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목표는 삶의 쾌락과 향락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통을 피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도 이것에 근거하고 있다. 만약 이 가르침이 틀린 것이라면, 볼테르의 "행복은 꿈에 불과하고, 고통은 현실이다"라는 말도 틀린 말일 것이다. 따라서 삶속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쾌락이 아닌 고통을 근거로 삶을 대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행복 은 그 말 자체가 완곡한 표현으로 `행복하게 산다'라는 것은 작은 불행에 의해 그럭저럭 견딜 만한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삶은 즐기고자 주어 진 게 아니라, 극복하고 벗어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이것을 라틴어로 표현하면 '그럭저럭 삶을 견뎌낸다'이다. 이탈리아어로는 '삶을 뚫고 지나 간다', 독일어로는 '인간은 뚫고 나아가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는 세상을 잘 뚫고 나갈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 노년에는자기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힘들게 애쓰던 모든 일이 끝났다는 것에 위안받는다. 행복한 사람은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 없이 삶아온 사람이지, 쾌락과 향락을 누린 사람이 아니다. 즉 쾌락과 향락을 행복이 라고 여기는 사람은 잘못된 기준을 지닌 것이다. 왜냐하면, 쾌락은 소극적인 것에 머무르며, 항락이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질투와 부러움에서 비롯된 착각이기 때문이다.
- 어리석은 사람은 삶의 쾌락을 좇다가 나중에야 자신이 속은 것을 알게 된다. 반면 현명한 사람은 고통을 피한다. 그런데도 불운에 빠졌다면, 그것은 운명이지 그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현명한 사람이 고통을 피했다고 해서 그가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순 없다. 그가 고통을 피한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현명한 사람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 쾌락을 포기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더 나빠진 것은 없다. 모든 쾌락은 망상에 불과하며. 그런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리를 낙관적인 견해에 의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의 원인이다. 우리가 고통 없는 상태에 있을 때 불안해진 욕망은 현실에 없는 행복을 좋으라고 부추기고 결국 고통을 초래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잃어버린 고통 없는 상태'가 낙원이었음을 알고 후회하며 되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마치 고통 없는 상태에 있는 우리를 욕망의 가면을 쓴 악령이 유혹해서 끌어내려는 것과 같다
- 불행해지지 않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은 큰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괴테는 젊은 시절 친구였던 메르크와 주고받은 서신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에 대한 탐욕적인 요구는 그 정도가 높아지면서 이세 상의 모든 것을 망친다. 이러한 요구에서 벗어나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원하는 사람이 진보할 수 있다." 우리는 쾌락, 재산, 지위, 명예 등에 대한 요구를 적게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행복해지기 위해서 애쓰고 쾌락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은 큰 불행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의 요구를 줄이는 건 현명하고 지혜로운 태도다. 불행하다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지만, 행복해지는 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호라티우스는 삶의 지혜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큰 소나무는 세찬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며 높은 탑은 무너질 때 더 큰 피해를 당한다. 또한, 가장 높은 산은 벼락을 먼저 맞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명한 사람은 크고 화려한 저택을 탐내지 않는다.'
- 나의 철학을 마음에 새긴 사람은, 즉 우리 존재는 지금 보다 더 나아지지 않으며,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사물이나 상태에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열정을 쏟지 않을 것이며. 무슨 일이 실패해도 크게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플라톤이 말한 "인생의 어떤 것도 열중할 만한 가치가 없다"라는 조언에 깊은 진리가 담겨 있음을 느낄 것이다. 또한. 다음의 시에도 깊이 동감할 것이다
"당신이 세상을 잃는다고 해도 괴로워하지 말라
이 세상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당신이 세상을 소유했다고 해도 기대하지 말라.
이 세상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모든 괴로움과 기쁨은 사라져 간다.
세상을 스쳐 지나갈 뿐 없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이런 지혜를 얻는 데 어렵게 하는 것은 세상의 위선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이 실상을 빨리 가르쳐야 한다. 이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하는 것들은 곁모습에 불과하며, 마치 극장 무대의 장식처럼 가상일 뿐 실질적인 것이 없다. 깃발과 꽃으로 장식한 배, 대포의 발사, 조명, 북소리와 나팔소리, 환호와 박수 등 모든 것은 기쁨의 외적 표시이자 가식에 불과하다. 이런 곳에서 기쁨은 찾아볼 수 없다.
- 만약 어떤 사람의 상태를 행복의 정도로 평가한다면, 그 사람이 무엇에 만족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그 사람을 괴롭히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 그사람이 괴로운 이유가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그만큼 더 그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한 상태일 때는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지만, 불행할 때는 사소한 일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의식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는 각종의 순수한 지적 활동이 언제나 충격과 고통 속에서 성공과 실패를 직면하는 현실 생활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활동을 위해서는 뛰어난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외부 활동에 전념하는 생활이 우리를 학문(공부) 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처럼, 오랜 사색의 과정은 일상 생활의 모든 활동에서 우리를 무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활동적이며 실천적인 일이 발생하면 잠시 정신적인 활동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견유학파는 마음의 평화에 의한 행복을 얻기 위해 모든 소유물을 포기했다. 그들과 같은 목적으로 사교를 포기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이다. 베르나르 댕 드 생피에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식을 절제함으로써 육체적 건강을 얻을 수 있듯이, 사람과 사귀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을수 있다."
- 이미 일어난 불행에 대해서 그것이 다르게 일어날 수 있었다거나, 특정한 방법으로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고통을 더할 뿐이며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을 만들 뿐이다. 차라리 다윗 왕 King David의 예를 따르는 것이 좋다. 다윗왕은 아들이 병상 에 누워 있을 때는 끊임없이 여호와(하나님)에게 아들의 회복을 간구했지만, 아들이 죽고 나자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일어난 불행에 대해 가볍게 넘길 수 없다면, 운명론에 기대어 모든 일이 필연의 결과이며, 따라서 불가피하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 작은 물체를 눈 가까이에 대면 시야가 제한되어 세상을 볼수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사소하고 무의미한 일이라도 눈앞에 있으면, 우리의 생각은 종종 과도하게 집중한다. 이러한 과도한 집중은 불쾌감을 초래하여, 원래 중요 했던 생각이나 문제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진 후 다시 화해하는 것은 일종의 약함을 드러내는 행위다. 그렇게 하면 그 친구는 갈등을 일 으켰던 바로 그 행동을 다시 할 것이며, 심지어 상대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더 대담하게 행동할 것이다 이는 해고한 직원을 다시 고용했을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렇듯 우리는 사람들이 상황이 바뀌면 이전과 똑같이 행동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이나 이익이 바뀌는 속도만큼이나 태도와 감정도 바 꾸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놓인 상황을 추측하고,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알려고 한다면, 그 사람과의 약속이나 기대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설령 그사람이 진실하게 말하고 있다 해도, 그는 자신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놓이게 될 상황과 그 상황이 그의 성격과 얼마나 충돌할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성과 통찰력을 드러내는 것으로 사회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런 자질은 미움과 원한을 불러일으키며, 자신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를 억누르도록 강요받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은 더욱 견디기 어렵게 된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상대에게 뛰어난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자신이 그 상대의 장점을 알아냈듯이 상대도 자신의 결점을 알아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런 방법은 상대에 대한 미움과 원한을 자극하게 된다. 이에 대해 그라시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려면 가장 동물적인 단순함을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자신의 지능과 식견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둔하고 무능하다고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저속한 사람은 어떤 형태의 반대에도 격하게 반응하기 마 련인데, 질투가 그의 적대감의 숨은 원인이 된다. 일상적으로 관찰되는 사실은 사람들이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 는 것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허영심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 없이는 만족될 수 없다. 그래서 지적 능력만큼 사람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은 없다. 오직 지적 능력만이, 사람이 동물을 능가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의견은 반박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사람이 믿는 터무니없는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면 므두셀라의 나이까지 살아야 하며, 그러고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대화 중에 다른 사람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아무리 선의홈효에서 나온 말이어도 사람들을 쉽게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으며, 이를 고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우연히 두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너무 어리석어서 화가 난다고 해도, 두 어리석은 사람이 벌이는 희극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또한, 세상에 나와 자신이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가르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 상처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 자신의 판단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것을 냉정하고 열정없이 표현하라. 모든 격렬함은 의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판단의 근본은 의지이며, 그 본성에 의해 냉정한 인식이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요소 는 의지이며, 인식은 부수적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격렬하게 표현한 의견에 대해 의지의 흥분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 믿을 것이다.
- 인생 처세법의 절반은 사랑에도 미움에도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며, 나머지 절반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 것도 믿지 말라'이다. 이런 규칙이 필요한 세상이라니, 정말 누구라도 등을 돌리고 싶을 만한 세상이다.
-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어나는 삶의 작은 불행은, 큰 불행을 견딜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시키기는 것이라고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과의 작은 갈등, 사소한 논쟁, 부적절한 행동, 쓸데없는 소문 등 삶의 성가신 일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더 나아가 마음에 두어 고민하지 말고, 마치 길가에 놓인 돌처럼 멀리 밀어내고, 어떤 경우에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반성의 대상으로 삼아서는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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