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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2023. 5. 31. 15:50

- 대다수의 과학자가 유전자에 포함된 생물학적 정보에 관심이 있는 데, 같은 정보를 담고 있는 DNA 서열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차이는 게놈을 복제할 때 일 어나는 무작위 오류 때문에 생기고(이것을 돌연변이라고 한다), 돌연변이가 있다는 것은 과거 어느 시점에 이런 오류가 일어났음을 나타낸다. 유전 학자들은 유전자와 정크 DNA 모두에서 문자 1000개당 하나 꼴로 일어 나는 이런 차이를 조사해 과거에 대해 알아낸다. 친족 관계가 아닌 두사 람의 게놈 사이에는 보통 30억 개 문자 가운데 300만 개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돌연변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일정한 속도로 축적되므로 어떤 단편에서든 두 게놈 사이의 차이가 클수록 그 단편이 공통 조상의 몸 안 에 있었던 시점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경과한 것이다. 따라서 차이의 정 도는 과거에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뒤로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기록하는 생물학적 스톱워치인 셈이다.
- 리처드 클라인 Richard Klein은 우리 현생인류가 행동의 측면에서 그 이 전 인류와 뚜렷하게 달라진 이유를 유전자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 각한 가장 유명한 인류학자다. 그의 '유전자 스위치설'에 따르면, 약 5만 년 전 이후 현생인류다운 행동이 만개한 아프리카의 후기 석기 혁명과 서유라시아의 후기 구석기 혁명은 뇌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 어느 유전 자에 발생한 한 돌연변이의 빈도 증가 때문이었다. 그런 유전적 변화가 혁신적인 석기 제작과 복잡한 행동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클라인의 가설에 따르면, 이 돌연변이의 빈도가 증가한 것은 개념적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 같은 인류의 뛰어난 몇몇 형질의 바탕이 되었다. 클라인은 그 돌연변이가 있기 전에는 현생인류다운 행동이 불가능했다
- 다른 종에도 소수의 유전자 변화가 큰 형질 변화를 초래한 예가 있다. 예컨대 멕시코의 야생 테오신트teosinte"에 달리는 작은 이삭 이 오늘날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사 먹는 큰 옥수수자루가 되기 위해서 는 다섯 개의 변화만 일어나면 된다.
클라인의 가설은 발표되자마자 강한 비판을 받았다. 고고학자 샐리 맥브리어티Sally McBreaty와 앨리슨 브룩스Alison Brooks의 비판이 가장 잘 알 려져 있는데, 이들은 클라인이 현생인류다운 행동의 특징으로 간주한 거의 모든 형질이 후기 구석기 또는 후기 석기 시대로의 이행기보다 수 만년 전에 아프리카와 중동의 고고학 기록에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지 적했다." 하지만 새로운 행동이 전혀 없었다 해도 클라인의 가설은 일 리가 있었다. 현생인류다운 행동의 증거가 5만 년 전 이후로 점점 증가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런 증거는 "거기에 생물학적 변 화가 관여했는가"라는 질문을 낳기 때문이다.
- 그러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어디서 만나 교잡하여 유럽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뉴기니까지 확산한 집단을 야기했을까? 고고학자들은 중동에서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13만 년 전에서 5만 년 전 사이에 우세한 집단으로서의 지위를 맞바꾼 일이 적어도 두 차례 있었음을 밝혀냈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두 집단이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이렇게 중동에서 교잡이 일어났다고 생각 하면 유럽인과 동아시아인이 공통으로 네안데르탈인 DNA를 물려받은 사실이 설명된다.
- 프리카 기원설의 주장도 전부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 손에는 현재 '종합'이 있다. 이는 고대 DNA를 바탕으로 네안데르탈인과 현 생인류 사이의 유전자 흐름을 밝혀냄으로써 얻어낸 견해다. 이 견해는 '주로 아프리카 기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설을 지지하는 동시에 네안 데르탈인과 친밀하게 교류한 것이 틀림없는 현생인류의 문화에 대해 심 오한 의미가 있는 사실도 밝혀낸다. 유전학 데이터를 통해 아프리카 외 지역의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전 세계를 휩쓴 집단의 자손이라 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 교잡이 있었다는 것도 알려졌다. 이 사실은 우리 조상들과 그들이 만난 구인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우리와 비슷했고, 아마 우리가 현생인류 특유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행동 다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화적 교환이 있었음이 틀림없고, 그에 따라 교잡도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만남을 그린 윌리엄 골딩과 진 아우얼의 소설은 역사를 제대로 본 것이었다. 또한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이 비아프리카인에게 전달한 생물학적 유산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데니소바 동굴에서의 발견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이주하는 동안 구인류와 교잡한 것이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라는 두 구인류 집단 에서 채취된 DNA가 시퀀싱되었는데 두 데이터 모두에서 현생인류와 구인류 사이에 있었던 이제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교잡이 확인되었 다. 다음에 새로 발견되는 구인류 집단의 DNA를 시퀀싱하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교잡이 더 밝혀질지도 모르는데 그렇다 해도 뜻밖의 일은 아닐 것이다.
- 현생인류와 교잡한 네안데르탈인은 우리가 시료를 채취해 시퀀싱한 네안데르탈인과 대단히 가까운 관계였다고 추측되는 반면 뉴기니인의 조상과 교잡한 구인류는 시베리아 데니소바인과 그 정도로 가까운 관계 가 아니었던 것 같다. 현대 뉴기니인과 오스트레일리아인의 게놈을 살 펴보면서 이 현대인들과 시베리아 데니소바인 사이에 DNA 문자의 차 이가 몇 개인지를 세는 방법으로 그들의 조상이 공통조상 집단에서 분 기한 시기를 추측해보았다. 차이의 개수는 게놈의 모든 부위에서 집단 분기가 적어도 40만 년 전에서 28만 년 전에 일어났을 경우에 예상되는 값을 나타냈다.'' 즉, 시베리아 데니소바인의 조상이 뉴기니인 DNA에 기여한 데니소바인 계통에서 분기한 시점은 데니소바인의 조상이 네안 데르탈인과 분리된 시점을 향해 3분의 2쯤 거슬러 올라간 시점이었다. 데니소바인의 두 집단은 그들의 유전학적 관계가 서로 가깝지 않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 다른 적응 형질을 가지고 엄청나게 다른 기후에서 번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데다 집단들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현대인 집단들 사이의 간격보다 훨씬 크다는 점 을 고려하면, 데니소바인을 하나의 폭넓은 인류 범주로 보는 것이 합리 적이다. 그중 한 가지가 뉴기니인과 교잡한 고대 집단의 조상이 되었고, 또 하나가 시베리아 데니소바인이 되었다. 우리가 아직 표본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데니소바인 집단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네안데르탈인도 이 광범위한 데니소바인 계통의 일원으로 간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 많은 계통과 교잡이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온 아프리카가 인류 진화의 모든 대규모 사건의 진원지였다는 대전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골격 증거를 보면 아프리카가 200만 년 전 이전의 인류 진화에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 은 확실하다. 호모 속보다 수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던 직립 보행 유인원이 발견된 이래로 그것은 상식이 되었다. 또한 현생인류의 해부학적 특징을 지닌 적어도 30만 년 전 골격이 아프리카에서 발견되 고, 최근 5만 년 사이에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확산이 있었다는 유전학적 증거가 나오면서 해부학적 현생인류 탄생에 아프리카가 중심적 역할을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하지만 200만 년 전과 30만 년 전 사이의 기간은 어떨까? 이 시기의 대부분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류 골격이 유라시아에서 나온 인류 골격에 비해 현생인류와 명백하게 더 가 깝다는 증거가 없다.  우리 계통이 200만 년 전 이전과 30만 년 전 이후 에 아프리카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항상 그곳에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견해가 지난 20~30년 동안 힘을 얻었다. 하지만 유라시아는 풍요롭고 다양한 거대 대륙이므로 현생인류에 이르는 계통이 상당한 기 간 동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아프리카로 돌아갔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간은 어떨까? 이 시기의 대부분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류 골격이 유라시아에서 나온 인류 골격에 비해 현생인류와 명백하게 더 가 깝다는 증거가 없다.  우리 계통이 200만 년 전 이전과 30만 년 전 이후 에 아프리카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항상 그곳에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견해가 지난 20~30년 동안 힘을 얻었다. 하지만 유라시아는 풍요롭고 다양한 거대 대륙이므로 현생인류에 이르는 계통이 상당한 기 간 동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아프리카로 돌아갔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 5만 년 전 이전의 유라시아는 활기 넘치는 장소였다. 적어도 180만 년 전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인류 집단이 도착했다. 이런 집단 들은 자매 집단으로 갈라지고, 다양화하고, 서로 교잡하고, 새로 도착한 집단과 교잡했다. 이런 집단 대부분은 머지않아 절멸해 적어도 '순수한 형태로는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골격과 고고학 증거를 통해 현생인류 가 아프리카를 나오기 전에 매우 다양한 인류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대 DNA가 추출되어 분석되기 전에는 유라시아가 아프리카 에 필적하는 인류 진화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서유라시아에서 만났을 때 교잡했는가"를 둘러싼 열띤 논쟁은 쓸데없이 앞서 나간 것처럼 보인다. 현재 이 논쟁은 오늘날 살아 있는 수십억 명의 DNA에 기여한 교잡이 있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유럽은 유라시아에서 튀어나와 있는 작은 반도에 지나지 않는다. 수십만 년 전 서로 갈라진 시베리아 데니소바인, 오스트랄로 데니소바인,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적어도 세 집단의 DNA 서열 을 통해 이미 밝혀진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폭넓은 다양성을 고려하면, 이 집단들을 유라시아라는 광대한 지역에 살고 있었던, 헐거운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고도로 진화한 구인류 가족의 일원으로 보는 것이 옳다.
- 2013년 말 에스케 빌레르슬레우 Eske Willersley와 공동 연구자들은 약 2 만 4000년 전 시베리아 남부 중앙 말타에 살았던 소년의 뼈에서 얻은 게 놈 데이터를 발표했다. 말타 소년의 게놈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에 대해 가장 강력한 유연관계를 보였지만, 오늘날 그 지역에 사는 시베 리아인과는 가장 약한 유연관계를 보였다. 고대 북유라시안이라는 유령 집단에 대해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말타 소년의 게놈은 현재 고대 북유라시아인의 원형 표본이 되었다. 고생물학자들은 과학 문헌에서 새 로 발견된 집단을 정의하는 기준으로 쓰이는 개체라는 의미에서 이를 '기준표본'이라고 부른다.
말타 소년의 게놈이 손에 들어오면서 퍼즐의 다른 조각들도 맞추어 졌다. 이제 현대인 집단을 가지고 먼 과거에 일어난 일을 복원할 필요가 없었다. 유령 집단에서 직접 채취한 게놈으로 수만 년 전의 이주와 집단 교잡을 마치 최근 역사를 분석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말타 소년의 게놈으로 해낸 일은 내가 아는 한, 그전까지는 현대인의 데이터를 가지고 어림짐작만 할 수 있었을 뿐인 과거를 생생히 밝혀내는 고대 DNA의 힘을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다.
말타 소년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 DNA의 약 3분의 1이 고대 북유라시아인에게서 왔고 나머지는 동아시아인에게서 왔다 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 대규모 교잡 사건은 왜 유럽인이 유전적으로 동아시아인보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더 가까운지 설명해준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동아시아인 관련 계통과 서유라시아인 관련 계통의 교잡에서 생긴 집단의 자손이라고 주장한 우리의 미발표 논문은 옳았다.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 논문은 빠르게 변화하는 고대 DNA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추월당했다. 빌레르슬레우와 공동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은 현대인 집단에만 의존해야 했을 때 가능했던 연구를 훌쩍 뛰어넘었다. 우리는 다른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었기 때 문에 아메리카 원주민이 집단 교잡으로 탄생했음을 증명할 수 없었지 만, 빌레르슬레우팀은 그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그 교잡 이 더 큰 이야기의 일부였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 오늘날 아프리카 외부의 큰 집단들 가운데 여러 개가 많은 교잡의 산물이라는 발견은 과학자 대부분이 예상한 것과 달랐다. 게놈 혁명 이전에는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우리가 오늘날 보는 집단들, 즉 유전적으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큰 집단은 먼 과거의 분기를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의 큰 집단 자체가 더 오래전 존재했던 매우 다른 집단의 교잡에서 생긴 것이다. 우리는 그 이후 우리가 분석한 모든 집단 에서 비슷한 패턴을 포착했다. 동아시아인, 남아시아인, 서아프리카인, 남아프리카인, 모두 마찬가지였다. 인류의 과거에는 나무의 몸통에 해 당하는 단 한개 집단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계속 교잡이 있었다. 
- 이렇게 매우 다른 집단들이 융합해 지금의 서유라시아인이 되었음 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증거가 바로 푸른 눈, 흰 피부, 금발 같은 북유럽 인의 전형적 모습이다. 고대 DNA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8000년 전 무 렵 서유럽의 수렵채집인은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피부가 검었고 머리카락도 짙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에는 보기 드문 조합이다.  유럽 최초의 농경인은 대체로 피부색은 밝았지만 검은 머리카락에 갈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럽인의 흰 피부는 이주해 온 농경인에 게서 유래한 것이다. 유럽인의 금발을 만든다고 알려진 돌연변이의 가 장 오래된 사례는 시베리아 동부의 바이칼 호수 지역에서 발견된 1만 7000년 전 고대 북유라시아인이다. 오늘날 중앙유럽과 서유럽에는 이 돌연변이가 수억 개 존재하는데, 그 기원은 고대 북유라시아인의 DNA 를 가진 사람들의 대규모 이주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예로부터 많은 학자들이 인종이라는 개념을 비판해왔지만 확실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고대 DNA 혁명 덕분에 유령 집단이 퍼져 나가며 다른 집단과 교잡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놀랍게도 그런 비판이 재점화되고 있 다. 1만 년 전에서 4000년 전 사이까지 서유라시아의 유전적 단층선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이 고대 DNA 혁명으로 증명되면서 인 종이라는 지금의 분류는 생물학의 '순수한 기본 단위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늘날의 인종 분류는 최근의 현상으로, 그 기 원은 반복적으로 일어난 교잡과 이주에 있다. 고대 DNA 혁명으로 밝혀 진 사실들은 교잡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교잡은 지금의 우리를 이루는 근본적인 바탕이므로 교잡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하 지 말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 고대 DNA 혁명은 우리에게 한 가지 큰 교훈을 준다. DNA 분석 결 과가 들려주는 인간의 이주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항상 기존 모델과 매 우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이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인간의 이주와 집단 형성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게 하는 것이다. 인도유럽인, 즉 '아리아인'을 '순혈' 집단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19세기 이래 유럽에서 민족주의 감정을 유발해왔다. 진정한 '아리아 인'은 켈트인인가, 튜턴인인가 아니면 또 다른 집단인가를 둘러싼 논쟁 이 오갔고 이런 논의는 나치의 인종주의를 부채질했다. 유전학 데이터 는 이 가설들 가운데 일부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여 불편한 기분이 들 지도 모른다. 유전적으로 비슷한 집단 하나가 인도유럽어 다수를 퍼뜨 렸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데이터는 또한 그런 초기 논의가 계통의 순수함을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도 보여준 다. 처음 인도유럽어를 사용한 사람들이 중동에 살았든 동유럽에 살았 든 인도유럽어를 광대한 지역으로 퍼뜨린 주된 집단인 얌나야인은 교잡 으로 형성되었다. 매듭무늬 토기 문화를 시행한 사람들은 더 교잡한 사 람들이었고 벨 비커 문화와 관련 있는 북서유럽인들은 거기서 더 교잡 한사람들이었다. 고대 DNA는 매우 다른 집단들 사이의 대규모 이주와 교잡이 인간의 선사 시대를 만든 중요한 힘임을 입증했다. 순혈 신앙으로의 회기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는 엄밀한 과학에 역행하는 것이다.
- 강한 집단 병목을 경험한 유럽인 계통의 집단 아슈케나지계 유대인, 핀란드인, 후터파 신도, 아마쉬파 신도, 사그네락생장Saguenay-Lac-St.-Jean 지역의 프랑스계 캐나다인 등은 의학 연구자들의 영원한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집단의 창시자가 우연히 가지고 있던, 질병을 유발하는 드문 돌연변이의 빈도가 병목으로 인해 극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부모 중 한쪽에서만 한 개를 물려받는 경우 무해한 돌연변이(질병을 일으키기 위 해서는 두 개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열성 유전된다고 말한다)를 부모 양쪽에서 물려받으면 치명적인 병에 걸릴 수 있다. 그런데 집단에 병목이 일어나 그런 돌연변이의 빈도가 증가하면 집단 내 개인들이 양쪽 부모로부터 같은 돌연변이를 물려받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예컨대 아슈케나지 계 유대인에서는, 뇌가 변성되어 생후 수년 내에 사망하는 테이-삭스병 이라는 심각한 질병의 발생률이 높다. 내 사촌 중 한 명도 젤위거증후군 이라고 불리는, 아슈케나지 창시 집단의 질병 탓에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사망했고, 어머니의 사촌 중 한 명은 릴리데이증후군, 즉 가족성 자율신 경실조증이라는 또 다른 아슈케나지 창시 집단의 질병 탓에 젊은 나이 로 사망했다. 이런 질병이 수백 개나 확인되었고 그것에 관여하는 유전 자가 아슈케나지계 유대인을 포함해 유럽인 창시자 집단에서도 확인되 었다. 이런 발견은 중요한 생물학적 통찰을 불렀고 몇몇 사례에서는 손 상된 유전자의 영향을 상쇄하는 약이 개발되기도 했다.
인도에는 물론 강한 병목을 겪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 수가 훨씬 많 다. 그 이유는 인도라는 나라가 인구가 엄청날 뿐 아니라 자티 집단 약 3 분의 1이 아슈케나지계 유대인 또는 핀란드인에서 일어난 것과 동일하거나 더 강한 병목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인도인 집단에서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는다면 수천 가지 질병에 대한 위험인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체계적으로 조사한 적이 없음에도, 그런 예가 이미 몇 가지 알려져 있다. 예컨대 바이샤 계급은 수술 전 투 여되는 근이완제에 반응해 장기간 근육 마비를 일으키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인도 의사들은 바이샤 계통 사람들에게 이 약제를 투여하지 않 는다. 그 증상은 바이샤 일부에서 부틸코린에스테라제라는 단백질 농도 가 낮아서 생기는 것이다. 유전학 연구 결과 그런 증상은 열성 유전되는 돌연변이 탓임이 밝혀졌는데 바이샤는 약 20퍼센트 빈도로 그 돌연변이 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인도인 집단에서보다 상당히 높은 비율이므 로 아마 바이샤의 창시 집단 중 한 명이 그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을 것 이다. 40 20퍼센트라는 빈도는 꽤 높은 편으로 바이샤의 약 4퍼센트는 유 전자 두 개 모두에 돌연변이를 포함하고 있어서 마취를 받으면 불행한 반응을 일으킨다.
-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현생인류와 교잡한 시점 사이의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계통 분기가 빠르게 연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은 현 생인류가 유라시아 전역에서 자신들의 기술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확산 할 수 있는 모든 환경으로 차례차례 이동하면서 이미 살고 있던 집단을 대체했음을 암시한다. 구인류는 이미 200만 년 가까이 유라시아에 거주 했고 데니소바인과 교잡한 증거로 미루어 현생인류가 확산할 때도 그곳 에 있었다고 추정되지만, 너무 빠르게 확산한 현생인류에게 맞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설령 그 이전의 초기 현생인류가 남쪽 길을 경유하여 동아시아로 확산했다 해도 그들 역시 그 후 이주한 현생인류에 의해 대체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현대인의 계통에 매우 낮은 비율밖 에는 기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아시아에서도 현생인류의 아 프리카와 중동 밖으로의 확산은 서유라시아에서 그랬듯 칠판을 지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즉, 자신들을 위한 '빈 서판'을 창조한 것이다. 유라시아의 오래된 집단들은 붕괴했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집단들이 들어와 유라시아 대륙을 빠르게 점유했다. 현재의 동아시아인에게는 이런 초창기 집단에서 유래한 DNA의 실질적인 유전학적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
- 오스트로네시아어의 확산은 동아시아 심장부에서 주변부로 농경인 이 이동한 일을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사례다. 오늘날 오스트로네시 아어는 멀리 떨어진 태평양의 수백 개 섬들을 포함해 광대한 지역에 걸 쳐 퍼져 있다. 고고학, 언어학, 유전학 데이터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추정해볼 수 있다. 약 5000년 전 동아시아 본토의 농경이 대만으로 확산 했다. 대만에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가장 오래된 가지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농경인들이 남쪽으로 확산해 약 4000년 전 필리핀에 도달 했고 그런 다음 더 남쪽에 있는 뉴기니와 그 동쪽의 작은 섬들에 도달했 다. 43 대만에서 확산할 무렵 그들은 거친 물살 속에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측면에 통나무를 받친 배인 아웃트리거 카누를 발명해 외해를 항 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3300년 전 이후 '라피타'라 불리는 양식의 토기를 제작하는 고대인들이 뉴기니 동쪽에 출현했고 곧이어 태평양으로 더 멀리 확산하기 시작해 빠른 시간 내에 뉴기니에서 3000킬로미터 떨어진 바누아투에 도달했다. 거기에서 통가섬과 사모아섬을 포함해 폴 리네시아 서부의 섬들로 확장하는 데는 겨우 몇 백 년이 더 걸렸을 뿐이 고 그런 다음 1200년 전 무렵까지 오랜 휴지 기간을 보낸 후 800년 전에 는 태평양 최후의 거주 가능한 섬들인 뉴질랜드, 하와이, 이스터섬까지 도달했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 서쪽으로 확산한 일도 마찬가지로 인 상적인데, 이들은 적어도 1300년 전에는 필리핀 서쪽으로 9000 킬로미 터 떨어진 아프리카 연안의 마다가스카르에 도달했다. 현대의 거의 모든 인도네시아인은 물론, 마다가스카르 사람들도 오스트로네시아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이것으로 설명된다. 
내 연구실의 마크 립슨은 오늘날 오스트로네시아어를 사용하는 사 람들 거의 모두에 나타나는 어떤 유형의 DNA를 추적 마커로 사용하면 이 어족의 확산을 추적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립슨은 이 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현대인 거의 모두는 동아시아 본토의 어느 집단보다 대만의 원주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집단에서 유래한 DNA를 적어도 일부 가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이 결과는 오스트로네시아어의 확산이 대만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 십중팔구 틀린 오래된 믿음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우리 자신이 놓이는 위치 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게놈 혁명에는 정체성에 관한 오래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정체 성의 새로운 토대를 세우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 바로 인류 역사에 교잡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음을 밝힘으로써 민족주의 를 떠받치기 위해 이용된 거의 모든 생물학적 논증을 파괴한 것이다. 인 도유럽어를 사용하는 '순혈' 아리안 민족이 독일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 음을 매듭무늬 토기 문화가 남긴 인공물을 통해 추적할 수 있다는 나치 의 이데올로기는 그 인공물을 사용한 사람들이 실은 러시아의 스텝에서 대규모로 이주했음이 밝혀지면서 산산조각 났다. 독일 민족주의자들에 게 러시아의 스텝은 경멸의 대상이었고 따라서 그곳을 민족의 발상지로 본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또한 남아시아 외부에서 온 이주자들이 인도 문화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힌두 지상주의 이데올 로기는 현대 인도인 계통의 대략 절반이 지난 5000년 이내에 이란과 유 라시아 스텝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대규모로 이주한 사람들에게서 비롯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붕괴했다. 마찬가지로 르완다와 부룬디 의 투트시족은 서유라시아 농경인에게서 DNA를 물려받았지만 후투족 은 그렇지 않다는 대량 학살의 논거로 이용된 사고방식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우리는 현대의 거의 모든 집단이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에 걸 쳐 반복된 집단 교잡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다. 교잡은 인류의 본성이므 로 어떤 집단도 '순혈'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 고대 DNA 연구는 병원체의 진화에 대해서도 밝혀내고 있다. 인간의 유해를 갈면 때때로 그 개인이 사망할 당시 혈류에 있던 미생물의 DNA가 나오는데, 그 미생물이 유해의 사망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미생물 DNA를 분석한 결과 페스트균이 14~17세기까지 유행한 흑사병,146~8세기 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15 약 5000년 전 이후 유라시아 스텝의 무덤들에서 발굴된 개체 중 최소 7퍼센트의 사인 이 된 역병 ''의 원인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또한 고대 병원체 연구를 통 해 고대 한센병, 결핵' 그리고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을 초래한 식물의 병의 역사와 기원도 밝혀졌다. 고대 DNA 연구에서는 현재 치석과 대변을 포함해 인체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서 분석 시료가 일상적으로 채 취되고 있고 이는 우리 조상들이 먹은 음식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새로운 정보원은 이제 막 채굴되기 시작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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