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

과학 2023. 1. 29. 13:19

- 지구상에 가장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인간의 직계 조상이라고 알려진 것은 약 18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다. 이 무렵 호미닌의 두뇌 크기는 600cc에서 1300cc로 2배가 넘게 커졌다. 이 영리한 친 사회적 무리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문제 해결 과정을 기억할 수 있었다. 이들이 다른 누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궁리해 만든 도구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해서 300만 년 전 초기 호미니드가 만든 단순한 도구와는 크게 다르다. 호모 에렉투스는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게 불을 피웠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 다. 집단으로 사냥을 하며 아프리카에서부터 아시아에 이르는 넓 은 땅을 호령했고 유럽 일부 지역까지도 진출했다. 이들은 언어 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한 형태였지만, 놀랍게도 바다 를 항해할 수 있는 탈것을 만들어 섬 사이를 오갔다고도 한다. 유 전적으로 볼 때 호모 에렉투스는 대단히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 다. 각기 다른 개체군이 넓은 지역에 퍼져 생활하면서 수십만 년 에 걸쳐 친척뻘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호미닌과 교배를 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120만 년 전, 기후 변화의 영향 때문인지 호 모 에렉투스는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러 전 세계적으로 고작 1만 8500명 정도만 남게 된다.' 인간은 이후 약 100만 년 동안 현재 침팬지나 고릴라가 겪고 있는 멸종 위기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빠 졌다. 호미닌의 다양성을 감소시킨 인구 병목 현상이 어쩌면 인류 라는 종의 진화를 가속화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 얼마나 많은 종의 인간이 존재했는지, 얼마나 많은 인종으로 나뉘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50만 년 전 하이델베르크인(1907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시 교외에서 화석이 발견된 고대인 류. - 옮긴이)이 기후 변화의 결과로 당시 거주하던 아프리카 대륙이 점차 푸르게 변하자 유럽과 그 너머까지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흔 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30만 년 전부터 갑자기 유럽으로의 이주 가 중단되었다. 아마도 혹독한 빙하기 이후 사하라 지역에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사막 지대가 만들어진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결국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부족은 다른 부족과 교류가 끊어져 격 리되었다. 이러한 격리를 통해 각 개체군이나 부족 사이의 유전적 차이가 진화해 마침내 서로 다른 인종이 형성되었다. 해부학적으 로 현생 인류의 뿌리로 보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최근 발견된 호모 날레디 Homo naledi(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화석이 발견된 고대 인류. -옮긴이)처럼 멸종한 다른 인종과 섞이면서 문화를 발전시키고 번식 했다. 아프리카를 떠난 호미닌 중 기온이 낮은 북부 유럽에 정착 한 개체군이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오직 유전학을 통해서만 존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인류로 진화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8만 년 전, 현생 인류의 몇몇 가족이 최초로 아 프리카 대륙을 떠났을 무렵 네안데르탈인은 지금의 시베리아에서 스페인 남부 지역에 걸쳐 크게 번성해 있었다. 어디에서든 다른 인간을 만날 때마다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 우리 유전자 속에 살아 있는 그들의 흔적이다. 나를 포함해 오늘날 유럽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유전적 구조 안에는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여전히 유럽인의 20퍼센트 이상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를 다음 세대로 전해주고 있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고대 인종 역시 현대인에게 유전적 유산을 남겼다. 오스트 레일리아 원주민은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데, 아쉽게 도 데니소바인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거의 없다. 또한 아직까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다른 고대 인종도 2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이들을 포함한 전 세계 인간에게 유전적 영향을 미쳤다' 어 쩌면 다른 인종에 흥미를 느끼고 번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본 성이 우리의 조상으로 하여금 다양한 호미닌의 좋은 유전자를 수 집하게 만들었고 이 유전자는 환경에 상관없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 애초부터 인간이 혹독한 환경에 맞설 수 있 을 만큼 신체적 능력이 뛰어났던 시기는 역사를 샅샅이 뒤져봐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생존 가능성은 언제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으로부터 불과 7만 4000년 전, 지금의 인도네시아 토바Toba 에서 대규모 화산 폭발이 발생했다. 이후 살아남은 우리 조상의 개체 수는 불과 몇천 정도 에 불과해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중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은 몇 종에 그친 유인원과 단 한 종의 인간이었다.
도박과도 같은 문화적 변화 속에서 오직 현생 인류만 살아남았 다. 비슷한 능력을 가졌던 다른 사촌격 종들도 지구에서 수십만 년 이상 생존했지만, 단편적인 흔적만 남겼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 퍼져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문화 덕분이었다. 우리가 거둔 영광스러운 성취인 문화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네안데르탈인의 비극 적인 최후보다 분명한 사례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 도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현생 인류와 비교했을 때 두뇌 용량도 더 컸으며 신체적 조건도 우월해 추운 기후에서 더 잘 생 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멸종했고 우리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운도 따랐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기후의 변화는 초원에서 온 사냥꾼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상이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먼저 자리를 잡았던 원주민은 감당하 지 못할 질병을 가지고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 은 따로 있다. 당시 네안데르탈인은 근친 교배를 거듭한데다 개 체 수도 이주민에 비해 1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유전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경우 한 종이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인 진 화적 적응력이 현생 인류와 비교했을 때 최소 40퍼센트 이상 뒤 떨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렇게 적응력이 떨어지면 개 체 수는 물론 유전적 다양성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이 구석기 시대의 개체 수, 이주형태, 생태적 요소 등을 입력해 당 시 상황을 재현해보니 네안데르탈인은 이주민과 처음 만나고 1만 2000년 정도 후에 멸종했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 진화의 성공 여부를 궁극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개체 수이다. 그렇다면 유럽으로 조금씩 이주한 현생 인류는 개체 수로 네안데르탈인을 압도했다는 것인데 무엇이 개체 수 증가의 결정 적 원인이 되었을까?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조상의 지능이 다른 종에 비해 훨씬 뛰어났기 때문일까? 물론 이러한 추측도 가 능하다. 그렇지만 두뇌 용량이나 사용했던 도구 등 모든 증거를 종합해 비교하면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호모 사피엔스의 어떠한 생물학적 혹은 문화적 요소가 네안데르탈인을 압도할 수 있도록 했고 지표면의 3분의 1이 얼음으로 뒤덮일 정도로 혹독한 환경에서도 훨씬 더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 네안데르탈인과 관련한 프랑스 의 여러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분석해보면 불을 피울 때 특별 한 방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바로 부드럽고 윤기 가 흐르는 광물인 이산화망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산화망간 가 루를 사용하면 발화점을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산화망간을 모아 놓았던 널찍한 장소를 찾아냈다. 네안데르탈 인은 이 가루를 부싯깃 역할을 하는 마른 이끼 등에 섞어 필요할 때마다 불을 피웠던 것이 분명하다. 현대인이 불을 피울 때 성냥 을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방 법은 다음 세대로도 전해지는데 그 정보는 사용되는 재료만큼이 나 귀중하다'
- 그렇다면 인간의 두뇌가 커지고 지능이 높아지면서 불을 피울 수 있게 된 것일까? 아니면 불을 피울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의 두뇌가 커질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모두 옳을 것이다. 수십만 년에 걸쳐 인간의 유전자, 문화, 환경이 모두 적절하게 적응하면서 축적된 지식을 통해 진화 과정을 서로 보완하며 만들어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불은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처럼 자연을 이길 수 있는 신과 같은 힘을 인간에게 선사했다. 이 덕분에 호미닌은 주어진 환경을 마음대로 관장할 수 있는 일종의 정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불이라는 에너지를 이용해 식량으로 삼을 초식 동물을 먹일 목초지를 조성했고 자신들의 필요에 부합하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생태계를 완성했다.
우리의 조상은 그들이 의지했던 문화에 유리한 환경적 조건을 스스로 만들었다. 주어진 환경에 더 많이 개입해 통제할수록 세대 를 거쳐 그런 문화 정보를 전달하는 작업의 유리함도 더 크게 부각되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해가고 있던 것이다.
-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 사냥 을 하지 않는다. 잡은 사냥감은 그대로 부족에 가져와 함께 나눠 먹는다. 200만 년 전 호미닌이 사냥감이나 먹을거리를 그대로 들 고 돌아갔다는 증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분업은 부 족의 일원이 각자 특기를 개발하면서 효율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 게 한다. 사냥용 창을 잘 만들 수 있다면 굳이 최고의 사냥꾼이 되 지 않아도 사냥꾼 못지않게 인정을 받아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 다. 이런 협동과 먹을거리의 분배는 집단의 역량을 강화시키고 여 러 복잡한 특기나 기술을 더 다양하게 발달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신체적으로 사냥꾼 역할로서의 절정기는 이십 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갈고 닦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40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자기 몫을 하는 사냥꾼이 될 수 있다." 수렵과 채집을 하는 인간 공동체에서는 18세 무렵이 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에 게 필요한 열량조차 스스로 구하지 못한다. 반면, 비슷하게 수렵과 채집을 하는 침팬지는 유아기를 갓 벗어난 5세 무렵부터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집단에서 이탈했거나 먹을거 리가 부족할 때 부분적으로라도 자신의 생존을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사실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일단 집단을 이 루고 서로 협력하게 된다면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자체로도 생존 을 위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단순한 독립의 의지보다 이 런 점이 생존에 있어 훨씬 중요하다.
-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고 종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과정인 출산과 모유 수유는 이렇게 어려운 문제이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산모와 아 기 모두 사망의 위험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위험의 대가로 얻게 된 더 큰 두뇌, 극단적으로 높은 사회 성, 문화적 지식이 진화 과정에서 그만큼의 가치를 분명히 발휘했 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수많은 진화 과정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출산도 불을 다루는 기술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불에 의한 보호 가 없었다면 이렇게 어려운 출산을 정기적으로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사방이 노출된 평원에서 살았을 때 아기 는 새끼 영양 같은 초식 동물처럼 위험을 피해 스스로 달아날 능 력을 갖추지 못했다. 두뇌가 급격히 커지는 쪽으로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출산 과정이 어려워진 것은 분명 인류가 불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한 뒤에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 영장류 17종의 몸무게, 식습관, 먹을거리를 찾는 방식 등을 바탕으로 각 영장류의 뉴런 수를 계산한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가 인간만큼 큰 두뇌를 유지하 기 위해서는 하루에 7시간 이상 먹는 데 써야 하는 반면, 몸무게는 26킬로그램까지 줄여야 한다." 몸무게 변화 없이 7시간 이상 먹 는 데 쓸 경우 감당할 수 있는 뉴런은 최대 320억 개에 불과하다. (인체에는 1000억 개에 달하는 뉴런이 있다.20)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인지적 능력에 대한 요구가 증가 하면서 주요 뉴런이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했다. 그 결과 인간의 진화는 에너지 효율이 향상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개선되고 촉진되었다. 에너지 효율의 향상에는 두뇌 안에서 포도당과 크레아틴 전달체를 조절하는 새로운 유전자도 포함되어 있 다." (크레아틴은 포도당이 부족할 때 가능한 빨리 대체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종의 예비 공급원이다.) 반면, 근육은 다른 영장류와 비교해 크게 달 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진화는 근육이 아닌 두뇌의 역량을 최적화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뇌 강화 위주로 적응이 진행되었음에도 지능은 섭취 가능한 열량에 좌우되었다. 빙하기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은 체온 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최소 3500킬로칼로리 정도 섭취해야 했을 것이다. 동시대에 살았던 조금 더 덩치가 큰 네안데르탈인은 체온 을 유지하고 채집 활동을 하기 위해 매일 3360~4480킬로칼로리 정도 필요했을 것이다." 고생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코가 독특하게 넓었던 것은 '숨을 더 많이 들이마시기 위한' 진화의 결과 로 이 덕분에 호흡량이 증가하고 효율이 좋아졌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네안데르탈인은 고열량 식단이 필요한 에너지 과다 소비형 생활 방식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꿀, 과일 혹은 이따금 섭취했을 지방이 풍부한 육류를 제외한다면 그들의 식단은 열량이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장류는 상당한 시간을 먹는 데 소비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두 뇌 성장과 문화 발달을 이뤄내지 못했다.
루시 같은 최초 호미니드의 두뇌에는 최대 400억 개의 뉴런이 있었으며 하루에 7시간 이상 쉬지 않고 유인원과 비슷한 식단을 섭취해야 두뇌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약 620억 개의 뉴런을 갖고 있었던 호모 에렉투스는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먹어야 했고, 이후 등장한 네안데르탈인의 경우에는 매일 최소 9시간 이상을 먹는 데 써야 했다. 따라서 채집, 사냥, 사회화는 물론이고 다른 문 화적 활동에 시간을 거의 낼 수 없었다. 한마디로 애초에 불가능 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만큼 먹었는지는 차치하고, 매일 9시간을 계속해서 먹을 수 있도록 밥그릇을 채울 시간이나 여력 자체가 없 었을 것이다. 인간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건 불을 다루 게 된 이후부터이다.
-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이 거둔 성공은 근본적으로 다른 어떤 생 명체보다 에너지를 자유롭게 다루고 에너지를 얻기 위한 노력을 다른 곳에 전가하는 능력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에너지를 얻기 위 해 음식을 생화학적으로 분해하는 데 신체적 능력에만 기대지 않 고 먹을거리를 물리적으로 가공하거나 발효, 절임 등으로 조리하 는 문화도 활용했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을 이용해 조리했다는 사실이다.
- 일반적으로 동일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더라도 육류보다 식물을 소화시킬 때 훨 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소는 몇 시간에 걸쳐 씹어 삼키 고 되새김질을 한다. 처음에는 입에서 질긴 섬유 조직을 분해하고 4개의 위장에서 같은 과정을 반복한 후에야 비로소 지방으로 저 장된다. 인간의 두뇌는 많은 에너지와 단백질을 필요로 하는데 지 방이 많은 육류는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 사냥을 하는 과정, 도구나 손 또는 이로 사냥감을 먹기 좋게 해체하는 과정, 씹어 삼키고 소화시키는 등의 신진대사 과정에는 분명 에너지가 소모되 지만, 식물을 섭취할 때보다는 에너지 소비가 적다.
불을 이용해 조리한 음식은 소화시키기가 훨씬 쉽다. 불의 에너 지가 인간의 위장이 할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같 은 무게라면 날고기보다 익힌 고기를 섭취하는 것이 10배 이상 효율적이다. 게다가 불을 이용해 조리한 음식이 더 많은 열량을 제공한다. 인간의 신체는 조리된 음식을 더 잘 흡수하는데 육류는 단백질을 40퍼센트 이상, 곡물이나 뿌리채소는 탄수화물을 50퍼 센트 이상 더 흡수할 수 있다." 음식물 조리는 복잡한 두뇌 조직 을 생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철분, 아연, 비타민 B12 같은 영양소를 더 많이 그리고 더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 불이 인간의 소화 작용을 상당 부분 대신하게 되면서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인간 의 소화 기관은 크기가 점차 줄어들어 다른 영장류와 달리 상당수 의 야생 상태의 잎이나 열매를 소화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섭취할 수 있는 것의 종류를 줄여나가는 진화의 도박 때문에 기근 에 취약해졌고 여타 영장류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식물의 독성 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소화 기관의 크기가 줄어들면 서 귀중한 열량을 커진 두뇌로 더 많이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사냥 및 채집을 주로 하는 공동체를 보면 필요한 열 량의 절반 이상을 동물에게서 얻고 나머지는 식물로부터 보충한 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조리법의 발명이 인류의 조상들이 먹 을거리를 구해 섭취할 준비를 하고 씹어 삼키는 데 소모되었을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줄여준 것은 분명하다. 
- 이미 20만 년 전쯤에 인간의 두뇌 크기는 골반이 감 당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했지만, 두뇌의 신경망은 역량을 계 속해서 진화시켰다. 그렇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은 안전하게 이 뤄진 제왕 절개 수술이 진화적 효과를 가져왔다. 골반이 너무 좁 아 자연 분만이 어려웠던 산모도 이제는 문제없이 자신의 유전자 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산모와 태아 모 두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좁은 골반을 가진 여 성이 증가하게 되었다. 지난 60년 동안 골반 크기 문제로 제왕 절 개를 선택한 비율은 전체 산모의 3퍼센트에서 3.6퍼센트로 늘어나 60년 전과 비교했을 때 20퍼센트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언젠가는 외과적 수술에 의한 분만이 자연 분만만큼 늘어나게 될 지도 모른다. 반면, 지난 1만 년 동안 인간의 두뇌는 대략 3~4퍼 센트에서 최대 10퍼센트 가량 작아졌다. 이러한 현상을 이제 우리 사회가 작은 공동체에서는 지적 능력이 떨어져 생존을 담보하기 힘들었을 이들도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갈 수 있을 만큼 사회 구 조가 복잡해졌다고 해석하는 가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두뇌의 크기가 작아지는 현상은 가축화된 동물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어쩌면 과사회성 hypersociability, 협동과 관련된 유전적 변화가 일부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지능이 높을수록 자녀를 적게 낳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지적 능력이 유전자 풀에서 점점 그 가치가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인간이 그동안 축적한 지식을 점점 더 문헌이나 기계 등 외부 장치에 기록하는 것에 의존하면서 지적 능력이 생존 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 문화의 영향력에 대한 증거는 신경학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 다. 인간의 두뇌는 말 그대로 주변 문화에 의해 다듬어진다. 최근 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수백 명의 인간과 침팬지 두뇌의 대 뇌 피질에서 지능을 관장하는 영역을 살펴본 결과 뇌구sulci라고 부르는 주름은 태어난 이후 계속 자라고 변화하지만, 인간과 침팬 지 사이에 차이점이 있었다. 침팬지는 이 주름의 모양과 위치가 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어 형제자매라면 모양이나 위치가 거 의 비슷했다. 그런데 인간은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미했 고 환경과 사회적 요소가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침팬지는 유전 적으로 자신들의 인지 능력에 갇혀 있기 때문에 두뇌의 발달 혹은 새로운 행동이나 기술을 배우는 능력이 제한된 것이다. 반면, 인간 은 침팬지보다도 덜 발달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출생 후에 는 두뇌가 더 크게 성장을 한다. 이때 외부 세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관습에 따른 각각의 단계나 과정이 왜 중요한지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배우고 익히기만 하면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인 간과 다른 지능이 있는 동물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 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진화 심리학자 마이크 토마셀로는 주목할 만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에서는 열기 힘들게 만들어진 상자에 선물을 넣어 한 아이와 침팬지에게 주었다. 아이와 침팬지 모두 처음에는 스스로 상자를 열지 못했다. 토마셀로는 상자를 이 리저리 움직이고 열어 안에 있는 선물을 꺼내는 모습을 보여주었 다. 그는 마지막 과정으로 상자를 열기 전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3번 두드리는 동작을 끼워 넣었다. 아이와 침팬지 모두 토마셀로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해 선물을 꺼낼 수 있었지만, 손으로 머 리를 두드리는 행동까지 따라한 것은 아이뿐이었다. 침팬지는 그 행동이 상자를 여는 것과 상관이 없다고 보고 따라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모든 행동을 그대로 따 라했다. 아이는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을 신뢰해 각각의 단계와 행동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어쩌면 불필요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따라한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아이는 행동의 목적이 덜 분명할수록 오히려 더 주의를 기울여 똑같이 따라한다'
복제는 대단히 중요한 행위이기 때문에 인간은 거기에 맞춰 문 화적, 생물학적 구조를 진화시켜왔다. 여기에는 긴 어린 시절과 큰 사회적 집단 그리고 더 나은 기억력 등이 포함된다. 인간은 배 우는 동시에 가르친다. 인간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어떤 일을 하는 시범을 보여준 뒤 아이가 자신을 따라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 러면서 일종의 쌍방향 대응 과정으로 다음 단계의 시범을 보여주 기 전에 아이의 행동에 맞춰 수정하면서 아이가 최종적으로 원하 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른 동물은 이렇게 쌍방향 대응 행동을 하지 않는다.
- 사회가 더 많은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가 보유하 고 있는 기술도 효율성과 함께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진화 했다. 가마는 단지 질그릇을 굽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질그릇에 유약을 더하기 위해 높은 온도를 만들고 제어하는 과정에서 야금술 (광석에서 금속을 골라내고 정련하는 기술. -옮긴이)로 발전되었을 가능 성이 높다." 그릇 장식에 쓰기 위해 광석을 부숴 가마에 넣자 마음대로 녹이고 주무를 수 있는 작은 구리 알갱이가 가마 안에 쌓인 광경을 상상해보자. 돌에서 구리를 얻을 수 있다는 발견, 즉 공 작석(구리가 돌로 산화되어 형성된 보석. -옮긴이)이나 코벨라이트(황화 구리로 구성된 광물. 옮긴이) 그리고 황화구리 성분으로 밝은 녹색으 로 빛나는 광석을 녹이고 제련해 구리를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은 대단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밟고 있는 땅속에 얼마든지 재 사용할 수 있고 어떤 형태로든 만들 수 있는 놀랍도록 새로운 소 재가 감추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새로운 소재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 다. 가마의 온도를 최소한 섭씨 1000도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 해서는 연료로 숯이 필요했고 풀무의 도움도 받아야 했다. 인간은 새롭게 만들어낸 단단한 구리 칼날로 뼈와 나무 그리고 돌도 잘라낼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에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도 구리로 만 든 도구를 사용해 돌을 잘라 쌓아 올린 것이다. 피라미드를 만들 기 위해서는 대략 30만 개 이상의 구리 끌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 정되는데 이 끌을 만들기 위해 1만 톤 이상의 구리 광석이 필요 했을 것이다." 당시 필요한 구리를 캐내기 위해 광부들은 길어야 1년 정도밖에 생존할 수 없는 최악의 환경에 내던져졌다고 한다.
기원전 3000년경, 인간은 구리에 주석을 더해 청동을 제작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최초의 합금이었다. 청동은 새로운 교역로를 열었다. 주석은 상대적으로 드문 광물인 탓에 주석이 매장되어 있 던 현재 영국 남서부 콘월Cornwall 주 지역에서부터 교역로를 따라 아프가니스탄까지 이동하기도 했다. 이때 물자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사상도 함께 전파되었다. 주석 교역로는 최초의 대규모 국제 교역로였으며 이를 통해 부를 쌓은 새로운 사회 지배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다." 기원전 1200년경, 이러한 국제적인 교역로가 유목 민족의 침략으로 갑자기 끊어지자 청동의 대체품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마침내 모든 바위에 가장 대중적인 금속인 철이 상당 부분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은 곧 철기 시대로 접어들었고 그 시대는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철광석을 녹일 때는 구리를 만들 때보다 훨씬 더 높은 온도가 필요했다. 고대 사람들이 당시의 가마나 화로를 이용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괴철塊뿐이어서 청 동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망치로 내려치는 단조 작업을 거쳐 강 성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청동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15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런 방식으 로 가공된 철기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숯을 연료로 해 가마의 온도를 끌어올리는 방법이 개발되고 철과 탄소를 결 합할 수 있게 되면서 혁신적인 돌파구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 서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강철이다. 그때까지 만들어낸 금속 중에서 가장 단단했던 강철은 탄소가 어느 정도 함유되느냐 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탄소가 1퍼센트 포함되 면 좋은 품질의 강철이 되지만, 탄소 함유량이 4퍼센트에 이르면 강도가 떨어져 무르고 만다. 인간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강철을 제조할 때 어떤 경우에 성공하고 또 어떤 경우에 실패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강철 제조법은 세대를 거쳐 대단히 까다롭고 비밀스러운 의식을 통해 일부에게만 전수되었다. 로마 군단은 영 국에서 철수하면서 쇠못을 비롯한 관련 기술을 신중하게 감췄다. 부러지지 않는 칼, 수도관, 배를 만들 수 있는 자신들만의 지식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된 한 구덩 이에서는 로마 군단이 철수하면서 두고 간 7톤에 달하는 쇠못과 철제 보급품이 그대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금의 영국 지 역에서는 강철 제조를 위한 핵심적인 기술이 사라지면서 아서왕의 명검 엑스칼리버 같은 무적의 무기에 대한 전설만 남게 되었다.
-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노래의 길 사례는 인간이 만든 이야기가 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또 널리 퍼질 수 있었는지 설명해 준다. 인간의 이야기는 일종의 집단적인 기억 장치로 이런 이야 기 속에는 자세한 문화적 정보가 암호화되어 저장되어 있다. 이야 기는 집단의 문화적 지식이 집단적 기억 속에 축적이 되고 진화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남아 있도록 도와준다. 동시에 복잡하 고 풍부한 문맥의 문화적 정보를 널리 퍼트릴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인간의 문화가 복잡하게 진화하면서 이야 기는 단순히 중요한 문화적 적응 과정 의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 다. 우리의 두뇌는 인지 과정의 일부로 이야기 서술에 대해 반사적 으로 반응을 하며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우리의 정신과 사 회,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형성하며 우리의 삶을 지켜준다.
- 이야기로 전해 들은 정보는 훨씬 더 기억하기가 쉽다. 연구에 따르면 이야기를 들으면 두뇌의 여러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되기 때문에 무려 22배나 더 기억하기가 쉽다고 한다. 단순히 사실만 을 나열하면 두뇌에서 언어 처리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 Broca's area과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 만 반응하지만, 똑같은 정보라 할지라도 이야기를 통해 전달될 경우 서술과 관련된 두뇌의 다른 영역들이 함께 깨어난다. 이야기에 달리기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 으면 운동 피질이 함께 깨어나며 부드러운 비단으로 만든 옷이 언급되면 감각 피질이 함께 반응하는 식이다. 두뇌는 마치 우리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며 그 이야기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은 감정과 사상 그 리고 새로운 생각을 듣는 이들의 머릿속에 심어주어 똑같은 사건 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도록 만든다. 실제로 이야 기를 전해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두뇌를 확인해보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동시에 똑같이 반응한다고 한다. 신경학자들은 이 런 현상을 두고 '화자와 청자의 신경 결합'이라고도 설명한다' 정리하면, 인간의 두뇌는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을 이해할 수 있 도록 진화했고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문화적 도구가 되 어 유전자와 문화의 상호 진화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며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의 인생은 물론 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도 계속되는 장대한 이야기의 근원이 초자 연적인 창조주라고 여긴다.
이야기는 생존을 위한 진화적 과정에 의해 다듬어진 두뇌의 정 교한 예측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두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 로 눈, 귀, 피부, 내부 기관 등 신체 각 부분이 전해오는 자극을 받 아들이는 것이다. 두뇌는 이 정보로부터 현실에 대한 인식, 자신 에 대한 감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 등을 이끌 어낸다. 이러한 과정을 보통 의식意識이라고 부른다. 두뇌는 새로운 감각 정보와 함께 끊임없이 그 예측 장치를 새롭게 개선하며 그 예측력을 이용해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이끌어주고 무엇보다 도 위험 요소들을 피하며 식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인간은 예측 장치를 통해 무거운 물체는 아래로 떨어지고 그 늘진 곳에 있는 물체는 더 어둡게 보이며 물은 씹을 필요가 없다 는 사실 등을 배우게 된다."
- 위약이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그 이야기가 인간의 문화적 형성 과정에 이미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르 게 작용할 수 있다. 궤양에 대한 치료법으로 위약을 활용할 때 이 웃하고 있는 덴마크와 네덜란드보다 독일에서 효과가 2배나 더 높게 나타났고 고혈압 치료법으로 활용할 때는 다른 국가들에 비 해 독일에서 그 효과가 훨씬 미미하게 나타났다." 인간의 믿음에 의해 신호를 받아 만들어지는 두뇌의 화학 물질은 염증이나 긴장감을 포함한 다양한 자극에 대한 대응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중국 인 중 전통 의학과 점성술을 신봉하는 사람은 태어난 해가 특정한 신체 기관과 관련이 있으며 최종적으로 사망의 원인까지 될 수 있 다고 믿기 때문에 해당 기관이나 장기에 병이 생기면 평균 4년에 서 5년 이상 빠르게 사망했다." 이같은 놀라운 결과는 중국계 미 국인과 유럽계 미국인의 사망률을 비교 연구한 결과로 도출된 것 이다. 태어난 해가 같고 역시 같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비교해 보니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계 미국인은 운 명론적인 이야기를 믿었고 스스로 그런 예언을 현실로 만들었다. 특정 질병에 걸렸을 때 이들이 사망하는 확률이 더 높아지자 비슷 한 문화적 믿음을 갖고 있던 주변 사람들도 자신의 믿음에 더욱 신뢰를 갖게 되었다. 이처럼 수명이란 때로는 유전자가 아닌 문화 적 이야기의 힘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본능적인 감정에 대응해 신 체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만약 위험한 장소에 있거나 안전하지 못한 음식을 먹는다면 몸은 흥분을 하거 나 구토를 하는 것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한다. 마찬가지로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에 있을 때 두뇌는 고 통과 통증을 줄여주는 상황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이런 일은 특히 아이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넘어져 무릎을 다친 아 이에게 어른이 그저 "호" 하고 불어주는 것만으로도 진정하는 모 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감각적 경험과 현실을 일치시 키려는 두뇌의 전략 중 하나로도 생각할 수 있다.
-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관습도 유익한 면 이 존재하기 때문에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사냥을 예로 들어 생각 해보자. 전 세계의 모든 공동체는 사냥을 마치 의식을 치르듯 진행했다. 동물 흉내를 내고 오직 특정 지역에서만 사냥을 하며 때 로는 고기를 얻는 데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장소를 굳이 찾아가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의식을 앞세운 사냥이 성공한 사례를 분석하던 중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방식의 사냥은 성공 사례의 공통된 방식을 찾아 철저하게 모방하는 일반적인 방법보다 더 나은 전략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사냥터를 선 택할 때도 전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사냥감들이 학습을 통해 그 장소를 피해갈 가 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의식을 거쳐 사냥터 를 무작위로 선택하면 사냥꾼이 특정 장소로 치우치는 경향을 피 할 수 있다. 사실 편견은 인간 인지력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이 다. 침팬지는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편견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일 없이 무작위로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이야기는 공동의 자산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공동체에서 관리 할 수 있는 일종의 체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사냥과 채집을 주로하는 공동체에 세상 모든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정령 신앙이 널리 퍼져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언어가 출현하기 이전 초기 호미닌 공동체에도 이러한 신앙이 존재했을 것이다." 신앙과 관련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인간이 자연 세계와 상호 관계 를 맺고 있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을 자연의 지배 자로 설정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사상은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로 자연스럽지 않은 사상일지도 모른다. 시베리아 동부에 위치한 야 쿠티아 공화국의 야쿠트yakut 부족은 순록을 사냥한다. 그들은 순 록에 정령이 깃들여 있다고 믿고 있으며 정령이 인간을 위해 자신 을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냥은 하나의 의식으로 진행되며 그 의식에는 동물에 깃든 정령과 인간을 위한 희생에 대한 인정과 경외심이 깃들어 있다.
- 동남아시아처럼 기후가 온화하고 습도가 높으며 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의 언어는 모음을 더 많이 그리고 자음을 더 적게 사 용하며 대부분 음절이 단순하다. 반면, 열대우림지역에 속해 있지 않은 영국이나 조지아의 언어에는 자음이 넘쳐난다.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는 더 강하게 숨을 뱉으며 발음하는 자음이 있 는 단어가 더 많다. 또 사막에 가까운 건조 기후에서는 중국어나 베트남어 같은 성조 언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건조한 기후가 성대 의 움직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 이유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다시 말해, 해부학적, 환경적, 문화적 영향을 받아 적응한 것이다.
입으로 소리를 내서 하는 말은 기본적으로 ftp 혹은 t와 같은 고주파의 자음에서부터 e와 o 그리고 u와 같이 저주파 모음에 이 르는 일련의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울창한 숲이나 뜨거운 열기 같은 방해물은 언어에 대해 선택 압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방해물이 고주파 음파를 왜곡하거나 중간에 사라지게 만들기 때 문이다. 언어가 서로 다른 이유는 각기 다른 환경에 대한 문화적 적응 과정의 영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인간이 지금과 같이 다양한 소리를 내고 말을 하게 되기까지는 일련의 해부학적 적응을 통한 진화 과 정이 필요했다. 우선 두 발로 서서 걷게 되면서 네 발로 걸을 때 앞 다리를 지탱했던 갈비뼈와 횡격막의 부담이 사라졌다. 이 덕분에 마음대로 호흡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입에서 성대로 이어지는 발성 통로인 성도聲가 활짝 열렸다. 또한 후두가 혀의 뒤쪽 부분 까지 내려와 크기는 작지만 중요한 말굽 모양의 뼈인 이른바 설골 에 매달리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변 화를 통해 성도는 더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혀는 더 넓 은 공간을 확보해 말을 하는 동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자음과 모음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진화적 측면에서는 위험을 감수한 전략이었다. 후두의 위치가 낮아졌다는 것은 이제 더는 숨을 쉬면서 무언가를 삼킬 수 없게 되었고 다른 영장류에 비해 목이 막히거나 질식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아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영장류의 후두는 비강 안에 서도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간의 아 기는 마치 호흡용관을 단 것처럼 후두의 위치가 높아 숨을 쉬는 동시에 젖을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3개월 정도 지나면 후두의 위 치가 내려가 말을 할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진다. 후두의 위치가 높은 유인원은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인간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
- 일단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인간은 하나의 언어만 말하는 것으 로 그치지 않는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렇게 구사하는 각각의 언어 는 처음에 두뇌를 변화시키고 성격과 행동 등을 미묘하게 변화시 킨다. 언어와 관련한 문화적 진화는 인간의 생명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된다. 언어는 인간을 넘어서는 힘을 갖고 있다. 감정이 변하고 신체 언어가 변 한다. 나는 슬픔을 표현할 때는 터키어를, 풍자를 하고 싶을 때는 영어를 쓰는 것이 더 좋다." 터키의 작가 엘리프 샤팍의 말이다.  언어는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만들어간다. 영어를 쓰는 사람은 일본어를 쓰는 사람에 비해 꽃병을 깨트린 일 같은 사고의 원인이나 원인 제공자를 더 잘 기억한다. 영어로는 "제이미가 꽃병 을 깨트렸다"는 방식으로 상황을 직접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만 일본어에서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으 며 그저 "꽃병이 깨졌다"라고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언어 에 존재하는 구조는 현실을 구성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만들어 낸다.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과 인간의 본성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 인간의 두뇌는 변하고, 인지 능력은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문화적 입력 요소에 따라 새롭게 깨어난다.
- 언어에 따라 방향을 설명하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하다. 영어에 서는 "나의 왼쪽 다리처럼 주로 왼쪽, 오른쪽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그렇지만 전 세계 언어 중 대략 3분의 1 정도는 왼쪽, 오른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캥거루kangaroo'라는 단 어로 유명한 오스트레일리아 퀸즈랜드 북단의 원주민 언어인 구 구이미티르Guugu Yimithirr어는 위치와 방향을 동서남북으로 설명 한다. "저 사람 북쪽에 서 있는 남자가 내 남동생이다" 같은 식인데 모든 교환이나 거래를 할 때는 방향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 원주 민이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머릿속으로 동서남북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공 간에 대한 의식을 구성하는 방법에 있어서 인지적 변화가 필요하 다. 만일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어 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올 때 서쪽에서 왔는지 동쪽에서 왔는지부 터 기억해야 한다. 구구 이미티르 같은 언어 중 일부는 행동을 나 타내는 모든 동사가 방향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완전히 다 른 개념적 틀이다. 무방향성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에게는 익숙하 지 않겠지만, 익힐 수 있는 기술이다.
- 한 실험에서는 영국인과 독일인에게 한 여성이 자신의 차를 향 해 걸어가고 있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국인은 행동에 주목해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독일인은 좀 더 전체 적인 관점을 가지고 행동의 목적을 포함시켰고 대부분 "한 여성이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간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그 상황에 사용 가능한 문법도 영향을 미친다. 독일인과 달리 영국인에게는 '-ing'로 끝나는 현재진행형이 있어서 현재 일어나는 행동을 묘사 할 수 있다.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모호한 상황을 설명할 때 독 일어를 구사하는 사람에 비해 행동의 목적보다 행동 그 자체를 언급할 확률이 더 크다. 그렇지만 영어와 독일어를 모두 구사하는 사람이 행동과 목적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는가 하는 문제는 이러한 실험이 어느 나라에서 진행되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독일 에서 실험이 진행되었다면 목적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고 영국 에서 실험이 진행되었다면 행동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다.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상관없이 이 실험은 한 사람의 관점 을 결정짓는 데 문화와 언어가 어떻게 얽혀서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 1960년대 언어 심리학 분야의 선구자였던 수전 에르빈 트립이 영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여성들에게 미완성 문장을 마무리 지어달라는 요청을 하자 각 언어별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진 소망이 가족의 뜻과 맞지 않을 때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일본어로 마무리할 때는 "대단히 불행한 시간이 될 것이다”라고 마무리했고 영어로 마무리할 때는 "내가 하고 싶 은 대로 하겠다"라고 마무리한 것이다. 에르빈 트립은 이 결과로 부터 인간의 생각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의 한계 안에 존 재하며 두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각각의 언어에 맞춘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다는 결론을 내린다. 당시에는 대단히 놀라운 개념이 었지만, 훗날 이어진 다른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실제로 두 종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언어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 사회의 성장으로 인한 장점도 있지만, 경쟁으로 인한 압박이 늘 어나 인지적으로 더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구성원 사이에서 는 단단한 유대 관계가 반드시 필요했고 이 관계가 계속해서 유지 되고 확장되어야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모든 구성원의 사회적 위치와 평판을 기억해야 했다. 사냥 같은 중요한 활동을 포기하고 서라도 관계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일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사 람인지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 비해 두뇌에서 사회적 인지 처리를 담당하는 신피질 영역이 극적으로 성장한 것 은 우연이 아니다. 신피질의 성장은 피질 주름이 늘어나면서 이루 어졌다. 이렇게 늘어난 피질 주름은 언어를 위한 연결성을 강화시 켜준다. 규모가 커진 사회는 언어의 진화를 위한 선택 압력을 제 공한다. 또한 언어의 진화는 또 다른 진화적 의견 교환의 순환에서 더 큰 사회를 만든다

- 새롭게 등장한 일신교의 신은 궁극의 심판하는 눈을 가지고 인 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지옥과 천국 중 어느 곳에 보낼지 결 정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경전은 모두 심판하는 신의 신성한 감시하는 눈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 눈은 인간의 몸과 마음 을 꿰뚫어 본다. 또한 대부분의 신은 인간의 선한 행동보다 악한 행동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따라서 종교는 점점 규모가 커지는 사회를 통제하려는 사회적 선택 압력을 통해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 사 회가 수용하는 종교의 유형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통제력의 종류 나 유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일상과 도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상위 신은 혈연관계를 넘어 낯선 이들 사이에 대규모 협동이 필요한 조세를 바탕으로 하는 부유하고 거대한 사 회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응징과 개인을 중요하게 생 각하는 신을 중심으로 한 신앙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 람들의 대규모 협동을 손쉽게 끌어내려는 적응 과정에서 진화했 을 것이다." 
- 굵은 머리카락, 많은 땀샘, 독특한 치아, 동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교적 작은 젖가슴 등은 모두 대략 3만 5000년 전에 나타난 EDAR 유전자가 변하면서 만들어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유전자가 그렇게 빨리 퍼지게 된 이유가 당시 기온이 높았기 때문에 더 많은 땀샘이 유리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저 그런 모습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창백한 피부와 파란 눈동자 역시 한때 이국적이고 더 매력 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짝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었 기 때문에 두 특성이 북유럽 지역에서 빨리 퍼져나갈 수 있었을지 도 모른다' 지난 2000년 동안 영국 사람은 키가 더 커지고 머리카락 색은 금발에 가깝게 변했으며 더 푸른 눈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인간 역사에서 가장 매혹적인 문화 실험 중 하나가 장신구의 발 명이다. 인간은 장신구를 통해 타인에게 의미를 전달한다. 아주 오 랜 조상의 시대부터 목걸이는 대단히 효과적인 상징물이었다. 목 걸이는 문화적 정체성이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는 데 사용되었 고 몸에 늘 지니는 부적의 역할도 했다. 건강과 물질적 풍요를 가 져다주는 작지만 대단히 강력한 부적으로 여긴 것이다. 스페인 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색깔 있는 조개껍질 목걸이는 대략 11만 5000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블 롬보스 Blombos 동굴에서는 인간이 사용했던 것 중 가장 오래된 목걸이가 발견되기도 했다. 눈물 모양의 '바다 달팽이' 껍질을 65개 이상 모아 구멍을 뚫어 만든 이 목걸이는 황토색 장식 흔적이 여 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종류의 목걸이는 7만 5000년 전 인류의 조상이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그들과 지금의 우리가 공통 된 인간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블롬보스 동굴에 서 발견된 선사 시대 목걸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목걸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 목걸이를 누가 만들었든지 간에 날 카로운 심미안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구슬이나 조개껍질을 골라내 만들었을 것이고 목걸이를 착용했을 사람은 그 의도와 의미를 잘 알아차렸을 것이다.
- 의복도 목걸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똑 바로 서서 걷는 종이기 때문에 가리지 않으면 드러나 보일 수밖 에 없는 성기를 가려야 하는 사회적 규범에서 '나뭇잎으로 만든 옷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행동을 통해 혈연관계를 넘어 수많은 사람이 갈등 없이 가까이 모여 지속적으로 살 수 있게 되 었다. 개인적으로는 의복이 아기를 업거나 월경 중일 때 몸을 가 리려는 실용적인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인간이 만들거 나 사용하는 다른 모든 물건처럼 의복 역시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 미를 지니고 있다. 기본적인 의복에 여러 장식이 추가되면서 가치 가 높아졌고 그 형태가 복제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성별에 관계없 이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상징적인 의복 규정을 통해 지위, 성별, 그 밖의 다른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나타낸다. 예 컨대 부족이나 종교에 대한 충성심도 포함이 되며 때로는 다른 공 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도록 해 서로 각자 집 단을 이루어 갈라지고 이 때문에 한 부족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 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의복은 각자의 기술과 전문성을 가지고 다른 문화를 발전시키고 진화하며 경쟁하도록 돕는 데 중요한 역 할을 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장식이 문화적으로 적응하여 진 화하는 '목적'이다. 사회적 규범을 반영하고 공통의 이야기 안에 부족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 한 집단을 내부적으로 단속하는 다양한 사회적 규범이나 기준 안에서도 각기 다른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다양한 집단이 줄지어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점이 그 안에 있는 구성원의 육체와 정신까 지 변화시키게 된다. 문화적 학습은 사람들의 두뇌를 바꾼다." 어 떤 기술이든 그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은 근육의 통제, 조정, 균형, 속도와 거리의 판단 등과 관련된 신경 연결망을 '연결해주는' 과 정과 관련이 있다. 의도하지 않아도 습득한 기술이 자연스럽게 구 현된다고 느껴질 때까지 이러한 과정이 계속된다. 일단 행동이나 사고의 과정을 반복해서 연습하면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되면 두뇌가 느끼는 부담이 현저히 줄어 작업 기억 능력에 여유가 생기고 세세한 부분까지 혁신을 일으켜 인간 우수성의 극한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모습은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에서 부터 뛰어난 연주자나 곡예사가 되는 일까지 어떤 분야에서든 찾 아볼 수 있다." 컴퓨터 게임을 장시간 하는 사람은 두뇌 안에 특 정 영역이 공통적으로 생겨나 오직 게임의 중요 규칙을 알아보는 것에 전념하게 된다." 인간의 문화적 형성 과정 역시 신체에 영향 을 미친다. 뛰어난 테니스 선수는 라켓을 쥐는 쪽 팔의 골밀도가 20퍼센트 이상 높아지며 고산 지대에 사는 사람은 적은 산소량에 적응해 더 많은 적혈구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폐의 크기도 더 커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같은 현상이 유전적 변화가 아니 라 한 사람이 평생 살아가면서 겪는 생물학적 변화라는 사실이다.
- 또 다른 바다 유목민인 인도네시아 바자우Bajau 부족의 경우 문 화적으로 진화한 생활 양식이 유전적 적응을 불러왔다. 유전학자 들은 바자우 부족의 놀라운 잠수 기술을 조사해 그들의 DNA에서 몇 가지 유전자 변형체를 찾아냈다. 이 변형체를 통해 바자우 부 족은 혈액과 중요 장기가 더 많은 산소를 보유하고 체내의 이산화 탄소 농도를 조절하며 동시에 산소가 녹아있는 혈액의 보관소 역 할을 하는 비장의 크기를 늘릴 수 있었다. 바자우 부족의 비장 크기는 일반인에 비해 50퍼센트 정도 더 크다. 이러한 유전자의 일부는 지금은 멸종한 데니소바인과의 성적 교류 과정에서 유전 적으로 물려받게 된 것으로 보이며 문화적 진화 압력을 통해 개체 군 안에서 선택되었다.
- 체면 문화는 정부의 통제력이 약하고 재산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바로 위상이 아닌 실질적인 지 배력이 사회적 규범에 선택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 같은 지역은 보통 외진 곳에 떨어져서 목축을 주로 하며 가축 도둑도 많다. 서로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해낼 만한 기회 가 많지 않고 그 누구도 소유물에 손대지 못한다는 폭력성에 대한 평판이 보호 장치가 된다. 가장 폭력적인 행위를 불러일으키는 것 은 역시 명예나 체면에 대한 공격이다. 이는 부끄러움이나 모욕적 인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농경 사회에서는 많은 인구가 가 까이 정착해 살고 있으며 공동으로 소유한 땅이나 관개수로처럼 공동의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이처럼 농경 사회에서는 실질적인 지배력이 아니라 위상을 더 가 치 있게 보는 사회적 규범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곡물은 훔친 다고 해서 가축만큼 이익이 바로 생기지 않으며 농부는 범법자를 상대할 때 자신의 힘보다 더 강력한 집단 행동을 끌어낼 수 있는 전통적 관습 등에 의존한다. 누군가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자신도 위험을 감수하며 사전에 더 공격적인 행동을 보여 상대방을 단념시키려는 대신 평소에 친절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취해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한 상황에서 서로를 보호하고 돕는 쪽을 택한다.
미국 남부 지방 사람의 뿌리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이민자 이다. 주로 거친 평원이나 산지에서 목축을 했던 이들은 자율성과 체면의 문화를 고스란히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들이 정착 한 많은 지역에서 농경이나 도시 문화에 동화되기도 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최남부 지역에서는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 는 체면 문화를 계속 유지했다. 반면, 북부 지방에 정착한 사람들 은 농사를 주로 짓던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온 이민자였다. 이들에게는 강력한 공동체의 제도와 전통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규범은 변화에 저항한다. 왜냐하면 태도나 관습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 체면 문화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위협이나 협박은 사회가 하 나로 뭉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이러한 것이 통용되는 사회는 결국 허물어지고 더욱 친 사회적인 집단의 희생물이 된다. 이제는 앞서 언급했던 미국 북부 지방처럼 위상이나 명성을 중요하게 여 기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한편, 인구 구성이 점점 다양해지고 도 시에서처럼 서로 다른 규범에 노출되면서 규범을 어기는 사람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가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더욱 다양한 표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사회적 규범에 노 출된다는 것은 각 구성원이 더욱 개방적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연 구에 따르면 어린아이가 인종적으로 다양한 학교에 다니면 여러 인종 사이에서 사회적 응집력이 더욱 커진다고 한다.
- 인간은 탐욕스러운 존재로 무언가를 모으려는 본능 을 가지고 있다. 마치 까치처럼 인간도 어릴 때부터 그저 아름답 다는 이유로 욕심 나는 물건을 모은다. 인간의 문화적 진화는 이 러한 충동을 부추겼다. 어린아이는 세 살 무렵부터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강렬하게 의식한다.' 설사 기존의 소유물과 완전히 똑같 은 것을 준다고 해도 대체되는 것에 저항한다. 사회가 충분히 성 장하면서 사유 재산에 대한 규범을 통해 자신의 몸에 직접 치장하 고 장식하는 것에서 장식한 물건을 소유하는 쪽으로 변한다. 이러 한 변화의 과정과 오직 아름답고 귀하기 때문에 모은 수집품의 교환이 명성, 평판, 신용을 대신해 부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교환의 중개자 혹은 집행자가 된다. 이렇게 되면서 교역의 규모가 새로운 차원으로 크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된 선사 시대의 조개껍질 목걸이를 떠 올려보자. 목걸이를 만든 여러 이유 중 한 가지 특별한 이유는 바 로 수집과 보관에 대한 욕구다. 적당한 조개껍질을 찾아 목걸이를 만드는 일에는 분명 선택에 따른 이익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생존에 급급했을 당시 대단히 정교한 기술과 많은 시간 등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목걸이를 굳이 만들었을 리 없다. 이와 관 견해 인상 깊은 이론은 조개껍질 목걸이가 부족의 정체성을 강화 하려는 사회적 목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장신구가 교환 가능한 수집품의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바로 화폐의 개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한 것과 동일하게 가운데 구멍이 뚫린 조개껍질은 알제리에서부터 아프리카 최남단 그리고 이스라엘까 지 이어지는 여러 유적지에서 발견된다. 그 역사가 약 12만 년 전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조개껍질은 여러 부족이 수천, 수만 년의 세월 동안 공통의 문화적 관습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바 다에서만 구할 수 있는 조개껍질이 발견된 유적지 중 많은 곳이 깊은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사실은 조개껍질이 먼 곳까지 이동했다는 증거가 된다. 다시 말해, 당시에도 바닷가 부족과 내륙 부족 사이에 대륙을 가로지르는 연결망을 따라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가공된 조개껍질은 부족간 연결망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같은 선사 시대의 연결망은 유전적, 문화적 교류가 늘어나도록 도왔을 것 이고 문화적 진화를 촉진시켰을 것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집단 에 의존하도록 진화하고 또 집단이 생존을 위해 다른 집단에 의존 하도록 진화하는 과정에서 교역을 위한 연결망은 아프리카 대륙 에 살고 있던 인류의 조상에게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 이후 찾아온 빙하기를 견디며 살아가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조 상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야말로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 진화 사 이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학적 체계 안에서 집단 선택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논쟁의 여 지가 있지만, 문화적 진화에서 집단 선택은 명성과 사회적 규범을 통한 커다란 원동력이 됨은 분명해 보인다"
- 인간이 대부분의 진화 과정을 끝마친 홍적세 기간은 자연 환경 이 정말 혹독했다. 이 때문에 적은 인구수가 유지되면서 여러 공 동체 사이에 교역 기회도 제한되었다. 이 결과는 아프리카 대륙에 서 갈라져 나온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인류의 여러 후손 사이에 나타난 유전적 차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2만 5000년 전 고 원지대에 최초로 정착한 조상들의 후손인 지금의 티베트인은 고 대 데니소바인과의 성적 결합을 통해 특별한 유전자를 물려받았 고 이를 통해 임신한 여성들은 낮은 혈중 산소 농도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태반 포유류가 겪는 고지대의 한계를 극복 한 것이다. 티베트 여성은 이 특별한 유전자가 없는 여성들에 비 해 두 배는 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강력 한 선택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 다 른 고원 지대인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에 최초로 인간이 정착 한 것은 약 1만 1000년 전이다. 역시 그곳 사람도 다른 유전적 적 응 과정을 거쳤다." 혈액의 헤모글로빈 농도가 높아졌고 산소를 끌어모으는 방법을 개선했다. 몇 가지 서로 다른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피부색은 과거에 조상이 이주해왔다는 분명한 증거인데 태양의 위력이 약한 낮은 고도에서는 멜라닌 색소가 사라져 피부 색이 더 밝아진다!" 멜라닌 색소는 자외선을 막아주는 반면, 피부 가 태양에 반응해 만들어내는 필수 비타민 D의 양을 제한한다. 다만 유럽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창백한 피부는 사실 극히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사냥과 채집을 주로 했던 스페인 원주민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유럽인은 불과 7000년 전만 해도 검은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 문화적 진화가 항상 발전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상 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생물학적 진화에서도 동일한 현 상이 발견된다. 다윈은 일부 따개비가 유전적으로 더 단순한 형 태로 진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따개비가 더 복 잡한 형태로 진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일부 따개비는 단순한 형태 로 진화한 것이다. 인간의 문화적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 구의 규모와 유대감이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구가 많 을수록 복잡한 기술이 더 많이 탄생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태 평양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섬의 인구 규모, 유대 관계를 낚시 도구의 정교함, 종류와 비교해 살펴보았다. 인구 약 1000명의 말레쿨라Malekula섬은 12가지의 서로 다른 낚시 도구를 가지고 있었고 100만 명 이상의 원주민이 서로 이어져 있는 하와이 제도의 본섬인 하와이섬에는 70여 가지가 넘는 정교한 낚시 도구를 찾아볼 수 있었다.
- 1970년, 덴마크의 경제학자 에스테르 보스럽은 전 세계 사회에서 여성이 맡고 있는 역할의 차이를 각 사회가 사용하 는 농업 기술과 연관시켜 조사했다." 초창기 농업처럼 끝이 뾰족 한 막대기나 괭이처럼 손으로 들고 사용하는 농기구가 많이 사용 되고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던 시기에는 여성도 적극적으로 농사를 거들었다. 그런데 쟁기의 사용으로 노동력보다 자본이 더 중요 해지고 강력한 상체의 힘과 쟁기를 잡는 힘 그리고 필요할 때 쟁 기를 뒤로 잡아당기거나 앞으로 끄는 가축을 다루는 힘이 더 중 요해졌다. 또한 쟁기는 자녀를 돌보면서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성은 주로 집 밖에서 쟁기를 사용해 농사를 짓고 여성 은 집 안에서 집안일을 돌보는 것이 일종의 공식처럼 자리를 잡았 다. 결국 이러한 노동의 분업화는 여성이 있어야 할 '원래의 자리 는 집 안이라는 규범을 만들어냈다. 이 같은 규범은 심지어 경제 의 기반이 농업을 벗어난 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집 밖에서의 여성 의 모든 활동과 취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경우처럼 과거 경제 기반을 괭이 등을 사용하던 기초적 농업 에 두고 있다가 발전한 문화권에서는 쟁기를 주로 사용했던 아라 비아반도를 중심으로 한 서남아시아 지방과 달리 남녀가 더 평등 하다. 사하라 사막 남쪽에서도 이와 유사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가 축을 소유하는 일이 흔해지면서 모계 중심의 사회적 규범은 부계 중심의 사회적 규범으로 바뀌게 된다." 오직 가축에 치명적인 체 체tsetse 파리(아프리카 원산의 흡혈성 파리의 총칭.옮긴이)가 들끓어 가 축을 사용한 농업이 불가능했던 지역에서만 모계 중심의 사회 체 제가 유지되었다. 이처럼 환경으로 인한 압력은 문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 사냥과 채집을 주로 하는 대부분의 공동체는 인간을 생태계의 일부로 여겼다. 문화적으로 진화된 그 들의 행동과 기술 역시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이러한 사고를 반영 한다. 예컨대 그들에게는 1년 중 특정 기간이나 혹은 특정 지역에 서 사냥을 제한하는 사회적 규범 같은 것이 존재했다. 이것은 아마 도 생존과 관련해 손에 넣으면 다시 채워지지 않는 자원은 손대지 않겠다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인간이 동식물에 대해 야생 상태에서 상호관계를 유지하 지 않고 반대로 소유를 시작하게 되면 인간도 생태계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바뀌게 된다. 인간이 처음에는 살아 있는 동물 을 신으로 섬기다가 자연의 거대한 구조물로 그리고 다시 인간이 만든 인공적 구조물로 바뀐 뒤 마지막으로 인간의 형상을 한 신 을 따르게 된 것처럼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위계질서도 변화 가 생겼다. 인간은 영구적인 구조물을 건설해 자연에서 나와 거주 지를 옮겼고 도로를 포장했으며 물의 흐름도 바꾸었다. 그 다음에 는 자연과 점점 더 확실하게 구분되는 인간만의 세상을 만들어갔 다. 인간은 인공적인 환경을 구축해 춥고 축축하고 지저분하고 위 험한 자연의 불편으로부터 기쁜 마음으로 벗어났다. 그러는 동시 에 생태계의 또 다른 일부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로 결정했다. 인위적으로 개입해 농작물과 가축의 품종을 바꾸고 물적 자원의 형태에도 수정을 가한 것이다. 최근에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이런 변화를 어린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비교했다. 미국의 대도시인 시카고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근교인 메노미니의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에서 자라는 아이가 동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비 교한 것이다. 다만, 실험 시작 전 메노미니 공동체의 장로가 자연 과 관계없는 환경에서 동물과 노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 적해 진짜 나무와 풀 그리고 바위가 있는 배경이 추가되기는 했 다. 이 연구에 따르면 도시 아이는 동물 장난감을 사람처럼 대한 반면, 원주민 공동체 아이는 장난감이 진짜 동물인 것처럼 상상하 며 놀았다고 한다.
- 1780년 화산이 폭발하며 핀지랩Pingelap이라는 작은 산호섬의 주민이 거의 다 사망하고 20여 명 정도만 살아남은 일 이 있었다. 이 섬은 상대적으로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고 외부인과 의 혼인을 꺼리는 사회적 관습까지 더해져 유전적 변형이 축적되 었다. 현재 누적된 근친의 결과로 섬 주민 중 10퍼센트 이상이 심 한 색맹으로 세상을 흑백으로밖에 보지 못한다. 색맹증은 낮에는 문제가 되지만, 밤에는 오히려 보통 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사물을 더 잘 구별할 수 있어 밤낚시에 적격이다. 이 사실은 왜 색 맹증 유전자가 계속 유지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 인간 사이에 나타나는 유전적 차이는 점점 줄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 유전적 진화를 멈췄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더 많이 뒤섞이 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존재한 부족의 고립된 생활은 부족 사 이의 혼인, 이주, 교역, 자유분방한 성생활 등으로 막을 내렸다. 심 지어 다른 부족과의 혼인을 금지하는 강력한 사회적 규범이 있었 을 때도 유전적 증거를 보면 부족 사이의 교류가 계속 이어졌다 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말을 가축으로 길들이고 바퀴가 달린 운송 수단을 발명하게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넓게 퍼져나갔다. 그렇지만 19세기가 될 때까지도 유럽에서는 가까운 친척끼리 혼 인하는 풍습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때 자전거가 발명되면서 이 같은 풍습은 크게 줄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과도 교제 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 발하기 전까지 400만대가 넘는 자전거가 팔려나갔다. 특히 프랑 스가 큰 영향을 받았는데 프랑스인의 체격은 더 커졌고 친척끼리 혼인하는 경우도 크게 줄었다.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 인간은 모두 시간의 피조물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 진 우주 안에서 진화했고 인간의 육체는 지구라는 행성의 움직임 을 따라 적응했다. 인간의 모든 세포는 시계 유전자를 가지고 있 어 이 유전자가 마치 진짜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작 용하며 유전자 발현이라는 진동을 일으킨다. 이러한 시계가 유전 자, 호르몬, 심장 박동, 두뇌 활동, 감정, 신체 기능 등을 조절한다' 인간의 내장은 대략 오전 10시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며 고통을 가장 잘 견뎌낸다. 온몸이 최고로 조화로울 때는 오후 2시쯤이다. 오후 5시가 되면 육체적 능력이 최고조에 달해 근육의 힘과 유연 성이 최대치에 이르며 심장과 폐도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알코 올에 대한 내성은 저녁 8시 무렵이 최고이고 9시쯤 되면 수면 호 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가장 깊게 잠이 든다.' 체온의 경우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 제일 낮아 진다. 인간의 육체는 월경부터 임신까지 놀라울 만큼 규칙적으로 생물학적 시간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 기술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우주의 흐름과 이 사회가 똑같 이 움직이게 만들 수 있도록 진화했다. 그렇지만 아주 오래전 과 거에는 시간을 헤아리는 일이 먹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때를 알 려주는 것처럼 생존의 조건과 관련이 있었다면 이제는 절대적으 로 주관적인 사회적 규범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기독 교 성직자는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의 날짜를 정하기 위해 천 문학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복잡한 부활절 계산 방법 이 그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기독교 달력과 관련된 정치학은 시간과 인간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그에 따른 해석을 둘러싼 문화적 규범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연중 행사인 부활절은 2세기에 들어서고 나서야 비 로소 기념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부활절은 원래 기독교가 아닌 이교도들이 봄을 맞이하는 축제에서 변형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유월절 축제를 마치고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사흘 뒤에 부활했다고 믿는다. 유월절은 오 늘날로 치면 4월쯤인 유대력 니산월 15일이며 대략 봄의 첫 번째 보름달이 뜨는 때와 맞아떨어진다. 그렇지만 유대인의 달력은 윤 일보다는 윤달이 있기 때문에 유월절은 해마다 달라진다. 기독교 에서는 부활절이 자신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일요일이 되기를 바 랐다. 동시에 이 새로운 종교가 유대교와 확실히 구별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기독교의 부활절은 절대로 유대교의 유월절과 겹쳐 서는 안 되었다. 유월절 축제의 본질과 부활절의 배경을 생각하면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모습이 바로 종교 정치인 것이다. 결국 부활절은 춘분이 지난 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뜬 이후 의 첫 번째 일요일로 결정되었다. 만일 보름달이 일요일에 뜬다면 부활절은 그다음 일요일로 미뤄졌다. 천문학과 수학이 동원된 복 잡한 계산 방법이 만들어져야 달, 태양, 별의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그래야만 앞으로 다가올 춘분의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 성직자는 수 세기 동안 천문학 분야의 관찰과 연구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독교 달력은 계절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양력과 음력을 모두 사용했지만 특별한 축 제일에 대해서는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했다.
- 인간의 두뇌가 제한된 정보만으로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려 나가면 대부분은 이를 통해 별다른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세상 에 대한 인식을 구축해나간다. 신경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의사 결정에 있어 일종의 '신체적 처리 과정이 진행된다고 설명 한다. 두뇌의 복내측 전두엽 피질이 혈압 변화나 심박수 상승 같 은 신체적 신호를 만들어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무의식적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린다. 그러면 두뇌는 의식적 추론이 따라잡기 전에 이미 직관적 결정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 급한 치마의 줄무늬 색 문제의 경우 야외의 자연광 아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은 흰색과 금색이라고 생각했던 반면, 실내 에 오래 있었던 사람은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빠르고 감정적인 생각과 판단은 이치 에 들어맞는 행동이다. 생존을 좌우하는 상황은 결국 빠른 결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자와 마주했을 때 달리기로 앞지를 수 있을 까 생각한다면 이미 상황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직관적인 결정은 종종 형태의 인식이나 환경적 단서 혹은 유용하다고 증명된 여러 편견을 바탕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집단의 생존 역시 대부분 빠른 생각에 의지한다. 만일 소방관이나 군인이 도움을 주 기 위해 달려가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안전을 먼저 생각 한다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 다. 그렇지만 일단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다면 그 집 단의 생존 확률은 상승한다. 운동선수나 다른 숙련된 예능인이 필 요한 기술을 익히고 연습을 한 후에도 동작 하나하나에 대해 의식 적으로 신경을 쓰고 판단하려 한다면 제대로 된 솜씨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감정이란 대단히 유용하다. 결국 위험에 대해 빠르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공포심이며 위협을 더 확실히 깨달 을 수 있도록 상호 작용을 증폭시키는 것은 분노다. 그리고 죄책 감 때문에 사회 규범을 벗어나거나 집단의 결속을 위태롭게 만드는 일을 꺼리게 된다. 
- 생물학자들은 인간이야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르거나 사실이 아닌 정보의 개념을 확대, 재생산하는 유일한 영장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다른 영장류는 현재의 상황과 다른 세상의 상 태를 이해할 수 없으며 다른 개체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도저히 상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하며 타인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여기에서부터 인간은 종종 자 신이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반면, 나와 의견을 달리 하는 타인은 그 렇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렇지만 타인도 자신과 마찬 가지로 합리적이지만 대신 서로 다른 목표와 근본적 신념 그리고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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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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