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력 코드

IT 2020. 11. 20. 21:39

- 실패를 각오하고 있지 않으면 기존 틀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새로 창조할 기회가 될 위험을 무릅쓸 수 없다. 그래서 실패를 몹시 꺼리는 우리 교육제도와 사업 환경은 창조력을 키우기에 매우 나쁜 환경이다. 나는 학생들에게서 창조력을 끌어내려면 실패를 성공 못지않게 축하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실패담을 박사 학위 논문에 넣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학생들과 면담할 때 나 는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가 남긴 당부의 말을 누누이 전하곤 한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더 낫게 실패하라.” 이런 전략들을 코드로 변환할 수 있을까? 이전까지 통용되었던 코딩에 대한 하향식 접근법에서는 코드가 독창적 결과를 내놓을 가망이 거의 없었다. 프로그래머들은 자기가 만든 알고리즘이 내놓은 어떤 결과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 결과에는 실험이나 실패의 여지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코드에 기반을 둔 어느 알고리즘이, 새로울 뿐만 아니라 개발자에게 도 충격적이며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 알고리즘은 많은 사람이 기계가 절대 마스터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게임에서 승리했다. 반드시 창조력이 발휘되어야만 하는 게임이었다.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인간은 알고리즘이 무엇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러브레이스처럼 당시 사람들은 기 계에서 우리가 입력한 것 이상을 뽑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믿 었다. 그런데 새로운 종류의 알고리즘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바로 데이 터와 상호작용하면서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다. 이제 프로그래머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만든 알고리즘의 의사 결정 과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놀라움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기계 스스로 우리가 입력한 것 이상을 뽑아낼 수 있고 점차 더 창조적으로 변해 간다. 이 알고리즘은 딥마인드가 바둑에서 인공 지능으로 인간을 꺾을 때 활용했던 바로 그 알고리즘이기도 하다. 새로운 알고리즘이 새로운 기계 학습 시대를 연 것이다.
- 알고리즘은 우리 자신에 관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려 줄 잠재력을 품고 있다. 어떻게 보면 딥러닝 (deep learning) 알고리즘은 인간 코드에서 우리가 지금껏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특징들을 집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마치 색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 빨강과 파랑을 구별할 말조차 없었는데, 알고리즘이 우리의 호불호 표현에 근거해 여러 물체를 빨갛고 파란 두 종류로 떡하니 나눠 놓은 것과 같다. 우리가 특정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런 취향에 결 정적 영향을 미친 매개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취향과 관련된 인간 코드는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다. 하지만 컴퓨터 코드는 우리가 직감하기는 하지만 표현하지는 못하는 우리의 취향적 특징들을 식별해 냈다.
-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정리 (No free lunch theorem)를 이야기 해야겠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만능 학습 알고리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수학적 정리다. 이 정리에 따르 면 우리가 학습 알고리즘에 데이터의 절반을 입력한 어떤 경우라도 나머지 미입력 데이터를 적당히 조작하면, 알고리즘이 이미 입력된 훈련 용 데이터에 대해선 괜찮은 예측을 내놓더라도 나머지 미입력 데이터 에 대해서는 헛다리를 짚게 만들 수 있다. 결국 데이터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데이터와 지식을 병용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상황 변화에 대처하고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하는 일에는 인간 코드가 더 적합한 듯하다, 적어도 지금은.
- 인간은 지금까지 바둑을 수없이 많이 두었고 대국 내용은 온라인상에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되어 왔다. 이 데이터는 알고리즘이 샅샅이 훑어보며 승자가 어떤 수 로 우위를 차지했는지 알아낼 수 있는 굉장한 자료다. 방대한 기보 데이터베이스 덕분에 알고리즘은 특정 형세에서 각 조치가 승리로 이어질 확률이란 개념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 정보의 양은 각 대국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온갖 경우의 가짓수를 고려해 보면 결코 많은 편이 아니지만 경 기를 풀어 나가는 좋은 기반이 된다. 물론 알고리즘이 맞붙을 상대가 데이터 속 패자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데이터 세트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터였다.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라는 둘째 단계는 알고리즘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만든 방법이다. 이 단계에 접어든 알고리즘은 자 신과 대국하기 시작하여 매번 자신이 만들어 낸 새로운 대국 내용에서 무언가를 배워 나갔다.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듯했던 특정 조치들이 패 배로 이어지자 알고리즘은 그 조치가 승리로 이어질 확률을 수정했다. 이런 강화 학습 과정에서는 막대한 양의 새로운 기보 데이터가 기계적 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 자가 대국 과정에서 알고리즘은 스스로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다. 강화 학습의 위험 요소 중 하나는 그 방법이 편협하며 자기 강화적인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계 학습은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르 려는 시도와도 비슷하다. 눈가리개를 한 사람이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야 할 때 쓸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지금 서 있는 곳에서부터 계속 잔걸음을 치며 발을 내딛을 때마다 자기 위치가 더 높아지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을 쓰면 결국 근방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꼭대기에서 어느 쪽으로든 조금이라도 이동하면 자기 위치가 도로 낮 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골짜기 너머에서 훨씬 더 높은 봉우리를 찾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바 있는 국소최대점과 관련된 문제다. 국소최대점에 해당하는 꼭대기에 도착하면 자신이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곳은 우뚝 솟은 산맥에 둘러싸인 자잘한 언덕에 불과하다. 만약 알파고가 바둑 실력 을 최대한 키운 결과가 실은 그런 국소최대점에 도달한 것에 불과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아마 이세돌과의 대국을 며칠 앞두고 알파고와 대국한 유럽의 고수 판후이가 약점을 발견했을 때가 바로 그런 경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알고리즘은 일단 이세돌의 바둑 방식을 새로 접하자 곧 승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의 조치를 재 평가하는 법을 다시 배웠다. 새로운 상대를 만난 덕분에 알파고는 언덕 에서 내려와 또다른 꼭대기에 오르는 방법을 찾아냈다. 딥마인드 팀은 이제 원조 알파고를 완파할 수 있는 훨씬 나은 알고리 즘을 가지고 있다. 이 알고리즘은 인간이 바둑 두는 방식을 보고 배울 필요가 없다. 아타리 알고리즘처럼 이 알고리즘은 19 ×19 격자 모양을 이룬 픽셀과 점수에 대한 정보만 입력받고서 게임을 시작해 갖가지 조치를 실험했고 그러면서 알파고 개발 과정의 둘째 단계였던 강화 학습 의 힘을 활용해 실력을 키워 나갔다. 이는 이른바 '타불라라사' (tabula Trasa) 학습, 즉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학습에 가까웠는데, 심지어 딥마 인드 팀도 새로운 알고리즘의 엄청난 능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알고리즘은 더 이상 인간이 생각하고 경기하는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사흘간의 훈련 동안 무려 490만 판의 자가 대국을 치른 그 알고리즘 은 이세돌을 꺾었던 버전의 알파고에 100전 100승을 거두었다. 인간이 3,000년 걸려 해낸 일을 단 3일 만에 해치운 셈이다. 40일째가 됐을 무 렵에는 천하무적이었다. 그 알고리즘은 심지어 체스와 일본식 장기 쇼기(將棋)를 단 여덟 시간 동안 배우고서 두 개의 최상급 체스 프로그램을 이길 만큼 실력을 키워 내기도 했다. 이 무섭도록 다재다능한 알고리즘 의 이름은 알파제로(Alphazero)다. 이 프로젝트의 수석 연구원 데이비드 실버는 타불라 라사 학습 방식 이 다양한 영역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불라라사 학습을 구현할 수 있다면, 바둑에서 그 밖의 어떤 영역으로든 옮겨 심을 수 있는 동인(動因)을 확보한 셈입니다. 저희는 지금 다루고 있는 영역의 세부 사항에서 벗어나, 보편성이 워낙 높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고자 합니다. 저희가 알파고를 개발한 목적은 기계가 인간을 패배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 학을 연구하는 일의 의미를 발견하고 프로그램 혼자서 지식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딥마인드의 목표는 지능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이를 바탕으로 그 밖의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기술은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 앞으로 기계가 일류 수학자의 창조력에 필적할 수 있을까? 미술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곡을 쓸 수 있을까? 인간 코드를 해독할 수 있을까?
- 예측 불가능한 일과 미리 결정된 일이 함께 펼쳐져서 모든 것이 이치대로 돌아가는 겁니다. (톰 스토파드 Tom Stoppard)
- 신경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구글의 생성적 적대 신경망뿐 아니라 우리 뇌에도 서로 경쟁하는 두 가지 시스템이 있다. 하나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표현하며 자신을 자랑하듯 내보이려는 욕구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기 생각을 의심하고 비판하며 그런 욕구를 억제하는 또 다른 자아다. 우리가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려면 두 시스템의 균형을 아주 잘 잡아야 한다. 창조적 생각은 그 생각을 평가하는 피드백 순환 고리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그 생각이 개선되고 또 다른 생각이 형성될 수 있다.
-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은 그 전에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다는 명백한 증거다.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e)
- 일반적으로 알고리즘이 대가에게 무언가를 배우게 하는 일의 주요 난점은 데이터 부족이다. 코랄 389곡은 꽤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컴퓨터가 간신히 학습 대상으로 삼을 만한 양에 불과하다. 컴퓨터 비전 같은 성공적인 기계 학습 분야에서는 알고리즘이 수백만 개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훈련을 쌓는다. 이에 비하면 바흐의 코랄은 389가지 사례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작곡가 대부분은 작품 수가 그에 훨씬 못미친다. 그럼에도 바흐 코랄은 한 가지 현상의 매우 비슷비슷한 변형 이라는 점에서도 특히 유용하다. 보통 한 작곡가의 작품 세계는 전체적 으로 너무나 다채로워서 기계가 학습 대상으로 삼기 버겁다. 어쩌면 결국은 바로 이런 점이 인간의 예술 영역에 기계가 쳐들어오 기 못하게 막아 주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훌륭한 작품의 수가 워낙 적 어서 기계가 그런 것을 만드는 법을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기계는 단조 로운 음악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아직 훌륭한 음악은 만들지 못한다.
- 우리가 음악을 만드는 이유
음악은 본래 알고리즘성을 띠므로 온갖 예술 형식 중에서 인공 지능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음악은 구조와 패턴을 이용하는 가장 추상적인 예술 형식인데 바로 그 추상성 때문에 수학과 밀접히 연관된다. 이는 음악이란 영역에서 알고리즘이 인간 못지않게 활개를 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음악이 구조와 패턴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음악은 연주되어야만 생기를 띨 수 있다. 인간은 의식을 올릴 때 사용하려고 음악을 만 들기 시작했다. 고고학자들은 원시 시대의 우리 조상이 벽에 물감을 칠 한 동굴 안에서 악기로 볼 만한 유물도 발견했다. 독수리 뼈로 만든 피 리, 나팔처럼 불 수 있는 동물 뿔, 연결된 끈을 잡고 빙빙 돌리면 웅웅 소 리가 나는 울림널 등. 어떤 사람은 그런 원시 악기가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였을 수도 있다. 고 보지만, 어떤 사람은 이 악기들이 우리 조상이 만든 의식 (ritual)의 중 요한 요소였으리라고 믿는다. 의식을 올리려는 욕구는 아무래도 인간 코드에 포함돼 있는 듯하다. 의식은 몸짓, 말, 물체를 쓰는 일련의 활동으로 신성한 장소에서 격식에 따라 치러진다. 그런 활동은 외부인에게 는 이치에 맞지 않는 행위처럼 보일 때가 많지만, 내부인에게는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의식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 는 경우는 매우 많다.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밴드에서 악기를 연 주하는 것은 제각각인 사람들을 단합시키는 방법이다. 운동 경기가 벌 어질 때 관중석에서 부르는 노래는 상대 팀 팬에게 맞서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한다. 그렇게 집단을 결속시키는 음악의 힘은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으로 이동해 네안데르탈인과 맞닥뜨렸을 때 유리한 입장에 서게 해 주었는 지도 모른다. 작곡가 맬컴 아널드 (Malcolm Arnold)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사람들 간의 사회적 소통 행위요, 우정 표현 행위이며, 가장 효과적인 행위다.” 독일에서 발견된, 제작연대가 4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구석기 시대 피리는 우리 조상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의사소통을 하는 데 쓰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는 음악이 의식을 올릴 때 정신 상태를 변화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란 사실도 깨 달았을 것이다. 여러 주술 행위에서 입증됐듯이 무언가를 되풀이하는 일은 정신 상태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 뇌에서는 감 정 상태에 따라 특정 진동수의 파동이 발생한다. 트랜스 음악 중에는 분 당 박자 수가 120 안팎인 곡이 많은데, 이 템포의 리듬이 환각을 일으키 기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여러 실험 결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몇 가지 감각을 동시에 교묘히 자극하면 유체 이탈하는 듯 한 이상한 체험을 유발할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의 촉각과 시각을 동시 에 특정 방식으로 자극하면 그 사람이 의수를 진짜 자기 손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원시 악기들이 향신료, 향료와 함께 발견된 경우가 더러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조상은 의식 거행 중에 소리 와 향기가 함께 나도록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형 체가 없는 알고리즘이 어떻게 우리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음악의 힘 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문명이 발달했어도 음악은 여전히 의례와 관련되어 있다. 팔레스트 리나에서 바흐를 거쳐 모차르트에 이르는 음악의 일대 진보 중 상당 부 분은 종교적 맥락 속에서 이뤄졌다. 어떤 사람들은 신이라는 개념이 인 간의 내면세계와 함께 생겨났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자의식이 생기면 서 인간은 자기 머릿속의 목소리를 자각하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아마 그건 꽤 섬뜩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음악을 연주하며 의식을 올리면 머 릿속의 그런 목소리를 달래고 신들이 거하는 장소로 여겨진 자연의 힘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는 듯했을 것이다. | 이런 이야기는 모두 논리적이며 무감정한 컴퓨터 세계와 동떨어진 듯하다. 분명 알고리즘은 우리를 감동시키는 사운드를 만드는 법을 배 웠다. 최근 알고레이브(Algorave)라는 행사에서는 디제이가 알고리즘 으로 그때그때 클럽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만들고 틀어서 사람들이 계 속신나게 춤출 수 있게 한다. 딥바흐는 바흐풍의 예배용 찬송가를 계속 작곡해서 성가대가 신을 찬미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알고리즘은 음악의 암호를 풀어 낸 듯 하지만 정작 그 기계의 내부에서는 아무런 감흥이 일 지 않는다. 이들은 여전히 우리의 도구이자 현대판 디지털 울림널인 셈이다.
-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두가지 일을 해야 한다. 하나는 이래저래 짜 맞춰 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골라 뽑는 일이다. (폴 발레리 Paul Valery)
- 훌륭한 수학 연구물에는 긴장이 깃들어 있다. 증명은 너무 복잡해도 안 되고 너무 간단해도 안 된다. 더없이 만족스러운 증명은 필연 성을 띠지만 전개 과정이 결코 뻔하지 않다. 《모험, 미스터리, 로맨 스》 (Adventure, Mystery, and Romance)에서 존 카웰티(John G. Cawelti)는 문학 속의 이런 긴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데, 이는 수학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질서와 안전을 추구하면 지루하고 단조로운 결과가 나올 공산이 크 다. 하지만 변화와 참신함을 위해 질서를 거부하면 위험하고 불확실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 (...) 문화사의 중요 측면 중 상당수는 이런 두가지 기본 충동, 즉 질서 추구와 권태 탈출 사이의 역동적 긴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긴장이 바로 훌륭한 증명의 핵심이다.
- 알고리즘이 언어를 처리하고, 프랑스어를 영어로 번역하고, 제퍼디문제에 답하고 서술 방식을 파악하는 것을 보면 인공 지능 분야 전반에 대한 흥미로운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알고리즘이 자기가 하는 일을 이해’ 한다고 봐야 할까? 이 문제는 존 설이 고안한 '중국어 방' 이란 사고 실험의 주제이기도 하다. 가령 당신이 어떤 방에 갇혀 있는데 그곳에 중국어로 된 갖가지 질문 과 각각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적힌 응답 지침서가 있다고 해 보자. 방 으로 들어온 중국어 문장을 보고 그것과 같은 문장을 지침서에서 찾을 수만 있으면 당신은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도 방 밖의 중국어 화자 와 꽤 그럴듯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설이 그 실험으로 보여 주려 한 것은 컴퓨터가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인간의 응답과 다를 바 없는 응답을 내놓더라도 그 기계에 지능이나 이해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이는 사실상 튜링 테스트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저런 말을 할 때 내 마음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나도 어떤 지침을 따르고 있는 셈 아닐까? 컴퓨터의 중국어 이해력 유무를 판가름하는 데 기준이 되는 문턱값 같은 것이 나에게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의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컴퓨터는 '의자' 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의자라는 것 이 사람들이 걸터앉는 데 쓰는 물체란 사실을 알 필요가 없다. 그 기계 는 의자란 단어를 사용해도 괜찮은 경우에 대한 규칙을 따를 뿐인데, 이 때 사용된 규칙 준수 능력을 이해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실 의자를 체험해 보지 않은 알고리즘이 '의자' 란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기란 불가 능하다. 체화된 지능(embodied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이 인공 지능 분야의 현 추세에서 특히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언어는 우리 주변 환경을 저차원 공간에 투영한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도 이렇게 말했다. “언어는 모두 어설픈 번역어에 불과하다.” 의자는 실제로는 모두 천차만별인 존재다. 그러나 언어에서는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로 압축된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그 데이터 포인트의 압축을 풀 때면 그 사람이 체험해 본 온갖 의자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우리는 안락의자, 벤치, 나무 의자, 책상 의자 등 갖가지 의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또한 구체적으로 연 상시키는 바가 각각 하나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온갖 언어 활동을 통틀어 언어 게임이라고 불렀 다. 체화되지 않은 알고리즘은 존 설의 중국어 방 같은 저차원 공간에 갇혀 있는 셈이다. 이는 결국 의식의 묘한 속성과 관련된 문제다. 우리는 의식 덕분에 이 런 온갖 정보를 하나의 경험으로 통합할 수 있다. 신경 세포 한 개에는 언어에 대한 이해력이 없다. 하지만 그런 세포가 모이고 모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언어 이해력이 존재하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중국어 방에 앉아 지침서를 이용해 중국어 질문에 답할 때 뇌라는 신경 세포 집합 체에서 언어 처리를 담당하는 부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 록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그 방, 나, 지 침서로 구성된 시스템 전체는 이해력을 갖추었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 른다. 뇌를 이루는 것은 중국어 방 세트 전체이지 거기 앉아 있는 나 혼 자만이 아니다. 중국어 방에서 나는 컴퓨터의 중앙 처리 장치, 즉 기본 연산을 수행해 소프트웨어의 지시 사항을 따르는 전자 회로와 같은 존 재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알고리즘, 주변 세상을 직접 접해 볼 수 없는 알고리즘이 의미 있는 글, 혹은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느끼기에 아름 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는 지금 프로그래머들이 여러모로 씨름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 창조력은 기계적이지 않은 것의 진수다. 하지만 어찌 보면 창조 행위는 모두 기계적이기도 하다. 딸꾹질과 마찬가지로 다 제 나름대로 까닭이 있는 것이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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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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