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띄엄띄엄한 에너지만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타원 궤도의 크기가 띄엄띄엄한 것은 아니다. 전자는 궤도 자체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이 독자를 혼란에 빠뜨릴 거 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동안 지구가 지나는 경로를 궤도라 한다. 전자도 원자핵 주위를 도니까 궤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전자 의 궤도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핵심이다. 어차피 이책 에서 양자역학을 다루지 않기로 했으니 궤도가 없다는 말의 의미를 설 명하기보다 궤도 없이 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있는지에 주목할 거다. 즉 양자역학은 전자의 '위치'가 아니라 '상태'를 기술한다.
- 수소 원자에는 전자가 하나 있다. 이 전자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수소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전자가 가질 수 있는 가 능한 상태를 원자호텔의 비유로 설명해보자. 전자가 투숙객이라면, 상태는 호텔 객실이다. 호텔 객실은 층과 호수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2층 3번째 객실이면 203호다. 전자가 어떤 상태를 갖는다는 것은 그 객실에 들어간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수소 원자를 이루는 한 개의 전자는 객실 하나에 들어가야 한다. 이 호텔에서는 층이 높을수록 전 자의 에너지가 크다. 보통의 호텔은 층마다 객실의 개수가 같지만 이 호텔에서는 층마다 객실의 개수가 다르다. 1층에 1개, 2층에 4개, 3층에는 4개의 객실이 있다. 이 수들이야말로 원자, 나아가 세상 만물의 특성을 결정짓는 마법의 수다.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이 숫자가 조금만 바뀌어도 세상의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진다.

- 지구상의 다세포 생물은 대개 산소 호흡으로 에너지를 얻는다. 앞서 이야기한 탄수화물, 지질을 산소로 태워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호흡의 부산물이다. 우리가 탄소를 자연에 되돌려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 같은 동물은 다른 동물이나 식물을 먹어서 탄소를 얻는다. 식물도 생물이니 탄소가 필요하다. 식 물은 동물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에서 탄소를 얻는다. 원자는 영원불멸 한다. 생명의 원자인 탄소는 동물과 식물 사이를 오가며 여러 가지 물 질의 일부가 될 뿐 결코 사라지거나 만들어지지 않는다. 동물과 식물 은 이산화탄소를 통해 탄소를 주고받는다. 동식물 간 원활한 탄소 교 환이 가능한 것은 이산화탄소가 기체이기 때문이다.
- 규소 기반 생명체가 있어서 탄소 기반 생명체와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이산화탄소 대신 이산화규소(SiO2)를 통해 규소를 교환해 야 할 거다. 하지만 이산화규소는 상온에서 기체가 아니라 고체다. 이 산화규소 기체를 얻으려면 무려 2950도의 온도가 필요하다. 고체로 자유로이 물질을 교환하기는 힘들다. 규소 기반 인간은 쉴 새 없이 이 산화규소 알갱이를 입 밖으로 뿌려대거나 수시로 배설해야 할 거다. 더구나 이것들은 무거워서 땅으로 떨어질 테니, 식물은 땅에서 규소를 흡수한 뒤 중력을 거슬러 몸의 각 부분으로 이동시키는 수밖에 없다. 이산화탄소는 잎에서 기공이라는 작은 구멍을 열어두기만 하면 공기 에서 얻을 수 있다. 원자의 특성은 생명의 형태를 결정한다.

- 2개의 질소 원자가 결합하면 질소 분자(N2)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3개의 팔로 강하게 결합된 분자다. 그래서 삼중결합이라 부른다. 탄소 의 경우도 탄소 2개로 분자(C2)를 형성할 수 있지만 3642도 이상의 높 은 온도에서만 가능하다. 반면 질소 분자는 상온에서 존재할 뿐 아니 라 그 결합이 산소 분자나 수소 분자의 결합보다 두 배 가까이 강하다. 지구에서 보통의 생물이 이것을 깨기는 대단히 힘들다.
질소는 생물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단백질 골격의 절반이 질소 다. DNA의 코드인 염기를 만드는 데도 질소가 꼭 필요하다. 이 정도만 말해도 충분하리라. 그런데 공기의 80퍼센트가 질소다. 질소는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식물의 탄소 공급원인 이산화탄소가 공기의 0.03퍼센트라는 걸 고려하면 질소는 거의 무한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생물은 공기 중의 질소 분자를 활용할 수 없다. 질소 분자의 삼중 결합을 깰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 쌀이 배달되었는데 특수 강철 상자에 담겨 있어 쌀을 꺼낼 수 없는 거랑 비슷하다. 질소가 삼중결합이 아니라 한두 개의 팔로 결합된 상태에 있을 때 '고정 질소'라고 부른다. 생물은 질소 분자는 이용할 수 없지만 고정 질소가 되면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고정 질소는 단백질이나 염기, 암모니아 등의 여러 형태로 변화하 다가 일단 삼중결합의 질소 분자가 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생물은 점점 줄어드는 고정 질소를 놓고 서로 피비 린내 나는 전쟁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자연에서 질소 분자로부 터 고정 질소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우선 번개다. 번개가 칠 때 그 엄 청난 에너지 때문에 삼중결합이 깨질 수 있다. 사실 드물지만 질소 분 자의 결합을 깨는 생물도 존재한다. 질소고정박테리아인데 질소고정 효소라는 특별한 단백질을 가진다(단백질 만세!). 콩과 식물의 뿌리에 기 생하여 살기 때문에 뿌리혹박테리아라고도 부른다." 이 두 가지 과정이 거의 전부다. 그렇다면 지구상 생물의 총량은 번개 치는 횟수와 뿌리혹박테리아의 주당 근무 시간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몇 년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작물로 농사를 지으면 밭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농부들은 지력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그 런데 몇 년에 한 번씩 콩을 심어주면 그런 문제가 사라진다. 이제 당신 은 이유를 알 수 있으리라. 생산성이 떨어진 것은 밭의 질소가 고갈되 었기 때문이다. 농작물이 밭에 있는 고정 질소를 모조리 훑어 먹어버린 것이다. 질소가 부족하면 탄소나 산소가 아무리 많아도 생물은 생존할 수 없다. 라면을 끓이려면 면, 스프, 물이 필요하다. 스프와 물이 아무리 많아도 면이 없으면 라면을 먹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콩을 심으 면 콩과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는 질소고정박테리아가 공기 중의 질소 분자를 고정 질소로 바꾸어준다. 우리는 이런 땅을 비옥하다고 한다. 물론 고정 질소가 들어 있는 물질을 직접 땅에 뿌려도 효과가 있다. 바 로 인간과 가축의 배설물이다. 물론 동물을 죽여서 땅에 뿌려도 된다. 동물의 몸에도 질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여서 땅에 뿌릴 동물이 있다면 일단 그 동물을 맛있게 먹고 소화되어서 나오는 배설물을 뿌리 는게 현명할 거다.

-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습은 따지고 보면 원자의 특성에서 그 기 원을 찾을 수 있다. 지구상 생명체는 수소 이온을 배터리로 사용하여 에너지를 저장한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수소 이온을 모으고, 동물 은 호흡을 통해 수소 이온을 모은다. 동물의 호흡은 식물이나 다른 동 물을 먹이 삼아 얻은 음식을 연료로 이용하니까 결국 그 근원은 식물 이다. 식물의 광합성이 태양 빛을 이용하고, 태양이 수소 핵융합 반응 으로 빛을 낸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수소는 지구상 모든 생명 에너 지의 근원이라 할만하다. 이는 수소가 양성자와 전자를 하나씩만 가진 단순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탄소는 양자역학으로 이해되는 4개의 팔 을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분자를 만드는 뼈대가 되는데, 이렇게 생 명이라는 건축을 디자인한다. 질소는 공기 중에 널려 있지만 3개의 전 자가 만드는 양자역학적 삼중결합 때문에 쉽사리 재활용되지 못한다. 하버 - 보슈법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맬서스의 암울한 예측을 현실로 마 주했으리라. 산소는 독이다. 비어 있는 전자의 자리를 채우려는 산소 의 양자역학적 욕망 때문이다. 하지만 산소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존재 할 수 없다. 2장에서 다룬 수소, 탄소, 질소, 산소는 당신의 몸을 구성하 는 원자의 99퍼센트를 이룬다.
세상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세상 모든 것을 원자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원자는 세상이 왜 이런 모습인지 알려준다.

- 사람의 혀는 나트륨 이온이 닿으면 짜다고 느낀다. 맛을 느끼는 과정은 복잡하지만 혀가 감지하는 것은 원자가 아니라 전하다. 나트륨 이온과 똑같은 전하량을 가지는 리튬 이온이나 칼륨(K) 이온 모두 짠 맛이 나는 이유다. 물론 같은 전하량을 가지더라도 루비듐(Rb)이나 세슘(ssCs)처럼 이온의 크기가 너무 커지면 다른 종류의 짠맛을 느끼게 된다. 나트륨 이온과 칼륨 이온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하다. 지금 이순 간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눈으로 얻은 시각 정보가 뇌 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몸에서 정보는 전기 신호로 전달되는데, 정확 히 말해서 나트륨 이온과 칼륨 이온이 세포막을 이동하며 만드는 전 류 신호다.' 이런 이온들이 없으면 신호가 멈출 것이고 우리는 바로 죽 을 것이다. 숨을 쉬려고 해도 숨 쉬기에 관여하는 근육을 움직일 신호 가 필요하다.
나트륨이 생존에 중요하기에 우리는 짠맛에서 행복을 느끼고 쉽게 중독된다. 아니, 짠맛에 심드렁했다면 생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 가끔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자동차 부동액으로 사용되는 에틸렌글리콜(C2H4(OH)2)을 실수로 마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냐는 생각이 드셔도 좀 참으시라. 답은 에탄올 (C2H5OH), 그러니까 술을 퍼마시는 거다. 에틸렌글리콜은 몸의 효소와 반응하여 옥살산(C2H2O4)을 만들어내는데 이 녀석이 콩팥에 해를 입힌 다. 에틸렌글리콜은 탄소, 산소, 수소 10개가 모인 분자다. 이 분자는 산 소와 수소로 구성된 -OH 작용기를 가지고 있다. 에탄올도 마찬가지 다. 에틸렌글리콜이 몸에서 처음으로 반응하는 효소는 '알코올탈수소 효소'다. 에탄올을 잔뜩 마시면 에탄올이 탈수소효소를 독점하게 되므 로 에틸렌글리콜은 몸에 해를 끼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배설된다. 탈수 소효소가 에탄올과 에틸렌글리콜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 설파제 sulfanilamide는 연쇄상구균 감염에 효과가 있는 항생제다. 설파제가 개발되기 전 치러진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총에 맞아 죽은 사람 보다 세균 감염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세균은 파라아미노벤조산 이라는 화합물에서 엽산이라는 물질을 만든다. 이 물질은 생명체의 생 존에 꼭 필요하다. 인간은 비타민B의 형태로 엽산을 섭취해야 한다. 설 파제의 구조는 파라아미노벤조산과 유사하다. 세균이 항생제 설파제와 파라아미노벤조산을 놓고 혼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결국 세균의 엽산 생산이 방해를 받고 성장이 둔화된다. 이렇게 설파제는 세균을 퇴치한 다. 분자에서 중요한 것은 원자들이 배열된 구조, 특히 작용기의 구조다.

- 원자를 기술하는 양자역학으로 돌멩이 같은 일상적 크기의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물리학자들은 그렇게 해도 뉴턴 역 학과 같은 결과라 나올 거라 믿는다) 그냥 뉴턴 역학을 사용하는 것이 편하다. 이 두 가지 방법이 연속적으로 연결되는지, 불연속적인지 아직 불분명 하지만 대상에 따라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골라 사용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돌멩이의 낙하를 설명하기 위해 양자 역학으로 계산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돌멩이가 언제 떨어질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원자를 설명하려면 양자역학이 반드시 있어 야 한다. 그렇다고 자유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의 행동을 원자로부 터 이해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자에서 분자, 분자에서 세포, 세포 에서 인간으로 층위가 바뀔 때마다 이전 층위에서 없던 새로운 성질이 창발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층위에 따라 다른 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많은 것은 다르다More is different.

- 축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2500년 이전의 시기다. 하지만 우 리는 지금까지 축의 시대가 보여준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는 것 같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하나같이 공감과 자비를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을 친절히 대하고 관대하게 행동하면 세상은 좋아진다. 다른 사람은 다른 생명으로 나아가 우주 전체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이런 깨달음을 얻 기 위해 신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문화적으로도 상이한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은 축의 시대의 깨달음이 인류의 본성에 대해 뭔가 심오한 이야기를 해준다고 볼 수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인과율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인간에게 세상을 인과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부 분이 '신'의 의도로 채워졌다.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규율은 이기적이 고 호전적인 호모 사피엔스가 그나마 서로 죽이지 않고 협력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신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신에 대한 탐구는 축의 시대를 거치며 상이한 문화 권에서 비슷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자 비다.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지만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에 이르는 길에는 왕도가 있었던 거다. 이후 종교는 세속화되기도 하고 권력과 더 긴밀히 결탁하기도 했지만, 그 핵심 내용은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채 전해지고 있다. 결국 신은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 조화롭게 살기 위해 만들어낸 궁극의 상상력이었던 것이 아닐까.

- 산소와 알루미늄은 만나면 쉽게 결합한다. 그렇다면 녹이 잘 슨다는 말이다. 알루미늄이 잘 녹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단하고 치밀한 알루미늄 산화물의 특성 때문이다. 알루미늄은 표면 에만 녹이 슬고 멈춘다. 표면을 뒤덮은 단단한 산화알루미늄 막이 내 부의 금속 알루미늄을 지켜주는 것이다. 녹으로 녹을 막는 셈이다. 창 틀에 있는 알루미늄새시는 이 정도 방어막으로 충분하지만 음료수 캔 은 그렇지 않다. 추가로 캔을 코팅해줘야 한다.
맥주는 화학 반응성이 크지 않아 캔을 코팅하지 않아도 된다. 맥주에 들어 있는 단백질이 산소를 용해시켜 알루미늄과 반응하는 것을 막는다. 오렌지주스도 비타민C가 산소를 제거하여 알루미늄 캔이 산화 되는 것을 방지한다. 다른 과일에 비해 오렌지주스가 비교적 일찍 캔 의 형태로 판매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콜라는 다르다. 콜라는 녹을 생기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음료다. 그래서 맥주 캔이 나오 고수십 년이 지나서야 콜라 캔이 나오게 된다. 필자가 어릴 적 콜라는 유리병에만 담겨 있었다. 콜라 캔의 알루미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플 라스틱 막으로 코팅되어 있다. 부식만 생각한다면 맥주 캔에 코팅할 필요는 없지만 요즘은 맥주 캔도 코팅을 한다. 부식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녹이 슬지 않아 도 김이 빠지면 맥주의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 지구 표면에서 가장 많고 중요한 원자는 산소 다. 지각의 거의 모든 물질은 산화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산화는 생명 이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규소는 무생물의 뼈대이고, 탄 소는 생물의 뼈대다. 규소와 탄소가 모두 14족 원자인 것은 우연이 아 니다. 게르마늄도 14족 원자이지만 지각에서 그 양이 규소의 100만분 의 1에 불과하다.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다. 단언 할 수는 없지만 규소로 된 땅바닥, 그 위에서 살아가는 탄소 생명체, 그 리고 모든 물질을 넘나들며 변화를 일으키는 산소라는 구도는 생명체 가 존재하는 지구형 행성의 보편적인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 자연에서 큰 결정이 저절로 만들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쉽게 말해서 귀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정도 크기가 되는 결정을 보통 '보석'이라 부른다. 지각에 가장 흔한 산소와 규소가 만나 결정을 형성 하면 '수정'이라는 보석이 된다. 이 과정에 수분이 더해지면 수정이 무 지개 색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오팔'이라 불리는 보석이다. 지각에 가장 많은 금속인 알루미늄과 지각에 가장 많은 원자인 산소가 결합 한 산화알루미늄이 결정으로 성장할 때 크로뮴 원자가 약간 첨가되면 붉은색 '루비'가 되고, 타이타늄과 철 등이 더해지면 파란색 '사파이 어'가 되며, 베릴륨, 크로뮴이 더해지면 초록색 '에메랄드'가 된다. 결 국 보석을 이루는 원자는 지각을 이루는 흔한 원자들이다. 보석이 귀 한 것은 그것을 이루는 재료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보석의 색이 아름다운 것은 소량의 불순 물 금속 원자 때문이다.

- 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려면 경쟁하는 두 가지 힘을 알아야 한다. 첫째, 별은 수축하려고 한다. 별을 이루는 입자들 사이에 작용하 는 중력 때문이다. 중력은 서로 당기는 힘이므로 한 점으로 모여든다. 둘째, 별은 팽창하려고 한다. 원자핵의 융합으로 방출된 에너지는 막 대한 열이 되어 입자들을 격렬하게 운동시켜 바깥쪽으로 밀어낸다. 별 은 이 두 힘의 평형으로 존재한다. 균형이 깨지면 수축하거나 팽창하 게 된다. 팽창을 막지 못하면 초신성처럼 폭발하게 되고, 수축을 막지 못하면 블랙홀이 될 수 있다.
태양의 사진을 보면서 격렬한 핵융합 반응으로 표면이 폭발하듯 이글거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태양의 표면 온도는 5500도 정도로 핵융합이 일어날 만큼 뜨겁지 않다. 핵융합은 태 양 중심에서 일어나는데 온도가 1000만 도에 달한다. 수소가 융합하 면 헬륨이 된다. 수소가 무한정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결국 중심부 의 수소가 모두 헬륨으로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은 꺼 지는 걸까? 상황은 다소 복잡하다. 이때가 되면 중심 근방에 수소는 없 고 헬륨뿐이다. 수소가 융합하여 모두 헬륨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 만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면 여전히 수소가 있다. 그곳은 온도가 중심보다 낮아 아직 융합 반응이 시작되지 않아서 그렇다. 태양이 복숭아 라면 헬륨은 복숭아씨에 해당하고 복숭아 과육에 수소가 있는 셈이다. 이제 이 부분의 수소가 융합하며 탄다. 중력이 충분히 강하다면 헬륨 도 짓눌려 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이제 헬륨도 수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중심에서는 헬륨이 융합하고 그 바로 바깥쪽에서는 수소가 융합하 는 것이다. 이제 태양은 부풀기 시작하는데 안타깝게도 결국 엄청나게 커져서 지구를 삼켜버릴 것이다. 50억 년 이상 지나야 올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이때의 태양을 적색거성이라 부른다. 2번 헬륨이 융 합되고 있는 중심에서는 6번 탄소와 8번 산소가 만들어진다. 이 탄소 와 산소는 먼 훗날 우주의 어딘가에서 탄소 기반 유기 생명체의 일부 가 될지도 모른다.
태양보다 더 무거운 별은 이런 융합으로 모두 철이 될 때까지 반응이 계속된다. 철보다 무거운 원자핵은 철보다 불안정하므로 이런 방식 으로 만들 수 없다. 핵융합으로 철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별의 종말 이 온 것이다. 더는 탈 것이 없으므로 밖으로 밀어내는 힘이 사라지고 중력만 남는다. 그러면 별이 급작스럽게 수축하다가 폭발하게 되는데, 바로 초신성이다. 엄청난 폭발 속에서 철보다 불안정한 원자들도 서로 융합할 기회를 얻게 되고, 이때 철보다 무거운 원자들이 만들어진다. 초신성 폭발 이후 남는 물질은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된다.

- 표준 모형에 중력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비극이다. 중력은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발견된 힘이다. 물리 학은 뉴턴이 중력을 설명하며 탄생했다. 그 이후 발견된 모든 힘과 입 자는 하나의 통합된 시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데 중력만 예외다. 거의 모든 중국요리를 할 줄 아는 인공지능 로봇이 짜장면을 만들 줄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중력은 시공간과 관련한 힘이며 우주의 거대한 규모에서만 중요성을 갖는다. 원자 규모에서 중력 효과는 무시 할만한 수준이다. 표준 모형의 힘은 물질을 설명하며 원자 규모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하지만 시공간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을 해주지 못한 다. 표준 모형이 중력을 포함하도록 확장되는 날, 우주의 모든 것을 명 징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표준 모형의 내용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물리학자인 나도 답하기 어렵다. 양자역학이 탄생했을 때, 인류는 비로소 원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원자의 집합체이며 그 자신의 존재가 원자, 분자들의 생화학 과정에 의존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자연 현상도 분자들 사이의 화학 반응으로 일어난다. 지구 표면에서 흙, 암석, 생명체 등을 이루는 분자들은 안정된 원자구조를 이룬다. 이 들의 결합을 깨뜨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태양에서 온 빛 에너지 다. 다행히 태양에서 온 빛의 에너지는 원자구조를 깰 정도로 크지 않 다. 우주선이라 불리는 높은 에너지 입자가 지구로 쏟아지고 있지만 지구 자기장이 이를 막아준다. 따라서 지구 표면에서 원자는 쪼개지지 않는 물질의 최소 단위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전자가 이동하거나 원자들이 뭉쳤다가 흩어지는 것이다. 원자를 이해하면 지구에서 일어나는 세상만사를 이해하는 것 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원자를 이해하자 인류 문 명의 모습 자체가 바뀌게 된다. 19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컴퓨터, TV, 플라스틱, 스마트폰, 인터넷, 형광등, 합성 섬유, 항생제, 인공위성, 생명 공학 기술 등이 20세기에 나타난 것은 20세기 초 인간이 원자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표준 모형은 원자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원자핵의 세부 사항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핵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준 모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표준 모형의 이해 자체가 인류 문명의 기술적 진보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준 사례는 아직 없는 듯하다. 우리 주변에서 원자력 발전을 제외하고 원자핵을 깨뜨릴만한 에너지를 쉽게 얻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표준 모형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인터넷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HTTP 통신 규약이 발명되었 고, 거대 가속기를 건설하는 동안 부산물로 수많은 기술적 진보가 있 었다. 하지만 쿼크나 글루온을 이용한 새로운 통신이나 에너지원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인류 문명이 태양계 내에 머무는 한 이 런 지식이 직접적으로 인류의 편의를 위해 사용될 날이 올지는 불확 실하다.

- 생명은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자로 되어 있지만,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다. 생명은 지구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니 (지금까지는 지구 밖에 서 생명이 발견되지 않았다) 우주 전체를 통해 보면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 고 생명이야말로 부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으로 충만한 우 주에 홀연히 출현한 생명이라는 특별한 상태.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라 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잠시 생명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머무는 것 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죽음은 이상한 사건이 아니라 생명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생명이 부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한 것은 아닐까? 물리학자의 눈으로 죽음을 바라보면 생명 은 더없이 경이롭고 삶은 더욱 소중하다. 이 기적 같은 찰나의 시간을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낭비하거나 남을 미워하며 보내고 싶지 않다.
죽음이 우주에서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이야기는 막상 사랑하는 이 의 죽음을 마주한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생명이 없는 우주 에서는 생명이 놀라운 일일지라도, 이미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생명은 당연한 것이라 죽음은 인간에게 속수무책의 재앙일 뿐이다. 하지만 누 군가는 물리학적인 죽음에서 소소한 위로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죽음으로 모든 것이 소멸된다는 생각에서 벗어 날 수는 있다. 죽음 이후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남기고 또 무엇이 된다.

- 지금으로부터 약 35억 년 전, 그러니까 지구상 생명이 탄생한 지 몇 억 년 지나지 않아 시아노박테리아가 광합성을 시작했다. 산소는 광합 성의 쓰레기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수십억 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을 했고, 그 결과 지구는 산소로 가득한 행성이 되었다. 산소 호흡하는 생 물들에게는 천국이 구현된 것이지만 산소를 이용하지 못하는 생물에 게는 재앙이었을 것이다. 산소는 반응성이 강한 원자다. 만약 외계인 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유독가스로 가득한 위험하기 그지없는 행성이 라 생각할지 모른다. 물리학자의 눈에 광합성이란 물을 분해시키는 것이다. 반응성 강한 산소에 찰떡같이 들러붙은 수소를 떼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빛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호흡은 탄소와 수소가 천천히 연소되는 현상으로 등불이나 촛불이 타는 것과 모든 면에서 흡사하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숨을 쉬고 있는 동물은 살아 있는 연소체다.
1790년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에 보낸 논문에 나오는 글이다.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성경에도 신 이 아담에게 숨을 불어넣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호흡은 신성한 것이 다. 호흡은 생명 그 자체다. 그런데 호흡이 연소 현상에 불과하다고? 당시 시인들이 라부아지에의 이론에 크게 반발한 것은 이해할만하다. 라부아지에가 이야기한 연소 현상이 허파가 아니라 모든 세포에서 일 어난다는 사실은 1870년이 되어서야 밝혀진다. 그렇다면 세포 내부 정확히 어디에서 호흡이 일어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1949년에야 얻어진다. 바로 미토콘드리아다.

- 양자역학에 따르면 산소는 전자를 좋아한다(사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중요한 일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대개 산소가 범인이다). 다른 원자에 비해 전 자를 강하게 당겨서 전자가 원자핵에 가까이 있게 된다. 전자기학에 따르면 양전하(원자핵)와 음전하(전자)는 가까이 있을수록 에너지가 낮 다. 서로 당기기 때문인데 중력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보다 지면에 있는 인간의 에너지가 낮다. 인간이 인공위성보다 지구 중심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당신이 인공위성의 위치에 도달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인공위성을 그 위치에 올려놓기 위해 로켓에 실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며 날려 보내는 이유다.
호흡에서 일어나는 일은 간단하다. 탄소 주위에 있던 수소를 싹 걷어 내서 (전자라면 환장하는) 산소 원자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수소의 전자를 산소가 차지하면 전기력에 의해 에너지가 낮아진다. 산소가 전자를 가 까이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또 탄소 주위에 산소가 하나(포도당)에서 둘 (이산화탄소)로 늘어나는데, 역시나 산소가 탄소의 전자쌍을 빼앗아 에너 지가 낮아진다. 결국 산소가 전보다 전자를 더 가까이 가져가서, 즉 전자 가 원자핵에 더 가까이 낙하하면서 에너지가 낮아진 것이다. 에너지 보 존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뀔 뿐이다. 포도당 과산소가 반응하여 물과 이산화탄소가 되면서 처음보다 에너지가 낮아 졌으니 처음과 나중의 차이에 해당하는 남는 에너지가 존재한다. 바로 이 남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동물은 생존한다.
- 미토콘드리아 내부에서 아세틸 COA는 시트르산 회로라고 불리는 연쇄 화학 반응을 점화시킨다. 옥살로아세트산이 아세트산으로 변하 면서 시작되는 이 반응은 7단계를 거쳐 다시 옥살로아세트산으로 돌 아온다. 세포 호흡의 과정에서 최종 산물의 하나인 이산화탄소가 생성된다. 아세틸 COA가 공급되는 동안 이 연쇄 반응은 지속된다. 마치 물 (아세틸 COA)이 쏟아지는 동안 물레방아(시트르산 회로)가 도는 것과 비슷 하다. 물레방아는 피스톤을 움직여 밀을 빻아주지만 시트르산 회로는 ATP 2개와 두 종류의 분자를 만든다. 이 두 종류의 분자야말로 호흡 에서 최대의 부가가치를 갖는 물질이다.
우선 두 종류의 분자는 전자를 내놓고 양이온으로 변한다. 분자에 서 나온 전자는 전자 전달계라 불리는 단백질 집단을 거치며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전자전달계는 말 그대로 전자를 전달하는 장치다. 전자전달계를 지난 전자는 최종적으로 물을 만드는 데 쓰인 다. 전자가 전자전달계를 지나는 동안 어떻게 에너지를 만들어낼까?
이 문제는 생물학의 오랜 난제였다.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ATP의 개 수는 일정하지 않다. 세베로 오초아Severo Ochoa (1959년 노벨생리의학상 수 상)가 38개라는 숫자를 처음 알아냈지만 이후 실험마다 28~38개까지 다른 숫자들이 나왔다. 숫자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이게 뭐 대수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화학을 배운 사람은 이것이 재앙 이라는 것을 안다. 중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하는 일은 대부분 화학 반 응의 반응물과 생성물의 양을 계산하는 것이다. 회계 장부에서 수입과 지출이 딱 맞아야 하듯이 화학 반응의 반응물과 생성물의 양도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1961년 피터 미첼 Peter Mitchell (1978년 노벨화학상 수상)은 놀라운 제안을 한다. 사람들이 10년 가까이 그의 이론을 철저히 무시한 것만 봐도 그의 이론이 정말 놀라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첼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막스 플랑크Max Planck의 말을 인용했다. "새로운 과학 개념 은 반대자들이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죽기 때문에 정착된다." 10년 동안 겪었을 내면의 고통이 느껴진다.
이제 미첼의 아이디어를 살펴보자. 미토콘드리아는 이중의 세포막 을 가지고 있다. 내막內膜과 외막外膜이라 불리는 두 개의 막사이 공간 에 비밀이 숨어 있다. 전자전달계는 사이토크롬이라 불리는 단백질들 의 집단으로 내막에 박혀 있다. 전자가 전달되는 동안 사이토크롬들이 순차적으로 산화-환원 반응을 거듭하게 된다. 산화-환원 반응이 전자 를 잃거나 얻는 것이니 전자가 이동할 때 산화-환원 반응이 연쇄적으 로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흥미롭게도 이때 나오는 에너지로 곧장 ATP를 만들지 않고 세포 내부의 양성자를 막 사이의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데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미첼의 핵심 아이디어다. 결국 전자 전달계는 막 사이 공간으로 양성자를 펌프질하여 농축시킨다. 물건을 팔 고돈(ATP)이 아니라 쿠폰(양성자)을 받는 셈이다. 왜 이러는 걸까?
우리 주변의 공기 밀도는 균일하다. 안방이 거실보다 공기가 희박 하거나 하지 않다는 말이다. 열역학 제2법칙 때문이다. 풍선 내부의 공 기 밀도를 주위보다 높게 하려면 뭔가 일을 해줘야 한다. 입으로 불거 나 공기 주입기로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 아무튼 그렇게 하면 주위보 다 풍선 내부 공기의 압력이 커진다. 이제 풍선을 열면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여기에 바람개비를 놓으면 회전할 것이다. 전자전달계에 의 해 농축된 양성자가 정확히 이렇게 사용된다. 막 사이 공간에 농축된 양성자는 내막에 구멍이 생기면 풍선 내부의 공기가 뿜어져 나오듯 세 포 내부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실제로 'ATP합성효소'라는 단백질 은 원통 모양의 구멍을 가지고 있어 양성자가 구멍으로 통과한다. 양 성자가 이동할 때 바람개비처럼 생긴 회전자 단백질이 돌아가며 ATP 가 만들어진다. 바람개비가 돌아간다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 벌어지는 일이다. 양성자가 이동할 때마다 회전자는 120도씩 회전한다.
처음 120도를 돌 때 ADP가 효소에 결합한다. 다음 120도 도는 동안 ADP에 인산이 붙어 ATP가 만들어진다. 마지막 120도 회전할 때 ATP 가 떨어져 나온다.
전자전달계는 전자가 지나가는 동안 ATP를 만들지 않고 양성자 저수지에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쓴다. 더구나 저장된 양성자는 ATP 생성만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산화 적 인산화 과정에서 생성되는 ATP의 개수가 들쭉날쭉했던 것이다. 정 리해보자. 포도당은 해당 과정을 통해 피루브산으로 바뀐다. 피루브산 은 미토콘드리아 내부로 들어가 시트르산 회로를 점화시킨다. 여기서 만들어진 물질이 전자전달계에 전자를 준다. 전자전달계는 미토콘드 리아 내막과 외막 사이에 양성자를 농축시킨다. 농축된 양성자가 내막 을 가로질러 이동할 때 ATP가 만들어진다.

- 생물은 원자로 만들어진 화학 기계다. DNA, RNA, 단백질 모두 원 자로 되어 있고, 이들 사이의 화학 반응은 양자역학에 따라 작동한다. 화학 반응을 지시하는 존재는 따로 없다. 충분히 많은 분자가 빠른 속 도를 갖고 무작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원자 수 준에서 이것을 위한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는듯하다. 하지만 수많은 원자들이 모여 생명의 몸체를 이루는 순간, 외부 변화에 저항하며 자 신을 유지하고, 나아가 자신의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 탄생한다. 적어 도 현재의 물리학으로 원자 수준에서 생명이 있어야 할 필연성을 끌어 낼 수는 없다. 물리학은 이미 존재하는 생명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생명도 물리 법칙에 따라 작동된다. 하지만 생명을 설명하려면 우리는 원자의 층위에서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 생명을 원자의 집단이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생명을 단순히 원자의 집단으로 환원하기는 힘들다. DNA는 유전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유일한 원자구조인가? 아미노산 가운데 생명의 단백질로 20개만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명의 에너지 대사에 사용되는 화학 반응 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었나? 우 리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 힘들다. 따라서 지구 밖 우주의 어 딘가에 생명이 있다면 그것을 이루는 분자가 지구의 생명과 얼마나 다 를지 예상할 수 없다.
생명은 자신을 복제한다.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DNA에 저장하 고 이것을 복제한다. 복제의 전 과정은 물리적이다. DNA로부터 자신 을 만드는 과정 또한 물리적이다. 과정에 참여하는 개별 원자와 분자들은 열운동을 할 뿐이다. 모든 과정은 양자역학에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생명이 왜 자신을 복제하려고 하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복제하려는 어떤 의도나 목적이 이런 원자 구조물을 만들었을까? 아 니면 우연히 만들어진 원자구조물이 복제의 특성을 얻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끝없이 복제하고 있는 것일까? 물리학은 우주에 의도나 목 적이 없다고 말해준다. 그렇다면 생명은 우연히 생겨난 자기 복제 기 계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지구 밖에서 다른 생명체를 발견하는 날 이 문제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외계 생명체 의 화학 체계가 지구의 생명과 유사하다면 생명의 보편 원리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편 생명에 대한 이론을 구축해야 한다. 지구 밖에 생명체가 없다는 것은 우주 전체를 샅샅이 확인할 때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외계에 생명체가 없다고 가 정하면 우리는 그냥 엄청난 우연의 산물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 아마도 최초의 생명체는 열수분출공 기둥 내부의 기포와 같이 작 은 공간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생명체가 외부 환경과 구분되기 위해서 는 외부와 격리된 공간이 필요한데, 기포 공간이 그 역할을 한 거다. 에 너지는 양성자의 형태로 외부에서 공짜로 공급되니까 이것으로 당장 생명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 수 있다. 물론 그 물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기포 공간을 대체 할 세포막이 형성되자 생명체는 자유를 찾아 열수분출공을 떠나게 된 다. 독립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제는 스스로 양성자 농도차 를 만들어야 한다. 호흡이나 광합성 장치를 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포 공간은 변형이 일어나기 힘들지만 세포막은 유동적이라 둘로 나 뉘는 것도 가능하다. 자신을 둘로 분열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면 이제 DNA만 있으면 복제도 가능하다. 이 이야기에는 허점이 많다.
하지만 열수분출공에서 출발한 생명은 처음부터 광합성이나 호흡 같 은 복잡한 생화학 과정의 발명 없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최초 생 명체의 강력한 후보로서 많은 과학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것은 아직 그럴듯한 가설일 뿐 최초의 생명체가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럼 자신을 유지하며 복제하는 생명체가 탄생했다고 하자. 그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 공생, 진화를 추동하다
최초의 생명체인 원핵생물은 세포막으로 둘러싸인 세포질 내에 각종 단백질 및 DNA가 뒤섞여 존재하는 형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진핵생물은 핵막, 미토콘드리아, 소포체와 같은 소기관을 가지며 그 크기 와 복잡성에 있어 원핵생물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진 핵생물이 부서별로 방이 따로 할당된 사무실로 구성된 대기업 건물이 라면, 원핵생물은 칸막이도 없이 모든 부서가 한 방에 모여 있는 원룸 오피스텔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진핵생물은 단순한 원핵생물들의 공생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다.
21억년 전 어느 날 원핵생물 하나가 또 다른 원핵생물인 산소 호 흡하는 호기성 프로테오박테리아를 집어삼켰다. 이유는 모르지만 프 로테오박테리아는 소화되지 않고 원핵생물 내에 살아남았다. 프로테 오박테리아 입장에서 볼 때 소화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포식자 원핵생 물 내부에 있는 것이 안전했다. 밖에 나가봐야 다른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테오박테리아를 삼킨 원핵생물 입장에서 도 내부의 프로테오박테리아는 유용했다. 프로테오박테리아는 점차 적응하여 미토콘드리아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산소 농도가 증가하고 있었는데, 산소는 반응성이 강한 원자다. 쉽게 말해 '독'이다. 미토콘드 리아는 산소호흡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내부의 미토콘드리아가 산 소도 제거해주고 에너지도 만들어주니 일석이조라 할만하다. 숙주인 원핵생물이 할 일은 먹이를 공급해주는 것이다. 아마도 원핵생물-미 토콘드리아 연합체는 다른 원핵생물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식 세포가 되었을 것이다. 식세포가 움직이는 데 필요한 막대한 에너지 는 미토콘드리아가 공급했을 것이다. 참고로 오늘날 세포 하나당 대략 2000개의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이 정도면 원시 지구에서 무적의 원 자력 항공모함 전대라 할만하다. 엽록체도 미토콘드리아와 마찬가지로 세포 내 공생의 산물이다.
공생설의 중요한 증거 중 하나는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 모두 고 유의 DNA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원래 DNA는 핵 안에만 있어야 한 다. 핵이야말로 세포의 중앙 정보 보관소 아닌가. 하지만 미토콘드리 아와 엽록체는 핵과 별개의 DNA를 독자적으로 보유한다. DNA야말 로 그 세포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신분증이며 복제의 주인공이다. 따라 서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한때 독자적으로 복제를 했을 것이다. 초 기원핵세포 내부에서 공생하던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가 죽었을 때, 몸이 분해되며 그 DNA도 숙주 세포 내에 흩어졌을 것이다. 이런 쓰레 기 DNA와 숙주의 DNA가 한동안 뒤섞였다는 증거가 현재 진핵세포 의 DNA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결국 숙주가 자신의 DNA를 지키기 위 해 핵막을 만드는 진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핵막으로 둘러싸인 핵은 진핵세포와 원핵세포를 구분 짓는 특성으로 세포 내에서 DNA를 격리 해 보관하는 특별 창고다.
- 핵막이 없는 원핵생물, 즉 세균은 다른 죽은 세균들의 DNA를 받아들여 쉽게 변이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인간과 병원균의 전쟁에서 신 약이 개발되는 속도보다 세균의 돌연변이가 빠를 수 있다. 진핵생물 은 핵막을 만들어 공생 개체들의 DNA로부터 자신의 DNA를 보호할 수 있었지만 다른 개체의 DNA를 바로 자기 DNA에 삽입하여 빠른 변 이를 일으킬 수 있는 원핵생물의 장점은 잃어버렸다. 좀 더 다양한 유 전 정보를 갖는 자손을 얻기 위해 진핵생물이 고안한 발명품은 성性을 통한 유성생식이었다. 공생이 아니었으면 성sex의 기쁨도 없었을 거란 이야기다.
- 정리해보자. 단세포 생물이 함께 공생하여 진핵생물이 탄생한다. 단세포 진핵생물이 모여 군락을 이루다가 해면동물이 탄생한다. 해면동물은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자포동물이 되면 촉수와 입. 항문 의 조직을 갖게 된다. 조직을 운용하기 위해 원시적인 신경계가 나타 난다. 자포동물은 방사형 형태를 가지나, 운동성이 중요해지자 좌우대 칭 동물이 탄생한다. 좌우대칭 동물은 머리와 꼬리, 분리된 입과 항문, 조직화된 신경계와 뇌를 가진다. 운동하는 좌우대칭 동물은 포식자가 되어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일으킨다. 뇌에서 등을 따라 뻗어나가는 신 경삭을 등뼈에 넣은 척추동물이 등장하자 동물은 육지로 여행을 떠난 다. 체외 수정하는 양서류를 거쳐 알을 낳는 파충류로 진화가 일어나 고 새끼를 낳는 포유류가 탄생한다. 포유류 가운데 완전한 형태의 새 끼를 낳는 태반류 영장목의 동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간이다.

- 1939년 영국의 앨런 호지킨Alan Hodgkin과 앤드루 헉슬리 Andrew Huxley"는 대왕오징어의 신경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왕오징어는 이름 그대로 눈에 보일 만큼 큰 신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경이 클수 록 다루기 용이하고 신호 전달 속도가 느려서 실험하기 쉬웠다. 이들이 대왕오징어로부터 알아낸 신경 신호 전달의 원리는 놀라운 것이었 다. 우선 신호 전달에 사용되는 전하는 전자가 아니라 나트륨 이온이다. 나트륨 이온'은 신경을 따라 직접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파도 타기를 하듯이 신호를 전달한다.
신경세포의 외부는 내부보다 나트륨 농도가 대단히 높다. 신경세 포의 막에는 나트륨 이온만 통과할 수 있는 채널이 있다. 파이프같이 생긴 신경이 피리라면, 채널은 피리에 뚫린 구멍이라고 볼 수 있다. 나 트륨이 통과하는 구멍, 즉 채널은 조건에 따라 열리고 닫힌다. 신경세 포의 막을 따라 늘어선 채널들에 차례로 1번, 2번 같은 번호를 붙여보 자. 1번 채널이 열리는 순간, 외부의 나트륨이 채널을 통해 신경세포 내부로 쏟아져 들어간다. 나트륨을 먹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 하다. 파이프 외부에 먹물이 가득하고 내부는 깨끗한 물만 있을 때, 깨 끗한 물을 감싸고 있는 벽에 구멍을 뚫으면 외부의 먹물이 내부로 쏟 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이번엔 2번 채널이 자동으로 열린다. 2번 채널이 열리면 이제 3번 채널이 자동으로 열린다. 이어서 4번이..., 즉 이 채널들은 내부의 나트륨 농도가 높아지면 열리는 거다. 물론 열린 채널은 잠시 후 자동으로 닫힌다. 일단 하나의 채널이 열리면 눈사태 가 일어난 것처럼 연쇄적으로 이웃한 채널이 열리게 된다. 이렇게 나 트륨이 쏟아져 들어가는 양상은 신경을 타고 이동한다. 마치 야구장에 서 관중들이 파도타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경세포는 내부로 들어 온 나트륨을 끊임없이 외부로 퍼낸다. 이걸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채 널이 열려도 나트륨이 쏟아져 들어오지 않을 거다. 나트륨을 퍼내는 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 때문에 인간의 뇌가 몸 전체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소모한다. 호지킨과 헉슬리는 신경 신호 전달의 원리를 밝 한 공로로 196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 다시 이야기하지만, 뇌는 신경세포들이 모인 집단일 뿐이다. 신경세포의 집단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신경세포가 서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 다. 신경세포들 사이에 전기 신호만 이동한다면 그냥 파이프 같은 통 로로 연결되어도 무방할 거다. 하지만 신경세포들은 시냅스라는 좁은 간격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다. 이 간격은 20~40나노미터 정도에 불과해서 바이러스 하나가 들어가기에도 좁다.
1920년대 오토뢰비 Otto Loewi와 헨리 데일Henry Dale은 신경을 타고 이동한 전기 신호가 시냅스에 이르러 화학 신호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 아냈다. 나트륨 이온의 파도로 진행하는 전기 신호가 신경세포의 한쪽 끝에 있는 시냅스에 도달하면, 시냅스에서 화학 물질이 분비되기 시작 한다. 화학 물질의 이름은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이다. 아세틸콜린이 시냅스를 지나 상대 신경세포에 도착하면 그쪽 신경세포에 전기 신호 가 만들어진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편지를 전달하는 전령이 '나트륨 이온'이라는 말을 타고 도로를 달린다. 도로 끝에서 시냅스 강을 만나면 아세틸콜린이라는 사공에게 편지를 넘긴다. 사공은 배로 강을 건 너 건너편 나루터에서 대기하고 있는 새로운 전령에게 편지를 전달한 다. 전령은 다시 말을 타고 도로를 내달린다. 뢰비와 데일은 시냅스의 화학 작용을 밝힌 공로로 193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자,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자. 신경세포는 왜 시냅스라는 것 을 만들어서 전기 신호를 화학 신호로 바꾸는 걸까? 시냅스로 인해 신 호 전달이 지체될 뿐 아니라, 괜히 구조만 복잡해지는 것 아닐까?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면 시냅스야말로 자연의 중대한 실수일터다. 시냅스의 놀라운 점은 유연하다는 것이다. 시냅스를 통한 신호 전달의 크기는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 앞에서 사용한 배와 사공의 비 유를 재활용해보자. 편지가 자주 시냅스 강을 건넌다는 것은 배와 사 공의 수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시냅스 강을 자주 건너지 않으 면 사공이 줄어든다. 즉 자주 사용하는 시냅스 연결은 강화되고 사용 하지 않는 연결은 약화된다. 이것이야말로 기억과 학습의 근본 원리로 '신경가소성 neuroplasticity'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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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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