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맬서스에 따르면 전근대 사회에서는 인구 증가율이 거의 0에 가까운 수준에 머물면서 소득 역시 최저생계비 수준에 정체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일 어떤 이유에서 인구가 균형수준보다 눈에 띄게 증가하면 노동공급이 늘어나기 때문에 임금이 하락하게 되고, 이것은 기아나 질병 등을 유발 한다. 결국 인구가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가면 임금도 원점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인구가 균형수준보다 줄어들면 임금이 높아지는 데, 이는 생존율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인구를 증가시켜 노동공급 을 늘린다. 결국 임금이 떨어지고 생활수준이 하락해서 임금과 인구규모는 예전 수준으로 돌아간다. 맬서스의 덫Malthusian Trap' 이라고도 부르는 암울한 상황을 탈피할 수 없다. 맬서스가 묘사한 전근대 사회의 인구동학은 대략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서유럽에서 붕괴하기 시작하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다. 공중보건의 확산과 같은 비경제적 요인들이 사망률 하락과 인구 증가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장기적인 소득 증가가 동반하지 않았다면, 맬서스적 동학이 다시 시작되어 인구 증가는 곧 한계에 봉착했을 것이다. 따라서 지난 200년간의 변화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적인 사실은 인구 증가와 아울러 생활 수준의 향상이 동시에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생산의 급격한 증가 없이는 불가능했는데, 18세기 말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이런 점에서 인류 역사에 말 그대로 혁명적 변화를 초래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류의 신장은 원시시대로부터 산업화가 본격화되는 18세기 중엽까 지 꾸준히 감소해 온 것으로 보인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매우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인구가 증가해 왔는데, 인구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생활환경이 전반적으로 악화되었고, 이것이 신장 감소를 야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는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시기인데, 이 기간 동안에는 평균 신장이 정체 혹은 감소하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가 축적된 것은 미국의 경우이다. 군인들의 평균 신장 추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산업화가 본격화되는 1830년경부터 1880년대까지 평균 신장이 약 3cm가량 감소하고, 20세기 초가 되어서 야 1800년대 초반 수준을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양상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가 진행 중인데, 1차적으로 는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생활환경의 악화가 주범으로 지목된다.마지막은 산업혁명 이후 시기인데, 산업화를 경험한 나라 국민들의 신장은 급속도로 상승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 직전인 18세기 중엽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은 166cm였는데, 1990년대에 와서는 178cm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혁명이 물질적 생활수준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 1950년대 면방직산업은 지금까지 한국 제조업에 대해 전통설이 그려온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1950 년대에 제조업 분야의 생산능력은 전반적으로 빠르게 증진되고 있었으며 이미 1950년대 말이 되면 면방직산업을 포함한 주요 경 공업 부문들은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거나 혹은 이러한 수준에 거의 근접하고 있었다. 기업들은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의지를 갖추고, 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1950년대 우리나라의 제조업 기업들이 수출할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했다는 전통설에서의 설명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1960년대 초 수출품목을 생산하던 다른 산업들도 기본적으로는 1950년대 말경에는 수출을 할 수 있는 생산능력 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위의 양상은 면방직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울러 면방직산업의 경우 국내시장에 대한 수요를 충족한 뒤 이 과정에서 축적한 생산능력을 발판으로 수출로 나아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전통설은 흔히 '수입대 체공업화의 한계 또는 실패'로 인해 해외로 전환한 것이라고 규정해 왔다. 그러나 면방직공업의 사례는 이러한 평가가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1950년대 동안 우리나라 제조업은 내수시장을 기초로 성장하면서 수출을 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갖추었고, 여기에 기반해서 이미 1950년대부터 수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 였으며, 대내외적 조건이 갖추어진 1960년대에 와서는 성공적인 수출 확대를 이룩했다. 그런 의미에서 수입대체와 수출지향은 서 로 배치되는 정책이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생산능력 증진에 따라 수입대체로부터 수출지향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발전 단계에 가 까웠다. 휴전 직후 우리나라 제조업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5~6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이처럼 생산능력을 급속히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를 분석하는 것은 중요한 연구 과제이다. 하지만 면방직공업의 사례는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1960년대에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50년대에 민간부문의 생산능력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의 수출지향공업화정책은 몇몇 엘리트 경제관료의 머 릿속 혹은 외국 학자의 조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의 요청과 성과에 기초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전략을 구상하는 정책당국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 군 단위 자립경제체제는 북한 각 지역의 독자적 생존력을 높이고 대외의존도가 낮은 '자립경제'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 다. 하지만 대규모 공장 건설 대신 각 군마다 자급자족하는 소규모 공장들을 건설하는 정책은 생산성 차원에서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컸다. '중앙집권' 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생산을 중앙에서 통 제한다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 단위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생산설비를 갖추는 측면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중앙집권적' 생산은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방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군 단위 자립경제 노선은 경제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경제발전을 희생하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북한 정부의 소극적인 철도망 건설은 1차적으로는 대내외적인 자립경제 노선이 가져온 결과이다. 하지만 정치적 측면을 고려해서 본다면 둘 간의 인과 관계는 반대로 해석해 볼 여지도 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정치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지리적 이 동을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교통망을 건설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지역 간 교통망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각 지역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각 지역 스스로가 생산을 하는 것밖에 없었다. 결국 자립경제 구축과 주민통제라는 목적을 위해 북한 당국은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사회기반시설을 포기한 셈이다. 이상의 분석 결과는 오늘날 북한경제의 장기 침체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존 연구들은 북한경제가 장기 침 체로 접어들게 된 원인을 유인체제 왜곡이나 정보 부족 같은 사회 주의 경제에 내재한 일반적인 문제로부터 찾았다. 하지만 본 연구 는 이러한 요인들이 중요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일 반적 요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제시한다. 북한 정부는 애당초 근대경제성장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 무리 경제 주체의 유인 문제나 정보 문제 등을 해소한다 하더라도 경제가 장기적인 성장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경 제의 과거를 이해하는 점에서뿐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데에서 도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 폭격에 대한 연구, 나아가 제1·2차 세계대전 등 근대사회의 전쟁에 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대개 4~5년 정도면 전쟁으로부터 복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도 예외가 아니 다. 여러 가지 지표들을 살펴보면 남한과 북한 모두 1958년경에 는 전쟁 전의 경제수준으로 회복한다. 그런데 재난이 인간의 신체나 정신에 가한 충격은 사뭇 다르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제1차 세계대 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라 부르는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역사적으로 가장 악명이 높았던 이 독감은 전 세 계적으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감과 같은 전염병은 일시적인 고통만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평생에 걸쳐 후유증이 지속될 수도 있다. 컬럼비아대학교의 더글 라스 아몬드Douglas Almond는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1918년 독 감 유행 당시 미국에서 태아 상태였던 사람들, 즉 1919년 상반기출생자들의 삶을 분석하였다. 아몬드는 소득, 학업성취, 건강 등 여러 가지 지표를 분석했는 데, 모든 영역에서 1918년에 태아였던 사람들은 인근의 다른 연도 출생자들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미국인의 교육 연한이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1919년생은 추세에서 벗어나 낮은 수준으로 나타난다. 엄청난 질 병에 노출되는 불운을 겪게 되면, 평생에 걸쳐 그 영향으로부터 벗 어나기 어렵다. 기근도 질병과 유사하다. 2차대전 당시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기근Dutch famine이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는 매우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대학교의 이철희 교수는 한국전쟁의 영향을 분석하였다. 전쟁이 발발하고 가장 전투가 격렬하게 이루어지던 1950년에 태아 상태였던 사람들의 장기적인 건강 상 태는 다른 출생연도의 사람들보다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태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쟁 등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 혹은 전쟁 중 식량부족이나 부상 등으로 인한 건강 손실은 평생토록 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 은행이자는 본질적으로는 예금자가 은행에 맡긴 돈을 받지 못 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데 대한 대가이다. 은행이 예금자의 돈을 제3자에게 돈을 빌려줌으로써 벌어들이는 이득 덕택에 예금 자는 보관료를 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돈을 받기까지 한다. 하지만 내 돈을 은행이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게 되면 내 돈 의 안전도는 그만큼 줄어든다. 실제로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사람들이 사업에 실패하거나 해서 돈을 못 갚게 될 경우, 은행은 망하고 예금주들은 맡긴 돈을 모두 잃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아울러 최근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마이너스 은행 금리라는 현상을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만일 사람들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려 하지 않으면, 은행은 맡은 돈을 그냥 금고에 쌓아둘 수밖에 없다. 돈을 빌려주지 않는 은행은 사실상 금세공업 자, 즉 돈을 보관해 주는 금고 주인과 동일하며, 예금자들에게 돈 을 보관해 주는 데 대한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 예금주 입장에서 보면 은행에 돈을 맡기면서 돈을 내는 것이니, 마이너스 은행금리인 셈이다. 결국 마이너스 은행금리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 것은 수익이 나는 투자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가 침체하면 마이너스 은행 금리가 발생하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 문이다. 마이너스 은행 금리는 경제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아니라 징후 이다. 독감에 걸렸을 때 나는 열과 같다. 독감에 걸리면 열이 나는 데, 열이 나기 때문에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 때문에 몸 이 아프고 열이 나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인 경기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 게 해야 할까? 독감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것이 바이러스를 퇴치 하기 위한 몸의 작용 가운데 하나이다. 마이너스 은행금리 자체도 유사한 작용을 한다. 마이너스 은행금리하에서 은행에 돈을 맡기면 보관료를 오히려 지불해야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부를 보유하고자 한다. 한 가지 방법은 보관료를 절약하기 위해 집에 현금을 쌓아놓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그 돈을 사용하는 것이다. 돈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 효용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물건을 사서 쓰거나 아니면 은행 예금보다 나은 곳에 투자를 해서 돈을 불리려 할 것이다. 이렇게 돈을 사용하는 것은 수요를 늘리는 행위이다. 생산자가 물건을 팔 수 있게 되고 수익률이 높아져서 경제가 정상화한다. 궁극적으로 투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되어 이자율이 상승하고 마이너스 은행 금리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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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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