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버블

인문 2022. 7. 24. 14:12

- 우리 인간은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착각일 때가 많다. 모든 사람은 맹점을 타고난다. 정확하게 말하면 맹점은 두 개로 각각의 눈에 하나씩 있다. 안구 뒤쪽, 시신경이 뇌로 들어가는 지점에 광수용체가 자라지 않는 부위가 그것이다. 이것이 가리는 영역은 상대적으로 크지만(하늘을 쳐다본다고 하면 보름달 아홉 개를 합친 크기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다.
- 사람벼룩은 거의 다 몰아냈지만 우리 몸에는 그보다 덜 알려진 여러 종이 계속해서 서식하고 있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다행 스럽게도 그들은 우리가 느끼거나 볼 수 없는 자그마한 동반자로 서 조용히 살아간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는 않지만, 바로 지금 여러분의 얼굴에는 모낭충이라고 하는 진드 기가 기어 다닌다. 다리가 여덟 개인 거미류로 가장 가까운 친척 은 거미다. 열여덟 살 이상 모든 사람의 몸에서 진드기가 발견되 었다는 연구가 있다. 모공 아래에 틀어박혀 속눈썹까지 파고드는 이 생물은 밤에 돌아다닌다. 시간당 8밀리미터에서 16밀리미터의 속도로 움직이며 우리의 얼굴에서 먹이를 찾고 짝을 맺는다. 과학자들은 그들이 무엇을 먹는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 다. 모공에서 나오는 분비물인 피지일 수도 있고, 우리 피부에 붙어 있는 죽은 피부 세포나 박테리아일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아는 하나는, 이 진드기에게 입은 있지만 항문이 없어서 죽을 때 창자가 터지면서 몸에 쌓아 둔 음식물들이 우리 얼굴에 쏟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비물은 더 작은 종들이 살아가는 거처다. 진드기의 장 속에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생명체인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미생물로 뒤덮여 있다는 것 을 생각하면 얼굴에 붙은 박테리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종의 다양성은 우리를 그야말로 어리둥절하게 한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 대학에서 '배꼽 생물 다양성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60명의 피험자 배꼽에서 표본을 채취하여 박테리아 동물원을 발견했다. 총 2,368개의 다른 종이 배꼽에 있었고 절반 이상은 이전에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것이었다. 한 명의 배꼽에 는 일본 토양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 박테리아가 있었다. 그 는 일본에는 가본 적도 없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왔 을까? 물론 박테리아는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미생물학자 네이선 울프가 관찰한 대로, 우리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실 때마다 전 세계 를 여행하는 미생물 종들을 채집하고 있다. “중국 사막의 먼지는 태평양을 넘어 북아메리카와 유럽까지 건너간다. 전 세계를 한 바 퀴 돈다. 그와 같은 먼지 구름에는 원래의 토양에 있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물론,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나 바다 위에 걸린 안 개에서 채집한 미생물도 포함된다."
로렌스 버클리 국립 연구소 과학자들은 공기 표본을 채집하여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에 1,800종의 박테리아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런 박테리아 생명체들은 그저 우리 위와 옆에만 있는 것이 아 니라 우리의 일부이기도 하다. 예일 대학 공학자들은 사람 한 명 이 방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매 시간 3,700만 개의 박테리아가 더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가 우리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 은 절반만 우리 것이다. 박테리아 세포의 수를 다 더하면 인간 세 포의 수보다 10배 많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거의 대등하다. 인간의 몸은 평균적으로 30조 개의 인간 세포와 39조 개의 박테리아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 미생물은 다세포 생물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산소 를 생산한다. 우리는 산소가 주로 나무들이 호흡으로 내뿜는 물질 이라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산소의 28퍼센트만이 우림 지대에서 나온다. 대다수 산소는 바다에서 식물성 플랑크톤과 해조류가 만 든다. 하지만 이런 광합성의 원천은 육지에 사는 식물과 조류도 공통으로 갖고 있는 바로 그것, 역사의 어느 시점에 그들 속으로 들어간 박테리아다. | 20억 년도 더 전에 시아노박테리아는 놀라운 능력을 진화시켰 다. 햇빛을 식량으로 바꾸는 능력이었다. 그들은 태양에서 오는 에 너지를 이용하여 물과 이산화탄소를 당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부 산물로 생성된 산소는 뱉어 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시아노 박테리아의 몇몇 종은 계속해서 바다에 머물며 독립적인 삶을 살았지만, 몇몇 종은 조류에 흡수되어 엽록체라고 하는 세포 소기관 속에 영구적인 거처를 마련했다. 조류의 종이 진화하여 육지로도 올라오면서 그들은 현재의 나무와 식물의 조상이 되었다. 그 말은 자그마하고 무척이나 오래된 이 공학자들이 광합성하는 모 든 식물의 조종석에 앉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 전부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 우리 발밑에는 관심을 거의 못 받는 또 하나의 생태계가 있다. 토양은 지구 생명체의 3분의 1이 살아가는 집이며, 다양한 생물들 로 분주하다. 정원의 흙을 한 스푼만 퍼도 10억 마리의 박테리아 가 들어 있다. 생물량의 관점에서 보자면 에이커당 소 두 마리에 맞먹는다. 한 움큼의 숲 토양에 지구의 총 인구보다 더 많은 미생 물이 들어 있으며, 건강한 흙 1킬로그램에 포함된 미생물은 우리 은하의 별들을 합친 것보다 많다. 판 레이우엔훅은 현미경 아래에 놓인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판 레이우에훅이 최초로 발견하고 3세기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박테리아, 고세균, 곰팡이, 원생동물, 조류, 바이러스로 이루어진 이런 땅밑 우주는 거의 탐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과학계에 알려진 미생물 종은 고작 0.001 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흙은 당연히 식량을 얻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좋은 흙이 없으면 우리는 굶어죽고 만다. 오늘날 우리는 일부 박테리아가 식물의 성장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식물도 DNA를 만들려면 질소가 필요하다. 흙 속에 있는 이런 박테리아에는 대기 중에 있는 질소 기체를 흡수해서 고정시켜서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암모니아와 같은 형태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요컨대 질소를 고정하는 박테리아는 식물에 화학적 영양분을 주어 결과적으로 먹이 사슬 상 모든 동물 을 풍요롭게 하는 작은 용해성 비료'인 셈이다.
박테리아는 육지와 바다의 서식지를 넘어 대기 높은 곳에서도 확인되었다. 미국항공우주국의 허리케인 연구자들과 여행한 과학자들은 33,000피트 상공에서 1세제곱미터의 공기를 채집하여 5,100여 종을 확인했다. 우리 행성은 말 그대로 박테리아 거품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서야 이런 자그마한 존재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막 알아내기 시작했다. 구름을 만들고 비 를 내리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과학자도 있고, 대기 높 은 곳에서 영양분을 재활용하는 일을 한다는 과학자도 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구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는 하찮기는커녕 지 구의 생명이 살아가는 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박테리아가 제공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 에 오랫동안 무지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순전히 박테리아 덕분이다.
- 종의 크기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종과 서식지가 서로 세심하게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물이다. 유구한 세월을 두고 보면 난장이 에서 거인으로 크기가 바뀌는 것은 환경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음 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지난 5억 년의 세월 동안 동물의 몸집은 커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해양 포유류의 경우 이런 현상이 두드러져서 몸 크기의 중간 값이 이 기간에 150배나 늘었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거대한 변화를 목격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많은 동물들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음을 알아냈다. 전 세계에서 어류, 조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할 것 없이 모든 범주의 종들이 점차 작아지고 있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추정되는 것은 열이다. 예컨대 이탈리아 알프스 지방에 사는 동물들은 1980년 대 이후로 기온이 3~4도나 오른 것을 경험했다. 해발 1,000미터 고지에도 무더위가 밀어닥쳐 최고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랐다. 혹독한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알프스 산양은 이제 한낮에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다. 그 결과로 불과 10년 사이에 새로 태어난 산양들은 몸집이 25퍼센트 더 작은 난장이가 되었다. 물속 사정도 마찬가지다. 수온이 치솟으면서 물속 에 함유된 산소의 양이 줄어들었다. 600종의 어류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대대적인 크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2050년까지 어류들의 크기가 4분의 1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크기가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훨씬 큰 문제를 예고하는 것일 수 도 있다. 바로 개체수의 붕괴다. 40년간 이루어진 상업적 고래잡이 자료를 살펴보던 연구자들은 향유고래의 개체수가 무너지기 전에 크기가 확연히(4~5미터까지)줄어들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생 물학자들에게 크기가 줄어든다는 것은 해당 종이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조기 경보인 셈이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다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 식량으로 키우는 돼지와 소 같은 가축 종은 역사상 유례를 찾 기 어려울 만큼 급속하게 크게 자라고 있다. 1930년대 이후로 칠 면조는 몸집이 두 배 이상 커졌고, 1950년대 이후로 식용 닭은 무 려 네 배나 커졌다. 변화의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캐나다 연구자 들은 개량하지 않은 닭 품종을 계속해서 키우면서 현대판 프랑켄슈타인과 비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표준 품종'은 살아 있는 타임캡슐로 지금도 계속해서 번식을 이어가고 있다. 연구자들은 2005년산 '로스 308' 같은 상업적으로 엄선된 종들과 더 오래 된 유전적 계통을 비교했다. 똑같은 먹이를 주고 똑같은 나이에 측정한 결과, 1957년 품종은 905그램, 1978년 품종은 1,808그램 이 나간 반면, 2005년 품종은 4,202그램이었다. 어마어마한 차이 였다. 1950년대 닭과 비교하여 현대의 닭 품종은 가슴이 80퍼센트 더 컸고 전체 크기는 400퍼센트나 늘어났으니 말이다.
- 바위처럼 딱딱한 물리적 대상도 마찬가지다. 바위에 단단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거품처럼 부글거리는 원자들 과 깜빡거리는 아원자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이 텅 빈 공간이다. 새뮤얼 존슨이 그날 돌을 걷어찼을 때 지각했던 것은 돌의 외피에 있는 음전하 전자와 그의 신발 외피를 구성하는 음전하 전자가 서로를 밀어내는 압력의 감각이었다. 견고한 접촉은 없었다. 그저 그의 뇌가 압력을 감각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발가락 신경에서 신호가 척수를 통해 뇌로 올라오면서 존슨은 자신이 돌을 찼다고 지각하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도 조지 버클리를 효과적 으로 반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조차 현실 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하지 못했다. 1955년 그가 쓴 편지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지각의 행위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진짜 세계를 추정하는 것이 물리학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강조는 원문].” 
우리는 현실이 관찰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실 히 말할 수는 없지만, 물리적 세계가 우리 눈으로 지각하는 것보 다 훨씬 더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일례로 우리는 보통 우리의 몸이 외재적 세계와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생각하지만, 현대 과학은 '저기 바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러분의 몸이 끝나고 세계가 시작하는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일상에서 우리의 눈과 발가락은 물질 속이 단단히 들어차 있다고 믿도록 만들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초등학교에서 우리는 원자가 대부분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배운다. 예를 들어 수소 원자핵을 골프공 크기로 확대하면, 전자가 도는 전자껍질 은 1킬로미터 외곽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중성미자가 얼마나 작은지 이해하려면 원자의 크기를 훨씬 거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거의 태양계만 한 크기로 부풀려야 한다. 그와 같은 척도에서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골프공이 대략 중성미자의 크기다. 이렇듯 중성미자는 원자의 크기에 비하면 정말로 미미하다.
- 이런 원자들 가운데 일부는 빅뱅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실제로, 여러분 몸 안에 있는 수소 원자의 98퍼센트는 우주의 탄생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주위의 분자들 역시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마시는 물이 신선하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과학자들은 물이 태양보다 오래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니 여러분이 다음에 물을 마신다면 그것이 한때는 구름이었고 빙산이었고 파도였음을, 해저 협곡을 따라 굽이쳤음을 생각하자. 여러분의 몸속에 들어오기 전에 그것은 평균 3,000년을 바다 속에 있었고, 비로 내리기 전에 하늘에서 일 주일 정도 머물렀다. 빙하에 갇혀 보낸 세월은 그보다 더 오래여 서 수천 년에서 수십 만 년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빙하 가 녹으면서 물은 보름가량 개울과 강을 떠다니다가 바다로 흘러 갔다. 이런 순환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45억 년 동안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재활용되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탄소의 대략 3분의 2는 우리가 먹는 식물과 식물이 내쉬는 이산화탄소에 서 나오며, 나머지 3분의 1은 수억 년 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던 석유와 가스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런 화석 연료를 태 우면 대기 중에 탄소 원자가 방출되는데, 이것은 5억 년에서 6억년 전에 존재했던 첫 수생 동물의 몸을, 4억 7,500만 년 전에 살 았던 첫 육생 식물의 몸을, 3억 5,000만 년에서 4억 년 전에 살았던 최초의 파충류·곤충류·양서류의 몸을, 2억 3,000만 년에서 6,500만 년 전 거인으로 군림했던 공룡의 몸을 이루었던 바로 그 원자다. 그러니까 좁은 의미로 보자면 우리는 공룡이 원자로 부활 한 존재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몸은 매초 수백만 개의 새로운 세포를 만들 어 내며 계속해서 새로 교체하고 있지만, 이런 세포들을 만드는 원자 재료는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다. 아주 자그마한 레고 조각처럼 여러분의 몸을 구성하는 데 사용된 원자들은 이전에도 수없이 많이 사용되었던 것이고, 현재 여러분의 몸속에 있는 원자 들은 앞으로도 수없이 많이 다시 사용될 것이다.
직관적으로 우리 모두는 삶이 순환하는 것임을, “재에서 재로, 먼지에서 먼지로 돌아가는 것임을 안다.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것은 부패가 일어나는 죽음이다. 과학자들은 이제 이런 부활의 과 정이 전개되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셰필드 할람 대학에서 질량 분석법을 가르치는 맬컴 클렌치는 유기체가 죽고 나서 원자 가 여기를 떠나 새로운 생명의 몸속으로 통합되는 모습을 최초로 추적한 사람이 되었다.
- 삶과 죽음은 순환을 이룬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다. 알래스카의 통가스 우림 지역에서 우리는 비슷한 과정을 본다. 그러나 여기서 과학자들이 찾는 것은 나무에 들어 있는 연어다. 일반적으로 우리 는 동물이 식물을 먹는다고 상상하지만, 이 경우에는 나무들이 동 물의 유해를 먹고 자란다.
매년 수억 마리의 연어가 산란을 하러 강과 개울로 돌아와 삶을 마치고 그곳에서 부패한다. 이는 숲을 살찌우는 화학적 영양소가 된다. 생물학자 앤 포스트에 따르면 산란하는 연어에는 평균적으 로 질소 130그램과 인 20그램이 포함되며, 단백질과 지방의 형태 로 2만 킬로줄(KJ)이 넘는 에너지가 들어 있다. 이를 토대로 계산 해 보면 연어가 산란하러 와서 죽는 250미터 길이의 개울에 한 달만에 80킬로그램이 넘는 질소와 11킬로그램의 인이 유입된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통가스는 '연어 숲'이라고 불린다. 개울 옆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추적한 과학자들은 나무에 포함된 질소의 4분의 1에서 4분의 3이 회귀하는 연어에서 온 것임을 확인했다. 이것은 나무들의 성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 강둑에 서식 하는 시트카 가문비나무는 몸통 지름이 50센티미터까지 자라는 데 대략 80년이 걸린다. 연어가 돌아오지 않는 비슷한 내륙 지역 의 경우, 똑같은 크기가 되려면 평균적으로 훨씬 더 긴 300년이 걸린다.
- 시트카 가문비나무의 나이테에도 연어가 돌아온 흔적이 남아 있다. 연어 회귀가 활발한 시절에는 나무 변재에 바다에서 온 질 소-15가 대량으로 나타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질소-15는 육지 환경에서는 대단히 드물지만 바다의 먹이 사슬에는 흔하다. 나무 에 들어 있는 질소-15의 출처는 한 곳뿐이다. 바로 산란하러 돌아 오는 물고기다. 연어 산란의 역사는 말 그대로 숲의 도서관에 고 스란히 기록되고 있다.
인간도 면제가 아니다. 죽음과 삶의 순환 과정을 똑같이 겪는다. 불편한 생각일 수 있겠지만, 땅속에 묻힌 인간의 시신 역시 토양 을 기름지게 하며, 연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화학적 표식을 남긴 다. 죽고 난 다음 물기가 빠진 인간의 시신은 킬로그램당 평균적 으로 질소 32그램, 인 10그램, 칼륨 4그램, 마그네슘 1그램을 묘지 의 토양에 내놓는다. 매장을 하면 처음에는 근처의 초목이 희생되지만 결국에는 균형이 회복되어 부패하는 우리의 몸이 생태계에 자양분이 된다. 죽어 가는 별들이 지구에 생명을 주었듯이 우몸에서 흩어진 원자 유해들은 새로운 몸에서 재조직된다. 또 다시 생명의 구성 요소가 되는 것이다.
- 그러니까 우리는 엑스선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고 안 보이고는 엑스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보는 방식의 문제다. 어떤 동물은 우리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 범위로 빛을 감지한다. 특히 자외선과 적외선을 감지하는 동물이 많다. 비단뱀, 보아뱀, 살무사에는 파장이 700나 노미터에서 1밀리미터 사이인 적외선을 감지하게 해주는 피트 기 관'이라고 하는 특별한 기관이 눈과 콧구멍 사이에 있다. 그래서 눈을 가린 상태에서도 먹잇감을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다. 피트 기관은 방사열을 감지하여 개체가 내는 온도를 읽고 이것을 이용 하여 뇌에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살무사는 어두 운 곳에서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쥐를 볼 수 있다다'고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로 상대적이다. 슈퍼마켓에서 할로겐 조명을 받아 신선하게 보이는 참치는 실은 몇 주나 몇 달 전에 잡혀 냉동되고 해동되기를 두어 번 거친 다음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왔을 가능성이 크다. 선홍빛 참치 살은 시간이 지나면 입맛을 떨 어뜨리는 갈색으로 시들해지므로 수송 중에 변색되는 것을 막으 려고 일산화탄소를 뿌리는 경우가 많다. 그 자체는 인체에 무해하 지만, 상한 생선을 신선한 것처럼 위장할 수 있으므로 건강에 악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울러 자신이 산 고기가 한 달 전에 잡혔는지, 갓 잡힌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 일산화탄소는 양식 연어를 더 맛있어 보이게 하지는 않는다. 자연산 연어의 경우 크릴새우와 미세 조류 같은 야생의 음식을 먹으 므로 분홍빛이 돈다. 양식 연어는 콩과 옥수수 위주의 사료를 먹 인다. 그래서 살이 분홍색이 아니라 회색이다. 하지만 회색 연어 를 누가 사겠는가? 판매상들도 이를 알기 때문에 양식업자들은 새머팬SalmoFan'이라고 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에 쓰는 페인트 색 상표와 비슷한 것을 보고 적절한 먹이를 줘서 분홍색 연어를 키울 수 있다. 1989년 로열 DSM이 내놓은 제품으로 “인간의 눈으로 지각되는 연어 살의 색소 정도를 시각적으로 판단하고 비교하기 위한 업계 표준”이다. 이런 과정은 '색깔 마감' 이라고 부른다. 여러분 은 여러분이 키우는 연어의 색깔을 은은한 분홍색에서 강한 붉은 기가 도는 주황색에 이르기까지 열다섯 가지 다른 색상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오늘날 전 세계 시장에서 거래되는 연어의 70퍼센트는 양식 연어이며, 이들 모두는 석유 화학 물질로 만든 합성 카로티노이드인 칸타잔틴과 아스타잔틴을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착색한 것이다.
- 달걀의 경우 같은 회사에서 '요크판YolkFan’을 판매한다. 이름이 시사하듯이 노른자 색깔을 열여섯 가지 색상 중에서 고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시아 소비자들은 살짝 옅은 노른자를 선호하는 반 면,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서는 짙은 주황색 노른자를 선호한다. 다 양한 지리적 선호도를 충족시키고자 완벽한 '황금빛 색상'을 원하 는 양계업자들은 모이에 붉은색 카로필과 노란색 카로필을 추가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른자 색깔이 얼마나 진한지 보 면 목초지에서 키운 닭의 달걀인지, 공장식 농장에서 키운 닭의 달걀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첨가물을 넣으면 얼마든 지 속일 수 있다. 색깔만으로는 더 이상 건강한 달걀을 보장할 수 없다. 색깔은 그저 또 하나의 마케팅 요소일 뿐이다.
- 오늘날 가금류는 더 이상 항생제에 담그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다른 용액에 담근다. 바로 염소 용액이다. 불쾌하게 들리겠지만 염소로 소독한 닭고기는 안전한 식품이다. 염소 농도를 20ppm에서 50ppm 사이로 유지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캄필로박터균과 살모넬라균을 죽여 도축 후에 병원균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본질적으 로 염소는 화학적 맹점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그냥 무시 하지는 못했을 무언가를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는 염소로 소독한 닭고기 판매를 금지하 는데, 그 이유가 건강 상 위험보다는 위생 체계와 관계가 있다. 미국에서는 가금류에 대한 복지가 훨씬 미미해서 더 많은 개체들을 양계장에 밀어 넣고 키운다. 그 결과 병든 닭들이 많고 분변과 질병이 더 만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염소 소독은 닭고기가 시장으로 가기 전에 박테리아를 제거하는 안전장치다. 하지만 영국과 유럽 연합에서는 다르다. 일단 닭을 키우는 데 요구되는 공간, 빛, 환기 의 최소 허용량이 미국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높다. 미국은 닭 한마리당 확보해야 할 최소 공간이 465제곱센티미터이지만 영국은 그 두 배다. 어느 쪽이든 닭에게는 충분한 공간이 아니다. 2.7킬로그램까지 자라는 육계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말하는 바는, 먹는 것에 관한 한 우리의 눈은 우리를 속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 음식과 관련하여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여기에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의 뇌는 우리를 기분 좋게하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주는 정보를 차단한다.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거릿 헤퍼넌은 의도적 눈감기 Willful Blindness』에서 이렇게 썼다. “알지 못하는 것은 괜찮다. 모르는 것은 쉽다. 아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그게 현실이다. 최악은 대단히 나쁜 일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아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 오늘날 지구에는 가축으로 키우는 돼지가 10억 마리가 넘고 암소는 15억 마리에 이르며, 유엔 식량농업기구 통계에 따르면 매 년 660억 마리의 닭이 도축된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편집자 조지 머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척추동물은 인간이거 나 아니면 농장 동물이라는 뜻”이라고 이를 정리했다. 말, 양, 염소, 그리고 애완동물을 포함시키면 지구 생물량의 65퍼센트가 가축이 고, 32퍼센트가 인간이며,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기껏해야 3퍼센트만을 차지한다. 현재 75억 명에 육박하는 세계 인구는 매년 1.2퍼센트씩 늘어나는 중이다. 가축의 증가율은 그보다 두 배 높은 2.4퍼센트다. 인 구가 세기 중반에 100억 명에 이르면 우리는 1억 2,000만 톤의 인 간을 추가로 먹여 살려야 할 뿐만 아니라, 4억 만 톤의 농장 동물까지도 추가로 부양해야 한다. 2050년이면 가축이 먹을 식량을 키 우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 공간만 해도 현재 농경지의 4분의 3에서 경작 가능한 모든 땅의 절반까지 늘어나야 한다.
- 페루는 세계 최대의 어분 생산국이다. 페루에서 잡히는 물고기의 3분의 1이 노르웨이산 양식 연어를 키우는 데 들어간다. 양식 연어 1킬로그램을 얻으려면 작은 물고기들을 갈아서 만든 사료 2킬로그램에서 5킬로그램이 필요하다. 페루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도 있는 물고기가 해외에 수출품으로 팔려가고 있다.
비슷하게 서아프리카에서도 어분 공장들이 세네갈과 모리타니 의 해안을 중심으로 속속 들어서고 있다. 세네갈에서 저인망 어선 들의 잔악무도한 활약으로 어류의 생물량은 100만 톤에서 40만 톤으로 급감했다. 비록 우리의 시야 너머에 있지만 우리 동네 슈 퍼마켓에 진열된 닭고기는 아프리카의 물고기들을 먹고 자란 것 이다. 한때 남부럽지 않게 풍부한 어장을 끼고 살았던 서아프리카 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바다에서 나는 생선을 먹기가 갈수록 어려 워지고 있다. 그들의 물고기가 우리의 닭을 살찌우기 위해 해외로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 구미베어, 사탕, 마시멜로, 젤리 같은 디저트에도 도축장의 부산물이 들어 있다. 핵심 성분인 젤라틴은 도축하고 남은 동물의 껍 질, 뼈, 뿔, 연결조직을 석회수에 석 달가량 담가서 그 안에 든 콜 라겐을 추출하여 만든다. 이를 끓여서 젤이나 가루로 만들어 틀 로 찍어내는 거의 모든 디저트에 사용한다. 그러나 젤라틴의 접착 력은 비단 식품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알약 캡슐에서 종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에 활용된다. 사진용 필름도 젤라틴으로 만든다. 플라스틱 재질에 입히는 '필름'이 바로 젤라틴이다. 빛에 반응하는 할로겐화은 입자를 젤라틴 수용액에 현탁한 것이다. 
- 점잖은 문명사회에 사는 우리는 짐승 수준의 야만성을 넘어섰다고 믿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살상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식량 생산의 공포를 못 본 척 외면했을 뿐이다. 영국의 저술가 조지 몽비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자손들이 혐오스럽게 여길 우리 시대의 광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고기나 알, 젖을 얻으려고 동물들을 대규모로 가둬둔 것이 틀림없이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동물 애호가라고 여기며 개와 고양이에게 친절을 베풀면서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수십억 마리의 다른 동물들에게는 잔혹한 박탈을 가한다. 추악한 위선이다. 미래 세대는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보지 못했는지 알고는 경악할 것이다."
- 사부아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프랑스 알프스 지방이다. 겨울이면 스키장과 아늑한 마을로, 여름이면 수목이 울창한 고봉들로 널리 알려진 이곳은 보포르 치즈로도 유명하다. 치즈 만드는 과정에 서 나오는 주요 부산물로 크림과 유청이 있다. 크림으로는 버터와 리코타 치즈를 만들고, 유청은 다른 성분들을 걷어 내고 건조시 켜서 셰이크와 에너지 음료에 들어가는 유청 단백질 보충제를 만 든다. 그러나 유청을 만들고 남은 액체는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 라 마을의 전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알베르빌 마을에서는 주민 1,500명이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치즈에서 얻는다.
비밀은 고세균archaea 이라고 하는 미생물에 있다. 산소가 들어 있지 않은 혐기성 소화조에 남은 유청액을 붓고 고세균을 추가하면, 그 안에서 나흘 동안 당을 먹고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트림으로 토해 낸다. 이런 바이오 가스를 정제하여 천연가스처럼 태우면 물을 거의 끓는 온도인 90도까지 가열할 수 있다. 여기에서 나오 는 증기로 터빈을 돌리고, 터빈의 회전축에 연결된 자석이 돌아가 면서 그 안에 빼곡하게 감긴 전선 코일도 재빠르게 돌아간다. 자 석은 전선을 이루고 있는 원자에서 전자가 떨어져나가게 한다. 물 리적으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이런 자기력이다.
치즈가 충분하지 않다면 석탄이나 석유를 태워서 나오는 증기 로 터빈을 돌려도 된다. 혹은 우라늄-235의 방사성 붕괴를 이용하 여 물을 끓여도 된다(혹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운동 에너지를 이용할 수도 있다. 앞서 보았듯이 영국에서 주전자 물을 일제히 끓일 때 전기를 만드는 방법이다). 아무튼 기본적인 원리는 똑같다. 우리는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 우리는 우리가 지하에서 뽑아 내는 연료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에 저장된 전보다 다섯 배 많은 탄소가 들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자연적인 탄소 순환에서 탄소가 대기에 머무는 기간은 3년 이다. 식물에서는 평균적으로 5년을 머문다. 토양에서는 30년을, 바다에서는 300년을 머물며, 1억 5,000만 년마다 지구 화학적 순 환을 거친다. 그러나 우리는 지하 깊은 곳에 있는 탄소를 인위적 으로 대기 중에 내보냄으로써 이런 자연의 순환을 대단히 근본적 스로 교란시키고 있다. 오늘날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는 산업 적면 이건 기대보다 45퍼센트 더 많다. 이렇게 높은 이산화탄소 도는 만 년 긴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 우리에게 초능력을 안겨 주는 에너지는 쓰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거대한 역설이 있다. 국가들은 가 탄화스소를 소으할지 결정하려고 전쟁을 벌일 것이고, 그 다음에는 누가 이산화탄소를 소유하지 않을지 결정하려고 다시 모일 것이다.
하기만 우리가 태우는 화석 연료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열이 축적 되었는지 확실하게 보여 주는 방법이 있다. 기후학자 제임스 한센 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전례 없는 추세는 히로시마 핵폭탄 40만 개를 매일 터뜨리는 것과 맞먹는다."
- 오물 수거인이 등장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자기 똥을 직접 치워 야 했다. 바로 눈앞에서 김이 나고 파리가 들끓고 지독한 악취를 풍겼으므로 피할 방법이 없었다. 「세서미 스트리트」로 우리에게 익숙한 브루클린의 현관 앞 층층대는 단순히 네덜란드에서 건너 온 건축 양식이 아니라 19세기에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현관 입구까지 계단을 놓은 것은 당시 뉴욕 사람들이 자기 집 창문에서 거리로 쓰레기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도 높 이 쌓여서 - 겨울에는 눈과 말의 배설물(매일 1,000톤의 똥과 22만 7,000리터의 오줌이 나왔다)과 뒤섞여 1미터까지 쌓였다 - 현관문이 쓰레기에 파묻히지 않으려면 층층대가 있어야 했다.
19세기에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개와 쥐, 바퀴벌레도 도움이 되었지만, 으뜸가는 거리 청소부는 돼지 였다. 미국의 양돈장은 1만 마리 넘게 수용하도록 거대하게 지어 졌다. 우리의 배설물이 그들의 만찬이었다. 돼지 75마리가 매일 평 균적으로 1톤의 배설물을 먹어 치웠다. 당시 뉴욕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돼지가 등장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 니다. 그림을 그린 유럽인에게는 도시에 돼지가 있는 것이 진기했 겠지만, 뉴욕 사람들에게는 돼지가 거리를 멋대로 돌아다니는 데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840년대에 이르면 수천 마리의 돼지들이 월 스트리트 인근을 돌아다녔다. 오늘날 이 지역은 은행가들과 고액 투자자들로 유명 하지만, 월 스트리트라는 이름은 원래 돼지들이 거리와 지역 주민 들의 정원에 피해를 주지 못하게 세웠던 3.5미터 높이의 담장에서 유래됐다.
- 플라스틱이 화석 연료로 만들고 화석 연료는 한때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면,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왜 생분해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그 이유는 대기 중 질소 분자의 결합을 끊기 가 너무도 어려운 이유와 같다. 플라스틱을 제조할 때는 탄소 분 자를 촉매제와 함께 가열하는데, 그것은 분자들을 떼놓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리게 하여 극도로 단단한 결합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렇게 결합이 만들어지고 나면 플라스틱은 화학적으로 불활성이 된다. 유기물을 분해하도록 진화한 미생물들은 이런 식의 탄소 결합을 자연에서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쳤으면서도 이를 소화시키는 대사 경로를 마련하지 못했다.
- 시간의 독재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일본 특유의 현상도 당연히 아니다. 시간은 수천 년간 우리의 일상에 체계를 부여해 왔다. 이 에 대한 불만은 2,000년 전에도 있었다. 기원전 224년 로마 극작 가 플라우투스가 쓴 희곡에 보면 해시계에 저주를 퍼붓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신이시여, 시간을 구분하는 법을 맨 처음 알아낸 사람을 벌 하소서. 
아울러 나의 나날들을 비참하게 쪼개 작은 조각들로 나눈 
해시계를 이곳에 설치한 사람도 벌하소서!! 
어렸을 때는 나의 배가 해시계였소.
어떤 시계보다 확실하고 듬직하고 정확했지. 
저녁 먹을 때가 되면 배 시계가 때가 되었다고 알려줬소. 
그러나 이제는 배가 고파도 해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설 수가 없소. 
게다가 마을 곳곳에 이런 망할 해시계가 어찌나 많은지요.
어제의 해시계 역할을 오늘날에는 디지털시계가 한다. 우리는 선조들이 살았던 과거가 혹독했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식량 마련 을 위해 성인 수렵 채집인이 일한 시간은 평균적으로 하루 세 시 간에서 다섯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 남짓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질적으로는 빈곤했을 수 있지만 시간적으로 넉넉했다.
- 파급 효과는 전체 식물과 동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생물 계절학phenology'이라고 하는 과학 분야가 있다. 다양한 종들 사이에서 생물학적 주기가 기후와 계절과 관련하여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구한다. 많은 종들은 먹이 활동, 이주, 번식 등의 시기가 서로 세 심하게 맞물려 있다. 이런 종들 간에 탈동조화desynchronization 가 나 타나고 있다.
애꽃벌miner bee과 거미난초early spider-orchid의 관계가 대표적인 예다. 거미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거미난초는 실은 벌, 특히 암컷 벌과 닮은 모양의 꽃을 피운다. 1848년부터 식물학자들은 거 미난초의 개화 시기를 기록했는데 이는 벌의 번식 주기와 일치한다. 암컷 벌과 유사한 호르몬을 분비하여 수컷을 유인하여 수정하 는 전략이다. 하지만 기온이 오르면서 이런 번식 주기가 어긋나게 되었다.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거미난초는 6일 앞서 꽃을 피운다. 기온의 변화는 벌에게는 더 급격한 영향을 미쳐 수컷은 9일, 암컷은 15일 앞서 모습을 보인다. 그 결과 수컷은 더 이상 꽃과 '짝 짓기'를 하지 않고 암컷과 교미하는 것을 선호한다. 벌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난초에게는 그렇지 않다. 수정을 거의 전적으로 벌에게 의지해온 난초는 결국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가 되었다.
- 대륙을 이동하는 철새들에게도 꽃이 피고 곤충이 등장하는 시기가 바뀌면서 이런 불일치가 일어나고 있다. 북아메리카 조류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일부 철새 - 예컨대 유리멧새, 아메리카휘 파람새, 회색머리노랑딱새, 푸른죽지솔새, 검은안경솔새 - 가 봄이 시작되고 한참 뒤에야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옛말도 있지만, 15일이나 늦게 도착하면 식물의 개화에 번식 주기를 맞추는 애벌레와 곤충들은 이미 떠나고 난 뒤여서 오랜 시간을 날아온 새들은 굶주리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새들이 태양에 맞춰 이주하기 때문이다. 해가 일찍 뜨기 시작하면 이동해야 할 시간이라는 의미가 된 다. 그러나 나무와 풀들은 '생물학적 봄'을 빛이 아니라 기온 변화 에 맞춘다. 곤충들은 나무들이 천연 방충제를 분비하기 전에 일제 히 나와서 어린잎들을 갉아먹는다. 그러므로 중앙아메리카와 남 아메리카에서 날아온 새들이 매년 차려지는 만찬을 즐기려고 도착할 즈음이면 근본적인 불일치가 연쇄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 1969년 7월 24일, 세관원 어니스트 무라이는 하와이의 통관항 인 호놀룰루에서 세 사람의 특별한 도착을 처리했다. 여행객들은 8일 동안 해외에 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딱히 이례적인 일이 아니 었다. 이례적인 것은 그들의 출발지였다. 그들이 타고 온 비행기 는 아폴로 11호였고, 세관 신고서의 출발지를 적는 공간에는 그저 '달'이라고 말끔하게 타이핑되어 있었다.  우주 비행사들이 세관을 통과하여 귀환한다는 생각은 거의 행위 예술처럼 보인다.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는 달로 떠날 때는 당연히 비자나 여권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지구로 귀환하는 순간에는 입국 도장을 찍을 서류가 필요했다. 오늘날 국 제 우주 정거장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우주 여행객들은 하루에 열 여섯 차례 지구 주위를 자유롭게 돌지만, 일단 그들이 땅에 내려 서면 미국항공우주국은 그들의 여권을 챙겨야 한다. 그래야 다시 지구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 유목민들은 사막, 스텝, 북극, 툰드라 같은 냉혹한 불모의 땅에 주로 적응하고 살았으므로 인구가 얼마 되지 않았고 민첩했다. 그 들은 계절에 따라 가축들을 데리고 장소를 옮겨 다니며 초목을 채 집하고 야생 동물들을 사냥했다. 하지만 땅이 비옥한 곳에서는 부족들이 정착하여 영구적인 거처로 삼기 시작했다. 1만 년 전에 농업이 등강하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많은 잉여 식량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정착지를 개발할 여력이 생겼고, 결국 더 많은 식량은 더 많은 사람들을 의미했다. 공간이 귀해지면 충돌이 일어났다. 그리 고 정착민들이 더 이상 외부로 확장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유형의 집단 체제가 생겨났다. 우리는 위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계층이 등장한 것이다.
계층 덕분에 사회가 복잡해질 수 있었고 더 많은 집단들을 조직 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뉴 사이언티스트』지에 기고한 글에서 데버라 매켄지는 국가의 진화를 살펴보면서 이렇게 말했 다. “더 많은 계층의 사회는 더 많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뿐 아니라 규모의 경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부양했다. 관개, 식량 저장, 문서 기록, 사람들을 통합시키는 종교 같은 기술적, 사회적 혁신이 가능했다. 도시와 왕국, 제국이 등장했다.” 그러나 중요하게도 “이것은 민족 국가가 아니었다. 도시나 종교가 정복되면 그 주민들의 〈민족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제국 속으로 통합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제국은 수천 년 전부터 다문화적 성격이었고 그것은 결코 바 뀌지 않았다.
초창기 도시 국가와 제국의 진짜 골칫거리는 다른 도시 국가와 제국이 아니라 정착하지 않은 사람들, 자신의 에너지를 농사에 다 쏟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사람들, 유목민이었다.
정착민의 관점에서 보자면 유목민은 자신들의 경계, 공간 구분에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대체로 농부들보다 신체적으로 훨씬 건강하고 힘이 셌다. 일부는 말을 타고 활 을 쏘며 사냥을 했는데 그들은 자연의 전사로 여겨졌다. 그러니 농부들로서는 유목민을 두려워할 이유가 충분했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성서 시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두 집단 간의 피비린내 나는 갈등으로 얼룩져 있다. 유목민에 대한 정형화된 관념들이 많지만, 그들은 과연 포식자였을까, 아니면 먹잇감이었을까?  유목민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하나는 그들이 농경 사회를 갈취한 침입자였다는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팽창주의 농경 사회에 맞서 자신들의 전통적 방식을 지키려 했을 뿐이라는 것이 다. 사실은 둘 다 맞다. 그것은 여러분이 누구를 상대로 말하는지 에 달려 있다.
- 유럽 연합의 마지막 남은 토착민인 사미족은 순록을 키우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간다. 아직도 그들은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에 존재하는 민족 국가와 싸워야 한다. 한 사미족의 말이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정부는 사미족의 연어 낚시를 불법으로 만들려고 하면서, 우리의 고향 땅에 오두막을 지은 부유한 사람들에게 새로은 고기잡이 권리를 넘겨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권리는 누가 갖는 것이 맞을까? 수천 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지만 땅을 소유 하지는 않은 사람들일까, 아니면 땅과 실질적인 연이 닿지는 않겠지만 사유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일까?
- 오늘날에 부동산은 공간을 사고 팔고 거래하는 사업이다. 그러 나 땅이 '우리의 것일 수 있다는 생각 역시 측정, 국경, 민족 국가 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발명품이다. 여러분은 부동산 목록을 뒤적 이면서 이런 발상이 고작 몇 백 년 전에 만들어진 것임을 잊기 쉽 다. 잡지 『더 랜드」의 편집자 사이먼 페얼리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이 일정 구역의 땅에 대해 모든 권리를 소유하고 다른 모든 사람은 여기서 배제된다는 생각'은 대다수 부족민들이나 중세 소작농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왕과 영주는 땅의 소 유주이기는 했지만 소작농들도 이른바 온갖 종류의 용익권用益權’ 을 누릴 수 있어서 계절에 따라 이리저리 터를 옮겨가며 가축을 기르고, 나무나 토탄을 캐고, 물을 길거나 농작물을 키우는 것이 가능했다.”
이런 땅은 공유지'였다. 여기서 마을 사람들과 소작농들은 농경 지와 목초지, 숲과 들을 공동으로 썼다. 땅이 다소간 세분되더라도 (예컨대 집 옆에 작은 정원을 둔다거나 가축들을 어떤 목초지에 정기적으로 풀어 놓는다거나 하는 것) 이런 땅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소유'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용과 관습이 부동산 소유 증서와 측정보다 훨씬 중요했다.
땅을 사용하는 대가로 소작농은 영주와 지주에게 충성과 함께 소출의 일부를 바쳤다. 그러나 지주 입장에서는 항상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소작농들이 가족을 먹여 살릴 식량을 충분히 수확하고 나면 게을러 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 지주는 잡지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일꾼이 자신과 그 가족이 경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땅을 맡게 되면... 더 이상 그 에게서 계속되는 노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배가 부르면 (논리적이게도) 느긋하게 발을 뻗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주에게 이런 행동은 게으름으로 보였다. 시간을 다룬 지난 장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공간도 추상적인 것과 사고 파는 물품이 되자마자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즉 부 자들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혐오했고 가난한 자들은 필요 이상 으로 일하는 것을 혐오했다. 그러나 땅에서 나오는 이익은 일꾼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았다. 지주들이 공유지 체계를 바꾸게 된 핵심적인 동기는 새로운 형식의 이윤에서 나왔다. 잉글랜드가 점차 유명해지고 있던 그것, 바로 질 좋은 양모 였다.
- 슈퍼 갑부들은 옛날 왕과 영주들이 그랬듯이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국토의 거의 절반을 고작 0.06퍼센트의 인구가 소유하고 있다. 사이먼 페얼리가 말했듯이, 그러는 동 안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주택과 빨랫줄 널 공간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땅뙈기를 사는 데 들어간 빚을 갚느라 노동 시간의 절반을 보낸다. 도심지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서 사는 지 생각해 보면 불균형은 너무도 명백하다. 2018년 영국의 통계를 보면 216,000채의 집이 여섯 달 이상 비어 있었던 반면, 임시 거처 에서 지내거나 집 없이 떠돌아다닌 사람은 78,000가구에 이르렀 다.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상황이 훨씬 심각해졌다. 집 없는 사람 한 명당 빈집이 다섯 채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동족 이 여유 공간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몰아내는 유일한 종일 것이다.
- 데이터는 우리가 사회를 나누고 조사하는 밑바탕이다. 『시민 신원 확인ldentifying Citizens』의 저자 데이비드 라이언은 확실하게 말 한다. 우리는 왜 사람들을 데이터로 바꿀까? 그것은 “신원 확인이 감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신원 확인이 되면 시스템은 사람들 을 몇몇 집단으로 나눠서 분석하고 분류하고,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에 따라 보상하거나 차별을 가할 수 있다.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흄은 1741년에 유명한 말을 했다. “세상에서 무엇보다 놀랍게 보이는 일은... 다수가 소수에 의해 너무도 쉽게 지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놀랍다. 우리는 지시를 순순히 받아들이는데 우리의 삶이 우리가 좀처럼 알아 차리지 못하게 이미 지시에 의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매일 아침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차에 올라 출근한다. 시간 이 우리의 마음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더 이상 여기에 의문 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따를 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북 위 49도 미국-캐나다 국경선, 일명 '메디신 라인Medicine Line' 앞에 미국 군대가 멈춰 서는 것을 처음 본 원주민들은 틀림없이 당혹스 러웠을 것이다. 그들 눈에는 미국인들이 마술적인 힘 때문에 걸음 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 술의 효과라기보다는 마술적 사고의 효과였다. 오늘날 우리는 국 경선의 중요성을 깊이 새기고 있으므로 이런 가상의 선을 지킨다. 유발 노아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하듯이 “사람들은 집단적 인 상상의 산물을 믿으면 기꺼이 그와 같이 행동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 체제는 더 이상 그저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피노키오가 그랬듯이 만들어진 산물이 현실이 되고 있다.
과거에 하루하루 나아가고 명령하고 통제하는 것이 패권과 믿 음의 묵인으로 이루어졌다면, 오늘날 시계와 국경선이 세상의 차 원을 어떻게 분할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집단적으로 믿는 것은 우 리 삶의 좌표가 되는 격자로 표명된다. 이것은 도처에 있지만 우 리에게 숨겨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 악명 높은 체제'다. 여기서 우 리가 측정하는 시간과 공간은 데이터와 우리의 디지털 도플갱어가 계속적인 감시에 놓이면서 현실 세계로 들어온다. 우리는 격자에 놓인 점이 되었고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 이런 가상의 세계에서 우리 모두는 추적되고 있다. 그러나 격자에서 빠진 요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우리의 살과 피다. 우리의 신체가 진정으로 체제 에 통합되려면 우리도 역시 데이터가 되어야 한다. 생체 인식은 우리를 얽어매는 디지털 고삐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진짜 물리적 신체는 진짜 물리적 세계에서 감시되고 통제된다.
- 부자들과 빈자들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은 사람들이 거래를 위해 사용하는 교환 체제, 그러니까 돈에 얼마나 많이 접근할 수 있는가의 차이가 만들어 낸 것이다. 거시적 수준에서 볼 때 전 세 계 경제는 돈이 계속적으로 돌고 교환되면서 유지되지만, 영국 입법자들의 84퍼센트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어디 서 오는지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돈으로 여기는 지폐 와 동전 같은 물리적 통화는 대략 5조 달러로 전 세계에 유통되는 모든 돈의 1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CIA 월드 팩트북CIA World Factbook」에 따르면 전 세계 총 통화량, 즉 광의의 통화broad money' 는 80조 달러 정도 된다. 그렇다면 이 나머지 돈들은 모두 어디서 올까? 어린 시절 부모가 말하는 것처럼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 돈은 컴퓨터에서 자란다. 뱅크 오브 잉글랜드에서 발간한 『현대 경제에서 돈의 창조Money Creation in the Modern Economy」라는 백서에 보면 돈은 빚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은행이 대출을 해주면 자동적으로 대출자의 계좌에 그 금액만큼 예금이 생성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방식은 오류라고 말한다. “오늘날 돈이 만들어지는 현실은 몇몇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다르다. 가계에서 저금한 돈을 은행이 예금으로 받아서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대출 은행이 예금을 만들어낸다 [강조는 원저자].” 빚은 우리의 현대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하는 데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빚은 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다른 수준에서는 우리 모두 돈이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고 있다. 돈이 실제적인 것'이 아님을 안다. 종잇조각이든 동전이든 디지털 이체든, 돈은 가장 본질적으로는 차용 증서다. 즉 약속이다. 하지만 전 세계 빚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해마다 늘고 있다. 세계는 지금 247조 달러나 되는 대체로 공허한 약속을 깔고 앉아 있으며, 부채 비율은 지난 10년간 경악스럽게도 40퍼센트나 늘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은 파산하지 않으려고 자신들의 미래를 저당 잡히고 말았다. 1980년부터 개발도상국들은 해마다. 대략 2,000억 달러의 부채 이자를 갚고 있다. 제이슨 히켈에 따르면 가난한 나라들의 호주머니에서 부자 나라들로 흘러간 이자 금액만 해도 지금까지 총 4.2조 달러에 달한다. 부자 나라들 역시 엄청난 빚을 떠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은 대체 로 외국 정부가 아니라 은행과 개인 투자자들에게 진 빚이다. 그리고 부유한 나라들에게 대출되는 돈은 이자율이 대단히 낮은 정부 발행 국채 형식이다. 애니 로그가 『하우 위 겟 투 네스트』지에 기고한 기사에서 설명하듯이 “이런 [부유한] 나라들에게 부과되 는 이율은 용도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다. 그러나 상환 위험은 전혀 없다.”
돈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옛 속담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증 기 같은 돈의 속성과 조작된 게임의 규칙으로 인해 부자들의 계 좌로 부가 빼돌려지고, 가난한 자들의 빚 부담은 늘고 있다. 어쩌 면 현대 경제에서 우리가 어떻게 삶을 영위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 련하여 다른 속담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텔레비전 시리즈 미스 터 로」에서 이당 기업가로 나오는 인물이 한 말은 어떨까. “누군 가에게 총을 주면 은행을 털겠지만, 누군가에게 은행을 주면 세상 전부를 털 수 있다.”
- 우리는 더 나은 것, 더 많은 것의 소유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영혼을 짓밟고 있다. 우리가 곧 원하지 않아서 내다 버리게 될 것들을 추구하느라 말이다. 최악은 이렇게 물건에 의존하는 습성이 힘든 시기에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불안할 때 견고한 뭔가에 매달리는 것은 대응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소유물은 우리가 세상 을 통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소유물은 우리에게 힘 을 준다. 우리는 벌거벗은 원숭이, 허약한 종이므로 완력이 아니라 뇌에 의지하여 세상을 지배했다. 그리고 물건으로 지배했다. 우리 는 물건의 주인이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 강하고, 빠르고, 힘 있고, 더 잘 방어되고, 더 효율적이고, 더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 그들은 어째서 동조할까? 뇌 연구는 독립적인 사고에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fMRI로 재연한 애쉬 연구에서 동조하기를 거부한 피험자들에게 만 다른 피험자들과 다르게 활성화된 뇌 부위가 있었다. 싸우거 나 도주하는 반응과 관련되는 편도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의 믿음을 고수하는 데는 인지적 비용이 드는 셈이다. 합의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갈등을 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같은 사회적 동물에게 그것은 불안과 고통을 야기한다. 결국, 다수에 반기를 드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 우리가 구성한 세상이 우리에게 너무도 생생하고 소중하게 된 나머지 우리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의 산물임을 잊었다. 이런 집단적 기억 상실은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하고 사회 화하는 데 쏟는 기나긴 시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 다. 우리는 아이들이 애쉬가 수행한 연구의 피험자들처럼 자라고 순응하기를 기대한다. 실제로는 거기에 없는 현실을 보기를 기대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환상 속에 산다'는 말은 역설적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환상 속에 살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아이들은 자신의 세상이 만들어진 것임을 말할 수 있지만, 어른들은 그럴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허구의 세상은 이제 너무 막강해져서 그보다 먼저 존재했 던 자연의 세상을 인질로 붙잡아 두고 있다. 유발 노아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과거에 이중의 현실에서 살았다. "한편으로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현실이 있고, 다른 한편으 로는 신, 국가, 기업이라는 상상의 현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상의 현실이 갈수록 강력해졌고, 그래서 오늘날에는 강, 나무, 사자의 생존 자체가 신, 국가, 기업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선처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자연에 대한 우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이런 가상의 만들어진 실재들을 통해서다. 결국 신, 국가, 기업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정당화한다. 그것 들이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 전체를 소유한다는 믿음의 근거다.
자신이 공기를 소유하고 물을 소유하고 땅을 소유한다고 믿는 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공간을 사고파는 권리, 시간을 사고파는 권리를 부여했다. 실제로 이것은 전 세계 경제의 근본 토대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차원을 우리가 소유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위태롭게도 인간은 지구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을 다 소유한다. 우리 인간만이 자신의 재량에 따라 다른 종들을 사고팔 권리가 있다는 믿음하에 행동한다. 우리에게는 생명 자체가 상품이다. 
- 인류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은 시야의 한계를 밀어붙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말 그대로 선지자이다. 뉴턴에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중력이었다. 레이우엔훅에게 그것은 보이지 않는 극미 동물이었다. 코페르니 쿠스와 갈릴레오에게 그것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보이지 않 는 움직임이었다. 쿤도 언급했다시피 과학자들은 자주 “지목할 수 없는 전자와 같은 이론적 실재를 가지고 작업한다. 그들은 보이 지 않는 세계에서 자주 작업한다.
결과적으로 과학이 보는 것과 비전문가가 이해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현대의 과학 기술 도구들, 주사 전자현미경, 질량분석기, fMRI를 사용하여 나머지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단히 집중화된 전문 기술에 이런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과학자와 일반인 사이에 상당한 지식격차가 발생한다. 퓨 리서치 센터와 미국과학진흥회(AAAS)의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대다수인 79퍼센트가 과학자들과 과학 지식이 귀중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아울러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에 기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2013년 조사를 보면 일반 대중의 33퍼센트만이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라고 믿었다. 77퍼센트가 심각한 문제라고 답한 AAAS의 과학자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 훌륭한 아이디어가 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사람들 은 자기 믿음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죽고 한 세기가 지나서도 그의 대담한 생각으로 개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뉴턴의 획기적인 증거들이 그가 쓴 『자연 철학의 수학 적 원리』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음에도 그의 생각이 널리 인 정되기까지 반세기 넘게 걸렸다.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도 이와 비슷한 섭섭함을 드러냈다. “새로운 과학적 진실은 반대자들을 설득시켜 그들이 마침내 받아들이도록 하는 식으로 승리하지 않는다. 반대자들이 결국에는 다 죽고 새로운 진실에 익 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는 식으로 전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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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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