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지 않다

사회 2020. 11. 11. 20:20

- “당신은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여러 가 지 일을 해왔다. 혹시 오늘날의 청년들이 배은망덕하다고 생각 하는가? 너무 맹목적이라고 생각하는가?" 1973년, 이탈리아의 여성 언론인 오리아나 팔라치가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를 인터뷰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당시 독일 청년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고 그의 생각을 묻는 질문이었다. 청년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온 진보적인 정치인으로서 정부에 시위하는 청년들이 괘씸하지 않냐는 뉘앙 스섞인 질문에,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오늘날 청년들은 '오늘의 현실'과 '어제의 비참'을 비교하지 않는 다. 전쟁 이후에 우리를 질식하게 만든 비참함과 비교하지 않는다. 청년 대다수는 우리가 전후의 비참함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들이 비교하는 것은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가능성이다. (...) 청년들은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저울 위에 지금 가진 것과 1945년이나 1946년에 가졌던 것을 올려놓고 비교하면서 말한다. “잘 해왔네! 그래 잘했어!” 그리고 오늘의 청년들 앞에서 우리가 해온 일을 방어한다. “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도 우리가 이룩한 많은 일에 대해 우리의 자부심을 없앨 순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 문제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나는 내 시간을 방어하고 그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방어한다.”
- 빌리 브란트의 말대로 모든 세대는 각자의 자기시간과 자기문제를 갖고 있다. 지금의 6070세대는 청년기에 빈곤과 전쟁, 산업화라는 과제를 안 고 있었다. 586세대는 민주화라는 과제로 싸웠으며 40대들은 문화적 풍요를 누렸으나 사회에 갓 진출했을 때 IMF 사태를 맞 았다. 이명박정부에서 희망버스를 탔던 30대들은 보수 정권 아 래에서 심해지는 불평등을 겪으며 혐오와 체념에 지친 세대가 되었다. 오늘의 20대들은 어떤가. 그들은 IMF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쟁 시스템 속에서 자랐다. 동시에 촛불혁명이라 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험을 한 세대들이다. 이처럼 세대마다 자신들의 청년기 때 가졌던 자기시간과 자기문제가 따로 있다. 중요한 것은 20대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평생 그 세대의 가치관과 행동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회의 과제도 그 사회의 청년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들의 불만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각 시대의 청년들이 가진 불만이 어떻게 해소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미래가 결정된다.
- 지금의 20대 청년들은 윗세대의 양보가 아니라 공정한 세상을 원한다. 그 목표 앞에서 세대갈등도 성별갈등도 모두 페이크 보스Fake Boss'일 뿐이다. 청년의 삶과 국민 다수의 삶을 피폐 하게 하는 최종 보스는 따로 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최종 보스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세상' 이다. 영화 <어벤저스 : 엔드게 임〉에서 최종 보스 타노스를 물리치기 위해 타노스에게 당한자 들이 모두 하나로 뭉쳐야 했듯이 최종 보스를 이기려면 불평등하 고 불공정한 세상에 맞서려는 모든 이들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양보'가 아니라 '더 과감한 상상력'과 '현실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 이다. 지난날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여러 정치 세력을 설득하면서 이루어낸 복지국가, 여든이 다 된 미국의 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이야기하는 민주적 사회 주의, 세계 지성사를 흔든 프랑스의 젊은 정치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주장하는 조세제도의 강화, 이 모두가 과감한 상상력과 현실적 가능성을 기반으로 다수의 삶을 바꾸는 보편적인 기획 이다. 이들은 청년세대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기성세대가 양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성별끼리 적대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들이 전하는 해법은 우리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이미 다수가 하나로 뭉쳐 승리하는 위대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16년 촛불광장에는 성별도 지역도 세대도 중요하지 않았다. 비선실세의 권력과 자본을 물려받은 특권층 자식이 “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했지만 청년들은 부모와 함께 손잡고 촛불을 들었 다. 혜화역 집회에 참여한 20대 여성과 여성할당제에 반대하는 20대 남성이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1,800만여 명에 달하는 촛불시민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촛불을 들었고, 불의한 권력은 촛불시민들의 외침대로 심판받았다.
- 과거에는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평균임금 이상을 받는 일자리로 올라갈 사 다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평생 비정규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대들은 처음부터 좋은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져도 견뎌낸다.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되는 이들은 과연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게 될까.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내가 한 노력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노력'과 '나의 노력’ 사이에 엄격하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는 업적주의'를 낳는다. 업적주의란 주어진 신분, 출신, 가문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 력으로 얻어진 지위나 임금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뜻한다. 이 런 업적주의에 위배되는 것은 이들 세대에게 '정의롭지 않다. 이제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한다. 젊은 시절에 좀 놀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이들에게는 없다. 그래서 나보다 덜 노력한' 누군 가가 기회를 갖게 되거나 혜택을 더 받는다면 참을 수가 없다. 그것은 정의롭지 않은 일이고 공정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 미국 정치학자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 은 저서 『정의란 무엇인 가』에서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지 알려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명예)을 어떻게 배 분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샌델은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각각 자격 있는 사람에게 배분한다”고 말하며 "어려운 문제는 누가 무슨 이유로 그러한 자격을 갖는지 따져보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한국 청년세대가 볼 때 '자격 없는 이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일이 벌어지는 현실에 있다. 그런 일을 목격하게 되면 경쟁이 살벌한 만큼 '공정하지 못한 일'에 더 크게 분노한다.
- 프랑스 정치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소득 대비 자산소득의 비중이 커질 때, 자산소득이 경제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극단적으로 커질 때, 내가 부모한테 자산을 얼 마나 물려받는지에 따라 사회적 계급이 결정되는 세습자본주의로 이행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때 부만 세습되는 게 아니라 가난도 세습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청년들이 가난의 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20대가 대한민국을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개인의 힘으로 성공하는 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일인데도 현실에서 실제 이루어질 확률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어서다.
- 경제발전과 노동운동의 성장으로 오늘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소득의 비중이 높았을 때는 계층이동성이 확보됐다. 그러나 오늘날 20대가 마주한 세상은 과거세대가 이룩한 자본축적 으로 만들어진 ‘세습사회' 이다. 이제 '태어나기를 어디에서 태 어나느냐'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세상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21세기 기술혁명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고전적 신분사회에 처하게 된 것이다. 불과 20년 전과 비교해도 완전히 다른 사회 가 된 것이다. 지금과 달리 과거의 한국은 분명 계층이동성이 높은 나라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 주된 배경으로 한국의 교육열 이 높아서라고 입을 모아 말해왔다. 그러나 교육열 자체가 계층 이동성을 확보해주지 않는다.
- 지금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딜레마는 '이제까지 모두가 믿고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데, 그 시스템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데에 있다. 흔히 좋았던 옛 시절로 여겨지는 서구사회의 1950~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는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의 고도성장기에는 노력만 하면 청년들도 자신들이 번 돈으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노후계획도 세울 수 있었다. 노동소득을 저축하고, 그 저축을 기반으로 자산소득을 만들 수 있었을 때에는 많은 사람 들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긍정할 수 있다. 회사의 평가와 승 진 시스템이 부당해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청년기에 번 노동소득으로 노후설계는 물론 당장 신 혼집 마련도 할 수 없다면, 미래를 위해 노력할 눈꼽만 한 의욕 조차도 사라지게 된다. 욜로 YOLO (You Only Live Once)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의 유행어를 이 세대가 적극적으로 받아 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미생활에 한 달 월급을 날려버리는 상황 등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탕진잼'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2015년 가족실태조사를 보면 생애설계 준비에 대해 묻는 설문 에서 20대는 '재무설계'와 '노후설계'에 대한 준비도가 가장 낮 았고 거꾸로 여가설계' 항목에서 가장 준비도가 높게 나타났다. 이들 행동 패턴은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비합리적일 수 있다. 주류경제학은 현재의 소비를 극대화하는 것보다 생애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이제까지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성적인 경제주체라면 소득수준이 높을 때 적절한 수준으로 저축하여, 생애주기에 걸쳐 고른 소비수준을 추구할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볼 때는 순간의 쾌락을 지향하 는 소비주의적 생활 풍조가 더 합리적이다. 부모한테 이렇다 할 재산을 물려받는 게 아닌 이상, 결혼과 내 집 마련 그리고 출산 과 같은 장기적 인생플랜은 세워봤자 빚더미에 오르는 지름길 이기 때문이다.
- 1970년대부터 한국 정부는 4인 핵가족을 정상가족 모델로 삼고 산아제한 정책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급격한 산업화, 농촌사회의 해체, 그리고 핵가족 중심의 가족제도 재편이 동시에 일어났다. 이에 따라 가 계의 부양책임은 지역공동체와 대가족의 손에서 벗어나 남성가장에게 집중되었다. 당시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미약했기 때문에 남성가장은 노부모의 생계까지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다. 여기에 더해 아직 여성들의 사회진출 빈도가 낮아 남성들에게 부여된 가정 과 국가 내 책임과 기대는 더욱 높아졌고, 산아제한 정책으로 출 산율을 옥죌수록 남자아이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 남아선호사상은 장남에게 '자원 몰아주기'로 이어졌다. 저소득층 가계에서는 여성들이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학업을 포기 하고, 이른바 '공순이' 혹은 '식모'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남성이라고 해도 가장 먼저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장남을 위해 차남들이 학업을 희생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예비 남성가장을 키우는 일에 모두가 목을 매야 하 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나서서 자녀수마저 제 한하자, 어떻게 해서든 남자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풍조가 만연 했다. 즉, 남아선호사상의 근본적인 배경은 도시화 속에 고립된 가족공동체가 홀로 가난과 열악한 사회복지 시스템을 해쳐나가야 했던 데서 찾아야 한다. 20대는 제도적인 영역에서 성평등 가치가 공식화되 고 남녀의 고정된 역할이 해체되는 과정속에서 태어나고 성장 했다. 이들에게 성평등은 어떤 세대보다 익숙하고 보편적인 가치이다. 한편 이들이 남녀 가릴 것 없이 무제한적인 입시와 취업 경쟁에 시달리기 시작한 세대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90년 생의 경우 여덟 살 되던 해에 IMF 외환위기를 겪었다. 자라면 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누구나 학력과 스펙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한 젊은 남성은 젠더 문제에 대해 부채감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설령 부채감이 있다고 해도 가부장제의 희생자를 ‘62년생 김 말자' 라면 모를까 '82년생 김지영' 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 노인은 모든 것을 믿고, 중년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반면, 젊은이는 모든 것을 안다. (오스카 와일드)
- 기혼자 비율 그래프는 오늘날 청년세대에서 도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가계보조자 모델이 여전히 작 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통적인 성역할 모델 을 타파하자는 논의에서 취할 수 있는 최악의 방식이 있다. '인 식과 문화의 개선'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보다는 애초에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과 그에 따른 사회적 관행을 재생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모델이 지속되는 근본적 배경은 장시간 노동, 초과노동이 잦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이다. 우선 한국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OECD 1~2위)은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어야 하는 여성에게 더 큰 경력단절 요인으로 작용 한다. 노동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 Claudia Goldin이 지적했듯이 잔업과 초과노동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임금체계 속에서는 남 성에게 더 많은 노동시간이 전가되고 여성은 반대로 상대적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클라우디아 골딘은 이러한 현상이 성차별적 편견에서 상대 적으로 자유롭다고 알려진 변호사나 회계사와 같은 미국내 일부 전문직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의 경 우에도 장시간 노동을 우대하는 관행은 단순노동에서 전문직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직종과 산업에 해당한다. 특히 남성 노동자가 밀집해 있으며 초과근무수당 위주의 임금체계가 우세한 제조업, 운수업, 금융·보험업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애초에 잔업이나 초과노동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 것은 기본급 자체가 적고 노동시장에서의 지위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상대적 고임금을 누린다는 남성 노동자들도 상류층이 아닌 이상 역시 과로사 등 여러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노동시간이 길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직업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도,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기회도 갖기 어렵다. 여성은 여성대로 경력단절과 저임금 문제를 겪는다. 남 녀의 노동 문제가 성별에 따라 달라 보여도 결국 그 핵심을 들여 다보면 모든 청년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과 노 동시장의 불안정 문제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 경제적 불평등 정도가 높을수록 여성이 미용과 패션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가난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돋보이기 위해 외모를 치장하고 과시하는 전략을 선택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여성이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이 가부장적 억압의 결과라며 탈脫코르셋 운동'을 주장하기보다는,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에 집중하는 것이 여성들의 자유로운 문화를 위해서 더 나은 해결 방안일 것이다.
- 오늘날 청년들이 남녀 대결 프레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반발하는 것은, 최종 보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평범한 개인들 에게 연대책임을 요구하는 불공정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보기에 남성들이 연합하여 여성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남성 카르텔' 프레임은 현실에 존재하는 권력 · 자본 카르텔을 붕괴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어떤 사회는 서민들은 어느 정도 기존 질서를 거스르며 살아야 한다. 영국의 진정한 대중문화는 표면 바로 밑에서 진행되고 비공식적이며 당국의 눈살을 좀 찌푸리게 하는 무엇이다. (조지 오웰, 『영국, 당신의 영국 중에서)
- 미국의 게이 활동가 스티븐 프라이 Stephen Fry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Political Correctness 라는 책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을 억압하고 검열하는 도구라는 점을 지적한다. 러시아에도 '정치적 올바름'이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작곡가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어요. 러시아에만 해당하는 정치적 올바름인 거죠. 우파 진영에도 정치적 올바름이 있습니다. 레드 넥 Red Neck (백인 노동자를 일컫는 말)이라는 표현을 쓰면 무례하고 공격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니 이건 어느 한쪽 진영에만 해당하는 사안이 아닌 거예요. 토론을 차단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수법인 거예요.
- 어느 사회나 범죄가 증가하면 그 뒤에는 가난과 불평등이 자라고 있다. 처벌이 약해서 혹은 개인들이 갑자기 이기적으로 변 해서 범죄가 증가하는 게 아니다. 침팬지를 한 공간에 몰아두고 한쪽 벽을 점점 밀어서 공간을 줄여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까. 어떤 침팬지부터 먼저 다치거나 죽어 나갈까. 우리는 그 답 을 알고 있다. 어리고 약한 침팬지부터 먼저 다치게 된다. 이 사 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침팬지들 중에 나쁜 놈들이 있다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것으로는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다. 모든 침팬지들이 힘을 합쳐서 줄어드는 벽을 밀어내고, 벽이 줄어들게 만든 놈을 제거하는 것이 해법이다. 그게 더 많은 약한 침팬지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청년세대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국가는 사회에 개입하 는 것이지, 개인에게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공적인 불공 정과 불합리와 불평등을 없애야 하는 것이지,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개인의 윤리를 교정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세대가 바라는 자유는 이런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 노력할 자유, 주어진 신분이 아니라 노력으로 삶의 조건을 만들 어갈 자유를 달라는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과 생각을 검열하는 데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청년세대가 PC 주의에 반대하는 이유다. 한 주에 80시간, 100시간을 일해야 하는 청년 노동자에게 자유란 없다. 늘 산업재해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일하다 다쳐도 병원 한 번 갈 수 없는 청년 노동자에게 자유란 없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육아휴직을 낼 수 없는 청년 부부에게 자유란 없다. 그 런데 독박육아를 강요하는 남성들의 의식수준을 계몽하는 데만 집중하면, 함께 아이를 키워야 할 청년 부부 사이의 갈등만 키우 는 일이 된다. 오늘날 불공정한 사회를 유지하는 특권구조에 영 향을 주지도 못하고 다수 청년들의 차이만 부각시켜 그 차이로 서로를 갈라놓는 올바름의 정치는, 공정하지 않을 뿐더러 세상 을 털끝 하나 바꿀 수도 없다.
-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변해. 그 모든 순간,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이지. 그건 괜찮아. 좋은 거야.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니까. 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영국 SF드라마, 닥터 후 대사 중에서)
- 친북이냐 반북이냐 같은 질문은 후진 질문이다. 보수냐 진보냐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대한민국에서 청년들에게 과거의 이념적 선택지를 들이대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라고하는 꼴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대한민국이 더 경제적으로 번영하길 바라는 동시에 자신의 가족이 더 촘촘한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누리길 바란다. 해외 난민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강화하 더라도 범죄의 사각지대에 대한 불안을 보다 철저하게 해소해주 길 바란다. 남북 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의 정치체제를 세습이라고 비판한다. 재벌개혁에 찬성하고 대기업의 불공정한 관행에 반대하는 동시에 최저임금을 인상하 기 위해 소상공인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논의에는 반대한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기존의 정치 프레임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대를 탈脫이념을 지향한다고 해석하 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관점도 요점을 놓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탈이념화한 게 아니라 이들이 따르는 새로운 이념에 대해 사회가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 세대가 제공해왔던 이념적 프레임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20대 를 민주화세대와 태극기부대 사이의 어느 좌표에 놓을 이유가 없다. 이를테면 진보라면 세트메뉴 A를 고르고, 보수라면 세트 메뉴 B를 골라야 한다는 식의 목록들을 교체해야 할 시점이 다. 가온 것이다.
- 참 오랫동안 부산을 떨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실패한 투쟁이란 것은 우리가 포기한 투쟁이라는 것을요.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대통령 퇴임 연설 중에서)
- 대한민국에서 90년대 생이 마주한 가장 심각한 갈등은 무엇 인가. 그것이 세대갈등이고 젠더갈등이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 인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의 평등과 자유를 막고 있는 '불평등' 이다. 이 불평등은 곧 세습자본주의를 의미하며 90년대 생들 이 할 일은 세습자본주의와의 싸움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대 대로 이어가려는 특권층 엘리트 권력층과 싸우는 것이 공정세 대가 벌여야 하는 진짜 싸움이다. 교회를 세습하고 학교를 세습 하고 기업을 세습하는 특권에 20대가 가장 앞서 맞서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혁을 이루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그 와중에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변화와 성공에도 기뻐하며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다.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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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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