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슨한 연대는 단지 가족과 연애, 사람들 간의 관계 얘기가 아니라 직장, 조직 문화와 주거 환경, 부동산과 도시에까지 영향을 미칠 중요한 트렌드 코드다. 느슨한 연대가 결혼과 출산에 미치는 영향, 직업관 및 직장 문화에 미치는 영향, 주거 문화에 미치는 영향, 선거 및 정치에 미치는 영향, 소비 트렌드에 미치는 영향 등이 느슨한 연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고민할 이슈다.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의식주를 넘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고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변화를 초래하는 데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느슨한 연대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즉 메가트렌드로 앞으로 점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 Family 의 어원은 라틴어 'Famulus'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하인, 노예 를 뜻하는 말이다. 로마에서 'Familia'를 한 집안이란 의미로 썼고, 이 후 Familic를 거쳐 현재의 Family가 되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가장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가족을 지배했다. 소유권은 가장만이 가졌고, 다른 가족 구성원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다. 가족은 하나의 경제 단위이고 노동 기반이었다. 그렇기에 가족 구성원은 노동자이자 생산 도구, 즉 노예 같은 존재였다. 결혼이 제도화된 것도 이런 배경과 연관이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이란 말의 끈끈하고 낭만적인 느낌과는 다르다. 이래서 직원들을 착취하는 기업들이 유독 가족 같은 회사'를 강조하는구나 싶다. 물론 Family가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이니결 조합이라고 얘기하는 호사가들도 있다. 시각이야 어쨌든 우리에게는 가족이라는, 함께 어울리고 살아갈 존재가 필요하다. 다만 그 존재가 혈연이 아니어도 된다. 이제는 동물도 가족 같은 존재다. 반려동물은 과거 애완동물이라 불릴 때와 차원이 달라졌다. 동물과도 동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시대인데, 사람과는 오죽하겠 는가. 수직적인 권력 구조였던 기존 가족 제도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2030세대가 늘어나면서 평등한 관계가 가족의 핵심이 되었다. 젠더 뉴트럴이 트렌드가 된 시대, 가족에 대한 관점에서도 젠더 뉴트럴이 요구되는 셈이다. 더 이상 출산과 대를 잇는 것만이 가족의 기본 조건이 아니다.
- 유럽과 남미 등에서는 결혼이 행복한 삶을 보장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비율이 낮은 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그 비율이 높다. 여전히 우리는 절반 정도가 결혼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북유럽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결혼제도를 대신할 동거가 있고, 이를 보호할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있기 에 소수만이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결혼과 동등하게 혜택을 받으면서 결혼보다 더 편한 방식이 있는데 굳이 과거의 방식인 결혼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사회적으로 동거에 대한 보호 장치가 강화된 나라의 사람일수록 결혼에는 소극적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외톨이로만 사는 게 아니다. 출산율도 우리보다 더 높고, 우리보다 다양한 가족 행태를 가지기에 외톨이는 더 줄어들 수 있다.
- 우리 사회는 결혼과 경제력을 밀접하게 보고 있다. 배우자의 경제력이 어느 수준이어야 한다거나 결혼 비용(혼수 비용)이 억대가 든다거나 하는 얘기는 주로 뉴스와 언론에 등장한다. 아니면 역대 최저 혼인율 을 예로 들며 점차 결혼을 안 한다는 분석 위주다. 결혼 안 한다는 얘 기에서도 주원인으로 경제력을 든다. 혼인율 하락이 경제적 문제 때 문이라는 논지다. 이것만 보면 요즘 결혼하려는 이들은 결혼을 경제적 합병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경제력이 부족하면 아예 결혼을 포기 하는 것으로 그린다. 기성세대가 요즘 세대의 결혼관을 멋대로 해석 한 결과다. 결혼과 돈을 아주 밀접히 연결시켜 놓은 건 2030세대가 아니라 기성세대와 언론이다. 그러면서 결혼에 있어 돈을 따지는 여 성들에게는 아주 가혹한 시선을 보낸다. 물론 경제력이 결혼 판단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결혼관에 대한 시대적 변화다. 더 이상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2030세대는 결 혼해서 멋지고 행복하게 잘 사는 롤 모델을 많이 접하지 못했다. 결 국 돈 문제보다 결혼에 대한 비전의 부재, 그 불확실성이 더 이유일 수 있다. 기성세대가 좋은 결혼의 본보기를 많이 못 보여 줘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다 깨져 버렸다. 과거처럼 결혼할지 말지 고민할 필요 없 이 관성적으로 했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결혼하는 것이 과연 행복할 지에 대해 따져 보고 더 합리적인 답을 고민한다. “돈과 노력,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에 대한 답은 대부분 회의적이다. 결혼은 매우 오래된 과거의 제도이기에 현재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에게 는 맹목적 당위성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결국 역대 최저 혼인율과 최악의 출산율은 요즘 2030세대가 이기적이어서 생긴 일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과거식 결혼관을 지금 시대에 맞게 진화시키지 못한 채 2030세대에게 불안한 현실 문제를 그냥 떠맡기면서 발생한 결과다. 결혼만이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 결혼 외에 동거, 공동체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관계를 만들도록 지원해 줄 필 요가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 끈끈한 혈연을 부담 스러워하는 이들에게 느슨한 연대라도 맺을 방법을 찾아 주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다.
- 애초에 결혼 제도는 경제력과 육체적 노동력이 있는 남자와 출산력 과 양육을 담당할 여자의 결합을 통해 안정적으로 가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로 출발했다. 이를 통해 국가는 노동과 납세와 징병 등 국 민을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데 유리하다. 즉 결혼은 순수한 사랑만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수천 년간 결혼할지 말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개인이 선택할 수 없었다. 이런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20세기 중반부터다. 유럽에서도 본격화된 게 20세기 후반이고, 우리 사회는 21세기 들어서다.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결혼의 선택권을 적극 행사하는 첫 세대다. 엄밀히 말해 수천 년간 지속된 전통적 결혼관은 자본주의 시대로 오면서 좀 더 다듬어졌고, 21세 기 들어서 효용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미 결혼과 가족에 대한 태도 변 화가 현실에서 분명해진 만큼, 그런 변화의 배경과 그 변화가 의식주, 소비,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의 범위와 속도는 어떻게 될지가 우리의 진짜 관심사여야 한다. 끈끈한 혈연 중심의 가족에서 느슨한 연대의 가족 제도로 전환하는 문화가 미치는 사회적, 경제적 영향은 앞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안겨 줄 것이다. 결혼 안 하는 게 주류인 시대가 되었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가족이 만들어지는 걸까? 결혼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가족과 자녀에 대한 생각의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아는 가족을 만드는 방법은 결혼을 통해서였다. 이제 그를 대신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졌 다. 가족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이 등장하는 사회가 되기를 시대가 요 구하기 때문이다. 변화 앞에서 눈 감는다고 그 변화가 멈추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변화의 실체를 제대로 봐야 현실적인 대응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
- 한국 사회에서는 저출산을 국가적 재난으로까지 바라보고 있는데, 지금까지 별의별 방법을 다 모색해 봤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시대가 바디어 결혼관, 가족관, 출산관이 다 변해 가는데 여전히 과거의 결혼 중심적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문제를 풀려고 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저출산 문제를 극복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바로 동거다. 결혼을 꺼 리는 건 유럽이 우리보다 더 심하다. 결혼은 하지 않지만 대신 동거 를 한다. 그리고 동거 중에 태어난 아이도 결혼 관계에서 태어난 아 이와 복지나 사회적 제도에서 전혀 다를 바 없이 대한다. 한국 부부 들 중 애 때문에 산다는 부부들이 의외로 많다. 한국에서 애를 키우려면 결혼 상태의 부부여야 한다. 동거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혼외 출 생자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복지나 제도적 제약을 받는다. 학교 입학할 때부터 어려움을 겪고 시작하는 셈이다. 이러니 한국에서 출산은 곧 결혼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결혼 과 무관하게 아이를 낳는다. 유럽의 출생아 중 절반은 혼외 출생자다. OECD 국가 중 출산율 하위 국가와 혼외 출생자 비율 하위 국가는 놀랍게도 일치한다. 일본과 한국이 출산율과 혼외 출생자 비율 모두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이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프랑스의 출산율은 1990년에 들어서 내 내 1.7명대에 머물다 1993년에는 최저치인 1,66명까지 떨어졌다. 하 지만 2006년에 2.0명 선을 회복하더니 현재까지 그 수준(2016년 1.96명) 을 유지 중이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출산율 1,68명보다 높은 수치 다. 2014년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출생아 중 혼외 출생자, 즉 부모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생한 아이가 전체 중 56.7%다.
- 어떤 분야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고, 입학이 있으면 졸업도 필요하다. 우리의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한 결혼이면, 그걸 끝내는 선택인 이혼도 자유 의지다. 결혼을 선택하는 것과 동등한 가치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출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힘들고 괴로 워도 참고 버티며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다 보면, 결혼 자체를 아예 선택하려 들지 않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살면서 실수를 하고 그걸 만회하면서 살아간다. 이혼 안 하는 사회가 건강한 게 아니라 이혼할 필요가 있으면 이혼하는 사회가 건강한 것이다.
- 절대적 관계면서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 연대에 대해서 기피하는 경향은 점차 더 커질 것이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위기이고 누군가에게는 기회다. 더 많은 소셜 살롱과 취향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연결되고 교류를 하며 친분을 쌓는다. 혈연, 학연, 지연과 달리 취향 중심 인맥은 스스로의 선택권이 존중된다. 자발적 으로 선택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기에 아쉬울 때 써먹을 사람이 아니라 좋아하는 걸 함께할 사람이다. 기성세대식 인맥관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인맥관이다. 끈끈할 필요도, 영속할 필요도 없다. 언제든 내가 좋을 때까지만 유지하면 된다. 누군가에 의해 통제 받거나 강제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취향 공동체와 소셜 살롱 또한 친구나 대안 가족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셰어하우스 중에서 취향 공 동체나 소셜 살롱을 지향하는 곳이 많은데 이런 분야로서는 이 트렌 드가 새로운 기회다. 반대로 종교계로서는 위기다. 교회도 인맥 때문 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 스웨덴에는 플뤼그스캄(Flygskam)이란 말이 있다. 영어로 하면 'Flight Shame'이 될 텐데, 비행기 여행의 수치심(창피) 정도로 해석된다. 즉 비 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란 의미다. 소셜 네 트워크를 살펴보면,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멋진 일이라 여겨 공항이나 비행기 좌석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왜 비행기 타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등장한 걸까? 바로 환경 문제 때문이다. 비행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문제 때문에 비행기 여행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이들이 생겨난 것이 다. 그런데 저 멀리 떨어진 스웨덴 사람들이 쓰는 말을 우리가 왜 관심 가져야 할까? 그러나 이는 스웨덴만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이 힙한 트렌드 이슈가 된 시대, 플뤼그스캄도 전 세계로 퍼져 가는 트렌 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스웨덴에는 탁쉬크리트(Tagskryt)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기차 여행의 자부심(Train Bragging)이란 뜻이다. 비행기 여행을 대신해 기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가진 자부심이란 뜻으로 좀 더 오래 걸리 더라도 환경을 위해 기차를 선택한 이들을 말한다. 유럽 내에서 이동 할 때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이용하는 이들이 자신의 선택을 당당히 드러내고, 소셜 미디어에 인증하는 것이다. 심지어 스웨덴에서는 스릭 플뤼가(Smyghlyga)라는 말도 쓰는데, 이건 비행기로 여행 가는 것을 은 밀하게 숨긴다는(to fly in secret) 의미다. 이제 비행기 타고 여행 가는 게 부끄러운 일이니 설령 이용하게 되더라도 남들 모르게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비행기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이 뒤바뀌고 있다.
- 스웨덴의 플뤼그스캄처럼, 핀란드에서는 렌토하페어(Lentohapea), 독일에서는 플루크샴(Flugscham), 네덜란드에서는 빌릭샴트(Viegschaamte) 같은 말이 '비행기 여행의 수치심'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말은 그 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듯, 그 사 회가 만들어 낸 말은 그 사회의 문화이자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 진 가치관과 연관된다. 참고로 《포브스》나 《뉴욕타임스》는 기사 를 쓸 때 'Chaebol'이란 단어를 정식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재벌을 우리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다. 간혹 거대 기업, 복합 기업을 뜻하 는 'Conglomerate'을 괄호 안에 병기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그냥 'Chaebol'을 그대로 쓴다. 한국의 재벌을 언급할 때 그들의 말로는 도무지 적합한 단어를 찾아내기 어려워서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쓰 는 것이다
- 점차 북유럽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에서는 2010년대 들어 북유럽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라는 북유럽 스타일 가구와 홈퍼니 싱(Hone Furnishing) 트렌드를 적극 받아들였고, 그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 또한 받아들였다. 덴마크, 노르웨이의 휘게(Hygge), 스웨덴의 라곰(Lagon), 핀란드의 팬츠드렁크(PantsDrunk) 등이 그것이다. 물질 만능과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성공과 돈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한국인들은 좀 느리지만 자신을 위한 삶,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는 태도를 북유럽의 라이프스타일에서 배우고 있다. 북유럽의 라이프스타일은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쳤는데, 프랑스의 오캄(Au calme)도 소소하지만 고요하고 일상적인 행복을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다. 이러한 트렌드에 환경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추가되고 있다. 휘게 와 라곰을 통해 삶의 방향을 재설정했다면 그에 더해서 환경과 지구, 그리고 타인과의 조화로운 삶에 관심을 갖게 하는 플뤼그스캄도 트렌드로서 확산되고 있다.
- 1980년대까지도 비행기를 타는 건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였다. 1983년 전까 지는 관광 목적으로는 여권을 만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파견이나 출장을 비롯한 확실한 공무가 아닌 이상 해외여행이 불가능했 다. 1981년에 올림픽(1988년)과 아시안게임(1986년) 유치가 확정되고, 대외 개방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가 1983년부터 관광 여 권 발급을 시작했다. 당시 50세 이상, 200만 원을 1년간 은행에 예치 하는 조건에 한해서 연 1회 유효한 단수 여권이 발급되었다. 당시 대 기업 직원들 월급이 20만 원대였고, 9급 공무원 초봉이 15만 원 정도 였던 걸 감안하면 200만 원은 꽤 큰돈이다. 1980년대 여행 상품 중 일본을 거쳐 미국을 돌아보는 17박 18일짜리 패키지 상품의 가격은 206만 원이었으니, 당시 해외여행은 중장년 중에서도 부자들만 갈 수있는 것이었다. 1987년에 나이 제한이 45세로 낮아지고, 1989년 1월부터 전면 자유화를 맞으면서 중산층의 해외여행 러시, 비행기 여행 시대가 열렸다. 1990년대 들어서는 대학생 배낭여행과 해외 신혼여행이 급속도로 늘어났고, 이후 해외여행은 대중화되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해외여행과 비행기 여행은 멋지고, 동경하는 일이 되었다. 기내에서 인증 사진 안 찍어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여전히 비행기 여행은 멋진 일로 인식되고 있다.
- 2019년 3월 21일자 《동아일보》 에 미세먼지 전문가이자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인 장재연 아주대학교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미국 흉부학회에서 보호용 마스크가 1회 호흡량을 감소시켜 호흡 빈도 증가, 폐포와 폐 의 환기율 감소, 심박출량 감소 등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 사 실을 언급했다. 또한 마스크를 써서 미세먼지 피해가 줄어들었다는 논문은 거의 없는 반면, 마스크 사용에 대한 주의를 언급하는 의학적 정보는 상당히 많다고 얘기했다. 마스크가 꼭 필요한 사람 외에도 미세먼지 포비아 때문에 누구나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마스크 사용의 폐해도 생길 수 있다. 정부에서 보내는 긴급 재난 문자의 내용은 "미세먼지 경보 발령, 어린이, 노약자 실외 활동 금지, 마스크 착용하 세요” 이다. 그런데 어린이나 노약자의 경우 장시간 마스크 착용으로 호흡량 감소를 포함한 마스크 피해 문제가 생기는 건 어떡할 것인가. 사실 미세먼지 경고와 마스크 착용 권유는 근본 문제보다는 눈에 보 이는 현상에 더 신경 쓰며 단기적 효과에 치중하는 우리의 문제 해결 접근 경향과 무관치 않다. 이 접근법을 지금 정부나 그 이전 정부들에서 똑같이 사용 중이다. 정치권이 가진 환경 오염 인식 수준이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는 늘 산업과 경 제 성장 문제보다 뒤에 있고, 잘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분야라서 임기 내 큰 진전이 드러나지 않기도 하다.
- 지금 인공 지능 음성 인식 스피커는 아이와 놀아 주는 정도의 초보적인 대화만 가능해서 비싼 하이테크 장난감이라 치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멀리 보면 이 스피커와 친숙한 알파 세대 소비자가 나이가 들고, 경제력과 사회적 역할을 확대시켜 갈수록 스피커와 쌓은 관 계의 힘과 영향력은 큰돈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한때는 TV가, PC 와 인터넷이, 스마트폰과 모바일이 그 역할을 했다면, 이제 인공 지능 음성 인식 스피커와 로봇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받아쓰기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한다. 기성세대로서는 이런 변화가 낯설 수 있겠지만 미래로 갈수록 받아쓰기나 문자 중심의 정보 구조는 크게 바뀔 것이다. Z세대부터 이미 텍스트로 된 정보를 검색하는 게 아니라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검색 해서 보기 시작했다. 학습이든 놀이든 궁금증이든, 영상과 음성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시대에는 Z세대와 알파 세대가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즉 앞으로 ICT 시장의 콘텐츠와 미디어 부문에서 알파 세대의 힘은 더욱더 커질 것이란 얘기다.
- 지금은 베리칩을 사람에게 삽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바로 편리함 때문이다. 베리칩이 집 출입 키, 전자 지갑, 신분 증, 멤버십 카드가 된다. 즉 결제가 필요할 때 신용 카드를 꺼낼 필요. 없이 베리칩이 들어 있는 신체 부위(팔이나 손)를 스캔하거나 인식시키 면 된다. 회사 출입구에서 출입 카드 대신 손을 단말기에 대면 문이 열리고, 기차표는 공연 티켓이든 출입할 때 표 검사도 손을 스캔하는 걸로 대신할 수 있다. 베리칩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웨덴 국영철 도회사 SJ레일은 실제로 수백 명이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적으로 베리칩을 삽입한 사람을 1만 명 정도로 추산하는데, 그중 절 반인 5000명 이상이 스웨덴에 있다. 왜 하필 스웨덴인 걸까? 오늘날의 스웨덴은 현금이 없는 사회다. 2018년 스웨덴 전체 경제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에 불과했다. 2007년부터 수도 스톡홀름에서는 버스와 지하철 이용 요금을 현금으로 낼 수 없게 했다. 스웨덴의 상점에는 현금 없는 가게(Kontantfri butik)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지불 수단을 카드로만 한정해 고객이 현금을 냈을 때 거 절할 수 있는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된다. 노점상마저도 현금을 받지 않고, 교회 또한 헌금을 카드를 비롯한 디지털 결제로 받고 있다. 얼 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2013년 4월 스톡홀름에서는 은행 에 현금이 없어서 은행 강도가 빈손으로 나와 화제가 된 일도 있었 다. 스웨덴은 과거 유럽에서 처음 지폐를 발행한 나라였는데 지금은 현금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없애는 나라가 되었다. 스웨덴은 삶의 질, 복지 등에서만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 투명성도 높다. 스웨덴 사람들은 사회 보장 제도에 등록된 개인 정보를 다른 행정 기관과 공유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이나 우려가 다른 나라보다 적은 건 투명한 사회 구조에 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이다. 개인 정보를 누군가 악의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거란 신뢰가 있다 보니, 베리칩에 대해서도 개인 정보 유출의 우려보다는 편리 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 60세 이상 노인 27명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연구했는데 노후에 대한 불안을 겪고 있고, 지위와 역할 에 대한 변화로 내적 변화에 직면해 있으며, 가족이나 타인과의 관계 에서 무시, 소외, 기피 등을 경험하면서 체념, 거부, 분노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이 먹은 게 서럽다는 얘기다. 사실 연령 으로 인한 차별인 연령주의(Ageism)에 대한 연구는 미국에서도 수십 년 전부터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노령화가 되면 연령 차별을 받는 노 인들이 사회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데, 한국 사회가 지금 그런 상황이다. 노인들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이들로 하여금 분노와 서러움을 만들어, 태극기 부대 같은 정치적 행동까지 이어지게 한 것이다
- 핫플레이스의 인기 지속성이 접점 떨어지고 있다. 소비가 빨라지고 한스는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같은 곳의 사진을 계속 올릴 수는 없다. 아무리 멋진 곳이어도 사진으로는 한두 번이면 족하다. 반복되면 매력도 떨어진다. 그러니 늘 새로운 곳이 필요하다. 2010년대 이후 서울에서 무수한 동네가 치플레이스가 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동네가 계속 등장한다. 모든 플레이스를 충분히 소비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동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지방 소도시를 가도 힙한 인테리어 공간 이 많다. 그래야만 사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진발을 잘 받는 취 향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스타그래머블 시대, 인플루언 서가 권력인 시대에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취향은 그 매력이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보여 주기 중심의 취향 소비 구조는 취향 인 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는 나이를 권력으로 여기면서도 나이 먹는 걸 부끄러워한다는 점이다. 젊어 보이려고 애를 쓰고, 누가 자신을 어리게 봐 주면 무척 좋아한다. 이것은 나이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태도다. 한국 정치는 젊은 피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젊고 새로운 인재가 들어와서 관성에 빠져 있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를 기대해서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낡고 고루한 생각을 가진 정치 세력을 혁신시키는 게 더 필요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하지 않고 그저 젊은 피로 메이크업하려고만 든다. 구태 정치는 그대로 둔 채 젊은 인재들을 도 구로 쓰는 셈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나이 많은 경영진은 늘 젊은 사원들과 함께 밥을 먹고 토론하면서 자신이 젊고 혁신적인 리더라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다. 정계나 재계나 젊은 피'는 '늙은 피'의 생존을 위한 보조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나이 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결국 늙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스스로 인식 했기 때문이다. 늙음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는 늙음과 젊음을 서로 상반된 가치로 본다. 둘은 함께 공존하는 역할일 뿐, 누가 우위에 있으며 누가 더 좋은 것인지 구분하는 요소는 아닌 데도 말이다.
- “돈은 숫자고 숫자에는 끝이 없다. 만약 행복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당신은 끝없이 찾아야 할 것이다.(Money is numbers and numbers never end. If it takes money to be happy, your search for happiness will never end.)" 가수 밥 말리가 한 이 말은 '돈'에 대한 명언 중 단연 최고다. 숫자는 끝이 없으니 우리 욕망도 끝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무리 가 져도 행복에 닿기 어려운 것이 돈이고 결국 돈의 노예가 되어 점점 더 탐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밥 말리는 빈민가의 부랑자이자 용접공 출신으로 자신의 재능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그는 돈에 주눅 들지 않고 돈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돈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다. 이기려고 할수록, 싸우려고 할수록 더 많이 질 뿐이다. 그러니 돈에 대한 태도와 돈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더 많이 가지기를 바라기 전에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돈이 많다고 불행하진 않겠지만 돈만 쫓다가는 불행해지기 쉽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할 뿐이다. 이런 태도는 풍요의 시대라서 가능한 것이다. 과거의세대에게 절대적 가난이 있었다면 지금의 세대에게는 상대적 가난이 있다. 절대적 가난을 해결하려면 물리적으로 돈이 더 많아야 가능하지만, 상대적 가난은 삶의 태도나 라이프스타일 변화로도 해결될 수 있다. 그래서 ‘우아한 가난'이라는 화두가 필요해졌다. 우리의 욕망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서 가난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면서, 우리는 우아한 삶과 일상의 경험치가 주는 감정적 풍요를 주목하게 되었다. 여기서 출발한 라이프스타일 코드가 킨포크, 휘게, 라곰, 단샤 리(斷捨離), 미니멀라이프 등으로 대표되는, 2010년대에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라이프 트렌드들이다. 돈 대신 사람, 출세와 성공 대신 일상의 행복을 주목한 사람들이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소비와 마케팅의 방향에도 영향을 줬다. 이런 흐름이 우아함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 2019년 일본에서는 금욕 상자'라고 불리는 투명한 금고가 유행 했다. 이 금고는 투명해서 내부가 비치므로 비밀스러운 것을 보관하 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 금고에 물건을 넣으면 최소 1분에서 최대 10일까지 잠금 시간을 설정할 수 있고, 한번 잠기면 설정된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열 수 없다. 이 제품은 2013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 고 일본에서는 2014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는데 수년간 유행되지 않 았다. 그러다가 2019년 도쿄대학교의 한 학생이 금고를 사용한 소감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이 게시물이 수십만 명에게 '좋아요'를 받으면서 화제가 되었다. 그 학생은 스마트폰을 금고에 넣어 놓고 공부를 하면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며 스마트폰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금고를 추천했다. 이때부터 이 금고는 금 욕 상자라고 불리게 되었고, 스마트폰에 중독되다시피 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게임기, 담배, 음식 등을 넣는 사 람도 많았다. 자신의 의지가 약하니 금고의 도움을 받아 유혹을 이겨 내고 금연과 다이어트에 성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례는 금욕마저 소비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누군가는 여기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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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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