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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스벨트의 요청에 의해 쿠즈네츠가 만든 GDP 개념은 대공황(1929~1939)이라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먼저 미국의 생산력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거기에 하나의 필요성을 더했다. 전쟁 수행 능력을 측정할 척도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GDP는 전쟁 수행을 위한 참고자료를 넘어 국가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 지표가 되었다. 어디에 얼마의 돈을 쓸 것인가를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정확한 GDP 규모를 파악해야 했고, GDP 규모를 키워야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재임 1933~1945)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결정하면서. GDP를 바라보는 태도는 극적으로 변한다. 대공황 시기 GDP는 미국 경제가 얼마나 붕괴되었는지, 그리고 회복할 여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가늠하는 지표였다. 그러나 전시 체제로 진입 한 이후 GDP는 더 이상 '경기지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 얼마나 많은 군수물자를,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총력전의 지표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GDP의 구성 비중 하나하나가 중요해졌다.
GDP는 민간소비(C). 민간투자(I). 정부지출(G). 그리고 순수출(-M)로 구성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가 GDP를 측정하며 진정으로 알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민간소비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그 줄어든 소비를 정부지출과 군수 관련 투자로 얼마나 전환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전환을 통해 독일과 일본을 동시에 상대하는 이중 전선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는가?
결국 미국은 GDP의 40%를 군수 생산에 투입했다. 포드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B-24 폭격기를 하루에 한 대씩 찍어냈다. 그리고 승리했다. GDP는 너무나 유 용했다. 각국의 목표는 정확히 GDP 를 측정하고. GDP를 늘리는 것이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킬 당시 일본 GDP가 미국 GDP의 15% 내외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일본이 얼마나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다. 이제 GDP는 명실상부한 국가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 지수가 되었다

- 지금은 미국 GDP 의 80%가 서비스 부분이 되었다. 거기에 더 심각한 것은 비생산적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서비스 부분에서도 점점 더 커졌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미국 GDP의 50%를 비생산적 서비스가 차지한다
GDP는 한 나라가 '무엇을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라기보다,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조업 중심 사회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계산 방식이, 서비스와 금융이 경제의 중심이 된 이후에는 점점 더 심각한 왜곡을 낳게 된 것이다. 현재 중국의 GDP는 미국의 2/3 수준이다. 하지만 과연 미국이 중국보다 생산력 이 큰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미국이 정말 중국보다 경제규모가 큰나라일까?

-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재화의 가치는 그 재화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동량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재화의 가치를 그것을 소비하면서 얻는 효용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정의했고, 그것이 지금 주류가 되었다. 정말 그럴까? 마찬가지로 애덤 스미스와 쿠즈네츠는 한 나라의 국력은 생산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지금은 지불 능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말 그럴까? 물론 그렇다고 한 나라의 제조업 역량만으로 그 나라의 경제규모를 파악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GDP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던 태도는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GDP나 1인당 GDP는 더 이상 경제규모나 생산력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고 삶의 질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GDP나 1인당 GDP에 목매지 않고, 거시적 차원에서 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반영하는 참고자료 정도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 모든 세계의 모든 집권 정당이 이끄는 정부는 물가지 표를 낮게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지수'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종합물가지수보다 항상 높다. 이것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아는 것이 물가상승률을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물론 정부가 아닌 기업도 먼저 물가 상승을 숨기려 한다. 대표적인 것이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과 스니크플레이션(sneakfaction)이다. 
먼저 슈링크플레이션은 말 그대로 양을 줄이는 것이다. 봉지 과자의 가격과 부피는 변하지 않았는데 내용물은 줄고 대신 질소 충전이 늘어나거나, 아이스크림의 부피가 작아지거나 화장지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이다. 슬라이스 치즈를 샀는데, 예전에는 10장이 들어 있다가 지금은 8장만 들어있는 것이다. 
스니크플레이션은 훨씬 더 교묘하다. 말 그대로 몰래 (sneak) 진행되는 인플레이션'이다. 한마디로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품질.구성.서비스를 몰래 낮춰 실질 가격을 올리는 현상이다. 비행기 가격은 그대로인데 부칠 수 있는 짐의 무게가 줄거나,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을 만들어 비상구 앞 좌석의 가격을 새로 만들거나, 비행기 좌석 간격을 좁혀서 탑승객 수를 늘리는 것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호텔을 가면 방 가격은 그대로이지만, 수영장 사용료와 주차장 사용료가 추가로 부가되고. 심지어 의무적으로 그 비용을 부담하게 만드는 식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물가상승률에 잡히지 않는다. 봉지 과자. 비행기 좌석. 미국의 호텔. 그리고 치즈가 들어간 빅맥 세트의 가격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감 물가지수가 종합물가지수보다 높은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은 체감 물가지수와 종합물가지 수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차이는 각국의 물가를 통계 처리하는 통계 당국에서 만들어낸다

- 연준은 물가를 볼 때. CPI 말고 PCE라는 지수를 선택 했다 연준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연준이 보고 싶었던 것은 "가계가 병원에서 얼마를 냈느냐"가 아니라, "경제 전체에서 의료 서비스에 실제로 얼마가 쓰였느냐"이다. 작년에 비해 의료 서비스에 들어간 총지출이 50% 늘어났다면. 연준은 그 증가분을 물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GDP 계산에도 부합하는 방식이었다
소비자물가지수인 CPI는 가계가 직접 지출한 가격을 본다. 하지만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인 PCE는 가계가 소비하긴 했지만. 기업이나 정부가 대신 낸 돈까지 포함해서 본다. 한마디로 말해 내 지갑에서 나간 돈만 보느냐. 아니면 나를 위해 사회 전체가 쓴 돈 까지 보느냐의 차이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물건이나 서비스 가격은 빠르게 오르는데. 정부 보조금이나 고용주가 대신 내주는 보험료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개인이 느끼는 물가는 급등하는데. 통계에 잡히는 물가는 상대적으로 덜 오르게 된다 하지만 연준의 입장에서는 경제 전체에서 가계가 실제로 소비한 서비스를 기준으로 해야 국가 경제를 더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PCE를 선택한다

- 그런데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인 PCE는 당신이 고기를 사먹기 위해 지출한 돈의 총량에 주목한다. 예전 당신은 소고기 10kg(10만 원), 닭고기 10kg(2만 원)을 먹기 위해 12만 원을 지출했다. 그 런데 소고기 가격이 두 배로 올랐다. 소고기 1kg이 1만 원에서 2만 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소고기는 5kg(10만 원)만 먹고, 대신 그 줄어든 양만큼 닭고기를 15kg(3만 원)을 먹었다. 지출은 13만 원이 되었다. 물가는 얼마나 오른 것일까?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인 PCE에 따르면. 물 가는 8.3%(130,000-120,000)= 120,000=0.083)밖에 오르지 않았다
연준은 말한다. 이렇게 계산해야 GDP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고 말이다. 즉,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인 PCE는 예전에는 소고기 10kg과 닭고기 10kg이 소비되었던 반면, 지금은 소고기 5kg과 닭고기 15kg이 소비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지표라고 설명한다 신기한 계산방법이다. 상식적으로는 물가가 올라서 생활수준은 하락 했지만, 연준의 발표에 따르면 물가는 안정되어 있다

- 이번에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신은 원래 구형 50만 원 짜리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실해서 새로운 아이폰을 사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새로운 아이폰은 가격이 200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구형 아이폰을 찾았지만, 더 이상 구형 아이폰은 판매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아이폰을 샀다. 새로운 아이폰의 기능은 당신에게 필요 없었지만 말이다
당신의 입장에서 물가는 4배 올랐다. 하지만 연준은 물가가 거꾸로 50%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왜냐하면 새로운 폰의 성능이 8배 향상 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50만 원짜리 폰에 비해 성능이 8배 높아졌 다면. 그 폰의 가격은 400만 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연준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성능이 8배 좋아진 폰을 원한 적이 없다. 전화되고, 문자되고, 배터리가 오래가면 그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새 폰은 당신에게 배터리만 빨리 소모되는 것일 뿐이었다. 이른바 헤도닉 조정(hedonic adjustment, 품질 조정)이다

- 주거비(수도 광열 포함할) 18.2% + 교육비(사교육비 포함) 7.4% + 의료비(비급여 치료비 포함) 7.3%'이 전체 가계지출의 1/3을 넘지 않는다는, 이 이상해 보이는 물가지수가 대한민국 통계 당국에서 추출하는 물가지수다. 통계 당국이 발표하는 물가지수가 언제나 우리가 느끼는 물가지수보다 낮은 이유이다.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통계가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인 CPI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임금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의 정확한 생계비를 계산하려 등장한 것이었다. 식료품. 의복. 연료, 교통 비용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당시 노동자가 자가에 사는 확률은 드물었다. 그래서 임대료를 측정했다. 그때는 집값의 비중도 높지 않았고, 금융상품 역시 발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자산가격이 오히려 실질 생활비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집값, 전월세금, 대출이자. 주식가격 등이 어찌 보면 식료품. 의복. 연료. 교통비보다 중요한 사회가 되 었다. 그리고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단순히 먹고사는 것이 중요한 산업사회가 아니라 교육. 보육. 건강. 그리고 노후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현대 사회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물가지수가 절실한 이유이다

- 케인스의 말을 인용하겠다. "투기꾼들이 잔잔한 기업활동의 흐름 위에 거품을 형성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활동 자체가 투기의 소용돌이 위에 뜬 거품이 되는 순간, 사태는 심각해진다. " 대공황에 왜 은행(금융)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 현대통화이론은 이런 실업이 기술적으로 불가피해서 발생한 것도 아니고, 재정 제약 때문에 발생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잘못된 재정 선택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통화이론의 공동 창시자 중 한 명인 빌 미첼의 말이다. "실업은 언제나 정치적 선택이다." 포스트 케인지언이자 현대통화이론의 사상적 뿌리인 민스키의 말이다 "일할 의사와 능력을 가진 모든 사람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
케인스 혁명의 하나는 실업자를 국가가 방치하지 개입한 것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케인스 시절의 실업과 지금의 실업은 그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실업은 시장에 맡겨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 미국의 도금 시대와 광란의 20년대는 너무나 1980년대 대한민국 과 2020년대 대한민국을 닮아 있다.
1980년대에도 빈부격차는 심했다. 당시의 빈부격차는 재벌과 서민의 구도였다. 재벌은 정경유착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서민들은 오르는 물가에 힘들어만 했다. 하지만 당시의 빈부격차는 기본적으로 실물경제의 분배과정에서 나오는 빈부격차였다. 그리고 그 실물경제에서 나름대로 일자리는 풍부했고, 임금 상승률은 물가상승률을 넘어섰다
소득격차보다는 자산 격차가 더 중요하다. 예전에는 "그 사람 얼마나 벌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물었다면. 지금은 "그 사람 재산이 얼마야"를 물어본다. 그리고 어디 사는지를 물어본다
그런데 2020년대의 빈부격차는 다르다. 
이제 빈부격차는 소득을 넘어 금융이 일으키는 자산에서 나온다. 창업을 하는 사람조차 그 회사를 '얼마나 큰 기업으로 키울까'가 목표가 아니라. '얼마에 그 기업을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 금융 버블은 기본적으로 공통적인 구조적 순서를 가진다. 먼저 자산가격이 소득에 우선한다. 즉, 사람들은 소득보다는 자산가격 상승을 통한 이윤 추구를 우선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운 금융기법이 등장한다. 이에 자산가격이 폭등한다. 사람들은 이 자산가격이 실질 가치보다 휠씬 더 높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애써 외면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급격한 자산가격의 상승 속도에 조급함을 느끼고. 결국 이번 자산가격 상승은 이전과는 다르다는 서사를 믿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버블은 터지고, 서사는 붕괴된다. 결국 문제는 금융에 그치지 않고 실물경제로 전이된다
이 단계를 5단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산가격이 소득에 우선
2. 금융화로 신용과 레버리지 확대
3. 높은 가격이 위험을 밀어냄 
4.이번에는 다르다는 서사의 확대
5. 붕괴와 실물경제 파탄

- 컴퓨터는 AI와 달리 처음부터 거대한 자본에 종속되어 출발하지 않았다. 컴퓨터 혁명은 개인과 소규모 조직을 중심으로 확산되며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컴퓨터는 사무직을 없앤 기술이 아니라 사무직을 강화한 기술이었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회사 사무직의 책상 위에 컴퓨터가 놓여 있는 풍경은 흔하지 않았다. 지금의 사무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컴퓨터의 확산과 함께 교육의 중요성은 커졌고, 교육을 많이 받은 중산층이 빠르게 늘어났다. 반면 AI는 다르다. AI는 사무직을 강화하기보다 사무실 자체를 줄이고 있다.
컴퓨터 혁명은 경쟁을 일으켰다. 수많은 컴퓨터 업체가 등장했다. 그들은 기술 경쟁을 했다. 그 과정에 살아남고 죽기를 반복했다. 그런 경쟁은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그리고 그 경쟁의 핵심은 기술 경쟁이었다. 그 기술 경쟁은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진시키는 외부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사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AI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기술 그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규모의 경제에서 나온다. 더 많은 더 큰 연산 자원.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자본, AI 산업은 규모가 큰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다만, 그 공장이 자동차 공장이 아니라 데이터센터로 바뀌었을 뿐이다
초기 AI 운영에 들어가는 전기료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투자비와 고정비에 비하면 한계비용은 매우 낮다. 바로 이 규모의 경제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제는 수조 달러의 자본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메타,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기업들도 처음에는 내부 현금흐름으로만 AI 투자를 감당했지만. 규모의 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점차 회사채 발행 등 부채 조달로까지 자금을 끌어오고 있다.

- 우리는 정치 현안에 대한 정부정책은 당파적으로 판단하지만, 경제 현안에 대한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중립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 민국을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한국은행 총재나 재정경제부 (구 기획재정부) 장관 같은 경제정책 결정자들의 선택은 다르다고 본다 그들의 금리 결정이나 재정정책은 '국가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과연 그럴까? 그 결정이 정말 대한민국 전체의 이익을 위해 내려졌을까, 아니면 특정 집단이나 계급의 이익을 더 반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설령 의도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특 정 집단에 유리하게 작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바로 이런 의심에서 출 발해야 비로소 세상의 경제가 돌아가는 동력을 이해할 수 있다.

- 애덤 스미스는 상업자본주의에서 산업자본주의로 넘어 가던 산업혁명기의 영국을 배경으로 글을 썼다. 그는 더 이상 중상주의가 영국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선언했다. 그의 논리는 먼저 보호무역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애덤 스미스는 무역을 국가 간 전쟁의 연장선으로 보는 중상주의식 제로섬 관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대신 절대우위론을 제시했다. 예컨대 영국은 프랑스보다 잘 만드는 기계를, 프랑스는 영국보다 잘 만드는 와인을 서로 수출:수입하면. 두 나라 모두 이익을 보는 윈윈 게임이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 무역에 관세를 부과해 거래를 막으면, 두 나라 모두 손해를 본다고 보았다.
나아가 그는 관세는 관세를 부과한 나라에도 이익이 아니라 손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왜나하면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국내 공급자는 해외 경쟁 압력에서 벗어나기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가격을 올려 지대(노력 없이 얻는 이익)를 챙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수입 관세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물가를 올려 국민의 실질 소득을 낮추며, 결과적으로는 경기위축을 불러온다고 보았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굳이 현대 경제학을 끌어올 필요도 없다. 1776년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마치 250년 뒤의 트럼프를 겨냥한 듯한 통찰을 이미 남겼다. 그는 250년 전에 이미 자유무역의 원리를 통해 그 한계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 애덤 스미스는 중세의 기독교적 도덕관을 넘어서 경제활동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이기심 그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사회 전체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 고 보았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개념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c hand)'이다. 스미스는 제빵사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더 맛있고 더 저렴한 빵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게 할 때.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후생이 함께 높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스미스의 생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또 다른 저서 도덕감정론(The Thecory of Moral Sentimenxs). 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와 권위는 종종 지혜와 미덕보다 훨씬 큰 존경을 받는 반면, 가난과 미천함은 무시되거나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이런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강하게 비판했다. 비록 당사자가 실제로 가난 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상상력과 공감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에도 애덤 스미스가 필요한 이유이다

- 케인스는 통화정책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정부의 실물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대공황을 극복하는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금융이 아닌 실물. 즉 현실에서 물건을 살 의사와 능력을 갖춘 새로운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케인스의 해법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정부가 투자자에게 책에 대한 수요가 늘 것이라는 신호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신호를 어떻게 출 것인가?
먼저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창출해서 실업자에게 직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실업자들이 취업을 하게 되고. 그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자녀를 학교에 보내게 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도 투자자들은 서점을 차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케인스는 노조를 강화하고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강화되면 노동자는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최저가격 보장제가 실시되면 농민은 내년 수확기의 곡가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어 자녀를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학생들의 숫자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따라 안정적인 책 구매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에, 투자자들은 금리가 얼마인가를 문기 이전에 서점을 서로 먼저 차치려고 할 것이며, 그러면 자연스럽게 경기가 활성화되고, 다시 금리는 상승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탁견이다
더 나아가 케인스는 광산에 실제로 금이 없더라도, 정부가 공공사업을 통해 사람들이 일하고 소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정부는 광산으로 가는 도로를 깔고, 금을 캐러 가는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된다면. 집에서 놀던 사람들도 곡괭이와 이불과 천막을 사서 광산으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금을 캐는 동안 먹을 충분한 식량도 살 것이다. 기업은 금 매장량을 측정할 기계를 사고, 금광석에서 금을 채굴할 기계를 사며. 그리고 그 기계를 설치할 토지를 임대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결국 금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총수요가 증가하여 불 황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는 어떻게 봐야 할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를 관리하는 한 가지 방식은.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해 더 많은 부채를 떠안는 것이다. 늘어나는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빛을 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지속 가능성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미국 정치인들이 상대적으로 세금을 더 걷어 빛을 줄이는 방식보다는 선호해 온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결국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미국 국채의 최대 수요자였던 다른 나라 정부들이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사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발상을 바꿔 다른 나라의 정부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사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여기서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한다. 스테이블코인을 사는 순간. 실제로는 상당 부분 미국 국채를 간접적으로 사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생긴다. 주요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 상당수가 달러 예치금이나 단기 미국 국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테이블코인은 접근성이 뛰어나고, 국경을 넘는 제약도 거의 없다.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보다 규제가 느슨한 영역도 존재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기존 금융권 바깥에 있던 자금들까지 흡수할 가능성 역시 커진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 판매 주체가 미국 정부가 아니라 사기업이라는 사실이다. 발행사가 파산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직접적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국채 수요는 늘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단어를 점점 더 자주 듣게 될 이유일지도 모른다.

- 김씨는 이씨에게 1천 원을 빌려주고 1년 뒤 이자로 100원을 더 받아 총 1,100원을 돌려받으려고 했다. 금리는 10%다. 그런데 컵 가격이 20% 오를 것이라는 소식을 듣자, 김씨는 이씨에게 이자를 20% 이상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씨가 이를 거절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정부가 제로 금리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 이제로 금리를 바탕으로 시중은행에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공급하자. 기준금리의 영향을 받은 시중금리는 10%수준에서 형성되었다.
자연스럽게 이씨는 더 이상 김씨에게 돈을 빌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다면 당신이 김씨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연 10%의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줄 것인가? 김씨가 그렇게 한다면. 1년 뒤 실질적으로 10%의 손실을 보게 된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가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머리말에서 다루었던 이 책의 핵심 주제로 돌아오 게 된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금융이 더 이상 실물의 그림자가 아니라, 거꾸로 금융이 실물을 쥐고 흔드는 비정상적인 상태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2008년 이후의 제로 금리로 대변되는 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는 이러한 상태를 고착시켰다. 자산가격은 폭등했고. 소득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력난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이 잠시 상승하기도 했지만. 곧 멈추었다. 중위소득 증가율이 1~2%에 머무르는 동안. 상위 20%의 소득은 꾸준히 연 4~5%식 증가했다. 자산 불평등 위에 소득 격차까지 더해지면서 빈부격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 1980년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대가 되었다. 통화주의자라 불리던 경제학자들과, 신자유주의자로 불리던 정치인들의 결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의 첫 번째 목표는 분명했다. 당시 경제∙정치학의 주류였던 케인스식 사고를 밀어내는 것이었다 이들에게는 절묘한 기회가 찾아왔다. 1차, 2차 오일 쇼크 이후 경기는 침체되었는데도 물가는 계속 오르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상황을 케인스식 경제정책의 실파 로 몰아갔다. 경기침체기에 정부가 개입해 지출을 늘리면 경기가 살 아나야 하는 것이 케인스 이론의 핵심인데. 현실에서는 경기는 회복되지 않고 물가만 더 올랐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물가가 오르자 케인스의 '유효수요' 논리를 등에 업은 강한 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했고. 기업은 늘어난 인건비를 제품가격에 반영했다. 그러자 물가는 더 올랐고. 더 오른 물가는 다시 임금 인상 요구를 자극했다. 임금과 물가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었다
통화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케인스 학파의 논리는 과거의 논리다.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이 보기에 경제를 망치는 주범은 분명했다. 재정정책을 통한 정부의 개입. 그리고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강한 노조였다
그렇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부 지출을 늘리는 재정정책은 물가만 더 올릴 뿐이니. 해법은 통화정책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때부터 중앙은행의 역할이 급격히 커졌다. '수정자본주의' 또는 '혼합 경제체제'라는 이름 아래에서 커진 국가는 다시 작아져야 했고. 눈엣가시 같던 노조 역시 약화되어야 했다. 강한 중앙은행을 원했던 통화주의자들과. 작은 정부를 꿈꿔온 신자유주의자들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 환율을 결정하는 것은 이처럼 단순한 가격이 아니라 사람들의 불안이며, 달리 말하면 믿음이다. 만약 사람들이 교과서가 가정하는 것처럼 합리적으로 행동했다면,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달러 가치가 폭락했어야 했다. 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달러를 팔기는커녕 오히려 달러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마치 위험을 감지한 짐승처럼 본능적으로 달러를 선택한 것이다. 외환시장에서 인간은 교과서가 가정하는 것처럼 완전히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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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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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트백 억만장자

경영 2026. 7. 3. 07:00

- 젊은 시절, 쉬나드는 더트백dirtbag으로 유명했다. 더트백이란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소유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흙바닥에서 잠을 자도 마냥 행복해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후 그는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암벽들을 오르며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 등반 장비를 다시 설계해 가며 당대 최고의 등반가라는 반열에 올랐다.
경영자로서 쉬나드는 기존의 통념을 거부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에 충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파타고니아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공헌, 파격적인 육아 복지 혜택, 창의적인 마케팅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아웃도어 의류를 선보이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쉬나드가 억만장자가 된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였다.
하지만 쉬나드의 가장 큰 업적은 그가 막바지에 이룬 것이다. 그는 성공의 정점에서 회사 소유권을 포기하고 막대한 부를 내려놓는 결단을 내렸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이 결단으로 그는 평생 자신을 괴롭혀 온 질문들에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을 보여줬고. 자선을 실천하려는 자본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보였다. 그는 모험가이자 사업가였으며 동시에 자선가였다. 이 세 가지 정체성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긴밀하게 맞물리며 그의 삶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 피톤에서 촉으로의 전환은 매우 큰 변화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따로 있었다. 쉬나드가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회사를 뜯어고치기 시작한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구덩이에서 톰킨스와 나눴던 대화 내용 그대로였다. 지구를 망치면서까지 회사를 운영할 이유는 없었다. 쉬나드는 자연 보호를 위해 사업 구조를 뒤혼들며 자신의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암벽 위에서도 쉬나드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피톤 없이 거대한 암벽을 오르는 법을 익히며 등반 기술을 전면적으로 개선했다. 그렇게 록 클라이밍이라는 스포츠를 완전히 뒤바꿨고, 그 과정에서 체계적인 원칙을 세웠다. 당시 마케팅 감각이 날로 날카로워지던 수나드는 이 새로운 가치관에 '클린 클라이밍Clean Climb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훌륭한 브랜딩이었다

- 쉬나드는 피츠로이산이 개발로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며 특히 가슴 아파했다. 그곳은 사업에 있어 그만의 정신적 토대를 세운 원정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1986년, 피츠로이산을 다시 찾은 쉬나드는 완전히 변해 버린 풍경 앞에 말을 잃었다. 불과 20년 만에, 때묻지 않은 자연이 개발이라는 진통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풀어놓고 키우던 적갈색 양도, 드넓은 풀밭도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조잡한 건물 들이었다. 곧 세워질 도로와 호텔. 식당의 경계를 긋는 주황색 테이프가 대지를 격자무늬로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 건설될 도시의 이름은 엘찰텐이었다. 관목지와 거친 강, 세상에서 가장 험준한 봉우리와 풀이 드넓게 펼쳐진 평원 위로 교외 주택지와 상가가 침식하듯 들어 섰다. 무엇보다 끔찍한 점은 쉬나드 자신이 이 난장판을 만든 공범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모험담이 전설이 되고 파타고니아 로고가 유명해질수록, 피츠로이산은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세상을 향한 광고판이 된 셈이었다. 자신의 성공이 이런 처참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그는 부정할 수 없었다. 경악한 쉬나드는 그날 이후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시는 피츠로이산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 에스프리 지분을 팔자마자 톰킨스는 쉬나드에게 자신을 뒤따르라고 부추기기 시작했다. 파타고니아를 팔고  돈으로 더큰 일을 하라는 말이었다. 톰킨스는 쉬나드에게 그 정도 돈이면 드넓은 땅을 사거나, 더 많은 활동가를 지원하거나, 아니면 그냥 오지로 숨어들어 남은 인생을 낚시나 하며 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CEO라는 골치 아픈 자리에서 해방된 톰킨스에게 쉬나드 같은 동료가 굳이 공급망과 유통망 문제와 씨름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었다. 쉬나드는 때때로 톰킨스의 조언에 흔들렸다. 회사를 굴리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고, 그는 이사회 회의실보다는 자연 속에 있을 때 더 행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그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파타고니아의 최고 재무 책임자CF0였던 빌 부시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쉬나드는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런 것dp혀 개의치 않아요. 그와 말린다가 파타고니아를 상장했다면 수백만 달러를 벌었겠죠.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쉬나드는 자신이 경영권을 직접 쥐고 있을 때 세상을 더 잘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톰킨스의 설득에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쉬나드는 자신이 하는 일에 더 큰 목적이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파타고니아를 비즈니스 세계의 이단아로 만든 그는 단순히 야생의 자연을 보존하는 것보다 미국의 기업 문화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에 환멸을 느낄 때면, 회사를 매각한 뒤 그 돈을 재단에 내어 주고 환경 보호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마다 회사를 책임 경영의 본보기로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르렀어요. "

- 미래를 위해 쉬나드는 파타고니아의 성장을 억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파타고니아가 100년 기업으로 남길 원했고, 그 목표를 염두에 두고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는 매출을 줄이고, 큰 주문을 따낼 수 있는 기회조차 거절해야 함을 의미했다. 또한 광고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들쑥날쑥한 수익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함을 의미했다 어떤 해는 성장률이 3퍼센트에 그치고, 다음 해는 30퍼센트로 뛸 수도 있겠지만, 회사는 적응해야만 했다. 이 모든 조치는 외부 충격에 빠르게 회복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한 것 이었다. 쉬나드는 이렇게 말했다
'성장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더 강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저 비대해지는 것이죠."
쉬나드가 미래를 바라보며 파타고니아의 메시지는 더 어두운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타고난 비관주의는 늘 수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었고, 회사의 마케팅 자료에는 인구가 너무 많아 지구가 감당할 수 없다는, 맬서스주의에 가까운 주장까지 담겼다. 

- 유기농 면화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임무는 1990년대 중반에 CEO로 합류한 데이브 올슨이 맡았다. 유기농 면화와 관련된 추가 비용은 상당했고, 이를 소비자에게 모두 돌린다면 가격이 폭등해  출이 무너질 수 있었다. 첫해에 올슨은 추가 비용의 절반만 가격에 반영하고 나머지는 회사가 떠안기로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기농 제품을 처음 선보였던 그해 가을, 손실로만 1,000만 달러를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습 니다.'
도박은 빠르게 성과로 돌아왔다. 고객들은 파타고니아의 환경메시지에 호응했고, 불과 몇 달 만에 추가 비용을 모두 메꿀 수 있을 만큼 유기농 의류의 가격을 올릴 수 있었다. 좋은 제품에 소비자가 지갑을 열 것이라는 쉬나드의 신념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이로써 파타고니아는 업계에 분명한 선례를 남겼다. 

- 광고는 리지웨이가 구상한 대로 단순했다. 회색 지퍼형 R2 플리스 재킷 사진 위로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박혔다. 그 아래에는 회사의 철학을 담은 카피가 이어졌다
오늘은 소매업계의 실적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며 진짜 돈을 벌기 시작하는 블랙 프라이데이입니다. 하지만 블랙 프라이데이와 그 안에 투영된 소비문화는 모든 생명을 지탱하는 지구 생태계를 심각한 적자 상태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자원의 15배를 쓰고 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앞으로도 사업을 이어 가고 우리 아이들에게 살 만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기에, 오늘날 다른 기업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여러 분이 물건을 덜 사고, 이 재킷이나 그 어떤 것에든 단돈 1센트라도 쓰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요청합니다
광고는 이어 사진 속 옷 한 벌을 만드는 데 재활용 소재를 60퍼 센트나 사용했는데도 무려 135리터의 물이 쓰인다는 사실을 알렸다. 광고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사지 마세요. 무엇이든 사기 전에 다시 생각하세요."

- 광고가 나간 이듬해. 파타고니아는 자신 들이 가진 대의를 명문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당시에는 이른바 '비콥B Corp' 운동이 세를 얻고 있었다. 비콤은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모범 기업에 주어지는 민간 인증이다. 이 인증을 받으려면 엄격한 자체 감사를 실시한 뒤 비영리 단체인 비랩BLab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벤앤제리스나 브라질 최대 화장품 기업인 나투라 같은 대기업들은 이미 이 인증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 운동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나도록 파타고니아는 아직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있었다. 비랩의 설립자들은 단체를 처음 만들 때부터 파타고니아가 1호 인증 기업이 돼 주길 바랐지만. 쉬나드는 거절했다. 쉬나드와 이사회는 새로운 인증 제도를 이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부풀린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베리테나 블루사인 같은 민간단체로 부터 충분히 감사를 받는 상황에서 또 다른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에 캘리포니아주가 기업들에게 공식적으로 '베네핏 코퍼레이션'으로 등록할 길을 열어 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새로운 법적 지위를 얻으면 회사 규정에 수익 창출을 넘어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하겠다는 내용을 넣을 수 있었다. 이는 쉬나드도 고려해 볼 만한 일이었다. 베네핏 코퍼레이션은 단순히 사회와 환경에 대한 회사의 진정성을 홍보하는 수단 이상이었다. 파타고니아가 지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법적으로 공식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 * 쉬나드의 폐업 위협에도 불구하고 파타고니아는 살아남아야 한다. 유별난 고집과 호기심, 그리고 온갖 결점을 모두 품은 채, 어떤 일이 있어도 지금과 다름없이 독립적인 기업으로 남아야 한다. 다른 대기업에 먹혀 산산조각 나는 꼴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파타고니아는 50년을 버렸다. 앞으로 50년을 더 버틸 자격이 있다
* 연간 1억 달러가 넘는 이익 가운데 더 큰 돈이 환경 운동에 쓰여야 한다. 매출의 1퍼센트를 기부하는 것도 훌륭했다. 쉬나드 부부도 개인 수익금 대부분을 남아메리카 등지의 토지 보존에 쏟아부어 왔다. 하지만 쉬나드는 이번 거래를 통해 자선 활동을 대폭 늘려. 전 세계의 환경 운동가들에게 최대한 많은 돈을 기부하고자 한다
* 어떤 해결책이든 가족의 노출을 줄이고 플레처와 클레어, 그리고 그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방식이어야 한다.쉬나드 부부는 자기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거나 대학에 기부해 명성을 높이는 데는 관심이 없다. 자녀들 역시 회사를 물려받거나, 떼돈을 챙기거나, 유명해지길 원치 않는다.
세 가지 우선순위 말고도 다른 요구 사항들이 곧 윤곽을 드러냈다. 파타고니아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쉬나드 부부의 지분을 털어 내려면 기존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했다. 

- 모슬리는 특정 개인이 아닌 특수 목적의 이익을 위해 설립되고 운영되는 비자선 법적 장치인 '목적 신탁purpose trust'을 검토해 보자고 제안했다. 목적 신탁은 유산 관리와 같이 복잡한 법체계의 일부로, 수십 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대개는 주인이 죽은 뒤 반려동물을 돌보거나 특정 부동산, 묘지를 관리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등 비교적 사소한 업무에 쓰였다. 모슬리는 프로젝트 차카부코가 더 큰 그림을 그리도록 독려했다. 목적 신탁을 이용해 파타고니아의 가치 자체를 신성하게 보존하면 어떨까? 이것이 기업 승계의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가능하게 할 핵심 고리가 될 수는 없을까? 제대로만 풀린다면, 목적 신탁은 쉬나드 일가가 회사를 매각하지 않고도 모든 목표를 달성하게 해 줄 터였다
두어 달 만에 최종안의 윤곽이 잡혔다. 쉬나드 일가는 회사 전체 지분의 2퍼센트에 해당하는 의결권 주식을 새로 설립할 '파타고니아 목적 신탁'에 영구히 양도하기로 했다. 이 신탁은 가족 구성원과 최측근 자문관들이 감독하며, 파타고니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이윤을 전부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도록 보장한다. 이어 쉬나드 일가는 의결권이 없는 나머지 98퍼센트의 주식을 홀드패스트 컬렉티Holdfast Collective단체에 영구히 기부하기로 했다. 앞으로 홀드패스트 컬렉티브는 여러 역할을 맡게 된다. 그중에서도 파타고니아 주식 대부분을 보관하는 수탁자로서의 역할이 핵심이다.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이 주식들을 보유하되, 매각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회사에 재투자되지 않는 파타고니아의 모든 수익을 기후 위기에 맞서 싸우는 단체들에 지속적으로 기부한다. 가족과 최측근 자문관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기부의 큰 방향을 승인한다. 또한 홀드패스트 컬렉티브는 전통적인 비영리 단체인 501(c)(3) 구조가 아닌 501(c)(4) 구조를 택했기 때문에 정치 단체에도 합법적으로 기부할 수 있다. 

- 자본주의 역사에서 기업이 수익 전액을 자선 사업에 쓰도록 구조를 개편한 사례는 드물다. 1980년대 초반부터 폴 뉴먼의 샐러드 드레싱과 쿠키에서 발생한 수익금을 배분해 온 뉴먼스 오운이 그중 하나다 이케아와 레고를 포함한 일부 유럽 기업도 수익 대부분을 재단에 기부한다. 놀랍게도 스위스 시계 제조사인 롤렉스 역시 수익금을 환경과 교육 사업을 지원하는 한스 빌스도르프 재단으로 환원한다. 이제 파타고니아도 수익을 홀드패스트 컬렉티브로 보내기 시작했고, 쉬나드 일가가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었다
소유 구조 변경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부터 자금이 움직였다.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파타고니아는 현금 5,000만 달러를 홀드패스트 컬렉티브로 송금했다. 이 초기 배당금은 홀드패스트 컬렉티브를 단숨에 미국에서 가장 막강한 환경 자선 단체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제 홀드패스트 컬렉티브는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결정해야 했다. 쉬나드 부부답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쓴 경영 전문가 짐 콜린스도 파타고니아의 소유 구조 변경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를 "거대하고 멋진 실험" 이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제품 혁신보다 훨씬 깊이 있는 변화는 조직 혁신입니다. 쉬나드 가족의 구조 개편이 성공한다면. 이는 기업들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진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회사를 키워 팔고 떠날 '출구 전략'을 묻곤 합니다. 그런데 쉬나드는 그 개념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죠. 이것은 일종의 '실존적 출구 전략'입니다. 그는 지금 '이게 내 삶의 방식이다'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유 구조 변경은 단순히 회사를 떠날 계획을 넘어 쉬나드가 자기 방식대로 일을 매듭짓는 마침표였다. 수십 년 동안 이 별난 회사가 어떻게 될지를 두고 수많은 추측이 쏟아졌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파타고니아가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쉬나드가 평생 바쳐 온 일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평가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쉬나드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정말로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를 위해 영원히 변치 않을 가치를 만들었다. 마지막까지 어마어마한 돈의 유혹을 뿌리쳤고, 값을 매길 수 없는 자연을 지키는데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었다. 또한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회사를 보호할 구조를 만들어 이 약속을 모든 사람 앞에서 못 박았다. 자 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파타고니아는 살아남아 그 수익금을 오직 지구를 지키는 데 쓰도록 철갑 같은 성벽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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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3

Quote of the day 2026. 7. 3.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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