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너와 건축
아리 투루넨과 마르쿠스 파르타넨의 저서 매너의 문화사J(이지 윤 옮김, 지식너머)에 따르면, 예절의 일부는 본능에서 발현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인사할 때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구부리는 것은 우두머리 앞에서 자기 몸을 작게 만들어서 덜 위협 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본능이라는 것이다. 침팬지를 비롯한 여러 동물도 이와 비슷하게 몸을 웅크리거나 고개를 아래로 낮추는 행 동을 한다. 이렇듯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 이기 위해서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려고 신호를 만든다. 동물들의 각종 행동이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런 행동이 인간 사회에서 더 욱 세련되게 진화된 것이 예절 혹은 매너라는 것이다. 예절 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을 높인다. 우리나라 사회 에서는 특히 인사성 좋은 사람을 좋게 평가하는데, 그것은 '고개 를 숙여 먼저 인사를 잘하는 사람'은 나의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 이기에,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때 문이다. 신체를 통한 동물적 본능의 의사소통이 예절과 매너라면. 그 같은 제스처를 더 큰 스케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건축 공간이다. 예를 들어서 1970년대 교실에서는 높은 교단을 사용했다. 그 당시에는 한 교실에서 60명이 넘는 학생이 함께 공부했기 때문에 뒷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선생님이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한 목 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교단에 서 있는 선생님은 의자에 앉아 있는 학생보다 더 '큰 사람'이 되고 이를 통해서 선 생님은 학생들을 내려다보는 시점을 갖게 되고, 앉아 있는 학생은 선생님을 우러러보게 되고, 이는 선생님의 권위와 권력을 높이는 효과를 만들었다. 이런 공간 구조는 선생님을 향한 학생들의 존경 심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서 있는 사람보다 앉아 있는 사람이 더 편안하다. 그래서 권력자는 앉아 있기를 선호하는데, 그렇게 되면 시점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궁궐에서 왕은 계단을 만들어서 높은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의자를 놓고 앉는다. 신하는 계단 아래 낮은 곳에 서 있게 한다. 그뿐 아니라 신하들은 좌우로 나누어 마주 보게 하여 왕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옆모습을 노출한 상태에서 고개를 숙이게 하는 공간 구조를 만들 었다. 왕은 고개만 들면 앉은 상태에서 신하의 옆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 구조다. 이런 공간은 왕이 신하를 감시할 수 있는 구조로, 이러한 공간에서는 왕의 권위와 권력이 더욱 커진다. 이때 신하의 매너는 건축 공간이 만든 것이다
- 건축에서 모닥불은 태양 같은 존재다. 모닥불은 인간이 만든 태양이다. 모닥불이 발명되기 전 선사 시대 때 인간은 다른 동물 들과 마찬가지로 태양을 바라보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생활했다 태양이 안 보이는 밤에는 태양 빛을 반사하는 달을 바라보면서 살 았다. 혹은 더 멀리 있는 또 다른 태양이라 할 수 있는 항성의 빛인 별을 바라보면서 살았다. 그렇게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빛을 보면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공간은 자연의 빛을 중심으로 돌 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닥불이 삶의 공간에 들어오면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만든 빛의 구심점을 중심으로 공간을 재구성하게 되었다.
- 인류는 르네상스 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하늘이 돈다는 천동설을 포기하고, 태양 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 의 위치가 변두리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의 세계에서는 반대로 소실점을 중심으로 자신이 주체가 되어 바라보기 시작했다. 태양, 달, 모닥불은 공통적으로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소실점이다. 소실점이 먼 하늘에 있는 경우와 집단 내부에 있는 경우의 차이는 그림의 소실점이 캔버스 밖에 있는 것 과 캔버스 안에 있는 것의 차이와 같다. 모닥불이라는 소실점이 무리 내부에 있게 되면서 세상을 자기 주도적으로 바라보고 활동 하게 된 것이다. 모닥불을 통해서 인간은 비로소 공간적으로 구심점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동물과 차별화된 사회 구조를 발전시킬 공간적인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모닥불이 만든 공간 구조는 인
간만의 강점이 되었다.
- 선사 시대 때 인간은 동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렸고, 수만여 년이 지난 후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에 천장화를 그렸다. 과거 동 굴에 그려진 천장화는 샤머니즘을 완성하고 당시의 인간 사회를 통합했듯이,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기독교의 권위를 강화하 고 르네상스 사회를 기독교로 통합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현재는 할리우드 영화가 그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군이 외계인 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하는 환상적인 거짓말을 실제 같은 영상으 로 보여 준다. 최근 들어서는 영어를 하는 미국인들이 초능력으로 우주를 지킨다.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 시리즈가 그것이다. 마블 영화에서는 심지어 외계인들과 신들도 영어를 한다. 이런 영 화를 통해서 미국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세상을 보여 준다. 그 영화를 보는 수억 명의 세계인들은 미국 중심의 세상을 자연스 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의 그런 할리우드 영화를 가능케 한 1980년대 조지 루커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특수 촬영 영화는 이 시대의 라스코 동굴이고, 시스티나 성당이다. 양식이 변할 뿐 본질은 그대로인 것이다
- 올라프 라더는 정치에서는 항상 누군가의 죽음을 차지하는 자가 권력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슬품 이나 자책감을 느끼면 그 감정의 책임을 물을 대상을 찾게 된다 이때 시체를 차지한 사람이 그 부정적 감정의 책임은 자신의 반대 세력에게 있다고 지목한다. 대중은 분노하며 규합되고, 누군가는 정치적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항상 자신과 상관 없는 자의 죽음도 항상 자신의 것으로 가져온다. 동서고금을 막론 하고 그래 왔고, 우리나라 현대사도 예외는 아니다. 거사를 앞둔 정치가들이 항상 무덤의 공간인 현충원에 들러서 참배하는 것도 죽음을 이용해서 자기가 권력을 가지는 것의 정당성을 보여 주는 퍼포먼스다. 그래서 오바마는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후 시신을 바다에 버려서 수장했다. 그의 시신 중 일부라도 이슬람 극단주의 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정치적 구심점이 되고, 그 조직은 거 대한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올라프 라더는 그의 책에서 정 치적 구심점을 만들어 권력을 쟁취하고 싶어 하는 자들은 먼저 죽 은 자를 신격화하고 무덤을 성대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일상에서 예를 찾는다면 종갓집 사당과 제사 예식을 들 수 있다.
- 이대열 교수의 지능의 탄생](바다출판사)이라는 책을 보면 생명 의 복잡한 구조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메커니즘이 분업과 위임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다세포 생명체가 등장하면서 가장 놀라운 일은 체세포와 생식세포 사이에서 일어난 분업이라 고 말한다. 번식 기능을 생식세포가 완전히 도맡아 하게 됨으로 써 체세포는 번식 이외의 모든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체세포는 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기 복제'라는 생명의 가장 근 본적인 기능은 생식세포에게 일임한 것이다. 이 이야기 구조는 건 축에도 적용할 수 있다. 건축의 가장 근본은 주거를 담당하는 '집' 이다. 하지만 인류가 진화하면서 건축에서 주거 기능 이외의 다른 건축물이 생겨났다. 그것이 장례식을 담당한 '괴베클리 테페'다 '괴베클리 테페'는 추위와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데 필요한 건축물이 아니다. '괴베클리 테페' 같은 종교 건축물은 인간 사회의 규모를 키우는 데 필요한 건축물이다.
-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쫓겨난 사건 이후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는 해수면 상승으로 갑작스럽게 침수가 된 이야기라고 한다. 고고학 자들은 노아의 홍수가 난 지역을 흑해 지역이라고 추측한다. 튀르 키예 북쪽에 있는 흑해는 지중해와 보스포루스해협으로 연결되 어 있는데, 보스포루스해협은 아주 좁은 것으로 유명하다. 학자들 의 가설에 따르면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해수면 이 상승했고, 이때 늘어난 지중해의 바닷물은 폭이 좁은 보스포루 스해협의 땅을 무너뜨리면서 갑작스럽게 지중해의 바닷물이 지 금의 흑해가 위치한 분지 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와 대홍수가 났다 는 이야기다. 에덴동산의 위치를 찾는 다큐멘터리에서도 이와 비 숫한 이야기를 한다. 그 다큐멘터리는 에덴동산이 지금의 페르시 아만 바닷속에 있다고 본다. 빙하기가 끝나고 기온이 오르자 해수면 상승으로 늘어난 바닷물이 폭이 좁은 호르무즈해협에 있는 땅을 무너뜨리고 지금의 페르시아만이 위치한 분지 지역으로 쏟아 져 들어오면서 수장된 곳에 에덴동산이 있다는 주장이다. 성경 속 노아의 홍수를 묘사하는 모습 중 우물이 터져서 물이 넘쳤다는 말이 나온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런 모습을 해수면 상승으로 협곡 이 무너지면서 갑작스레 쏟아진 물로 인해서 지하수가 압력을 받자 지하수 수위가 올라가서 우물이 역류한 것으로 설명한다.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쫓겨난 아담이 벌을 받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사건은 빙하기가 끝나고 기온이 따뜻해지자, 해수면이 상승해서 에덴동산이 수몰된 후 메소포타미아에서 본격적인 농 경 사회가 시작된 사건을 이야기로 묘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인류 최초의 대도시는 약 기원전 4000년~기원전 3500년에 메 소포타미아에 만들어진 도시 우루크Unk다. 이 도시는 초기 인구 가 5천 명 정도로 추측되는데,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경 에는 인구가 4만~5만 명이었다. 우루크는 수메르 문명의 중심 도 시가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도시 규모로 보면 2024년 기준으로 전라남도 영암군 정도의 규모다. 이 규모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인구를 가진 도시였다. 참고로 기원전 4000년에 지구상의 전 인류 의 숫자는 1500만 명으로, 서울 인구의 1.5배를 조금 넘는 정도밖 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5만 명이 사는 우루크 같은 도시는 5만 대의 컴퓨터가 연결된 PC 네트워크인 셈이다. 이런 도시에서는 집단 지성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경쟁과 퇴출 등 다양한 장점들이 나온다. 그래서 문명이 만들어지려면 도시가 우선 만들어져야 한다
- 우루크가 밀집된 인구 를 가진 가장 오래된 대도시라면 가장 오래된 성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성'이다. 예리코성이라 불리기도 하는 여리고성 은 요르단강 유역에 설립되었다. 이처럼 최초의 도시 문명은 건 조 기후대에 발생하였다. 똑같은 지능을 가진 사피엔스인데도 최 초의 문명이 중동 건조 기후에서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지리적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이 문명을 만들려면 모여 사는 도시가 필요한데, 도시가 형성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 다. 첫째, 물이 풍부해야 한다. 생명이 살아남기 위한 가장 기본적 인 조건은 물이다. 도시에는 많은 사람이 살아야 하기에 물이 풍 부해야 한다. 둘째, 전염병이 없어야 한다. 전염병이 생기면 흩어 져야 한다. 사람이 모여 사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원인은 전염병이 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조건이 만족하는 곳이 중동 지역이었다. 기 원전 10000년경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지구가 온난화되면 땅의 수분이 증발하게 된다. 일부 지역은 수 렵 채집하기 좋았던 땅이 말라서 자연 소출이 줄었다. 물도 점점 부족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큰 강가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인구 밀도가 높아지게 된 것이다. 사람이 모여 살게 되면 전염병이 돌게 된다. 특히나 별다른 위생 시설이 없던 고대에 전염병은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건조한 기후다.
- 원시 사회에서 부족장은 고인돌을 만들 었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사회 조직을 탄탄하게 만들었으며, 완성 된 고인돌은 수백 명 단위의 사회 조직을 또다시 강화한다. 그렇 다면 5만 명 이상으로 성장한 도시 집단은 그에 걸맞은 규모의 건 축물이 필요했다. 고인돌 만한 크기의 건축물로는 5만 명의 집단 을 지배하고 운영할 시스템의 건축적 구심점이 될 수 없다. 5만 명 정도 규모의 도시를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심점이 될 만한 건축물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지구라트다. 우리가 흔히 성경에서 '바벨탑'이라고 부르는 건축물이다
- 높은 건축물인 지구라트는 또 다른 중요한 권력 창출 원리를 보여 준다. 바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장치로서의 건축이다. 지구라트 꼭대기에 선 사람은 주변 낮은 곳에 있는 수천 명의 시선을 받 게 된다. 내가 만든 공간과 권력의 제1원칙은 '사람의 시선이 모이 는 곳에 위치한 사람이 권력을 가진다'이다. 특정한 날 지구라트 신전 꼭대기에는 제사장만 올라가게 된다. 꼭대기에 선 제사장을 그 주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올려다보게 된다. 이때 수천 명의 사 람들 각각의 머릿속에는 제사장이라는 정보가 만들어진다. 제사 장에 관한 수천 개의 정보가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 땅에 있는 일 반인들은 자신들을 바라봐 주는 사람이 주변의 한두 명밖에 없다. 일반인의 정보는 한두 개다. 이로써 제사장과 일반인들은 정보의 양 차이가 천 배 이상 난다. 세상은 정보로 만들어져 있기에 정보 량의 차이는 권력의 차이를 만든다. 제사장은 아래에 서 있는 일반인들보다 천 배나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때 제사장은 자신이 보여 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 주기 때문에 권력이 생기기도 한다.
- 농업 사회는 건축물을 통해서 사회 시스템을 공고히 하고 규 모를 키워서 기존의 수렵 채집 사회와 유목 사회를 압도할 수 있었다. 반면, 건축물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농업 사회의 종교는 그 건축물에서 멀어질수록 그 힘이 약화된다. 하지만 건축물을 지을 수 없었던 유목 사회의 종교는 약속과 이야기를 적은 문서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문서는 이동성이 뛰어나다. 번역이 되면 다 른 문화권으로 전파도 쉽다. 그래서 농업 국가를 기반으로 건축에 의지하는 종교는 그 국가의 국경선을 넘지 못하는 반면, 유목 사 회를 기반으로 하는 문서 중심의 종교는 국가의 영토를 넘어서 계 전파된다. 그래서 유목 사회의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세 계 인구의 절반이 믿는 거대한 종교가 된 것이다. 기독교는 성경을 가지고 있고, 이슬람교는 쿠란을 가지고 있다.
- 그리스 문명에서 처음 나타나는 건축 양식인 반원형 극장은 자연 이 만든 경사 대지를 이용해서 객석을 만들고, 아래쪽에 무대를 배치한 형태다. 아테네에서 반원형 극장은 연극 공연뿐 아니라 선 거 투표장으로도 쓰였다.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위치한 디오니소 스 극장은 1만 7천 명 수용이 가능한 곳인데, 투표의 기능을 해야 하다 보니 극장의 규모는 보통 그 도시의 성인 남성이 다 들어갈 만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극장의 규모로 그 도시의 인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영어로 극장을 뜻하는 단어 'Theater(시 어터)'는 '지켜보는 장소' 또는 '보기 위한 좌석'이라는 뜻의 단어 'Theatron(테아트론)'에서 왔다. 어원에서 드러나듯 극장은 보는 행위가 가장 중요한 장소다. 앞선 장에서 우리는 지구라트 건축 을 통해 공간과 권력의 두 가지 원칙을 배웠다. 첫째, 무언가를 내 려다보는 자리는 권력자의 자리다. 둘째, 바라보는 시선이 모이는 곳에 위치한 사람은 권력을 얻는다. 일상에서 사례를 찾는다면 학 교 교실의 공간이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권위가 생기는 이유는 첫 째, 교단이 높아서다.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앞에 낮은 곳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내려다본다. 둘째, 교실의 모든 의자가 교단을 향해서 놓여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선생 님은 권력이 생긴다. 게다가 의자에 앉은 학생들은 주변 학생들이 모두 앞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지시가 없어도 집단을 따라 앞을 바라봐야 할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은 곳을 쳐다보지 않으면 대열에서 이탈하는 행동이 되고, 그런 행동을 하면 집단에서 배척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준다. 인간 사회가 다른 동물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약한 몸을 가지고 있 으면서도 집단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집단에 속해서 순응하는 사람들이 살아남았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우리는 집단을 따라서 행동한다. 건축 공간은 그런 집단행동을 유도하는 장치다.
- 전염병을 예방하는 목욕탕
앞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같은 건조한 기후대는 비가 적게 내 려서 바이러스 전파가 잘안 되고 박테리아 증식도 잘 안 돼서 전 염병에 강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로마는 온대 기후라서 비가 오는 곳이다. 이런 기후대에서 100만 명이 모여 살면 전염병 문제 가 생긴다. 로마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목욕탕을 건축했다. 고 대 로마에는 목욕탕이 9백여 개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 이 '카라칼라 목욕탕'이라는 공중목욕탕이다. 로마 시민은 목욕탕 에서 목욕함으로써 위생적인 환경을 만들었고,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에 도시로 인구 가 이동해서 도시 인구가 폭증했을 때 동네마다 공중목욕탕이 생겨서 도시 위생을 해결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목욕탕은 전염병 문제만 해결한 것이 아니라 같이 목욕하는 공동체를 구축해서 로마 공동체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서 로마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 돔은 기술적으로 가장 만들기 어렵고,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축 양식이다. 과거에는 피라미드나 지구라트같이 속이 건축 재 료로 곽 찬 거석문화로 권력을 상징했다. 더 많은 돌을 쌓을수록 더 큰 권력을 과시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높은 돔을 만들 어서 비어 있는 공간을 얼마나 크게 만드느냐의 경쟁으로 바뀌었 다. 도시국가로 경쟁하던 시대에는 도시마다 더 크고 높은 돔을 만들기 위해서 경쟁했다. 그 흔적은 지금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에 가면 볼 수 있다. 지금 도시마다 더 높은 초고층 건축을 하려는 경쟁과 비슷하다. 판테온 신전처럼 돔 공간을 통해서 사람들의 경 외심을 이끌어 내고 바실리카의 평면도처럼 효율적으로 넓은 공간을 만든 것이 교회 디자인이다
- 일반적인 고해 성사실을 보면 신부는 내담자를 식별할 수 있고, 내담자는 신부를 알기 어려운 공간 구조를 띠고 있다. 고해 성사실의 빛의 조건을 보자. 과거에는 고해 성사실 신부 쪽 방은 어 듭고 내담자의 방은 밝았다. 그 사이는 망과 같은 칸막이가 쳐져 있다. 이런 경우 밝은 쪽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어두운 쪽이 안 보이지만, 반대로 어두운 쪽에 있는 사람은 밝은 쪽의 사람이 보인 다. 권력의 위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오가는 대화는 보 통 내담자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도 가장 비밀스러운 이 야기를 털어놓은 사람이 가장 절친이 된다. 교회에 꾸준하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은 사람은 교회를 옹호하는 세력이 된다. 그 뿐 아니라 교회 내의 고해 성사실은 작은 방일 뿐이지만, 과거 유 럽 사회 전체의 정보를 수집하는 장치여서 교회가 정보를 장악하 고 권력을 유지하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준 공간적 장치다. 이 작은 방을 중심으로 유럽 사회의 정보망이 구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 통신망이 없던 시대에도 교회는 고해 성사실 덕분에 당대의 안기부, KGB, FBI, CIA가 될 수 있었다. 교회가 막강한 힘을 가진 중세 시대가 천 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정보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 권력을 만드는 도로망
파리는 전염병 문제와 더불어 정치적인 해결책도 필요했다. 영국 의 경우 1688년 명예 혁명을 통해서 영국 국왕의 권력이 귀족층으 로 내려오는 낙수 효과가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1789년 에 무력적 혁명의 방법으로 국왕의 권력을 시민이 나눠 갖게 됐 다. 이는 이후 권력을 잡은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내가 지금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고 시민들이 들 고일어나면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압박감을 준 것 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군대를 갖는 방법이 있 다. 하지만 대규모 군대는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 파리의 경우에 는 권력 유지를 위해서 도시 공간 구조를 바꾸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폴레옹 3세 때인 1853년~1870년 파리의 오스만 시장은 중 세 시대 때 만들어진 저층형의 건물을 부수고, 6층 정도의 건물을 지으면서 도로망을 넓은 직선 도로망으로 새롭게 개편했다. 그러 면서 도심의 중앙부에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모여 드는 방사형의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정 치적 목적이 다분하다. 프랑스 대혁명 같은 민중 봉기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12개의 간선도로에 사 람이 모여들 경우, 개선문에 대포만 설치하면 간단하게 최소한의 병력으로 시민 봉기를 제압할 수 있게 된다. 방사상 공간 구조를 만듦으로써 도시 공간에 권력의 위계를 만든 것이다.
- 도로의 교차점을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는 방식은 고대 도시에서도 보인다. 로마의 경우 대형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콜로 세움' 같은 랜드마크 건물을 놓거나, 도로가 모이는 광장 가운데 오벨리스크 같은 기념비를 두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도로 망은 사람의 이동을 유도한다. 도로를 따라서 이동하면 도로 위 사람은 싫으나 좋으나 앞을 보면서 걷게 된다. 도로 선상에 위치 해 있는 것은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고, 그 자리를 차 지한 자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만약에 우리가 TV를 켜면 항상 국 영 방송 KBS 채널이 나온다고 치자. 그렇다면 KBS는 다른 곳보 다 압도적으로 시청률이 높아질 것이고, KBS의 광고 수익은 다른 곳보다 휠씬 더 많아지게 된다. 과거 TV가 없던 시절에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은 도로망의 교차점에 놓인 기념비나 조각상이나 건 물이다. 최초의 도시는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져서 거미줄 같은 도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연 발생적인 도로는 사람이 나 동물이 걸으면서 만들어지는데, 사람이나 동물은 언덕을 오르 내리기 싫어하기 때문에 같은 등고선의 높이로 걷게 된다. 그렇게 등고선을 따라서 구불구불한 도로가 만들어진다. 건물의 높이도 높지 않았다. 수메르 문명의 우루크 같은 도시는 단층짜리 집으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우루크 같은 초기 도시들의 길은 구불구 불하고, 도시 속 모든 공간은 낮은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도 시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사방으로 막혀 있게 된다. 그런 도시 환경에서 눈에 띄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건축물을 높게 만 들어야 했다. 지구라트가 대표적인 예다. 지구라트는 50미터 높이의 고층 건물을 통해서 시선 집중을 유도하여 권력을 창출했다 그러나 이후 로마를 비롯해 도시가 고층 고밀화되었다. 주변의 건 물이 7층 정도로 높아지면 웬만큼 높은 건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 는다. 대신 도로 좌우로 들어선 높은 건물은 오히려 사람의 동선 과 시선을 도로 끝이나 교차로 같은 한곳으로 모으게 되고, 그렇 게 도로 끝의 빈 공간이나 도로의 교차점이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곳이 된다. 그래서 이후의 랜드마크 건물들은 주로 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배치했다. 그리고 그곳에 위치하고 있는 건축물은 권력 을 갖는 건물이 된다. '콜로세움, 개선문,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광 고판이 그렇다. 로마 이후 높은 건물들 사이의 도로는 사람의 시선을 조종하는 장치이자, 권력의 위계를 만드는 장치가 되었다.
- 철이 건축에 이용되자 고층 건물도 가능해졌다. 과거에도 지 구라트나 피라미드 같은 높은 건물은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속이 꽉찬 돌덩어리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탑 십자가까지의 높이 가 약 133미터인 '성 베드로 대성당'도 지었다. 그러나 철을 이용하자 '에펠탑'은 324미터(안테나 포함)까지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기존 의 최고 높이보다 2.4배나 더 높게 지은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의 식에 '랜드마크급의 높은 건물'이라고 의식되려면 기존에 가장 높 았던 건물의 두 배 정도가 높아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 아도 첫 번째 초고층 건물은 1970년에 완공된 '삼일빌딩(31빌딩)' 이 있었다. 이후 1985년에 완공된 63빌딩'이 초고층 건물의 계보를 이었다. 이후에 많은 고층 건물들이 지어졌지만, 국민이 진짜 초고층 건물이라고 느낀 건물은 2016년에 완공된 123층짜리 '롯 데월드타워'였다. 63빌딩은 31빌딩보다 두 배 정도 높았고, 롯데 월드타워는 63빌딩보다 두 배 높았다. 이렇듯 이전의 초고층 건물 높이보다 약 두 배 높아질 때 새로운 초고층 랜드마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 수백 년 동안 전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던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2.4배 이상 높게 지어진 '에펠탑'은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빠른 시간 내에 예산 안에서 이런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돌이 아닌 철이라는 새로운 재료를 이용한 신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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