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의 갤럭시S 시리즈(스마트폰 사업부)가 '성능만큼은 최고'이던 시 절은 저물었습니다. 그 안으로 파고들어 가보면 더 이상 최고의 연산 장치를 설계하지 못하고(LSI 사업부), 고객의 주문대로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파운드리 사업부) 풍경이 있습니다. 2022년 3월, GOS가 비춘 삼 성은 그렇게 시대의 흐름에서 완전히 이탈해 있습니다. 그러니 GOS 사태는 경영자의 사과로 끝나지 않습니다. GOS 사태는 그저 그동안 곳곳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점 상실해가던 삼성의 본원적 한계를 한꺼 번에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 HBM이라는 악몽
2023년 하반기, 삼성은 제품명을 짓다가 체면을 구깁니다. 삼성은 차 세대 HBM 제품 생산을 예고하며 제품명을 HBM3P라고 발표했습니
다. HBM 제품명은 4세대까지 1, 2, 2E, 3으로 이어져 왔는데, 그다음 5세대 제품은 3P라고 부르겠다고 발표한 것이죠. 그랬다가 얼마 뒤부 터 3E로 바꿉니다 언론은 이와 관련해 엔비디아의 요구가 있었다7고 전합니다. 큰손 인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와 함께 정한 이름 HBM3E, 그러니까 3E 로 이름을 통일하자고 했단겁니다. 삼성은 따라야만 했습니다.
기술 우위, 또 성능 우위가 어디에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인데, 사실은 맛보기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HBM 악몽은 이듬해인 2024년에 닥칩니다. 그리고 삼성을 송두리째 뒤흔듭니다.
- 수익성을 생각했어요
삼성의 설명은 쉽게 말하면 '수익성을 생각해서 좀 미뤄뒷어요'입니 다. IT 기업이 기술보다 수익성을 먼저 생각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인텔입니다. 인텔은 CPU 시대의 핵심 회사였고, 과거의 제왕이지만 지금은 볼품없어졌습니다. 삼성보다 시가총액이 적습니다 왜 그렇게 이른바 '에지'edge 없는 회사가 되었는지 의견은 분분하 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모바일 시대'로 전환하 는 길목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는 점입니다.
크리스 밀러의 글로벌 베스트셀러 <칩 워>에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모바일 기기가 등장했다. (그러나) 인텔은 작은 시장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 다. 인텔은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을 과점하면서 엄청난 이윤을 누리고 있던 터라 틈새시장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인텔이 스스로 패착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저 또 다른 휴대용 컴퓨팅 기기일 뿐이고 틈새시장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모바일 폰 시장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중략)
(반면) 애플의 잡스는 암의 아키텍처에 주목했다. 모바일에 최적화되어 있었고전 력을 효율적으로 소비했다. 아이폰은 틈새 상품이 아닌 핵심 시장을 장악하는 상 품이 되었다. 오텔리니(인텔 CEO)는, 인텔이 스마트폰 산업에서 지분을 가져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고도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없었다. 인텔이 사태를 파악하기 전, 애플은 깊숙한 해자를 파고 거대한 이윤의 성채를 쌓아버린 것이다.
인텔은 오늘날 판매되는 칩 중 3분의 1을 차지하는 모바일 기기 분야에 발을 들일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 상황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인텔에는 기술이 있고 사 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윤율이 떨어질 짓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죠.'
-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
변화는 지금의 HBM에서 그치지 않을 겁니다. 이 미래를 상상해야 합 니다. 당장 HBM도 어제까지의 HBM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빅테 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에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미국의 7대 빅테크가 모두 SK하이닉스를 찾아와 나를 위한 HBM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7 이들은 우선 엔비디아의 블랙웰과 같은 최신 제품을 가급적 많이 사고 싶지만, 공급이 제한되니 각자의 솔루 션도 찾아야 합니다. 즉, GPU 옆에 붙는 엔비디아와는 다른 방식으로 HBM을 활용하려는 욕구가 큽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나 메타, 테슬라나 구글 모두 각자의 AI 가 속칭*을 설계하고 쓸 수 있습니다. 더 나은 HBM이 있으면 각자의 AI 칩도 더 나은 성능을 보이겠죠. 그러려면 각자에 맞는 맞춤 설계가 필 요합니다. 이를테면, 테슬라는 자체 시 침(D1)을 장착한 슈퍼컴퓨터 '도조'의 성능 향상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과거 사용한 3세대(HBM2E) 보다 개선된 제품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실 차세대 HBM4 자체가 이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HBM4부터는 HBM과 GPU 사이를 잇는 베이스 다oBase die(연산기판) 에 고객 요구에 맞춘 연산Logic 기능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SK하이닉 스는 물론 삼성전자에도 맞춤형 HBM4 메모리를 요구합니다.8 공급 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맞춤형 HBM은 메모리 공장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메모리 회사 를 떠나 파운드리 회사로 가서 첨단패키징 후공정(AVP)을 거쳐야 합 니다. 앞으로 HBM은 점점 더 파운드리 제품처럼 변해갑니다 아예 두뇌(GPU와 기타 AI 반도체)가 또 변할 겁니다. 새로운 혁신을 위해 환골탈태할 것이고, 이때 두뇌는 새로운 손발(메모리)을 필요로 할 겁니다. 메모리라는 손발이 두뇌와 같은 칩 위에서 작동하고, 두뇌 와 상호작용하면서 마치 한 몸처럼 결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여 튼 HBM이 메모리의 최종 형태는 아닐 겁니다. 이미 다 만든 제품을 그냥 물리적으로 쌓아놓은 형테라니, 어쩐지 중간 과정의 임시방편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즉, 그동안 안정적이던 메모리라는 범용상품 시장에 균열이 올 수 있습니다. 만약 온다면 막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삼성전자 같이 한 기업이 메모리의 설계와 제조, 패키징, 테스트, 그리고 판매를 모두 다 하는,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변할 수 도 있습니다. TSMC의 혁신적인 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 이 후, 설계와 제조가 나뉘어진 CPU 비즈니스처럼요. 변화가 그렇게 커진다면 메모리 제조라는 독립 비즈니스는 사라집니다. 메모리 펩리스와 메모리 파운드리만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시장에서 삼성이 잘할 수 있을까요? 현재 답은 모두 부정적입니다. HBM을 왜 하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확실치 않아서' 라고 답했습니 다. (물론 지금 삼성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단 만들기 시작 하면 금방 따라갈 것이고,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상황 은 그 호언장담과는 다릅니다. 잘 만들지도 못한다는 뜻입니다 사태는 2022년의 첫 번째 사과 때보다 한층 더 심각해졌습니다. 2022년의 기술 위기 신호는 그래도 '스마트폰'과 '파운드리(위탁제 조)'와 '시스템LSI(설계)' 부문이었습니다. 본진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2024년의 위기는 삼성의 본진, 메모리로까지 확산됐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본진의 '특수 부문'인 HBM이긴 합니다만, 한번 생 겨난 의심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 HBM에 사용되는 D램은 일반 D램보다 2배 정도 큽니다. 여러 D램을 위아래로 쌓고 연결해야 하다 보니, 연결구 조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그게 실리콘을 관통하는 전극(Tsv)12인데, 이 구조로 인해 물리적으로 커집니다. 또, 더 까다롭게 골라냅니다. 여러 D램을 쌓았을 때도 문제없이 작 동해야 하기에 더 강인한 내구성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전기적으 로 더 안정적이고, 발열이 더 적어야 합니다. 선별 과정이 더 까다로 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SK하이닉스는 이 과정을 거쳐 1b D램을 HBM3E에 장착하고 있 는 것입니다. 삼성은 아직 HBM용 1b D램을 만들지 않습니다. HBM 용의 '더 크고, 더 까다롭게' 골라낸 D램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HBM3E 제품에 1b가 아닌 1a D램을 쓰고 있는 겁니다. 삼성은 자존심이 상할 겁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이미 5세대 D램(1b)을 8단, 12단으로 쌓은 5세대 HBM3E의 납품과 양산을 하고 있으니까요.
- D램 설계 문제 의혹도 2019년 3월, 1z D램 개발을 끝으로 삼성의 '세계 최초' 기록은 5년 째 멈춘 상태입니다. 일각에선 제조 문제가 아닌 설계상의 결함 의혹 을 제기합니다. 멈추게 된 이유가 근본적인 데 있다는 보도도 나옵니 다. 그래서 5세대(1b)뿐 아니라 4세대(1a) D램도 설계를 재검토한다는 보도까지 나옵니다. 특히 위 보도에 인용된 삼성 내부의 반성 목소리는 충격적입니다 "1a D램의 양산을 시작할 때 수율이 충분히 높지 않은 상태에서 EUV 장비를 경쟁사보다 더 쓰는 방식으로 땜질 처방을 했다"는 겁니다. 설계의 문제, 혹은 공정 프로세스의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더 좋은 장비에 의존해 문제를 미봉했다는 것이죠. 사실이라면 이제라도 그 덮어놓았던 문제를 다시 풀어 혜쳐서 수율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다만, 그런 방식으로 개선이 진행된다면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 삼성의 GAA 3나노 공정은 의미 있는 고객을 유치하는 데 실패하 고 있습니다. 애플부터 엔비디아, 구글, 테슬라.. 3나노 선단 공정을 원하는 빅테크는 아무도 삼성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습니다. TSMC의 3나노는 애플과 엔비디아에 최우선 배정되다 보니 주문이 밀리는데 도 그렇습니다. 중국의 가상화폐 채굴업체가 삼성에게 3나노 일감을 맡겼다는 이야기만 들려옵니다.14 그래서 삼성 파운드리 라인은 개점휴업입니다. 일부 생산라인 가 동률은 50% 이하로 내려가는 상황15입니다. 인력을 빼서 HBM과 D램 부서로 돌리고 있습니다.16 유휴 인력을 재배치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삼성에 대한 불신이 큽니다. 초창기 수율은 한 자릿수라 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낮아 큰 신뢰를 얻지 못했습니다. 현재 수율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50~60% 수준에 머물니다. 80%대 에 달하는 TSMC 대비18 낮은 수준입니다. 안정성과 효율성에서 뒤처진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특히, 발열 문 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고성능 칩셋을 요구하는 고객사 들에는 중대한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발열과 수율 문제는 3나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GOS 사태를 불러왔던 삼성의 기술 문제 역시 앞서 살펴본 대로 4나노 파운드리에서의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 HBM과 선단 공정 D램에서 겪는 기술적 실패 역시 마 찬가지입니다. 어떤 실패냐고 물으면 HBM의 수율이 낮고, 심한 발열 등 품질도 좋지 않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또 2019년 이후 메모리 부문에서 한 번도 선단 공정의 D램을 최초 개발하지 못한 이유도 수율 이 낮고 발열을 잡지 못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파운드리라는 IT 산업 변화에 올라타지 못한 이 두 번째 실패는 기술적 우월성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첫 번째 실패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기술적 우위를 놓치면 시대 흐름을 쫓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GAA 3나노 선단 공정 자체는 진정한 기술 우위가 아닌 겁니다. 사실 삼성은 이미 10년쯤 전에 그 사실을 학습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리스 창과의 대결에서요.
- '꾸준한 협력이 우선이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그 뒤에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성공이 찾아온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함께한 고객과는 강력한 신뢰와 유대감이 형성된다. 신뢰 속에서 기술을 발전 시키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 바로 작고 위태롭던 기업 엔비디아와 TSMC가 함께 성공한 것처럼.
이것이 미세화가 한계에 부딪힌 시대에 IT 업계가 발견한 혁신의 모습입니다. 부터 2까지 모든 것을 잘하던 인텔 같은 거대 기업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작은 회사가 혁신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입니다. 그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파운드 리 협업 생태계의 역할입니다. 혁신은 이제 기술과 신뢰의 융합에서 시작됩니다. 이를테면 TSMC는 엔비디아와 협력하며 혁신의 동반자가 되었습 니다. TSMC는 엔비디아가 거대하고 안정적인 기업이어서 협력을 시 작한 게 아닙니다. 당장 최선단 공정의 부가가치 높은 주문을 받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엔비디아는 큰 실패를 한 뒤 휘청이는 상태 였고, 마지막 투자금으로 연명하며 마지막 시도를 하고 있는 '위기의 회사'였습니다. TSMC는 그런 엔비디아가 가지고 있는 '혁신 에너지' 를 신뢰했고 기술로 뒷받침하며 함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달랐습니다. 삼성은 신뢰 쌓기나 생태계 조성을 건너뛰고 '선단 공정 중심의 고부가가치 비즈니스만 잡겠다'는 태도로 접근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효과를 봤던 속도전을 그대로 파 운드리에 적용하려 합니다. 생태계 밖에 고립된 채,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 없이 퀀텀 점프를 꿈꾸는 셈입니다. 이렇게 파운드리 패러다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기업이 이 파도 위에 올라타는 데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 기술과 신뢰의 융합 대신, 삼성은 '3나노 GAA 공정 개발'을 최우 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아직 개발하지 않은 이 신공정 설계 키트를 고 객들에게 배부하면서, 삼성의 목표는 2030년 1위라는 점을 내세있 습니다. '당신의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TSMC와 '내가 파운드리에서 1위가 되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는 삼성의 차이가 보이시나요? 게다가 이렇게 특정 선단 공정 개발에 초점을 맞추면, 이 도전은 혼 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객 요구를 기반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실 험하는 시간이나,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시간을 삼성은 충분히 가지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제품을 만들었을 때 좋은 수율이 나오기 힘들었겠죠. 게다가 삼성은 퀄컴을 곤욕스럽게 한 GOS 사 태의 주인공이죠. 4나노 공정에서 수율은 낮고 발열이 높은 칩을 만들 었습니다. 그게 2월이고, 신공정 3나노 발표는 불과 넉 달 뒤입니다 빅테크와 팝리스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거창하게 '삼성의 기 술 위기'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4나노도 잘 못하는데 3나노를 그것도 새로운 방법으로 만든다고? 너무 위험한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실 제로 삼성의 3나노 공정 수율이 극히 낮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숨길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삼성은 익숙지 않은 파운드리 사업에서 초기부 터 과도한 투자를 단행했는데 정작 시장의 본질적 요구를 충분히 반 영하지 못해서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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