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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2022. 1. 26. 20:17

- 미국에서는 전체 구매 결정의 85%를 여성이 담당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경제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현대 경영학 '구루' 중 한 명인 톰 피터스는 경제 전반에 여성이 관여하는 비중은 부동산, 가구, 휴가, 생활용품 등 약 90%에 달한다고 연구를 통해 밝혔다.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경제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가족'(맘코노미)을 위한 소비뿐만 아니라 '친인척’(골드이모), 나아가 '자신' (골드미스)을 위한 소비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고학력과 고소득 종사자들이 대규모 소비 집단으로 부상하면서 국내외 소비시장에서 '큰손' 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성들의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과거와 달리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죄의식'으로 삼지 않는 것과, IT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정보의 불균형이 크게 해소(해소를 넘어 여성들은 온라인 소비시장에서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되고 있는 것이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 한 조사에 따르면 매일 커뮤니티와 SNS를 이용하는 여성의 비중은 75.6%로 남성(52.3%)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의 소비권력 확대를 상징하는 세계적 사건 중 하나가 이탈리아 명품 시계 브랜드 '파 네라이'에서 2018년 여성들을 겨냥한 첫 38mm(여성들은 보통 시계 페이스 20~30mm대 작은 제품을 선호한다는 게 시계 업계의 중론이다) 제품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원래 이 브랜드는 남성 전용으로 여겨져 47mm, 44mm, 42mm 제품들을 주로 출시해왔다. 개당 가격이 1천만 원을 넘어가는 이 명 품 브랜드에서 여성 전용 제품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소비권력 이양 움직임은 더 이상 국내만의 현상은 아니다.
- 세대를 규정할 때는 여러 관점을 고려하는데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한 세대는 사회적 현상에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이런 환경에서 그들의 사고가 형성이 되며 그것이 미래에 그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87년 민주항쟁이나 97년 외환위기 같은 사회적인 사건을 원인으로 보고 그들을 분석하는 것이 대표적일 수 있다.
성장 환경과 경제적 요인을 연결 짓기도 한다. 풍요로운 3저(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호황의 시대에 태어나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세대여서 문화에 관심이 많다거나 성장하면서 경제적인 곤란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매우 실용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들을 묶어서 본다면 386세대들은 정치의 영향력이 큰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정치적인 사안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정치는 권력과 연관된다. 독재와 반독재의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일상의 민주화에 대해서는 잘 관찰하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당장 독재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진력을 다할 뿐이다. 자칫 더 나쁜 악이 있기 때문에 덜 나쁜 악에 대해서는 관용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정치 경제학적이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인데 경제 현상에 정치가 개입하는 것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메커니즘을 간과하고 인위적으로 규제하고 개입하는 것 을 정치적 가치의 옳음으로 합리화할 가능성도 높다. 문화적 관점은 향략적이고 소모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순수예술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고, 대중문화는 상업화된 자본의 상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문화는 민중 문화, 민속 문화에 집중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한동안 색달라 보였지만 이제는 트렌드에 맞지 않게 되었다. 만약 그것을 선동하듯이 가르치려 한다면 꼰대가 되는 셈이다.
- 386세대들이 사회학적인 의미를 잔뜩 부여한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한 것은 콘텐츠 차원에서는 90년대 학번 세대들이다. 386세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사회학적인 현실과 정치적 저항의 메시지를 부여했고 서태지를 대중성이 아니라 관념의 세계로 나가게 했지만 실제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에게서 멀어진 것은 정서적 호흡이 청춘들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대중문화는 본격적으로 90년대 학번들의 정서를 반영해 기획되기 시작했다. 즉 수용자들의 욕망을 부정하거나 계도하는 운동권적인 주입 방식이 아니라 고객의 니즈 차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영화 〈비트〉(1997)와 〈건축학개론>(2012)에는 90년대 학번들의 정서가 담겨져 있었다. 정치적 이슈와 상황보다는 자신의 정서와 상황들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인데 이것이 그들의 선택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90년대학번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앞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그들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항상 훈육과 선동의 대상이 되었고 처음부터 의식 없는 존재로 규정당했다. 이는 정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90년대 학번들에게 밀려왔고 그것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X세대론이었다. 이는 90년대 학번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다분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프레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경제는 거품과 불황을 반복한다. 정치적으로 독재 체제와 관계없이 경제는 호황이라는 버블을 이루고 있었고, 경제에 바탕을 둔 대중문화도 번성했다. 정치권력이 힘을 잃기 시작하면 자본주의 기업주의가 힘을 얻게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90년대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달성되는 듯했고 정치적 이슈의 빈자리는 X세대론이 채우는 듯 보였다. 87년만큼은 아니었다고 해도 90년대 학번 세대들 역시 사회의 모순에 대해 고민했었다. 경제권력에 관해서는 누구도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90년대 학번들은 전대미문의 IMF 체제를 통과해야 했다.
386세대들은 학점이 나빠도 취직이 되는 세대였다. 강의에 빠지고 낭만을 즐기는 것이 대학생활이었다. 집회와 시위는 그러한 코드로 소비되기도 했다. 독재 권력이 만들어낸 3저 호황의 수혜였다. 90년대 학번들도 초반에는 그런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이들에게 해외여행 자유와 어학연수 허용 등은 화려함만이 아니라 경쟁의 격화를 의미했다. 어학연수와 함께 토플보다는 토익이라는 실용적인 어학점수가 요구됐다. 또한 자원봉사나 수상실적이 취업에 영향을 미치게 될 만큼 경쟁이 심화되었다. 그 여파는 90년대 중반으로 갈수록 커졌다. 버블이 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가 오면서 X세대들은 그야말로 엑스가 되었다. 기업들은 아예 사람을 뽑지 않았다. 하지만 똥 속에서도 연꽃이 피었다. 그 꽃이 다만 바라던 연꽃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 어둠의 터널을 그들은 통과했다. 물론 그들이 바랐던 조직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견딜 만하다는 것을 체화하게 되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견뎌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경력을 쌓아 자신이 원하는 조직에 들어가게 된다. 90년대 학번들은 그렇게 위기를 극복했다.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들과 달리 90년대 학번 세대들은 집안 배경을 성공 요인으로 보지 않게 된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든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것을 몸에 익힌 세대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 낀 세대 이후의 세대들
밀레니얼 세대들은 90년대 학번 세대들보다는 훨씬 진취적으로 성장환경을 보내게 된다. 더 이상 정치적 관심이나 의식을 바라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그들 스스로도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운동권으로 활동하는 대신 사회적 캠페인에 참여했다. 어느 세대보다 자원봉사를 많이 했고 집단 팀플에 익숙하며 90년대 학번 세대들보다 쉽게 해외에 나갈 정도로 글로벌 마인드도 가지고 있다. 가족의 토대는 외환위기 극복 위에 성립했다. 하지만 사회적 상황은 그들에게 기회를 덜 주었다. 자신들의 자신감이나 실력과 달리 기회가 적었고, 신분도 더 좋지 않았다. 비정규직이 일상이었고, 불합리한 세대들의 모순이 억압하듯 포진하고 있었다. 경쟁은 치열하여 대학은 취업을 위한 학습장이 되었고 스펙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원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라고 강박하는 듯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개인들은 집안 배경이 좋은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에 대해서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더 많이 노력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결과가 없기 때문에 세대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사회경 제 구조였다면 그들이 좀 더 긍정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 지막 꼬리 칸조차 탈 수 없다는 울부짖음이 긍정으로 바뀌려면 경제 위기돌파의 경험이 필요하다.
Z세대들은 아예 처음부터 흙수저론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무기력이 지배적이었기에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다른 방식 으로 의견을 표출한다. 기존 체제에 대해서 권능을 발휘하고 싶은 것이다. n번방 같은 다크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진출하고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성취감과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들에게 꼬리 칸에 탈 수 있을지는 관심의 대상이다. 언제 적 이야기인데 아직 열차에 타는 프레임이라는 말인가. 열차는 아날로그 시대의 비유적 현실이다. 그들에게 모든 세상은 온라인으로 수렴된다. 온라인 월드가 삶에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활용했던 세대들이며 그런 시스템에 익숙하기 때문에 모든 세대 위에 존립할 수 있다고 일부 믿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물리적 공간에서 모이고 집단적인 활동을 선호한다. 핵인싸'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신천지 사태에서 젊은 층들이 대거 편입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아레나 공연장에 몰린 케이팝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도 이를 증명한다. 현실에서의 좌절감, 무기력이나 자존감의 상실을 털어버릴 수 있도록 쓰러진 자신들을 추켜세워 주는 방탄소년단과 같은 이들에게 열렬한 성원을 보내는 것은 그간의 세대론들이 총집결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 90년대 학번 세대들은 청춘기의 경제적 풍요로움과 문화적 수혜로 자유를 추구하는 낭만적 세대로 뻗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경제 파동이 그들의 궤적에 변화를 주었고 나름의 대응을 하게 만들었다. 머릿속으로는 자신의 삶도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로 가족의 평안함을 위해 노력하는 면이 강하다. 비록 자신이 가족을 이루지 않아도 전체 가족 그러니까 부모와 형제의 안위를 염려한다. 자신이 혼자 1인 가구로 살고 있어도 말이다. 그들은 자신으로 가기 위해 가족을 이루고, 자신에게 만족하기 위해 가족을 통해 자신으로 돌아온다. 자신을 위한 소비가 가족으로, 가족을 위한 소비가 자신으로 돌아오는 환류 구조 속에 있다. 단순히 대의명분과 가족주의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던 이전 세대와는 그런 점에서 다르다. 화려한 싱글보다 소박해도 즐겁고 안정된 집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 사실 경제 구조상으로 볼 때 한국 사회는 확장의 성장 구조와 거리가 멀어졌다. 저성장 기조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모험 수용의 경제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남성형의 진취적인 위기 시험 모델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사라지고 오히려 관리와 정리 정돈의 소소한 경제로 넘어간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이고 여성의 시대라는 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성 리더십은 세심하고 정리 정돈을 잘하며 행정이나 관리 체제에 능하기 때문에 남성들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만든다. 이제는 소통과 대화, 상호 보완의 시대다. 기업의 리더나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프렌드십이었다. 고객과 기업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점은 사실상 바이럴, SNS 마케팅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었지만 쉽게 간과되고는 했다.
- 남성들도 친구 같은 스타일이 부각되었는데 그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초식남이었다. 대개 초식남과 비교되는 것은 육식남이었다. 초식남을 성욕이 없는 남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이 개념은 2006년 일본 칼럼니스트가 처음 썼는데 핵심은 여자 친구에게 돈을 쓰지 않는 남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유형의 남성들은 자기 자신 에게만 관심이 많고 정작 여자 친구에게는 관심이 덜하다. 심지어 성매매업소에는 돈을 지불하면서 여자 친구를 위해서는 선물이나 식사비 등의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또한 결혼에 관심이 없고 연애만 추구하거나 여자 친구들과 연인 관계가 아닌 친구 관계로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반면 육식남은 가부장제의 남성이다. 여성들에게 돈을 잘 쓰지만 소유욕이 강하고 여성에게 성관계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창녀가 된 기분을 느낀다며 반발하는 여성들도 있다. 더구나 이들은 결혼을 통해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아주기를 원한다. 연인에 대한 소유 의식이 강해 통제도 심하게 한다. 육식남은 바람은 피우지만 가정은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초식남은 소유 의식이 없다. 친구 같은 관계를 추구하지만 쉽게 가정을 이탈할 수도 있다.
- 우선 X세대라는 말은 스스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타자가 붙인 말이다. 기성세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 말은 1991년 캐나다 작가 더글라스 커플랜드의 소설 《X세대, Generation X》에서 왔는데 미국이 아니라 한국의 청춘들을 규정했으니 견강부회가 될 수도 있었다. 어쨌든 87년 민주화운동 이후에 문화운동이 필요했고, 90년대는 문화에 대한 주목이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운동권들이 생각한 문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상품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였다. 그 가운데 별종이라고 일컬어졌던 X세대 담론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조직과 단체보다는 개인적이고 자신을 더 중요시했으며 정치 이슈보다는 문화에 더 관심이 많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에게는 대중문화가 더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런데 90년대 청춘들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X세대라고 부른 이들의 무의식에는 자본주의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개념 없는 애들이라는 세계관이 가득했다. 〈한겨레21) 2014년 4월 18일에 다음의 내용이 실렸다.
《대한민국 40대 리포트》(함영훈 외)는 이들을 베이비부머 세대와 88만 원 세대 등 주변 세대에 낀 한때의 X세대, 하지만 지금은 잊힌 세대 forgotten generation 라며 F세대'라고 지칭한다. “진보적 이데올로기와 함께 폭발적인 대중문화 세례를 동시에 받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와 소비사회의 새로운 욕망을 보여주기 시작한 첫 번째 세대"로 꼽는다.
- 컬러 TV와 스포츠, 올림픽 등은 모두 독재 권력이 만들어 놓은 3S정책이라고 386세대 등은 비판했다. 물론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보다 약간 앞선 베이비부머 세대들도 그렇게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텔레비전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바보상자라고 불렀으며 그것을 보지 않는 것을 뭔가 의식 있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의식의 잔재가 텔레비전은 욕하고 게임이나 스마트폰 중독은 방치하게 했다. 구글이 진보적이기 때문에 유튜브의 문제점을 간과하게 하는 맥락으로 이어졌다. 대중가요나 영화는 당연히 이런 유형에 속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비판적으로 대했고 그것을 훈계했다. 잊힌 세대forgotten generation는 그때 발생했다. 정치적 발언도 세력화도 없이 그들은 일상을 살았을 뿐이다.
- 가부장제 시대에 그것의 최정점에 있던 독재를 타도하는 방식도 가부장적이었다. 폭력적이었고 일방적이었다. 협상보다는 투쟁, 성장보다는 파괴도 합리화하고 정당화했다. 그것은 또 다른 독재였고 불통이었다. 대의와 명분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감정과 정서, 바람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분법적인 사고법이 팽배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독재와 반독재, 나쁜자와 옳은 자의 태도는 결국 유연한 사고를 가로막고 오히려 역이용당했다. 독재 세력을 타도하고 새로운 세상을 모색하는 데 많은 대안들이 나올 수 있었지만 하나로 획일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세상을 이데올로기나 몇 권의 사회과학 서적 그리고 학생회 동아리방에서 배우지 않은 세대가 90년대 학번들이었다. 거리에서 보는 것은 뜨겁기는 하지만 그 뜨거움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재 권력에 가려졌던 문화를 통해서 말이다. 그들이 보기에 세상은 더 넓었고 눈여겨봐야 할 분야는 더 많았다. 그것을 매체와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예민 했고, 그것 속에서 나 자신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조직의 논리보다 개인의 세계관도 중요할 수 있으며 획일적인 가치관보다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일상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미 이러한 내용을 다룬 콘텐츠들은 너무나 많이 존재했다. 단지 한국에만 없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비로소 90년대 들어 폭발을 했고 민주화의 산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광주항쟁을 말하고 4.3항쟁을 제대로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90년대 학번들은 인식해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조직이 더 이상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금융을 모르면 어처구니없게도 모든 생존 기반을 다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개인 방어가 아니라 가계경제를 방어하는 것이었다. 90년대 학번들은 가족을 중시한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는 가족은 가부장제가 아니다.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훈육하고 계도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아이들과 장난감을 공유하고 함께 프라모델을 조립하고자 한다. 또한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고 그것과 관련된 파생 콘텐츠를 같이 구매하고 갖고 놀기를 원한다. 여기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키덜트 종족이라는 단어이다. 
- 제레미 D. 홀든은 팬덤을 논한 저서 《팬덤의 경제학(Second That Emotion: How Decisions, Trends, And Movements Are Shaped)》에서 이에 관해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대중들은 본능적 편의를 위해, 쏟아지는 정보들을 삭제하고 편집하며, 구미에 맞는 정보들만을 수용, 새로운 '사실'을 창조한다. 그리고 동조자들과 결속, 자신의 의사결정이 틀릴 수도 있다는 항상적이고 잠재적인 불안을 해소한다. 이처럼 팬덤은 네트워크 세상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라고 했다. 그는 팬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로 정보를 가공 왜곡한다는 점에서 팬덤을 적극 옹호하는 태도는 아니지만, 그 속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팬덤이 네트워트성을 기본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팬덤 경제학》에서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 레이코 스콧은 대중문화의 소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관련된 결정에 대해서는 감정적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그들을 가르치는 데에 대중문화를 이용한다.” 이어 “어떤 밴드의 음악을 듣고, 어떤 옷을 입으며, 소셜네트워크에서 어떤 유명 인사를 팔로우하는지가 대부분의 젊은이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심지어 10대들에게는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지와 같은 매우 일상적인 결정조차도 자기만의 스토리가 된다.”라고 분석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이 팬덤 네트워크의 확장 심리에 대해 깊게 분석했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단순히 취향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대중음악, 대중문화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이를 소비하기 시작한 세대가 바로 90년대 학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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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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