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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탄생

인문 2014. 10. 22. 21:01

 


믿음의 탄생

저자
마이클 셔머 지음
출판사
지식갤러리 | 2012-11-2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인간의 믿음, 그 탄생의 비밀과 과정을 밝힌다!종교를 비롯하여 ...
가격비교

- 추가적 자극(나무를 스치는 바람)과 이전 경험(포식자와 바람에 대한 경험)이 포함된 일련의 복잡한 공식을 통해 개체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인과적 확률을 배정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종종 비인과적 연관에 인과적 연관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음. 여기서부터 미신에 대한 진화적 논리는 분명해짐. 자연선택은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 연합을 정립하기 위해 잘못된 인과적 연합을 만드는 전략을 선호할 것임. 다시 말해, 우리는 실제로 의미 있는 패턴이 있든 없든 의미 있는 패턴을 찾으려 하며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함. 그런 의미에서 미신과 마법적 사고 같은 패턴성은 학습하는 뇌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지상 큰 오류가 아님. 우리는 모든 학습을 제거할 수 없는 것처럼 미신적 학습 역시 제거할 수 없음. 우리의 생존을 돕는 것은 진짜 패턴 인식이지만, 가짜 패턴이 반드시 우리를 죽이는 것은 아님. 패턴성을 자연선택의 선별과정을 견뎌냄. 우리가 생존하고 번식하려면 연합해야 하므로 긍정오류로 이어진다고 해도 자연선택은 모든 것을 연합하는 전략을 선호함
- 통제한다는 느낌은 우리의 심리적 안정에 필수적임. 우리는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때 더 분명하고 나은 결정을 함. 통제부족을 회피하며 우리의 통제감각을 높이는 한가지 근원적인 방법은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는 것임.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 패턴을 추구함. 심지어 이런 패턴이 착각이라 해도 말이다.
- 극단적으로 특이한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통제된 뇌 시스템과 자동적 뇌 시스템이 경쟁함. 혈류는 신체의 중심부를 향해 흘러가고 말초에서 멀어짐. 절단과 상처가 혈액상실을 통해 죽음으로 이어지는 투쟁-도피 반응처럼, 통제된 이성이라는 높은 도로는 산소박탈, 수면박탈, 극한의 기온, 아사, 고갈 등으로 닫히기 시작. 신체는 기본적 생존에 필요한 낮은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 높은 기능을 꺼버림. 정상적 일상생활에서는 통제된 이성회로가 자동적 정서회로를 점검해 우리가 모든 변덕과 충격에 무기력해지는 것을 방지함. 하지만 이성적 통치자를 제거하면 정서적 기계는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함. 낮은 수준의 자극에서는 정서가 조언자 역할을 하며, 뇌의 고차원 피질로부터의 입력과 더불어 의사결정 영역으로 추가정보를 전달함. 중간수준의 자극에서는 높은 도로인 이성중추와 낮은 도로인 정서중추 사이에서 갈등이 생김. 높은 수준의 자극에서는(극단전 환경과 육체적/정신적 소진처럼) 낮은 도로인 정서가 높은 도로인 인지과정을 장악해 사람들에게 더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함. 그들은 통제불능 혹은 자기이해에 반하는 행동을 함. 바로 뇌가 감지된 존재의 동반자를 요구할 때임
- 뇌 속에 흘러 다니는 신경전달물질 가운데, 도파민은 믿음과 가장 직접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임. 사실 도파민은 강화되는 행동은 뭐든 반복하려고 하는 조작적 조건화의 과정을 거치며, 스키너가 발견한 뇌의 연합학습과 보상학습에서 중요함. 정의상 강화란 유기체에 주어지는 보상임. 다시 말해, 뇌는 또 다른 긍정적 보상을 얻기 위해 그 행동을 반복하도록 신체에 지시함
- 신경학자들은 좋아함(쾌락)과 원함(동기부여)을 구분하며, 도파민이 쾌락을 자극하는지 아니면 행위의 동기를 부여하는지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함. 긍정적 강화는 기분이 좋거나(보상에 대한 순수한 쾌락이나 좋아함), 그 행동이 반복되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을 피하려는 동기부여나 원함) 반복행동으로 이어짐. 첫번째 보상은 순수한 쾌락, 말하자면 오르가즘과 관련이 있음. 반면 두번째 보상은 다음 보상여부가 의심스러울 때 중독자가 느끼는 걱정과 관련이 있음. 신경학자 러셀 폴드랙은 새로운 데이터를 근거로 "도파민의 역할은 쾌락 자체보다 동기부여에 있다고 추측되는 반면 오피오이드 시스템은 그 핵심이 쾌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함
- 우리는 모두 패턴 추구자이지만,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무작위적인 사건들 사이에서 결론을 도출해내는지 그리고 패턴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몇몇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패턴을 찾음. 대부분의 오류탐지 네트워크(전대상회피질과 전전두엽피질)는 우리가 연합학습을 통해 집어든 잘못된 패턴의 (전부는 아니고) 일부를 잡초뽑듯 제거함. 우리는 패턴 탐지 필터를 통과한 잘못된 패턴에서 나온 다양한 미신을 상대하며 적당히 창조적인 (하지만 세상을 바꿀 정도는 아닌) 삶을 영위함. 몇몇 사람들은 패턴성에 극도로 보수적이어서 극히 적은 패턴을 보며 그다지 창조적이지 않음. 반면 어떤 사람들은 패턴성이 무차별적이며, 어디서든 패턴을 찾아냄. 그것은 창조적 천재성이나 음모적 편집증으로 이어짐
- 시각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약 10%가 시각적 환상을 경험함. 얼굴(특히 찌그러진 얼굴)이 가장 흔하고 만화가 두번째, 기하학적 모형이 세번째로 많은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시력을 상실하면, 즉 뇌의 시각영역이 더 이상 외부의 입력을 받지 못하면, 그 영역에서 과잉활동과 흥분이 일어남. 그와 동시에 당신은 기이한 것들을 보게 됨
- 우리는 바위, 나무, 구름 같은 무생물이나 약탈자, 먹이, 인간 같은 생명체에게도 의도와 행위자를 꾸준히 덧붙임. 우리는 신체 너머에 있는 마음을 믿는 타고난 이원론자이기 때문.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다른이의 마음을 인식하고, 우리의 신체를 남과 별개의 것으로 인식. 우리의 뇌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모든 감각과 인지적 생각을 의미 있는 이야기로 엮어내려는 자연스러운 성향을 갖고 있음. 그리고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자신을 탈중심화하여 또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옮겨놓을 수 있음. 우리가 영원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은 자연스러움. 우리는 타고난 불멸주의자들이다.
- 약 5000년에서 7000년 전에 무리와 부족들은 봉토, 주, 정부로 연합. 그리고 정부와 종교는 윤리원칙과 법규정을 통해 도덕적 행위를 성문화하는 사회제도로 함께 진화함. 신은 이러한 규정의 최종적 집행작 되었음. 수렵채취 무리와 수십 또는 수백명의 부족과 같은 소규모 집단에서 도덕적 정서는 행위 통제와 사회응집성을 강화하는 비공식적 수단으로 채택될 수 있음. 가령 사회규범을 위반한 경우 죄의식을 통해 위반자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집단에서 축출하는 것임. 하지만 인구가 수만명, 수십만명, 궁극적으로 수백만명으로 늘어나면 사회규정을 집행하는 비공식적 수단은 붕괴함. 집단이 커지면 무임승차자와 규정위반자들이 더 순조롭게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 따라서 더 공식적인 제도의 필요성이 대두. 이것이 종교의 주된 역할임. 위반자들이 이익을 챙길수 있다고 해도, 모든 것을 관장하는 보이지 않는 의도적 행위자가 있다고 믿으면, 죄에 대한 강력한 억제제가 될 수 있음.
- 우리가 신을 믿거나 사랑에 빠졌을 때, 과학은 그 느낌을 설명하기 위해 상충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것을 제공함. 즉 빼는 것이 아니라 더하는 것임. 나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도파민이 초기의 정욕을 강화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왔다. 도파민은 시상하부에서 생성되며, 성욕을 움직이는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유발하는 신경호르몬임. 그리고 깊은 애착과 같은 느낌은 옥시토신에 의해 강화됨. 옥시토신은 시상하부에서 합성되는 호르몬으로 뇌하수체에 의해 혈액안으로 분비됨. 그러한 호르몬의 자극을 받는 신경통로의 진화는 일부일처제 속에서 짝과 유대를 맺으며 무력한 유아를 장기적으로 보살펴야 하는 종에게만 나타남. 우리는 아이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랑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의 질을 낮추는가? 물론 아니다. 무지개를 구성하는 것들을 다 해체한다고 해서 무지개에 대한 미적 감상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니까. 종교적 신념과 신에 대한 믿음 역시 적응적, 진화적으로 설명할 수 있음. 종교적 신념과 신에 대한 믿음 역시 적응적, 진화적으로 설명할 수 있음. 종교는 집단의 응집과 도덕적 행동을 강화하기 위해 진화한 사회제도임. 그것은 이타주의, 호혜적 이타주의, 간접적 이타주의를 고무하고, 지역사회 구성원들 간의 협력에 보답하는 헌신의 수준을 드러내는 필수불가결한 문화의 메커니즘임
- 사람들은 왜 사실일 가능성이 별로 없는 음모를 믿는 것일까? 사람들은 패턴 탐지 필터가 크게 열려 있어 모든 패턴을 다 통과시키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잘못된 패턴을 전부 혹은 거의 걸러내지 못하는 것. 음모론자들은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점을 의미있는 패턴으로 연결해 의도적 행위자성을 불어넣음. 여기에 확증편향과 뒷궁리 편향(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사후설명을 끼워 맞춤)이 더해지면 음모적 인지의 토대가 성립됨
- 우리는 도덕적 결정을 내릴 때 이성적으로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자동적 느낌에 근거해 판단함. 신중하게 찬반 증거를 가늠해 논리적으로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고, 대신 직관적으로 판단한 뒤 이성적 이유로 순간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것임. 그러한 보수적, 자유적 고정관념에 반영된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이성적이라기보다 정서적임. 우리는 대부분 도덕적으로 먼저 믿음을 형성한 뒤 그것을 합리화함
- 자칭 골수 공화당원과 골수 민주당원이 반씩 섞인 30명의 남자 피험자들에게 2004년 대선 동안 조지부시와 존 케리의 진술을 평가하라고 한뒤, 그들의 뇌를 스캔함. 후보자들은 분명 모순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음. 후보자 평가에서 공화당원들은 케리에게 비판적이었고, 민주당원들은 부시에게 비판적이었지만, 둘다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자는 평가의 올가미에 넣지 않았음. 당연하지만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신경영상 결과임. 추론과 가장 관련 있는 뇌 영역인 배외측 전전두엽피질의 활동이 조용했다는 것임. 가장 활동적인 곳은 정서처리와 관련된 안와전뒾질, 그리고 패턴성 처리와 갈등해결에 활동적인 전대상피질이었음. 흥미롭게도 피험자들은 일단 자신이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느끼는 결론에 도달하면, 보상과 관련한 뇌 영역인 복측선조체가 활성화되었음. 우리는 이성적으로 여러가지 이슈에 대한 후보자의 관점을 평가하거나 그의 플랫폼 강령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충돌하는 데이터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임. 우리는 후보자에 대한 선입견적 믿음에 맞지 않는 부분을 그럴듯하게 합리화하고 신경화학적 물질, 즉 도파민으로 보상을 받음. 웨스턴은 이렇게 결론내림. 우리는 추론에 개입한다고 알려진 뇌 영역의 활동이 늘어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대신 정서규제와 갈등 해결에 개입한다고 알려진 회로를 포함해 정서회로의 네트워크가 켜지는 것을 봤다. 본질적으로, 원하는 결론이 나올 때 까지 인지적 만화경을 빙빙 돌리다가 부정적 정서는 제거하고 긍정적 정서는 활성화해 크게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 자기 정당화 편향은 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뒤에 그 행동이 최선이었다고 확신하기 위해 결정을 합리화하는 성향임. 우리는 일단 어떤 결정을 내린다음 후속 데이터를 심사해 그 결정에 모순되는 정보를 모두 걸러내고 선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만 남김. 이런 편향은 직장과 직업의 선택부터 일상적 구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적용됨. 자기정당화의 실질적 혜택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대부분 그 결정에 만족한다는 것임.
- 고릴라 실험은 뇌의 작동에 대한 근원적 이해뿐만 아니라 지각의 힘에 대한 우리의 과신을 드러냄 우리는 눈을 비디오 카메라로, 뇌를 지각된 것들로 채워야 할 텅 빈 테이프로 생각함. 하지만 기억이 테이프를 되감아 마음의 극장에서 돌려보는 것이라고 여기는 모형에는 오류가 있음. 실제로 지각체계과 데이터를 분석하는 뇌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에 큰 영향을 받음. 우리는 뭔가 다른 것에 골몰하고 있으면, 뇌는 눈앞에 스쳐 지나간 많은 것들을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음.
- 책들의 대결에는 사고의 두가지 방식, 즉 두개의 믿음엔진이 개입함. 권위의 책은 연역적 사고에 근거. 일반화된 결론에서 특정 진술을 만들고, 일반적인 것에 기초해서 특정한 것을 주장하고, 이론을 토대로 데이터를 구함. 반면에 자연의 책은 귀납적 사고에 근거. 특정 진술에서 일반화된 결론을 도출하고, 특정한 것에 기초해서 일반적인 것을 주장하고, 데이터를 통해 이론을 정립. 특정한 사람이나 전통이 100% 순수한 영역이나 귀납을 행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고 비현실적임. 우리는 누구도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입력이 없는 진공상태나 연역과 귀납이라는 두가지 사고방식 없이는 움직일 수 없음. 데이터와 이론은 손을 맞잡고 가야 함. 그럼에도 과학사에서는 한쪽이 더 강조된 시기가 있었음. 그리고 갈릴레오와 동료 혁명가들은 연역적 사고의 깊은 전통을 정면에서 들이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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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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