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협력한다

과학 2023. 3. 9. 19:49

- "어떤 방에서 당신이 가장 똑똑하다면, 당신은 방을 잘못 찾은 것이다."(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우리에게는 생동하는 지구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인간의 교만함이 우습다. 힘없는 자의 수사학이나 마찬가지다. 지구가 우리를 돌보고 있는 것이지, 우 리가 지구를 돌보는 것이 아니다. 반항하는 지구를 길들인다거나 병든 지구 를 치유한다는 우리의 오만한 도덕적 계율은 그저 인간의 끝을 모르는 자기기 만 능력을 보여줄 뿐이다. 사실상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 해야한다.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인간이라는 종 특유의 거만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인간이 다른 모든 종을 위해 유일하게 선택받아 만들어진 종이라는 증 거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힘이 있고, 수가 많고, 위험하다고 해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종이라는 생각도 잘못됐다. 스스로를 신이 특별히 만든 존재라 는 인간의 착각은 그저 직립보행하는 포유동물이라는 우리의 진정한 위치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 (린 마굴리스 Lynn Margulls, 공생자 행성 중에서)

- 동기화가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은 동기화로 인한 단점이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 의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된 형태다. 뇌의 수많은 신경세포는 서 로 전기신호를 나누며 소통하고, 감각적 인상이나 생각을 만들 어낸다. 뇌의 전기 활동은 대개 비동시적인 것이어서 우리 뇌는 모든 세포를 동시에 활성화하지 않고도 여러 정보를 병행해서 처리할 수 있다. 뇌의 여러 부위에서 서로를 자극하거나 방해하는 신경세포 사이는 아주 조화롭고 안정적이다. 그런데 이런 평화로운 균형이 깨지고, 마구잡이로 변한 신호가 동기화가 필요 한 긍정적인 자극 신호보다 많아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바로 간질 발작이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갑자기 수많은 신경세포가 동시에 같은 박자로 전기신호를 내보내기 시작하면 뇌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 결과 간질 발작 증상이 나타난다.
-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감염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그 수를 줄이기 위해 락다운 조치를 취한 국가가 적지 않다. 여러 정치인과 과학자들이 과연 길고 완화된 락다운과 짧고 강 력한 락다운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일지 뜨겁게 토론했다. 서양 국가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 람들 간의 접촉을 줄이는 조치를 취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감염자의 수가 증가하고 대유행이 다시 발생할 때마다 정치계 가 (대개의 경우 너무 늦게) 반응을 보여 조치를 취했고, 사람들은 접촉을 줄였다. 그러면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아 감염자의 수가 줄어들었다. 감염자의 수가 줄어들면 안심하고 방심한 사람들이 락다운 조치를 완화했고 감염자의 수는 다시 늘어났다. 이 과정 이 계속 되풀이되었다. 마치 요요처럼.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발 견된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대유행에 따른 감염자 수 의 진동은 스라소니와 눈덧신토끼의 개체 수 변화에 따른 로트 카-볼테라 모델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양새다. 물리학자 벤저민 마이어 Benjamin Maier는 간략한 모델을 만들어 많은 국가에서 여러 차례 융기와 침강을 보인 감염자 수 곡선을 쉽게 설명했다. 이 간단한 모델에 따르면 팬데믹은 강력하지만 짧고 무엇보다도 조화된 조치를 통해 안정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독일에 서는 국민들이 세 차례나 대유행을 겪는 동안 의사결정권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정치권은 언제나 너무 늦고 너무 느리 게 반응했으며, 다른 나라와 국내의 상황을 잘못 비교했고, 근본 적이고 중요한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대유행이라는 흐 름의 역학이 간단한 활성제-억제제 시스템을 따른다는 사실 또 한 깨닫지 못했다. 이 사실만 알았어도 여러 조치를 더욱 적확하 게 시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짧고 강력한 락다운 조치 를 시행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감염자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역 내에서 감염자가 더 이상 발생하 지 않았다면 동기화 효과 또한 줄어들었을 테고 이에 따라 동기 화의 사슬도 끊어졌을 것이다.

- "혼란스러운 체제의 깊은 곳에서는 거의 항상 가장 작은 구조적 변화가 거대한 행동의 변화로 이어진다." (스튜어트 카우프만 Stuart Kauffman, 복잡계 이론생물학자)
- 우리는 다중 안정성과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질을 수 학적인 모델로 간략하게 나타내고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생태계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항상 균형 상태라 는 결과만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종의 구성이 어떻 게 변할 수 있을지, 지금과는 다른 종의 구성이 가능할지 여부는 결국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 구체적으 로 알 수 있는 몇 가지 예시가 있다. 이것은 모델에서 예측된 다 중 안정성과 실제 생태계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집 근처 작거나 큰 호수가 매번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1년 중 어떤 때는 물이 맑고 깨끗하지만 어떤 때는 아주 탁하다. 우리는 호수가 맑거나 혹은 탁하다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견고한 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이 맑은 상태가 유지되는 이유는 물속에 있는 식물이 빛을 충분히 받아 많이 자랐고, 이에 따라 물벼룩 같은 곤충들의 은신처가 늘 어났으며, 이 곤충들이 원래대로라면 물 위를 뒤덮었을 조류를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호수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이 강물로 먹을 것을 많이 던지면(예를 들어 오리에게 밥을 주겠다는 이 유로) 어부지리로 혜택을 본 물고기들의 개체 수가 급격하게 늘 어난다. 물고기들은 물벼룩을 잡아먹고, 물벼룩이 없으니 조류가 늘어나 호수를 뒤덮고, 수면이 뒤덮이니 물이 탁해지고 물속 식물이 햇빛을 받지 못해 죽는다. 물속 식물이 죽으니 은신처를 찾지 못한 물벼룩의 개체 수는 더욱더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러면 조류는 증가한다. 이런 식으로 호수의 상태가 완전히 뒤집힌다. 이렇게 상태가 급변하는 과정은 임계현상과 마찬가지로 점진적 이 아니라 비약적으로 발생한다. 다만 외부적인 요소(이 경우에는 사람들이 호수로 던지는 먹이)만이 서서히 변한다. 호수의 상태가 급 변하고 나면 이곳의 물이 다시 맑은 물로 돌아가기는 매우 어렵 다. 식물의 자기 강화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호수 로 던지는 먹이의 양을 티핑 포인트 이전 수준으로 줄이더라도 효과는 없다. 호수의 물은 탁한 상태로 유지된다.
- 이것이 바로 티핑 포인트의 전형적인 특성인 비가역성이다. 분화 단계에 돌입한 줄기세포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란 매우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티핑 포 인트를 넘어 급변한 호수의 물을 맑은 상태로 되돌리려면 호수 에 던지는 먹이의 양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줄이거나 물고기의 개체 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그래야 물벼룩의 개체 수가 회복된 다. 늘어난 물벼룩들이 조류를 먹어 치우면 물속 식물도 서서히 다시 자라날 수 있다. 티핑 포인트를 넘어가면 시스템을 완전히 다른 균형 상태로 만드는 도약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티핑 포인 트를 넘긴 원인을 멈춘다고 해도 전체 시스템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이것을 '이력현상Hysteresis' 이라고 한다.
비가역성은 각각의 세포가 주변 환경의 느린 변화에 따라 비가역적으로 세분화하고 조금씩 성장해 모습과 기능을 완전히 바꾸는 배아의 발달에는 꼭 필요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 에서는 나쁜 것이다.
- 군집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 분야 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모델 중 하나로 1995년에 헝가리 의 물리학자 터마시 비체크 amis Vicsek와 동료들이 만든 비체크 모 델 Vicsek model 이 있다.' 이 간단한 모델은 군집행동의 몇 가지 근본 적인 요소만을 형상화한 것이다. 수없이 많은 각 구성원이 군집 내에서 일정한 속도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모든 구성원에는 움직임의 방향이 있고, 방향은 갑작스런 외부의 영향으로 우연 히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각 구성원의 움직임은 불규칙해 보인다. 본질적인 요소를 더해 보자. 각 구성원은 주변에 있는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구성원들은 자신의 행동반경 내를 '둘러보고 다른 구성원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다른 구성원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방향을 중간값 으로 정한다. 그런데 모든 구성원이 동시에 이 법칙을 따르면서 임의의 방향 전환에 대응하므로 과연 구성원들이 스스로 일치 된 방향을 만들어낸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에 따르면 특정한 조건 아래서, 예를 들어 구성원들의 밀도가 충 분히 높으면, 이들은 단시간에 집단적인 방향을 갖고 느리게 변 화하는 군집을 형성한다. 동기화 현상이나 임계현상에서 관찰한 것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게 얽혀 있던 구성원들이 서서히 군집행 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임계점을 넘었을 때 갑작스럽게 집단행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모든 구성원이 군집행동을 보이든가 아니면 아예 개별적으로 움직이든가 둘 중 하나다. 집단 중 몇몇 구성원만 군집행동을 하고 나머지는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중간 단계는 없다. 비체크 모델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이 모델에서 구 성원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평평한 곳에서 움직 인다) 그럼에도 군집행동의 발현을 잘 보여준다. 각 구성원이 주 변에 있는 소수의 다른 구성원과 가까운 거리 내에서만 상호작용 을 해도 집단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즉, 모든 구성원이 반응하지 않아도 집단행동이 시작된다.
- 옌스 크라우제와 동료들이 진행했던 보행자 실험에서는 소수 가 다수를 이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연구진은 실험을 시작 하기 전에 모든 참가자들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대다수는 아무 내용이 없는 쪽지를 받았다. 이들은 원래 정해진 원칙, 즉 되도록 그룹에서 벗어나지 말고 평범하게 걸어가면 되었다. 몇몇 소수 는 특정한 지시가 적힌 쪽지를 받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쪽지의 내용을 발설하지 말고 강당 끄트머리에 있는 칠판 방향으로 걸 어가라는 것이었다. 실험을 시작하자 전체 그룹은 서서히 칠판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누가 그 무리를 이끌고 있는지 알 지 못한 채로 말이다. '정보를 전달받은 소수'가 집단 전체를 특 정한 방향으로 유도했다. 이 실험에서도 우리는 정보를 가진 소 수가 나머지 다수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실험에서 연구진은 각각 반대되는 정보를 가진 두 그룹을 만들었다. 이 실험에서는 다수가 자신들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했고,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목표(칠판)에 도달하기 위해 두 그룹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이동하느라 길게 이어 진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마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집 단행동을 통해 더 나은 의사결정에 도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으로 보인다.
물론 사람들이 현실에서 그룹을 지어 목표한 방향에 도달하기 위해 체육관이나 강당 안에서 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 다. 이런 실험실 환경에서 얻은 관찰 결과와 이론이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황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실험 결과로 얻은 지식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혹은 명확하게 정보를 교환하지 않고도 일치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생존경쟁이라는 개념이 개인과 인종, 시민과 국가에 적용되면서 뜻이 왜곡되었고 '적자생존'이라는 개념 또한 잘못 해석되면 서 자연과학, 경제학, 사회과학 분야에서 국가사회주의적인 사상 이 강해졌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오늘날까지 사회의 여러 측면 에서 그 잔재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일이 특히 더 유감스러운 이 유는 다윈 본인 또한 자신이 주장한 개념의 불완전함을 이미 알 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각기 다른 자연의 메커 니즘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윈은 자연을 마치 결투장처럼 묘사했지만 한편으로는 특성 의 변이와 자연 선택이 여러 종 사이의 공생과 상리공생을 충분 히 설명하기에는 모자라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이론은 진화가 왜 점진적이 아니라 비약적으로 발생하는지 뒷받침하지 못한다. 다윈은 자연 선택이라는 원칙이 각 개체뿐만 아 니라 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벌이나 개미처럼 사회적인 곤충들 사이에서 개별적인 개체는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수수께끼를 남겼다. 또 다윈 진화론 의 '적자생존'이라는 간단한 법칙만으로는 무궁무진한 종의 다 양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오히려 종의 다양성 이 줄어들어야 한다. 다윈의 진화론이 기껏해야 근사치에 가깝 다는 것을 사회다윈주의자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다윈 진화론의 기초에는 또 다른 큰 약점이 있다. 특성의 변이와 자연 선택을 변화가 없고 통계적인 환경에서 관찰했다는 점이다. 5장 티핑 포인트에서 보았듯이 실제 생태계에 사는 동물종 과 식물종은 워낙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한 종의 특성이 변 하면 그 결과 다른 종의 특성이 영향을 받고 외부적인 조건이 변 할 수 있다. 연결망에서 어떤 노드의 변화를 개별적으로 생각하 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결망은 테두리가 없어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다. 자연의 전체 연결망은 진화 메커니즘의 지배를 받는다.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이것을 "모든 진화는 공진화 Coevolution 다."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다윈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이론의 근본 메커니즘을 간략한 근사치라고 해석했다고 상정한 말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확대되면서 우리는 적응과 선택이 종 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각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뒤섞인 데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윈은 자연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관찰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논증 과정은 '거대한 동물이나 식물을 관찰했을 때 볼 수 있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다윈은 미생물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박테리아와 고세균 같은 미생물의 종 다양성은 모든 식물종과 동물종의 종 다양성보다 10만 배는 더 다양하다. 그러므로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체의 극히 일부분에만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 위노그라드스키와 베이예링크는 집단적인 전체와 공생 메커 니즘을 더욱 강력하게 주장했다. 덕분에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미생물학 분야에서는 미생물과 소위 세포 내 공생체 Endosymbiont 이 론 그리고 공생 발생symbiogenesis에 관심을 둔 연구가 활발하게 진 행되었다. 공생 발생이란 '서로 다른 유기체가 융합하여 새로운 유기체로 탄생하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의 생물학자 콘스탄틴 메레시콥스키 Konstantin Mereschkowski는 1905년에 동물, 식물, 버섯 그리 고 단세포 생물 등 모든 진핵생물이 각기 다른 박테리아성 근본 유기체의 융합에 의해 발생했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실제로 몇 몇 진핵생물의 소기관은 박테리아의 구조와 유사하다. 모든 세 포에는 미토콘드리아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리케차속Rickettsia의 특정한 박테리아와 비슷하게 생겼다. 리케차속의 박테리아는 세포 내에 기생한다. 박테리아와 마찬가지로 껍질과 게놈, 즉 유전 질이 있으며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식물에는 소기관이 아 니라 엽록소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광합성을 촉진한다. 엽록소체의 모습 또한 광합성 박테리아인 남세균과 비슷하게 생겼 다. 남세균은 빛을 영양분으로 바꾼다. 또 엽록소체에도 유전질 이 있다. 메레시콥스키는 비록 유전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 랐지만, 이 지구상에 오로지 박테리아와 고세균만 존재하던 시 절에 어느 순간 고세균 하나가 다른 박테리아를 삼켰고 공생적 인 결합이 발생했으며 그것이 곧 고등 유기체의 근간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 공생 발생 이론은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60년 쯤 지나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진화이론학자인 린 마굴리스가 이 이론을 다시 끄집어냈다. 마굴리스가 1967년에 발표해 큰 반향 을 일으킨 논문에 따르면 공생 발생은 진핵생물 발생의 본질적 인 메커니즘이다. 몇몇 생물학자들은 그 과정이 지구상 생명체의 진화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린 마굴리스는 이에 대해 증거에 기반을 둔 이론을 제시했다.
- 도킨스가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복잡하고 경제적이지도 않은 공생 발생을 왜 그렇게 강조하는 겁니까?"
마굴리스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이 존재하니까요."
이 짧은 대화는 두 전문가의 관점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도킨스는 자신이 주장하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경험적 증거는 적 극적으로 고려하지만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한다. 마굴리스는 냉정한 관찰을 거쳐 무엇이 존재하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 생물학계의 반항아인 린 마굴리스와 신다윈주의자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의 주제는 그저 공생 발생이 모든 고등 생명체의 근 원이라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마굴리스에 따르면 바로 이런 협력 과 공생으로 가는 비약적인 발걸음이 근본적인 요소가 되어 진 화가 발생한다. 전체 시스템에서 새로운 연결이 발생하면서 개별 적인 요소가 서로 만나지 않고 의존하지 않으며 점진적으로 진 화할 때와는 달리 갑자기 다른 방식으로 기능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그녀의 이론으로 증명되었다. 이로써 다윈이 이미 의구심 을 품은 적이 있던 수수께끼 중 일부가 풀렸다. 다윈의 이론은 각 종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구조나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마굴리스는 종 사이의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상호작용, 예를 들어 협력적인 공생 관계나 상리공생을 통해 새로운 시스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공생 발생은 그저 한 가지 예시일 뿐 이다. 생명은 새롭고 매우 긍정적인 협력 행동이 발생함으로써 세상을 정복했다고 마굴리스는 말했다. 그런 변화는 대개 미생물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미생물 분야는 간과되기 쉽다.
- 누구나 이끼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연녹색부터 짙은 녹색, 때로는 붉은색이기도 한 이끼는 돌이나 바위 위에 얼룩처럼 붙어 있 다. 많은 사람들이 이끼를 식물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녹색이 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끼는 아주 특이한 생명체다. 이끼는 여러 유기체가 결합해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 결과물이다.
지구의 지표면 중 대략 5%가 이끼로 뒤덮여 있다. 이끼는 어 디서나 자라지만 성장이 아주 느려서 1년에 약 1밀리미터 정도 자란다. 이끼는 굉장히 오래 살 수 있다. 어떤 이끼는 4,500살에 서 8,500살 정도다. 이끼는 대부분 버섯과 조류, 그리고 다른 남세균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류와 남세균이 결합체에 광합성 에너지를 전달한다. 식물에 속하지 않는 버섯은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없다. 대신 버섯은 조류를 보호하고 결합체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전형적인 상리공생이다. 흥미롭게도 이 결합체의 일원들은 혼자서도 살 수 있다. 즉, 이끼를 이루지 않고도 살 수 있는데, 다만 형태는 완전히 다르다. 이끼는 말하자면 선택적인 유기체다. 표현형, 모양, 구조, 형태학 등은 어떤 버섯종과 어떤 조류종이 결합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끼는 표현형으로 총체적인 유기체를 구성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생명체다. 변이의 진화 메커니즘과 선택이 개별적으로 관여한 버섯이나 조류종뿐만 아니라 전체 결합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점도 특이하다.
바로 이것이 린 마굴리스가 주장한 내용이다. 그녀는 자연이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지구를 지배했다고 말하며 앞선 내 용을 덧붙였다. 협력의 원칙은 간단한 윈윈 상황을 거치며 널리 퍼진다. 협력을 통해 새로운 총체적인 유기체가 발생하며, 그 역 동적인 진화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난다. 이끼가 공생 하는 유기체라는 사실은 이미 1970년대에 밝혀진 내용이지만 이끼는 당시 예외적인 현상이자 자연의 변종으로 여겨졌다.
- 모든 생명체는 미생물과 협력하는데, 유기체 내에서 이런 협력 과정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발견된다. 대부분의 척추동물 의 소화 체계 내에서 미생물은 아주 유연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이른바 숙주의 식습관에 적응한다. 그러니 소화기관 내의 미생 물을 부가적이고 조절 가능한 장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종에게 미생물과의 협력은 아주 특별하다. 흔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진딧물인 완두수염진딧물Acyrthosiphon pisum을 살펴보자. 이 진딧물은 약 80개의 특별한 체세포, 즉 균세포 Bacteriocyte로 구성된다. 완두수염진딧물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하면 부크네라 아피디콜라 Buchnera aphidicola라는 작은 박테리아를 찾을 수 있다. 80개 밖에 안 되는 균세포 내에 박테리아가 최대 500만 개가량 살고 있다. 박테리아들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할까? 이 박테리아들은 당분자와 아미노산을 재가공해 진딧물의 신진대사를 돕는다. 진 딧물은 그 임무를 세포 내에 있는 박테리아에게 맡긴다. 세포 내 공생체인 부크네라 아피디콜라는 암컷 진딧물이 낳는 알을 통해 후손 진딧물에게 전달된다. 약 1억~3억 년 전, 티라노사우르스 렉스가 지구상에 나타나기도 전이자 복잡한 생명체가 지구에 등 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부터 진딧물과 박테리아는 공생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진딧물과 박테리아는 아주 오랜 시간 지속 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그런데 진딧물과 박테리아의 밀접한 협력 관계가 오랜 시간 이어지다 보니 박테리아는 자신의 유전질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이 박테리아종은 진딧물의 세포 내에서만 살고 거기서 번식하기 때문에 숙주 세포 밖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유전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크네라 아 피디콜라의 게놈은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작다.
- 위글스워시아 글로시니디아 Wigglesworthia glossinidia 라는 박테리아종은 체체파리의 균세포 내에 살며 효율적인 공생 관계를 이룬다. 수많은 곤충들이 세포 내 공생체인 박테리아를 키우고 있다. 바 퀴벌레도 마찬가지다.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훌륭한 공생 관계 를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콘볼루타 로스코펜시스Convoluta roscoffensis라고 불리던, 속칭으로는 로스코프 지렁이 혹은 민트소스 지렁이 등으로 불리는 납작한 녹색 지렁이가 있다. 현재의 학명은 'Symsagittifera roscoffensis'다. 아무튼 이 지렁이는 태어날 때 특별한 입을 갖고 있는데, 놀랍게도 다른 소화기관은 없다. 어린 지렁이가 미세 조류를 먹으면 이것이 지렁이의 피부 아래로 마치 실처럼 이어진 다음 점점 늘어나고 정착한다. 지렁이가 자라 면 입이 사라진다. 이후 지렁이는 일생 동안 직접 먹이를 섭취하 지 않는다. 대신 새끼 때 섭취해 피부 아래에 저장해 둔 미세 조 류가 광합성을 하면 지렁이가 에너지와 영양분을 얻는다.
특히 흥미진진한 예시를 하나 더 소개하겠다. '하와이 짧은 꼬리 오징어Euprymna scolopes'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오징어는 몸길이가 대략 3센티미터 정도이며 천적이 아주 많다. 그런데 매우 현명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한다. 밤에 달빛이 비치면 오징어의  림자가 포식자의 눈에 띄게 되는데, 이 오징어는 스스로 빛을 내서 달빛에 섞여 들어감으로써 천적의 눈을 피한다. 이런 생물발 광(유기체가 빛을 내는 능력)은 오징어가 아니라 오징어에 붙어사는 박테리아 알리이피브리오 피셰리Alivibrio fischeri가 내는 것이다. 이 오징어가 갓 부화했을 때는 아직 박테리아와 공생하지 않는다. 오 징어는 자라면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 박테리아를 습득한다. 오 징어의 몸에 오직 생물발광하는 알리이피브리오 피셰리만을 받 아들이고 발광 기관까지 이동시키는 관이 있고, 박테리아는 이 관을 통해 발광기관에 도달한 다음 오징어가 먹는 영양분을 섭 취하고 번식한다. 매일 아침마다 오징어의 체내에 있던 박테리 아 중 90%가 다시 주변 바다로 흩뿌려지는데, 그 박테리아를 새 로 부화한 새끼 오징어가 받아들인다. 곤충과 세포 내에 공생하는 박테리아와 달리 오징어와 생물발광 박테리아의 관계는 느슨 한 편이다
- 남세균과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첫째로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람속의 종이 지구상에 특별히 오래 존재 했던 종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사람은 진화 과정 에서 나타난 부수적인 종이자 다른 종에 비해 짧게 살고 사라지 는 경향이 있는 생명체다. 둘째로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환경 을 장기적이고 비가역적으로 대격변시킨 유일한 생명체는 아니 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환 경을 크게 변화시켰는데, 자신들이 급격하게 변화시킨 환경에서 살아남은 남세균과는 달리 우리는 변해버린 환경 속에서 살아남 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간이 지구상의 생명체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현재의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기후 위기, 디지털화와 세계화에 따른 위기, 생물 다양성 손실, 금융 및 경제 위기, 인구과밀, 식량난 등은 하찮은 우리 종을 구하려다가 발생한 것이다. 현재로서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냉정하게 보자면 그렇다.
- 가망 없는 인류, 턱 끝까지 닥친 여러 위협 요소, 정치적 무관 심, 점점 기괴하게 일그러져 가는 인간관계, 대규모 정신 이상, 독재자, 그리고 이런 위기에서 우리가 천만다행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 작 은 희망을 품고 있다. 축구 시합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안타깝게도 복잡계 과학과 이 책이 인류를 구할 안내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극적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고 위기에서 규칙 을 발견하고 다른 관점을 취하고 모든 것들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우리를 도울 도구 상자는 될 수 있을 것이 다. 우리는 복잡계 과학의 도움으로 규율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 고 필수적인 메커니즘을 확인하고, 세세한 것들만 따지다가 길을 잃지 않고 여러 현상 사이의 연결을 인식한 다음 그 공통점에 서 배울 수 있다. 공통점만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차이 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 우리는 그저 차이점을 규명하고 그 수를 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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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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