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일에 게을러지자. 사랑하고, 술을 마시고, 게으름 부리는 것만 빼고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 인간이 일을 하는 신경생물학적 동기는 직간접적으로 인간이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데 있다. 인정이란 흔한 격려나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니다. 또한 인정은 타인을 격조있게 대하거나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교양인이라면 공허한 미사여구, 틀에 박힌 말, 입에 발린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인정은 무척이나 복잡한 과정이다.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주시하고, 그와 그가 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무조건 노력을 높이 사고 보상해 주는 것도 인정이라 하겠지만, 엄밀히 말해 인정을 받는다는 것에는 비판을 받는다는 것도 포함. 이는 동료와의 어울림에서도, 협업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교육학에서도 통용됨. 누군가를 항상 치켜세우거나 매번 아무런 쓴소리도 하지 않는 것은 경멸의 한 방식이자 외면이다
- 고전적 스트레스 체계와 더불어 우리의 뇌는 특정 과제를 수행할 때는 작동하지 않지만, 산만하고 광범위하며 피상적인 집중력이 요구될 때 활성화되는 두번째 스트레스 체계도 갖고 있음. 학계에서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 지칭하는(흔히 불안-스트레스 체계, 또는 휴지 상태 네트워크라고도 함) 이 스트레스 체계는 주변의 자극과 위험을 감지해내는 역할을 함. 뇌 과학자들은 우리 두뇌가 인지활동을 멈추고 아무런 생각을 안하고 있는데도 분명 뇌의 특정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의문을 제기. 연구에 따르면, 특정업무나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 및 판단과 같은 과제를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접어든다. 이 상태에서 뇌는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 전혀 의도 없이 전해진 자극들을 추적함.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을 때 뇌의 반응을 일으키는 내부자극은 우리가 살면서 겪어온 일들 혹은 앞으로 겪게 될 일을 회상하거나 상상하는 중에 들게 되는 생각과 걱정이다. 이에 반해 외부자극은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오는데, 보통 우리는 이런 자극을 감지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롭게 발견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서는 구체적이고 이미 알고 있는 위험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관건은 우리 뇌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를 계속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뇌에 자극과 위험을 추적하는 데 특화된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의미가 크다. 수백만년 동안 우리 진화론적 선조들은 사바나와 야생의 위협이 도사린 곳에서 사나운 맹수들과 함께 살았다. 그들은 무언가에 몰두하지 않을 때도 항상 주변을 살펴고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즉, 달갑지 않은 일이 불시에 일어날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것이 언제 닥쳐올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살아야 했다. 이와 매우 비슷한 광경이 오늘날 직장에서 흔하게 목격된다. 그곳에서는 마치 수공업 장인이 한가지 일에 집중해 그것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한가지 일에 너무 오래 붙들려 있어서는 안되고, 그 일이 어떤 큰 그림의 조각이 될지 모른 채 일하는 것이 중요. 이 상황에서는 한가지 일에 매달렸다가는 오히려 손해를 볼 수 도 있다. 이는 오늘날 직장인의 상황과 야생에서 맹수들과 함께 살았던 선조들의 상황을 비교, 분석한 한병철 교수의 통찰이 왜 옳았는지를 보여주는 근거다
- 번 아웃 증후군
* 지속적 정서적 소진
* 일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전에 없었던 극복하기 어려운 감정적 혐오나 냉소(서비스업) 및 전에 없었던 극복하기 어려운 현재 일에 대한 심리적 이탈감이나 내적 거리감(비서비스업)
* 업무 효율성 상실(많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지 않음)
- 우울증
* 지속적 삶의 의욕 상실
* 죄책감, 자기비하, 자존감 상실
* 자살충동
- 기업차원의 번아웃 예방법
(1) 업무량(작업부하)
-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계능력을 요구하지 않음
- 직원에게 그에 맞는 역량에 맞는 과제를 부과
- 고객, 의뢰인, 환자를 응대하는 일이 고된 감정노동임을 잊지 말것
(2) 업무장악력과 자율성
- 각 직업에 따라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방식을 인정해 주어야 함
- 매우 세세하게 간섭하지 말고 직원 스스로 업무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함
(3) 인정(보상)
- 노동에 타당한 대가를 지급
- 직원이 과제를 수행했을 때 상사는 합리적 피드백을 주어야 함. 그리고 역할 수행에 대한 상사와 동료의 인정도 있어야 함
(4) 조직 분위기 및 동료의식
- 동료애를 나눌 수 있어야 함
- 대화와 정보를 나눌 기회가 주어져야 함
- 생산적 논쟁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함
(5) 정당성(공정)
- 업무의 분담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함
-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면 보상과 가치도 공평해야 함
- 조직내 음모나 잡음에 대해 주의해야 함
- 특정 직원을 편애해서는 안됨
(6) 가치준수
- 수행하는 일의 도덕적 가치를 설명해야 함
- 생산하는 제품이나 상품에 대한 기업의 윤리적 책임의식을 강조해야 함
- 고객이나 의뢰인을 속이고 기만하는 행동에 직원이 개입하도록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는다

-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는 국가의 노동자들은 기묘한 환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여러 세기에 걸쳐 불쌍한 인류를 괴롭혀 온 개인적, 사회적 재앙을 줄줄이 몰고 다니는 환각이다. 그것은 일에 대한 애착 또는 노동에 대한 처절한 열정인데, 각 개인과 그 후손의 생명력을 고갈시킬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직자와 경제학자와 도덕가들은 이런 정신적 이상상태에 반대하기는 커녕 노동에 거룩한 후광을 씌웠다. (폴 라파르그)
- 심각한 위기상황을 제외하고는 8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은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비교적 믿을 만한 곳, 세넷의 좀더 날카로운 표현을 빌리자면, 감옥인 동시에 집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규율, 복종, 의무수행은 충분한 복지와 안전으로 보상되었다. 세넷은 '경제제도가 사회적 통합과 권위에 대한 복종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군대의 계급구조를 모방했다'라고 지적한 막스 베버를 인용하며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했다. 세넷의 언급처럼 사회적으로 촘촘히 조직화된 노동의 환경에 변화가 닥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 이 구질서는 세넷이 신자본주의 문화라고 표현한 새로운 세계에 자리를 내줌. 이와 함께 그때까지 유지되었떤 기업의 구조적 안전성만 사라진 것이 아님. 노동 역시 근본적 변화를 맞이해 삶과 밀접히 결합된 정체성의 원천과 보상으로서의 노동은 이제 무효한 것이 됨. 세넷은 이런 변화의 원인을 금융 시스템과 실물경제 사이의 변화된 관계에서 찾았다. 80년대까지 존재했던 장기적 질서의 토대는 내적, 외적 구조의 안전성이었다. 당시 일자리를 제공했던 회사는 도산하지 않고 인간의 생존기간만큼 지속되었다. 노동시간은 규칙으로 정해져 있었고, 임금률은 중기적으로 예측하능했다.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의 신뢰와 연대는 그들의 상호관계에서 기인했다. 장기근속자의 현장경험과 지식은 존중받았다. 직장생활과 개인생활은 당연히 분리된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세넷은 대략 80년까지 유효했던 과거질서하에서 자신의 노동과 삶을 서사적으로 구성할 수 있었던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정체성을 확립해주고, 자기가치를 전달해주고,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요소였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자신의 일을 장인의 작업으로 받아들였는데, 이는 인간에게는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해내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축적된 노동자의 경험과 지식은 고용주에게 중요한 자원으로 받아들여지며 존중받았다. 직장은 비교적 긴 시간동안 동료들과의 관계를 쌓으며 사회적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일은 미래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과 비교해 완전히 다른 자본 투자가의 역할은 그 당시의 사회, 기업전반의 안정성에 결정적 작용을 했다. 당시 투자가의 입장에서 투자자본은 무엇보다 배당금으로 분배하는 몫보다 더 많은 이익을 발생시키는, 상당히 긴시간동안 거치되는 돈이었다. 이는 기업의 내적, 외적 안정성이 투자가의 입장에서 중요한 점이자 바라는 바였음을 의미한다. 세넷에 따르면, 80년대 이후의 노동환경의 근본적 변화는 실물경제가 금융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종속된 결과다. 70년대에 세계통화 시스템의 브레턴우즈 협약이 붕괴함으로써 전세계 자본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짐. 투자가들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자본을 빠르게 불릴 만한 곳을 찾기 시작. 실물경제영역에서 잘하고 있는 기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오래된 시스템에서는 흔했던 전통적 자본수익은 신자본주의에 눈뜬 투자가들에게는 더이상 만족할 만한 목표가 되지 못했다. 또한 그에 따르면 장기전략을 펼치기에 오늘날 세계 유동자본은 매우 참을성이 부족하다. 그 대신에, 투자가들은 주식매매차익을 얻기 위해 기업의 주주가치를 신속히 끌어올리는데 총력을 모은다. 기업주가를 올리기 위해 투자가들은 기업차원의 실효성과 중대성 같은 것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기업이 대규모 구조조정과 인원감축을 단행하도록 기업에 보여주기식 경영을 강요한다. 이런 식의 기업경영은 실제로는 기업에 손실을 끼친다 하더라도 금융시장에서만큼은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어 그들의 의도대로 기업의 주가는 상승한다.
- 한병철 교수의 지적처럼 신자본주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성과에 집착하며 한없이 스스로를 소진시킴. 물론 이는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침. 또한 자기착취의 폭력은 그 자체로는 고통이 없어서 그것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제때 감지하고 인식할 수 없게 만듬. 사람들은 번아웃으로 나가떨어질 때까지 고용주의 무리한 요궁 부응해 자신과 일을 동일시하며 성과를 내려고 점점 더 노력의 강도를 높임. 한 교수는 이런 상황을 정신적 면역체계의 붕괴상태에, 유기체에 이롭지 못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비유. 또한 외적강압이나 명령에 의해 작동했떤 과거 노동사회와 달리 현대사회는 나는 할수 있다는 정언이 지배하며, 내면화된 성취와 성공에 대한 요구는 노동자 스스로를 끊임없이 담금질하게 만듬. 이제 노동자의 몸은 더이상 작동을 멈출 수 없는 기계가 된 것 같다. 또한 한교수는 금기와 명령으로 규정되는 규율사회가 성과사회로 대체되었다고 진단. 규율사회가 광인과 범죄자를 낳았다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냈다. 그의 주장처럼 번아웃이나 우울증에 관련된 사람들은 외부 강요없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착취하는 노동하는 동물이나 다름없다. 그는 성과사회으 가해자인 동시에 희생자가 되는 셈이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오직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더이상 할 수 없음은 파괴적인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의 주체는 자기자신과 전쟁하고 있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는 내면의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 번아웃에서 우울증으로 정신적 탈진까지 담고 있는 한교수의 명제는 정신역학적 분석으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그의 분석은 심리학과 뇌과학의 인식과도 일치. 그는 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이 겪게 되는 자극과 정보와 욕망의 과잉이 현대 인간의 주의력 구조를 넓지만 매우 얇게 변화시키고 있다며 멀티태스킹으로는 문명의 진보를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 멀티태스킹은 단지 자연상태에 사는 동물에게만 유효한 야생에서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술에 지나지 않음
- 세상에는 너무나 일이 많으며 노동이 미덕이라는 믿음에 의해 엄청난 해악이 발생한다. (버트런드 러셀)
- 인간의 노동이 노동중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에는 그리 특별히 들리지 않는다. 세네카는 '열심히 일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스토아 학파인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바쁘게 만드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좔이지 않고 살수 있다고 강조. 노동의 가치에 대한 무비판적 열광을 고대 로마의 스토아주의자들만 회의적으로 본 것은 아님. 니체는 종종 자유롭고도 선한 양심을 회복할 목적으로, 우리의 시대를 노동의 시대로 만든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허둥대며 하는 일을 격렬히 비판했다. 20세기 최고지성중 한사람으로 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세상에는 너무나 일이 많으며 노동이 미덕이라는 믿음에 의해서 엄청난 해악이 발생한다고 생각. 특히 노동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한 이해는 전사와 사제들이 힘으로 강제하여 농부로 하여금 생산케 하고 잉여를 내놓게 했던 산업화 이전의 원시 공동체 시대에서 유래했다고 보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농부들의 본분이라는 윤리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힘. 그리고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의 미덕 그 자체가 노동의 목적이라고 공언해왔다는 점을 지적함
- 심각하게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전형적 일중독 상태를 보이고, 그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일만 할 경우 일종의 의무중독에 빠짐. 일을 끊는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불가능. 왜냐하면 러셀이 지적한 것처럼 평생동안 장시간 일해온 사람이 갑자기 일을 하지 않게 되면 매우 따분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 그들이 삶에서 잃어버린 것은 여가를 즐기는 능력이다. 말하자면 아무런 의도나 예정없이 일을 멈추고, 어느 곳에서 편안하게 머무르면서 꿈을 꾸고, 관조적 명상에 잠기고, 어떠한 목적도 없이 즐기면서 자유롭게 친구들과 교류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 주의력의 두가지 구조, 즉 불안하지만 폭넓은 주의력과 초점이 명확한 주의력은 뇌 연구자들에게 의해 매우 정확히 분석되었다. 벵골원숭이의 폭넓지만 피상적 주의력은 우리 인간에게도 낯설지 않다. 즉 멀티태스킹이 작동하는 공간이 오직 일터만은 아니다. 우리는 개인 생활에도 멀티태스킹을 적용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동시에 많은 것을 주의깊에 바라봐야 한다면, 우리 뇌에서는 이미 진화론적으로 매우 오래되었지만 15년 전에야 비로소 발견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 이메일을 쓰고, 휴대폰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등 동시에 여러 일을 할 때 필요한 주의력은 이 체계에서 작동됨.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알츠하이머를 포함해 여러정신 장애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혹을 받고 있음.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한곳에 관심과 주의를 모으는 집중력은 성인들에게서는 한가지 일에 집중하며 몰두할 때 작동함. 이는 많은 업무현장을 지배하는 멀티태스킹을 제한하고, 사적 영역에서도 최대한 이를 줄이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 자신가 우리 뇌에 왜 좋은지를 증명해준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능한 한 종종 한가지 일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가령 책을 읽는다든지, 바둑이나 장기를 둔다든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든지, 악기를 연주한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대화를 나눈다든지 하는 것이다. 또한 조깅, 수용, 자전거, 요가 같은 운동도 주의력 집중에 좋은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의 주의력이 한가지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으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활성화되지 않고 정지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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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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