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로 산다는 것

경영 2020. 7. 22. 20:56

- 그리스 신화 카이로스는 기회의 신이자 순간의 신이다. 그는 앞머리를 주렁주렁 길게 늘어뜨린 반면, 뒤통수에는 숱이 하나도 없다. 이는 기회를 앞에서 잡아야지, 뒤에서 잡으려고 해서는 소용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회는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
- 능력은 있는데 기회가 없다라는 한탄은 무의미하다. 기회를 알아볼 안목이 없 고, 기회를 낚아챌 준비가 없을 뿐이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Seneca는 “기회는 준비가 행운을 만났을 때 생긴다”라고 말했다. 아무 준비 없이 기회만 기다려서는 미래가 없다. 충분히 준비하고 행운을 기다릴 때만 기회가 만들어진다.
- 가동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제한적인 중소기업은 정말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자 살아 있는 경영 교과서라고 불리는 잭 웰치Jack Welch는 “회사에 그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기 전에는 절대 지갑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일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시 장과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는 없다.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는 인재가 없는 사업은 포기하고, 인재가 사업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회사도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율보다 공정별 직행률을 들여다봐야 한다. 하나의 완제품이 나오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중간품 공정이 필요하다. 단계마다. 중간품의 일부에서는 불량품이 나온다. 불량품은 수리와 조정으로 되살려 다음공정에 투입한다. 중간품 공정에서 불량이 계속 발생해도 수리 조정을 열심히하면 수율은 높아진다. 그러니까 중간 단계에 얼마나 많은 수리 조정이 발생했는지 반영하지 않은 총수율은 사실상 허수에 불과하다.
- 품질은 성실성이 아니라 불량인자를 분석하여 JIG*로, 시스템으로, 프로세스로 재발 방지 대책을 구축해야 할 문제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어야 품질이 향상되고, 안정적인 품질이 뒷받침되어야 제조업체의 경쟁력이 확보된다. 성실성으로 접근해서는 품질을 안정화할 수 없다. 품질부서의 관리도 문제다. 꽤 많은 중소기업에서 생산본부장이 품질부서까지 관리한다. 나는 품질 문제를 경영자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산과 품질은 설립 목적 자체가 완전히 다르므로 하나의 부서로 묶일 수 없다.
생산부서의 본질 업무는 생산성 향상이다. 작은 문제는 임기응변으로 처리해서라도 생산을 지속시키는 게 그들의 일이다. 생산부서는 바늘의 허리에 실을 묶어서라도 바느질이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제조라인이 어떻게든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 중소기업 대표로 합류할 당시 그 회사는 창고에 무려 15억 원 정도의 재고를 직접 보관하면서 출하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제품을 직접 보관하고 출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제품은 안성의 공장에서 외주로 생산했다. 완성된 다음에는 회사가 있는 대전의 창고로 내려왔다가 주요 고객사인 수도권 공장으로 납품되었다. 일단 만들어지면 남하했다가 주문을 받으면 북쪽으로 올라가는 식이었다. 위아래를 오가는 운송비도 불합리했지만, 창고에 쌓아두었을 때의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창고 임대료는 기본이고, 도난과 화재보험 에 가입하고 적정 온도와 습도를 맞추기 위한 비용까지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나는 경기도 안성의, 반도체 전용 창고를 가진 외주 협력사와 VMI Vendor Management Inventory, 공급자 재고관리 계약을 체결했다. 그 회사 창고의 여유 공간을 임대해서 보관하고, 출하할 때 재고를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출하 시점에서 위탁가공제품을 매입하다 보니 재고비용이 눈에 띄게 줄었다. 1년 내내 작동시켜야 했던 냉방시설을 가동하지 않으니 전력비도 절감되었다. 이후 고객사의 요청이 있으 면 제품은 안성에서 바로 출고되었다. 쓸데없이 도로를 오가며 운송비를 낭비할 필요도 없었고, 반도체 전용 창고였으므로 온도와 습도 문제에서도 자유로워졌다. 물류비와 관리비는 물론 시간까지 절감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 결론적으로, 나는 중소기업에는 하이브리드 ERP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비 자동화가 원가절감을 불러온다고 하지만, 저렴한 인건비 등 가격경쟁력을 가진 중국 기업은 완전 자동화가 오히려 비용 증가의 원인이라고 경계한다. 인건비가 싼 부분은 매뉴얼로 관리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자동화해서 잘 조합되어야 효율이 극대화된다. 중국의 하이브리드 설비 자동화처럼 중소기업도 ERP 시스템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 나는 ERP 시스템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데이터에는 서명하지 않는다. 처음 얼 마 동안은 나나 직원 모두 불편했지만, 안정화되기 시작하면서 스피드와 데이터의 투명성이 달라져 갔다. ERP 시스템을 구축해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성패는 CEO와 부서 리더의 강력한 톱다운 방식의 의지에 달려 있다.
- 페널티킥 상황에서 골키퍼는 슛 이전에 몸을 날려야 한다고 한다. 키커가 어디로 찰지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두지 않고, 공을 차는 순간 움직여서는 이미 늦다 는 것이다. CEO도 항상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잡고,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생각이 많으면 악수를 남긴다라는 말처럼 장고 끝에 시장과 소비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 번지점프를 잘하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그냥 뛰는 것이다. 생각이 많을수록 시간만 가고, 그 시간이 번지점프의 질을 높여주지는 않는다.
- 중소기업의 CEO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해 어느 정도 기업을 성장시 키고 난 뒤 초심을 잃는 것을 종종 본다. 이들은 경영을 임원에게 맡겨두고 바깥으로 나돌거나 감투에 매료되어 교만해지고, 사치를 부리고, 나태해져 힘들게 성공시킨 기업을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이는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새벽시장 까지 쫓아다니며 맛집으로 유명해진 식당주가 돈을 원 없이 벌게 되면 어느 순간 재료 장만과 음식을 종업원에게 맡기고, 자신은 최고급 승용차를 굴리며 골 프나 치러 다니다 망하는 케이스와 같다. 이런 사람들은 애당초 기업가정신, 즉 음식에 승부를 건 것이 아니라 돈이 목적이었을 뿐이다.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니 목표마저 없어진 것이다. 자신을 믿고 따라준 식구와 그들의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잘 나갈 때일수록 초심을 잃지 않고 조직의 긴장감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성장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 맥도날드는 철저한 기획과 시험을 거쳐 햄버거의 맛을 결정한다. 맥도날드의 햄버거 패티는 지방이 19% 이하인 쇠고기를 지름 3.875인치의 1,6온스 크기로 뭉쳐 만든다. 양파도 0.25온스로 규격화되어 있다. 이런 디테일이 맥도날 드처럼 아주 큰 기업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스시로지 라는 회전 초밥 프랜차이즈도 아주 섬세하게 상품을 기획했다. 이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회전초밥 컨베이어의 회전 방향, 속도, 메뉴별 접시의 연속성 등을 철저히 연구했다. 먼저 회전초밥은 소비자의 수렵본능과 경쟁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에 고정식에 비해 1.5배 많이 소비된다. 회전 방향은 오른손잡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는 시계 방향이 유리하다. 컨베이어 벨트는 실험 결과 소비자의 먹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는 데 가장 적당한 초당 4cm의 속도로 회전한 다. 이런 디테일에 힘입어 스시로는 맥도날드의 평균인 5~6달러보다 높은 10달 러 이상의 객단가를 올리고 있다. 500개 이상의 프랜차이즈에서 올리는 연매출 은 2조 원 이상으로 우리나라 대기업 수준이다.
- 해외 공장에 얼마나 많은 주재원을 배치했는지 살펴보면 현지 공장에 대한 관리능력이나 원가경쟁력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업종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제조업 해외 공장의 현지 주재원은 7인 정도가 알맞다고 본다. 내가 맡을 당시 우리 회사의 베트남 공장에는 14인의 주재원이 있었다. 나는 이 숫자를 6으로 줄였다. 인건비 절감이 표면적이고 직접적인 이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심층적인 이유가 있다. 과도한 주재원의 수는 업무의 본질을 흐리기 때문이다. 일단 직접적인 비용 문제부터 살펴보자. 직원 한 명을 주재원으로 파견하면 교육과 주거 지원 등으로 인건비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대략 국내 에서 지급하던 임금의 3배 정도가 필요한 것 같다. 저렴한 현지 물가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커진다. 주재원 한 명에 소요되는 비용은 현지 고급 간부 10인 이상 의 인건비에 맞먹는다. 국내에서의 같은 직급 직원이나 현지 고급 간부 어느 쪽의 임금과 비교해도 어마어마한 지출이다. 문제는 이렇게 투입한 지출이 현지에 뿌리내리지 않을 비용이라는 데 있다.
- 내 기준으로 바람직한 주재원의 수는 7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지에서 관리해야 할 업무가 7가지인 까닭이다. 먼저, 현지 법인의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필요하다. 본사와의 방향성을 조율하며 현지의 세무, 노무, 통관, 대정부 업무는 물론 현지 인맥과의 교류도 책임질 법인장이 첫 번째 주재원이다. 다음으로는 생산을 총괄하여 전체적인 안살림을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 공장장이 두 번째 주재원이다. 그리고 구매, 품질, 수주관리, 생산, 재무관리의 다섯 기능을 책임질 주재원들이 있어야 한다. 그 외에는 모두 현지인 간부에게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고 본다.
- 성공적인 팀의 주기는 4년 정도라고 보고 끊임없이 선수들을 관찰하고 측정하 면서 조직을 재구성해야 한다. 때로는 잘하는 선수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지 만, 다른 선수의 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퍼거슨 감독)
- “경영관리 부서는 CEO의 귀가 되어야지 입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나는 늘 강조해 왔다. 그런데 경영관리 부서가 꼭 집단주의 사회의 비밀경찰처럼 구는 경우가 있다. 동독과 소련의 비밀경찰이 전화를 도청해서 정보를 독점하듯, 사업 기획과 인사 정보를 무기처럼 휘두른다. 월급과 상여금에 대한 정보와 알량한 예산을 가지고 동료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 이들이 고압적이고 사무적으로 나서면 회사 안에서 소통은 사라진다. 완전히 결정되지도 않은 인사 정보가 미리 새어 나가서 분열이 조장되기도 한다. 사람이 많지도 않은 중소기업에 파벌까지 만들어져서 구성원들이 따로 놀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조직의 미래가 예측가능한 상태일 때 직원들은 신뢰감을 갖고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몰입이 가능하다”고 했 다. 리더는 조직의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때 우리 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려줘야 한다. 개혁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직원들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회사와 개인의 이익에 어떻게 부응하는지 공감대를 먼저 형성해야 하는 것 같다. 매출과 손익이 늘고, 회사가 유명해져도 회사에 관련된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지 않고 억지로 끌고 가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진심어린 소통, 그리고 기준과 결과에 대한 믿음이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시간을 두고 쌓아가야 한다.

 

'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한 기업은 1원도 아낀다  (0) 2020.07.27
이상한 놈들이 온다  (0) 2020.07.27
안트러리더십  (0) 2020.07.18
디즈니만이 하는 것  (0) 2020.07.16
협상의 법칙 2  (0) 2020.07.10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