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 웨이

경영 2017. 9. 2. 17:42
- 99년 3월 마윈은 50만 위안의 창업자금을 모아 알리바바닷컴을 창업. 이러한 그의 기발한 발상은 나중에야 대다수 벤처투자자들의 인정을 받았는데, 알리바바의 B2B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야후의 포털사이트모델, 아마존의 B2C모델과 이베이의 C2C모델에 이어 전 세계 인터넷의 네번째 비즈니스 모델로 인정받은 것. 99년 10월 마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를 필두로 피델리티 그룹, 싱가포르정부과학기술발전기금과 InvestAB 등 벤처투자기업에게서 500만불의 초기투자금을 지원받음. 2000년 1월에는 손정의가 2000만불을 투자하여 알리바바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손정의가 거액을 투자하고 직접 알리바바의 수석고문을 맡으면서 알리바바와 마윈은 업계에서 점점 명성을 얻었다. 06년 6월,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2.0과 인터뷰하면서 마윈은 "알리바바와 이베이의 싸움은 이미 끝났다. 남은 것은 전장을 정리하는 것뿐이다. 앞으로 10년내에 알리바바는 전 세계 3대 인터넷업체로 발돋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는데, 그러한 자신감은 구체적 수치로 뒷받침된다.
- 알리바바는 99년 창업하여 02년부터 수익을 내기 시작. 거의 빛처럼 빠른 속도로 불가능한 임무를 완수해낸 중국 전자상거래 역사상 최초의 업체였다. 그리고 알리바바가 창안한 이 비즈니스 모델은 아직까지도 B2B시장에서 진정한 경쟁상대가 없이 독주하고 있다. 마윈이 알리바바 창업 초기 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할 때 회사 내부에서는 그다지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 말을 하면서 그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이는 아마도 사람들이 그다지 많이 찬성하지 않는 곳에 진정한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윈의 사고방식이다.
- 이베이의 창립은 마치 한편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95년 오미디야르는 제너럴 매직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페즈 사탕상자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그는 아내가 다른 수집가들과 사탕상자를 교환하고 수집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이베이의 시초. 아내가 이 사이트에서 페즈 사탕상자를 팔고 교환하는 것을 지켜보던 오미디야르는 사람들이 다른 물품에도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을 간파하고는 인터넷에서 물건을 거래하는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곤 곧바로 옥션웹을 제작. 처음엔 에코베이 테크놀로지그룹의 명의를 빌려 컨설팅 작업을 하는 사이트로 등록하려 했으나 당시 echobay.com이란 주소가 이미 등록되어 결국 ebay로 줄여서 등록
- "나는 절대 상대방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관심있게 지켜본다. 상대방이 앞으로 어느쪽으로 갈 것인지 파악하면 그를 앞지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상대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노력해서 목표에 도달한 뒤 위를 쳐다보면 알리바바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 후판화원은 알리바바 발전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 이곳은 마윈이 18명의 창립멤버와 함께 항저우로 돌아왔을 때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알리바바의 창립지이자 마윈의 집이기도 하다. 당시 모든 직원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50만위안의 창업자금을 어렵사리 모았고 일인당 월급은 고작 500위안에 불과했다. 마윈은 후판화원에서 보낸 이 시간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긴다. 그 시절엔 알리바바 직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어느때보다 많이 샘솟았으며 알리바바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 역시 그때 형성되었기 때문. C2C 사이트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시점, 알리바바의 생사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윈이 자신에 대한 신망이 두터웠던 10명을 후판화원의 아파트로 데려온 것은 이 아파트가 그들에게 알리바바 창립시절과 같은 열정과 아이디어 그리고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이베이이취가 시장의 선도자라는 판단에서 타오바오가 취한 행동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시장에서 자신이 약자이고 이베이이취가 선도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 왜냐하면 대중의 머릿속에는 1등기업은 오만하지만 2등기업은 노력파이며 고객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 이를 활용한 대표적 사례로 미국 2위 렌트카 업체인 에이비스를 들 수 있다. 두번째는 이베이의 여러가지 압박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 이렇게 함으로써 타오바오가 이베이이취의 가장 큰 경쟁상대임을 부각시켰다. 즉 시장의 선도기업과 자시자신을 어떻게든 엮어서 두 회사를 항상 같이 떠올리게끔 하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이베이이취를 말할 때 이베이이취를 따라가기 위해 핍박을 견디며 노력하는 2등기업 타오바오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포지셔닝 마케팅이다.
- 타오바오의 전문적인 판매상들, 특히 규모가 큰 판매상들은 예전에 이취에서 성장했거나 03년 이후에 타오바오와 이취에서 동시에 인터넷상점을 운영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취를 포기하고 타오바오로 옮겨온 중요한 이유는 바로 새로 바뀐 시스템환경 때문. 서버를 미국으로 옮기면서 접속시간이 길어지고 반응이 느려져서 사용자들이 불편을 겪었고 웹페이지의 스타일 또한 중국인에게 너무 낯설었다. 아기자기하고 볼거리가 다양한 타오바오의 스타일에 비해 이베이이취의 미국식 스타일은 너무나 간단하고 심심했기 때문.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베이이취는 그들의 잘못된 전략 때문에 회원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모르고 단순히 마케팅을 잘하면 회원유출을 막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 때문에 돈을 더 들여서라도 회원들의 신뢰를 회복하려 했다. 이에 04년 10월부터 이베이이취의 광고가 다시금 대대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주로 텔레비전을 통해서였다.
- 페이팔의 프로세스는 개인대개인 방식으로 구매자의 대금이 직접 판매자의 계좌로 송금됨. 그러나 송금된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없으므로 구매자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음. 이런 모델을 중국시장에 적용한다면 고객들의 공포심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할 것임. 게다가 페이팔 시스템은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되는 등 가입절차가 간편하여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었다. 한번은 국내외의 불법조직과 업체들이 시스템을 이용해 돈세탁을 하여 페이팔도 법원으로부터 벌금 부과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이 있는데도 페이팔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신용카드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신용평가 시스템을 엄격하게 구축하고 있기 때문.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한번이라도 규정을 위반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영원히 페이팔을 이용할 수 없게 됨. 그러나 중국에는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고의로 또는 실수로 판매자를 나쁘게 평가하는 구매자들도 종종 있음.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 한번을 잘못으로 당사자를 영원히 제명시키는 처벌기준을 중국시장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 더욱이 직불카드 위주의 은행카드 소비시장이 형성된 중국에서 카드대카드 이체방식은 현실적이지 못함. 이러한 제반상황을 고려한 마윈은 반드시 중국인의 소비습관에 부합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됨
- 즈푸바오의 거래방식은 다음과 같다. 구매자가 즈푸바오의 가상계좌에 대금을 송금하고 즈푸바오가 판매자에게 입금확인 사실을 통지하면 판매자가 물품을 발송한다. 도착한 물품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구매자는 즈푸바오에 물품수령과 구매확정을 통보한다. 즈푸바오가 구매자의 가상계좌에 예치된 대금을 판매자의 가상계좌로 이체하면 판매자는 은행에서 해당금액을 인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즈푸바오 1.0의 기본기능. 타오바오닷컴 오픈 3개월 후인 03년 10월 즈푸바오는 타오바오의 추천 결제 시스템이 되었다.
- 이베이는 스카이프를 인수한 후에 메신저를 C2C상거래 플랫폼에 포함시켜, C2C+페이팔+스카이프의 결합모델을 선보이려 하는 것인데, 이것은 중국에 있는 이베이의 작은 경쟁사인 타오바오가 구축한 C2C+즈푸바오(안전결제시스템)+왕왕메신저 모델과 동일. 타오바오는 03년 이미 실질적으로 이런 결합모델의 원형을 선보임. 안전결제시스템에서는 이베이가 앞섰지만 중국시장에 늦게 도입했고, 커뮤이케이션 서비스는 타오바오가 먼저 선보였는데, 타오바오의 경우 매우 적은 비용을 들여 자체적으로 자사플랫폼과 잘 어울리는 메신저 서비스를 제공한 반면 이베이는 시간이 한참 지난후 41억불을 들여 한참 잘나가던 스카이프 메신저를 사들임. 41억불을 들여 6000만불의 수익을 내는 회사를 사들인 것은 이베이가 정신이 나갔다고 해석하기보다 야심이 매우 컸다고 봐야 한다.
- 전문가들은 이베이가 스카이프를 인수한 후의 비즈 모델을 다음과 같이 예상
(1) 이베이의 C2C, 페이팔, 스카이프 서비스는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이며, 이 세가지 서비스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전략적으로 어울릴 것
(2) 스카이프는 이베이의 핵심인 C2C전자상거래에 중요한 버팀목이 될 것
(3) 회원공유를 통해 네트워크를 늘려나갈 것. 1억 5천만명에 달하는 이베이 회원들은 스카이프를 통해 교류할 것이며, 5400만명의 스카이프 회원들과 180만명의 유료 회원들도 좀더 쉽게 C2C거래에 참여하며 자연스레 이베이 회원이 될 것임.
(4) 스카이프에 페이팔을 도입한다. 페이팔은 가장 유명한 안전결제 시스템으로 빠르고 편리한 결제서비스를 제공하므로 스카이프의 결제도 좀더 간편해지고 또한 이를 통해 소비를 더 많이 유도하여 스카이프의 수익을 높일 수 있다
- 대다수 사람들은 타오바오가 이베이와 경쟁하기 위해 들고 나온 가장 중요한 무기로 무료정책을 꼽는다. 하지만 마윈과 쑨퉁위 그리고 타오바오와 알리바바의 모든 임직원은 이를 부인함. 특히 마윈은 "물론 무료정책이 없으면 안되겠지만 무료가 절대 만능은 아니다"라고 강조. 그렇다면 타오바오가 승리를 위해 꺼내든 대규모 살상무기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마윈은 주저없이 타오바오의 문화가 바로 승리의 요인이라고 강조. 즉 즈푸카오와 타오바오 왕왕메신저 그리고 독특한 커뮤니티 문화라는 것
- 06년말 이베이이취이 CEO 우스슝이 사퇴하면서 이베이의 중국사업은 흔들거림. 이베이는 곧바로 페이팔의 중국총책임자 랴오광위에게 이취의 CEO를 겸하도록 함. 하지만 이런 조치들은 타오바오를 넘어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베이가 이취를 TOM닷컴에 팔면서 이베이와 타오바오의 경쟁은 막을 내림.
- 잘 돌아가는 회사와 문제가 있는 회사를 비교해보면 전략측면에서는 큰 차이는 없지만 일상적 사무를 처리하는 데는 큰 차이가 있다. 좋은 회사는 시스템적인 관리로 문제를 해결하므로 임직원뿐 아니라 고객들도 명확하게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반면, 나쁜 회사는 문제가 생기면 경영층의 기지나 직원들의 적극적인 대처 등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같은 회사사람이라도 담당자가 아니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름. 하물며 고객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업무 프로세스가 명확한 회사는 지속적으로 이를 보완, 수정할 능력이 있으며 생명력이 넘친다
- 이베이의 최대목표는 이취의 기존회원들은 그대로 끌어안는 것. 해외시장과는 달리 중국의 C2C시장은 처음부터 약간 기형적이어서 회원들이 거래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 실제 거래는 오프라인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국제무역거래에서도 편지봉투에 달러를 끼워 보내는 방법까지 쓰곤 했다. 하지만 당시 이베이의 생각은 너무 순진했다. 타오바오에게 광고나 선전을 하지 못하게 하면 타오바오가 원래 무료라는 사실도 사람들이 모를 줄 알았던 것. 이베이가 원한 것은 기존회원을 잡아두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선택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 외로 타오바오는 강한 생명력을 발휘. 중소규모 사이트와 지하철, 버스에서 유격전을 펼친 마윈의 중국식 지혜를 휘트먼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베이가 유료 서비스를 고집하면서 기존회원들을 붙잡으려 한 것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베이가 유료화 정책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지화에 실패하여 중국시장에서 이베이만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실패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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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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