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는 예외적인 시대였다. 경지면적은 크게 늘지 않았 지만, 녹색혁명, 농기계, 화학비료 덕분에 세계 곡물 생산량은 여섯 배 가까이 뛰었다. 그런데 그 황금기는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는 곡물 수출국도더 많은 생산을 위해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더 많은 산림을 베고, 더 많은 물을 끌어다 쓰고, 더 많은 토양을 소진해야 한다. 단기적 증산은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의 풍요는 빚이다. 그 빚은 오늘의 우리만이 아니라 내일의 세대가 함께 깊아야 한다.
- 미국의 바이오에탄올 산업은 1970년대 오일쇼크라는 위기 에서 출발했다. 에너지 안보 확보와 농산물 과잉 해결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며 성장해왔다. 2005년 에너지 정책법, 2007년 에너지독립법,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어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정책 지원을 받으며 미국 에너지 및 농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브라질은 사탕수수 기반 바이오에탄올로, EU는 바이오디젤로. 인도네시아는 팜유를 활 용한 바이오연료로 각각 자국의 농업과 에너지 전략을 연결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일정 부분 바이오연료를 도입했다 그렇다면 바이오연료를 줄이면 식량위기가 완화될까? 이런 기대는 과도할 수 있다. 식량도 시장 논리 안에서 움직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누구든 비용을 지불해야만 식랑을 확보할 수 있다. 연료든 식량이든 곡물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구매력이 있는 곳'이다. 바이오연료 수요를 없앤들, 그 곡물이 아프리카 나 남아시아의 빈곤층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바이오 연료는 곡물 수출국 입장에서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한다. 농산물 과잉 생산시 수요처가 없으면 가격이 폭락하고, 이는 농가 경영 악화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에서 바이오연료 수요는 가격 방어선이자 농업 생산기반을 유지하는 안전장치로 기능한다 물론 현재 시스템을 무조건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곡물의 용도 전환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랑을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생산 하고 필요한 곳에 전달할 수 있는 체계, 바로 지속 가능한 식량 안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구조적 개혁을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인도주의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감성적 접근만으로는 복잡한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인류의 식량 문제는 단순한 윤리적 논쟁의 영역을 넘어선다. 이는 생산, 유통, 소비가 얽힌 복합적 시스템의 문제다. 비난과 이상론보다는 구조적 이해와 현실적 해법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도덕적 분노에 머무르지 말고 시스템을 바꾸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전 세계 농장의 80% 이상이 소농이지만, 그만큼 세계 빈곤 층의 대부분도 소농이다. 그래서 많은 국제기구가 인류애적 차원에서 소농의 생산성을 높이려 애쓴다. 물론 소농은 단위 면적당 노동 투입량이 많고 집약적 경작이 가능하지만, 전체 생산성이나 노동 효율로 보면 한계가 뚜렷하다. 노동집약적인 방식만으로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소농이 식량주권을 지키고 농촌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반대로 '기업농'이나 '대농'은 자본에 종속된 것으로 종종 오해되며, 나쁜 이미지가 씌워져 있다
그러나 대농은 말 그대로 규모가 큰 농장일 뿐이고. 기업농은 외부 인력을 절반 이상 사용하는 법인 형태의 경영체일 뿐 이다.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도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외 부의 손을 빌리고, 경영의 틀을 바꾸게 된다. 최근 등장한 공동 경영체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그럼에도 `농사는 혼자 짓는 것'이라는 정서적 저항이 구조 전환을 더디게 만든다 한편, 소농을 옹호하는 근거로 언급되는 대표적인 예가 "소농은 친환경적"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한국과 일본처럼 소농 비중 이 높은 나라는 오히려 비료와 농약 사용량이 가장 많은 그룹에 속한다. 소득을 늘리기 위해 좁은 땅에 더 많은 농자재를 투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농은 단일 작물 중심의 경작으로 인해 생물다양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어느 쪽도 완벽한 해답은 될 수 없다
또 하나, "농민은 자기 땅을 직접 경작해야 한다"는 믿음은 동아시아 특유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한국과 일본. 대만은 제2 차 세계대전 이후 농지개혁을 통해 '경자유전' 원칙을 세웠다 당시에는 이 원칙이 사회 안정에 기여했지만, 농업 인구가 전체의 4%도 안 되는 지금은 변화의 발목을 잡는 신화가 되고 있다.
소농은 여전히 지역 사회 유지와 생태계 보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기후위기, 노동력 부족, 기술 격차 등 새 로운 도전에 직면한 시대다. 낭만에 기대기보다, 소농의 한계를 인정하고 적정한 규모화와 기술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의 식량안보도 지킬 수있다.
- 이제 댐은 단순한 수력발전 시설이 아니다. 댐은 물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전략적 무기이며, 아시아의 지정학을 바꿀 수 있는 레버리지가 되었다. 중국은 이미 히말라야 발원 수계 를 포함해 10개국에 걸친 16개 주요 강 상류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을 확보한 상태다
물은 곧 권력이다. 물의 흐름을 통제하는 자는 농업과 산업 인구와 식량. 심지어 정치적 안정을 통제할 수 있다. 기후위기 는 이러한 '물 권력'의 성격을 더욱 날카롭고 치명적으로 만든다. 실제로 중국은 세계 경작지의 10%, 식수의 7%만으로 전 세계 인구의 20%를 부양해야 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 으며, 수도 베이징을 비롯한 주요 도시권은 이미 '물 스트레스 기준에 근접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생존 전략은 인접국의 생존을 위협 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곧 동남아시아와 남아시 아 전체의 불안정성으로 연결되며,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앞둔 중국의 또 다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 기후변화가 불러온 가장 치명적인 현상 중 하나가 가뭄이다. 전체 자연재해의 15%를 차지할 뿐이지만, 그 피해는 어또 재난보다도 깊고 넓다. 가뭄은 폭풍처럼 요란하지 않다. 대신 소리 없이 다가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우리의 삶을 마르게 한다. 단번에 모든 것을 앗아가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모든 것을 서서히 파괴한다
저명한 영장류 학자 제인 구달은 이렇게 말했다. "가뭄은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긴급한 경고이며, 우리가 지구를 얼마나 무분별하게 다뤄왔는지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이 조용한 재앙은 우리가 만들어낸 미래다.
이제 가품은 예전과 다르다. 건기는 길어지고, 비는 짧고 거칠게 내린다. 토양은 마르기만 하고, 내린 비마저도 스며들지 못한 채 흘러가버린다. 물이 있어도 쓰지 못하고, 땅은 메말라 간다. '가품'이라는 말이 점점 더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온다
유엔 사막화방지협약의 2022년 보고서는 충격적인 경고를 담고 있다. 가품은 더 자주, 더 길게, 더 넓게 퍼지고 있 다 2000년 이후 가품의 빈도와 지속 기간은 29% 증가했고, 1970년부터 2019년까지 가품으로 사망한 인구는 65만 명에 이른다. 경제적 손실은 1998년부터 2017년 사이에만 1240억 달러에 달했다
-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인류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달성 해야 한다. 첫째는 탄소중립, 즉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줄이는 일이다. 둘째는 지구 자체의 탄소순환 시스템을 지키는 것이다. 즉, 숲과 해양, 토양이 제 역할을 하며 균형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감축과 유지, 둘 다 놓쳐서는 안 되는 숙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두 목표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더라도 지구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면 기 후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되돌릴 수 없는 경계선, 그것이 바로 '티핑 포인트'다. 이 선을 넘으면. 지구는 스스로를 가속하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아무리 탄소배출량을 줄여도 기후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이 티핑 포인트를 유발하는 핵심 메커니즘은 세 가지다.
첫째, 산림과 토양, 해양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지구의 탄소 균형을 유지하는 탄소 대순환,
둘째, 적도에서 발생한 열을 극지방으로 순환시키며 기후의 안정성을 조절하는 해양 대순환,
셋째, 얼음과 눈이 햇빛을 반사하여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하는 알베도 효과다. 이 세 가지 시스템이 흔들릴 경우, 지구는 되돌릴 수 없는 변화의 문턱을 넘게 된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세 가지 모두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는 빠르게 녹고 북대서양 난류는 약화되고 있으며, 마지막 남은 탄소 흡수원들마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 2023년 서울의 벚꽃은 관측 사상 두 번째로 빠르게 개화했다. 평년보다 최대 16일 빨랐고, 진해와 여의도의 벚꽃이 동시 에 만개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언뜻 보면 꽃구경 일정이 겹치는 해프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생태계에는 심각한 위기 신호다. 꽃은 피었지만 그 꽃가루를 옮길 꿀벌은 아직 땅속에서 나오지 못한 경우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생벌의 대부분은 겨울을 땅속에서 보내며. 서서히 따뜻해 지는 토양 온도에 반응해 활동을 시작한다. 반면 식물은 대기 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더 빠르게 개화한다. 그 결과, 꿀벌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꽃이 피고 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야생벌은 평균 6.5일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식물과의 리듬이 맞지 않으면 수분이 이뤄지지 못하고, 꿀벌은 먹이를 찾지 못해 개체 수가 감소하게 된다.
- 소비가 만든 회복. '보존을 위한 소비'
한 품종 돼지 전략은 산업적으로는 성공이었지만 생물다양성 측면에서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다. 오늘날 영국 토종 가축 품종의 80% 이상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그 대가가 얼마나 쳤는지를 보여준다.
품종 다양성의 결핍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은 2019년 중국 에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당시 전 세계 돼지의 4분의 1이 살처분되었고, 단일 품종 중심의 유전적 취약성이 재앙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전 세계 축산업에 던지는 강력한 경고였다. 다양성의 부재는
곧 취약성이다.
더욱 역설적인 사실은. 이런 토종 품종의 생존을 위해서는 오히려 '소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희소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소비자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때 품종 보존도 가능해진 영국의 롱혼 소는 '최고의 스테이크용 소'라는 명성을 얻으며 개체 수가 다시 증가했다. 이는 '보존을 위한 소비' 라는 새로운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물론 그 이면에는 영국 희귀가축보존협회였와 같은 전문 기관의 체계적 지원이 있다.
- TNFD: 기업의 자연환경 공시제도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이 현실의 위협으로 다가오면 서이제 기업들도 환경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21년, 국제사회는 기업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인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제도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NFD 를 출범 시켰다. 이는 기존의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제도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CFD를 자연환경 영역으로 확장한
버전이라 할 수 있다 TNFD는 두 가지 질문을 기업에 던진다. '우리 회사는 자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그리고 '자연의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리스크를 초래하는가?' 예컨대 커피 회사라면 자사가 열대우림 파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함과 동시에. 기후변화로 인해 커피 재배지가 축소되는 위험성도 분석해야 한다 이를 위해 TNFD는 LEAP'이라는 네 단계 접근법을 제시한 다. 사업장의 자연환경을 파악locate하고, 영향과 의존도를 평가Evaluate 하며, 관련 위험과 기회를 분석Assess한 후, 마지막으로 대응 전략을 준비Prepare해야 한다. 이는 마치 기업의 '자연 건강검진'과도 같은 과정이다.
- 비관세 장벽 과실파리 과일 검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과실파리다. 과실파리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과일 수입 시에는 매우 까다로운 검역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에 없는 종의 파리가 발견되면 수입이 제한되는데. 이는 파리가 과일에 낳은 알이 운송 과정에서 화해 구더기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하 모든 수입 과일은 파리 알이 있다고 가정하고 방역 처리를 해야 한다.
과일 속에 낳은 알은 농약 처리만으로 제거할 수 없어 저온 혹은 증열리"를 하게 되는데,이 과정에서 과일의 맛이 떨어 진다. 또한 과일이 너무 크면 열처리가 불완전할 수 있어 수입 과일에는 크기 제한도 있다. 이것이 수입 망고가 작고 맛이 없는 이유이며, 하우스에서 자란 제주 애플망고가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배경이다 캘리포니아산 오렌지는 우리나라에서 금지하는 과실파리가 없어 별다른 열처리 없이 수입된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른 나라의 오렌지는 과실파리 발생 지역으로 분류되어 수입 전에 열처리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과일의 맛과 식감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우리 시장에서는 맛과 식감에서 휠씬 경쟁력을 지닌 미국산 오렌지만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과실파리는 단순한 해충이 아니다. 국제 과일 무역의 흐름을 좌우하는, 비관세 장벽의 최전선에 선 `가장 귀찮고도 중요한 존재'다
우리나라 역시 과일을 수출할 때 이 과정을 똑같이 거쳐야 외래 병해충이 유입되어 자국의 농업에 얼마나 큰 발생하는지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조치다
-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건강식단 비용' 조사에서 한국은 1인당 일일 영양 요구량을 충족하기 위한 최저 비용이 5.34달러로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았다. 한국보다 더 높은 국가는 자메이카. 일본, 몽골, 그라나다뿐이었다. 이처럼 높은 식품물가는 저소득층의 영양 섭취에 비용 부담을 초래한다. 특히 과일과 채소처럼 건강에 필수적인 식품 이 지나치게 비싸지면,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의 건강과 영양 불평등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기후변화가 만드는 새로운 사회문제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가 농업을 흔들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식탁의 물가로 전해진다. 이제 우리는 기후와 물가가 연결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날씨 뉴스를 볼 때마다 지갑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 말이다
- 경제력이 충분한 국가는 세계 어디서든 식량을 살 수 있다. 물론 가격이 오르면 부담은 커지고,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충격이 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다.
진짜 문제는 위기 상황이다. 지정학적 충돌. 기후 재해. 글로 벌 공급망 붕괴와 같은 사태는 단순한 가격 인상을 넘어선다. 그런 위기에 대비하려면 일정 수준의 자급 기반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자급은 공짜가 아니다. 국내 곡물을 일정량 확보하 는 데 드는 생산 비용, 비축 물량을 저장하고 운용하는 데 드 는 인프라, 국제 시장의 동향을 감지하고 대응하기 위한 정보 시스템. 이 모든 것에는 비용이 든다. 그것도 만만치 않은 규모의 재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식랑안보를 위해 얼마만큼의 비용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비용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부담해야 하는가
'자급률을 높이자"는 구호는 간단하고 선명하다. 하지만 그 것을 실제 정책으로 만들려면, 먼저 비용과 책임에 대한 사호 적 합의가 필요하다. 식량안보는 원칙이 아니라 선택이며, 그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 한국 농업, 다시 성장할 수 있을까? 한국 농업은 1950년 농지개혁으로 시작된 자영농 중심의 체제를 세운 뒤 70년 넘게 그 틀을 유지해왔다. 지주제를 해체 하고 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준이 개혁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혁명이었고, 산업화의 인적 기반을 마련한 역사적 성취였 다. 그러나 그 승리는 머지않아 정체로 이어졌다.'농지는 농민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은 처음에는 이상이 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규제가 되었고, 결국 변화를 가로막는 벽이 되었다. 산업은 도시에서 진화했지만, 농업은 농촌에서 멈춰 섰다. 쌀 수매제와 시장격리, 정부 비축제도는 물가 안정을 위한 중요한 장치였지만, 동시에 농업을 '지원이 필요한 산업', '정부 가 책임져야 할 영역'으로 고착화시켰다. 2000년대 이후 도입된 직접지불제도 마찬가지였다. 농업소득을 보완하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구조개혁 없이 추진되면서 직불제는 자립보다는 의존하는 보조 체제를 강화했다. 도시는 속도를 원했고, 농촌은 기억을 원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농촌은 '우리의 원형'으로 신화화되었다. 농업은 더 이상 생산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대상이 되었고. 신토불이'와 '고향의 정서'는 현실의 문제를 가리는 안개가 되었다. 특히 1970~1980년대 농촌을 떠난 이촌향도 세대는 농촌에 대한 죄책감을 '농업은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덮었고. 그 위에 정부는 예산과 규제를 쌓아 올렸다. 농업은 산업이 아닌 '보존되어야 할 유산'으로 남았다
- 그러나 그 낭만 뒤에는 '부동산'이라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 있다. 도시의 팽창과 함께 농지는 투자와 투기의 대상으로 떠 올랐고, 고령농의 은퇴와 맞물려 농지는 농민이 아닌 이들의 손에 하나둘 넘어가기 시작했다. 농업은 땅의 가치에 눌려 산 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갔다. 생산보다 소유가, 소득보다 시세가 더 중요한 시대. 농지는 더 이상 농민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욕망이 투영된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한국 농업은 '변하지 않는 것'이아 니라 변하지 못한 것'이 되었다. 구조는 고정되었고, 제도는 묶였으며, 인식은 과거에 머물렀다. 그렇게 우리는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잃었다. 농업은 아직도 존재하지만, 산업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오래전에 퇴화했다.
- 혁신이 요구되는 스타트업에서조차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과도한 정부 지원이 역설적으로 발목을 잡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농업 미생물 지원사업이다. 미생물 제제는 토양을 건강하게 하고 비료.농약 사용을 줄이는 친환경 기술로, 미국 농부들은 파종 시 미생물 제제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일 상이다. 한국 역시 일찍부터 R&D에 투자해 농업 미생물 은행 까지 설립했다. 기술력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경쟁력 있는 농업 미생물 기업이 나오지 못했다. 반면 해외 스타트업들은 한국보다 기술력이 부족해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 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경우, 정부가 농업기술센터 를 통해 미생물을 거의 무료로 배포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뿌 리내릴 토양 자체가 없는 것이다
초기 산업 육성에는 정부 지원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부작용이 커진다. 정부 지원은 형평성과 분배가 우선시되며 시장의 원리는 뒷전으로 밀린다. 기업은 혁신보다 지원금 확보에 몰두하고, 실력보다 로비가 중요해진다. 진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일수록 설 자리가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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