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를 만든때가 03년. 당시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은 미국 이베이가 잡고 있었다. 그러나 07년 이베이는 타오바오에 밀려 짐을싸야 했다. 중국 사이버 거래의 가장 큰 문제점인 소비자와 제조업체간 불신의 격차를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 중국 소비자는 먼저 결제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제조업체는 돈을 받지 않고 물건을 배송하는 걸 거부. 이 관행에 이베이의 지불결제 시스템인 페이팔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알리바바는 알리페이로 이 문제를 해결. 소비자에게 일단 돈을 받아 쌓아두고, 물건이 배달된 뒤 최종 구매의사를 확인하고 나서 돈이 지불됨. 둘다 만족한 경우라야만 거래가 진행됨. 그러나 이 작은 변형이 타오바오가 이베이를 몰아낸 결정적 힘이었다.
- 중국은 민간이 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맞다 싶으면 국가정책으로 받아들임. 79년 안후이 성 펑양의 한 마을에서 시작된 가정생산책임이 전체 농업의 사영개혁으로 이어졌듯이 말이다. 리커창 총리는 인터넷+를 이야기함. 대중창업 만중창신이라며 창업과 혁신을 강조. 샤오미, 알리바바 등 혁신기업의 발전모델을 국가가 산업정책으로 흡수하겠다는 선언이다. 제조업 선진화 방안을 담은 중국 제조 2025는 그 연장선이다.
- 샤오미의 실체를 물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산업구조의 변화를 읽을 수 있기 때문. 중국산업은 크게 국유사이드와 민영사이드로 양분됨. 중후장대형 산업은 국영기업이, 경공업/IT/부동산개발 등에는 민영기업이 포진. 샤오미의 성공은 민영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의미.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자 일각에서는 여지없이 하드랜딩을 주장함. 그러나 이는 공급과잉, 지방정부 부채 등으로 신음하는 국유사이드만 보아서 비롯된 단견이다. 샤오미, 알리바바, 화웨이, 징둥 등 수많은 혁신형 기업이 활약하는 민영사이드는 전혀 다름. 그곳엔 지금 비온 뒤 죽순이 자라듯 창업열풍이 불고 있다.
- 미국은 화웨이를 간판만 민영일 뿐 내실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통신 스파이기업으로 보고 경계함. 08년 미국의회는 화웨이가 미국 3콤사를 인수하려 할때 이를 저지. 자국의 통신비밀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화웨이가 쟁쟁한 경쟁사를 물리치고 서방시장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은 거스너로 상징되는 외국 컨설팅업체와 협력했기 때문. 자력갱생 전략을 추진한 기술분야와 달리 경영관리 분야는 IBM등 외국 컨설팅 업체에게 배웠다. 인력관리는 헤이그룹, 자금관리는 IBM과 KPMG, 고객관리는 PWC등과 컨설팅 협약을 체결. 지금도 베이징 사무실에는 70여명의 IBM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마오쩌둥과 거스너라는 중체서용식 경영이 화웨이를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킨 셈이다. 이 모든게 사영기업이었기에 가능. 대주주인 정부의 간섭을 받는 다른 국유기업과는 달리 화웨이는 국가지분이 없기에 정부개입에서 비교적 자유로움. 지원은 하되 경영은 하지 않는 국가-기업의 관계다. 이는 중국기업의 새로운 국제화 모델이기도 함
- 중국의 수도 베이징 중관춘에서 부기 시작한 촹커 열풍이 선전과 상하이, 구이저우, 서부 우루무치 등 중국 전역으로 번졌다. 촹커는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 창업자를 의미. 이제 촹커는 중국의 큰손 관광객 유커처럼 중국을 넘어 세계 경제 지형도를 바꾸어 버릴 태세다.
- 촹커들이 이끄는 중국 창업 성장세는 통계로 확인 가능. 14년 중국 신규 벤처 창업자는 291만명. 한국(2만 9910건)의 100수준. 벤처 투자금은 155억 3000만불을 기록해 전년대비 3배 이상 급증. 같은 해 한국의 벤처투자 1조 6399억과 비교하면 15배 이상이다. 중국에서 촹커열풍이 가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규제가 덜한 데다 지원을 퍼붓는다. 실제로 정부는 촹커를 육성하려고 15년 초 400억 위안(약 7조)에 달하는 창업기금을 조성했음. 둘째, 중국경제동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 인프라, 부동산 위주의 과거 성장모델이 힘을 잃은 대신 스마트폰, O2O 기업 등 스타트업이 경제동력으로 부상. 셋째, 마윈, 레이쥔 등 중국 토종 촹커의 성공스토리도 촹커 현장에 불을 지폈다. 하니까 되더라는 자신감도 충만. 중국 촹커 세대에 창업은 밥벌이이면서도 즐거운 창조놀이였다. 한국에서 창업하면 카페, 치킨집을 떠올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이다. 풍부한 인적자본, 14억 내수시장, 여전히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제조능력, 외국기업에 대한 확실한 진입장벽, 실패도 용인하는 창업문화까지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뭉쳐 창업국가 중국을 실현했다.
- 중국교육보는 촹커가 부드럽게 교육을 바꾸고 있다고 보도. 혁신은 과거엔 서규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젠 중국 촹커가 혁신의 맛을 알게 됐다. 자유롭게 창업하고 실패했다 다시 일어서는 촹커들이 성적 지상주의인 중국의 교육풍토마저 바꾸고 있다. 중국 창업교육의 특징은 창업은 배움의 과정이니까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 한국에선 창업하다 망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어려운 구조지만 중국에서는 촹커들의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있고 초기실패를 오히래 장려하기도 함. 대학생이 창업했다 도산하면 학생과 관련자가 모여 그간의 창업활동을 평가하고 때로는 부채 일부는 전액을 감면해주기도 함
- 일대일로는 EBC(Everyone but China, 중국을 제외한 모두)라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대한 중국의 반발고 같다. 중국은 TPP에서도 배제됐다. 미국은 태 평양 지역의 모든 국가에 문을 열었지만 중국은 차단했다. 중국은 이를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으로 해석한다. 이를 돌파하려고 나온 대응책이 바로 일대일로다. 중국은 태평양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미국의 힘을 피해 서쪽으로, 또 남쪽으로 달려가려고 한다. 북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남쪽으로는 동남아, 서남아, 아프리카 동부 등을 지나 유럽에 이른다. 약 60여 국가가 대상이다. 굳이 표현하면 EBA(Everyone but America) 즉,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다. 서방 전문가들은 일대일로에 숨어 있는 중국의 패권의도를 경계함. 주변국에 정치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시각이다. 남중국해에서 일어난 중국과 주변국 충돌은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충분이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중국이 미국의 아시아 균형전략에 위협을 느기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한국, 대만, 필리핀, 호주, 인도, 심지어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친미성향이 강한 나라가 중국을 동남쪽에서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이 그물망을 뚫기 위해 중국은 서쪽으로, 또 남쪽바다로 나온다. 동쪽에서 국민당에 쫓긴 공산당이 서쪽으로 대탈출을 감행했던 대장정이 연상된다.
- 중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것. 성장속도가 누그러지면서 지나친 투자로 과잉설비, 과잉생산, 과잉공급의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짐. 국내에는 더이상 투자할 곳이 없고 부동산에 손을 댔다가는 버블이 터질 위험이 크다. 외환보유액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경제와 무역규모를 감안한 적정액(약 1조 7천억불)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이런 국내사정으로 중국경제가 당면한 과제는 이제 과잉시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분산하고 새로운 투자처를 찾을 것인가 하는 것. 그 돌파구가 바로 일대일로다. 중국의 상품과 자금을 해외로 분산하자는 의미. 그동안 중국의 성장은 투자에 의존했음. 중국은 SOC건설이 어떻게 국가경제를 끌어올리는지 경험한 신흥국이다. 지금 그 노하우를 수출하겠다는 것. 노하우뿐 아니라 철강, 시멘트, 공작기계 등 흘러 넘쳐나는 관련제품도 함께 내보댄다. 주변국의 경제가 성장하면 시장이 생기고, 결국 중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
- 49년 건국과 함게 시장된 마오쩌둥의 30년 치세는 차이나 1.0의 시기였다. 계급투쟁이 모든 걸 지배하던 시기. 마오는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발전을 계급투쟁으로 보았다. 그렇게 시작된게 대약진 운동이고, 수천만명이 굶어죽고 나서야 모험은 끝났다. 대약진 운동실패의 책임을 지고 잠시 물러났던 마오쩌둥이 권력을 되찾는 과정에서 터진 게 바로 중국사회를 10년 동안이나 갈가리 찢어놓은 문화대혁명이다. 차이나 1.0을 투쟁의 시기로 부르는 이유다. 덩샤오핑이 열고 장쩌민, 후진타오 주석이 이어받은 차이나 2.0은 제조의 시기. 덩샤오핑은 경제를 계급투쟁이 아닌 비교우위의 관점에서 보았다. 농촌과 도시 뒷골목에서 빈둥대던 노동자를 공장으로 끌어냄. 2001년 WTO가입으로 이들 6억 노동자은 하루아침에 서방경제 시스템에 편입됨. 세계 공장이 돌기 시작한 것. 세계 2위 경제대국이 차이나 2.0의 성적표다. 시진핑-리커창 체제가 등장하며 중국은 차이나 3.0으로 진입. 빈부격차, 공급과잉, 지방정부 부채 등 새 지도부가 직면한 경제현실은 어느 것 하나 녹록치 않다. 성장만이 살길이다며 달려온 2.0 시대에 잉태됐던 고질이다. 문제의 밑바닥에 3개 균형의 상실이 있다. 성장은 지나치게 투자에 의존하고, 기업은 내수보다는 해외시장에 기대고 있다. 국유체제가 부를 독점하면서 민간부문은 축 늘어졌다. 신창타이는 그동안 성장과정에서 잉태한 문제점을 해결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성장이 다소 늦더라도 왜곡된 경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
- 중국은 이제 탈아시아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 지난 30여년 중국의 산업협력파느터는 일본,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였다. 이들 나라에서 생산한 부품을 중국에서 조립해 미국, 유럽에 파는 분업구조였다. 그러나 기술수준이 높아진 중국기업이 부품을 국내에서 조달하면서 이 구조는 깨지고 있다. 생산대국 중국과 기술강국 독일이 손을 잡는다면 중국 경제의 탈아추세는 더 가속화할 것임. 중국과 주변 아시아 기업은 협력, 분업이 아닌 경쟁대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뒤진 기업은 시장에서 보따리를 싸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한국기업과 직결된다는 것. 산둥성 옌타이에 공장을 두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는 2010년까지만 해도 중국 굴착기 시장의 약 15%를 차지하는 최강자였다. 그해에 2만대 이상을 판매. 그러나 현재 시장점유율은 절반수준. 현지 기업의 약진 때문이다. 특히 건설분야 대표기업인 싼이 중공업에 밀렸다. 2010년 6.6%였던 이 회사 시장 점유율은 지금 약 17%에 달한다.
- 09년에서 10년사이 은행에서 푼 돈 약 18조 위안 중 70%가 부동산 및 사회간접자본시설 개발에 몰림. 주인없는 돈, 먹는 놈이 임자였다. 장쩌민 시절에는 그래도 관 100개를 준비해라. 그중 하나는 내것이다. 라며 부패를 때려잡은 주룽지 전 총리가 있었기에 관리들은 눈치를 봐가며 해먹었다. 그러나 후진타오 시기에는 개혁의지가 흐트러지면서 부패는 일상이 됐다. 정부관리든, 국유기업 관리자든 못 먹는 놈이 바보였다. 덩샤오핑이 다시 살아나 지금 경제를 본다면, 이게 아니라고 혀를 찼을 것이다. 덩샤오핑에서 장쩌민, 후진타오에 이르는 시기의 중국경제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성장 이면에는 이같은 경제불균형이 자리잡고 있었다. 수출과 투자에 의존하면서 내수시장은 쪼그라들었다. 부동산 시장은 걸핏하면 투기와 버블로 홍역을 앓았고, 온갖 부패가 기생. 무리한 개발로 환경파괴는 감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음. 기업은 부자가 됐는데도 노동자는 낮은 임금에 시달려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제조의 시기 중국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다. 중국지도자들은 무엇을 만드는 경제로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뜻있는 지식인은 무엇인가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11년 11월 시진핑이 당권을 장악하고 권력최고정점인 당 총서기에 올랐다.
-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은 두차례의 중국붐을 경험. 1차 붐은 수교원년인 92년부터 97년까지 6년여간 진행. 당시 양국 교역은 막힌 봇물이 터지듯 크게 늘면서 연평균 약 32%의 신장률을 기록. 2차붐은 01년말 이뤄진 중국의 WTO가입을 계기로 비롯됌. 중국 수출이 급증하면서 중간재를 위주로 한 수출도 덩달아 증가. 01~05년 양국 교역은 연평균 33.7% 증가. 그러나 07년 이후 하강세에 접어들었다. 한국경제의 한 동력이던 차이나 팩터가 힘을 잃어갔다.
-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면 부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수축기임. 기업이 돈을 벌어 빚을 갚기가 더 힘들어지고 있다. 스위스연방은행은 상하이와 선전 증시에 상장된 1391개 A주 기업을 대상으로 수익성을 조사. 자료에 다르면 2015년 3분기 수익은 전년 동기보다 16% 떨어진 것으로 나타남. 2010년 이후 최악의 실적이다. 특히 에너지, 자본재, 원자재 등의 영역은 훨씬 상황이 심각. 철강분야의 기업 70%와 석탄분야 절반이상의 기업은 이자보상비율이 1배에도 미치지 못함. 원금 상환은 고사하고 이자를 갚기도 어렵다는 이야기. 그 이후 상황이 나아졌다는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 서방 일각에서는 중국의 금융위기설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들의 주장은 분명하다. 지금 중국의 민간분야 부채수준은 다른 나라의 위기때보다 비슷하다는 점. 중국의 민간부채는 15년 9월말 현재 GDP대비 약 200%(가계부채 38%, 기업부채 162%)에 달하고 있음.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으로 접어들었던 90년께의 부채와 비슷한 수준. 97년 위기에 휩쓸린 태국의 당시 부채보다 높고,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던 07년 미국보다도 높다. 그러니 중국도 결국 위기로 빠져들 것.
- 중국경제는 경착률할 것인가? 부동산 버블, 그림자금융, 설비과잉, 주가폭락, 환율불안 등 위기요소는 많다. 모두 정부의 무리한 정책이 야기한 시장 왜곡에서 비롯된 것. 경착륙 여부는 정부와 시장이 조화롭게 발전할 것이냐, 아니면 충돌할 것이냐에 달려 있음. 결과를 단언하기는 힘들다. 다만 분명한 것은 경착륙한다면 그것은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될 공산이 크다는 점.

'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0.1밀리미터의 혁신  (0) 2017.09.03
마윈 웨이  (0) 2017.09.02
홀라크라시  (0) 2017.08.20
약자의 전략  (0) 2017.08.15
중국속으로  (0) 2017.08.02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