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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

인문 2026. 7. 8. 07:56

- 세네카를 비롯해 스토아 철학을 신봉하는 그의 동료들은 인간이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면. 즉 그들이 일컫는 아파테이아apatheia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세계가 전쟁 통에 빠지더라도 우리는 문제없이 사고하고 능숙하게 일하면서 여전히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세네카는 말했다. "다음과 같은 상태라면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고 생각해도 좋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치렛말이든 으름장이든, 저도 모르게 저질렀던 바보 같은 행동이 떠오르든, 공허한 소음이 머릿속을 울리든 그 어떤 말에도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을 때." 인간이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면 그 무엇도 그들을 건드릴 수 없고 그 어떤 감정도 그들을 방해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위협도 그들을 가로막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의 모든 순간이 온 전히 그들의 것이 될 수 있다
지리상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나 성격이 얼마나 다른지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고대 철학은 완벽하게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이 놀라운 사실 덕분에 이같은 견해는 한층 더 설득력을 얻었다. 기원전 500년에 공자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든, 그로부터 100년 뒤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든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흐른 뒤 에피쿠로스의 정원에 앉아 있던 제자든지 간에 하나같이 침착함과 차분함, 평온함이 필요하다고 강 조하는 가르침을 듣게 될 것이었다
불교에서는 이를 우베카라고 하고 이슬람교에서는 아슬라마라고 부른다. 히브리서에서는 히쉬타부트라고 한다. 힌두교 3대 경전으로 꼽히는 <바가바드 기타의 2장은 전사 아르주나에 관한 서사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로 사마트밤 즉 마음의 평정 또는 한결같은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스에서는 에우티미아, 헤시키아라고 하고 에피쿠로스학파 에서는 아타락시아라고 일컫는다. 기독교에서는 아이콰니미타스라고 한다.

- 굉장한 일이 미래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일은 없다. 명료함도 통찰력도 행복도 평화도 마찬가지다. 오직 지금이 순간만 존재할 뿐이다. 지금이 순간이 문자 그대로 1,2초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지금'이란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우리가 존재하기로 선택한 순간을 뜻한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 또는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한 희망이나 걱정을 우리가 원하는 만큼 멀리 밀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은 몇분이 될 수도 있고 오전 몇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그만큼 버틸 수만 있다면 말이다.

- 에픽테토스가 말했다. "발전하고 싶다면 외부의 일에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상태로 나타나기를 즐겨라." 
나폴레옹은 우편물이 밀리는 상황을 즐겼다. 그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화나게 할 수도 있고 중요한 가십거리를 놓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말이다. 사소한 문제들은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실시간으로 뉴스를 받아들일 게 아니라 나폴레옹처럼 여유를 갖는 태도, 유행에 한두 계절쯤 뒤처지는 태도, 내 삶을 받은편지함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당신이 알게 되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당신에게 닿기 전에 사라지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질 것이다. 그러면 불필요한 조급함이나 피로에 찌들일 없이 내적으로 고요를 유지하며 관심이 필요한 사안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 힌두교, 불교. 시크교, 자이나교에서 강력한 상징물인 연꽃은 강이나 연못의 진창 속에서 피어나지만 하늘로 우뚝 솟지 않고 수면에 피어 잔잔하고 자유롭게 떠다닌다. 석가모니가 지나가는 길마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 연꽃이 피어났다는 설도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연꽃도 내려놓는 원리를 담고 있다. 아름답고 고결하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낮은 위치에서 핀다. 손에 닿을 만큼 가까우면서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는 꽃인 셈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균형점도 이와 같다. 인정이나 부, 권력을 추구하다보면 표적을 놓친다. 표적을 너무 열심히 겨낭하면 겐조가 제자들에게 경고한 것처럼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과 명중에 필요한 기술을 간과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어야 하는 일은 연습이고, 우리가 밀어내야 할 것은 고집스러운 의지다
숙달의 경지에 가까이 갈수록 세부적인 결과에는 덜 신경 쓰게 된다. 더욱 협력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수록 에고와 불안이 줄어들고 내면이 평화로우면 평화로울수록 더욱 생산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 무엇이 됐든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채우려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 때로는 말 그대로 철창에 같히기까지 했던 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권력과 섹스와 관심은 적어도 즐거운 맛이라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욕망의 가장 흔한 형태는 시기다.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그들이 가진 것을 탐하는 야욕. 칼럼니스트 조지프 엡스타인의 명구를 보라. "일곱 가지 죄악 중에 '시기'는 재미조차 없다." 그보다 2400년 앞서 데모크리토스는 이런 말을 했다. "시기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적처럼 대하여 고통을 준다."

- 동양 철학에서 우리는 '충분하다'에 관한 최고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노자는 말한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이 너의 것이 된다."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가장 큰 불행은 만족을 모르는 것이니. 더 얻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만족함을 아는 자는 언제나 만족하며 살게 된다.
서양 철학자들은 더 많이 얻는 것과 만족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애썼다. 에피쿠로스는 "만족을 모르는 자에게는 충분함이 없다"고 했고, 시인 토머스 트러헌은 "축복을 받고 이를 귀하게 여기는 자는 천국에 있을 것이요, 축복을 받고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는 지옥에 있을 것이다. (..) 축복을 귀하게 여기지만 받지 못한 자는 지옥에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어둡고 우울한 성향의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추정되지만 특유의 휘트먼식으로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곳곳에서 구워지고 있는 빵과 그 빵의 갈라진 틈은 굽는 사람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식욕을 돋운다." "잘 익어 고개를 숙이는 곡식의 줄기, 사자의 찡그린 이마, 돼지주둥이에서 흘러나오는 거품"과 같은 생생한 묘사를 써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마주하는 아름다움을 "매 력적인"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죽어가는 동안에도 이런 글을 썼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시간의 짧은 한 조각에 머물다 간다. 잘 익은 올리브 열매가 자신을 잉태한 대지를 찬양하고 자신을 길러준 나무에 감사하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당신도 마지막에 기품 있는 모습으로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가기를."

- 분노보다 더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분노만큼 모든 것을 왜곡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분노가 성공한다면 그보다 오만한 게없고 실패하면 그만큼 광기 어린 게 없다. 분노는 행운의 여신이 적을 물리쳐줄 때에도 스스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패배하더라도 지쳐 물러서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세네카)

- 처칠의 최고 전기 작가로 손꼽히는 폴 존슨의 말을 빌리자면. "처칠은 죽을험을 다해 열심히 일하면서도 창의적이고 회복성 있는 여가 시간을 보내며 삶의 균형을 유지했다. 누구든 최고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처칠의 삶을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존슨이 작가로서 경력을 쌓기 수십 년 전이었던 열일곱 살 시절, 길거리 에서 만난 처칠에게 소리쳐 물었다. "선생님! 성공하실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입니까?"
처칠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정신과 육체의 힘을 보존하는 것. 앉아 있을 수 있을 땐 절대 일어서지 말고 누워 있을 수 있을 때는 절대 앉아 있지 말게나."

- 처칠이 기력을 보존했던 건 일을 회피하거나 도전에서 물러서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일을 추진력 있게 해내면서도 결코 기력을 모두 소진해버리는 일이 없었고,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기쁨의 불꽃을 꺼뜨리는 일도 없었다. 존슨은 처칠의 삶을 돌아보면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도 네 가지의 교훈을 더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첫째, 목표를 높이 세울 것. 
둘째,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 만 한 비난이나 실수를 절대 받아들이지 말 것.
셋째. 타인으로부터의 원한이나 이중성. 내분 따위에 기력을 낭비하지 말 것. 
넷째. 즐거움 을 누릴 여유를 가질 것. 
처칠은 전쟁 중에도 유머 감각을 잃는 법이 없었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잃지 않았으며 지친 기색이나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 무위는 타자가 완벽한 공을 볼 때까지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잡고 있는 능력이다. 명상하는 요가 수행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정신과 영적 수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신체적 고요를 유지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도 마찬가지였다. 상대편을 무너뜨리기 위해 전혀 서두르지 않았던 케네디의 모습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으나 그는 자기 자신과 러시아가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만들고 있었다. 타이거 우즈가 일 중독과 섹스 중독에 빠져 버둥거리고 있던 때 잃어버렸던 것이 바로 무위를 연습하는 능력이었다
절제된 행동, 이게 바로 존 케이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4분 33초>의 공연 지침에서 요구했던 것이다
급하게 서두른다고 미로를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미로를 풀기 위해서는 멈춰서 생각해야 한다. 에너지를 아끼면서 신중하고 느리게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할 도리 없이 길을 잃고 만다.

- 키르케고르는 침대에 누워서만 지내다가 결국 우울증까지 얻은 형수에게 편지를 보내며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47년에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썼다. "무엇보다도 걸어야겠다는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하루하루 더 건강해지기 위해 걸었고 또 걸으면서 갖가지 질병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저는 최고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걸었습니다. 걷기를 통해 벗어나지 못할 만큼 무거운 생각은 어디에도 없 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이 질병의 온상과도 같다고 믿었다. 반대로 걷는 활동을 거의 신성시했는데, 철학자인 그의 탐구의식에 마중물을 붓는 것처럼 걷는 일은 그의 머리를 비웠고 영혼을 맑게 해주었다. 그는 "인생은 길이니 우리는 반드시 걸어야 한다"라고 즐겨 말했다
키르케고르는 특히 걷기에 관한 글을 매우 설득력 있게 썼는데. 놀랍게도 걷기에 헌신한 사람이나 걷기의 이점을 찬양한 사람이 혼자만이 아니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아이디어를 긴 산책 중에 얻었다고 말했다.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Nikola Tesla는 1882년 부다페스트의 도심 공원을 산책하다가 역대 가장 중대한 과학적 발견으로 꼽히는 회전자계의 원리를 발견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파리에 살던 시절, 글을 쓰다 막히거나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싶을 때면 늘 부듯가를 따라 긴 산책을 했다. 
찰스 다윈의 하루 일과에는 여러 차례의 산책이 끼어 있었으며. 이는 스티브 잡스,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 그리고 훗날 "아모스와 여유롭게 산책하고 있을 때 머리가 가장 잘 돌아갔다"라고 말한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도 마찬가지였다. 카너먼은 자신의 두뇌를 가동시키는 것이 다름 아닌 신체적 활동이라고 했다

- 산책은 칼로리를 소모한다거나 심장박동수를 올리기 위한 일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무엇인가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산책은 존재. 초월, 마음을 비우는 것. 당신을 둘러싼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감상하는 것에 대한 개념을 표현하고 구체화하는 행동이다. 이제는 떨쳐내야 할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떠오르는 생각을 향해 다가가야 할 때다.
제대로 된 산책을 하려면 마음이 완전히 비어 있으면 안 된다. 넋을 놓고 걷다가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자동차 또는 자전거에 치이고 만다. 요점은 전통적인 명상처럼 마음에 이는 모든 생각 을 밀어내는 게 아니다. 반대로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고 있는 동안 마음은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요한 상태다. 제대로만 한다면 이는 다른 방식의 생각이 되고 더욱 건강한 방식의 생각이 된다. 뉴멕시코 하일랜드대학의 연구팀은 우리가 걷고 있을 때 뇌에 공급되는 혈액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탠포드의 연구원들은 사람들이 걷는 동안 또는 검고 난 이후에 '창의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를 측정하는 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듀크대학교 연구진은 키르케고르가 형수에게 말했던 것처럼, 산책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일부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습관을 적이 아니라 협력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하루, 나아가 우리 인생을 도덕적이고 정연하고 고요하게 만들 수 있으며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항하는 일종의 방책을 만들 수 있고, 우리가 하는 일에서 최고의 능률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도움이 되는 행동을 최대한 많이. 최대한 일찍부터 습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페스트를 경계하듯 우리에게 불이익을 끼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되게끔 만드는 일상의 과정이 많아질수록 더 높은 정신력을 갖게 되고 더 자유로워지므로 더욱 적절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떤 행동도 습관으로 만들지 못하고 주저하며 습관적으로 하는 일 없이 모든 것을 주저하는 사람, 시가를 피울 때마다 먹고 마실 때마다 매일매일 자고 일어날 시간을 결정할 때마다 무엇이든 시작할 때마다 일일이 다 신경 써야 하는 사람보다 비참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소유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소유물을 읽게 될까봐 두려워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소유물에 얽어매는 행동은 적에게 여지를 주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운명 앞에서 휠씬 더 나약하게 만든다.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는 사치품을 '문 앞의 늑대'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소유물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의존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더 줄어드는 상황, 일정 수준의 서비스 없이는 점점 더 견디지 못하는 상황을 성공의 파멸이라고 일컬었다. 소유물이 쓰레기처럼 널려 있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걸 치우려면 사람을 고용해 돈까지 지 불해야 한다.
편의의 불쾌함이라고 부를 만한 상황도 있다. 우리는 일정 정도의 편리함과 호화로움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런 것들이 없는 삶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부유함의 정도가 커질수록 우리가 '보통 이라고 느끼는 수준도 같이 높아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러한 풍요로움 없이도 잘 살았다. 지금 보다 더 적게 먹고 작은 집에서 사는 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된 지금은 우리의 머리가 우리에게 거짓 말을 하기 시작한다. 너에게는 이게 필요해.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긴장해. 지켜내야 해. 나눠 쓰지 말란 말이야. 아주 중독성 있고 무서운 거짓
말이다. 이런 이유로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욕구를 줄이고 소유물을 제한하라고 늘 권하는 것이다. 수사와 사제들은 평생 가난하게 살겠다고 서약한다. 그래야 그들이 맹세한 영적 추구를 위한 여유가 더 많이 생기고 그 길을 가는 데에 방해 요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욕심낼수록 우리의 내면은 앞으로 나아갈 공간이 좁아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고요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 순자가 말했다. "어떤 행동이 몸을 피곤하게 하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면 그 일을 하라." 
동양 철학자들이 무술을, 서양 철학자들이 주로 레슬링이나 권투를 훈련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런 무술은 결코 쉬운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훈련 중에 현재에 집중하지 않으면 곧장 상대에게 당하게 마련이다. 
요점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거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도전의식과 정신적 편안함을 동시에 주는 활동을 추구해야 한다. 제자들은 공자가 여가 시간에 "침착하면서 완전히 편안하게" 있는 모습을 관찰했다. 바로 이거다. 여가 활동은 그저 다른 맥락에서 고요를 연습하고 실현하는 기회인 것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우리는 여가 활동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퍼즐 맞추기. 기타 배우기, 조용한 아침에 수럽용 막사에 들어가 않아 있기. 사슴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소총이나 활을 안정되게 잡고 있기, 노숙자 쉼터에서 수프 배식하기 등, 이런 활동을 할 때 우리의 몸은 바쁘지만 정신과 영혼은 활짝 열린다

- 죽음은 아마 우리에게 가장 큰 불안과 괴로움을 심어주는 원인일 것이다. 죽음을 생각을 하는 건 무서운 일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우리는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천국이라는 게 있을까? 지옥은? 죽음은 고통스러울까?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일까? 암흑의 태고일까?
세네카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에 있었으므로 죽고 나면 다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빛이 꺼지는 건 무언가를 잃는 게 아니라 그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죽음이라는 이 단순한 현실을 부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의 위대함을 자랑하는 기념물을 만들려는 것이고 그토록 걱정하고 논쟁하는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 쾌락과 돈만 좋느라 고요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무의미하게 죽음에 맞서 싸우거나 쓸데없이 죽음에 대한 생각을 무시하려 애쓰며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키케로는 말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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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8

Quote of the day 2026. 7. 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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