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생각하라

IT 2021. 4. 18. 18:50

- 문제는 많은 조직들이 디지털 기술 그 자체를 디지털 전환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도입하는 디지털 기술은 디지털전환의 필요조건일 뿐 그 자체가 아니다. 마치 배트와 글러브가 야구라는 스포츠에 꼭 필요한 장비이지만 그 자체가 야구는 아닌 것과 같다. 같은 맥락으로 기업의 새로운 홈페이지나 앱, IT시스템, AI, 머신러닝, VR, AR 등은 자주 인용되는 디지털 전환의 도구들이지만 비싼 돈을 내고 이런 기술을 도입한다고 해서 디지털 전환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디지털 전환은 transformation 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조직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은 기업이 추구하는 고유한 가치에서 시작한다. 나이키의 기업 미션은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성과를 높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수수료 없는 주식거래를 개척한 로빈후드의 미션은 모든 사람의 재무관리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자신 의 미션을 수행하기에 적절한 데이터와 기술을 결합해 변화된 디지털 세상에 꼭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이야말로 기업의 강력한 성공요인이다.
- 데이터 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페이스 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이른바 'FANG'으로 대표되는 디 지털 기술기업들이 고객과 직접 접촉해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여 태생적으로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면 기술기업이 아닌 여타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고객접점을 확보하고 데이터를 모을 수 있을까? 디지털 기술기업에게서 배울 점은 많지만 여타 다른 기업들은 이들과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태생적으로 정보기술과 디지털 기술에 기반하지 않은 전통적인 기업들은 데이터 확보를 위한 경쟁에 어떻게 나서야 할까?
최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이나 자영업자들도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세일즈포스(Salesforce)나 스퀘어(Square) 같은 기업들은 고객사 에 거래와 데이터 수집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세일즈 포스는 '데이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민주화'라는 미션을 가지고 중소기업의 IT 관리를 지원한다. 쇼피파이(Shopify)라는 기업은 소형 온라인 스토어를 만들고 창업하는 과정에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들 기업을 활용하면 한 번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더라도 구독 방식으로 데이터 관리는 물론 기업 활동에 필요한 솔 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다.
내 기업의 데이터를 외부에 의존하는 것이 이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창업 초기 단계이거나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외부 서비스를 활용해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 스타벅스의 디지털 고객경험을 만들어낸 사이렌 오더의 핵심 기술은 비콘(Beacon)이란 근거리 무선통신 장치 기술이다. 블루 투스 기반의 비콘을 고주파 방식으로 향상시켜, 고객의 앱에서 인근 스타벅스 매장에 설치된 비콘으로 주문과 결제가 가능하도 록 만든 것이다. 디즈니 매직밴드의 RFID가 그랬듯이 비콘 또한 그리 복잡한 기술은 아니다. 다만 매장에 긴 줄이 생기는 부정적 인 고객경험을 줄여주기 위해 해결방안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 상용 기술이다.
이처럼 혁신적인 고객경험을 만든 사례를 보면, AI처럼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기술을 사용해 혁신을 만든 경우만 있는 것 이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을 사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변화된 고객들에게 어떠한 디지털 고객경험을 전달할 것인가다.
- 결국 중요한 것은, 디지털 전환 시대에 사람들이 원하는 고객경험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다시 면밀하게 살펴보고 재설정하는 것이다. SK텔레콤의 T맵 미식로드나 버거킹의 트래픽 잼 와퍼 프로젝트처럼, 고객이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기 위한 수단으로서 데이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전환 시대 데 이터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바를 읽어내고 향상된 고객경험을 선사하는 도구로 쓰일 때 가치가 있다.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 전환이라고 해서 거창하고 대단한 기술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디지털 전환 이라 하면 우리는 AI, 머신러닝, VR, AR, 클라우드 컴퓨팅, 엣지 컴퓨팅 등 멋진 용어를 떠올리곤 한다. 이런 기술적 혁신은 다양 한 분야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와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손에 잡히 지 않는 기술만 이야기하다 보면 디지털 전환이 뜬구름 잡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 혁신은 여러 가지 고 민과 정보, 아이디어가 모여 만들어지는 일종의 패치워크다.
주변을 돌아보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된 지 오래됐 으나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기술이 많이 있다. 디즈니와 스타벅 스의 사례처럼, 기술 자체에만 집중하지 말고 회사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가치와 고객경험의 향상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기술 의 활용방안이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이 주도적으로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형태였다면, 디지털 전 환 시대에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자신의 방을 빌려주는 전 세계 수많은 로컬 호스트들과 여행객을 연결하는 비즈니스로 100여 년 전통 의 힐튼을 넘어서는 기업가치를 만들어냈다. 공유 오피스 역시 매력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력 있는 사람들 로 그 공간을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다. 펠로톤 또한 실내자전거에 스크린을 달아서 판매하는 것으로는 결코 지금의 구독자를 만들 지 못했을 것이다. 펠로톤의 성공에는 매력 있는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싶게 만든 커뮤니티의 힘이 있었다.
이처럼 디지털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연결에 있다. 촘촘한 디지털망으로 느슨하게 이어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구심점을 가지고 매력 있는 커뮤니티가 될 때, 느슨한 연결 (weak tie)은 엄청난 힘을 가진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결합 을 만들어내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매 력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외부에 떠도는 연결지점을 모아 구 심력 강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낼 것인지다.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 시대에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 성공한 모델을 변경하는 것은 실패를 인정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성공 공식과 밸류체인을 바꾸는 과정에서 매몰비용에 대한 우려를 지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공을 이뤄낸 경영진과 구성원들에게 일종의 '성공의 추억'이 생겨, 과거 성공했을 당시의 환경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다.
하지만 고객가치와 업의 본질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DVD를 빌리는 고객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대여 행위나 DVD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여한 영화의 콘텐츠를 즐기는 데 있다. 넷플릭스는 성공한 조직이 갖는 고질적 문제인 관성을 극복하고 '콘텐츠 소비'라는 사업의 본질을 전달하는 매개체를 고객의 편의가 증대되는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리드 헤이스팅스 회장이 저서 《규칙 없음》에서 강조하듯 넷플릭스라는 회사는 '규칙' 이 라는 이름의 관성에 얽매이지 않고 지속적인 혁신과 창조를 위 한 문화를 조직의 강점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대표되는 모바일 디바이스의 시대가 도래해 닌텐도는 물론 콘솔게임 시장 자체에 큰 위협요인이 되었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환경이 변화하는 시점마다 닌텐도가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콘솔' 이라는 디바이스 형태는 닌텐도의 아이덴티티로 굳건히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닌텐도는 '마리오', '젤다의 전설' 등 자체적인 블록버스터 소프트웨어를 보유하고 있기에 PC나 휴대폰 등 다른 디바이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확장하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는데도 이런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대신 경쟁 디바이스의 전략에 맞춰 새로운 콘솔게임으로 응수했다. 휴대폰이 경쟁 디바이스로 등장하던 시점에는 휴대성이 강한 DS 를 출시했고, PC게임 및 다른 콘솔게임이 고사양 경쟁을 펼칠 때 에는 모션센서를 장착한 '위'를 출시했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게임의 중심이 모바일로 넘어가는 환경에서는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고'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데 이어 스마트폰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마리오 게임을 출시했다. 포켓몬고와 마리오런은 콘솔게임이라는 아이덴티티에서 살짝 벗어난 형태이기는 하지만 제한적인 기능만 가능하기 때문에 닌텐도의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결국 콘솔 게임기를 이용해야 한다. 
모바일 기기에서 축적한 경험과 기술은 기존의 강점과 결합해 닌텐도 스위치로 이어졌다. 닌텐도 스위치는 언제나 휴대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 디바이스인 동시에 TV나 모니터에 연결하면 ‘위’와 같이 고정형 콘솔로 변신한다.
이처럼 휴대폰이나 PC등 다른 디바이스에서 구동되는 게임을 만드는 대신 시대 흐름에 맞게 자체 콘솔의 기능과 기술을 강화하는 것이 닌텐도의 기본적인 전략이다. 콘솔이야말로 닌텐도가 가진 가장 강력한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모바일 앱을 출시해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면 구글과 애플도 덩달아 '손쉽게 이익을 창출한다. 심지어 소프트웨어 회사에 대해 항상 '갑'의 위치에 서는데, 이는 구글과 애플이 구글플레이나 앱스토어, 아이튠즈라는 플랫폼을 장악하 고 있기 때문이다. 닌텐도 역시 콘솔을 플랫폼화하고 마리오, 젤다, 동물의 숲 등 독점 소프트웨어 (proprietary software)로 다수 의 충성고객을 닌텐도의 생태계에 묶어둔다. 외부 게임 소프트 웨어 개발업체들은 더 많이 판매되는 콘솔에 게임을 출시해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닌텐도의 콘솔로 모여들게 되고, 이는 다시 닌텐도 콘솔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된다.
결론적으로 닌텐도는 콘솔게임이라는 본연의 특성과 모두가 즐기는 게임문화라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되 시대와 기술, 고객 취향의 변화에 따라 콘솔을 진화시킴으로써 변화하는 환경에 적 응해왔다. 닌텐도와 넷플릭스의 사례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환 경 속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은 결국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 자체를 조직의 문화로 만드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 우리에게 민족자결주의로 잘 알려진 미국의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조직에서 적을 만들고 싶다면 뭔가를 바꿔라" 라고 말했다. 조직의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변화에 대한 반발도 피할 수 없다. 디지털 전환은 조직의 광범위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에는 다양한 종류의 어려움과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또한 변화에는 확실한 방향설정이 요구된다. 분명한 비전으로 방향을 잡고 조직 안팎의 저항과 반발을 극복해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려면 결국 리더십이 중요하다.
- 미국의 저명한 시스템 과학자인 피터 센지(Peter Senge)는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화되는 것에 저항한다”는 말로 변화가 불러일으키는 공포감을 표현했다. 조직 구성원들은 그동안 연마해온 기술이나 역량이 무의미해지는 변화를 싫어한다. 또 자신의 위치나 영향력을 잃을 수 있는 변화를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도미노피자의 혁신 과정에서 조직운영의 핵심이 새로 생긴 IT부서로 넘어가는 것을 기존 구성원들이 반겼을 리 없다. 더욱이 디지털 전환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조직 프로세스를 효율화한다. 이런 변화는 근본적으로 수직적인 조직구조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위계보다는 협업을 강조하게 된 다. 필연적으로 부장, 차장으로 대표되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리더의 역할은 변화의 필요성을 조직 전체에 불어넣고 확실한 비전을 제시함은 물론 변화에 필요한 물질적, 정치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급변하는 외부 환경이나 심각한 경쟁상황, 혹은 조직의 실적 하락 등 조직이 처한 위기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알리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리더는 우리 조직이 놓여 있는 위치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 하는 위치의 차이를 설명하고, 자신이 제시하는 변화를 수행했 을 때 기대되는 결과를 신뢰성 있게 전달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자기 역할이 축소된다고 두려워하거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변화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정치적, 정서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포용적인 리더십이야말로 조직의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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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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