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테크

과학 2023. 1. 6. 16:46

- 남성들은 운동용으로 자전거를 탔지만 여성들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이동의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이용해 혼자 서도 멀리 갈 수 있었고, 가보지 못했던 곳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따라 서 자전거는 여성들이 독립적인 심성을 키우는 데 기여한 이동 수단 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자전거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는 것은 여성이 사회에 나가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데도 그 힘이 꽤나 중요 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자전거가 이런 모든 변 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여성해방운동과 같은 일련의 물결들 이 이미 그 이전부터 넘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전거가 기존의 사회운동을 강화하고 확산시켜 더 많은 이들을 움직이게 하 는 데 도움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자전거는 19세기 후반부터 굉장한 바람을 일으켰던 여성 참정권 운동, 즉 여성의 투표권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에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참정권 운동가들을 찍은 사진을 보면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여성이 자전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멀리 떨어 져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집회를 할 때 자전거를 타고 참여하 기도 했으며, 경찰이 쫓아오면 자전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도 했다. 심지어는 참정권 운동을 반대하는 남성 정치인들의 행렬을 자전거로 가로막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자전거는 자신 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정치적 기술이었다.
- 지금은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일상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시대다. 자전거는 현대 여성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바퀴가 크며 타기 힘들고 위험한 페니파딩이라는 자전거 대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안전 자전 거를 만들어내는 데는 여성의 역할이 컸다. 또 그런 안전 자전거가 여 성의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인간 과 기술은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상호 관계 속에서 새롭게 거듭 난다. 어떤 기술을 손에 쥐고 또 그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나 가느냐에 따라 기술의 미래는 물론 우리의 미래 또한 바뀔 수 있을 것 이다.

- 인쇄를 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종이다. 종이는 중국의 채륜이 기원후 105년에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꾸지뽕나무와 마, 옷감 넝마 등을 사용하여 종이를 만들었다. 서양에는 오랫동안 종이 가 없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등에서는 식물의 껍질인 파 피루스에 글자를 적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소가죽으로 만든 소피지 (vellum)와 양가죽으로 만든 양피지 (parchment)가 쓰였다. 파피루스는 쉽게 변질되었지만 소피지나 양피지는 제본을 잘하면 꽤 오랫동안 내용을 보존할 수 있었다.
중국의 종이는 아랍을 거쳐 12세기에 스페인에 전래되었다. 그리 하여 14세기에는 독일 뉘른베르크에 제지 공장이 세워졌고, 15세기 에는 목판을 통해 게임용 카드와 성화가 종이에 인쇄되었다. 이런 배 경이 금속 활판 인쇄술의 발전은 물론 책의 대량 인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왜 중국에서는 종이가 발명되어 널리 사용되었는데 유럽에서는 그러지 못했을까? 한 가지 설명은, 중국에서는 종이 대신 쓸 수 있는 비단이 비쌌던 반면, 유럽에서는 종이의 원료가 귀했고 양피지가 상 대적으로 값이 쌌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인 가격을 말하는 것인데, 종이를 일찍 발명한 중국에서도 종이는 비쌌 기 때문에 관청에서 이면지 사용을 권장했고,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 양피지로 된 책 한 권은 지금의 돈으로 수백만 원을 호가했다.
- 그렇다 하더라도 인쇄술 혁명이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 았다고 한다면 이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역사가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Elizabeth Eisenstein)은 이에 대해 대 안적인 설명을 내놓았다. 그녀는 인쇄술 혁명이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을 낳은 것은 아니지만, 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르네 상스가 인쇄술 혁명 이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인쇄 술을 통해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글이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었다 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다른 시기의 부흥 운동은 등장했다가 큰 영향 력 없이 소멸하였지만, 14세기 르네상스는 달랐다. 인쇄술이 이탈리 아에 국한되었던 인문주의 부흥 운동을 전 유럽적인 현상으로 만들 었기 때문이다. 즉 인쇄술이 (하나의)'a renaissance'를 우리가 아는 (바 로그) The Renaissance'로 바꾼 것이다.
인쇄술은 종교개혁에도 영향을 미쳤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의 출 판을 통제하였으나, 가톨릭에 반기를 든 개신교는 인쇄술의 중요성 을 일찍이 간파했다. 개신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림 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특히 개신교는 교회의 권력과 재산을 가지고 호의호식하는 로마 교황청의 신부들과 예수의 뜻을 따르 는 검소한 목회자를 비교하는 그림을 인쇄해서 사람들에게 배포했 고, 이런 인쇄물들이 평민들을 개신교로 개종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 다. 또 개신교는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성경을 찍어냈는데, 독일어 성경의 인쇄 부수가 50만 부에 달했다. 이렇게 출판된 성경이 식자층 에 퍼져서 로마 교황청의 권위를 현저히 약화시키고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학혁명의 경우에는 인쇄술의 영향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 났다. 과학자들은 고전을 필사하고 고전에 포함된 복잡한 천문도 같 은 그림을 따라서 그리는 데 상당한 시간을 써야 했는데, 인쇄술이 보급되고 인쇄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천문학 책에 등장하는 복잡 한 그림이나 생물학, 지리학 분야의 그림들을 그릴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인쇄된 그림이나 표의 축적이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어 과학 자들이 연구에 투자할 시간이 많아졌다. 과학자들은 책을 필사하고 그림을 그릴 시간에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되었고, 특히 고전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개진할 시간적 여유를 갖 게 되었다.

- 조지 이스트먼이 코닥 카메라를 발명한 것은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일까? 카메라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면 "필요는 발명의  머니"가 아니라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라는 말이 더 적절하게 들어 맞는다. 발명을 하고나니 필요가 생겼다. 즉 코닥 카메라를 만들고 나니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서 카메라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으니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과 인간,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살펴볼 때, 사람이 어 떤 기술을 필요로 하기에 자연스럽게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발명품이 탄생하자 비로소 필요가 생 기는 경우도 기술의 역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특징적인 현상이다. 에 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했을 때 그는 이것의 용도 열 가지의 목록을 작 성했다. 이중에는 임종을 거두는 사람의 유언을 녹음하는 것, 시력을 잃은 사람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것 등이 있었지만, 음악을 듣는 것은 없었다. 그는 몇 년 뒤에 자신의 축음기가 상업적으로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그는 축음기 를 돈을 넣고 음악을 듣는 '주크박스'에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하 지만 결과는 에디슨의 예상을 벗어났다. 축음기는 음악을 듣는 데 가 장 널리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가 없을 때도 공중전화나 삐삐를 사용해 큰 불 편 없이 살았고, 자동차가 없을 때도 마차나 기타 교통수단을 이용 해 도시에서의 삶을 향유했다. 휴대전화가 나오니 매일 전화를 가지 고 다닐 필요가 생긴 것이고, 자동차가 나오니 삶의 속도가 빨라진 것 이다. 필요가 분명해서 이루어지는 발명만큼이나 발명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 필요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다." 새로 운 기술을 세상에 내놓고자 애쓰는 발명가들이 꼭 마음에 새겨야 할 격언이다.

- 물론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당연히 필요하고, 그 전문가들이 잘할 수 있는 영역 또한 수없이 많다. 그렇지만 이렇게 혁신적인 기술의 경 우에는 전문가들이 불리할 때도 있으며, 오히려 아마추어의 관점이 유리할 때도 있다. 무선전신을 발명한 굴리엘모 마르코니 (Guglielmo Marconi)도 당시 전자기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을 발명하려고 했던 물 리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추어였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파장이 짧을 때 전파의 에너지가 극대화되어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파 장을 짧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마르코니는 거꾸로 긴 파 장을 만들어야 전파가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파장을 더 늘리는 쪽으로 무선전신을 개량했다. 결과는 마르코니의 압승이 었다.
벨은 전신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였고 따라서 전신이라는 패러다임에 구속되지 않았다. 이는 벨이 전화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 었던 기반이다. 반면에 벨은 전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 던 전문가였다. 그는 수년간의 실험을 통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전기 회로를 만들었고,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 기술을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화의 성공은 기존 전신 기술의 패러다임에 포섭되지 않은 벨이 목소리 송수신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이 기술에 대한 확고한 전망을 관철시켜나갔기에 가능했다.

- 사람을 태우고 비행한 첫 비행기는 운 좋은 자전거 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라이트 형제는 기존의 과학 이론을 습득하 고 새를 관찰해 날개의 제어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론과 현장 시험이 맞지 않자 이론을 의심했고, 새로운 계수를 구하기 위해 창의적인 자전거 실험을 고안해서 실행했으며, 이 실험에 문제가 있자 풍동을 개 발해 정확한 데이터를 얻어냈고, 이런 데이터에 근거해 비행기 날개 와 프로펠러 디자인을 개선했다. 이들은 박사 학위를 받기는커녕 대 학을 졸업하지도 않았지만, 이론과 실험을 교차 검증하고 결합하면 서 4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이성과 상상력을 멋지게 결합한 라이 트 형제는 랭글리보다, 아니 그 어느 누구보다 과학적으로 사고했던 발명가였다.

- 컴퓨터의 역사가나 컴퓨터 전문가, 엔지니어, 과학자들에게 '컴퓨 터가 누구로부터 시작됐는가'라고 물어보면 다수가 앨런 튜링으로부 터 시작됐다고 답한다. 그런데 나는 그 답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 면 튜링의 논문은 대단히 흥미롭고 중요한 업적이지만 이 논문의 영 향력은 거의 없었고, 이 논문대로 컴퓨터를 만든 사람도 없었기 때문 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튜링의 논문이 컴퓨터를 만든 선구자들에 게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튜링은 미국 프린스턴에 잠시 머물며 여러 과학자를 만난 적이 있 다. 사람들은 튜링이 그때 프린스턴에서 만난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이 후에 컴퓨터를 제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 할을 했을 거라고 추론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잘 따져보면 그런 증거 들은 없다. 튜링을 컴퓨터의 시조로 삼으려 했던 많은 시도는 모두 컴 퓨터라는 것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수학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얘기 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컴퓨터의 기원이 추상적이고 심원한 수리철 학적인 문제에 있었다고 해석하고 싶은 것이다.
- 나는 컴퓨터의 시작을 튜링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 각한다. 그 시작은 바로 자카르의 방직기다. 자동인형 이야기를 할 때 다루었지만, 이 방직기에는 천공 카드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옷감에 무늬를 넣기 위해 실이 들어갈 때 어느 부위를 열어야 하고 어느 부위 를 닫아야 하는지를 조절하는 천공 카드를 사용했는데, 천공 카드의 구멍들이 지금으로 보자면 일종의 프로그램인 셈이다. 넣고자 하는 무늬의 유형을 천공 카드에 프로그램화해서 옷감을 짰기 때문이다.
이 천공 카드를 이용하면 엄청나게 정교한 무늬의 옷감을 짤 수 있었다. 자카르는 이 방직기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초상화 를 방직기로 짰는데, 실크로 된 자신의 전신 초상화를 짜기 위해 사용 한 천공 카드는 무려 2만 4,000장이었다.

- 어쨌건 알파고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어마어마한 능력을 보 여주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보통 바둑판 은 가로와 세로가 19줄이다. 그런데 이 바둑판을 20줄로 바꾸면 알파 고는 사람만큼 바둑을 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19줄 바둑 판으로 바둑을 배웠기 때문에, 바둑판을 조금만 변형하면 사람에게 지고 만다. 바로 이것이 인공지능이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정말로 뛰어나기 때문에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생각하는 능력이 더 발전해서 그런 일 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기술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려면 인 공지능의 이런 속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렇게 인간이 되었습니다  (2) 2023.01.28
브레인 3.0  (1) 2023.01.09
생물은 왜 죽는가  (2) 2023.01.05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7) 2023.01.05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수학의 힘  (0) 2022.12.20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