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왜 죽는가

과학 2023. 1. 5. 19:24

- 자기복제형 RNA 분자가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적으로 더 증가하기 쉬운 배열이나 구조를 가진 RNA 분자가 재료를 독점하는 바람에 다른 분자가 만들어지기 어렵게 됩니다. 더욱이 자기 편집을 통해 효율적으로 증가하는 것들끼리 연결이 되면 더더욱 다른 분자들의 생성을 방해합니다. 이처럼 생산성이 더 좋은(잘 증가하는) 분자가 자원을 독차지해서 그것들만 더욱 잘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연쇄 반응, 즉 '선순환'이 RNA를 '진화'시켜 생물이 탄생하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추정됩니다.
다만 이 선순환이 계속 일어나려면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안정적인 재료 공급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으 뜸가는 공급원이 바로 RNA 자신입니다. RNA는 반응성이 풍부한 만큼 잘 부서지기도 하고, 만들고 나면 이내 분해되 고, 분해된 RNA가 새로운 RNA의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만들고 분해되고 다시 만들어내는 리사이클이 이 책의 주제인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더 작습니다. 유전물질(DNA나 RNA)과 그걸 둘러싼 단백질인 캡시드(껍데기)로 구성된 물 질로서 입자 크기가 수십 나노미터 (1나노미터는 1/100 만 밀리 미터)에 불과합니다.
숙주인 세포에 기생하고 그 안에서 자기복제를 하지만 자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무생물'로 분류됩니다. 바이러스는 자기 힘만으로는 몸과 에너지를 만드는 데 필 요한 '단백질'을 만들 수 없습니다. 단백질 합성은 리보솜이 라는 유전정보의 '통역 장치가 하는 일인데 바이러스는 리보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코로나바이러스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기존의 코로나바이러스는 감기의 원인균으로서 오랫동안 잘 알려져 왔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직경 100나노 미터 (1/1만 밀리미터) 크기의 구형으로, 스파이크 단백질이라 고 불리는 가시가 돋아난 막에 유전물질인 RNA가 들어가 있습니다(참고로 이 막은 지방으로 되어 있고 알코올에 잘 녹기 때문에, 알코올 소독을 통해 쉽게 제거됩니다).
이것이 체내에 들어가면 스파이크가 숙주의 세포 표면 에 있는 단백질(ACE2 수용체)과 결합합니다. 그러면 바이 러스는 세포 속으로 침투하여 바이러스 안의 한 가닥 사슬 RNA가 나옵니다. 그 바이러스 RNA는 숙주세포의 리보솜 을 사용하여 자신을 늘리기 위한 단백질을 합성합니다. 예 를 들어 숙주 세포는 RNA를 주형으로 삼아 두 가닥 사슬 RNA를 만드는 효소(RNA 의존성 RNA 합성 효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그것을 만듭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로 쓰이는 아비간이나 렘데시비르 같은 항바이러스제는 이 효소의 활동을 방해합니다.
숙주 내에서 증가한 RNA도 숙주의 리보솜을 사용하여 자바이러스를 만들기 위한 단백질을 합성합니다. 바이러 스는 이렇게 만들어진 재료를 조합하여 세포 내에서 수백 배나 증가합니다. 그리고 숙주 세포의 분비 작용을 이용해 서 세포 바깥으로 나가서 다른 세포로 침투하거나 혹은 비 말 등을 통해 체외로 퍼져 나가기도 합니다.
- 바이러스는 자기를 복제한다는 면에서만 보면 '생물적'이지만 세포 밖에서는 증식할 수 없고 에너지 소비와 생산 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물질적입니다. 지구에 처음으로 나타났던 자기복제 능력을 가진 RNA 분자는 바이러스 와 비슷한 물체였을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생물과 무생 물을 구별하는 커다란 차이는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없는가, 스스로 증식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46억 년 전에 생긴 지구의 표면은 고온으로 인해 질척질척하게 녹아 있었습니다. 그 후, 몇억 년이라는 시간이 흐 르면서 표면은 서서히 식고, 핵산이나 단백질 또는 지질같은 세포의 재료가 되는 유기물들이 타서 없어지지 않은 채로 축적되었습니다. 그 유기물 중에서 RNA와 달라붙어 자기복제를 돕거나 분해를 막는 작용을 하는 것도 나타났지요. 그리고 그런 '도우미'를 얻은 RNA가 더 잘 살아남았 습니다.
RNA와 단백질이 끈적끈적한 덩어리(액적)를 만들고, 그것이 재료와 더 잘 밀착하면서 생산 효율이 좋은 일종의 자기복제 머신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저 재료가 다가와 주기를 무작정 기다리던 '우연한 만남 작전'에서, 마 침내 주변에서 필요한 것을 모으는 '농축 작전'으로 바뀌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 덕분에 '만든 것을 분해하고 다시 바꿔 재활용'하는 활동이 가속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맨 처음에는 자기복제 머신 간에 경계도 없고, 질척질척하게 녹은 덩어리끼리 붙었다가 떨어지는 동작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액적 내에서 재료가 되는 분 자의 농도가 높으면 반응이 많이 일어나고 낮으면 복제 효 율이 떨어지는 불안정한 상태였으리라고 짐작됩니다. 더 안정적으로 자기복제를 하기 위해서는 RNA와 단백질, 그리고 재료가 항상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양한 화학반응을 통해서 우연히 '주머니'에 둘러싸 인 액적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주머니 속이라면 더욱 안 정된 환경에서 좀 더 유리하게 자기복제가 가능했을 것입 니다. 소위 말해, 이번에는 '포위 작전'을 시작하게 된 것이 지요.
액적은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쉬운 수용성이고 그것을 둘러싼 '주머니'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유성입니다. 이때 의 모습은 마치 두 개의 층으로 갈라진 세퍼레이트 드레싱 을 마구 저었을 때 생기는 끈적끈적한 유액 상태였을 것 으로 짐작됩니다. 한정된 재료를 써서 효율적으로 자기복제를 하는 '유기물' 주머니가 서로 집합과 분산을 거듭하면 서 점점 더 효율적으로 자기복제를 하는 주머니가 늘어나 서 주류가 되었고, 이것이 첫 세포의 원형이 된 것으로 보입 니다.
주머니에 들어간 RNA는 이윽고 스스로 아미노산을 이어 붙여서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 같은 장치로 변모했습니다. 리보솜은 모든 생물의 세포 속에 존재하고, RNA의 배열 정보를 통해 아미노산을 연결하여 단백질을 만드는 장치입니다. 즉, 최초로 등장한 세포가 리보솜을 가지고 있었 으므로 지금의 생물이 모두 가지게 된 것입니다. 리보솜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 DNA는 당, 염기, 인산이 끈 형태로 이어져 있는데, RNA와 거의 동일한 구조이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당의 종류가 다 릅니다. DNA는 두 가닥 사슬로 된 나선 구조가 많고 RNA 보다 안정적이며 분해되기 어려운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반대로 RNA는 불안정한 만큼 반응성이 풍부하며, 자기복제나 자기편집이 쉽고, 다른 RNA나 단백질 등과 결합하기 쉬운 성질이 있지요.
DNA 내에서 유전정보를 가진 부분을 유전자라고 부르 며, DNA가 접힌 구조를 염색체라고 부릅니다.
DNA라는 물질이 유전정보인 이유는 염기라고 불리 는 화합물의 배열 순서(서열) 때문입니다. DNA의 염기에 는 네 가지 종류(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가 있는 데, 그들 중에서 세 가지가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합니다. 예를 들어 ATG (아데닌, 티민, 구아닌)의 서열인 경우, 메신저RNA(mRNA)라고 불리는 RNA에 의해 AUG로 변환되어 복 사되고, 그게 단백질 합성 장치인 리보솜에서 메티오닌이 라는 아미노산과 결합한 운반 RNA(tRNA)를 불러들입니다. 차례로 mRNA가 지정한 아미노산이 tRNA에 의해 운반되 고 이어져서 단백질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DNA와 RNA라는 두 종류의 비슷한 물질이 존재하는 걸까요? 입시 준비하는 수험생의 입장으 로 보면 귀찮기 이를 데 없는 개념이지만 생명 탄생의 역사 에서 보면 아주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장수할 수 있는 이유는 천적이 적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장수를 가능하게 하는 중 요한 힌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선 저산소 생활 환경을 꼽 을 수 있습니다. 깊은 굴속에서 100마리 정도가 집단생활을 하므로 산소가 희박한 상태에 적응하며 삽니다. 일반적인 쥐의 경우, 산소가 없으면 5분 정도 만에 죽지만 원래부터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사는 벌거숭이 두더지쥐는 20분 이상 견딜 수 있습니다. 체온도 매우 낮고(32도), 체온을 유지 하기 위해 쓰는 에너지도 적어서 먹는 양도 적습니다. 이런 성질은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대사가 낮다는 사실, 즉 에너 지절약형 체질임을 의미합니다.
- 에너지 절약형 체질은 에너지를 생산할 때 생겨나는 부산물인 활성산소의 양이 적다는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활 성산소는 생체 물질(단백질, DNA나 지질)을 산화시키는, 즉 녹슬게 하는 작용을 하는 노화 촉진 물질입니다. 이 물질이 적으면 세포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매우 유리하지요.
예를 들어 DNA가 산화하면 유전정보가 변화하기 쉬워져서 암의 원인이 되는데, 활성산소가 적으면 그만큼 암에 걸릴 위험이 줄어듭니다. 흥미롭게도 실제로 벌거숭이두더 지쥐는 거의 대부분이 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활성산소가 적은 게 장수에 큰 공헌을 하고 있지요. 또한 좁은 굴속에서 살고 있어서 몸에는 히알루론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 다. 히알루론산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피부에 탄력을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물질이 항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습니다.
-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장수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포유류로서는 드물게 '진사회성'을 갖춘 생물이라는 점입니다. 진사회성이란 꿀벌이나 개미와 같은 곤충에서 볼 수 있는 여왕 중심의 분업 체제를 뜻합니다. 벌거숭이두 더지쥐는 100마리 정도가 모여 집단생활을 하는데, 그중에 서 한 마리의 여왕 쥐만 새끼를 낳습니다. 마치 꿀벌의 여왕 벌처럼 말이지요. 꿀벌의 경우, 일벌은 모두 암컷이지만 선 천적으로 새끼를 낳을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벌거숭이두 더지쥐는 여왕을 제외한 암컷은 여왕 쥐가 발하는 페로몬에 의해 배란이 멈춰서 일시적으로 새끼를 낳을 수 없게 됩니다. 여왕 쥐가 죽으면 페로몬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므로 배란 기능이 부활해서 다른 암컷이 여왕이 되고 새끼를 낳기 시작하지요.
여왕 이외의 개체는 각각 일을 분담합니다. 예를 들어 서경호 담당, 식량 조달 담당, 육아 담당, 이불 담당 등입니 다. 여기서 이불 담당이란 그냥 뒹굴면서 어린 쥐의 몸을 덥 히고 체온 저하를 방지하는 일을 말합니다. 잠자는 걸 좋아 하는 개체 사이에서는 인기 있는 직업일지도 모르겠네요. 진사회성의 핵심은 이런 분업에 의해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므로 한 마리에 할당되는 노동량이 감소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불 담당뿐 아니라 많은 개체들이 편하게 잠자며 뒹굴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이렇게 노동 시간의 단축과 분업에 의한 스트레스 경감이 수명 연장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수명 연장에 따라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분업이 더욱 고 도화·효율화되어 더더욱 수명이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벌 거숭이두더지쥐는 이 수명 연장의 선순환 덕분에 일반적인 쥐보다 10배나 더 장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희한하게도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죽음은 젊은 개체의 사망률과 늙은 개체의 사망률에 거의 차이가 없습 니다. 다시 말해, 나이를 먹어 기운이 없어진 개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원인 때문에 사망하게 되는지 아직 밝혀진 바는 없지만 죽기 직전까지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그야말 로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다 죽는 이상적인 죽음이지요.
- 작은 생물은 도망 다니는 일, 그러니까'(다른 생물 에 의해) 잡아먹히지 않는 일'이 사는 길이고, 반면에 비교적 큰 생물은 자기 몸을 유지하기 위해 '잡아먹어야 살 수 있 습니다. 또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인간에 의해 사육 되는 동물 이외의 생물은 인간처럼 오랜 노화 기간을 겪지 않고 생식이라는 목표를 통과하면 수명이 다해 대부분 건 강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치 프로그램된 적 극적인 죽음의 방식처럼 보입니다.
생물은 탄생 이후 오랜 시간을 거쳐 다양화되었지만, 형태나 생태만 다양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삶에 맞춰서 죽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진화하였습니다.
어떤 생물이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죽음의 방식이야말로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 나가는 과정에 서 '선택'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지금 살아남은 생 물들에게는 그 '죽음의 방식'마저도 어떤 의미가 있었기 때 문에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 현대인은 사고로 죽거나 곤충이나 물고기처럼 프로그램된 수명으로 툭 끊어지듯 죽는 것과는 달리 '노화'라는 과정을 거쳐 죽게 됩니다. 노화는 세포 레벨에서 일어나는 불가역 적인 즉, 되돌릴 수 없는 '생리현상입니다. 세포의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어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서 곧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세포 기능의 저하나 이상은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고, 현대인들은 표면적으로는 이런 질병에 의해 죽 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큰 사 망 원인은 면역세포의 노화에 의한 면역력 저하나 조직 세 포의 기능 부전에 의한 것입니다.
- 1981년 이후 일본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암 또는 노화에 따른 DNA의 변이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세포 증 식과 관련한 유전자는 통상적으로 '적당한 수준'으로 제어 되고 있어서 필요할 때 세포분열을 일으키고 필요가 없으 면 바로 정지합니다. 암은 이 세포 증식 제어와 연관된 유전 자에 변이를 일으켜서 제어 불능에 빠지게 하고 계속 증식 하여 결국에는 온몸으로 퍼져서 결국 정상적인 조직까지 파괴해 버립니다.
이처럼 노화에 따른 DNA의 변이의 축적과 함께 암에 의한 사망률이 급상승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55세 정 도부터가 주의해야 할 시기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판단하자면 '게놈의 수명은 55세'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주목할 만한 점은 이 DNA 합성 효소의 정확성입니다. 무려 10의 9승에 한 번, 다시 말해 10억 염기에 한 번 정도밖 에 실수(에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세포에는 60억 개의 염기 쌍이 있는데, 한 번의 세포분열로 대략 10개 정도 의 실수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경이적인 정확도를 자랑하 는 것이지요.
이런 대단히 정확한 합성 능력도 한 번에 완성된 게 아 니라 진화 과정에서 서서히 그 정확도를 높여 나갔다고 말 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 그보다는 더욱 정확한 것만이 선택 되어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 다만 생물의 진화가 걸어온 길을 보았을 때 이 DNA 합성 효소의 정확성이 높다는 것이 언제나 좋은 일만은 아니 었습니다. 생물이 탄생한 초기의 격렬하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는 오히려 정확성이 그리 높지 않고 다양성을 늘리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확성이 너무 낮으면 그만큼 살아남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세포만 만들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런데 지구 환경이 점차 안정되고 생물 의 구조도 복잡해지면서 DNA 합성 효소의 정확성이 높은 편이 생존에 더 유리해졌습니다. 즉, 10억 염기에 한번정도 나오는 복제 실수라는 절묘하게 '적당한 부정확성'에 안 착하게 됐던 것이지요.
- 수정란이 분열하고 분화해서 기관의 형성이 이루어지고 몸이 완성되면 남은 건 낡은 세포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반복 작용뿐입니다. 교체 주기는 조직에 따라 다릅니다. 제일 짧은 것은 장관 내부 표면의 주름에 있는 상피세포로서 며칠 내에 교체됩니다. 피부가 4주, 혈액이 4개월, 제일 긴 것은 뼈세포로 4년에 걸쳐 모두 교체되지요.
그래서 인간 몸의 세포는 4년마다 대부분 새롭게 바뀌 어서 '딴 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물론 사실 그대로 말 하자면 그렇게 극단적인 변화는 아니고요. 노화한 세포부터 서서히 차례차례 교체되기에 모습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체세포라도 예외적으로 교체를 하지 않는 조직이 있습니다. 심근세포와 신경세포입니다. 심장을 움 직이는 심근세포는 태어난 이후부터 굵어지고 커지는 일은 있어도 그 수가 줄어드는 일은 없습니다. 뇌와 척수를 중심 으로 온몸에 신호를 보내는 신경세포는 유소년기 때 제일 많고, 그 후로는 기본적으로 줄어들기만 하지요. 만약 뇌의 신경세포가 교체되기라도 하면 기억을 유지할 수 없으니 큰일일 테니까요. 마음(심장과 뇌)은 평생 변하지 않습니다! 심장과 뇌는 상처를 입으면 그걸로 끝이지만 다른 조직은 줄기세포가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기능이 점점 저하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줄기세포의 노화입니다. 새로 운 세포를 공급할 때, 줄기세포는 두 개로 분열해서 하나는 줄기세포, 또 하나는 피부 세포를 만듭니다. 피부 세포는 또 두 개로 분열해서 이번에는 두 개의 피부 세포를 만들지만 줄기세포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줄기세포는 기본적 으로 항상 일정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줄기세포도 노화합니다. 노화한 줄기세포는 분열 능력이 떨어지면서 충분한 세포를 공급할 수 없게 됩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새로운 세포를 많이 필요로 하는 혈액과 면역세포를 만드는 조혈 줄기세포 등입니다. 면역에 관한 세포 생산 기능이 떨어지 면 감염된 세포나 이상 세포를 제거할 수 없게 되지요.
- 조직의 세포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포를 공급할 뿐 아니라 노화한 낡은 세포를 제거해야 합니다. 노화 세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제거됩니다. 첫째, 세포 자신이 ‘아포토시스apoptosis'라는 세포사cell death를 일으켜 내부에서 분해 되어 부서지는 방식입니다. 둘째, 면역세포에 의해 잡아먹 혀 제거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은 개체의 노화 세포는 이러한 방식으로 제거되기 어려워져서 그대로 조직에 머무는 경향이 생깁니다.
이 노화한 잔류 세포가 문제인데, 주변에 사이토카인Cytokine 이라는 물질을 뿌려대기 때문입니다. 원래 사이토카 인은 세포가 다치거나 세균에 감염되었을 때 그것을 제거 하기 위해 염증반응을 유도하여 면역 기구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사이토카인이 조직의 노화 세포에 서 방출되는 경우에는 염증반응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그 때문에 장기 기능이 저하되어 당뇨병, 동맥경화, 암 등의 원인이 됩니다.
즉, 노화세포가 제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면 조직을 해치고 기관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뜻입니다.
- 생쥐를 대상으로 진행한 흥미로운 실험을 하나 소개합 니다. 네덜란드의 연구팀이 2017년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생쥐도 나이를 먹으면 제거되지 않는 노화 세포가 조직에 쌓이게 됩니다. 이 잔류 노화세포의 세포사를 유도하지 못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 포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p53 이라는 단백질이 세포질에 서 핵 안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노화세포에서 다량으로 발 생하는 FOXO4 (폭소 4)라는 단백질이 그 이동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FOXO4가 p53을 방해하지 않도록 p53의 결합 부위에 붙는 작은 단백질(펩타이드)을 합성하여 그걸 늙은 쥐 에 투여했습니다. 그러자 예상대로 p53가 세포핵 안으로 이 동하여 세포사를 유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펩타이드를 투여하여 노화세포가 제거된 늙은 쥐는 신 장과 간 기능이 회복되면서 운동 능력이 향상되었고 털도 수북하게 돋아났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쥐뿐만 아니라 인간도 낮은 체내 염증반응과 장수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일어나는 노화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이 제거되지 않는 노 화 세포에 있는 듯합니다. 인간에게 이 펩타이드를 사용하 는 일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서는 현재 연구 중입니다. 이처럼 체세포의 기능 저하가 신체 조직의 움직임을 저 해하여 결국 뇌나 심혈관, 간 기능이나 신장 기능을 떨어 뜨려서 인간을 '늙은' 상태로 만들어 죽음으로 내모는 것입 니다.
- 인간 몸 세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체세포의 텔로미어는 분열할 때마다 짧아집니다. 그런데 모든 세포의 분열 횟수 가 딱 50회로 정해져 있다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노화하고 말겠지요. 긴 수명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세포에도 텔로 미어 합성 효소가 나타나고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는 장 수 세포도 필요합니다. 바로 그 대표적인 것이 줄기세포와 생식세포지요.
분화한 세포(체세포)가 점차 노화하여 제거되어도 줄기세포가 항상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고 보충해 줍니다. 한평생 계속 사는 줄기세포의 텔로미어는 텔로미어 합성 효소에 의해 항상 늘어나고 유지됩니다. 그러나 줄기세포의 경우에도 나이를 먹음에 따라 텔로미어 합성 효소의 활성 이 저하되어 조금씩 텔로미어가 짧아지고, 그에 따라 새로 운 세포의 공급이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생식 계통의 세포도 줄기세포와 마찬가지로 텔로미어 합성 효소의 작용으로 텔로미어의 길이가 유지됩니다. 생 식세포는 다음 세대로 생명을 잇는 소중한 세포이기 때문에 노화는 가급적 억제됩니다. 따라서 갓 태어난 아기의 모 든 세포가 가진 텔로미어는 완전히 리셋된 상태여서 길이가 길지요.
- 생물은 다세포화로 가는 진화 과정에서 암화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세포에 대한 품질 관리 quality control 기능을 획득했습니다. 즉, 품질 관리 기능을 가진 생물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았던 것이지요. 이 품질 관리 기능은 두 개의 메 커니즘이 지탱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면역 기구고, 또 하나는 세포 노화 기구입니다.
면역 기구는 외부에서 침투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의 침입자뿐 아니라 노화한 세포나 암세포 등 이상 세포도 공격해서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이상 세포는 시그 널 인자를 뿜어서 대식세포Macrophage 나 T세포 등의 면역 세포를 활성화함으로써 마치 이들에게 자신을 공격해서 먹 어달라는 듯 재촉하고, 결국에는 이들에 의해 제거됩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생리 작용으로서 우리 몸 안에서 항상 일 어나고 있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면역세포가 모든 이상 세포를 깔끔하게 제거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암세포가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아 있 죠. 암세포는 변이를 통해 정상 세포인 척 행동하고, 면역세 포를 억제하는 작용[면역 관문immune checkpoint]을 함으로써 공격을 회피하기도 합니다. 면역 관문으로 유명한 PD-L1 은 암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입니다. PD-L1을 가진 암세포에 면역세포(T세포)가 달라붙으면, 암세포로 인식되지 않고 공격받지도 않습니다. 이에 따라 암세포가 점점 증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 다세포생물의 세포 품질 관리를 담당하는 또 하나의 메 커니즘이 '세포 노화 기구입니다. 면역 기구는 이상 세포를 찾으러 다니고 발견해서 제거합니다. 이에 반해 세포 노화 기구는 텔로미어를 예로 들자면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 아져서 일정 횟수의 분열 후에는 노화를 유도하여 세포의 무한 분열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즉, 세포 노화 기구는 활성산소나 변이 축적에 의해 이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세포를 이상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제거하고 새로운 세포로 교체하는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뜻이지요. 그럼으로써 암화의 위험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앞서 던진 "왜 분화한 세포는 텔로미어 합성 효소작용을 일부러 막아 노화를 유도하는 아까운 행위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 남성은 정자를 만드는 근원이 되는 세포인 정모세포가 감수분열, 즉 염색체 수가 절반이 되는 특수한 분열을 해서 4개의 정자로 변합니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염색체 쌍에서 무작위로 한 개가 선택되어 한 개의 정자에 들어갑니다. 이 조합의 수는 2의 23승(약 800만) 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약 800만 종류의 정자가 생긴다는 뜻이지요.
이는 참으로 엄청난 숫자이지만, 그 염색체가 분배하는 동안 두 개의 상동염색체가 달라붙어 (이를 '대합'이라고 함), 같은 종류의 유전자 간에 '상동 재조합'이라는 부분적인 교 환이 일어납니다. 각각의 상동염색체 중 한 개는 어머니, 또 한 개는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마구잡이로 섞이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염색체의 내용물(조합)이 변화합니다.
단, X 염색체와 Y 염색체는 배열이 크게 다르므로 부분적으로만 대합합니다. 상동 재조합에 의한 부분적인 교환도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동 재조합은 여성 쪽의 난자 형성시에도 일어나고, 수정 시에는 난자와 정자가 무작위로 융합하므로 수정란의 조합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설령 형제자매가 몇십억 명 있다고 하더라도 일란성(일란성 쌍둥이나 세쌍둥이 등)이 아닌 한, 자신과 똑같은 유전정보를 가진 형제나 자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유성생식이란 마이너 체인지를 통한 다양성을 만들 어내기 위해 진화한 구조입니다. 이 책의 서술방식으로 말 하자면, 진화는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므로 유성생식이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데 유효했기 때문에 그러한 구조를 가진 생물들이 선택되고 살아남았다는 것이지요. 생물 대부분은 크건 작건 이 유성생식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 생물은 호흡으로 영양을 태워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에너지는 세포의 활동에 쓰이 데, 포유동물은 체온을 유지하는 데도 에너지를 사용합니 다. 영양이 많으면 태우는 양도 당연히 많아지므로(이를 '대 사가 활발해진다'라고 함) 부산물도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활성산소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활성산소가 DNA나 단백질을 산화시켜서 이들의 활동력을 떨어뜨립니다. 따라서 음식물 섭취를 제한하면 활성산소의 양이 줄어서 수명이 늘어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루코스glucose 센서인 Gprl 단백질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설령 글루코스가 충분히 있어도 그것을 감지하거나 이용할 수 없으므로 칼로리 제한과 마찬가지로 대사가 저하되어 수명이 길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GPR1 말고도 글루코스 대사와 관련된 일련의 유전자 변이도 역시 수명을 늘립니다.
- '죽음'은 절대적으로 나쁜 존재가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 있어 필요한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생물 은 기적이 중첩됨으로써 이 지구상에 태어나고, 다양화되 고, 멸종을 거듭함으로써 선택되고, 진화를 이루어 왔습니 다. 그 흐름 속에서 이 세상에 우연히 태어난 우리는 그 기 적과도 같은 생명을 다음 세대에 이어주기 위해 죽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끈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이타적으로 죽는' 죽음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자손을 남겼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생물의 긴 역사를 돌아보면 자손 하나 남기지 않 고 일생을 마친 생물도 수없이 많습니다.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모든 생물은 턴 오버하며, 생과 사를 반복하면서 끊임 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났으므로 다음 세대 를 위해 죽어야 합니다.
'죽음'을 이렇게 생물학적으로 정의하고 긍정적으로 받 아들일 수는 있지만, 사람은 감정의 생물입니다. 죽음은 슬프고, 가능하다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설령 우리가 벌거숭이두더지쥐 의 생활을 흉내 내는 일에 멋지게 성공해서 건강수명이 늘 어나고 죽는 그날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순식간에 죽는 이 상적인 인생'을 보낼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나'라는 존재를 잃는다는 공포는 변함없으리라 봅니다. 그 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공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그 공포는 인간이 '공감력'을 익히고 집단을 소중히 하며 타인과의 유대를 통해 살아남아 왔 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 인간 개개인이 가진 '죽음의 공포는 나와 '공감'으로 연
결되어 언제나 나에게 행복감을 주었던 사람들과의 유대가 끊기는 데서 오는 공포입니다. 또 나 자신만이 아니라 나와 공감으로 이어져 있던 타인이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 다. 그리고 그 경우, 슬픔을 치유해 줄 다른 무언가가 그 상 실감을 메워줄 때까지 슬픔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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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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