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리셋

사회 2022. 2. 16. 22:03

- 가장 초기의 격리quarantine는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전체 유럽 인구의 3분의 1 정도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Black Death 방역을 위해 시행됐다. 이탈리아어로 '40'을 뜻하는 단어 quaranta'로부터 나온 40일 동안 사람들을 격리한다는 생각은 당국이 무엇을 억제하려고 하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생겨났 지만, 이 조치들은 현대 국가의 '권력 강화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을 준 최초의 공중보건 제도의 한 형태였다. 왜 40일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학적인 근거는 없다. 이 기간은 단지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이 유로 결정되었을 뿐이다. 구약과 신약 성서 모두에서 40은 종종 '정화 淨化의 의미를 내포한다. 사순절四旬節.Lent(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주일 전 40일 동안의 기간으로 이 기간 동안 교인들은 광야에서 금식하고 시험받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되살리기 위하여 단식과 속죄를 행한다. 옮긴이 주) 기간이 40일이며, 창세기에 나오는 타락한 인간을 심판하기 위한 대홍수도 40일간 이어졌다.

- 팬데믹은 무엇보다도 세계화로부터의 일부 후퇴, 미국과 중국 간 탈동조화 심화, 자동화의 가속화, 감시 강화를 둘러싼 우려, 웰빙 정책에 대한 관심 증가, 민족주의nationalism 부상과 그에 따른 이민의 두려움, 기술력 성장, 온라인상에서 기업의 존재감 강화 필요성 확대 등 코로나19 위기 이 전부터 이미 가시화됐던 체제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 은 이전에는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던 것들을 바꿔놓는 식으로, 단순 히 변화에 가속도를 붙이는 수준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다시 말 해 이미 관례화된 헬리콥터 머니 helicopter money(중앙은행이 소비 진작을 위 하여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대량으로 시중에 푸는 자금 - 옮긴이 주) 같 은 새로운 형태의 통화정책, 몇몇 사회적 우선순위들에 대한 재고再와 재설정 및 정책 목표로서의 공공재에 대한 검색 강화, 정치적 역량과 급진적 복지와 과세 조치 확보시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급격한 지정학적 재편처럼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에는 상상조차 하 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 1975년에 행해진 한 유명한 실험에서, 두 심리학자는 우리가 기하급수적 과정을 예측해야 할 때 우리는 종종 그것을 열 배 과소평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증가동력과 기하급수의 힘을 이해하면 왜 속도가 그토록 중요한 문 제이고, 증가 속도를 억제하는 데 개입 속도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 사실을 이해했다. 그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어떻게 파산했나요?” 빌이 물 었다. “두 가지 방법으로요” 마이크가 답한다.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요” 일반적으로 큰 시스템적 변화나 붕괴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상황이 서서히 전개되다가 갑자기 돌변하는 경향이 있다. 거시적 리셋도 똑같은 경향을 보인다.
- 역사는 유행병이 국가 경제와 사회 구조의 위대한 '리세터resette' 역 할을 해줬다는 걸 보여준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통틀어 주요 팬데믹이 장기적으로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한 주요 논문은 거시경제 여파가 최장 40년 동안 지속되면서 실질 수익률을 크게 훼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반대 효과를 내는 전쟁과는 대 조적이다. 팬데믹과 달리 전쟁은 자본을 파괴한다. 전쟁은 실질금리 를 끌어올리고 경제활동을 활성화하는 반면에 팬데믹은 실질금리를 낮춰 경제활동을 둔화시킨다. 게다가 소비자는 새로운 예방 조치 차원에서건 아니면 단순히 팬데믹 기간 동안 잃어버린 부를 만회하기 위해서건 저축을 늘려서 충격에 대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팬데믹 이후 통상 실질임금이 오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자본의 희생으로 이득을 볼 것이다. 1347년부터 1351년까지 유럽을 황폐화시킨 흑사병(불과 몇 년 만에 유럽 인구의 40%를 몰살시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당시 노동자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자신들 손에 있다는 사실을 생애 처음으로 깨달았다. 흑사병이 잠잠해진 뒤 불과 1년 만에 프랑스 북부 소도시 생토메르에서 일하는 섬유 노동자들은 잇따라 임금 인상을 요구해서 쟁취해냈다. 2년 뒤 많은 노동자 길드guild는 협상을 통해 때로는 흑사병 이전 수준보다 많게는 3분의 1 정도까지 노동 시간을 줄이고 임금은 올렸다. 이와 유사하지만 덜 극단적인 다른 팬데믹의 사례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즉, 자본의 손상에 따라 노동자는 이득을 봤다. 오늘날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인 인구 고령화 심화로 악화될 수 있지만(아프리카와 인도는 주목할 만한 예외다), 그러한 시나리오는 파트 1의 챕터 6 ‘기술적 리셋'에 서 우리가 살펴볼 자동화의 확대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될 위험이 있 다. 이전의 팬데믹들과는 달리 코로나19 위기가 노동에 유리하고 자 본에 불리한 쪽으로 균형을 맞춰줄지는 불확실하다. 정치적·사회적 이유로 인해 기술은 조합을 변화시킨다.
- 코로나19 팬데믹 내내 생명과 경제 중 무엇을 살려야 하냐의 문제, 즉 생명이 중요하냐 생계가 중요하냐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이 펼쳐졌다. 이것은 잘못된 '트레이드오프(trade-of(하나를 얻으려고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경제 관계 - 옮긴이 주)'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공중보건과 경제성장의 타격 중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신화는 쉽게 논박할 수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부 생명을 희생하느냐가 다윈적Darwinian 사회적 명제냐 아니냐 하는 중요한 윤리적 문제를 제쳐두고, 생명을 구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은 경제 복지를 향상시키지 못할 것이다.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공급 측면에서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 대로 여러 가지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규제를 섣불리 완화함으로써 감염이 가속화될 경우, 감염되는 종업원과 노동자들이 늘어나 경 영을 중단하는 기업 역시 늘어날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창궐 이후 이런 주장이 옳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증명되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노동자가 너무 많아 가동을 중단해야 했던 공장(육류 가공 시설 등 노동자들끼리 물리적으로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작업 환경의 경우)부터 감염된 선원이 많아 정상 운 향을 할 수 없어 운항을 중단한 해군 함정까지 사례는 다양했다.
노동력 공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이 감염될 것을 우려해 일터로 복귀하길 거부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대기업에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크다고 느낀 직원들은 작업 정지 등 일련의 행동에 나섰다.
2. 수요 측면에서의 논쟁은 언제나 경제활동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결정 요인인 '심리'로 귀결된다. 소비자 심리가 경제를 좌 지우지하는 이상 심리가 회복되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종류의 '정 상화로의 복귀가 가능하다. 안전에 대한 개인의 인식이 소비자와 기업의 결정을 유도한다. 즉, 경제의 지속적인 개선 가능 여부는 코 로나19를 극복했다는 확신(그렇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소비하고 투자 하지 않을 것이다)과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퇴치됐다는 증거(그 런 증거가 없다면 사람들은 우선은 주변 지역이 안전하고, 이후에는 더 멀리 떨어진 곳까지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을 것이다)라는 두 가지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 현재 나오고 있는 전망에 따르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과거 수 십 년보다 훨씬 낮은 성장이 새로운 경제 '노멀'로 자리 잡을지도 모 른다. 경기 회복이 시작되면 전분기 대비 GDP는 기저 효과로 인해 인 상적인 성장세를 나타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 경제의 전체 규모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인구는 '운명'이자 GDP 성장의 결정적인 원동력이다)란 장기적 추세와 맞물려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장 률 하락이 기정사실처럼 보일 때 더 높은 GDP 성장 목표를 추구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성장에 집착하는 게 과연 유용한가 하는 의구심마저 가질 수 있다.
- 현시점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조만간 발생할 수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생산 활동의 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반의 자국 내 복귀 -옮긴이 주)이 간헐적이고 국지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지만, 그런 일 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디플레이션 유발 성격이 강한 고령화와 기술 발전 등의 강력하고도 장기적인 구조적 추세와 수년간 임금 상승을 제약할 이례적으로 높은 실업률은 모두 인플레이션에 강한 하방 압 력을 가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소비자 수요가 강력할 거라곤 예상되지 않는다. 광범위한 실업, 인구 다수의 소득 감소, 미래에 대 한 불확실성으로 인한 고통은 모두 예비적 저축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결국 완화되면 억눌렸던 수요로 약간의 인 플레이션이 유발될 수 있겠지만, 일시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서 인플레이션 기대치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전 IMF 수석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olivier Blanchard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건이 합쳐져야만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GDP 대 비 부채 비율이 현재 전망치인 20~30%를 훨씬 더 상회할 정도로 올라가야 한다. 둘째, 경제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 금리 수준인 '중 립 금리neutral rat’가 급등해야 한다. 셋째로 통화 정책 우위에서 재정 정책 우위로 전환돼야 한다. 이 세 가지 사건이 각자 개별적으로 발 생할 확률조차 이미 낮은 이상 세 가지가 동시에 발생할 확률은 극히 낮다. 단, 그렇다고 0%는 아니다. 채권 투자자들도 같은 생각이다.
-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부자에게서 빈자로, 그리고 자본에서 노동으로 거대한 부의 재분배가 시작될 것이다. 둘째로 코로나19는 연대보다는 경쟁을, 정부의 개입보다는 창조적 파괴를, 사회복지보다 경제성장을 각각 지지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종말을 고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 해 동안 많은 논객, 재계 지도자, 정책 입안자들이 신자유주의의 맹목적 시장숭배주의market fetishism'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 여오면서 그 원칙이 약화되어 왔는데 여기에 코로나19가 치명타를 가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열렬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해왔던 미국과 영국 두 나라가 코로나19 팬데믹 피해자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대규모 재분배와 신자유주의 정책 포기라는 두 가지 병존하는 힘은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 불안을 부추길 수 있는지 부터 정부 역할의 확대와 사회계약의 재정립에 이르기까지 사회 조직 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 2018년 WHO는 전 세계 어느 나라 보건 예산보다도 적은 42억 달러의 연간 예산을 확보했을 뿐이다. 아울러 WHO는 영원히 회원국들에 게 좌지우지되고, 가장 필요한 국가에 재원을 할당하는 것은 말할 것 도 없고 팬데믹 발발을 직접 감시하거나, 팬데믹 대처 계획을 조율하 거나, 국가적 차원에서 효과적이고 확실한 대비책 마련을 보장할 수 있는 도구를 사실상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기능장애는 글로벌 거버 넌스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는 신호다. 유엔과 WHO 같은 기존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도모할 기구들이 오늘날의 전 세계적 위험을 해 결하도록 바뀔 수 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당분간 글로벌 거버넌 스의 공백에 직면한 민족국가들만이 집단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응집력이 강하지만, 이 모델이 전 세계 공동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세계적 위험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다자적 제도multilateral institution 를 고치지 않는다면 세계는 매우 위험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코로나19 위기의 여파로 글로벌 경제가 지속적 인 국제적 협력 없이 재가동한다는 게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 이상 전 세계적 조율이 더욱 절실할 것이다. 그런 조율 없이는 우리는 '더 가난하고, 더 야비하고, 더 작은 세상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 코로나19 위기가 소국들의 성공을 부각시키고 미국과 중국 같은 초강대국의 실패를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진정한 교훈은 미국이 끝났고 중국은 21세기의 패권국이 되리라는 것이 아 니다. 나는 현실적으로 미국, 중국, EU 등 모든 강대국들이 제기능 을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규모가 크면 규모의 불경제 diseconomies of scale(모든 생산요소를 똑같은 비율로 변동시킬 때 총생산량이 생 산요소의 증가율보다 더 낮은 비율로 증가하는 현상-옮긴이 주)가 생긴다. 국가나 연방이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할 정도 로 규모가 커졌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한국, 싱가포르,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같은 소규모 경제 국가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억제하고 그에 대처하는 능력 면에서 미국보다 더 뛰어난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 예측은 바보들이나 하는 추측 게임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 의식이 필연적으로 강해질 것이란 말 빼고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는 게 단순한 진실이다. 코로나19는 기존 강국과 신흥 강국 간 경쟁의식을 악화시켰다. 미국은 코로나19 위기로 비틀거렸고 미국의 영향력은 쇠퇴했다. 한편 중국은 해외 영 향력 확대를 통해 이번 위기에서 수혜를 누리려고 할 수도 있다. 우리 는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경 쟁은 두 극단 사이에서 움직일 것이다. 즉, 한쪽 끝에선 영리적 목적 때문에 경쟁이 억제되고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만 악화되고, 반대쪽 에선 영구적이고 전면적인 적대감이 유지될 것이다.
- 거시적 차원의 리셋을 다룬 파트에서 분석한,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에 가해진 충격은 글로벌 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란 게 실제로 무슨 뜻일까? 20세기 말에 개발된 세계화 모델(값싼 노동력과 제품과 부품 등을 찾 아 헤매던 글로벌 제조업체가 구상하고 만든)이 한계에 부딪혔다. 그것은 글로벌 생산을 더욱 복잡한 이런저런 것들로 세분화시킨 뒤 낭비 요인을 최대한 줄이고, 효율적이긴 하나 동시에 엄청나게 복잡해서 매우 취약하다(복잡함은 취약성을 유발하고, 종종 불안감을 낳는다)는 사실 이 입증된 '적기' 공급망 기반 위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을 낳았다. 그 런 면에서 단순화가 해결책인데, 그러려면 더 많은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 다시 말해, 글로벌 교역의 약 4분의 3을 담당하는 '글로벌 가치 사슬은 궁극적으로 쇠퇴하게 된다는 뜻이다. 쇠퇴 정도는 복잡한 적기 공급망에 의존하는 기업들이 WTO가 내건 관세 약속이 더 이상 급증하는 보호무역주의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줄 거라고 믿을 수 없는 새로운 현실 앞에서 더욱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공급망을 줄이거나 장기 혼란에 대비해 정교한 대체 생산이나 조달 계획을 수 립해놓을 수밖에 없게 됐다. 적기 글로벌 공급망의 원칙에 따라서 수 익성이 좌우되는 모든 기업은 운영 방식을 재고하고, 안정적 공급과 회복력을 위해 효율성과 이윤을 극대화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회복력은 특정 공급업체, 무역 정책의 가능한 변 화, 특정 국가나 지역 등과 관련된 분열과 혼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모든 기업에게 주요 고려 사항이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기업은 이를 통해 재고 보유와 중복 구축 비용을 감수하더 라도 공급 기반을 다변화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내부 공급망에서도 다변화가 가능한지를 확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은 그들의 최종 공급자와 심지어 공급자들의 공급자들까지 모두 거슬러 내려가듯 전체 공급망을 따라가며 회복력을 평가할 것이다. 생산비는 오르겠지만 이는 회복력을 쌓는 데 드는 대가다. 우선 자동차, 전자, 기계 산업의 생산 패턴이 최우선적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허리케인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사람 들을 하나로 묶어줬지만 팬데믹은 반대로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격렬 하고 짧은 자연재해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함께 뭉쳐 서 비교적 빨리 회복하는 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팬데믹은 종종 죽음에 대한 원초적 공포에 뿌리를 둔 불신의 감정을 계속해서 끌어 내는, 더 오랫동안 지속되는 장기적 사건이다.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팬데믹이 낳는 가장 중요한 결과는 경이적 수준의 불확실성 생성이 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코로나19가 재유행할 것인 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감염될까? 내 일자리가 유지될까?), 불확실성 이 커지면 우리는 불안과 걱정에 시달린다. 인간은 확신을 갈구한다. 따라서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키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지우는 데 유용한 '인지적 종결cognitive closure(새로운 것을 받아들 이지 않고 과거의 것을 반복하려는 인지적 경향-옮긴이 주)’ 욕구를 느낀다. 팬데믹이 주는 위험은 복잡하고, 파악하기 어렵고, 대부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팬데믹이 닥쳤을 때 우리는 불시에 자연재해 등이 닥쳤을 때 그렇듯이 (사실 언론에 의해 받게 되는 재해에 대한 일반 적인 첫인상과는 다르게) 타인에게 필요한 것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자 신만을 챙길 가능성이 더 크다. 이는 결국 강한 수치심을 낳는데, 수치심은 팬데믹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의 태도와 반응을 이끄는 핵심 적 감정이다. 이 수치심은 기분 나쁜 감정과 동일시되는 도덕적 감정 으로, 후회, 자기혐오, 올바른 일을 하지 않은 데 대해 모호한 치욕 감이 뒤섞인 불편한 감정이다. 이 수치심은 과거 팬데믹을 소재로 쓴 수많은 소설과 문학 작품에서 묘사되고 분석되었다. 수치심은 아이 들을 운명에 맡기고 버린 부모처럼 급진적이고 끔찍한 형태를 띠기 도 한다. 1348년 흑사병으로 황폐해진 피렌체의 한 별장에 은신해 있 던 한 무리의 남녀 이야기를 다룬 단편 소설집 《데카메론 The Decameron》 의 서문에서 저자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는 “부모가 아이들을 돌보지도 찾지도 않고 운명에 맡긴 채 버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썼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 소설가 대니엘 디포Daniel Defoe의 《전염병 연대기A Journal of the Plague Year》에서부터 이탈리아 역사 소설가 알레산드로 만초니 Alessandro Manzoni 의 《약혼자The Betrothed》에 이르기까지 과거 발발한 팬데믹 을 다룬 수많은 문학 작품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인간의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할 만큼 강해질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어 떤 상황이 닥치건 개인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기적 선택 때문에 나 중에 깊은 수치심을 느끼게 되더라도 자기 생명을 구하는 결정을 내 릴 수밖에 없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코로나19 사태 동안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으로 목격했던 사건처럼 항상 예외는 있다. 직업상 의무를 초월해서 동정심과 용기를 보여주는 행동을 수없이 많이 한 간호사와 의사들의 모습이 그런 예외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로 그냥 예외'인 것 같다! 스페인 독감이 제1차 세계대전 말 미국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책인 《대 독감 The Great influenza 142)에서 저자인 역사 학자 존 해리 on sary 는 당시 의료 분야 종사자들을 도와줄 자원봉사 자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독감의 기세가 맹렬해질수록 자 원통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만 제1차 세계대전보다 12배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는데도 불구하고 11918~1919년 동안 일어난 팬데믹에 대한 지식이 그렇게 부족한 이유 는 판데믹 직후 생긴 집단적 수치심 때문일 수도 있다. 이것이 당시의 판데믹을 다룬 책이나 연극이 현저히 적은 이유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 앞으로 나아갈 길은 일본과 다른 몇몇 국가들의 사례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우리가 '경제적 리셋' 부분에서 언급 했던 세계의 일본화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지만, 우리가 소 비와 관련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게 해 주는 훨씬 더 긍정적인 일본화 가설도 존재한다. 일본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얽혀 있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일본은 고소득 국가들 중에서 불평등도가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하고, 1980년대 후반 투기 거품이 꺼진 이후 과시적 소비 수준이 낮다. 오늘날 단순 하고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긍정적 가치(일본의 정리 컨 설턴트인 곤도 마리에 Marie Kondo의 집안 정리·정돈 시리즈에 의해 퍼진),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삶의 추구, 자연의 중요성과 삼림욕의 실천은 모두 보다 소비주의적인 사회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더 검소한 일본 식 생활 방식을 옹호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에서 모 방되고 있다. 과시적 소비에 눈살을 찌푸리고, 이를 억제하는 북유럽 국가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 때문 에 행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심리학자와 행동경 제학자들이 계속 상기시켜 주듯이 과소비를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이것은 또 다른 개인적인 리셋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어떤 식으로건 행해지는 과시적 소비나 과도한 소비는 인간과 지구 모두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소비를 통해서만 성취감과 만족 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덜 소비해야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는 걸 깨 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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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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