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10.17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

저자
마이클 에드워즈 지음
출판사
다시봄 | 2013-09-24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더 나은 사회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세계적인 시민운동...
가격비교

- 자본주의는 물질적, 기술적으로 많은 보상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사회적 유대와 건전성, 사회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데 꼭 필요한 공동의 목적에 대한 인식을 파괴했음. 그리고 오늘날 형태의 자본주의는 불평등과 개인의 소외를 조장함. 박애자본가들은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것은 타당할까? 예컨대 경제위기가 닥칠때마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기업과 돈 많은 개인들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우리 삶 곳곳에 시장이 너무 깊이 침투했으며, 공공 서비스와 시민참여의 오랜 전통이 퇴색했다는 것.
- 사회변혁은 효율이나 효과, 혁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 번데기가 나비로 탈바꿈하는 것처럼, 변혁의 본질은 기존의 패턴과 구조를 깨고 흔들어 다른 것으로 대체할 때 거기서 훨씬 뛰어나고 전혀 다른 어떤 것이 솟아난다는 뜻. 사회에서 기존의 패턴과 구조란 차별이나 강탈, 불평등, 배제, 폭력, 인권남용 등을 의미. 사회변혁의 과정에서 핵심문제는 권력과 권력분배임. 권력은 현 상태를 깨고 새로운 해법을 발명할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 그래서 사회에 뿌리깊게 반영되는 권력과 권력관계를 바꾸는 것이 사회변화의 핵심요소. 하지만 진정한 변혁을 위해서는 권력이 사용되는 방식을 통치에서 해방으로 바꿔야 함. 그래야만 정치가 무수한 파벌사이에서 벌어지는 회전의자 게임을 넘어설 수 있고, 경제는 서로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개인의 유불리를 넘어설 수 있음.
- 박애자본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후원자의 통제력 확대는 곧 시민사회그룹의 자율성과 유연성 축소를 의미. 후원받는 단체는 후원자가 처방한대로 정확하게 지출하고 보고해야만 함. 또한 자원봉사자들에게 급여를 지불하면, 공동체에 무료로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타적 마음까지 희석시킬 수 있음. 박애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에너지와 자원은 실제 돈과 열정이 솟아나는 사회적 기업에 유리한 현재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하고 새로운 제도를 꿈꾸지 못하게 할 수 있음. 시장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기업들이 책임있게 행동하도록 압박하는 시민사회의 능력은 약화됨. 그리고 비영리단체가 전문화하면서 회원들의 소속감을 뿌리칠수록, 풀뿌리 민주주의의 훈련장이 되고 회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채널의 역할을 포기하게 됨.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시민의 자발적 행동을 상품화함.
- 일부 기업에서는 기업적 사고를 신주단지처럼 받드는 혁신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경향이 있음. 하지만 어떤 혁신이든 시민사회가 필요해서 스스로 만들어낸 변화에 불과. 시민운동의 기반은 원래 효율적이었으며, 이는 사실 특별히 새로운 것도 아님. 연대와 공조를 위한 시민사회의 일상적 업무들은 아무도 박수치지 않지만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우 중요한 일임.
- 어느 조직이든 경영상의 문제에 부딪히면 이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지만 그 해법들은 그다지 중립적이지 않음. 그 방법마다 제각각 특정한 맥락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효과적인지 판단하는 가치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 기업과 시장의 측면에서 빠른 성과만을 얻기는 쉬움. 그러나 앞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걸스카우트와 해비타트처럼, 시장의 눈에는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것이 시민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에서는 본질적인 경우가 많음. 사회적 행동에 대한 투자가 비용대비 효과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의 논리에 끼워 맞춰져 지나치게 과장되고 있음. 이는 무엇보다 시민행동에 깊이 개입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시민단체를 이끌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함.
- 기대수명이 긴 나라와 5세이하 사망률이 낮은 나라들의 경우 국내총생산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민간기업이나 사회적 기업이 아닌 정부의 보건의료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 HIV/에이즈 같은 전지구적인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민간기업이나 사회적 기업들이 제공하는 덕지덕지 틈을 메운 구멍난 항아리가 아니라 강력한 공공보건 인프라로 빚은 튼튼한 도가니가 필요. 또 지속가능한 보건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술발전이 정치권력의 민주적 분산과 경제적으로 고른 분배, 그리고 참여와 함께 이루어져야 함. 최근의 역사와 오늘날의 경험은 경제성장률을 높이면서도 가난과 불평등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줌. 바로 시장이 정부와 시민사회를 통해 표출되는 공공의 이익에 종속적인 역할에 머물 때 경제성장과 불평등 해소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음. 공공의 이익과 시장의 이익은 정부가 자율성을 갖고 개발활동을 감독할 수 있도록 반드시 분리해야 함. 이것은 45년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이 입증함. 이른바 아시아의 용이라 불리는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폴은 차드, 파키스탄, 아이티와 같은 수준에서 오늘날 서유럽의 몇몇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국내총생산을 끌어올림. 80년대와 90년대 칠레와 보츠와나처럼 국제적 개발이 성공한 경험 역시 이를 뒷받침함. 오늘날 중국과 베트남도 마찬가지. 몇몇 역사학자들은 19세기 미국도 역시 그랬다고 말함. 이 모든 나라에서 정부는 기업이 맡은 일을 하도록 격려했지만 장기적 목표 측면에서는 시장을 통제함으로써 재분배와 사회적 안정성을 우선했음.
- 박애자본주의는 저소득 집단에게 유용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영리단체의 성과와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강화하며, 불평등과 가난의 측면에서 국가적 지표를 개선한다고 주장하지만 각각의 영역에서 아무런 설득력도 근거도 없음. 사회변겨의 힘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 무함마드 유누스가 말하듯이 사회적 기어븐 반사회적 기업보다 물론 좋음. 그건 분명한 사실임. 하지만 산업화된 세계의 경험이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효과적인 소액대출 시스템이나 영양소를 강화한 식품이나 태양열로 충전하는 전구를 생산하는 일보다 가난을 비롯한 사회적 부조리를 퇴치하는 일은 훨씬 복잡함. 박애자본주의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극히 일부의 해법만 제시할 수 있을 뿐임. 특히 우리 목표가 모든 형태의 폭력과 압박, 차별을 해소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함. 재분배 정책과 정부간섭, 사회운동, 시민사회운동, 약동하는 공공공간, 그리고 개인의 폭넓은 변화는 앞으로도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어젠다가 될 것임.
- 한쪽은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한 결과 자연스럽게 세상이 진보했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쪽은 정치와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시장에 의식적으로 개입한 결과 세상이 진보했다고 봄. 시민사회는 애덤스미스가 우려했던 사회공학을 굳이 활용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시민사회나 정부의 집단행동을 통해서만 사회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함. 시민사회는 또한 분산된 수백만 개인과 조직이 상호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목적이라는 의식적 감정을 갖고 움직인 결과이기도 함. 따라서 시민사회의 에너지속에는 사회적으로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분명하고도 명시적 의도가 존재함.
- 박애자본가들은 사회문제의 원인이 시장의 실패와 경제적 인센티브의 결여에 있다고 보고, 이를 수정하면 문제는 해결된다고 봄. 반면에 시민사회는 사회문제에서 인종주의, 성차별, 동성애 차별, 인권의 남용과 같은 불의가 횡행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이를 퇴치하기 위해 공격함. 하지만 시민사회에서 거론하는 이런 단어들은 새로운 박애자본주의 재단의 전략적 계획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음. 이는 단순한 단어사용의 문제가 아님. 기업들이 자신들의 로비에 대해서는 눈감으면서, 시민권이나 여성권 투쟁 같은 과거의 성공에 중심에 있던 저항과 치열한 집단 행동은 혐오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임.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주론(서울대 출판문화원)  (0) 2014.10.18
유동하는 공포  (0) 2014.10.18
브라질이 새로운 미국이다  (0) 2014.10.17
그들은 왜 신발대신 휴대전화를 선택했는가  (0) 2014.10.17
군주론  (0) 2014.10.17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