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의 인류사

과학 2020. 9. 7. 08:25

- 직립 이족 보행은 어쩌면 그 불편함 때문에 생존에 불리한 특징일지도 모른다. 만약 유리한 특징이었다면 다른 여러 동물 계통에서도 직립 이족 보행의 진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능력은 곤충, 익룡, 새, 박쥐 등 여러 계통에서 진화했다. 그런데 직립 이족 보행은 아득할 정도로 기나긴 진화의 역사를 모두 살펴보더라도 인류 이외의 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좀 이상한 일이지만 인류를 제외하고는 직립해서 두 발로 걷는 동물은 없다.
- 앞에서 직립 이족 보행을 한 것은 인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공정함을 위해 반론도 살펴보자. 반론의 근거는 지금으로부터 약 900만~700만 년 전 화석 유인원인 오레오피테쿠스이다. 당시에는 지중해의 섬이었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 방에서 오레오피테쿠스는 직립해서 두 발로 걸었을 가능성 이 있다. 먼저 우리의 골격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인류는 척추동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척추뼈가 있다. 그리고 직립 이족 보을 하기 때문에 척추는 위아래로 뻗어 있다. 척추의 가장 위에는 두개골이 얹혀 있다. 두개골 아래쪽에는 대후두공이라는 커다란 구멍이 있는데, 두개골이 척추와 이어지는 지점에 있는 구멍으로 척수라는 신경이 이곳을 지난다. 사람이 엎드려서 길 때 우리의 얼굴은 지면을 향하게 된 다. 대후두공이 두개골의 아래쪽 거의 중앙에 뚫려 있기 때 문이다. 이런 자세에서 정면을 보려면 얼굴을 위로 들어야 하고, 오랫동안 이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네 발로 걷는 동물들의 대후두공은 두개골의 뒤쪽에 뚫려 있다. 그러면 엎드린 자세에서도 편하게 정면을 볼 수 있게 된다. 침팬지나 고릴라의 대후두공도 두개골의 뒤쪽에 있다. 두개골의 가장 뒤는 아니지만, 사람과 비교하면 상당히 뒤쪽 에 위치한다. 이것은 침팬지나 고릴라가 기본적으로 네 발로 걷기 때문이다. 종종 일어서기도 하지만 사람처럼 완전히 직 립할 수 없고 두 발로 먼 거리를 걷지도 못한다. 침팬지나 고릴라는 기본적으로 네발걸음을 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 직립 이족 보행이 초원이 아닌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소림에서 진화한 것도 이해가 된다. 만약 우리가 나무가 없는 초원에서 사자에게 쫓기게 된다면, 그걸로 끝이다. 비명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달려도 곧바로 붙잡혀 잡아먹히고 만다. 하지만 군데군데 나무가 있다면 사자에게 쫓기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일단 나무까지만 가면 바로 올라가면 된다. 예전에는 직립 이족 보행이 초원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직립 이족 보행은 나무가 있는 환경에서만 진화했다. 참고로 직립 이족 보행의 또 다른 결점으로 요통과 난산이 지적되기도 한다. 상반신을 허리로만 지탱하다 보니 허리에 부담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무거운 것을 들 때 삐끗하거나 추간판 탈출증에 걸리기 쉽다. 그러나 요 통은 대부분 고령에게서 보이는 특징이고 젊은 세대에서는 그 빈도수가 적다. 만약 아이를 낳고 키울 때까지 요통에 시 달리지 않는다면 직립 이족 보행이 그다지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직립하게 되면 내장이 허리 쪽으로 내려온다.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늑막이 발달했고 산도가 S자 형태로 구부러 졌다. 게다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 태아가 밖으로 쏟아지지 않도록 근육이 산도를 막고 있다. 그런데 이 근육이 출산할 때가 되면 방해가 된다. 따라서 초기의 인류도 어느 정도의 난산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난산을 겪게 된 것은 뇌가 커진 이후 의 일이다. 산도가 구부러져 있어 태아가 나오기 힘들었는 데 머리가 커지면서 더 나오기 힘들어졌다. 다만 인류가 직립해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한 것이 약 700만 년 전이고 뇌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약 250만 년 전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꽤 거리가 있다. 초기의 인류도 어느 정도는 난산을 겪었겠지만, 오늘날 사람이 겪는 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직립이족 보행의 가장 큰 결점은 역시 느린 달리기 속도와 눈에 잘 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 자기의 자식에게는 음식물을 갖다주 고 타인의 자식에게는 주지 않는', 즉 어떤 자식이 자기 자식인지 아는 경우에는 직립 이족 보행이 진화하고 자기의 자식과 다른 사람의 자식에게 모두 음식물을 갖다준’, 즉 어떤 자식이 자기 자식인지 모르는 경우에는 직립 이족 보행이 진화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중간인 '자기의 자식과 다 른 사람의 자식에게 음식물을 갖다주지만 자기의 자식에게 더 많은 음식물을 준’, 즉 대체로 어떤 아이가 자기의 자식인지 아는 경우에도 직립해서 두 발로 걷기는 진화한다. 초기 인류 사회에서 갑자기 일부일처가 성립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다부다처의 사회에서 일부일처와 같은 짝을 이룬 쌍이 나타나는 중간적인 사회를 거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 직립 이족 보행을 하면 빨리 달릴 수 없다. 머리가 높은 곳에 있어서 멀리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쪽에서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멀리서 이쪽을 볼 수 있음을 뜻한다. 쉽게 눈에 띄는 것이다. 육식 동물에게 발견되기도 쉽다. 그리고 일단 발견되면 끝이다. 달려서 도망친다 해도 곧 붙잡혀 잡아먹히고 만다. 직립해서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다. 따라서 초원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살지만 직립 이족 보행으로 진화한 동 물은 하나도 없다. 그중 인류는 처음으로 직립 이족 보행을 진화시켰다. 이는 아마도 먹을 것을 두 손으로 옮겨 자식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느린 달리기 속도는 피할 수 없 는 운명이었다. 따라서 아르디피테쿠스는 육식 동물이 다가 오면 나무 위로 도망쳤다. 그리고 나무 위에서 잤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초원으로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무 위로 도망 칠 수도 없고 아직 무기다운 무기를 만들 줄도 몰랐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먹을 것을 손으로 운반하는 것이 가능해도 도중에 육식 동물에게 잡아먹히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곧바로 멸종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멸종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르디피테쿠스보다 번영했다. 그렇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어떤 방법으로 몸을 지켰을까?
- 인류의 조상은 인류가 되기 전부터 음식을 분배한 듯이 보이고 인류가 되면서 고도로 협력적인 사회관계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 했다. 또 아르디피테쿠스와 비교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뇌의 용량이 조금 늘어났다. 따라서 한층 고도의 협력적 사회 활동이 가능해졌을지도 모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집단을 이뤘을 가능성은 충분 하다. 개코원숭이 이상의 협력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수컷 들이 협력해서 큰 소리를 지르고 나뭇가지를 휘둘러서 포식 자를 쫓아낼 정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종합해 보면 어떻게 될까? 과연 오스트랄로피테쿠 스는 초원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덩치가 크고 집단을 이룬다는 장점이 있지만 달리기가 느리고 이빨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몸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네 가지 요소들 중 개코원숭이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 생존 유무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초원에 사는 다른 많은 초식 동물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달리는 능력이다. 달리기가 느린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조상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쪽이 육식 동물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사실 잡아먹혀도 상관이 없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오히려 잡아먹히는 것이 중요했다. 만약 육식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았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인구가 증가하게 된다. 어느 정도는 육식 동물에게 잡아먹히는 편이 인구를 늘리지 않고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는 데 유리했다. 따라서 삼림은 위험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초원은 위험투성이라고 단정 지으면 안 된다. 삼림에 살든 초원에 살든 위험은 늘 존재한다. 어차피 육식 동물에게 잡 아먹히기 마련이다. 삼림에 사는 고릴라가 표범에게 잡아먹 히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삼림에 살았던 조상보다 초원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쪽이 좀 더 많이 잡아먹힌다는 점이다. 요컨대 정도의 문제다. 그렇다면 해결책이 있다. 많이 잡아먹히는 만큼 많이 낳으면 된다. 실제로 초원에 사는 영장류에서는 삼림에 사는 영장류보다 다산의 경향이 보인 다. 이런 특징은 인류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 호모 에렉투스의 시대에 기적이 일어났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직립 이족 보행은 빨리 달릴 수 없다는 치 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인류 이전에는 지구상에서 직립해서 두 발로 걷기로 진화한 생물은 없다. 그러나 손으 로 물건을 옮길 수 있다는 직립 이족 보행의 최초의 이점이 일부일처에 가까운 사회와 결합하면서 우연히 초기 인류의 진화에 포함되었다. 그것은 지구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로부터 450만 년이 지나고 인류는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고기를 빈번하게 먹게 되었다. 그러자 숨겨져 있었 던 직립 이족 보행의 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거리 달리기에는 불리하지만, 장거리 걷기에는 유리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인간과 침팬지가 걷는 동안 어느 정도 산소를 사용하는지를 측정한 연구가 있다. 호기성 호흡 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 때는 산소를 소비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산소가 사용되는지 조사하면 에너지 소비량을 측정 할 수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직립 이족 보행은 침팬지의 네발 걸음의 4분의 1밖에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 졌다. 다만 이런 연구는 활용하는 개체에 따라 결과에 큰 차 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직립 이족 보행의 효율이 뛰어나다는 것은 마라톤 등을 보면 분명해진다. 침팬지나 고릴라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은 무리다. 직립 이족 보행의 뛰어난 효율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에도 어느 정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삼림보다 음식물이 적은 소림이나 초원에서는 뭔가를 먹기 위해 먼 거리를 걸어 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모 에렉투스가 직립 이족 보행 을 통해 받은 혜택은 엄청났다. 고기를 찾아서 걷는 거리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아마 호모 에렉투스 는 처음으로 달린 인류였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달리게 된 것에 관해서는 간접적인 증거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호모 에렉투스의 발가락은 짧다. 발가락이 길면 걸을 때는 큰 문 제가 없으나 달릴 때는 방해가 된다. 또 엉덩이의 근육도 커졌다. 이 근육은 걸을 때는 별로 사용하지 않지만 달릴 때는 중요하다. 또한 호모 에렉투스는 반고리관이 크다. 반고리관은 귀 의 안쪽 깊은 곳에 있는데 평형 감각과 회전 감각을 담당한 다. 달릴 때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이것은 두개골 속의 구멍 에 들어가 있어서 화석으로도 확인을 할 수 있다. 오스트랄 로피테쿠스는 반고리관이 작고 호모 에렉투스와 인간은 크다. 아마 호모 에렉투스는 우리처럼 머리를 일정한 높이로 두고 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반고리관이 발달하지 않 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달리면 머리가 흔들리고 긴 발 가락도 방해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먼 거리를 달릴 수 없 었을 것이다. 만약 달릴 수 있었다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이 증가했을 것이다. 독수리가 하늘을 선회하고 있으면 그 아 래에 죽은 (또는 죽어 가는) 동물이 있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 스는 그곳이 멀어도 달려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때로는 하 이에나보다 먼저 도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고기를 손에 넣은 다음에도 직립 이족 보행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기를 손에 들고 달려서 돌아오면 된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에게 분배하면 된다.
-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에 정착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일부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했다. 한편 아프리카에 머물 렀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또는 그와 가까운 종)의 일부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DNA 분석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갈라진 것은 약 40만 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아직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없었다. 40만 년 전이라는 연대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중에서 집단이 분리된 때를 표기한 것이다. 즉, 유럽으로 향한 집단과 아프리카에 머문 집단이 갈라진 시기를 뜻하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 스가 출현한 것은 그로부터 10만 년이 더 지난 뒤의 일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마의 모양이 뚜 렷하다는 것이다. 다른 인류의 이마는 수평에 가까운데 호모사피엔스의 이마는 튀어나와 직각에 가깝다. 이마가 있다는게 우리의 특징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고도의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 전두엽의 크기가 커진 덕분이다. (다만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전두엽의 크기는 거의 비슷하다. 안와상 융 기가 낮아져서 사라진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여기에 턱이 작아지고 안면이 뒤로 들어가며 상대적으로 턱의 끝이 돌출 되었다. 즉, 아래턱이 발달한 것도 우리의 특징 가운데 하나 이다. 이런 특징은 뼈의 형태를 통해 밝혀진 것으로서 해부학 적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해부학적 특징으로 호모 사 피에스라고 판명된 인류를 해부학적 호모 사피엔스(해부학 적 현생 인류)라고 부른다. 행동이나 인지 능력에서는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와 차이가 날지도 모르지만,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뼈의 형태를 가진 인류를 해부학적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른다는 말이다.
-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일부 집단이 약 40만 년 전에 아 프리카를 떠났다. 아프리카 바깥으로 나온 집단의 일부는 유럽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유럽으로 이주한 집단에서 네안 데르탈인이 진화했고 아프리카에 계속 살았던 집단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했다. 약 30만~25만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이 두 종의 인류는 당분간 만나는 일 없이 유럽과 아프리카라는 각각 다른 장소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후 호모 사피엔스의 일부 집단이 아프리카를 떠났고 그중 유럽으로 향한 집단도 있었다. 그리고 수십만 년의 시간이 지나고 두 종의 인류는 다시 만났다. 약 4만 7000년 전의 일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오랜 세월 유럽에서 살았으나 그 추위 에 힘들어했던 듯하다. 따뜻한 시대에는 유럽의 북쪽에서도 살았지만 추운 시대가 찾아오면 남쪽의 지중해와 가까운 지역 외에는 살 수 없었다. 남쪽으로 이주한 계통도 있었 으나 북부에 계속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유적의 숫자로 추정해 보면 따뜻한 시대에는 네안데 르탈인의 인구가 증가하고 추운 시대가 찾아오면 감소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으로 향하기 직전인 약 4만 8000년 전에 유럽에서는 한랭화가 진행되어 네안데르탈인의 인 구가 줄고 있었다. 그리고 약 4만 7000년 전에 급격하게 온난화가 발생하자 호모 사피엔스가 발칸 반도로 북상하면서 유럽으로 향했다. 최초로 유럽으로 향한 호모 사피엔스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듯하다. 이 시기에 네안데르탈인의 문화 인 무스테리안 유적은 줄고 있었으나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특히 서유럽에 살고 있었던 네안데르탈 인에게는 거의 영향이 없었던 듯하다. 약 4만 5000년 전, 다시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으로 향하는데 이때도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4만 3000년 전에 많은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으로 향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급속도로 생활 영역을 확대했고 네안데르탈인이 주로 살았던 지중해 연안 지역을 대부분 점거했다. 한편 네안데르탈인은 계속 줄어들었고 집단은 분산되고 고립되었으며 약 4만 년 전에는 멸종하고 말았다. 과거에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1만 년 이상 함께 공존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유적이나 화석 의 연대가 수정되면서 둘의 공존 기간은 약 7000년 정도로 짧아졌다. 약 4만 3000년 전에 대규모로 유럽으로 향한 호모 사피엔스만 보면 네안데르탈인과의 공존 기간은 불과 3000년으로 줄어든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잠시 공존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빠르게 교체됐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양쪽 의 DNA를 절반씩 갖고 있다. 그 아이가 호모 사피엔스의 집 단에 남아 살아남았다고 하면 그 아이의 아이는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4분의 1만큼 갖게 된다. 이렇게 세대가 거듭되면 네안데르탈인의 DNA는 계속 반감되고 많은 호모 사피엔스의 게놈 중에 무작위로 흩어진다. 그러나 원래 가지고 있던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보다 새롭게 들어온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쪽이 유리하다면 이 야기는 달라진다. 이 경우 무작위 이상의 확률로 호모 사피 엔스의 게놈 속에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피부색이나 체모에 관한 유전자는 네안데르 탈인에게서 호모 사피엔스로 높은 빈도로 전해졌다. 아마 이것은 추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유전자일 것이다. 네안 데르탈인이 수만 년 동안 진화시켰을 것이다. 앞에서 네안 데르탈인이 추운 곳에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로 옷이나 불과 같은 문화의 힘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팔과 다리가 두꺼워지는 유전적인 한랭지 적응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 것이고 진화에서 유리했을 것이다. 이것은 호모 사피 에스에게 매우 고마운 이야기다. 네안데르탈인이 수만 년에 걸쳐 진화시킨 형질을 (잘하면) 단 한 번의 교잡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난 이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세계로 퍼져 나갔다. 단기간에 다양한 환경에 적 응한 것에는 문화적 힘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종으로 부터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얻는 것 또한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 진출에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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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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