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과학 2021. 3. 28. 14:56

- DNA 이중 나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멋진 나선을 이루는 구조 자체의 우아함에 있지 않다. 그 보다는 그 구조가 유전물질이 생명의 생존과 영속의 토대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두 가지 핵심 기능을 설명한다는 데에 있다. 첫째, DNA는 세포와 전체 생물이 성장하고 유지하고 번식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둘째, 각각의 새로운 세포, 새로운 생물이 온전한 유전자 명령문 집합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게 자신을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
- 대다수의 문화에는 창세 신화가 존재한다. 유대 기독교의 창세 신화를 글자 그대로 읽는다면, 생명은 단 며칠사이에 창조되었다. 창조주가 각 종을 하나하나 창조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20세기를 선도한 유전학자 J. B. S. 할데인은 딱정벌레의 엄청난 다양성을 언급하면서 “신은 딱정벌레를 유달리 좋아한다”라고 재담을 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사상가들은 생물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산업 혁명기에 설계되고 제작된 복잡한 기계와 비교 하기 시작했다. 이런 비교는 종교적인 믿음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는 했다. 그렇게 복잡한 것이 어떻게 지고한 지적 설계자의 개입 없이 출현할 수 있겠는가? 1802년 윌리엄 페일리 목사는 이런 유형의 추론을 화려하게 펼쳤다. 그는 길을 걷다가 시계를 발견한다고 상상해보라고 했다. 시계 뚜껑을 열고 시간을 추적한다는 목적을 위해서 설계된 것이 분명한 복잡한 내부 메커니즘을 살펴본다면, 그 시계를 지적인 창조자가 만들었다고 확신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일리는 같은 논리가 복잡한 생명의 메커니즘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목적의식을 지닌 복잡한 생명체가 그 어떤 설계자 없이도 생성될 수 있으며, 자연선택이 그 일을 한다는 것을 안다.
- 자연선택은 진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세포 수준에서도 일어난다. 암은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제어하는 데에 중요한 유전자가 손상되거나 재배치됨으로써 세포가 제멋대로 분열할 때에 생긴다. 한 생물 집단 내에서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이런 전암(pre-cancerous) 세포나 암 세포는 몸의 방어 체계를 뚫는다면 조직을 이루는 정상 세포 집단을 서서히 잠식할 수 있다. 손상된 세포 집단이 성장할수록, 그런 세포들에서 유전적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더욱 커지며, 그에 따라서 유전적 손상이 누적 되고 더욱 공격적인 암 세포들이 출현하게 된다. 이 체계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에 필요한 세 가지 특 징을 가지고 있다. 번식, 유전 체계, 유전 체계가 변이를 일으키는 능력이다. 애초에 인류가 진화할 수 있도록 해 준 그 환경 자체가 가장 치명적인 인간 질병 중의 하나를 일으키기도 한다니 역설적이다. 더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집단생물학자와 진화생물학자가 암의 이해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생물의 엄청난 복잡성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목적을 지닌 듯한 행동까지도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를 통해서 나올 수 있다. 그 어떤 통제하는 지성체, 정해진 최종 목표, 궁극적인 원동력이 없이도 가능하다. 그럼으로써 페일리가 회중시계를 상상하면서 제기한, 그리고 그 이전과 이후의 많은 사람들이 상정한 신성한 창조자를 동원하는 주장들을 완전히 비껴간다. 그리고 내게는 끊임없이 경이감을 안겨준다.
- 오늘날 우리는 모든 생물의 세포 내에서 수백, 아니 수천 가지의 화학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안다. 이런 반응으로 생명의 분자들, 즉 세포의 성분과 구조를 이루는 분자들이 생겨난다. 또 화학 반응은 분자들을 분해하여, 세포 성분을 재순환시키고 에너지를 생산한다. 생물에서 일어나는 이런 아주 다양한 화학 반응을 대사(metabolism)라고 한다. 대사는 유지, 성장, 조직화와 번식등 생물이 하는 모든 일의 토대이자, 이 과정들을 추진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다. 대사는 생명의 화학이다.
- 생명은 20가지의 아미노산을 사용한다. 각 아미노산은 주된 중합체 사슬로부터 옆으로 뻗어나가는 곁가지를 지닌다. 이런 곁가지 때문에 각 단백질은 독특한 화학적 특 성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아미노산은 음전하나 양전하를 띠며, 어떤 아미노산은 물을 끌어당기거나 밀어 내며, 어떤 아미노산은 다른 분자와 쉽게 결합을 이룰 수 있다. 각각 다른 곁 분자를 지닌 아미노산들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사슬을 만듦으로써, 세포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 중합체 분자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선형 단백질 중합체 사슬은 일단 조립되면, 접히고 꼬이고 자체 결합되어서 복잡한 삼차원 구조를 만든다. 끈적거리는 테이프가 이리저리 뭉쳐서 복잡하게 뒤엉킨 공처럼 변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단백질이 접히는 방식은 아주 정확하게 동일한 구조를 반복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유형이라는 점이 다르기는 하다. 한 세포에서 동 일한 아미노산 사슬은 언제나 동일한 모양으로 접히려고 할 것이다. 일차원에서 삼차원으로의 이 도약은 매우 중 요하다. 각 단백질이 독특한 물리적 형태와 독특한 화학적 특성을 지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포는 효소가 작용하는 화학 물질과 아주 정확히 들어맞는 방식으로 효소들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버테이스의 특정 부위와 자당 분자는 완벽하게 끼워진다. 그럼으로써효소는 특정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데에 필요한 정확한 화학적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 효소는 세포 대사의 토대를 이루는 거의 모든 화학 반 응을 실행한다. 효소는 다른 분자를 만들고 분해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역할을 한다. 효소는 품질 유지 담당자 역할을 하고, 세포의 영역들 사이에 성분과 메시지를 운반하고, 세포 안팎으로 분자들을 운반한다. 또 침입자가 있는지 감시하고, 세포를 방어하고 따라서 몸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단백질을 활성화한다. 그리고 단백질은 효소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의 모든 부위머 리카락에서부터 위장의 위산과 눈의 수정체에 이르기까 지는 단백질이나 단백질이 만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단백질은 기나긴 진화를 통해서 세포의 특정한 기능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다듬어졌다. 비교적 단순한 세포도 엄청나게 많은 단백질 분자를 가지고 있다. 작은 효모 세포에는 총 4,000만 개가 넘는 단백질 분자들이 들 어 있다. 베이징 같은 거대한 도시에 사는 인구보다 2배나 많은 단백질들이 아주 작은 세포에 들어 있다!
- 미토콘드리아의 주된 역할은 세포가 생명의 화학 반응 을 추진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하는 것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세포에 미토콘드리아가 많이 들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심장을 계속 뛰게 하기 위해서, 심장의 근육에 있는 각 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수천개씩 지녀야 한다. 심장 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는 가용공간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한다. 엄밀한 화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세포 호흡은 광합성의 핵심을 이루는 반응을 뒤집은 것이다. 당과 산소는 서로 반응하여 물과 이산화탄소를 만들면서 많은 에너지를 방출하며, 세포는 이 에너지를 포획하여 나중에 이용한다. 미토콘드리아는 너무 많은 에너지 손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그리고 반응성 산소와 전자가 탈출하여 세포에 손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면서, 이 다단계의 화학 반응을 고도로 통제하면서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일으킨다.
- 세포 호흡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핵심 단계는 양성자의 움직임을 이용한다. 양성자는 전자를 잃어서 양전하를 띤 수소 원자(수소 이온)이다. 양성자는 미토콘드리아의 중앙으로부터 밀려나와서 미토콘드리아를 감싸는 이중막 사이로 들어간다. 그 결과 미토콘드리아 내부보다 안쪽 막 바깥에 전하를 띤 양성자가 점점 쌓이게 된다. 비록 화학에 토대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물리적 과정이다. 물을 위로 퍼 올려서 댐을 채우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수력 발전소에서는 댐의 물이 아래로 흐르게 하여 물의 운동 에너지로 터빈을 돌려서 전기 에너지로 전환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양성자를 막, 즉 “댐” 너머로 퍼낸 뒤, 쌓인 양성자를 단백질로 이루어진 특수한 통로를 통해서 그 소기관의 중심으로 밀려들도록 한다. 하전(「電) 입자들이 밀려들면서 생기는 이 힘을 전환하여 고에너지 화학 결합의 형태로 저장한다.
- 미토콘드리아에서 “터빈” 역할을 하는 미세한 단백질 구조물은 모습도 발전소의 터빈과 약간 비슷하다. 비록 크기는 수십억 배 더 작지만! 양성자는 분자 터빈으로 쏟아져 들어갈 때, 지름이 1만 분의 1밀리미터에 불과한 통 로를 지나서 마찬가지로 매우 작은 분자 회전날개를 돌 린다. 날개는 회전하면서 너무나도 중요한 화학 결합을 일으켜서 아데노신삼인산(adenosine triphosphate, ATP)이라는 새로운 분자를 만든다. 이 반응은 초당 150회의 속도로 빠르게 일어난다. ATP는 생명의 보편적인 에너지원이다. 각 ATP 분자는 에너지를 저장하는 미세한 배터리 역할을 한다. 세포 내의 어떤 화학 반응이 에너지를 요구하면, 세포는 ATP의 고에너지 결합을 끊어서 ATP를 아데노신이인산(adenosine diphosphate, ADP)으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방출된 에너지를 이용해서 세포는 화학 반응이나 분자 모터가 취 하는 각 단계 같은 물리적 과정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은 결국에는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처리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음식에 든 화학 에너지를 써서 엄청난 양의 ATP를 만든다. 우리 몸의 세포 수조 개를 지탱하는 데에 필요한 화학 반응을 모두 추진하기 위해서, 미토콘드리아들은 놀랍게도 매일 우리 몸무게에 해당하는 만큼의 ATP를 만든다! 손목의 맥박, 피부 의 온기, 호흡할 때에 가슴의 오르내림을 느껴보라. 이 모두가 ATP로 추진된다. 생명은 ATP가 가동한다. 모든 생물은 에너지를 끊임없이 신뢰할 수 있게 공급받 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모두 동일한 과정을 통해서 에너 지를 생산한다. 즉 장벽인 막을 가로지르는 양성자의 흐 름을 제어하여 ATP를 만든다.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의 불꽃”과 얼마간이라도 비슷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 막 을 지나는 전하의 미세한 흐름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수수께끼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이 물리적 과정은 아주 잘 밝혀져 있다. 세균은 세포막 밖으로 양성자를 능동적으로 퍼냄으로써 그렇게 하는 반면, 더 복잡한 진핵생물의 세포는 특수한 구획 내에서 그렇게 한다. 바로 미토콘드리아이다.
- 예로 든 휴대전화처럼 전자제품과 컴퓨터에 서 이끌어낸 비유를 적용하면 세포와 생물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생물이 사용하는 정보 처리 모듈과 인간이 만든 전자제품 회로에 쓰이는 모듈은 몇몇 측면에서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컴퓨터 하드웨어는 일반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유연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것을 “하드웨어”라고 부르 는 이유이다. 대조적으로 세포와 생물의 “배선”은 유동적 이고 역동적이다. 이것은 세포에서, 즉 세포 내 구획들 사 이 그리고 세포 사이에서 물을 통해서 확산될 수 있는 생 화학 물질들에 토대를 두기 때문이다. 세포의 구성 요소들은 훨씬 더 자유롭게 재연결되고 옮겨지고 전용되면서, 시스템 전체를 사실상 “재배선할 수 있다. 그러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유용한 비유는 곧 들어맞지 않기 시 작한다. 그것이 바로 시스템생물학자 데니스 브레이가 더 유연한 생명의 계산 물질에 “웨트웨어(wetware)”라는 통찰력이 엿보이는 이름을 붙인 이유이다. 세포는 젖은 화학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다양한 구성 요소들 사이에 연결을 이룬다.
- 정보의 관점에서 생명을 볼 때는 생물학적 계가 수백만년에 걸쳐서 서서히 진화했음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생명의 혁신은 무작위적인 유전자 돌연변이와 변이의 결과로서 출현한다. 그 뒤에 이 것들은 자연선택을 통해서 걸러지며, 잘 작동하는 것들 은 더 성공적으로 생존하는 생물의 일부가 된다. 이는 기존계가 “추가되는 것들이 서서히 누적되면서 점진적으 로 변한다는 의미이다. 어느 면에서는 우리의 휴대전화나 컴퓨터와 비슷하다. 그런 기기들은 자주 새로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내려받고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기는 새로운 기능을 얻지만, 그런 기능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는 꾸준히 더 복잡해진다. 생명도 비슷하다. 이렇게 유전적 “업데이트”가 계속된다는 말은 세포의 전체 시스템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여분이 생길 수 있다. 즉 일부 구성 요소들은 서로 기능이 겹칠 것이다. 대체된 요소의 잔재도 있을 것이고, 정상 기능에는 전적으로 불필요하지만 주된 구성 요소가 망가질 때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살아 있는 계가 인간이 지적으로 설계한 제어 회로보다 덜 효율적이고 덜 합리적으로 구축될 때가 많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바로 생물학과 컴퓨터 사 이의 유추에 한계가 있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시 드니 브레너도 그 점을 간파했다. “수학은 완벽의 예술이 다. 물리학은 최적의 예술이다. 생물학은 진화 때문에 만 족의 예술이다.” 자연선택에서 살아남는 생명체는 반드시 가장 효율적이거나 가장 수월한 방식으로 일을 하기때문이 아니라, 그저 작동하기 때문에 존속한다. 이 모든 복잡성과 중복성 때문에 생물학적 신호 전달망과 정보 의 흐름을 분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캄의 면도날 (Occam's razor), 즉 어떤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가장 단 순한 이론을 찾으라는 개념을 아예 적용할 수 없을 때가 너무나 많다. 이 때문에 생물학으로 관심을 돌리는 물리학자들은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 물리학자는 우아하면서 단순한 해법에 끌리는 경향이 있으며, 살아 있는 계의 뒤죽박죽이고 완벽하지 못한 현실 앞에서 불편해질 수 있다.
- 우리가 다양한 생명체들에게 깊이 의존한다는 사실은 우리 세포의 기본 조성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는 한때 독립 생활을 하던, ATP를 생산하는 능력을 터득한 세균이었다. 약 15억 년 전에 일어난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이 세균 중에서 일부가 다른 세포 안에서 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숙주 세포는 이 세균 손님이 만드는 ATP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었고, 미토콘드리아는 영구히 자리를 잡게 되었 다. 아마도 이런 서로에게 이로운 관계가 굳어진 것이 모는 진핵생물 계통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에너지를 믿을 만하게 공급받음으로써 진핵생물의 세포는 점점 더 커지고 더 복잡해질 수 있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다양하기 그지없는 동물, 식물, 균류가 진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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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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