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포비아

사회 2020. 12. 9. 20:20

- “진실은 아직 신발도 신지 않았는데 그사이 거짓은 세계 반 바퀴 를 돌아다닌다.” 2018년 3월 사이언스에 발표된 한 연구 보고서에 대한 주석이다. 총 450만 번 공유된 12만 6,000개의 트위터 뉴스를 추적 조사한 연구다.
- 아이들의 눈은 작다. 특히 안구의 앞뒤 길이가 너무 짧다. 그래서 먼 곳의 사물을 볼 때면 망막 위의 상이 원근 조절 없이는 흐릿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먼 곳의 사물을 볼 때 이미 원근 조절을 해야 한다. 물론 아이들은 그것이 가능하다. 어린 시절 눈의 수정체는 다른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무척 유연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눈은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성장하고, 안구도 점점 길어진다. 그렇다면 먼 곳의 사물이 선명하게 보이는 바로 그 시점까지 안구가 성장한다고 볼 수 있다. 병아리 연구가 보여주듯 실제로도 정확히 그랬다. 모든 눈은 사물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한다. 비스 한 연구들이 병아리뿐 아니라 물고기, 쥐, 토끼, 기니피그, 원숭이를 대 상으로도 실시됐다. 5/6/7 그 결과 모든 동물 종의 눈은 멀리 떨어진 사물 이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 성장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의 길이가 정확하게 어떤 규칙에 따라 성장하는지는 오늘날까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망막에 맺힌 상의 평균 선명도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상이 아직 선명하지 않는 동안에는 성장 요소를 계속 분비하는 메커니즘이 망막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상이 대 체로 선명하게 나타나면 성장 요소의 분비는 중지되고, 안구는 성장을 멈춘다. 이 모든 과정은 기본적으로 자연에 의해 지극히 단순하지만 기발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주로 야외에서 머물면서 먼 곳을 바라보면 방금 언급한 메커니즘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눈의 발달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기가 그랬다. 그런데 약 5,000년 전 문자의 발명과 함께 인간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을 볼 기회가 점점 많아졌고, 그로써 근시가 나타날 위험이 점점 커졌다. 이 인간의 경우 안구 길이의 성장은 주로 10대 때 일어난다. 자연 민족들은 이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안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들의 눈 은 주로 먼 곳을 향하고, 덕분에 청소년기 동안 정상적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성장한다. 그러나 문명인은 다르다. 일찍부터 책을 읽힘으로써 아이들을 근시로 만든다. 이와 관련해서 안과학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학교 근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책을 읽을 때처럼 주로 가까운 것에만 눈의 초점을 맞추면 눈은 너무 길어진다. 화면의 광선은 망막 한참 뒤쪽에 맺힐 뿐 아니라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 눈이 길어 지는 과정도 훨씬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 스마트폰이 단순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스마트폰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일을 하면서 “지금부터 흰 곰을 생각하지 마!” 하고 요구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당신이 지금 편지나 리포트를 쓰고 있다고 가정해보라. 그런데 당신에게 추가적인 과제가 주어진다. 중간 중간에 5분씩 흰 곰을 생각하지 말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이 과제의 핵심은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처음엔 별것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과제로 인해 글에 대한 당신의 집중력은 떨어진다. 추가 과제에 신경을 쓰느라 당신의 사고 능력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그 과제라는 것이 어차피 하지도 않을 무언가를 명시적으로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이 실험을 주도한 연구자들의 말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인간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은 본래 해야 할 일과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일 사이에 주의력 자원을 새롭게 분배한다. 자동으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에 주의력을 억제하려면 주의력 자원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이 자원에 의존하는 본래의 일은 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건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스마트폰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할 때도 마찬가 지다. 우리는 이 가능성을 실질적인 연구에서 확인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마트폰을 사용할 경우 사람 의 주의력이 분산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핵심은 스마트폰이 단순히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스마트폰을 지극히 당연한 삶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면 지속적으로 인지 자원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 이다. 위의 실험을 했던 연구자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그런데 스마트폰의 특별한 점은 사람들의 주의력을 너무나 자주 딴 데로 돌리게 한다는 데 있다. 스마트폰은 어디든 갖고 다닐 수 있고, 사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점 때문에 사용자의 주의력에 특별히 강한 영 향을 끼친다.
- 스마트폰은 단순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침해한다. 정신병리학에서 사고 장애'라 부르는 현상이다. 스마트폰에 의존적일수록 장애는 더 커진다. 이 물건'을 그냥 꺼두거나 화면을 바닥으로 뒤집어놓는 것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아예 다른 방에 갖다 놓는 것이 좋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이 생겨난다.  집중해서 할 일이 있거나, 타인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면 스마트폰과 공간적으로 떨어지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어린 학생이건 최고 경영자건 할 것 없이!
-  “유혹적인 디자인을 포함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비상한 기능에 매달리는 사람은 평소에 자제력이 떨어지거나 가정생활에서 문제를 겪는 부모들이다. 가정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모는 예전보다 더 자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예속됨으로써 자녀와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디지털 미디어의 이용은 엄마들의 우울증을 격화시키고, 부부 싸움을 유발하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는 데 문제를 일으키고, 관계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배우자 사이의 유대감을 약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미디어 사용이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더 많이 유발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 교육 시설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할 경우 부정적인 영향.
*  수업 시간에 디지털 정보 통신 기술을 사용하면 학생들의 주의력은 분산되고, 그로 인해 학습 효과는 낮아진다. 연구에 따르면 약 10~15퍼센트가 떨어진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은 대개 주의력 장애를 겪는다.
* 인터넷 검색기는 원칙적으로 검색하는 사람이 찾는 내용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때만 정보 획득에 도움이 된다. 그에 비해 찾는 내 용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거나 전혀 모를 때는 체계적인 교재, 즉 교과서가 훨씬 낫다. 예를 들어 온라인 대중 공개강좌(MOOC) 를 듣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비율의 국가간 차이는 그 나라의 평균적 교육 수준에 달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니까 교육  준이 좀 더 높은 서구 선진국에서는 중단 비율이 약 92퍼센트에 그쳤다면 '교육 수준이 낮은 저개발국에서는 약 98퍼센트에 달했다.
* 디지털 미디어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면 기억 효과는 반감된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받아들이고 지나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억에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만의 생각으로 정보를 깊이 가공하 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박물관을 관람할 때도 아이들이 카 메라나 스마트폰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그냥 박물관 안의 물 건을 눈으로 구경하는 편이 훨씬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 전자책 교재도 종이책에 비해 학습 효과가 떨어진다. 실리콘 밸리의 대학생들은 85퍼센트 정도가 종이책을 즐겨 본다. 그래야 머릿속에 남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 마찬가지로 수업 시간에 자판을 두드리는 것보다 필기를 하는 것이 기억에는 한결 좋다. 그것은 미국의 프린스턴대학교와 실리콘 밸리의 두 학자가 다섯 가지 실험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 “석면은 어차피 집집마다 다 있어. 이제 그만해!" 
“납은 흰색 페인트와 벤진 속에도 있어. 이제 그만해!" 
"술은 옛날부터 있었어. 이제 그만해!" 
석면과 납, 알코올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자주 돌아오는 대답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근거 아닌 근거를 대는 사이 아이들은 석면과 납, 알코올로 건강을 해치고, 중독에 빠지고, 그 파장으로 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납, 석면, 흡연, 술의 유해성은 스마트폰이 건강에 미치는 유해성에 비하면 훨씬 적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벽에서 납관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런 벽을 허물어버린다. “약간의 납과 석면은 해롭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에게 알코올 섭취 능력을 단련시키자는 제안에 동의하는 사람도 없다. 알코올은 사람을 중독에 빠뜨리고 뇌 발달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그건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 컴퓨터 게임은 주의력을 개선하지 않는다. 오히려 컴퓨터 게임으로 주의력 장애를 얻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컴퓨터 게임으로 습득된 '능력'은 실제 현실의 일상적 행동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충동성의 증가, 결정력 및 실행력의 손상이 컴퓨터 게임의 결과로 증명됐다. 이런 현상은 게임을 많 이 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보상 시스템의 부실한 작동이 그 원인일 수 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보상 시스템을 작동 시킬 수 있는 적은 양의 돈도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 이들의 보상 시스템은 액수가 아주 클 경우에만 작동하고, 이게 바로 중독 발달의 전형 적인 양상이다. 인터넷, 소셜 미디어, 스마트폰의 중독 작용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아이들을 보호할 예방책으로 자주 권장되는 디지털 미디어와의 빠른 접촉은 별로 현명하지 않고, 심지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반성 능력과 비판 능력을 써먹을 수 있으려면 웬만큼 발달해야 한다. 유치원 단계에선 이 능력이 아직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는 세간의 주장과는 달리 이 연구 결과들은 정반대 상황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고, 지속적으로 우울하게 만들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위험을 높인다. 이는 미국의 최신 과학적 연구 결과로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게다가 현대에 들어 우울증은 가장 흔한 질병이 됐고, 젊은 친구들에게도 그 발병 가능성 이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잊어선 안 된다. 특히 스마트폰과 무수히 늘어난 건강 앱을 우울증에 대한 대응책으로 활용한 시도들이 지금껏 무참히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페이스북 대표가 자사의 선진적인 서비스로 사용자들의 자살을 막겠다며 EU의 정보보 호기본법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정말 뻔뻔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 건 앞서 들었던 예와 마찬가지로 휘발유로 불을 끄라고 추 천하는 격이다. 우리는 그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 그들의 어떤 논리에도 흔들려선 안 된다.
- 20세 청년 82명에 대한 종단 연구에서 페이스북 사용과 주관적 행복의 관련성을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2주 동안 우연한 시간에 매일 다섯 번씩 피험자들과 문자 메시지로 접촉해서 그때그때 주관적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를 확인했다. 게다가 마지막 문자 메시지 접촉 이후 페이스북을 얼마나 자주 이용했는지도 물었다. 그 결과 페이스북 사용이이후의 주관적 행복감에 곧장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반대 방향으로의 영향, 즉 행복감이 떨어져서 페이스북을 더 많이 사 용하는 경우는 없었다. 질문지를 통해 추가로 조사한 또 다른 복잡한 자료 분석도 사용자의 행복감 상실이 다른 요인들에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페이스북 및 인터넷 사용에 있다는 것을 전체적으로 매우 뚜렷 이 보여줬다. 
- 스마트폰의 잦은 사용 습관이 유령 진동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은 다 음과 같다. 우리 몸은 스마트폰을 습관적으로 넣어두는 곳에서 진동이 자주 울리는 것에 익숙해진다. 이 진동은 외부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이런 연락은 대부분 쓸데없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나 지금 초콜릿 아이스크림 먹고 있는데, 넌 뭐해?” 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걸 받는 사람은 무척 반가워하고 보상받는 느낌까지 든다. 이 대목에서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정보 중독자'로도 불린다. 뭔가 새 소식이 오면 무척 반가워하고, 자신이 상대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이런 식이다. '누군가 방금 내 생각을 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보냈어. 정말 대단하지 않아?' 대다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스마트폰 진동이 자주 울리는 신체 부위를 담당하는 뇌신경이 항상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반응할 준비가 돼 있다. 이 느낌은 만일 뇌에서 민감성과 기대가 고조되어 있다면 저 밑에서 약간의 자극만 있어도 쉽게 불붙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미 10년 전에 지적됐다. 스마트폰은 이런 방식으로 몸의 일부가 됐다는 것이다. 의수나 의족 같은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 <뉴욕타임스>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유튜브를 통한 과격화의 동력은 결국 우리의 호기심이다.  “우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 테크놀로지에 의해 착취되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커튼 뒤에 숨겨진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우리와 관계된 무언가를 좀 더 정확히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 그렇다. 우리는 클릭할 때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자극적인 내용에서 또 다른 자극적인 내용으로 넘어가고, 그와 함께 점점 더 많은 비밀과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유튜브는 우리를 극단 주의의 미로 속으로 밀어 넣고, 그 과정에서 구글은 광고로 떼돈을 번다. 이 칼럼을 쓴 사람은 현대 삶의 상황 때문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락 해버린 인간의 자연스런 호기심을 우리에게 해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물질들, 즉 소금, 설탕, 지방과 비교한다. 옛날에 이것들은 희귀한 영양소였다. 그래서 인간들은 건강과 탄탄한 몸을 위해 이 물질들을 갈구했다. 그러나 이제 이것들은 어디서건 차고 넘치고 언제든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과체중과 고혈압, 당뇨병을 일으키고 상당수 사람들의 목숨을 일찍 앗아가는 나쁜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원래 는 건강한 욕구인 호기심도 비슷한 방식으로 거짓과 스캔들, 허위 정 보로 이어진다. 이 칼럼니스트의 말을 들어보자.
“결국 유튜브가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우리에게 점점 달콤하 고 기름진 음식을 서빙하고, 식사가 끝나면 바로 우리의 접시를 다시 채워주는 레스토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입맛은 거기에 길들여져 점점 더 설탕과 지방이 많이 들어가고, 레스토랑이 바로바로 서빙해주는 음식들을 주문한다. 건강 관련 부처와 시민들이 문제점들을 지적하면 레스토랑 지배인은 답한다. 자신은 '손님들이 원하고 주문하는 것만 서비스할 뿐'이라고.’ 이런 상황은 유튜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 그것도 그중에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튜브를 통해 촉진되는 극단주의 화의 여파는 심히 걱정스럽다. 이 칼럼니스트 말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어보자.
“이 상태는 용인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한 회사가 무수한 사람을 극단으로 내몰고, 동시에 그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까지 무한정 발생시키면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버는 건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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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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