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이 균형을 찾아간다는 기존의 패러다임은 잘못되었다. 시장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틀린다. 하지만 시장은 스스로를 바로잡을 수 있고 때로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재귀적 과정을 통해 오류를 진실처럼 보이게끔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시장은 항상 옳게 보인다.
- 사회적 현상에 내재된 불확실성은 재귀성 개념과 진리대응설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 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재귀성은 어떤 사물과 그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는 논리에 사용되어왔다. 나는 이 개념을 활용해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이 맞닥트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양방향의 연관성을 설명하려고 한다. 지식이란 참인 명제를 통해 표현된다. 그리고 명제는 사실과 일치할 경우에만 참이 된다. 이것이 바로 진리대응설에서 말하는 논리다. 명제와 사실이 일치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세상의 일부인 상태에서 명제와 사실의 독립은 결코 성립될 수 없다. 사 람들이 지식에 기반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 다. 사람들은 지식이 결핍된 부분을 경험과 본능, 감정, 그리고 사회적 관습과 오해를 기초로 한 추측으로 채워야 한다. 불확실성을 세상사의 흐름에 개입시키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선입견과 오해인 것이다.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재귀성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았을까. 금융시장에 대해서라면 그 해답을 내놓을 수 있다. 재 귀성으로 인해 경제학자들은 자연과학자들이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방식으로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하나의 과학으로서 경제학의 입지를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귀성이론을 연구에서 배제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 진리대용설_corresportience theory of truth, 사람의 인식은 외부세계의 사물인 대상이 마음에 비춰짐으로써 성립한다는 이론이다. 즉 인간의 믿음과 인식이 참인지 거지인지 판단하는 것은 그 믿 음과 인식에 대응하는 사실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 브렌트포드Brentford에서 수영장 안내원으로 일하면서 런던정경대학의 합격통보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생각했다. 이때 읽었던 책 중 하나가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이었다. 이 책은 나를 충격에 빠뜨릴 만큼 날카로운 통찰로 가득했다. 포퍼는 나치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모두 궁극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궁극적인 진 리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두 가지 이데올 로기는 현실에 대한 편향적이고 왜곡된 해석에 토대를 둘 수밖 에 없고, 현실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억압적인 수단을 동원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포퍼는 사회조직에 관한 다른 원칙을 제시했다. 그 원칙은, 궁극적인 진리란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영역이고, 서로 다른 생 각과 다른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평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포퍼는 이 원칙을 '열린사회The open society' 라는 개념으로 표현 했다. 나치와 소비에트 점령기 동안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나는 열린사회에 내포된 이상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나는 포퍼의 철학을 더 깊이 탐독했다. 포퍼는 최초이자 최 고의 과학철학자다. 그는 과학적인 이론들은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과학적 이론은 반론을 통해 허위 여부를 가려야 하는 가설로 취급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이라는 것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을 때에 한해서 임의의 가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입증과 허위 입증의 비대칭은 풀기 힘들었을 난해한 귀납적 문제에 해답을 제시했다. 사리에 맞는 소견을 아무리 들이댄다 한들 보편타당성을 내세우는 이론을 입증한다는 것이 어디 가능하겠는가. 포퍼는 입증 대신 허위 입증을 채택함으로써 귀납적 논리를 사용할 필요를 없앴다. 나는 이것이 포퍼가 과학철학에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 인지적 기능의 목적은 지식을 생산하는 데 있다. 지식은 사실과 부합하는 명제를 요구한다. 둘 사이의 일치가 성립되려면 명제와 사실은 서로 별개의 범주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식의 추구는 곧 인식과 현실의 분리로 이어진다. 여기서 나 타나는 이원성은 본래 그리스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계 몽주의 시대에 사람들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성을 믿었다. 그들은 현실이 이성과 분리되어 있으며, 독립적인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성이 완전하고 정확한 현실의 모습을 그려줄 것으로 믿었다. 이성을, 저쪽 편에서 발견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현실을 조명해주는, 일종의 탐조등처럼 작동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생각하는 행위자의 결정이 상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 가능성이 사고와 대상의 분리에 방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계몽주의는 재귀성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계몽주의는 조작적 기능이 인지적 기능에 간섭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를 설정했다. 이는 조작적 기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계몽주의는 인식의 유일한 목적을 지식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가정했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이성' 이라고 지칭했던 것, 즉 내가 조작적 기능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무시하고, 이론이성에만 배타적으로 집중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학파에서 분리되었다. 이 때문에 현실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 발생했지만, 당시 시대상에는 어울리는 세계관이었다.
- 내 학창 시절 이후로 경제학자들은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예측의 역할을 완전경쟁이론과 일치시키려고 했고, 결국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나는 이 내용에 대해 연구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한 듯한 포 즈를 취할 수 없다. 다만, 내 이해가 정확하다면 이 이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다른 참여자들도 똑같이 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해 결정을 내린 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참여자들은 실제 최고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이 최고의 이익이라고 인식하는 것에 기초해 행동하며, 이 두 가 지는 반드시 서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는 행동경제학자들의 실험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시장 참여자들은 완전하지 않은 이해를 근거로 행동하며, 그들의 행동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기대와 결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둘 사이 에 차이점이 없다는 가정을 근거로 행동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합리적 기대이론은 전체 시장이 항상 개인투자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런 난제를 극복하려고 한다. 합리적 기대이론에서도 참여자가 어떤 대상을 잘못 이해할 수 있고, 오해가 때때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시장 움직임에 대 해 똑같은 모델을 사용하며,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경험으로부터 배워 결국에는 같은 모델로 모이게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해석으로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연 구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모델을 이용해 연구를 했고, 내 모델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합 리적 기대이론이 터무니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내 연구 성과는 랜덤워크 이론 The theory of random walk 에서 허용되는 균형 이탈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 시장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틀린다. 하지만 시장은 스스로를 바로잡을 수 있고, 때로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재귀적 과정을 통해 오류를 진실처럼 보이게도 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시장은 항상 옳게 보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융시장은 경기둔화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둔화를 유발한다. 참여자들은 불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지 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불완전하고, 편향되고, 잘못된 이해 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며, 따라서 결과물은 기대치에서 빗나 가기 마련이다. 불일치는 참여자들이 행동을 조정할 수 있게 만드는 유용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런 과정에서 매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시장은 이론적 균형을 향해 움직이는 것만큼 균형에서 멀어지며, 초기에 자기 강화를 하다가 결국 자멸하는 과정에 말려들 수도 있다. 거품은 종종 금융위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위기는 금융시장 에 규제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금융시스템이 발전해온 과정이다. 즉 주기적인 위기가 규제의 형성으로 이어진 셈이 다. 금융시장을 하나의 역사적 과정으로 해석하기에 가장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감독 당국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 으면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독 당국이 없으면 금융시장은 분명 붕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일관성 있는 감독을 받으며 움직이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실제 붕 괴는 매우 드문 현상이다. 또 일상적인 상황에서 감독 당국이 규제를 완화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라면 위기상 황에서 기민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다.
- 2007년 봄 뉴센트리파이낸셜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로 파산위기에 몰렸을 때 이른바 진실의 순간이 찾아왔고, 이어 주택 가격이 하락했지만 사람들은 게임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명기가 펼쳐진 것이다. 씨티은행의 최고경영자인 척 프린스Chuck Prince는 이렇게 말했 다. “유동성이라는 음악이 멈추면 결국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는 한 당신은 일어나 리듬을 타며 춤을 춰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춤을 즐기고 있다.” 마침내 분기점은 찾아왔다. 2007년 8월 이후, 한 분야의 시 장에서 다른 시장으로 도미노처럼 퍼져나간 부실로 인해 가히 재난이라 할 만한 가격 폭락이 현실화되었다. 이는 1997년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번졌던 이머징마켓의 위기를 연상케 했다. 급박함 속에서도 주식시장은 2007년 8월부터 10월 사이 급락을 멈추고 상승세를 회복했다. 내 모델로는 예측할 수 없 는 움직임이었다. 모델에서 나타난 바에 의하면, 주식시장이 단시간에 급격하게 붕괴되었다가 더디고 힘겹게 균형을 되찾 아가는 흐름이 펼쳐져야 했다. 모델이 제시했던 예측이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은 것은, 2007년 8월과 2008년 1월 사이 예견된 붕괴를 완벽하게 저지 하지는 못했지만 위기에 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위기의 순간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시장에 개입해 연방기금 금리를 인하했고, 주식시장은 과거에 그랬던 것 처럼 이번에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융위기의 여파로부터 경제를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력을 회복했던 것이다. 하 . 지만 이런 믿음은 위험한 것이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미 시장 개입이라는 카드를 과도하게 꺼내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경제를 보호하지 못했다. 이번 금융위기는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했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 애덤 스미스가 처음 도입하고,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발전시킨 완전경쟁이론이 바로 시장근본주의의 뿌리다. 제2차 세 계대전 후 시장근본주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 밖에 정부 의 개입에 근간을 둔 여러 정치사조가 몰락함에 따라 커다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하지만 시장근본주의는 잘못된 전제를 갖고 발전했다. 정부의 개입에 항상 결함이 있다고 해서 시장이 완벽하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재귀성 이론에서 주장하는 기본적인 내용은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결과물에는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또 금융시장이 반드시 균형을 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도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금융시장은 극단적인 활황과 패닉으로 치닫는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은 자율에 맡겨지는 일이 없다. 시장을 감독하고 통제하는 의무를 가진 금융 당국자들의 손에 맡겨진다. 대공황 이후 줄곧 금융 당국은 국제금융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도록 대처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실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 게도 시장근본주의가 되살아나게 된 주요인이 바로 그들의 훌 륭한 시장 통제였다. 내가 런던정경대학에서 공부하던 1950년대만 해도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던 자유방임 주의는 1980년대에 다시 부활했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자들 은 시장통제력을 잃었고, 그 틈을 타고 슈퍼 버블이 세력을 확장했다
- 재귀성 이론은 성격 면에서 균형 이론과 상이하다. 균형 이론 칼 포퍼의 과학적 방법 모델에 들어맞는 과학적 이론임을 표방한다. 또 자연과학 이론과 유사하게 결정적인 예측과 설명을 제시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일반화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반면 재귀성 이론에서는 이 같은 주장을 하지 않는다. 재귀성 이론이 주장하는 것은 재귀성이 언제 발생하는 사건의 전개에 불확실성 요소를 개입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정적인 예측을 제공하는 이론을 찾는 것은 부적절하다. 나는 재귀성 이론이 기존의 지배적인 패러다임보다 현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해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과거의 패러다임이 수행했던 일을 재귀성 이론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즉 재귀성 이론은 자연과학처럼 일반화를 제공하지 못한다. 사회적 사건은 자연현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재귀성 이론의 기본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회적 사건 속 에는 생각하는 참여자가 존재하며 이들의 편향된 관점과 오해 가 사건의 흐름 속에 불확실성을 개입시킨다. 결과적으로, 사 회적 사건은 자연과학의 보편타당한 법칙을 따르지 않고, 미리 예측하지 못하는 일방향의 경로를 따른다. 하지만 재귀성의 출 현이 참여자의 관점과 사건의 실제 상황 사이에 상호작용을 일 으킨다. 따라서 재귀성 이론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는 기존 의 사건을 보다 확실하게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이는 과학적 이론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른 부분이다.
- 과거에는 신용위기가 발생하면 문제의 근원에 대해 보다 엄격한 규제를 가함으로써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 시절 지배적인 사조가 되었던 시장근본주의의 영향력 아래 국제 금융위기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즉 미국의 은행은 수익을 올리는 데 더 큰 자율을 얻었다. 실제로 대공황 당시 은행에 부과되었던 모든 규제는 점 진적으로 사라졌다. 은행은 자유롭게 지점을 늘릴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영업망을 늘리는 것도 허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수도 있게 되었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경계선은 점차 희미해지다가 결국 사라졌다. 집단대출제도로 인해 한 차례 곤욕을 치렀던 은행업 계는 채권 내역을 재무제표에서 덜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 들은 대출채권을 모아 금융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는 투자자들 에게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보다 교묘한 형태의 금융상품이 새롭게 개발되었고, 보유 자산에 대한 기록을 재무제표에서 남 기지 않는 새로운 회계기법도 창안되었다. 그리고 슈퍼 버블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응집하기 시작했다.
- 은행의 리스크모델은 시스템 자체가 안정적이라는 가정 위 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시장근본주의자들의 믿음과 반대로 금융시장의 안정성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다. 시장의 안정은 정책 당국자가 적극적으로 나서 관리해야 할 사안인 것이다. 그러나 실상 정책 당국자들은 시장 참여자들이 고안한 리스크 산출법에 의존한 채 업무를 추진했고, 통제할 수 없이 신용이 팽창하도록 길을 내주었다. 일례로, VaR 모형을 이용 한 리스크 산출법은 과거의 수치를 근간으로 한다. 신용팽창이 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거 수치는 현재 상황을 판단하기에 적절치 않은 잣대다. VaR 모형에서는 두세 가지의 표준편차를 고려하는데, 아주 드물게 나타나야 할 높은 표준편차가 여기서는 너무도 자주 발생했다. 이는 분명한 경고신호였지만 시장 참여자와 마찬가지로 정책 당국자들도 이 신호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위기상황분석(stress test을 모형에 추가해 예기치 못한 일에 얼마나 잘 대비하고 있는가를 측정한 것이 전부였다. 다양한 형태의 합성 모기지 증권 역시 잘못된 전제, 즉 미국의 주택가치가 개별 지역에서는 등락을 보일 수 있지만 시장전체적으로는 안정을 이룬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이런 가정은 각각의 주택담보대출채권보다 여러 지역별로 광범위하게 리스크를 분산하는 구조화 파생증권이 더 안전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가정은 현실로 드러난 것처럼 온 나라에 엄청난 규모의 주택 버블이 형성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다.
- 정책 당국자들은 보다 현명하게 대처했어야 했다. 결국 정책 당국자들은 때때로 시장에 개입해야 했고, 그 개입으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조치 없이 입에 발린 말로 경고하는 데 그쳤던 정책 당국자들은 막상 위기가 닥치자 파산시키기에는 덩치가 너무 큰 금융회사들을 구제하느라 정신없었다. 정책 당 국자들도 자신들의 개입이 끊임없이 몸집을 키우는 신용팽창 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지 배적인 시장근본주의 풍조와 자신들의 성과에 심취한 나머지 시장이 자동으로 통제된다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신용팽창이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경위다.
- 이 글을 작성하는 2008년 4월 현재, 미국의 경기침체는 불 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침체가 전 세계적인 경 기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강력한 경기확장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경기침체 및 유럽과 일본의 성장둔화를 상쇄해 훌륭하게 균형을 맞춰줄 것이다. 물론 이들 지역의 경제성장이 세계 경제를 어지럽힐 만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슈퍼 버블의 종결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버블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버블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달러화 기피 현상으로 인한 원자재와 에너지 시장의 거품이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고 “바이오 연료 관련 정 책은 농산물시장의 거품을 조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은 일반적으로 자산 버블을 일으키는 마이 너스 실질금리를 야기했다. 그렇다면 한 시대의 종결이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내 판단으로는 미국의 지배력과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됐던 상대적 안정성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신용팽창의 시대가 막을 내린 후에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나 금융시장에서나 불안정한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바라는 바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세계 질서가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 보다 근원적인 측면에서 서브프라임 위기를 파헤친 조지 소 로스의 방법론은 20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태동한 ‘아날학파 Annates School' 의 역사관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흥미 롭다. 아날학파라는 명칭은 1세대 인물 뤼시앵 페브르 Lucien Febvre와 마크 블로그Marc Bloch 가 1929년 창간한 역사잡지 〈사회경제사연보 Annales d'Histoire Economique et Sociale)에서 유래했다. 아날학파는 기존 사학의 특징인 일직선적인 시간관과 영웅주의적, 사건중심적 세계관에서 탈피, 3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다층구조의 시간관과 인간사의 일상에 주목하는 미시사, 사건사를 넘어선 '망딸리떼Mentality' 의 역사를 정립시켰다. 즉 이들은 역 사학의 기본 골격을 기존의 연대 · 개인 · 정치에서 구조 · 집단·사회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아날학파의 역사관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 중 하나는 망딸리떼다. 통상 망딸리떼를 특정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신념 또는 사람들이 어떤 현상이나 주변 환경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성향으로 해석하는데, 소로스의 관점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대표적인 예로, 여러 직간접적 요인이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존의 권위와 사회체제를 변혁하고자 하는 망딸리떼가 혁명의 토양을 형성했다고 본다. 그래서 아날학파는 1789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 100년간의 유언장을 분석해 사람들의 망 딸리떼 변화를 추적하기도 했다. 소로스가 주장하는 재귀성 이론을 이루는 축은 현실과 그 현실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인식과 현실 사이의 재귀성 때문에 불확실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로스는 사람들이 가 진 편향과 현실에 대한 인식이 자산 가격과 경제에 영향을 미 친다고 말한다. 주택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와 대출 실적 을 올리려는 금융회사의 의도가 주택시장의 거품을 만들었고, 더 이상 현실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거품이 붕괴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는 한 사회를 특징짓는 관념, 인간의 집단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날학파의 관점과 흡사하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버드 부자수업  (0) 2020.03.18
2030 대담한 도전  (0) 2020.03.13
삶의 무기가 되는 쓸모 있는 경제학  (0) 2020.03.08
달러 없는 세계  (0) 2020.02.20
금융의 역사  (0) 2020.02.17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