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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하노이

인문 2015. 5. 25. 17:00

 


스토리텔링 하노이

저자
김남일 지음
출판사
주식회사 아시아 | 2012-01-31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스토리텔링 하노이는 우리가 몰랐던 여러 다른 하노이들, 즉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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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뮈가 페스트에서 말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는데서 오는 법이라고, 가령 남쪽을 안정시킨다는 뜻의 안남은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가. 그건 당연히 동쪽을 안정시켜 압록강 너머에 안동을 둔 중국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런데 이제 이 폭압적 호명의 주체가 프랑스로 바뀐다. 낯선 인도차이나 연방이 수립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정신적 왜곡과 물질적 약탈은 더욱 거세진다. 베트남은 자신의 정당한 자존을 인정받지 못한 채, 인도와 차이나라는 두 거대한 문명 사이에 낀 존재로서 원치 않는 규정을 당한다. 이렇듯 식민지 시절에 부적절한 의도로 탄생한 이 용어는 향후 오직 전쟁이라는 슬픈 역사를 나타낼 때에만 그 사용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다. 베트남의 항불투쟁으로 시작하여 라오스까지 전역이 확대된 1차 인도차이나전쟁(46~54),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으로 시작하여 라오스, 캄보디아까지 확전된 2차 인도차이나 전쟁(60~75),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가 서로 물리고 물린 3차 인도차이나 전쟁(78~79)이 그것들이다.
- 쯩자매의 항쟁은 불과 삼년을 넘기지 못했다. 베트남은 이후 다시 구백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는다. 그렇지만 자매의 항쟁은 베트남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토착 지배계급이 연대하여 민중과 함께 최초로 한의 지배에 맞서 싸운 대규모 항쟁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베트남인들이 일치단결하여 중국, 몽골, 프랑스, 일본, 미국 등 당대를 호령하던 거대한 외세에 대항하여 치열한 항쟁을 전개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의 역사학자 윌리엄 다이커는 천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도 베트남의 독립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고 썼다. 당연히, 그 기억의 사전 첫 페이지에 쯩자매가 있다. 케이트 테일러는 두 자매의 삶이 아주 짧았지만, 그들에 대한 기억은 장구한 세월동안 마치 신앙처럼 점점 더 생생해졌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이 이천년의 기억이야말로 훗날 베트남전에서 거대한 골리앗 미국을 상대로 베트남이 승리를 거두게 되는 궁극적인 불씨라고 주장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노이 시는 해마다 음력 2월 6일을 택해 쯩자매의 죽음을 기린다. 하노이를 비롯하여 베트남의 주요 도시에는 두자매를 기리는 하이 바 쯩 거리가 있다. 쯩자매가 봉기한 10월 20일은 베트남 여성의 날이 되었다.
- 45년 호찌민은 독립국가를 출범시켰지만 베트남 경제는 완전히 피폐해 있었다. 프랑스에 이어 베트남을 차지한 일본의 착취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통킹델타와 메콩델타라는 세계의 곡창지대가 있었지만 여기서 나온 쌀과 곡식은 모조리 수탈당함. 44년에서 45년까지, 1년 남짓한 일본의 통치기간 동안 굶어죽은 베트남인들은 무려 200만명. 그러니 독립을 얻었어도 국고는 비어 있었다. 인민들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었다. 끔찍한 시간은 계속되었고 인민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굶주리며 죽어갔다. 이 참담한 때에 독립정부를 만든 호찌민은 민생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음. 그는 두가지 운동을 궁리해 냈다. 금식운동과 금 모으기다. 일주일에 하루 굶기 운동을 통해 아사자 구제에 나섰고, 호찌민은 그 운동을 제일 앞에서 실천. 그리고 다른 하나가 금모으기였다. '금 주간'을 선포하고, 갖고 있는 금붙이를 모으자는 호찌민의 호소에 인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국가재정을 확보하고 굶주리고 있는 동포를 구제하기 위한 이 운동에 각계각층의 인민들이 참여했다. 대를 물려온 반지를 내놓은 농촌의 가난한 부인네, 끼니를 굶으면서도 처분하지 않았던 결혼 패물을 내놓은 중년 노동자 부부, ... 금 기부의 행렬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때 놀랄만한 기부자들이 나타났다. 참파 왕조의 공주출신 응우옌 티 템은 황금관과 황금목걸이를 모두 내놓았다. 포 쫑 짠왕의 마지막 후예인 응우옌 티 템 공주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으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하노이의 한 부자는 수백돈이 넘는 금덩어리를 기꺼이 내놓았다. 이때 걷힌 금은 이제 막 출범한 독립정부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재원이 되었을 뿐 아이라 항불, 항미항건의 마지막 시기까지 중요한 밑천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금 모으기 운동의 최대 성과는 50년 뒤 한국에서처럼 모아진 금붙이 그 자체가 아니었다.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자는 전국민적 결의와 연대감의 확보,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의 회복이었다. 베트남 인민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조국이 목숨을 바쳐서 지킬 가치가 있는 공동체라고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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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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