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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의 죽음 사용 설명서

저자
조지아 브래그 지음
출판사
신인문사 | 2014-03-2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위인전이 말해 주지 않는 죽음의 은밀한 사생활 위인전이 이야기해...
가격비교

- 자칼이나 자칼의 머리를 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비누스는 고대 이집트인에게 죽은자의 신이었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천칭 저울 한쪽에 진실의 깃털을 올려놓고 다른 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올려놓은 뒤 그의 삶을 심판. 당시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심장에 머문다고 믿었는데, 생전에 그가 한 선행이 많으면 심장이 가벼워 영혼불멸의 여행을 하고, 저울이 심장쪽으로 기울면 괴수에게 먹혀 여행은 끝난다고 생각. 이처럼 아비누스는 흔히 저울로 심장의 무게를 달거나 미라를 만드는 모습으로 등장.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이 죽은 뒤에도 사후세계가 있어 불멸의 여행을 계속한다고 믿음으로써 죽음으로 끝나는 유한한 삶을 극복하고자 했고, 미라나 아누비스는 그런 믿음의 산물이었음
- 카이사르와 관련된 유산들
* 최초로 기록된 법의학적 사체부검은 카이사르에게 실시됨. 의사 안티스티우스는 카이사르에게 있는 23곳의 자상 가운데 가슴에 찔린 것 하나가 치명적이었다고 밝힘. 나머지 상처에는 살았을 수도 있음. 해부는 수천년 동안 실시되어 왔음. 1400년대 이전에는 인간의 몸을 해부하는 것이 범죄였다. 그러나 이른바 시체도둑이라 불리는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시체들을 훔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1500년대에는 카톨릭 교회가 해부를 학문의 도구로 받아들임. 오늘날 MRI나 CT촬영같은 기술적 발전들은 해부를 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1950년대만 해도 모든 주검의 50%정도를 부검했는데, 1970년에는 시체의 20%정도를 부검했고, 지금은 부검을 하는 주검은 5% 이하에 불과
* 카이사르 시대의 로마달력은 1년이 355일이었다. 1년에 열흘이 부족했고, 결국 여름에 눈이 오는 지경에 이름. 기원전 46년 카이사르는 1년을 365일로 만듬. 윤년으로 알려진 매 4년마다 하루를 추가.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새 달력을 율리우스 달력이라고 했다. 그래도 아직 11분이 모자랐다. 1600년대에는 이 11분이 쌓이고 쌓여 ㄷ시 여름에 눈이 오게 됨.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 8세는 이 문제를 고치기 위해 새로운 윤년을 도입했고, 눈은 겨울로 돌아가 제자리를 찾음. 4로 나뉘지만 100으로는 나뉘지 않는 해를 윤년으로 정함. 이것은 보기보다 어렵다. 교황은 이 달력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력이라고 명함. 이것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이다.
* 그 외에도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 많음. 제왕절개라는 말은 카이사르 절개 출산이란 말에서 유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퀸틸리스 달에 태어났는데, 그 달의 명칭이 율리우스에서 유래한 July로 바뀌어 지금도 사용됨. 카이사르란 이름은 보통명사화되어 카이사르 이후의 로마 지배자들은 카이사르 누구누구 하는 방식으로 불렸따. 러시아 황제들은 차르라고 불리는데 이 역시 카이사르란 말에서 유래. 독일에서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카이사르 샐러드란 음식이름은 어떨까? 그러나 이 명칭은 20년대 카이사르 카르디니라는 사람으로부터 유래. 물론 그의 이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본뜬 것이지만 말이다.
- 콜럼버스는 신세계를 발견한 것을 인정받지 못했음.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499년, 신세계로 가는 여행객 가운데 한명이었음. 그는 자신이 신세계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책을 씀. 그것은 완전히 거짓이었다. 지도 제작자는 그의 책을 읽고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서 신세계를 아메리카라고 명명. 그 이름은 접착제처럼 달라붙어 지금까지 떨어지지 않고 사용됨. 지도제작자가 최소한 베스푸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역사는 300년 동안 콜럼버스에 대해 잊고 지냈다. 1800년대에 스페인 왕은 왕립기록보관소에서 콜럼버스의 항해일지를 찾아냈고, 콜럼버스는 마침내 신세계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음. 수년이 지난 뒤 콜럼버스의 유해는 항해를 몇번 더 했다. 처음에 그는 스페인에 묻혔다. 그뒤 기록에는 그의 가족이 유해를 오늘날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있는 히스파니올라로 갖고 갔다고 적혀 있다. 몇 년이 지난 뒤 그의 시신은 쿠바로 옮겨짐. 이들 나라들은 아직도 콜럼버스의 유골을 갖고 있다고 주장. 유골에 대한 DNA 실험결과 과학자들은 최소한 콜럼버스의 유해가운데 일부가 스페인과 쿠바, 그리고 아이티에 있다는 것을 확인. 도미니카 공화국은 콜럼버스 유해시험을 거부. 최근 의사들은 콜럼버스가 겪은 증세를 토대로 그가 라이터 증후군 때문에 사망했다고 결론. 이것은 위생상태가 나쁜 밀집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걸리는 희귀한 병이다. 오늘날에도 일부 군인, 선원, 해병들이 이 병에 걸림. 이 병은 이질로 시작해 눈과 관절 그리고 요도를 공격함.
- 포카혼타스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공주였음. 그녀는 포우하탄 추장의 딸이었다. 오늘날 영어에서 공주는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을 뜻하기도 함. 비록 그녀는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포카혼타스라는 말은 그녀의 부족말로도 응석받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전혀 디즈니의 만화영화 같지는 않았다. 영화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영국 정착민인 존 스미스와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그녀는 1596년에 북미 버지니아주의 키르카에서 태어남. 그녀는 겨우 11세에 존 스미스를 만났는데, 그는 2년후에 신세계로 떠났음. 어느 누구도 포카혼타스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 그런데 실상은 이러하다. 그녀는 이용당했고, 속았으며, 납치당해 영국으로 갔다. 그리고 야만인도 문명화될 수 있다는 살아숨쉬는 증거로 전시됨. 하지만 포카혼타스는 그리 오래 숨을 쉬지 못했다.
- 로버트 토드 링컨의 기구한 운명 : 암살당한 미국 대통령은 모두 4명이다. 링컨은 존 윌크스 부스, 가필드는 찰스 기토, 매킨리는 레온 촐고츠, 케네디는 오즈월드에 의해 암살당함. 그런데 이들 사건과 관련된 기구한 운명의 남자가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아들 로버트 토드 링컨이다. 그는 세번의 대통령 암살 사건 현장 가까이 있었다.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력은 포드 극장에서 총을 맞았다. 로버트는 극장으로 갔고, 그의 아버지가 사망할 때 곁에 있었다. 1881년에는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워싱턴 DC기차역에서 피격됨. 그 당시 로버트는 전쟁장관으로 출장 때 그를 수행하고 있었다. 가필드가 총에 맞은 직후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190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뉴욕 주 버펄로에서 열린 범아메리카 전시회에서 피습되었다. 로버트도 초대를 받아서 버펄로에서 대통력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피습 직후 로버트가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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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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