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즈니스가 냉혹한 현실인 이유는 세상이 멱함수 분포로 가득하기 때문. 스타트업을 계획하거나 이미 시작한 독자가 있다면 이 '1%의 오류'에서 빨리 탈툴해야 한다. 투자자의 앞에 가서 '시장의 1%만 먹으면 충분히 사업할 수 있다'란 말을 내세우는 것처럼 바보같은 행동은 없다.
- 정규분포는 개별사건이 독립적이고 분포에 미치는 영향력이 각각 동일한 경우에 성립됨. 학생들의 신장이 정규분포를 띠는 이유는 키에 대해 학생들이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학생 한명이 표본에 추가될 때 분포에 미치는 영향력이 각자 동일하기 때문. 하지만 냉동감자, 논문, 지진, 단어, 기업경쟁처럼 개별 사건들이 네트워크로 얽혀 있고 특정 사건의 영향력이 다른 것보다 높다면 정규분포는 현실을 올바로 표현하지 못한다. 세상 만물이 무조건 정규분포를 따를 것이라고 속단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란다.
- 조용한 조직은 조용하게 저문다. 자신들의 문제제기가 매번 묵살당하는 상황을 지켜보던 실무기술자들은 결국 '될 대로 돼라'는 심정으로 입을 닫았고 윗사람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최악의 의사소통 상태로 치달았다. 바로 이것이 챌린저호가 폭발한 근본적 이유다. 추운 날씨 때문에 오링이 갈려져 연료가 누출될 경우 제대로 막아주지 못할 경고가 발사 전에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권위로 찍어누르며 부정적 의견을 거부하는 인간의 심리가 폭발사고를 예정해 놓고 말았다. 파인만은 "아랫사람들은 실무적 내용을 가지고 윗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했지만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점점 대화가 줄어들고 결국에는 완전히 없어졌다. 그리하여 윗사람들은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게 됐다"고 정리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조직의 '의사소통 단절이론'이다. 파인만이 꼬집는 의사소통의 문제, 즉 업적경쟁 때문에 상하간의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문제는 여러 조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부서의 리더들이 최고경영자에게 자기부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일을 위한 일'을 수행하고 다른 부서의 업무를 침범하면서까지 자기네 업적을 돋보이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면, 직원들은 점점 입을 닫을 것이고 어딘가에 챌린저호 폭발사고와 같은 리스크가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 리더는 이를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 틀을 깨야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다. 밈의 편협함이 과학의 발전을 종종 저해했듯이 사회나 조직의 밈 역시 발전에 스스로 뒷다리를 걸기도 한다.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적 동질성을 구축해가며 고유의 밈을 형성함. 조직의 밈은 구성원의 연대를 강화하고 목표에 집중케 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미는 자가 있다면 내부인이든 외부인이든 상관하지 않고 가차 없이 처벌을 하려는 냉혹하고 불합리한 면도 지녔다. 조직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마찰을 각오하면서까지 옳은 주장을 펼치더라도 그런 충심은 수용되기는커녕 무시되거나 축출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단을 수용할 때 발전과 도약이 가능함을 수많은 사례가 증명함. 아인슈타인이 뉴턴의 결정론적 우주관을 뒤엎는 상대성 이론을 정립했듯이 과학의 도약은 대개 이단적 발상을 통해 이루어졌다. 조직과 사회도 이와 같다. 사회혁신의 동력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충심어린 이단자들로부터 나옴을 기억해야 한다. 영국 시인 존 밀턴은 르네상스를 화려하게 꽃피운 이탈리아의 영광이 순식간에 몰락한 결정적 원인은 바로 갈릴레이를 영원히 침묵하게 만든 것이라고 간파했다. 변화에 저항하며 달콤하게 속삭이는 자들을 물리치고 이상한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충고다. 용기있는 이단자들을 포용하고 그들을 활용하라. 그것이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지혜다
- 우리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스프링 하나를 빼내도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뇌도 마찬가지죠. 뇌에도 무엇인가가 많이 중복돼 있기 때문에 일부분이 고장이 나도 잘 작동합니다. 우리 뇌는 비효율적이기에 오히려 안전하다는 것이다. 바둑판처럼 질서 정연한 조직이 곧 효율적인 조직이라 믿는 사람이 많다. 정치학자 척 세이블은 "수직적 조직구조가 모든 조직에 일반화되고 일종의 신념처럼 정착된 것은 경제원리상 조직의 보편적인 형태이기 때문이 아니라, 산업혁명 당시 학자들ㅇ 의해 가장 합당한 형태의 조직구조로 제안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환경에 맞게 제시된 조직구조가 아직까지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바둑판 같은 조직에 일부러 약간의 무질서를 권장함으로써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조직운영임을 기억해두자
- 우리는 목표달성에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목표자체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런 조언은 섣불리 해서는 안된다. 심리학자 아례렛 피시바흐는 목표에 집중하면 오히려 달성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체육관에 다니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운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 예를 들어 "나는 살을 빼기 위해 운동한다"라는 결과에 집중하며 운동하도록 했다. 다른 그룹의 참가자들에게는 "나는 스트레칭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러닝머신을 뛴다"와 같이 과정에 몰두하면서 운동하라고 했다. 참가자들이 실제로 운동한 시간을 살펴보니 결과에 집중했던 사람들은 과정에 집중했던 사람보다 10분가량 적게 운동했음. 결과에 집중하면 오히려 동기가 오래가지 못했던 것이다. "결과에 집중하라.", "결과를 생생하게 그려라" 이런 조언은 목표달성을 더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마라톤을 뛰는 사람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조언은 "완주했을 때의 네 모습을 상상해봐" 가 아니라 "네가 뛰는 한 걸음, 한 걸음에만 집중하라"이다.
- 목표달성의 동기를 높이는 방법 중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목표를 조건문로 바꾸는 것. 심리학자 피터 골비치는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반드시 해야 할 과제를 2개씩 정하라고 지시. A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각자가 정한 2개의 과제를 '언제'가 되면 실행할지, 그리고 '어디에 있을 때' 실행에 옮길 것이지 계획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B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그저 과제만 정하게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학생들이 얼마나 과제를 완료했는지를 점검하니 때와 장소를 정한 A 그룹이 B 그룹보다 어려운 과제를 실행한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처럼 목표를 정할 때 '그것을 언제 실행에 옮길지', '어디에 있을 때 수행할지'처럼 구체적인 조건문으로 바꾸어 놓으면 성공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다이어트를 목표로 정했다면 '감자튀김을 보면 당장 그 자리를 피하겠다'와 같이 'X이면 Y를 한다'의 형태로 목표를 조건문으로 바꾸면 작심삼일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 포항공대 김경태 교수는 스트레스는 몸에 축적되기만 할 뿐 운동이나 여행 등으로 없앨 수 없다는 연구결과를 발표. 반복적 자극을 받으면 세포속에 소포라 불리는 것의 양이 꾸준히 늘어나고 그에 따라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량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좋은 식사와 격한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극복하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조언. 스트레스의 원인 자체를 피하라는 소리다
- 최근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 스티브 호바스 교수는 인체 세포조직과 장기의 생물학적 나이를 알려주는 DNA생체시계를 발견. 연구결과, DNA 생쳇계는 20세 전후에 가장 빨리 움직이지만 이후 나이를 먹을수록 일정한 비율로 속도가 느려졌다. 그는 이론적으로 생체시계를 조절하면 노화를 늦추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치료법과 신약개발도 가능할 것이라 말한다. 이쩌면 이 치료법으로 인해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증상도 완화될지 모른다. 하지만 DNA 생체시계를 조정하면서까지 정상적인 노화과정을 거스를 필요가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질주하는 듯한 느낌은 어쩌면 세월을 허송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조용한 명령이 아닐까? 왜 이리 시간이 빨리가지? 란 생각이 든다는 것은 앞으로만 내달리지 말고 가끔은 뒤를 돌아보며 성찰하고 계획하라는, 어쩌면 내 몸이 나에게 건제는 좋은 신호일지 모른다.
- 일반적으로 우리는 'A이면 B이다'라는 믿음을 한번 갖게 되면 이 믿음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하려 한다. 심리학자 마이넛에 따르면, 자신의 믿음이 명백하게 오류임이 밝혀져도 70%의 사람은 여전히 그 믿음이 옳다고 여긴다. 믿음을 증명(입증)하는 근거만 눈에 들어오고 믿음을 부정(반증)하는 근거는 무시하는 것이다. 멋진 성과를 만드는 데만 집중하느라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발견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 췌장은 인슐린이란 물질을 통해 지방세포로 하여금 포도당 수용체를 세포막에 배치하도록 만든다. 혈중 포도당이 갑자기 증가할 경우 췌장은 다량의 인슐인을 각 세포에 뿌려대는데, 이 신호를 받은 세포는 인슐린 양만큼 포도당 수용체를 만들어 냄. 그러면 다량의 포도당이 지방으로 바뀌어 쌓이게 됨. 포도당이 지방으로 축적되는 걸 최소화하려면 인슐린의 대량방출을 막아야 하고, 그러려면 조금씩 적게 먹음으로써 "나 많이 먹지 않았어"라며 췌장을 속여야 함. 그러니까 일하거나 공부할 때 먹을 것을 옆에 두고 오가며 조금씩 먹는 것이 고통을 동반하지 않으면서도 살을 빼는 방법이다. 칼로리가 높은 치즈케이크라 하더라도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먹지만 않으면 다이어트 걱정은 덜해도 괜찮다.
- 다이어트 성공의 관건은 섭취하는 칼로리의 총량이 아니라 칼로리의 체내 흡수속도임. 음식을 한 번에 먹되 칼로리의 흡수속도가 느린 음식을 먹음으로써 혈당의 갑작스런 증가, 인슐린의 과도한 분비, 포도당 수용체의 과다 활성화를 막는 것이다. 어떤 음식물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과정에서 혈당이 높아지는 속도를 수치로 나타낸 값이 당지수다. 흰 쌀밥의 당지수는 85인 반면, 현미는 50이니 같은 양을 먹더라도 식단을 현미로 바꾸면 적어도 쌀밥을 먹었을 때보다 살이 찌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야기함.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스트레스가 뇌를 쪼그라뜨린다는 데 있다. 의학자 브루스 매큐언은 스트레스 때문에 뇌구조가 변형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 그는 쥐들을 3주 동안 하루 3-4시간씩 묶어 놓고서 뇌를 관찰했는데, 뇌에서 가장 복잡한 부위인 전전두엽과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뉴런이 쭈글쭈글하게 수축되었다. 쥐들을 풀어놓으니 뇌는 정상으로 돌아갔지만 늙은 쥐들은 아예 회복하지 못했다. 매큐언은 이런 스트레스가 사회경제적 자원이 적은 사람, 자존감이 낮은 사람, 운동을 적게 하는 사람에게 큰 타격을 준다고 한다.
- '본성과 양육이라는 신기루'라는 책의 저자 에벌린 폭스 켈러 박사는 "환경적 요소가 없다면 유전자는 개체를 발생시킬 수 없고,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환경은 아무런 힘을 미치지 못한다."라고 말하면서 "유전자와 환경 중 어떤 원인이 더 많이 영향을 미치는지 묻은 것 자체가 어리석인 질문이다."고 일축한다. IQ는 유전자와 환경의 합작품인 셈이다.
- 우리 몸은 피로해지면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을 생성함. 그런데 이 아데노신이 신경세포의 아데노신 수용체와 결합함으로써 신경세포의 활동을 둔호시키고 졸음이 오도록 만든다. 이것은 수면을 통해 아데노신의 농도를 감소시키고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자연스런 과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카페인의 분자구조가 아데노신과 유사해서 아데노신 대신 수용체와 결합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신체는 피로를 인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활력이 회복된 줄로 착각한다. 또한 카페인은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높이고 간의 혈당분비를 자극해 근육을 운동하기 좋은 상태로 각성시킨다. 이 때문에 커피를 마시면 잠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 커피를 못 마시면 불안감을 느끼는 커피중독 증세는 왜 나타날까? 거짓으로 피로를 푼 우리 몸이 더 많은 카페인을 요구하기 때문. 사실 카페인 중독은 마약에 가볍게 중독되는 것임. 카페인은 마약성분이나 신경전잘물질인 도파민의 분비를 늘리는 작용을 하는데, 도파민은 다시 신경세포를 흥분시켜 쾌감을 높인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때 내뱉는 '시간 되면 저와 커피한잔 할래요?'라는 고전적 멘트는 나름 과학적 근거와 효과가 있는 셈이다. 이런 설명을 읽고 "나는 커피를 마셔도 잠이 잘 오는데?"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 이들은 CYP1A2라 불리는 카페인 분해효소가 간에서 많이 분비되거나 소변을 통해 카페인 배출이 잘 되기 때문. 하버드대 메릴린 코넬리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커피와 관련된 대부분의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일수록 커피를 많이 마셔도 수면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하루 4-5잔은 거뜬하다고 말한다. 몸에 들어온 카페인 농도가 절반으로 떨어지려면 보통 6시간이 걸리는데 이들은 그보다 빨리 카페인을 배출하기 때문.
- 예지 벤케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은 기생충의 감소에 따라 숙주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체증하고 얻는 이득은 체감하므로 숙주가 어느 지점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다고 한다. 최적의 기생충 보유량을 숙주가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 만일 숙주가 균형점 이상으로 기생충을 없애려 한다면, 기생충 한마리가 박멸됨으로써 얻는 이득 증가분보다 한마리를 제거하기 위해 쓰이는 비용 증가분이 더 커짐. 그러면 기생충을 없앰으로써 생명유지과 자손번식의 가능성을 높이려 했던 시도가 오히려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고 번식력을 떨어뜨리고 만다. 따라서 숙주는 균형점 주순에서 기생충과 함께 사는 것을 최적의 생존전략으로 채택한다. 이 균형점이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숙주가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균형점이 낮아지기도 높아지기도 함.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암컷 큰 뿔양은 새끼가 없는 암컷에 비해 폐선충에 더 많이 감염되어 있음. 젖을 먹이려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이유로 기생충 박멸에 배당할 에너지가 적어져서 더 많은 기생충을 감내하는 것임. 또한 수컷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양이 암컷 새끼를 키우는 어미양에 비해 더 많은 폐선충을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수컷새끼를 키우는 것이 비용이 더들기(더 힘들기) 때문. 이렇듯 숙주의 면역 시스템은 자손번식과 기생충 보유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으며 에너지를 배분할 줄 안다. 결코 기생충 박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만큼 어리석지 않다.
- 오른손잡이가 많은 이유는 문화적 조건이 아니라 인간의 진화적 특성에서 찾아야 함. 겉으로 보기에 인간의 몸은 좌우대칭이지만 실은 중요장기인 심장이 왼쪽에 치우친 탓에 완벽한 대칭이라 볼 수 없다. 길을 걸을 때 벽면을 왼쪽에 두고가는 게 편할 때가 많은데 그 이유는 이 상태가 심장을 보호하는 데 유리하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 그래서 적과 맞닥뜨렸을 경우 벽 쪽에 붙은 나머지 공간의 제약을 받는 왼손보다는 오른손으로 상대를 위협하거나 방어해야 효과적임. 좀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인간이 유인원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을 때,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오른손 사용이 훨씬 안전했을 것임. 실수로 나무에서 떨어지더라도 심장이 덜 위험할 테니 말이다. 이렇듯 왼손잡이들은 진화과정에서 퇴출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행자의 우측통행 캠페인을 늘 벌이지만 잘 정착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심장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무의식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 오른손 잡이가 많을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알다시피 좌뇌는 신체의 오른쪽을, 우뇌는 신체의 왼쪽을 관장함. 심장을 지켜야 하는 왼손보다는 오른손으로 초기의 언어를 표현하고 보조했을 가능성이 큰데, 오른손을 자주 쓰면서 언어와 관련된 영역이 좌뇌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이렇게 좌뇌가 발달하면서 오른손 사용이 더 활발해졌고 자연스레 오른손 잡이가 월등히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글씨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가는 이유, 피아노 건반이 오른쪽으로 갈수록 고음이 위치하는 이유, 운동장 트랙을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른손잡이가 되도록 만드는 문화적 강제화가 아니라 진화적 특성에 있다. 문화적으로 오른손잡이 세상이 되는 바람에 왼손잡이가 살기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진화적 특성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왼손잡이들이 압력을 받게 됐다고 봐야 옳다. 이렇게 진화적, 문화적 압력을 받는 탓인지 왼손잡이들은 오른손잡이에 비해 취약한 경향을 보임. 미드스웨덴대 알리나 로드리게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왼손잡이들에게 난독증, 조현병,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의 정신질환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견됨. 또한 산모가 임신중 우울증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면 아이가 왼손잡이 혹은 양손잡이가 될 가능성이 3배나 높다고 한다. 이 글은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뛰어나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인간의 심장이 어쩌다가 왼쪽에 치우친 탓에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많아진 것뿐이다.
- 진화생물학자들은 진화가 곧 진보라는 개념을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진화학자 스티븐 제이굴드는 생명의 진화를 곧 진보로 이해하는 대중과 일부 과학자들의 생각을 강하게 비판. 그는 생명의 진화는 그저 생명의 다양성이 확대되는 과정이라 주장. 박테리아로부터 시작해 복잡하고 몸집이 크며 지능이 높은 종이 출현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예정된 것이 아니라, 생명체가 더 이상 단순해질 수 없기 때문에 복잡해지고 지능이 높아지는 쪽으로만 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 진화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 이었다. 그리고 다윈 이전의 생물학에서는 나방이나 딱정벌레 같은 곤충들의 변태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음. 찰스 다윈의 저작 어디에도 진화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진화를 진보의 의미로 오해하게 만든 사람은 그 말을 처음 사용한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였다. 그는 진화론을 인간사회에 적응하여 사회다윈주의라는 정치이념을 창안했으며 훗날 인종주의와 우생학이 정당화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은 적자생존이라는 자연법칙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발전과 진보를 위해서 약자들을 지속적으로 제거해 나가는 것이 사회의 진보라 보았기 때문. 우리가 진화를 진보의 의미로 잘못 알고 있는 데에는 스펜서의 사회 다윈주의가 한몫하고 있다. 생물의 진화가 진보는 아니듯 정치, 경제, 사회의 진화도 진보는 아닌 듯 하다. 우리는 2차대전이 발발하던 때보다 지금의 문화가 더 진보됐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이라크 전쟁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광기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사회경제 시스템은 매번 불황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과학이 진보한다는 말도 옳을지 모른다. 강력한 핵폭탄이 즐비한 지금이 칼과 창으로 싸우던 옛날보다 과연 진보한 걸까? 과학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지만 동시에 인체를 화학 쓰레기장으로 타락시켜 기존 질병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신종 질병을 발발시켰다. 공학은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을 만들어내는 위업을 달성했다지만 화재에 대한 대비책은 우렷이 제시하지 못하지 않는가? 인간이 생명진화의 정점이 아니라는 것,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 확대를 통한 적응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삶을 좀더 겸손하게 바라보고 우리가 이 지구를 좀 더 아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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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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