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반도체 지정학

경영 2022. 10. 27. 20:41

- 반도체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미·소 냉전시대의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COCOM)를 떠올려 보라. 서방 국가들은 수출 규제라는 연대하에 동쪽으로의 전략물자 유출을 막았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연합국의 ABCD 포위망(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진영에서 일본의 전쟁 수행 능 력을 억제하기 위해 실시한 경제 제재 정책)으로 일본의 석유 공급을 끊었고, 그것이 태평양전쟁 발발의 빌미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막판에는 미군이 막 완공된 거대 폭격기 B-29를 전선에 투입해 가장 먼저 기타큐슈 하치만 제철소를 폭격했다. 당시 일본의 심장인 고로를 파괴하는 것이 일본을 궁지로 몰아가는 빠 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반도체가 그런 위치에 놓여 있다. 현대의 서방 정부가 중 국과의 무역을 제한하는 흐름은 가속화될 것이다. 미·중 양 대국에 한정하지 않고 반도체를 확보하는 것이 모든 나라에 필사적으로 중요한 국가 안전보장 정책이 되어간다.
세계에 1년간 출하되는 반도체 칩의 수는 1980년에는 약 320억 개였지만 2020년에는 1조 360만 개로 불어났다. 2030년까지는 2조~3조 개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마치 인간 사회가 반도체에 파묻히는 것 같다.
- 애리조나에 투자하는 것은 TSMC뿐이 아니다. 세계 1, 2위를 오 가는 반도체 메이커인 미국 인텔은 2021년 3월 23일, 해당 주에 200억 달러(약 25조 9,100억 원)를 들여 새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 했다. 피닉스와 인접한 챈들러 시에 공장 2개를 짓고 파운드리 사업 에도 뛰어들어 다른 반도체 업체로부터 제조를 위탁받을 계획이다. 인텔의 공장 가동은 2024년, TSMC와 시기가 딱 맞다.
그동안 자사 제품만 생산하던 반도체의 왕자가 공장을 다른 회사 에 개방한다. 바이든 측근들이 쓴 시나리오일 것이다. 상무장관 지나 러몬도는 앞서 언급한 인텔의 발표와 동시에 성 명을 냈다. 인텔의 투자는 미국의 기술혁신과 리더십을 지키고 미국 경제와 국가안보를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틀림없이 그해 2월 CEO에 갓 취임한 팻 겔싱어 Pat Gelsinger가 바이든의 반도체 전략에 맞추어 움직였을 것이다.
- '반도체 CEO 서밋'이라는 호칭은 듣기에는 좋지만 실체는 전혀 다르다. 바이든 정권은 반도체 공급망을 디트로이트 시점에서 보고 있다.
TSMC는 미국 정부의 압력을 느끼면서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회의 후 애리조나 공장 건설에 대해 “사상 최대의 대미 직접 투자이며 미국 정부와 연계해 계획을 성사시키겠다”고 말했지만, 태도는 냉랭했다. 삼성은 회의에 대해 침묵했다. 자동차 업계의 반도체 부족 사태가 생각처럼 해결되지 않자, 화가 나 바이든 정부는 반년 뒤인 9월 23일 한층 더 억지스러운 수단을 내놓았다. TSMC나 삼성에 대해 11월 8일까지 수주나 재고 상황, 고객정보까지 미 정부에 공개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상무장관 러몬 도는 미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공급 흐름이 불투명하다”고 일방적으 로 선고한 뒤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우리 도구함에는 다른 수단이 있다”고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가 공급망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 왔다. 당연히 아시아의 파운드리 기업들은 반발했다. 기업의 신뢰에 관한 정보까지 미국 정부에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분명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수요는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하 는 자동차 산업이다. 그 거대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반도체 회사를 미국에 집결시켜 세계의 반도체 공급망을 개편하려는 게 미 국의 속셈이다. 바이든이 '반도체 CEO 서밋' 동영상을 공개한 것은 미국 시장의 힘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 IP 벤더
팹리스도 파운드리도 아닌 형태도 있다. 전자회로의 기본 패턴이 나 설계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EDA)를 개발해 라이선스 형태로 타 사에 공여하는 IP 벤더vendor로 불리는 기업이다. 영국의 암(ARM), 미 국의 시놉시스,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 등이 유명하다.
IP는 지적재산ntellectual Property' 이라는 의미지만, 반도체 업계에서 는 전자회로의 기술정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회로도가 아닌 설계 소프트웨어를 취급하는 기업을 IP 벤더로 분류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라이선스를 판매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반도체 업체는 IP 벤더로부터 산 기본회로를 조합해 자사의 칩을 설계한다. 집적도가 10년 새 세 자릿수 상승한 탓에 회로도를 라이 선스하지 않고서는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조뿐만 아니라 설 계 면에서도 수평분업이 진행된 결과 발달한 비즈니스모델이라 말 할 수 있다.
회로 패턴 설계 도면과는 별도로 칩 속의 논리 연산 규정집(명령어집)'을 라이선스로서 판매하는 흐름도 있다. 예를 들면 암이 만든 기술 사양은 '암 · 아키텍처' 등으로 불린다. 종이에 인쇄하면 한 가지 기술 사양만 수천 쪽에 달해 백과사전 같은 두께가 된다고 한다.

- 하이실리콘은 어떤 회사인가. 그 실상은 베일에 싸여 있다. 본사 는 선전에 있으며, 이 외에도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우한 등에 개발 팀을 둬 진용은 7,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위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비밀 개발 거점이 유럽과 러시아에 있다고 말하는 관계자도 있다. 하이실리콘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회사와 관계된 일본의 반도체 엔지니어는 “중국 14억 명 가운데 추려낸 수재들이 모여 획기적인 칩을 경이로운 속도로 개 발하는 두뇌 집단”이라고 평가한다.
미국의 제재가 격화되던 때 화웨이는 스파이 기업’ 이미지를 불 식시키려고 외신에 적극적인 홍보를 했다. 하지만 하이실리콘에 대 해서는 공식적으로 일절 말하지 않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 로 하이실리콘 취재를 홍보부 간부에게 요청한 적이 있지만 그것만 은 참아주면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이실리콘 기술은 비밀 중에서도 최고 비밀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눈에 띄는 하이실리콘 칩에는 AI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 폰용 기린 Kirin, 5G 통신용 발롱 Balong 등이 있다. 최신형 기린은 회로 선폭 5나노라는 최첨단 기술로 설계됐으며 성능은 애플의 최신 아이 폰 칩과 동등 이상이다. 이 밖에 인터넷 접속 프로세서용 기가 홈 시 리즈도 생산량이 많고, 7나노로 개발한 클라우드 서버용 쿤Kunpens, AI 칩인 어센드Ascend도 디지털 업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이같은 칩 공급처는 모회사인 화웨이뿐 아니라 외국 기업도 포함돼 있다. 일 본 전기 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5G 통신기기 심장부에 내장돼 고성능을 발휘하고 있는 화웨이 전용 칩도 있다. 이 회사의 전직 기술자에 의하면 기지국용으로 '역경'이라는 이름의 칩을 개발했으며, 이 밖에도 '강' '만' 등 천체에 서 이름을 따온 칩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대부분은 회로선폭에 7나 노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개별 명칭이나 기능은 확인할 수 없었지 만 넓은 영역에서 시장에 나오지 않는 전용 칩을 개발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화웨이가 고기능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이실리콘 최첨단 칩이 필요했다. 그 하이실리콘이 칩을 만들려면 대만의 TSMC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이실리콘에는 고도의 설계기술이 있지만 실제로 물건을 제조할 수는 없다.
- 세계 파운드리 미세화 기술력을 비교해보자. 7나노 수준까지 개발에 도전한 곳은 2021년 여름까지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 자,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스, 중국의 SMIC, 그리고 한국의 SK하이 닉스 등 5개사다. 더 미세한 5나노가 되면 글로벌파운드리스, SMIC, SK하이닉스가 탈락하고 TSMC와 삼성 두 곳이 남는다. 그다음 의 3나노에서 양산 단계에 들어가 있는 것은 TSMC뿐이다. 게다가 TSMC는 2022년 중에 2나노 신공장 건설을 시작한다.
- 반도체의 패권을 잡고 싶은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 지다. 미국에 필요한 파운드리 집적지 대만을 미국이 지킬 것인가, 아 니면 대만의 파운드리들을 미국 내로 이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바이든 정권은 그 양쪽에 재빨리 손을 뻗쳤다. 군사면에서는 일 본 요코스카에 사령부를 둔 제7함대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활동을 늘리고, 영국 ·프랑스 · 독일 등 유럽연합 주요국으로부터의 협조도 얻어 이 해역에 군함을 보내게 했다. 영국 최강의 항공모함 '퀸 엘리 자베스는 2021년 9월 4일에 요코스카에 기항해 해양의 안전보장 을 위해 일본 · 미국·유럽이 제휴한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보냈다. 독 일 해군의 프리깃함 '바이에른함'도 남중국해를 통과했다. 독일이 태평양에 군함을 파견한 것은 20여 년 만이다. 바이든의 전임 트럼프가 망가뜨린 미국과 유럽의 신뢰관계가 회복되지 않았다면 이런 유 럽 각국의 군사행동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일본 · 호주·인도 4개국이 연계하는 쿼드의 틀도 강화돼 2020년 가을부터 4개국의 해군, 해상자위대가 공동훈련을 실시하 고 있다. 일본과 호주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인도를 끌어들인 전 략적 의미는 크다. 인도와 중국의 관계 악화를 지렛대로 삼아 적의 적은 내 편' 이라는 역학으로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던 인도를 한패로 끌어들인 것이다.
- 대만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2021년 8월 4일에 약 7억 5,000만 달러(약 9,700억 원)에 이르는 무 기 판매를 결정해 미 의회에 통보했다고 발표했다. 정권 출범 이후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처음이다. 자주포 40량과 탄약보급차 20대 등을 공급하는 것 외에 대만이 계획하는 잠수함 건조에 대한 기술적 지원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보다 앞선 오바마 행 정부는 중국에 대한 배려로 무기 판매에 신중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판매 결정은 11차례에 이른다. 다만 트럼프에게는 중국에 대한 압력에 더해 미국 군사 산업을 지원하겠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노선을 계승하면서 더욱 강하게 밀어붙 이고 있다. 지킬 것은 미국 내 산업이 아니라 대만이다. 미국을 중심 으로 중국을 더욱 강하게 둘러싸서 억지력을 높이고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봉쇄한다는 전략이다.
- 또 다른 과제인 미국 내 반도체 제조 능력 강화는 어떨까? 바이든 정권은 막무가내인 외교력으로 대만 당국과 TSMC를 압박해 애리조나에 새 공장을 건설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다른 한편의 칼날으 로는 한국의 문재인 정부에도 압력을 넣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에도 직접투자를 결정하게 했다. 아시아의 반도체 팹을 보유한 업체 들에 그물을 펼쳐 미국으로 바짝 끌고 간 것이다. 미국 내에서는 글로벌파운드리스 등 파운드리에 생산력 증강을 촉구하고 있다. 이 회사는 독일과 싱가포르에 공장이 있어 바이든 정부의 요청으로 싱가포르 설비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 광원이 되는 부분 에서는 액체화시킨 주석의 방울을 초당 5만 개 진공의 용기 속에 떨어뜨리고, 이 액체에 레이저를 쬐어 정확히 맞춰 EUV를 발생시킨다. 이 수준의 파장의 빛은 대부분의 물질에 흡수되기 때문에 빛이 지나는 길은 모두 진공으로 만들어야 한다. 층층이 막을 겹쳐 만드는 특수한 거울을 몇 개나 사용하여 광선을 여러 번 반사시키면서 배율을 조정하고, 마지막으로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조사照射한다. 큰 렌즈 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진에서 본 것처럼 거대한 장치가 된다.
ASML은 전기업체 필립스를 모체로 하는 네덜란드 기업이지만 네덜란드 기술만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광학계 장치는 카 메라 렌즈로 유명한 독일 카를 차이스Carl Zeiss가 제조하고 레이저 광 선 발생기는 독일 트룸프TRUMPF 제다. EU의 보조금도 유입되고 있다.
ASML은 네덜란드 기업이라기보다 유럽 전역으로부터 지원받는 기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기술력의 배후는 IMEC
벨기에의 연구개발 기관 IMEC과의 관계도 간과할 수 없다. IMEC은 미세전자공학과 정보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 조직으 로 2,000명 가까운 연구자와 엔지니어가 전 세계에서 모여들고 있 다. 연구자의 60~70%은 50여 개국의 기업에서 파견된 외국인이다. 회원제와 같은 형태로 기업을 모집하고 기업은 돈과 인력을 IMEC에 보내 공동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일본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반도체 업계의 주요 기업은 어떤 형태로든 IMEC과 제 휴해 본부가 있는 벨기에 루벤에는 항상 40~50명의 일본인이 주재하고 있다.
"연구개발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을 보내고 있습니다. IMEC과 관계를 잘 맺어놓지 않으면 최첨단의 기술 동향을 모르게 되어버리니까요. 기술자가 모이는 클럽 같은 곳으로 멤버 중에는 경쟁사도 있지만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일본 최대의 제조장치 제조사인 도쿄 일렉트론의 전 회장 히가시테츠로東哲郎는 IMEC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다른 나라 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IMEC은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로 돈과 인력뿐 아니라 세계 제조 현장에서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가 모여드 는 곳이다.  네덜란드의 ASML의 뒤에 있는 것이 바로 IMEC이다. 모두 네덜 란드어권에 있고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IMEC을 경유해 최신의 정보 가 흘러 들어가니까 세계의 메이커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해결책 을 요구하고 있는지 ASML은 모두 꿰고 있다. 이것은 ASML의 걸출한 기술력 때문이다.
- 네덜란드 ASML과 마찬가지로 암은 밸류 체인 최상위에서 초크 포인트가 되는 기업이다. 퀄컴, 애플, 엔비디아 등의 제조사들은 암으 로부터 기본회로의 설계도를 라이선스 형태로 사서 이 암의 설계도 면을 조합하여 자사의 칩 설계도를 완성해나간다. 스마트폰이나 태 블릿 단말기에 탑재되는 칩의 대부분은 암 사양의 기본 회로를 사용 해 설계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업체들은 암 도면이 없으면 자사 칩을 만들 수 없다. 소프트뱅크가 암을 산하에 둔다는 것은 손정의가 밸류 체인을 통째로 지배하에 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 미세 가공이 진보하면서 칩에 채워 넣는 전자회로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집적도가 높은 칩에서는 회로를 구성하는 트랜지스터 수 가 수백억 개에 이른다. 건축에 비유하면 하나의 칩을 설계하는 작업 은 대도시를 통째로 설계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능력이 좋은 설계사 무소라도 한 회사에서 도시 전체의 도면을 그릴 수는 없다. 기술적으 로는 불가능하지 않지만 설계도를 완성하기까지 몇 년이 걸릴 것이 다. 이래서는 납기를 맞출 수 없다. 그러니 빌딩이나 주택 등의 세세 한 부분은 완성된 도면을 다른 곳에서 사와 붙이거나 수정하면서 도시 전체의 설계도면을 그려갈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암은 빌딩이나 주택의 도면을 설계사무소에 파는 회사다.
- "석유가 나오지 않는 것이 지정학적인 일본의 입지를 결정적으로 약화시켜 왔습니다. 전략물자인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는 현대 의 유정입니다. 최첨단 기술의 자체 개발을 시작해도 일본 기업이 선 두권으로 성장하려면 100년이 걸릴 거예요. 부족한 것은 외국에서 임플란트(이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TSMC 공장을 국내에 유치하 는 것은 일본이 사활을 걸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2021년 6월, 돌관공사로 '반도체 전략'을 3개월 만에 마련했다. 는 경제산업성 간부는 TSMC 유치 의지를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외국 기업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 지금 일본의 현실이다. 더구나 과거 반도체 왕국이었던 일본을 공격해 이긴 대만을 향해 일본이 고개를 숙여 부탁해야 한다. 역사는 냉혹하다.
끈질긴 협상 성과가 결실을 맺어 TSMC는 2021년 10월 14일 일본에 공장을 건설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소니가 화상센서 반도 체를 생산하고 있는 구마모토가 건설지로 유력하다. 반도체 업체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와 대규모 수요자인 토요타 덴소도 어떤 형태 로든 구상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소니는 CMOS 이미지센서로 불리는 반도체 칩으로 세계시장 점 유율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용도는 스마트폰 카메 라로 전체 매출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는 EV용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 소니의 제품은 화상을 인식하는 칩과 신호를 처리하는 칩을 붙이는 2층 구조다. 이 중 화상을 담당하는 부분은 자사에서 제조하고 있지만 신호 처리 부분은 외주를 주고 있다. TSMC 공장이 근접해 있다면 일본 내에서 독자 기술을 지키면서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소니의 화상센서 기술을 갖는 것이 일본의 안전보장을 높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다음 시대의 초크포인트가 구마모토에 있게 된다. 꼭 TSMC가 일본에 왔으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모든 정보를 일단 클라우드에서 데이터센터로 옮겨서 처리하면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단말기에서 정보를 처리해야 하며, 이를 위한 고기능 반도체를 단말기에 탑재해야 한다. 이른바 에지 컴퓨팅edge computing (중앙 집중 서버가 모든 데이터를 처리하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다르게 분산된 소형 서버 를 통해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기술)으로 불리는 콘셉트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어떤 일이든 능숙하게 해내는 범용 칩이 아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스피커라면 이를 위한 전용 칩이 필요하다. GAFA가 사내에 반도체 부문을 갖고 스스로 칩 개발에 나서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의 자동차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주행성능 을 높이려면 동력계 기계를 mm 단위 이하로 정확하게 제어하거나 안전장비를 순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자율주행이 실용화되 려면 차에 탑재할 특별한 칩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들도 스 스로 반도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게임이나 음향·영상 분야에서는 VR, AR 영상 표현이 당연해 질 것이다. 이미지나 동영상은 2차원조차 정보량이 많고, 이것이 VR 이나 AR이 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량의 데이터를 다루게 된다. 5G, 6G로 통신이 고속화된다 해도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처리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 쪽에 밀착된 로직 반도체가 필요하다. 게임기 업 체들도 자체 칩 제조에 나서고 있다.
-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려는 기업이라면 기성품의 범용 칩을 사 와서 조합하는 것만으로는 목표하는 기능을 실현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이제 반도체는 전기제품의 부품이 아니다. 기업의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센스가 반도체 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동안 사용자 입장에 있던 기업들이 모두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력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협력자가 필요하다. 이른바 실리콘 파트너다.
소시오넥스트의 입지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로봇카의 참된 모습은 내장된 반도체 칩이 결정한다.
-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1980~1990년대에 융성했다. 하지만 정 확하게는 일본이 높은 마켓셰어를 기록한 곳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다. 일본 업체는 메모리 기술을 연마해 개발부터 제조까지를 단일 회사에서 다하는 수직통합형 비즈니스모델로 범용품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메모리가 많은 전기제품에 쓰이면서 '산업의 쌀로 수요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TV, PC 등 큰손 고객이 일본 내에 있었다.
미국의 한 투자은행의 일본인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탄식했다.
“소시오넥스트가 모처럼 일본에서 가게를 열었는데 와주는 사람은 외국인 고객뿐이다. 게다가 대기업뿐 아니라 미국, 유럽의 스타트 업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찾아온다.”
확실히 메모리로 축적한 경험의 힘은 지금도 강하다. 낸드플래시 에서는 옛 도시바의 키옥시아가 세계 2위 점유율을 차지했었고, D 램 에서는 히가시히로시마시에 있는 전 엘피다 메모리 공장이 이 회사 를 인수한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수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될까? 로직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일 본 기업은 많지 않다.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켜 일본의 국력을 높이겠 다는 논의는 용감하지만, 그 반도체 산업은 어느 기업을 가리키는 것일까?
- PC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Alan Kay는 이렇게 말한다.
“소프트웨어에 대해 정말 진지한 사람은 독자적인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엘런 케이가 말한 '소프트웨어'의 자리에 '혁신적인 사업을 대신 넣어 읽어보자.
일본은 범용 메모리로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메모리라는 기억,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탁월한 기술력과 컨설팅 실력을 가진 팹리스 기업에 하나의 승기가 있다.
- 지금까지 EDB가 유치에 관여한 외국 반도체 기업의 명단을 보 면 전략적으로 그려진 싱가포르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떠오른다. EDB가 유치한 기업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글로벌파운드리스 등 미국 기업의 비중이 가장 큰데, 업계 내에서 빅플레이어 Big Player로 구 분되지 않는 유럽의 ST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도 굳이 넣고 있다. 심지어 대만에서 TSMC와 큰 격차로 뒤지고 있는 UMC도 초대했다.
반도체 제조뿐 아니라 반도체 제조를 뒷받침하는 장비 제조사도 즐비하다. 제조장치로 세계 최대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를 비롯 해 검사장치 분야의 최대 기업인 KLA-텐코, 성막 · 식각 · 세척 등 전공정 장치를 제조하는 램리서치, 조립 패키지 등 후공정 장치를 만드는 쿨리케 앤드 소파 인더스트리 등이다. 모두 미국 기업이다. 소비자에게는 생소하지만 이들 장비 제조사가 존재하지 않으면 반도체 산업도 있을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일본 반도체 기업은 포트폴리오에 없다.
“우리는 반도체 업체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밸류 체인 전체를 보고 있습니다.”
EDB의 한 간부의 말이다. EDB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연 구개발 로드맵을 다 그리고, 그중 정책적으로 주력해야 할 일렉트로닉스의 기술 분야를 특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건비가 높고 국토가 좁은 싱가포르로 반도체 산업을 모두 불러들일 수는 없다. 하 지만 밸류 체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정 기술을 엄선해 전략적으로 기업을 유치할 수는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EDB에 초청된 기 업은 자랑스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 싱가포르에 과거 포드자동차 공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1942년 영국군이 일본 육군 중장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에게 항복한 곳으로 알려진 이 부지는 지금은 일제 강점기의 잔혹한 역사를 전하는 전시관이 되어 있다.
1960년대에 싱가포르는 의류품이나 가전제품 등의 노동 집약형산업에 집중했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컴퓨터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등 기술 집약형으로 이동해갔다. 기술 트렌드를 선점하 고 그때그때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아낌없이 투자해왔다.
19세기 대영제국의 동인도회사 직원이었던 토머스 래플스는 말라카 해협이 전략적 요충지임을 간파하고 통상 거점을 말레이 반도끝에 있는 싱가포르로 옮겼다.
- 반도체 밸류 체인은 복잡하지만 지엽적인 면을 빼고 들여다보면 기술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반도체 도면을 그리는 기술, 둘째가 반도체를 만드는 기 술, 그리고 셋째가 반도체를 사용하는 기술이다.
칩 내용물을 설계하는 팹리스 기업은 전자회로 도면을 그리는 건 축가의 몫이다. 나노미터 단위로 섬세한 선을 그어 하나의 칩에 기능 을 담아 나간다. 솜씨 좋게 설계도를 완성하려면 전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것들을 조합해 큰 회로를 만든다. 부품이 되는 도면도 사와야 한다. 이들 설계 소프트웨어나 기본회로를 제공하는 기업을 포함하 여 설계도를 그린다'는 장르로 묶을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분야다.
완성된 설계도를 바탕으로 실제로 제품을 제조하는 것이 두 번째 분야다.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 건축가라면 제조를 도급받는 파운드 리들은 동량이나 목수에 해당한다. 아무리 도면이 훌륭해도 현장 장 인의 솜씨가 나쁘면 집을 지을 수 없다. 조립하는 절차를 생각하거나 필요한 재료를 조달하는 공정 관리도 그들의 몫이다.
반도체 제조에는 대략적인 분류만으로도 20개 이상의 공정이 있 으며 공정마다 다른 제조장치나 소재를 공급하는 업체가 있다. 이른 바 톱, 망치, 목재, 기와 같은 공구, 건축자재를 장인에게 넘기는 기업 이다. 제조(물건 만들기)에 관련된 기업은 모두 이 만든다'라고 하는 틀에 들어간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애초에 무엇을 위해 반도체 칩을 만드느냐를 따지는 일이다. 자동차 엔진을 제어하기 위해서인가, 신형 스마트폰에 넣을 것인가. 용도가 확실하지 않으면 어떤 칩을 만들어 야 할지 모른다. 용도를 생각하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가정이나 직장에 숨어 있는 필요 사항은 무엇일까? 과제를 해결 하기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려면 어떤 기능을 가지는 반도체 칩을 사용하면 좋을까? 사회의 숨은 요구를 깨닫고 미래를 선점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기성품 칩을 조달하는 것은 주택 구입이나 마찬가지지만 사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오래 살려면 나에게 맞는 집을 지어야 한다. 건축가나 목수의 솜씨가 다 다르듯, 앞으로 집을 쓰게 될 시공주에게도 능력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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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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