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이제까지의 금융 시장과 비교했을 때 여러 부분에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례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2008년 세계 적인 금융위기를 겪은 지 13년이 지난 후, 새로운 10년을 맞이하 는 현재 시장 상황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수백 년 동안 금리가 이렇게 낮은 적이 없었다. 권위 있는 한 인물에 따르면 5,000년전부터 지금까지를 봤을 때, 현재 금리가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 각국 정부에서는 과거 어느 시기보다 많은 돈을 빌렸고 부채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을 예로 들면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보다 더 많은 부채를 지고 있다.
* 세계 금융위기가 끝난 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여태 가능하리라고 생각조차 한 적 없는 수준으로 돈을 찍어내고 통화 부양책을 확대해왔다.
* 느린 경제 성장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충격으로 인해 현재 각국 정부에서는 평시 상황에서는 유례없는 재정 확대fiscal expansion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 이제껏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으며, 위험이 닥쳐올 것이 뻔 한 상황인데도 현재의 무모한 통화 및 재정 부양책이 엘리트 집단의 지지를 받고 있다.
* 채권자, 즉 대부분의 은행은 믿을 만한 채무자 대신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위험이 큰 채무자에게 더 위험한 조건으로 대출을 실행할 의지를 보여왔다.
* 2020년 10월, 명목 금리가 마이너스인 '투자등급 investmentgrade 회사채 거래액은 회사채 전체 거래액의 4분의 1이 넘는 18조 달러에 달했고,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로 거래된 국가 부채는 31조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국채의 실질 수익률은 거의 2년 내내 마이너스였다.
* 현재 주식시장 밸류에이션은 극단적인 수준으로, 역대 시장 평균과 비교한 표준편찻값이 +2 표준편차에서 +3 표준편차 사이에 위치하는데, 이는 1929년과 2000년 주식시장이 붕괴하기 전 관측되었던 재정 과잉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여러 유형의 투자 자산, 금융 기관, 개인의 행동에서 투기 심리와 자산 과잉의 사례를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비트코인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다른 투자 자산들 역시 마찬가지 상태다.
- 한편 세계 경제에는 새로운 위험을 불러올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1990년대 이후 물가를 떨어뜨리는 동력으로 작용했던 추세들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면서 지난 30년간 유지된 완만한 물가 인상은 조만간 과거의 일이 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해왔던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는 경제 발전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방해 요인 몇 가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 세계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다. 세계 주요 경제 시장 대부분에서 부양비(비생산연령인구를 생산연령인구로 나눈 값)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는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를 부양해야 할 생산 인구가 점점 준다는 뜻이다.
*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와 탄화수소를 기반으로 한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꼭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중기적으로는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 포퓰리즘의 대두와 여러 정치적 요인 때문에 이민을 통한 노동력의 이동이 줄어들었고, 노동 시장은 전처럼 세계적으로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 EU의 확장, 중국의 국제 경제 시스템 통합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국경을 넘는 노동 인구가 점차줄고 있다.
* 중국과 아시아 시장 전반에서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대거 이동했고, 이에 따라 생산성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현상은 전보다 훨씬 적게 일어날 것이다.
* 부품 또는 원자재를 하나의 공급원에 의존하던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대체 공급업체를 마련하지 않은 채 공급망을 확장하는 전략에 심각한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 자산 가격이 중앙은행의 조처를 바탕으로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은 여전히 금융 시장에 계속 남아있다. 2013년 시장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을 때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국회에서 양적 완화의 점진적인 축소 또는 테이퍼링을 도입하려는 의사를 밝혔는데, 시장의 이러한 믿음을 잘 드러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벤 버냉키의 발표 이후 이어진 것은 이른바 '긴축 발작 taper tantrum이었다. 시장은 연준의 지지 철회 의사에 적대적이고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시장에서 급격한 반응을 보이자 중앙은행은 방향을 틀어 다시 자산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8년이 지난 지금도 양적 완화는 계속 실행 중이며, 중앙은행의 지원 규모는 훨씬 높은 수준으로 늘어났다. 세계 금융위기 당시 연준이 지고 있던 부채는 1조 달러였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이 숫자는 두 차례나 2배씩 증가했다. 정부 간섭의 규모와 시기를 [그림 8]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투자자들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던 실질 수익률은 1%에서 2% 사이였다. 향후 인플레이션 수준을 대부분의 국가에서 목표로 하는 2% 수준으로 가정하면 명목 수익률이 3~4% 수준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의 낮은 채권 수익률과 이
수익률의 차이가 인플레이션일까 버블일까?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IMF에서 말했듯 세상이 끝나지는 않겠지만 자산 가격은 대대적 으로 조정될 것이다. 하지만 향후 인플레이션이 더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리라고 예측한다면 어떨까? 명목 수익률이 오르고 투자자들도 더 높은 실질 수익률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전의 비슷한 상황에서는 늘 이런 양상을 보였다.
이 말은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어떤 수준으로 유지되는 최소한 1~2% 범위로 실질 수익률이 더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이 2%를 초과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해 보면 수익률은 최소 3% 이상이어야 하며 향후 인플레이션 수준을 어느 정도로 예상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은 3~6%가 되어야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채권 가격이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는 쉽게 계산할 수 있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1.45%에서 3%로 오른다면 다른 조건이 같다고 해도 가격은 13%나 하락한다. 같은 수익률을 30년 만기 장기 국채에 적용하면 가격은 무려 30% 이상 하락한다.
- 더 나아가 수익률이 6%까지 오르면 자본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더 커진다. 동시에 이런 상황은 실질 수익률이 플러스 영역으로 복귀했을 때 발생하므로, 지수 연동 채권 같은 실물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도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실제로는 수익률 곡선에 따라 가격이 책정된 모든 자산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채, 부동산, 예술 작품이나 클래식 자동 차의 가격이다. 이들 자산 가격은 일반 금리의 영향을 받는다. 모든 자산의 가격은 수익률 곡선이 높게 상승할수록 하락할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지금의 2배인 3% 수준으로 상승하리라는 가정이 터무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치가 약간만 상승한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렇게 되면 지출 정책에 자금을 조달하려는 각국 정부 는 물론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투자자들은 모두 참담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특히 정책적으로 쉬운 대출이 용인되던 환경에서 점점 더 큰 위 험을 감수해온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자연적으로 정해지는 시장 금리보다 금리가 낮게 유지되고 돈을 빌리기 쉬운 상황이 계속되면 투자자들은 더 많은 빚으로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데 박차를 가하게 된다. 금융위기의 씨앗이 대부분 이렇게 심어졌다.
- 양적 완화 정책은 금융 시장을 안정시키고 투자자들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결국 위험에 대한 내성을 정상적이고 건전한 수준보다 훨씬 높이고 말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위험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데이터를 통해 확실히 증명된다. 수익률이 기록적으로 낮고, EBITDA 자금 조달 비 율은 세계 금융위기 이전보다 높으며 약식대출채권은 전체 레버리지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채와 사모펀드의 밸류에이션은 환경 변화에 느리게 반응할 수 있다. 앞서 본 것처럼 밸류에이션 지표가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속적인 침체가 계속되고 나서야 채무시장의 문제가 완전 히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은행의 상황은 확실히 세계 금융위기 전보다 낫지만, 우리는 은행뿐만 아니라 비은행 채무시장에서 도 레버리지나 불량 대출이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안다. 앞서 이야기했듯 주식시장은 이미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이 평 균으로부터 3표준편차 높은 범위에 거의 도달했다. 어떤 주식들은 평균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몇십 년 동안 계속 성장을 거듭해야 할만큼 주가 승수(기업의 주가와 평가지표를 비율로 나타낸 수 옮긴이)가 높아지기도 했다.
- 수익률이 억제되고 위험이 늘어났다는 것만으로 증거가 부족하다면 투자 시장 전체에서도 비슷한 거품을 볼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약식대출채권과 같은 고위험 채권이 점점 더 많이 발행되고 있으며 주요 경제 시장의 정부 채권 수익률이 낮다는 데 주목했다.
이러한 수익률의 파급 효과는 부채 발행주체들에게까지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까지 투자자들의 주의를 필요로 하던 채권의 발행인들이다.
- 이 시대를 중앙은행이 표현한 대로 정의하면, 다른 시대에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거나 책임감이 없다고 여겨졌을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세계 금융위기 동안 영국 재무성 사무차관이었던 맥퍼슨 경 Lord Macpherson은 2001년 국민 소득의 27% 수준이었던 영국의 국가 부채가 2023년에는 110%까지 치솟을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만약 현재의 미미한 금리가 2%까지만 올라도 영국이 짊 어져야 할 부담은 연간 500억에 달한다. 영국의 연간 교육비 지출 과 같은 액수가 부채를 상환하는 데 낭비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쯤에서 시장이 이러한 정책을 오랫동안 받아들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금융 시장은 알려진 정보를 통해 가격을 책정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답은 시장이 책정하는 가격이 언제나 완벽하 지 않다는 데 있다. 시장에서 버블이 발생하고 터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자산 관리 회사들이 활발히 운영되는 것을 보면 시장이 언제나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신 시장에서는 알려진 논리 조건들에 따라 자산 가격을 책정한다. 논리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가정이 틀렸다면 그에 따른 결과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징조가 보일 때, 사람들은 '새로운 패러다임' 또는 존 템플턴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자 가장 무시무시한 두 단어짜리 말로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 바로 '이번에는 다르다'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작년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라는 문장도 있다. 일어나리라고 예상했던 사건이 정해진 기간 내에 일 어나지 않았으므로 일어날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의미다. 논리나 가정이 처음부터 틀렸다면 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과는 예측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되고 만다.
- 자산시장을 부정적으로 내다보는 그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내일 당장 시장이 급격히 하락하지는 않는다. 다만, 너무 늦기 전에 밸류에이션을 현실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기반을 다시 다져야 한다는 경고를 전할 뿐이다. 시장이 한순간에 급격히 하락할지, 오랜 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하락할지는 알 수 없다. 앞의 가정으로 돌아가서, 밸류에이션이 장기적인 추세에서 동떨 어질수록 탄력성은 커진다. 가까운 미래에는 탄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자유 시장에서 가격은 시장 참여자들이 믿는 자산의 가치에 따라 결정되고 그들에게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는 법칙은 없기 때문이다.
- 나는 우리가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은 주식의 가치가 한껏 과대평가되었던 2007년(세 계 금융위기)*, 1999~2000년(닷컴 버블)과 충격적일 정도로 닮아있 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느슨한 통화정책 아래 자산이 과잉인 상태에서 지나치게 장밋빛 미래를 꿈꿨었다. 나는 주식시장을 대대적으로 조정하면서 발생할 위험에 대해 경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채권에 대한 결론은 좀 더 명확하게 내릴 수 있다. 정부 채권 수익률은 자산 가격을 평가하는 자산 가격 분석에서 무위험’ 할인율로 사용된다. 정부에 의해 보증되는 투자니만큼 합리적인 분석이라 할 수 있지만, 정부가 아니라 시장에 의해 가격이 결정될 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정부가 주체가 될 경우, 안타깝지만 정부 채권은 기존의 인식처럼 무위험 투자 수단이 아닌 수익률은 없고 위험만 있는 투자 수단으로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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