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아 고갈 이론을 처음 발표한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로이 바우마이스터 Roy Baumeister 교수는 자아 고갈 이론의 네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자기통제력은 무한정 존재하지 않는 한정된 에너지 자원이다.
(2) 자기통제력을 사용하면 이 자원은 고갈된다.
(3) 자기통제를 위한 에너지는 다시 보충된다. 다만 보충되는 속도는 고갈되는 속도보다 느리다. 그래서 종종 바닥을 드러낸다.
(4) 자기통제 능력은 근육과 비슷해서 반복적으로 훈련하면 능력치를높일 수 있다.
- 물건을 파는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자아 고갈 현상을 집요하게 노린다. 같은 광고를 반복해서 보여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광고를 보고도 그 제품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도 존재 한다. 하지만 기업의 광고는 그런 고객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제품을 사고는 싶은데, 돈이 부족해서 참고 있는 예비 고객의 마음을 뒤흔들기 위해 광고를 계속한다. 자아 고갈 이론에 따르면, 참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인내를 거듭하던 사람들은 결국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유혹을 참지 못한 채 지갑을 열어 '지름신'을 맞이한다. 2002년 노벨경제 학상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 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옷을 입고 싶은 유혹에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가질 만한 돈이 없는 경우, 사람은 그 유혹을 계속해서 참아야 한다. 하지만 인내의 상 황이 수없이 반복되면, 유혹을 피하려는 결정을 하느라 뇌가 많은 수고를 한다. 이런 수고가 반복되면 의지력은 점점 소진된다. 이런 상태를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 “인간의 뇌는 완벽하게 끝낸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 다. 그러나 끝내지 못한 일은 계속해서 뇌리에 남아 잘 기억할 수 있다.”
자이가르닉에 따르면, 웨이터가 손님의 복잡한 주문을 잘 기 억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웨이터의 임무는 음식을 주문받은 뒤 이를 주방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즉 주문받는 일이 웨이터로서의 임무 완수가 아니라는 의미다. 인간은 끝내지 못한 일'을 더 잘 기억한다. 웨이터는 주문을 주방에 전달해야 그 일을 마치는 셈이므로, 일을 마치기 전까지 주 문을 거뜬히 암기한다. 하지만 주문이 주방에 전달되면 상황은 완 전히 달라진다. 이제는 웨이터의 임무가 끝났기 때문에 뇌는 그 '끝낸 일'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 불과 30분 전까지 완벽히 기억한 주문을 웨이터가 완전히 지워 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미완성 효과를 이용해 마케팅하라!
자이가르닉의 이 논문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심리학에 서는 자이가르닉의 이론을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혹은 '미완성 효과'라고 불렀다. 미완성 효과의 요지는 이렇다. 사람 의 뇌는 일을 끝마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일을 마치지 못하면 뇌는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그 일을 보다 잘 기억 한다. 반면에 일을 마치면 뇌는 긴장 상태를 잃어버리면서 그 일을 곧잘 잊어버린다.
- 인도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부들은 1년에 한 번 사탕수수를 수확한 시기에만 돈을 번다. 즉 작물이 팔린 직후에 농부들은 꽤 많은 현금을 보유한다. 그러나 돈은 곧 사라지고 다음 해 수확기가 다가오면 농부들은 대부분 빈곤한 상태가 된다. 멀레이너선과 샤퍼는 수확을 앞둔 한 달 전과 수확을 마친 한 달 뒤 농부들의 아이큐를 측정했다. 그 결과 수확 한 달 전, 즉 가장 빈곤했을 때 농부들의 아이큐는 수확 한 달 뒤, 즉 가장 풍요웠을 때의 아이큐보다 9~10%나 낮았다. 사람은 가난이라는 결핍 상황에 빠질수록 '먹고살아야 해!’, '내일 뭘 먹지?',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남지?'와 같은 생존 문제 에만 집중한다. 뇌가 완벽히 생존을 위협하는 터널 안에 갇힌 것 이다. 이러니 뇌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리 없다. 아이큐에서 반드시 필요한 수리 능력이나 인지 능력은 거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일수록 투표율이 낮다. 먹고살기 바빠 죽 겠는데 투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과연 있을까. 가난할수록 생존 분야에서 효율은 높아지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창의적 재능을 잊어버린다. 결국 빈곤은 사회 전체적으로 심각한 비효율을 유발하는 셈이다. '결핍이 효율을 낳는다는 멀레이너선과 샤퍼의 연구는 사람 을 더 결핍 상황으로 몰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사람은 결핍 상태에 놓일수록 그 일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인간이 발휘할 수 있 는 다양한 분야의 창의성을 상실한다. 작가가 마감 시간을 앞두고 건강을 잃는 것도 바로 그런 문제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왜 중간고사 때 벼락치기를 하는 게 효율 적인지 그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되었어!'라고 깨닫지 말길 바란다. 결핍의 경제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그런 것이 아니다. 벼락치기가 효율적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의 수많은 창의성이 사 라지고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점이다. 인류의 진화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본다. 미국 럿거스대학 인류학 과 라이어널 타이거 Lionel Tiger 교수는 “인간이 진화할 수 있었던 이 유는 낙관적인 환상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생각해 보자.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잘될 것'으로 믿는 낙관주 의가 없다면 3월에 씨를 뿌려 10월에 곡물을 수확하는 일이 어떻 게 가능할까? 7개월 동안 홍수도 닥칠 것이고 가뭄도 닥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래도 내가 뿌린 씨는 잘 자라서 곡식을 만들어 낼 거야.'라고 낙관한다. 그러니까 그 무모한 일을 한다. 분노한 들소 떼 사이에 뛰어들어 사냥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일은 너무나 위험해서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꿋꿋이 사냥을 나간다. 우 리는 오늘 사냥을 성공해서 맛있는 쇠고기를 잔뜩 먹을 거야.'라는 낙관적 생각에, 분노한 들소 떼 사이로 기꺼이 몸을 던지는 것이다. 낙관적 생각이 무모한 도전을 가능케 하고, 그 무모한 도전이 다시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 낸다. 그런데 낙관 편향이 반드시 사람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뇌가 낙관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안 좋은 일도 있다. 가장중요한 오류는 인간이 오만해진다는 사실이다.
- 스톡데일은 달랐다. 물론 그도 동료들처럼 나는 석방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미래를 낙관했다. 하지만 스톡데일은 '시간이 지나면 석방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품지 않았다.그는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절대로 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에 차분히 대응했다. 스톡데일은 수용소에서 미군들을 조직해 시위를 벌였다. 일부 동료는 적군의 회유에 넘어갔지만, 스톡데일은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버텼다. 고문당할 때도 '이번 고문은 더 고통스러울 것 이다. 잘 참아야 한다.'라며 스스로 다짐해 나갔다. 부하 포로들의 고립감을 덜어 주기 위해 자기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는 정교한 내부 통신체계를 만들기도 했다. 스톡데일은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응하면서, 당장 원하는 결과 가 나오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았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며 닥칠 고난을 의연하게 대비했다.
- 낙관은 인류를 진화시키고 도전을 감행하게 한다. 그래서 낙관 에는 분명히 좋은 면이 있다. 하지만 낙관이 과해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로 흐르면, 이는 오히려 사람을 파멸시킨다. 잔뜩 기대하며 희망을 품었다가 결과가 나쁘면 사람은 절망에 빠져서 자포자기의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정말로 좋은 낙관주의는 무조건 잘될 거야.'라는 자기 중심적인 희망이 아니라, 현실이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더 나은 미 래를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낙관주의다. 이런 낙관주의는 자기가 원하는 세상이 오늘 오지 않아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엄혹한 현실에 맞서 싸우기 위해 또 준비한다.
- UC버클리대 경영대학원 캐머런 앤더스Cameron Anderson 교수가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연구 팀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학생들을 모아 네 명씩 한 팀으로 묶었다. 그리고 매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팀별로 풀도록 지시했다. 미국 사람들은 팀별 과제를 받으면 먼저 리더를 뽑아 리더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앤더슨 교수는 몰래카메라 로 팀원들이 어떤 사람을 리더로 뽑는지 관찰했다. 네 명의 팀원중에는 수학 성적이 매우 뛰어난 사람도 있었고 인화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관찰 결과 리더가 된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넘 치는 사람이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제였으니 수학 실력이 뛰어 난 사람을 리더로 뽑아야 마땅한데, 사람들은 “나만 믿어. 내 말대 로 하면 풀 수 있어!”라며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게 나서는 사람을 리더로 뽑았다. 실로 비합리적인 신뢰지만, 사람들은 목소리만 커도 그 사람을 쉽게 믿는다.
-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로더릭 크레이머 Roderick Kramer 교수의 실험은 더 적나라하다. 크레이머 교수는 그룹을 만든 뒤 그들에게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뽑으라고 지시했다. 그러고 나서 그 과정을 살펴보니, 신뢰를 얻는 사람은 절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등을 토닥 여 준다거나 악수를 할 때 손을 꼬~옥 잡는 식으로 매너 있는 행동 만 해도 신뢰도가 엄청 높아진다는 것이다. 크레이머 교수는 농담 삼아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 중 하나가 학생들한테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교수로서 학생에 게 신뢰를 얻으려면 그저 수업 시간에 목소리를 차분하게 하면 된 다. 그리고 학생들을 만나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 된다.
- 수직 폭력이란 말 그대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는 폭 력'이다. 그런데 파동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수직 폭력을 극 심하게 당할수록 수평 폭력 심리에 의존한다. 강한 자에게 얻어터지고 나면, 정작 그 일을 당한 민중들은 그 분노를 자기와 같거나 자기보다 더 약한 자를 두들겨 패면서 풀려고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착취를 심하게 당할수록 자신보다 더 못살고 힘없는 이들에 게 폭력을 휘두른다. 샌더스와 트럼프는 각각 파농의 수직 폭력과 수평 폭력을 정 확히 대변하는 존재였다. 샌더스는 “민중이 못사는 이유는 월가 (Wall Street) 금융자본이 우리를 착취했기 때문”이라며 수직 폭력에 대항했다. 국민에게 진실을 이야기한 것이다. 국민의 절반은 그에게 열광했다. 반면에 트럼프는 “우리가 못사는 이유는 멕시코 사람들이 우 리의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힘을 합쳐 멕시코인을 몰아내자!”라고 선동했다.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수평 폭력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절 반이 그에게 열광했다. 트럼프는 이 전략으로 마침내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 트럼프는 왜 미치광이처럼 행동할까?
수평 폭력을 이용해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당선 이후 경제학 게임이론에 등장하는 '치킨 게임'을 발판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줄곧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전략을 고수했다. 그는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인 미국에서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리고 멀쩡히 무역을 잘해 오던 독일과 중국, 일본 등 3개 나라를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국을 상대로도 한미 FTA를 재협상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트럼프는 “유럽의 부자 나라인 독일은 환율을 조작해 미국을 착취했고, 아시아의 부자 나라인 한국은 불평등한 무역협정으로 미국을 착취했다”고 주장했다. 상식적으로 이런 주장이 말이 될리 없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 미국이 한국과 무역협정을 맺었는 데, 그 무역협정이 미국 쪽에 불리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힘의 차이가 수백 배에 이르는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착취를 당했 다”고 주장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그래서 트럼프의 이런 주장은 미친 헛소리처럼 들린다. 하지 만 트럼프는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의 막무가내 행동은 게임이론 에 따르면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즉 트럼프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미치광이인 척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영리한 전술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호혜 평등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이 익을 서로 빼앗아야 하는 경쟁 상대로 본다.
- 상대의 미치광이 전략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미치광이가 될 각오를 하고 함께 충돌을 향해 돌진해야 한다. 그리 고 핸들을 꺾어야 한다면 최후의 순간에 꺾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상대가 먼저 핸들을 꺾을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핸들을 꺾더라도 최소한 상대도 나와 동시에 꺾을 수 있다. 어떤 경우도 내가 먼저 핸들을 자발적으로 꺾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다. 트럼프가 미치광이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치킨 게임에 등장한 이 희대의 전략가에게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강준만 교수의 책 『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해서 통제감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결국 세상사 모든 일 이 순전히 우연한 것은 없고 당사자들에게 책임이 어느 정도는 있 는 걸로 믿는 경향이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행인을 두고 부주의 해서 그랬겠거니 여기고,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그럴 만한 여지를줬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멍청하거나 게을러서 그렇게 되었고, 부자인 사람은 똑똑하거나 부지런해서 그런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통 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세상에는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인간 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해 야 불평등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이완배 씨는 왜 소말리아에 사는 바레 씨보다 잘살까? 이완배 씨가 바레 씨보다 훨씬 똑똑하거나, 이완배 씨가 바레 씨보다 훨씬 부지런하기 때문 일까? 그렇지 않다.
- 심리학에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범죄의 전염 성을 밝혀낸 이론인데,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필립 짐바르도 Philip G. Zimbardo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가 실험을 진행했다. 짐바르도 교 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차를 한 대 주차하고 트렁크를 열어 두었다. 그는 이 차를 무려 일주일이나 방치했는데,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거다. 누군가 차에 손을 댔다면 그건 범죄다. 이후 짐바르도 교수는 같은 골목에 똑같이 차를 주차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트렁크를 열어 둔 것이 아니라 유리창을 하나 박살 냈다. 일주일 뒤 이 차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사람들은 이 차에서 배터리나 타이어 등 각종 부품을 모조리 훔쳐 가 버렸다. 나중 에 더 훔쳐 갈 것이 없어지자 군중은 차를 부쉈다. 같은 골목에 주차했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바로 범죄 의 전염성 때문이다. 트렁크가 열린 차를 보면 사람들은 주인이 트렁크를 열어 둔 모양이네.'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친다. 하지 만 유리창이 깨진 차를 보면 사람들은 '누군가 유리창을 깨고 뭘 훔쳐 간 모양이네.'라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어 차피 누군가 저 차에서 뭘 훔쳐 갔다면, 나도 좀 훔치면 어때?'라는 유혹이 범죄 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생각으로 첫 번째 절도범이 차에서 내비게이션을 훔친다. 두 번째 절도범은 대담하게 타이어를 빼 간다. 세 번째 절도범 은 아예 자동차 내부 부품을 훔쳐 간다. '남도 훔쳤는데, 나도 좀 훔치면 어때?'라는 심리가 전염병처럼 확산된다. 애리얼리 교수는 여러 실험을 통해서 범죄나 부정부패는 나쁜놈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도덕적인 사람들도 빠질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환경만 조성되면 나약한 인간은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 프랑스 사람은 알제리 국민을 두고 '선천적으로 저열하고 폭력적이며, 이유 없이 살인하고 범죄 성향이 강하다'고 떠들어 댔다. 깜둥이들은 원래 폭력적'이라는 인종차별적 선전이 난무했다. 파농은 이때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1954~1959년 자신이 직접 치료한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악선전에 치열한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알제리 국민이 폭력적인 이유 는 바로 프랑스인이 가하는 수직 폭력 탓이라고 주장했다. 파농은 폭력을 수평 폭력’과 ‘수직 폭력’으로 구분했다. 수직 폭력이란 위에서 가해지는 폭력, 즉 지배자가 행하는 폭력이다. 수 평 폭력은 서민들끼리 휘두르는 폭력, 즉 피지배자끼리 치고받는 폭력이다. 파농에 따르면 서민은 프랑스 제국주의자로부터 받는 수직 폭력 탓에 곤궁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그 곤궁이 서민을 더 폭력적으로 만들어 수평 폭력을 휘두르게 한다. 빈곤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서민들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죽이고 두들겨 패는 방식으로 수직 폭력의 한과 고통을 푼다. 알제리 서민은 원래 썩은 사과가 아니었고, 그들을 둘러싼 사과 상자가 썩었기 때문에 오염됐다는 이야기다.
- 애리얼리는 이스라엘의 한 반도체 공장을 찾아 직원 207명을 3개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이 세 그룹에 각기 다른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첫 번째 그룹에는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30달러(약 3만 6,000원)의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두 번째 그룹에는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피자 한 판을 주겠다”는 내용을 각각 보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에는 엉뚱하게도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직속 상사로부터 격려 메시지를 받게 해주겠다”고 알렸다. 이렇게 한 뒤 다음 날 그는 어떤 그룹의 실적이 가장 좋은지를 살폈다. 애리얼리를 초청한 반도체 공장 측에서는 당연히 첫 번째 그룹의 실적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노동자들은 현금 받 는 것을 가장 좋아하며, 그 보상을 따내기 위해 열심히 일할 수밖 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가장 높은 성과를 올린 쪽 은 피자를 받기로 한 두 번째 그룹이었다. 이 그룹의 생산성은 평 소보다 6.7%나 향상됐다. 더 놀라운 사실은 2위를 한 그룹이 상사 로부터 칭찬을 받기로 한 세번째 그룹이었다는 점이다. 이 그룹의 생산성 향상률은 6.6%로 피자를 받기로 한 그룹과 거의 차이가 없 었다. 놀랍게도 30달러를 받기로 한 그룹의 생산성 향상률은 4.9%에 그쳐 꼴찌를 기록했다. 결과가 다소 뜻밖이긴 했지만, 이 실험으로 반도체 공장 경영진은 “아무튼 돈이건, 피자건, 칭찬이건 성과에 대해 보상을 늘리 면 성과도 올라간다는 이야기지?”라고 결론을 내리려 했다. 하지 만 애리얼리의 생각은 달랐다. 애리얼리는 같은 실험을 여러 번 반 복한 뒤 또 다른 의외의 결과를 도출했다. 같은 실험을 다음 날 다시 해 보니 30달러 또는 피자를 받은 직원들의 생산성이 뚝 떨어졌다. 30달러를 받은 그룹의 생산성은 무려 13.2%나 폭락했고, 피자를 받은 그룹의 생산성도 5.7%나 낮아겼다. 실험을 반복할수록 이 같은 경향은 더 뚜렷해졌다. 결국 5주동안 같은 실험을 반복한 결과 현금 30달러를 받은 그룹의 생산성은 평소보다 되레 6.5%나 하락했다. 피자를 받은 그룹의 생산성도 평소와 비교하면 2.1% 떨어졌다. 유일하게 생산성이 높아진 그룹은 칭찬을 들은 그룹이었다. 이들의 생산성은 평소에 비해 0.64% 향상됐다.
- 애리얼리는 “직원들이 성과급을 받기 위해 애태우는 것보다. 기업은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봉을 기본급 80%, 성과급 20%로 나눈다면 직원 들에게 이 20%는 엄청난 스트레스 요인이에요. 이 20%의 걱정을 덜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라고 지적한다. 애리얼리는 성과급에 대해 이런 충고도 곁들인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성과급을 주겠다”는 제안은 “너는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어!” 라는 질타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제안은 결국 노동자를 무시하고 불신하는 사고를 내포한다.
- 불신은 일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존재다. 누군가로부터 신뢰받는다고 생각할 때 일할 맛이 난다. 즉 사람은 30달러를 받을 때보다, 칭찬을 받을 때 더 열심히 일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애리얼리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또 다른 실험을 시 도했다. 벨기에의 한 대형 제약 회사의 의뢰를 받은 뒤, 이 회사서 일하는 영업 사원들에게 15유로(약 1만 9,000원)씩 더 주고, 그들 이 더 열심히 일하는지 지켜봤다. | 다행히(!) 영업 사원들은 돈을 받고 조금 더 열심히 일하기는 했다. 그런데 얼마나 더 열심히 했나 봤더니, 이들이 추가로 쌓은 실적은 한 사람당 5유로(약 6,300원)에 불과했다. 일은 고작 5유로어치 더 했는데 성과급은 15유로나 지불한 셈이었다. 이번에 애리얼리는 다른 영업 사원들에게 똑같이 15유로씩을 주는 대신 색다른 제안을 했다. “이 돈은 당신을 위해서는 쓸 수 없 어요. 오로지 당신이 좋아하는 동료에게 선물을 사 주는 데에만 쓸쓸 수 있습니다.” 라는 전제를 붙였다. 과연 이런 제안에 영업사원들은 열심히 일했을까? 놀랍게도 이번에는 영업 사원들의 생산성이 무려 1인당 17유 로로 뛰었다. 15유로를 지불하고 17유로를 벌었으니 회사 입장에 서는 분명 성공을 거둔 셈이다.
- 경제학과 신경과학이라는 완전히 달라 보이는 두 학문을 접목 시켜 탄생한 것이 신경경제학이다. 이 분야의 대가(大家)는 미국 클 레어몬트대학원의 폴 잭Paul J.Zak 교수다. 잭 교수는 인간이 돈에 다양한 반응을 보일 때 신경과학적으로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지를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앞서 살펴본 신뢰 게임을 진행한 뒤 참가자들의 피를 뽑아 호르몬의 변화를 살펴봤다. (피를 직접 분석하는 방법때문에 잭 교수는 뱀파이어 경제학자로 불린다!) 신뢰 게임에 따르면, 인간은 의외로 모르는 사람을 굳게 믿는 편이고, 상대방은 그 믿음에 보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실 험 참가자들의 피를 뽑아 분석했더니 놀랍게도 서로를 믿은 참가 가의 피에서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대거 검출됐다.
- 피프 교수는 이외에도 부자와 빈자가 어떤 행동의 차이를 보 이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했다. 피프 교수는 부유층이 대거 모여 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해안가의 횡단보도를 관찰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차량이 횡단보도를 만나면 무조건 정지하는 것이 법이다. 관찰 결과 소형 차량일수록 이 법을 잘 지키는 반면, 최고급 차량일수록 규칙을 무시하고 보행자 앞을 당당히 지나가는 경향이 있었다. 실험에 따르면 부자들은 준법정신도 낮았다. 피프 교수는 '독재자 테스트'라는 유명한 실험도 진행했다. 그 는 이 실험에서 참가자를 일단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A 그룹 참가자에게는 10달러를 줬고, B 그룹 참가자에게는 땡전 한 푼 주지 않았다. 피프 교수는 A 그룹 참가자에게 “자, 보세요. 저쪽 B 그룹 참가자는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각자 받은 10달러를 저쪽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습니다. 얼마를 나누 느냐는 순전히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아, 물론 한 푼도 안 줘도 됩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A 그룹 참가자는 B 그룹 참가자와 일면식 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만날 일이 절대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타 났을까? 이 실험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A 그룹 참가자 가운데 연 소득 이 2,400만 원 이하인 빈곤층은 연 소득 1억 8,0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보다 평균 44%나 많은 돈을 나눠 줬다. 부자가 더 많이 나눌 것 같지만, 그들이 훨씬 구두쇠 노릇을 했다는 이야기다.
- 실험에서 알 수 있듯 대다수의 금수저는 오만하며, 법을 지키 지 않고, 심지어 나눔의 정신도 부족하다.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다 자기보다 못난 사람들이며, 멸시받고 천대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프 교수는 이 실험 결과를 발표할 때 강연 제목을 '돈이 당신을 사악하게 만드나(Does money make you mean?)?'라고 지었다. 금수저가 판치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금수 저의 문제는 단지 그들이 재산을 불공정한 방식으로 차지한다는 대목에서 끝나지 않는다. 금수저는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이용해서 계속 승승장구한다. 결국 그들은 사회 고위층이 된다. 그렇게 금수저가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올라서면 이 나라는 어떤 모습이 될까? 그들은 무례하고, 동정심이 없으며, 가혹하고, 거만하다. 한국 사회는 이런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그 사회가 과연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고, 이웃과 협동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협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 상대가 씌운 프레임에 허우적거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전략인지를 잘 설명해 주는 마케팅 사례가 있다. 1978년 미국 패스트푸드 업계의 선두 주자 맥도날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소문 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맥도날드가 지렁이 고기로 햄버거 패티를 만든다는 소문이었다. 지렁이 햄버거를 먹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맥 도날드의 매출액은 폭락했다. 당황한 맥도날드는 동원 가능한 모 든 홍보 채널을 통해 “햄버거 패티에 결코 지렁이 고기를 쓰지 않는다”는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지렁이 고기를 쓰면 오히려 쇠고기를 쓸 때보다 원가가 더 높아져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는 반론도 덧붙였다. 그리고 모든 맥도날드 매장 앞에는 다음 과 같은 커다란 안내문을 붙였다. "Our hamburger meat does not contain earthworms (우리 햄버거에는 지렁이가 들어 있지 않아요.).” 하지만 이 멍청한 마케팅 전략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 상황을 악화시켰다. 사람들은 “지렁이 패티가 쇠고기 패티보다 더 비싸대.”,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대화를 이어 갔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햄버거와 지렁이를 연상했다.매장 앞에 붙은 안내문 또한 지렁이를 떠올리는 도구 노릇을 할 뿐이었다. 고객들은 안내문을 보고 햄버거에 지렁이가 안 들어있다고? 아 맞다. 맥도날드 햄버거에 지렁이가 들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라고 상기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맥도날드 매출액은 폭락 을 거듭했다. 맥도날드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프레임에 걸려든 것이다. 맥도날드는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연구를 거듭했다. 맥도날드가 찾아낸 해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다른 고급 레스토랑 햄버그스테이크에도 지렁이 고기가 들어 있다'는 헛소문을 내는 것이었다. 만약 헛소문을 냈다면 사람들의 머릿속 에서 맥도날드 지렁이 햄버거는 사라지고, 다른 대형 레스토랑 지렁이 스테이크가 더 강력하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물론 맥도날드가 이 전략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일단 이런 행동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맥도날드가 사용한 실제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맥도날드는 지렁이 햄버거를 설명하는 태도를 멈추고, 새로 개발한 밀크셰이크와 감자튀김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물론 이 전략은 헛소문을 내는 첫 번째 전략보다는 강도가 약했다. 하지만 어쨌든 맥도날드는 이런 홍보 전략을 통해 지렁이 햄버거 라는 '코끼리 이미지'를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지우는 데 성공했다. | 이 사례가 전해 주는 교훈은 하나였다. 특정 프레임에 갇힐 위 험에 처했을 때 제일 훌륭한 전략은 자신만의 언어로 새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가장 바보 같은 전략은 그 프레임이 사용하는 언어로 반복해서 해명하는 행위다.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명해서는 안 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아예 '코끼리'라는 단어를 싹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프레임을 세워야 한다
- 상대가 씌운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승리를 거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첫 번째는 대공황을 극복하고 미국 최초로 4선 대통령에 오른 프랭클린 루스벨트 Franklin Roosevelt의 사례다. 루스벨트는 1936년 재선(再選) 도전 선거에서 큰 곤경에 빠졌다. 거의 모든 언론이 반(反)루스벨트를 선언했고, 자신이 속한 민주당 내부에서도 그를 공격하고 나섰다.
- 그가 펼친 여러 복지 정책이 사회주의 정책과 비슷하다는 것이 루스벨트에 대한 공격의 요지였다. 심지어 연방 대법원조차도 "루스벨트의 뉴딜(New Deal) 정책(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적 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국민의 소득을 높이는 루스벨트의 정책)이 사회주의적 정책이어서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공화당에서 는 아예 ‘루스벨트는 사회주의자'라는 프레임을 들고나왔다. 이때 루스벨트는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며 뉴딜 정책도 사 회주의 정책이 아니라는 해명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사회주의라는 프레임에 걸려든다. 그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모는 프레임에 일절 반응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독점기업이 경제적 특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독점과 수구 세 력들이 변화와 개혁을 막는다'는 프레임을 앞세웠다. 이 강력한 새로운 프레임이 선거 판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자 사회주의 프레임으로 공격한 공화당이 되레 '독점기업의 폐해가 크지 않다'며 해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해명할수록 국민들에게 독 점기업이라는 말은 더 강하게 각인됐다. 이 선거에서 루스벨트는 압승을 거뒀다. 상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선거 판을 옮겨 온 전략이 멋지게 적중한 것이다.
- 프레임을 바꿔 선거를 승리로 이끈 또 다른 사례는 1992년 미 국 대선 때 나타났다. 그 당시 공화당 출신의 현역 대통령인 조지 부시 George H. W. Bush는 전쟁과 범죄에 대한 공포를 퍼뜨려 선거에서 표를 모으려 했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인 빌 클린턴 Bill Clinton은 이런 공포 조장 시도에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클린턴은 미국 대선 역사상 길이 남을 구호로 프레임을 단숨에 바꿔 버렸다.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바보야!)!"가 바로 그것이다.실제로 당시 미국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 의 유권자가 경제난에 신물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클린턴이 “문 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경제를 물고 늘어지 면서 선거 프레임은 삽시간에 뒤집혔다. “바보야!” 한마디는 부시가 그토록 프레임으로 만들기를 원한 전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경제난에 대한 공포를 사람들에게 심어 줬다. 그리고 클린턴은 그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이건 마 케팅이건 레이코프가 프레임 이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 의 핵심은 이것이다.
'상대가 가두려고 하는 프레임에서 싸우지 말라. 이기고 싶다면 자신만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라!’
- 적절한 보복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 '보복'이라는 단어의 끔찍함만 잠시 잊을 수 있다면, 경제학적
으로 보복 전략은 사회를 정의롭고 협동적으로 만드는 데 매우 유용하다. 왜냐하면 '내가 배신하면 반드시 보복을 당하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있어야, 사람은 배신을 멈추고 협동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 문명의 역사를 살펴봐도 분명히 드러난다. 예를 들 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스에 협력한 부역자들을 색출 해 엄중히 죄를 물었다. 지은 죄에 대해 독일 사회가 분명한 보복 을 가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독일은 나치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고,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도 얻었다. 더 이상 독일에 서 나치스 어쩌고 말하면서 다니는 사람들은 사회에 발을 붙일 구석이 없게 되었다. 반면에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같은 전범 국가인 일본은 제대로 된 반성은커녕 제국주의 부역자들을 오히려 전쟁 영웅으 로 취급했다. 죄를 단죄하지 않았기에 일본은 아직도 욱일기의 망 령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전쟁을 꿈꾸는 제국주의자의 후 손이 사회 요직에 앉아 있다. 일본이 독일과 달리 아시아권 여러 국가로부터 지금도 정서적인 견제를 받는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딜레마를 겪었다. 한국은 역사에 죄를 지은 사람들을 단죄하지 못했다. 친일파 청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약 70년 동안 이 문제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친일파를 단죄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자'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살기 위해 친일 좀 한 걸 갖고 뭘 단죄씩이나 해?”라거나, "아니 언제 적 이야기를 또 들먹이고 있어?”라거나, “미래를 위해 화합을 해야지, 왜 자꾸 과거에 매달리는 거야?”라는 식의 물음표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 결과 친일파에 대한 보복적 단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런 보복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우리 사회에는 정의 를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친일파가 해방 이후 버젓이 사회 고위층으로 자리 잡아 기득권이 된 것이다. 심지어 조상이 친일로 모은 재산을 더 많이 물려받겠다며 그 자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 '상대가 죄를 지었어도 미래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용서하자'는 말은, 일견 사랑이 넘쳐 보일지 모르지만 행동경제학적으로는옳은 전략이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의 반복을 멈출 수 있다. 루쉰이 “페어플레이는 이르다”고 단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뒤집어진 마시멜로 테스트의 결론
마시멜로 테스트는 결국 잘 인내하면 성공한다' 혹은 '인내력 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면 성공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지 만 이런 결론은 빈곤을 연구하는 경제학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부당하다. 빈곤과 결핍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하버드대 경제학과 센 딜 멀레이너선 교수에 따르면 인내력은 노력이나 훈련보다 경제 적 풍요나 빈곤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훈련을 못 받아서 인내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일수록 인내심이 약하다는 이야기다. 눈앞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1시간 동안 참으면 10만 원을 준다”고 했을 때, 누가 더 잘 참을까? 당연히 평소 배고픔을 몰랐던 부유층이 더 잘 참는다. 이들은 언제든지 내 돈 내고 음식을 사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며칠 쫄쫄 굶은 빈곤층은 그 인내력을 발휘하기가 훨씬 어렵다. 이성적으로는 1시간 참고 10만 원 받는 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게 마련이다. 또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마시멜로 테스트의 결론처럼 과연 열심히 노력해서 인내심을 기르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이 실험 결과를 뒤집는 새로운 연구가 2018년 6월에 등장했다. 영국의 사회과학 학술지 〈세이지 저널(SAGE journals)》에 실린 뉴욕대와 UC어바인대 심리학과 연구 팀의 공동 연구가 그것이다. 이들은 기존의 마시멜로 테스트가 정확한 결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일단 표본 숫자가 너무 작았고(90여 명) 그 표본 또한 모두 유명 대학교 부설 유치원에 소속된 부유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 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표본 숫자를 900명으로 늘렸고, 표본 대상도 인종, 민족, 부모의 교육 수준 등을 고려 해 골고루 배치했다. 연구 팀은 이들에게 마시멜로 테스트를 실시한 뒤 같은 방식 으로 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성공 여부를 조사했다. 그런데 결과가 놀라웠다. 기존의 마시멜로 테스트와 달리 아이들의 성공 여부는 네 살 때 이들이 보여 준 만족지연 능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 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사회적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 을까? 그 답은 바로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능력이었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이고, 인내고, 만족지연이고 다 필요 없고, 그냥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 이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희 들이 못사는 이유는 인내심이 없고 노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라고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새로운 마시멜로 테스 트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아무리 만족지연 능력을 길러도, 아무리 인내심을 높여도, 아무리 노오오오~~력을 해도, 성공은 결국 금수 저의 몫이다. 유력 일간지 사주 가문의 10살짜리 아이가 보여 준 갑질은 그래서 슬프다. 저 아이가 저런 성격으로 성인이 돼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현실이 우리를 더 슬프게 만든다.
- 므두셀라 증후군은 특히 경영학 마케팅 분야에서 많이 사용된다. 기업들이 물건을 팔 때 복고풍 물건을 집중적으로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빅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나 〈무한도전>에서 시도했던 프로젝트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 수다)〉가 대표적 사례다. 사람들은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경향 이 있어서, 방송사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면 매우 잘 팔린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심리학자들은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 한다.
첫째는 뇌의 특징 때문이다. 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기억 을 저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뇌는 그 기억을 최대한 오랫동안 간직 하려 한다. 그런데 기억해야 하는 대상이 매우 불쾌하다면? 당연 히 그런 기억들을 오래 남겨 두고 싶을 리가 없다. 그래서 뇌는 나 쁜 기억들을 최대한 신속하게 제거하고 좋은 기억만 남겨 둔다. 그래야 그 기억을 행복하게 오래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1988년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긴 했지만 여전히 군인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고, 사회적인 혼란도 계속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지금보 다 전혀 풍요롭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때를 아름다운 추 억으로 간직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그리는 그 무렵의 우리는 매우 따뜻했고 무척 행복했다. 현실과 추억은 이처럼 괴리를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과거의 기억 중 아름다운 추억만 남겨 두려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교수인 리처 드 아이바흐 Richard Eibach 는 사실 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 인데,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다. 예를 들 어 나이 지긋한 분들은 매일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어.” 라고 푸념하는데, 사실 버릇없는 젊은이 타령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 라지지 않는 노인들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그럼 그 말을 하는 노인들은 젊었을 때 예의 바른 청년이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원래 청소년기란 시대를 막론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다. 그분들도 젊었을 때 껌 씹고, 침 뱉고, 욕도 하고 분명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철도 든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일을 겪어도 참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당연히 욕도 덜하게 되고, 욱하는 성질도 많이 사그라든다. 심지어 반사 신경이 무뎌져서 운전도 얌전하게 하게 된다. 이렇게 순화된 성격의 노인이 청년들을 보면 심하게 버릇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래서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어!" 라는 오래된 레퍼토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세상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나쁘게 변했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예전이훨씬 좋았어!'라는 고정관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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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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