성의 순환 테스토스테론 수 치가 줄었다. 또 기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은 남성은 갓난아 이를 돌보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쏟고 자식을 돌보는 욕구와 관련 한 뇌 영역의 활동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남성이 자식을 돌 보는 풍습이 없는 다투가족 같은 사회에서는 남성들의 테스토스 테론 수치에 그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아 테스토스테론이 남성의 육아 태도를 조절하는 호르몬이라는 주장과 들어맞는다
- 암컷이 자식에 더 많이 투자하는 주요 원인은 아이가 틀림없 는 자기 자식이라고 확신하기가 수컷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수 컷이라는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자신이 자식의 생부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친자식이 아닌 아이에게 투자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값비싼 실수다.
- 대체로 수컷은 경쟁자가 자기 짝과 교미하는 것을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막으려 한다. 어떤 수컷은 질투에 눈이 멀어 목숨까지 내건다. 이 끔찍한 사례를 잘 보여주는 동물이 미국호랑거미 Argiope aurantia다. 미국호랑거미 암컷은 특이하게도 정자를 보관하 는 저장소가 두 곳 있고 수컷한테는 정자를 전달할 촉수가 두 개 있다. 암컷은 수컷에게 한 번에 한 촉수만 집어넣게 하는데 가 끔은 수컷이 어린 암컷을 붙잡고 억지로 암컷의 정자 저장소 양 쪽에 촉수 두 개를 모두 집어넣는다. 이때 교미에 성공하면 희한한 일이 일어난다. 수컷의 심장이 멈춰 그대로 죽는다. 궁극의 짝 지키기mate guarding 전략이 아마 이것이지 않을까 싶다. 수컷의 교미 기관이 부풀어 오른 채 죽으면 암컷이나 다른 수컷이 죽은 수컷을 제거하기 어렵다. 죽은 수컷은 아주 성능 좋은 교미 마 개 노릇을 하는 셈이다. 수컷이 그런 무리수를 써서라도 기필 코 아비가 될 각오가 되지 않은 종에서는 아이가 틀림없는 친자 식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현실이 아이를 보살피는 값비싼 희생을 주저하게 하는 강력한 진화적 동기로 작용한다.
- 수컷이 짝을 지키는 데 전념하면 진화 관점에서 여러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다른 짝짓기 기회를 찾아 떠나기보다 짝이 된 암컷 옆에 머무는 수컷은 자식을 돌보는 데 에너지를 쏟아 이익 을 얻는다. 이로 보건대 수컷의 육아 참여가 진화한 까닭은 비용 이 많이 드는 새끼 키우기를 거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수컷 에게 짝을 뺏기지 않으려고 암컷 곁에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광범위한 계통 발생 분석을 통해 포유류 2,500종의 짝짓기 방식과 수컷의 육아 참여가 진화하는 과정을 재구성한 결과, 전 반적인 사건의 발생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경쟁자에게 짝을 뺏 기지 않으려고 일부일처가 먼저 나타났고, 그다음에 아버지가 생겨났다."
- 실험에 따르면 금화조 암컷은 수컷이 믿 음직할수록 게으름을 피워 육아에서 힘든 일을 수컷에게 더 많 이 떠넘긴다. 암컷의 이런 전략이 위에서 말한 아주 얄궂은 결과 로 이어져 어미만 있는 새끼보다 어미와 아비가 모두 있는 새끼 가 더 부실하게 자라는 것이다! 이러니 투자 축소 경쟁이 끝까 지 치달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훤하다. 암수 모두 상대보 다 더 적게 육아에 참여하려 들면 가여운 새끼는 끝내 누구한테 서도 먹이를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을 피할 방법은 무엇일까? 말을 하지 못 하는 금화조 암컷과 수컷이 함께 육아 부담을 협의하고 협력해 새끼에게 먹이를 줄 방법이 있을까? 이론가들은 부모 한쪽이 육아에 조금 소홀하면 다른 한쪽이 상대보다 더 적게 투자하기보다 오히려 부담을 더 떠안아 모자란 부분을 메꿀 것이라고 예측 한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설령 그렇더라도 빈틈을 완전히 메 꾸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설명하기 쉽도록 '개미형 부모'와 '베 짱이형 부모'가 있다고 해보자(인간 사회에서는 두 유형을 '엄마'와 '아빠'라고 부른다). 베짱이형 부모가 쉴 때마다 개미형 부모가 빈 틈을 모두 메꾼다면 베짱이형 부모에게는 굳이 육아에 손을 보 탤 진화적 동기가 없다. 이때는 상대에게 새끼를 떠맡기고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짝짓기 기회를 찾는 쪽이 더 이익이다. 그런데 개미형 부모가 육아에 조금 더 애쓰되 빈틈을 완전히 메꾸지 않는다면 베짱이형 부모가 곤경에 빠질 새끼를 염려해 짝과 새끼 곁에 머물며 육아를 도울 동기가 더 생긴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새들의 육아 행태가 이런 진화 모형이 예측한 결과에 놀랍도록 일치한다. 부모 중 한쪽을 잠깐 잡아두거나 꽁지깃에 추를 달아 둥지에 먹이를 나르기 어렵게 했을 때, 다른 한쪽이 더 열심히 먹이를 나르기는 해도 빈틈을 완전히 메꾸지는 않았다. 이 문제 를 대화로 풀지 못해서인지 새는 양육 투자를 둘러싼 갈등을 타결하지 못한 것 같다.
- 암수가 지금의 새끼만 함께 키우는 상황에서는 누가 새끼에 투자하느냐는 갈등이 더 뚜렷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컷이 암컷과 이번에만 함께 번식할 계획이라면 암컷의 장래 생식 잠 재력이 떨어지든 말든 제 알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컷 은 암컷이 자신의 새끼를 기르는 이번 번식에 다음에 다른 수컷 과 번식할 때 쓸 생식 자원까지 모조리 쏟아붓기를 바란다. 반면 수컷과 암컷이 오랫동안 함께 살 때는 갈등이 누그러진다. 수컷 이 적합도 측면에서 암컷의 장래 생식 잠재력에 관심을 기울여 야 할 더 확고한 이해관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누가 육아를 더 많이 맡아야 하느냐를 둘러싼 이런 불화가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는 수컷과 암컷이 상대를 교 묘히 속여 육아를 더 많이 떠맡기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 남성은 대체로 여성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지만, 붉은사 슴처럼 사납게 짝짓기 싸움을 벌이지도 않고, 우두머리 고릴라처 럼 암컷보다 두 배나 큰 덩치를 갖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남성의 몸집과 힘에 어느 정도 자연선택이 적용했을지언정 고릴라처럼 여러 여성을 독차지한 채 다른 남성과 경쟁하지는 않았다. 정확 히 말하면 인간 남녀의 몸집 차이는 일부일처 종에 대체로 더 들 어맞는다. 그러나 현대 인류의 조상이 짝짓기 상대를 마구잡이로 바꾸지는 않았어도, 고환 크기를 보면 조상들의 짝짓기 시장은 평생 지속하는 일부일처제보다는 십중팔구 더 다채로웠다. 인간 남성의 고환은 고릴라보다 크고 침팬지보다 작다. 정확히는 침팬 지보다는 고릴라 쪽에 훨씬 더 가깝다. 이로 보건대 침팬지에 비해 조상들에게는 정자 경쟁이 덜 중요했지만 여성들은 평생 한 명 이상과 짝짓기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순차 일부 일처제였다고 결론짓는 것이 타당하다. 순차 일부일처제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적합도 이익이 평생토록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으 니 당연하게도 양육 투자에서 어느 정도 불화가 예상된다.
- 포유류의 태반은 태반세포가 어미의 몸에 얼 마나 깊이 발을 들이느냐에 따라 형태가 무척 다양하다. 말 같은 종의 태반은 '상피 융모막epitheliochorial' 태반으로 태반 조직이 자 궁 상피 조직과 정확히 경계를 그으며 맞닿는다. 이와 달리 인간 을 포함한 영장류의 태반은 침투성 '혈모hemochorial' 태반이어 서 태반세포가 자궁벽을 지나 모체의 혈관까지 파고든다. 태반 세포는 엄마가 아니라 태아에서 나오므로, 엄마가 아닌 태아를 위해 일한다. 인간의 태반세포는 모체의 혈액에 직접 닿기 때문 에 임신부가 태아에게로 가는 영양분을 통제할 수 없다. 유인원 도 마찬가지다. 인간에서든 유인원에서든 모체에서 얼마나 많은 영양분을 가져올지를 결정하는 쪽은 엄마가 아니라 태반이다.
- 태아로 통제권이 넘어가면 태아에게 영양분을 더 많이 공급 하려는 부계 유전자의 작용에 휘둘리기 쉽다. 이런 부계 유전자는 대체로 호르몬을 만들 유전 정보를 전달해 작용하는데, 이로 인해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면 엄마의 혈관 속에 흐르는 호르몬 수치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태반에서 만들어져 젖샘을 자극하 는 사람 태반성 락토겐 human placental lactogen: HPL은 인슐린의 작용 을 방해한다. 세포가 혈당을 흡수하게 돕는 인슐린이 제대로 작 용하지 못하면 임신부의 혈당 농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임신부가 혈당을 흡수해 에너지로 쓰는 능력이 줄어드는 반면, 태아는 엄마 혈액 속 당을 더 많이 빨아들일 수 있다. 이 외에 다른 호르 몬은 모체의 혈압을 높여 영양분이 풍부한 혈액을 태아에게 더 빠르게 전달한다. 이런 호르몬들이 마구 작용하면 임신부가 임 신 합병증을 앓거나 심한 경우 목숨까지 위협받는다. 혈당 수치 가 높으면 임신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태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출산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결론은 인간이 위태로운 상황에 빠졌다는 것이다. 굶주린 태아에게 영양분을 최대한 공급하려면 침투성 태반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체가 태반세포에 문을 열어주면 암세포를 포함한 모든 침습성 세포에 맞설 내부 방어막이 약해진다.
- 엄마가 아이에게 자주 젖을 물리면 앞서 언급한 수유 무월경 이 일어나 산모가 잠깐 생식 능력을 잃기도 해서 꼬박꼬박 젖을 물리는 여성은 임신할 확률이 낮다. 덕분에 엄마의 자원을 상대 로 어린 형제자매와 경쟁할 일 없이 더 오래 젖을 먹을 수 있다.* 밤에 자주 깨는 아이는 대체로 동생 없이 엄마에게 더 오랫동안 꾸준히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니 갓난아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과 경쟁하느라 툭하면 밤에 깨 젖을 빤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엄마의 희생을 대가로 태아에게 자원을 전달하는 데 관여한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밤에 아이를 자주 깨우는 유전자도 부계 유전자로 봐야 한다. 태아의 부계 유전자는 모계 유전자에 비해 앞으로 엄마가 낳을 아이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꽤 별난 가설이지만 이 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다. 프 라더-윌리 증후군Prader-Willi syndrome과 안젤만 증후군 Angelman syndrome은 염색체 15번에 있어야 할 유전자 일부가 결실해 나타 나는 유전 질환이다. 프라더-윌리 증후군에서는 부계 유전자가 결실해, 해당 유전체에서 모계 유전자만 발현한다. 희한하게도 프라더-윌리 증후군을 앓는 갓난아이는 젖을 잘 빨지 않고 가냘 프게 울며 잠을 많이 잔다. 안젤만 증후군은 프라더-윌리 증후군 과 발현 양상이 정반대다. 모계 유전자가 결실해 부계 유전자만 발현하기 때문에 이 병을 앓는 아이는 잠을 설치고 밤에 자주 깨 젖을 빤다!" 
- 태아가 엄마의 투자 정도를 조종하는 더 기이한 방법이 있다. 자궁 속에서 엄마와 체액을 통해 세포를 교환하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절반, 어쩌면 더 많은 사람이 몸 안에 다른 사람의 세포를 갖고 있다. 두 아들의 엄마인 내 몸 안에는 남성의 Y염색 체를 품은 세포, 아들들 몸속에 있는 세포와 정확히 똑같은 유전자가 각인된 세포가 들어있다. 마찬가지로 두 아들의 몸속 어딘가에도 내 세포가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내 몸에는 아이들의 세포뿐 아니라 엄마의 세포도 들어있다. 어쩌면 엄마의 엄마의 세포도 그렇다. 우리는 키메라다.
그렇다면 아이들한테 받은 세포는 내 몸속에서 무슨 일을 할 까? 미세 키메라 현상microchimerism은 아직 연구가 걸음마 단계라 많은 내용이 수수께끼에 싸여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태어난 아 이의 세포가 자신을 위한 투자를 늘리고 다음에 태어날 아이를 위한 투자를 줄여 동기간 경쟁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나온 예비 조사 자료에서도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주로 엄마의 유방 조직으로 이동하는 태아 세포는 그곳에서 갓난아이에게 먹일 젖을 많이 생성하도록 작용하는 듯하다. 설치류 연구 에서는 태아 세포가 어미의 뇌로도 이동해 새로운 신경세포가 자라도록 자극했다. 이를 통해 어미가 행동하는 방식, 새끼와 소 통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아이 를 낳은 여성이 다음 아이를 임신하지 못하거나 태아를 잃는 습 관 유산은 임신중독증에서 그랬듯 먼저 태어난 형제자매가 엄마 의 몸속에 남긴 태아 세포와 관련이 있다. 짐작건대 태아 세포가 엄마에게서 더 많은 자원을 뽑아내고 동생과 경쟁할 일이 생기 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 땅에서 살거나 황량한 지역에 살아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더 많이 노 출되는 영장류일수록 무리를 크게 이루며 수컷의 수가 더 많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런 무리에 속하는 수컷이 포식자를 공격하 고 이기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침팬지가 포식자인 표범을 자주 공격하다 못해 구석으로 몰아 죽이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우리 조상들도 십중팔구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인류가 진화하며 점차 나무에서 내려오자 포식자와 싸우기 가 더 수월해졌다. 두 발로 걸은 덕분에 두 손이 자유로워져 무 기 같은 물건을 잡을 수 있었다. 또 두 팔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이동하지 않자, 팔 근육이 돌덩이와 같은 무기를 멀리 던지는 데 맞춰 발달했다. 이런 적응에 힘입어 초기 인류는 포식자의 위협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포식 동물이 잡은 먹이를 빼앗아 먹는 솜씨 좋은 약탈자가 되었다.
이러한 기술을 손에 넣자 인간이 포식자로 발돋움하기가 훨 씬 수월해졌다. 이 능력은 호모 사피엔스가 대규모로 아프리카 를 벗어나 놀랍도록 빠르게(지구 역사가 1년일 때 약 11분 동안) 지 구 곳곳으로 이주한 시기에 맞춰 발달했다. 인간이 지나간 자리 에 남은 거대 동물의 멸종 흔적은 먹이 사슬의 밑바닥에 있던 인 간이 급격히 꼭대기로 올라섰다는 증거다'
빠르게 훑어본 초기 인류의 진화에서 끌어낸 간단한 결론은 인간이 살아남으려면 협력해야 했다는 것이다. 동아프리카 열곡 대에서 인간과 더불어 다른 유인원이 살았다는 화석 증거가 거의 없는 까닭도 그래서다. 
- 교육은 특별한 형식의 조력 행동이다. 모든 도움이 그렇듯 가르침에도 비용이 발생한다. 진화는 투자 이익이 비용을 넘어설 때 교육의 손을 들어준다. 침 팬지에게서 확실한 교육 사례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수지타 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새끼 침팬지는 사회학습에 뛰어나다.
누가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보고 따라 하면서 배운다. 흔히 침팬지의 교육 사례로 제시되는 기술, 이를테면 돌멩이로 견 과류를 깨는 기술과 막대기로 흰개미를 잡는 기술은 혼자서도 시행착오를 거쳐 익힐 수 있고, 어린 새끼가 그 과정에서 혹시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다칠 위험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런 기술 을 가르친들 투자 이익이 생길지도 의문이다. 견과류와 흰개미 는 침팬지의 주식이 아니라 별미에 가깝다. 침팬지의 주식은 딱 히 노련한 기술이 필요 없는 과일과 나뭇잎이다. 그러니 어미가 새끼를 가르치느라 치르는 비용이 새끼의 생존이나 번식 성공도 가 늘어나는 확실한 이익으로 돌아올 것 같지 않다.
이 관점으로 교육을 바라보면 왜 자연에서 가장 확실한 교육사례가 우리와 가장 가까운 현생 사촌이 아니라 교육 비용 대비 이익이 높은 종에게서 나오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침팬지는 하루치 열량을 과일과 나뭇잎처럼 찾기 쉬운 먹이에서 대부분 얻는다. 하지만 더 복잡한 틈새인 수렵 채집 환경을 차지한 초기 인류는 땅에서 덩이줄기를 캐거나 껍데기에서 견과류를 끄집어 내거나 동물을 사냥해 먹고살아야 했다. 이렇게 복잡한 수렵 . 채 집 기술은 배우는 데는 시간과 재능이 필요하고 혼자 지켜보기 만 해서는 익히기 어렵다. 다른 대형 유인원 사촌들과 달리 우리 가 가르치는 데 열성인 까닭은 수렵 채집 기술이 배우기 어렵고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교육과 관련해 처음으로 우리 인간의 자부심을 무너뜨린 종은 영장류도, 포유류, 조류도 아닌 개미다. 2006년 나이절 프랭크스 Nigel Franks 교수와 공동 연구자들이 호리가슴개미 Temnothorax albipennis가 먹이나 새로운 둥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서로에게 가르친다는 사실을 밝혀내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개미는 다른 개미를 물어 나를 줄 아니, 길을 아는 개미가 아무것도 모 르는 개미를 목적지까지 물어 나르는 쪽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 다. 하지만 이 경우 뒤쪽을 바라보며 실려가는 개미는 길을 익히 지 못한다. 개미가 길을 기억하려면 원을 그리며 자기 발로 이동 해 경로에 있는 다양한 주요 지형지물을 익혀야 한다. 앞장선 개 미는 교사 역할을 해, 학생 개미가 곳곳을 둘러볼 때까지 기다리 며 목적지까지 천천히 움직인다. 길을 다 익힌 학생 개미는 이제 교사 노릇을 할 수 있다.
- 폐경과 관련한 신체 변화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폐경은 일반적인 노화 과정에 속하지 않는다. 여성이 처음에 갖고 태어나 는 난포는 약 200만개이며 난포 하나하나가 난자를 만들 수 있 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난포가 줄어들어 20세 무렵에는 평균 10만개, 35세에는 5만 개가 남는다. 그래도 이 속도를 유지한다면 여성은 보통 60세가 지난 지 한참일 때까지 아이를 낳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38세 무렵이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 다. 이때부터 난포 수가 뚝 떨어져 훨씬 가파르게 줄어든다. 그 결과 50세 무렵에는 난포 수치가 월경에 필요한 최소한도 밑으 로 떨어진다."
난포가 줄어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폐경의 작동 방식이 더 확 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 왜 여성의 생식 능력이 30대 후반에 이토록 급격히 줄어들까? 생식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데도 왜 불임 상태로 끈질기 게 삶을 이어갈까?
- 진화가 우리 수명을 늘리는 하나의 방법은 웬만해서는 죽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죽지 않았으면 더 오래 살았을 텐데' 같은 하나 마나 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는 생각 해볼 만한 점이 있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병으로 죽는 외 인성 사망 위험은 수명의 진화에 영향을 미쳐 신체의 노화 과정 을 좌우한다. 초파리를 떠올려보라. 초파리는 다른 생물에 잡아 먹히거나 때려 잡혀서 죽을 위험이 무척 크기에 수명이 짧다. 따라서 초파리는 나중에 악영향을 미칠지라도 초기에 생식 활동에 자원을 쏟아붓도록 적응했다. 안전한 실험실 환경에서 살 때마저 초파리의 수명은 몇 주를 넘기지 못한다. 반대로 기대 수명이 긴 종에서는 자연선택이 노화 과정을 늦추는 쪽으로 더 강력하 게 작용해 잠재 수명을 더 늘린다.
몇몇 종이 선택한 수명을 늘리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은 포 식자를 능숙하게 피하는 것이다. 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쥐는 비슷한 크기의 포유류보다 약 3.5배 더 오래 산다. 사람 손가락 보다 짧은 브란트박쥐 Myotis brandtii는 무려 40년 넘게 산다. 새도 몸집만 놓고 보면 생각보다 수명이 길다. 게다가 몸집이 비슷할 경우 비행할 줄 아는 새가 비행하지 못하는 새보다 대체로 더 오래 산다. 날 줄 알면 탈출 수단이 하나 더 생겨 잡아먹힐 위험이 줄어드니 수명이 길어지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나무에 사는 종도 땅 위에 사는 종보다 수명이 더 길다!"
- 형제와 있으면 우리끼리 싸운다. 사촌이 나타나면 형제와 손잡고 싸운다. 낯선 이가 나타나면 형제, 사촌과 손잡고 싸운다. (아랍 속담)
- 서열이 낮은 미어캣 암컷은 우두머리 수컷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무리 안에서 교미할 수 없더라도 구애자가 될 만한 수컷을 만날 다른 길이 있다. 마찬가지로 서열이 낮은 수컷도 태어난 무 리 안에서는 번식을 할 수 없지만 이웃한 무리에 몰래 들어가 친 척이 아닌 암컷과 교미를 시도한다. 서열이 낮은 개체는 설사 무 리 안에 친척이 아닌 교미 상대가 없더라도 이런 금지된 만남으 로 새끼를 낳아 자신의 직접 적합도 이익을 높일 기회를 얻는다. 우두머리 암컷이 열위 개체인 자매나 딸의 임신을 막기는 어 렵다. 하지만 열위 서열 암컷들의 번식 시도가 자신이 새끼를 키 우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막을 숨겨둔 계책이 있다. 우두머 리 암컷은 임신한 암컷이 생기면 거칠게 몰아붙여 무리에서 내 쫓는다. 혼자 살아야 하는 암컷은 굶주림에 급속히 살이 빠지 고 대개는 배 속의 새끼를 모두 잃는다' 열위 서열 암컷이 용케도 무리에 남아 새끼를 낳으면 우두머리 암컷이 아무렇지 않게 새끼를 잡아먹는다. '세계 최악의 할머니' 상이 있다면 미어캣이 강력한 우승 후보일 것이다. 우두머리 암컷이 이런 영아 살해 전략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시기는 자기 새끼가 태어나기 전까지 다. 우두머리 암컷의 새끼가 태어나면 비록 경쟁에서 불이익은 겪을지언정 열위 서열 암컷의 새끼들도 대체로 안전하다. 자기 새끼와 남의 새끼를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우두머리 암컷이 까 딱하다 자기 새끼를 잡아먹을 위험을 감당하려 하지 않아서다.
- 과거에는 자연계의 많은 협력 사례를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라는 맥락 안에서 일어나는 호혜적 상호작용으로 해석했다. 하 지만 관점을 바꿔 상호의존 사례로 해석하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다뤘듯이 흡혈박쥐는 운 없는 동료가 배를 채우도 록 피를 게워낸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냉정한 논리에 따라서 가 아니라 자신이 끝끝내 먹이를 구하지 못한 어느 밤에는 반드 시 동료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도 필요에 기반한 도움과 교환 체계 는 특이한 일이 아닌 일상이었다. 지금도 많은 수렵 채집 사회와 여러 비산업 사회에서 이러한 체계를 흔히 볼 수 있다. 이 체계는 호혜적 공유 체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한다. 케냐의 목축 부족인 마사이족Maasai은 호의를 교환할 때 호혜주 의와 상호의존 두 방식을 모두 활용한다." 에실레esile (빛) 체계 는 호혜주의에 기반해 협력을 설명할 때 예상하는 전략과 비슷 하다. 개인끼리 서로 돕지만 이런 도움은 나중에 갚아야 할 공식 채무다. 이와 달리 전체 부족민 가운데 훨씬 작은 부분 집단으로 형성되는 오소투아osorua (탯줄) 관계에서는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보답을 전혀 기대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자원을 나눠준다. 
- 우리 인간이 협력의 범위를 넓힐 줄 아는 까닭은 다른 데 있 다. 우리는 자연이 던진 게임에 새로운 규칙을, 새로운 제도를 고안할 줄 안다. 제도는 화룡점정과 같다. 사회적 딜레마에 제도 를 얹으면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모습과 본질이 바뀐다. 제도는 규칙을 바꾸므로, 배신이 가장 이로운 상황을 개인이 협력해야 성공하는 상황으로 바꿀 수 있다.
사회적 딜레마에서 행위의 동기를 바꾸는 아주 중요한 제도 가운데 하나가 처벌이다. 사회적 딜레마에 처벌 위협을 더하면 협력하거나 배신할 동기를 바꿀 수 있다. 큰 집단에서는 처벌이 호혜주의보다 성과가 더 좋다. 처벌 대상을 특정할 수 있어 협력 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무임승차자를 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비용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왜 처벌에 나서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하나 제시하자면, 우리가 명백히 처벌을 즐기 기 때문이다. 친사회적 선행이나 다른 보람찬 활동을 할 때 뇌에 서 활성화하는 보상 영역은 남을 벌할 기회를 잡을 때에도 밝게 빛난다 아이들조차 못된 친구가 마땅한 벌을 받는 모습을 지켜 볼 때 짜릿함을 느낀다. 꼭두각시 인형극을 이용한 연구에서 아 이들은 못된 인형이 다른 인형한테 맞는 모습을 계속 보려고 진 짜 돈을 지불했다. 실제로 우리 인간은 사회적 사기꾼을 벌하고 자 하는 성향이 무척 강하다. 오죽하면 자신이 직접 연관되지 않 은 상황에서조차 피해자를 대신해 사기꾼을 벌줘야겠다는 의욕을 느끼는 '제3자 처벌third-party punishment' 현상을 보인다.
사회적 사기꾼을 혼내주면 기분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우 리 뇌가 비용이 들고 위험할 수도 있는 이러한 행위를 즐기도 록 설계된 까닭은 무엇일까? 대체로 진화는 위험하거나 비용이 큰 행동을 달갑지 않게 인식해 피하도록 우리 심리를 설계했다. 고통은 뇌가 우리에게 몸 어딘가에 부상을 입었으니 더는 다치 지 않게 조심하고 이미 일어난 피해를 복구하라고 알리는 신호 다. 배고픔 역시 밥 먹을 시간을 알리는 신호다. 반대로,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이익을 불러오는 행동은 대체로 즐겁거나 재미있다. 이런 느낌은 당장은 비용이 들더라도 나중에는 이익이 되는 행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섹스가 대표적인 예다. 인간은 다른 종에 견줘 섹스를 많이 한다. 섹스를 즐겁게 느 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섹스는 비용이 꽤 많이 드는 행동이다. 먼저 시간을 소비한다. 섹스를 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질병에 노출될 위험도 높인다. 게다가 많은 동 물이 교미할 때 포식자에게 특히 취약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단 기 비용이 들더라도 짝짓기는 직접 번식으로 이어질 확률을 꽤 높인다. 결국 우리 뇌가 분명한 이익이 쌓이는 행동을 즐겁게 느 끼도록 설계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아무리 봐도 우리는 유전적으로 제 잇속만 차리게 진화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도록 진화했다. (리처드 D. 알렉산더Richard D. Alexander)
- 2014년에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 'humblebrag'라는 단어가 등재되었다. 이 단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겉으로는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지만 실제로는 자랑스러워하는 무엇이 주목받는 것 이 목적인 발언' 현실에서 이런 은근한 잘난 척은 불만을 가장 하거나("아휴, 살이 너무 빠져서 입을 옷이 없어!", "정말 걱정이야. 여 섯 군데 지원했는데 다 붙어버렸어!") 겸손 속에 자랑을 감출 때가 많다("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다니 믿기지 않아!"). 또 다른 은근한 잘난 척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빙빙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이 트윗을 보라.
방금 어떤 사람을 도와주었다. 진심으로 한 행동이었고, 내가 한 일은 그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아주 가치있는일
이 말에 헛웃음이 나오는가?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낮 두 꺼운 자기 과시는 대개 찬사보다 불신을 받는다. 여덟 살밖에 안 되는 아이조차 그런 이기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선행을 대놓고 떠벌리는 사람보다 몰래 실천하는 사람에 게 더 높은 도덕 점수를 매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도 자신의 선행을 페이스북 같은 웹사이트에 널리 알리는 사람 은 그리 너그러운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말 그대로다.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은 익명으로 선행을 하고 누군가가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 핵가족을 강조하는 서구식 인간 사회는 여러 문화뿐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광범위한 진화 역사에 비춰봐도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예외다. 인류 역사 대부분 동안 사람은 여 러 가족이 함께 큰 집단을 이뤄 살았다. 침팬지도 우리와 마찬가 지로 여러 수컷과 여러 암컷이 집단을 이루지만 사람과 달리 그 안에서 가족이 보금자리를 꾸리지는 않는다. 기존에는 "우리 수렵 채집인 조상들은 사실상 죽을 때까지 평생 돌아다니는 야영 생활을 했다."라고 생각할 만큼 선조들이 단출하게 몇십 명으로 구성된, 경계가 뚜렷한 소규모 공동체 속 에서 살았다고 보는 견해가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에 뒤 처진 견해라는 것이 밝혀졌다. 조상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많 은 가족 구성원과 허물없는 친구들 다수가 멀리 떨어져 사는 광 범위한 사회관계망 속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침팬지 수컷 이 평생 교류하는 수컷은 평균 스무 마리에 지나지 않지만 최근 추산에 따르면 수렵 채집인은 약 1,000명에 이르는 사회적 우주 속에 산다." 그러므로 초기 인류 사회는 협력해 새끼를 키우는 다른 종에서 본 혈연 중심의 대가족, 그리고 침팬지처럼 대부분 친척이 아닌 개체들이 섞여 사는 더 유연한 사회가 독특하게 뒤 섞여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침팬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속 집단을 넘어서까지 연고지를 넓혔다. 우리는 한 지역에 사는 개 인이 다른 곳에 사는 친구나 친척과 인연을 이어갔다.
- 사람은 대형 유인원이다. 달리 말해 폭정과 서열에 기반해 사회 질서를 유지한 역사가 긴 종의 후예다. 우리는 연합하는 본성에 힘입어 몹시 보기 드문 일을 해냈고 서로 힘을 합쳐 판세를 뒤집었다. 소수의 손에서 권력을 빼앗아 대중에게 나눠줬다.
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보엠 Christopher Boehm은 이렇게 전복된 사 회 질서를 '역전된 지배 위계reverse dominance hierarchy'라고 말했다. 장담하건대, 지배 위계 전복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만의 독특한 길로 들어서게 이바지한 가장 큰 요인이다. 우리는 '거대연합', 그러니까 집합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집단 차원의 동맹을 형성할 줄 아는 능력을 기반으로 사회의 지배 위계를 뒤집었다. 그런 거대 연합이 손발을 맞춰 압제자와 무뢰배의 야욕을 무너 뜨린 덕분에 경쟁의 장이 공평해졌고 내부의 힘센 무리가 우격 다짐으로 최상층에 올라서지 못하게 막았다.
- 인간 사회는 여러 중요한 면에서 다른 유인원 사회 와 달랐다. 앞서 다뤘듯이 협력에 더 뛰어났고, 집단의 경계가 더 유연했고, 가족을 이뤘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초기 인간 사회는 또 다른 중요한 면에서도 침팬지나 고릴라, 개코원숭이 사회와 달랐다. 인간사회는 평등주의 사회였다.
인간 사회를 평등주의 사회로 분류한 것에 조금 놀랄지도 모 르겠다. 순전히 돈과 재산의 관점에서 평등을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돈도, 돈이 만들어내는 재산도 모두 비교적 최근에 나타 난 발명품이다. 초기 인류는 자기 것이라 부를 집도 없고 재산도 그다지 많이 모으지 못했다. 진화 관점에서 사회 평등을 측정할 더 중요한 잣대는 번식 성공도다. 이 잣대로 보면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 사회가 꽤 공정하게 작동한 덕분에 대다수가 비슷한 수의 자식을 낳은 듯하다. 이 차이는 대형 유인원의 계급 사회와 대조해보면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대형 유인원 사회에서는 우두머리 수컷이 서열이 낮은 개체 를 배제한 채 암컷을 독차지하고 자원을 장악한다. 고릴라 같은 종에서는 번식이 승자독식이므로 무리에서 태어나는 새끼는 거 의 모두 우두머리 수컷의 자식이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서열이 낮은 수컷도 새끼를 낳지만 그 수가 우두머리 수컷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무리에서 태어나는 새끼 3분의 1이 우두머리의 자식이 다. 자리를 위협하는 2인자가 낳은 새끼는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 초기 정주 사회가 왜 불평등을 어느 정도 용인했는지는 이 해할 수 있을지라도, 왜 수많은 하층민이 인류 역사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극심한 폭정을 참고 견디는지는 가늠하기 어 렵다. 그런 극심한 불평등이 미친 영향은 먼 옛날 수렵 채집 사 회의 남성 번식 성공도와 첫 문명사회의 남성 번식 성공도가 얼 마나 크게 차이 나는지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인류가 약 10만 ~2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이주하기 전 시기에 근거한 추 산치에 따르면 생식 활동을 하는 남성 3분의 1이 생식 활동을 하 는 여성을 모두 차지했다. 달리 말해 남성 셋 가운데 둘은 자식 을 보지 못했다. 홀로세 중반 무렵 농업 혁명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이 비율이 1대16까지 늘어 아이 없는 남성의 수가 급격히 치솟았다. 번식 성공도가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원인이 위계 질서 때문만은 아니었지만(남성의 경우 전쟁 때문에 여성보다 사망 확률이 더 높았다) 누가 아이를 낳을지를 가르는 데 지위도 중요 한 역할을 했다. 이런 초기 문명사회에서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몇몇 황제와 왕이 자식을 수백 명이나 낳는 동안, 어떤 남성들은 자식을 한 명도 얻지 못했다. 많은 남성이 어릴 때 거세되어 권 력자의 궁에서 내시로 일해야 했다. 권력자의 막강한 힘을 증명 하거나 신에게 제물을 바칠 목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의식도 흔 해졌다. 위계가 생겨나자 가장 억압적인 종속 체계인 노예 제도 도 생겨났다.
도대체 어떻게 극악한 폭정 속에 사는 삶을 수렵 채집 사회 에서 사는 삶보다 더 좋아할 수 있었을까? 답은 '그렇지 않았다' 이다. 조상들은 이런 생활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 삶에 꼼짝없이 갇혔을 뿐이다. 다시 디지털 배양접시로 돌아가 사회 진화의 다음 과정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살펴보자.
모형 속 초기 농경 집단은 이웃인 수렵 채집 집단보다 생산 성이 더 높았으니 사람들은 늘어난 번식 성공도를 대가로 불평 등을 조금 용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구가 점차 늘어나자 큰 변 화가 생겼다. 농경 집단의 번식 성공도가 커지자 인구가 바로 불 어났다. 이들의 인구가 늘어날수록 남은 공간을 야금야금 잠식해 수렵 채집 집단을 점점 가장자리로 밀어냈고 끝내는 수렵채집 집단이 모집단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중요한 시점부터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이제는 농경 사회에 사는 하층민이 되돌 아갈 다른 생활 방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농경 생활에 발목 잡힌 하층민이 합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전에는 덩어리에서 조금 큰 조각을 챙겼던 지도자들이 더 큰 뭉텅이를 챙길 수 있었다.
추상적이지만 이 모형에서 우리는 불평등이 오랜 시간에 걸 쳐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역사 기록도 하 층민이 떠날 길이 없을 때 위계가 가장 극심하다는 예측을 뒷받 침한다. 농부와 노예의 주인이었던 신과 같은 존재인 파라오가 존재한 고대 이집트 왕국이 생겨난 데는 이 왕국이 나일강 강둑을 따라 자리 잡은 것이 큰 몫을 했다. 이곳은 사방이 혹독한 사막으로 둘러싸인 탓에 불만에 찬 하층민이 자리를 박차고 떠날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페루에서도 농사를 지은 비옥하고 좁은 계곡에서 초기 국가가 나타난 탓에 시민들 이 이곳을 떠나기 어려웠다. 태평양 연안 북서부의 원주민 키 우틀족Kwakiutl과 치누크족Chinook처럼 농사를 짓지 않는 정주 부 족에서도 노예 제도가 흔했으니, 예속민이 쉽게 집단을 떠나 다 른 집단에 합류하기 어려울 때는 폭정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 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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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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