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의 힘 
“운명의 타격을 둔하게 하는 철학의 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어떤 무기도 철학을 점령할 수 없지. 철학은 잘 보호되어 있고 뚫리지 않는다. 철학은 무기의 힘을 무력화하고, 철학을 감싸는 보호막의 느슨한 구김살로도 무기를 막아내지. 마치 무기가 해를 끼칠 힘이 없었던 것처럼 말일세. 또 철학은 가만히 돌진하여 무기를 보낸 곳으로 힘껏 던져버린다. 그럼 잘 있게.” (세네카)
- 나의 가장 좋은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최고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 어떠한 실수도 하지 않는 탁월한 존재일까요? 자기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사람이라면 내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해볼 것입니다. 이런 이상 적인 모습을 그리스어로 표현하면 내면의 영혼'이나 신성한 정령'이라 는 뜻이 담긴 내면의 다이몬이 됩니다. 스토아학파를 비롯한 고대 철학의 모든 학파들에게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에우다이모니아, 즉 '내면의 다이몬을 잘 발휘하는 삶이었습니다. (다이몬을 나쁜 영혼을 의미하는 악령, 즉 데몬demon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 에우다이모니아는 행복 같은 일시적인 기분보다 전반적인 삶의 질과 더욱 관련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간이 번영하고 더없이 행복하고 최적으로 잘 사는 상태를 말하지요.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이 주장한 바 있습니다. 행복은 원만하게 흘러가는 삶이다.” 결론을 내리면, 에우다이모니아는 행복하고 원만하게 흘러가는 삶이며 그 삶은 매순간의 행동이 최고의 자아와 조화를 이루는 번영에서 비롯됩니다.
-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련을 겪은 적 없는 행운은 단 한 번의 타격조차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불운과 계속 싸운 사람은 고통으로 굳은살이 박인다.” 이런 사람은 불행에 쓰러지지 않고 쓰러진다고 해도 무릎을 꿇은 채로 싸웁니다.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스토아학파는 레슬링에 비유하기를 좋아해서, 마르쿠스 아우렐리 우스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의 기술은 무용의 기술보다 레슬링의 기술과 더 비슷하다.” 우리는 기습 공격에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전사 같은 철학자들처럼 우리는 삶이 도전적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는 두 손을 비비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얼굴을 맞을 것이라는 예상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분명히 더욱 강해지고 더욱 무덤덤해지겠지요.
- 신체에 질환이 있는 것처럼 정신에도 질환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스토아학파는 잘 알고 있었지요. 그들은 비이성적인 감정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삶에서 번영을 일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 게는 삶을 방해하는 감정을 이겨내는 능력, 아파테이아apatheia가 필요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무관심이라는 뜻의 '아파시'apathy가 유래되었고, 또 이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스토아학파가 몰인정하거나 감정을 억제하려고 했다는 전형적인 오해가 생긴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 런 오해는 잘 받아들이기나 내색하지 않기'라는 뜻을 나타내는 스토익'stoic에서 비롯되기도 했습니다. 스토익'은 이 책에서 다루는 '스토이 시즘(Stoicism, 스토아주의, 또는 스토아 철학)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이제 스토아학파는 감정이 없다라는 오해는 말끔히 없애버리기로 해요.
- 우리가 감정에 구속되지만 않으면 매순간 최고의 자아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후회하고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여지가 전혀 없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매우 유익한 뜻밖의 선물이 평정심 이에요. 평정심은 오늘날의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태도로, 침착함을 유지하고 혼란 속에서도 자신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스토아학파가 처음부터 추구한 핵심은 에우다이모니 아이기 때문에 평정심은 '부산물이 됩니다. 말하자면 평정심은 추가된 (그리고 환영받은)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평정심 자체를 위해 실천하 는 것은 사실 스토아 철학에 부합하지 않았을 거예요. 스토아학파에게 평정심은 무엇일까요? 세네카는 자신의 대표적인 서간집에서 에우티미아euthymia의 힘에 관해 언급합니다. 그에 따르면, 평정심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우티미아는 자신의 길을 알고 그 길을 걸어가는 일입니다. 에우티미아는 또한 진실로 완전히 자신을 믿을 때 생기는 느낌을 말하지요.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확 신하고, 여기저기에서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 습니다. 늘 남들을 자신과 비교하거나 의심할 필요도 없지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고 있으므로, 자신이 하 는 일을 신뢰하고 또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여깁니다.
- 요컨대 평정심은 최고의 가치관을 갖고 온전하게 진정한 자아로 살고 있을 때 느끼는 침착한 자신감입니다. 세네카에 따르면, 변하지 않는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평정심이라는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 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결정을 계속 번복하여 일을 추구하다가 거 부하는 삶으로 방황하는 이들과는 다릅니다.
스토아 철학이 스스로 견디고 이겨낼 수많은 정신적 버팀목을 제시 할 테니, 우리는 각자의 길을 찾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꽤나 심술궂은 삶의 주먹질과 발길질에 당하더라도 늘 평정심이라는 침착한 자신감 을 얻을 수 있지요. 무엇을 하고 왜 해야 하는가를 잘 아니까요. 옳은 일 을 하고 있다는 확고한 마음을 갖고 굳건한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그 어떤 역경에도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 "배는 난파되었으나 항해는 성공적이었다.” (키티온의 제논)
- 스토아 철학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제논이 창시했고 초기의 스토아학파는 특히 소크라테스, 키니코스학파(크라테스 등), 아카데미아학파(플라톤의 추종자들) 등 철학의 여러 학파와 사 상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토아학파는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채택했습니다. 그들은 철학을 일상적인 문제에 적용하고, 훌륭한 성품을 가꾸고, 탁월하며 타 인과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 다. 스토아학파가 키니코스학파에서 바뀐 것이 한 가지 있었어요. 금욕주의를 단념한 사실입니다. 키니코스학파와 달리 스토아학파는 소박한 즐거움을 허용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집착하지 않고 삶에서 좋 은 일들을 즐겨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이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궁전에 살아야 한다면, 궁전에서 잘 살 수도 있다”라고 말한 바 있 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이렇게 편안함을 허용하는 매력으로 과거와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제논이 사망한 뒤(제논은 사후 청동상이 세워질 정도로 아테네인들에게 존 경을 받았습니다) 스토아는 기원전 155년까지 아테네의 주요 학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당시는 고대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벌어지던 때였어요. 스토아 철학의 대표(바빌론의 디오게네스)를 비롯한 여러 학파의 대표들이 로마에서 이루어질 정치 협상에서 아테네를 대변할 대사로 선출되었지요. 로마와의 협상은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했으나, 아테네인들의 방문이 미치는 문화적 영향은 컸지요. 아테네인들이 연 강연회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찼고 다소 보수적인 로마인들로 하여금 철학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로마에서 번성하는 철학이 되었고, 세네카, 무소니우스 루푸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 렐리우스 등이 유명해졌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그 뒤로 약 50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철학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권력이 있는 사람이든 고통받는 사람이든 모두가 훌륭한 삶을 추구하며 스토아철학을 실천했지요. 그러나 무소니우스 루푸스, 에픽테토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유명한 지도자들이 사망한 뒤 스토아 철학은 침체기에 빠졌고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부족과 기독교의 대두로 인해 한때 큰 인기를 모았던 철학이 쇠퇴하고 말았지요.
그러나 스토아 철학의 개념은 데카르트, 쇼펜하우어, 소로 등 역사적인 철학자들의 많은 저작물 속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또한 스토아 철학의 개념은 독자 여러분이나 저 같은 일반인(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니 오해가 없으시기를!)의 삶 속으로 되돌아오고 있지요.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와 앨버트 엘리스의 합리적 정서 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에서 이런 스토아 철학의 부활이 감지됨니다. 이 두 사람은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았지요. 더욱 최근에는 피에르아도 윌리엄 어빈, 도널드 로버트슨, 특히 라이언 홀리데이 등의 저술가들이 스토아 철학의 귀환에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 “나를 끊임없이 놀라게 하는 일이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타인보다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의견보다는 타인의 의견에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에우다이모니아 
스토아 철학의 행복 삼각형에서 핵심은, 모든 고대 철학이 동의한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에우다이모니아입니다. 스토아 철학의 주된 가르침인 에우다이모니아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원만하게 흘러가며 번영하는 삶을 말합니다. 번영하며 행복한 삶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삶이 아닐까요? 그래서 에우다이모니아는 스토아 철학의 행복 삼각형에서 핵심이 됩니다. 에우다이모니아의 그리스어 어원을 떠올려보세요. 내면의 다이몬이라는 최고의 자아를 잘 발휘하는 삶. 이런 삶은 어 떻게 성취될 수 있을까요? 바로, 아레테를 추구하며 살아야 성취될 수 있습니다.
- 아레테를 추구하며 살라 
매순간 최고의 자아를 표현하는 일을 뜻합니다. 우리가 최고의 자아를 잘 발휘하고 싶다면 이상적인 자아 의 행동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행동의 차이를 좁혀야 하지요. 이것이 지금 당장 최고의 자아를 발휘하고 있는 삶이고, 행 동할 때 이성을 사용하고 깊은 가치관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입 니다. 이런 삶은 분명 말하기는 쉬우나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야김 간 목표에는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을 구분하고 우리가 통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실전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이 말은 스토아 철학에서 가장 중 요한 원칙에 해당합니다. 늘 우리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 중하고 나머지 일은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미 일 어난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으므로 인정해야 하죠. 우리의 능력 밖 의 일은 궁극적으로 삶의 번영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삶의 번영에 중요한 것은 주어진 외부 환경을 이용하기로 선택하는 일입니 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고, 이상적인 자아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 책임을 다하라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은 오로지 자신에게서 비롯됩니다. 이 원칙은 '외부 환경은 훌륭한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않으며,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고 아레테를 추구하는 삶이 우리 를 번영으로 이끈다'라는 앞의 두 원칙 다음으로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적인 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즉 외적인 일에 어떻게 반응하기로 선택하는가를 결정하도록 해줍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삶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 원칙은 스토아 철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것은 외적인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우리의 해석입니다. 외적인 일에 통제권을 내주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는 순간, 우리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 스토아학파는 현자를 이상형으로 활용했습니다. 우리는 완벽해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도널드 로버트슨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현자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자연 전체와 완전히 조화를 이루며 산다. 그는 이성을 따르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한에서는 운명을 우아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비이성적인 욕구와 감정을 초월했다. 그의 인성은 완전히 칭찬할 만하고 훌륭하며 아름답다.” 
- “그렇다면 적절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타고난 관점을 올바른 일에 적용하는 법을 배우고, 그밖에도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에픽테토스)
- 요컨대 윌리엄 텔이 화살을 쏘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할 수 있으나 사과에 맞히거나 못 맞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의도와 행동을 선택할 수 있으나 그 궁극적인 결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적인 변수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스토아학파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 일은 일어나는 대로 두라고 조언합니다.  그런 조언을 현대에서는 과정 집중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원하는 결과 대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과정에 집중한다는 의미입니다. 활쏘기에서 원하는 결과는 표적을 맞히는 것이지만 그 결 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기에 거기에 집중할 필요는 없습니다. 
극기심이 강한 궁사는 화살을 잘 준비하여 쏘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그러면 긍정적 결과 (표적 맞히기)는 승리감을, 부정적 결과(표적 놓치기)는 절망감을 일으키지 않겠지요. 극기심이 강한 궁사는 활쏘기 과정에서 성공하고, 또한 최선 을 다해 노력했음을 느끼며 평정심과 차분한 자신감으로 어떤 결과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마찬가지로 우리는 외적인 상황을 받아들여 최대한 이용하거나, 아 니면 저항하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비참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우리의 몫이고요. 라이언 홀리데이는 이렇게 말했습 니다. “어떤 일에 화가 나는 것은 그 일이 계속되리라고 잘못된 추측을 하기 때문이고, 변화에 분노하는 것은 그 문제에 선택권이 있다고 오해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픽테토스의 다음과 같은 조언을 새겨야 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일어나기를 청하지 말고, 일이 있는 그대로 일어나며 당신의 삶이 원만하게 흘러가기를 기대하라.” 
- 덤덤한 일은 흔히 건강과 부와 명성으로 요약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손에 달려 있지 않은 외적인 일은 모두 덤덤한 일로 분류됩니다.
스토아학파는 그런 덤덤한 일들이란 중립적이고 인간의 번영에 도움 을 줄 수도 해로움을 줄 수도 없으며, 또한 행복하고 원만하게 흘러가 는 삶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 그런 외적인 일들이 필요하다면 부족할 때에는 사기가 떨어지겠지요. 그 러므로 우리는 덤덤한 일에 태연해지는 법을 배워야 하고, 이전에 거론 했듯이 외적인 일에 맞서는 대신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명심하세요, 극기심이 강한 궁사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결과는 평정심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전 재산을 잃으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한 푼을 잃는 일과 같고, 병을 앓는 게 죄를 짓는 일보다 더 나쁘지 않다고 초기의 스토아 철학자 크리시포스가 말했습니다. 세네카도 이와 유사한 말을 했습니다. "삶은 좋거나 나쁘지 않고, 또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삶을 비롯한 모든 갖가지 상황은 현명하게도 어리석게도 이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들을 좋거나 나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행동입 니다. 그 사실이 중요하지요. 외적인 일은 중요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 일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중요합니다. 행복한 삶을 꾸리거나 지긋지긋한 삶을 만드는 것은 바로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 “좋은 것을 얻고 싶다면, 자신으로부터 얻어야 한다.” (에픽테토스)
- 주어진 환경이 내 행복을 결정하도록 놔두지 마세요. 스토아학파는 외적인 일이나 타인은 우리가 어떻게 살지, 더 나아가 살지 말지에 영향을 미칠지언정 우리 삶을 망칠 힘은 없다고 했습니다. 내 삶은 오직 나만이 망칠 수 있지요. 통제할 수 없는 일로 괴로워하거나 할 수 있는 행동을 못하는 것으로 말이에요.  우리의 행복은 외부 환경의 영향을 최대한 적게 받아야 합니다. 외적인 일과 행복은 서로 연관성이 적어야 합니다.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보세요. 앞서 살펴 보았듯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바라는 것은 감정적 고통의 근원이 됩니다.
- "존재하지 않는 것을 좇는 열망과 행복을 일치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진정한 행복이란 바라는 모든 것을 지금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치 음식을 먹고 포만감이 드는 것과 같다. 목마르거나 굶주려서는 안 된다. 여기서 에픽테토스가 의미하는 열망이란 정확히 오늘날 우리가 조건부 행복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즉 미래의 일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행복을 말하지요. 시험을 끝내면 행복할 것이다’ 새로 나온 포르쉐 911을 사면 행복할 것이다 '억대 연봉을 받으면 행복할 것이다. 등등. 이런 행복은 수평선과 같아서 우리가 아무리 걸어도 결코 가까워 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계속 열망할지, 아니면 지금 행복의 기회를 잡을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 둘을 모두 가질 수는 없습니다. 바라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진정 한 행복의 순간입니다. 
- 자신의 판단만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삶에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도전에 부딪히더라도 우리는 이런 외적인 일들이 무엇을 의미할지 결정할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만이 최고의 반응을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반응이야말로 자신에게 기쁨을 주거나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 에픽테토스는 마음속으로 각오해야 할 두 가지 규칙이 있다고 조언합니다. 
첫째, 우리가 그렇게 선택하지 않는 한 좋거나 나쁜 것은 없습니다. 
둘째, 우리는 외적인 사건을 이끌려고 하지 말고 따 라가야 합니다. 저항은 소용이 없으므로 외부 상황은 오는 대로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이용해야 합니다.
- 분노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건전한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가 어렵다. 정념이 마음에 자리 잡도록 허용된다면 이성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 분노라는 적을 가장 외곽의 경계선에서 만나 격퇴해야 한다. 적이 도시로 쳐들어와 승리를 거두면 그 승리에 포로들이 도전하도록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네카)
- “우리가 교실에서는 그럴듯하고 능숙하므로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그 주제를 논리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전에 뛰어들면 비참한 난파선을 발견할 것이다.” (에픽테토스)
- 철학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관한 일입니다. 에픽테토스는 철학을 장인에 비유했습니다. 목수가 나무를 사용하고 조각가가 청동을 사용하듯이 우리는 삶의 기술을 위한 재료로 삶을 이용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가 연마할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기술에 통달할 때까지 끌과 나무망치를 사용하는 법을 배웁니다. 스토아 철학은 스토아주의 원칙들을 현실 사회에 적용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전사 같은 철학자가 되기를 바라고 우리가 배운 철학의 원칙들을 실천으로 옮겨야 합니다.
- 분투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 을까요? 우리의 어머니는? 우리가 매우 높이 평가하는 동료는? 또는 테니스 선수인 로저 페더러 같은 슈퍼스타는?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삶에서 부딪히는 도전이 없었다면 그들이 그 위치에 있지 못했으리라는 사실 말이에요. 삶의 고난은 중요합니다. 삶의 고난에 마주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세네카가 말했습니다. “신은 선한 사람을 버릇없는 애완동물처럼 만들지 않는다. 그 사람을 시험하고 단련시키고 자신만의 임무에 적합하게 만든다.”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역경은 시험입니다. 그저 훈련일 뿐이지요. 삶은 쉽지만은 않고 우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전적이어야 합니다. “모두가 떨며 몸서리치는 그런 역경은 누구에게 생기는 그 사람들 자신의 선을 위한 일이다”라고 세네카는 말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곤경에 빠질 때마다 삶에서 맞닥뜨린 도전 때문에 강해진 헤라클레스를 떠올려보세요. 삶은 때로는 힘듭니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세요. 우리는 잘 이겨낼 것입니다.
- 에픽테토스는 말합니다. “스토아 철학을 실천하기를 바라면 처음부터 조롱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많은 이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을 테니까.” 에픽테토스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심하라, 당신이 스토아 철학의 원칙을 계속 참고 실천한다면 처음에 조롱한 사람들도 나중에는 당신을 존경할 것이다.”
우리가 자기계발에 전념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조롱하고 힘들게 한 들 우리가 굳건히 견뎌낸다면 분명 그 사람들도 우리를 칭찬하게 될 거 예요.
에픽테토스는 또한 누구에게도 조롱받지 않을 가장 간단한 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철학자라고 칭하지 말고, 철학의 원칙에 관해 속인들에게 말하지 말고, 자신의 원칙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전념하라.”
- 우리는 스토아 철학을 추구하며 그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보고 그 과 정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해도 좋습니다. 윌리엄 어빈은 자 신의 저서 《좋은 삶을 위한 안내서》 (A Guide to the Good Life, 마음친구, 2022)에서 이 사실을 첫 번째로 조언하고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을 시 도하려는 이들에게 제안할 첫 번째 조언은 스토아 철학 몰래 따라 하기'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스토아주의 실천가로서 비밀을 잘 지킬 수 있으면 우리는 친구와 친척과 이웃과 동료들의 노골적인 조롱이라는 상당한 희생을 피하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 “장애물이 행동을 앞으로 이끈다.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곧 길이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앞으로 심장이 얼마나 더 뛰어줄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에 게는 그 운명에 대한 결정권도 없지요. 우리는 지금 당장 어떻게 살고 싶은지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스토아학파는 삶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고 조언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합니다. “마치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죽는다고 생각해보라. 이제, 남은 인생을 제대로 살라.” 마지막 날처럼 산다는 건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성찰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존재이고 다음 날 아침이면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 습니다.
죽음에 관해 깊이 생각해보는 일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 않고 오히 려 삶의 즐거움을 높여줄 것입니다. 그런 성찰은 우리에게 유리할 것입 니다. 모든 것을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모든 작은 일까지 더욱 감사히 여길 거예요. 우리는 삶의 매순간을 음미할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아니까요.
- "내가 가진 것에 둘러싸인 양 자화자찬하지 말라. 그저 빌린 것일 뿐이니. 우리는 소유물을 사용하고 즐길 수 있으나 그 기한은 빌려준 자가 결정한다. 우리에게는 무기한으로 빌린 소유물을 계속 간직하다가 요청받았을 때 불평 없이 되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세네카)
- “걱정이 덜한 시기에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를 대비해 미리 강해져야 한다. 행운의 여신이 친절할 때 그녀의 분노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 평화로울 때 병사는 책략을 수행하고, 적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성벽을 쌓고, 불필요한 노역으로 단련시켜야 한다. 필요할 때 똑같이 할 수 있으려면, 실제 위기가 닥쳤을 때 움찔하지 않으려면, 미리 훈련해야 한다.” (세네카)
- “황소도, 숭고한 정신을 지닌 사람도 갑자기 그런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혹독한 맹훈련을 수행하고 스스로 준비해야 하며, 또한 나와 맞지 않는 일에 경솔하게 나서지 말아야 한다.” (에픽테로스)
-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오늘 호사가들, 은혜를 모르는 자들, 이기주의자들, 거짓말쟁이들, 질투에 사로잡히고 짜증으로 가득한 자들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선과 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살아 있음과 숨을 쉬는 것, 생각하는 것, 즐기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특권인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앞의 인용문에서 보았듯이, 그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까다로운 사람들을 만날 준비를 하라고 조언합니다. 앞에서 배운 부정적 시각화 원칙을 참고하세요). 오늘만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는 골칫덩어리 같은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지요. 문제는 그런 사람들과 마주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입니다. 아침에 그런 준비를 한다면 골칫덩어리 같은 사람들을 인내, 용서, 이해, 친절 등으로 마주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요.
- "당신은 작가의 뜻에 따라 배역이 정해지는 연극배우라는 점을 기억하라. 작가가 짧게 만들자면 그 연극은 짧을 것이고, 길게 만들자면 길 것이다. 만일 그가 당신에게 거지 역할을 바란다면, 이런 역할도 능숙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절름발이, 통치자, 시민 역할을 맡기려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는 일이 당신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역할을 고르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에픽테토스)
-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대부분은 불필요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없앤다면 우리는 더 많은 여가와 평정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는 '이 일은 꼭 필요한 것인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우리는 또한 불필요한 추측도 없애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합 니다. 그 중요한 목록에 들어가지 않는 일은 없애야 하고요. 그러면 여가와 평정심을 얻게 될 것입니다. 누구나 하루는 24시간뿐입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고요. 스토아 철학의 현자는 무엇이 본질적인지를 명확히 밝혀내고 늘 그 일에 집중할 것입니다. 현자는 매순간 시간의 모래알이 흘러나가고 있으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 사후의 명성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예외 없이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들의 뒤를 잇는 세대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기억은 찬양의 촛불처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달되다가 마침내 사라져버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성과 행동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과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은 매우 다른 것입니다. 최고의 자아가 되 고자 하는 일에서 만족을 얻고, 명성과 갈채를 쫓는 일은 잊으세요.
명성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면 뜻밖의 선물로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성을 위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명성은 불확실하고 오래 가지 못하며 불필요한 일입니다. 명성에 관해 마르쿠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래전 조상의 삶, 미래 세대의 삶, 현재 야만 인들의 삶을 깊이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곧 당신의 이름을 잊게 될 것인지. 지금은 당신을 찬양하는 이들도 곧 당신을 비난하게 될 것이다. 명성이나 그밖의 것들이 얼마나 가치가 없는지 생각해보라.”
- 사치를 경험했다 하면 더욱 많은 것을 갈망하게 되지요. 물건을 소유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많은 것을 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에픽테토스는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욕구를 충족해서가 아니라 욕구를 제거하여 자유를 얻는다.”
진정한 부는 적게 원하는 데서 옵니다. 세네카가 말했지요.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누구든 소유하지 않은 것을 바라지 않고 소유한 것을 즐겁게 잘 활용할 수는 있다.” 목표는 “행운이 아닌 우리 자신으로부터 부를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세요. 불필요 한 일은 거부해야 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도 모른 채 오랫동안 해온 일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에 관한 세네카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볼까요? “그 많은 일들 없이 지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일들이 얼마나 필요 없는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그 일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 저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지속해온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사례에 이끌리는 태도에서 온다. 그 잘못을 이성으로 바로잡는 대신 우리는 관습에 현혹된다.”
- “공부하지 않는 여가는 죽음, 즉 살아 있는 자의 무덤이다.” (세네카)
- 스토아학파가 자신들을 이성의 진정한 전사라고 여겼다는 사실, 기억나시나요? 그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가장 중요하게도 그 방법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제자들에게 “삶을 축제에 온 것처럼 생각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비유는 삶이 곧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므로 삶에 감사해야 한다는 의미를 전합니다. 더구나 삶을 축제로 생각하면 우리는 분주하고 정신 없는 축제 같은 삶의 혼란을 좀 더 초연한 태도로 고찰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철학자로서 우리는 삶이라는 축제를 떠나기 전에 그 축제를 공 부해야 하고 가능한 지식을 많이 흡수해야 합니다. 삶의 축제가 이어지 는 동안 날마다 발전하는 일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 스토아학파는 세월 그 자체가 아니라 세월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젊은 카토가 아름답게 표현한 바 있지요. “건강의 가치는 건강의 지속 기간으로 판단되며, 미덕의 가치는 성숙함으로 판단된다.” 세네카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오래 산 사람도 너무 짧게 살았을 수 있다.” 후회하는 한숨보다 만족스러운 미소로 되돌아볼 수 있도록 우리는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 세네카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큰 낭비이다. 그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하나씩 내던지는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 때문에 주어진 현재를 버리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사는 일은 현재를 사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며 내일에 기대어 오늘 하루를 낭비하는 것과 같다. 행운의 여신에게 자기 미래를 맡기고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을 흘려보내는 꼴이다. (...)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합니다. 
- “외적인 일로 고통을 받는다면,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외적인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다. 당신은 이러한 판단을 당장 없앨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다른 사람들이 슬퍼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픽테토스가 말했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슬픔을 마음속 깊이 느끼지 않도록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공감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상대의 탄식까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 깊이 탄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런 태도에 관해 윌리엄 어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슬픔을 경험하지 말고 슬픔을 표현해야 한다.” 그는 또한 “친구가 슬퍼하고 있다면 그 친구가 슬픔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일이 우리의 목적이다. 마음속 깊이 느끼지 않을 정도로 친구의 슬픔을 함께 공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그 친구의 슬픔을 마음속 깊이 느끼는 것은 결국 나에게 상처를 줄 뿐 그 친구를 돕지 못한다.” 만약 여러분이 친구의 감정을 알고 친구와 함께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정말로 “불성실하게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도우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건 잘못된 게 아닙니다. 우리가 눈이 붓도록 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친구의 곁에서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슬퍼해도 괜찮다고 알려주세요.
- “우리는 실제로 상처를 입는 경우보다 겁을 먹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현실보다는 상상으로 더 고통을 받는다.” (세네카)
- 사람들은 흔히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태도가 가장 나쁜 방법일 거예요. 두려움은 겉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점점 커집니다. 두려움에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은 그 두려움 을 이성적이며 차분하게, 그리고 그 두려움이 익숙해질 때까지 생각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때 두려워했던 일에 싫증이 나고 그 걱정이 사라질 거예요. 상상에서는 현실에서든 자신의 두려움과 마주하면 그런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두려움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법에 대해 말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차려라.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 당신을 괴롭히던 것이 꿈이었음을 알고 나면, 이번에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이 현실을 마치 저 꿈들을 보았던 것처럼 보라.”
두려워하는 대상은 흔히 현실이 아닌 상상의 산물입니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현실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이 나빠질 것이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거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미 를 만져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요?
우리는 상상속에서 두려워합니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요. 그러니 분별없이 따르지 말고 멈춰서 이런 질문을 이성적으로 해보아야 합니 다. “이것이 타당한 일일까?”
-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오이 맛이 쓴가? 그렇다면 던져버려라.  가는 길에 가시덤불이 놓여 있는가? 그럼 피해 가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에는 왜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가?'라고 불평하지 말라.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것이다. 당신이 목수나 제화공의 작업장에 가서 물건을 만들다 생긴 대팻밥이나 널린 가죽 조각에 시비를 건다고 할 때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것과 같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다른 사람들은 역경을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되는 나쁜 요인으로 여기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해악으로 여기는 역경을 반대로 성장의 기회로 봅니다.
“질병은 신체에 장애를 줄지언정 내 의지에는 장애가 되지 못한다. 절뚝거림은 다리에 장애가 될지언정 내 의지까지 절뚝거리게 하지는 못한다”라고 에픽테토스는 설명했지요. 한쪽 다리를 절었던 에픽테토스는 절뚝거림이라는 다리의 장애를 마음의 장애로 여기지는 않았습 니다. 고통과 질병도 신체에 장애가 되지만 마음의 장애는 아니지요. 우리는 고통이 미덕을 시험하고 높여줄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내와 끈기라는 두 가지 고귀한 힘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 스토아학파의 조언대로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기에 있습 니다. 삶은 힘들어야 합니다. 이런 도전과 마주할 필요가 없다면 더욱 불행한 일입니다. 세네카의 말을 깊이 새겨두세요. “당신이 결코 불행 한 적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불행하다고 여긴다. 당신은 역경 없이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누구도, 심지어 당신조차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스토아학파는 삶에 몰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성장할 곳은 도전하는 삶이지 상아탑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았지요. 이제 힘든 상황과 마주치면 성장할 기회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성 장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어쩌면 나중에 감사하게 여길 소중한 경험 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삶이 우리에게 시련을 던져주느냐가 아니라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 우리가 어떻게 그 일에 반응하느냐입니다.
- “당신의 전 생애를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말라. 과거에 일어났거나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여러 고난을 한꺼번에 걱정하지 말라. 현재에 일어난 일마다 이렇게 자문하라. '이 일에서 내가 견뎌낼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당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듯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소유한 것들 가운데 제일 좋은 것에 감사하고, 만일 이마저도 갖지 못했다면 얼마나 갈망했을지 반성해보라. 그리고 이것을 잃어버리더라도 괴로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눈앞에 고기나 그런 음식이 놓여 있을 때, 우리는 이것이 물고기의 주검이고 새나 돼지의 주검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또한 팔레르노 포도주는 작은 포도의 즙에 불과하고 이 자주색 옷은 조개를 염료로 염색한 양모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동침할 때에는 내적소모와 경련에 따르는 정수의 사출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러한 인상들이 사물 자체에 도달하고 사물 자체에 침투함으로써 우리는 그 사물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누군가가 당신의 적인 것처럼 행동하고 당신을 모욕하거나 반대할 때는 그가 자신에게 옳은 일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되뇌어라. '그 일은 그에게 그렇게 보인 것이다.” (에픽테토스)
-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사람들을 인내하고 용서하는 힘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불가피하며 자연스러운 일로 보거나 어떤 질병에 걸린 것 같다고 여긴 다면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이 용서하게 될지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그저 길을 잘못 들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오직 동정 심과 용서이며, 이들을 비난하기보다 도와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늘 명심하세요.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실수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 “우리는 눈먼 사람과 다리를 절뚝이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듯이, 가장 중요한 능력에서 눈이 멀고 다리를 절뚝이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이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고, 욕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불쾌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에픽테토스)
- “부당하게 입은 피해를 복수하지 않고 치유하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 일인가! 복수는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처음보다 더욱 큰 피해를 안긴다. 분노는 늘 상처보다 더 오래 지속되니,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좋다. 노새에게 발길질당하고 개에게 물렸다고 그대로 갚는 것을 그 누가 정상이라고 하겠는가?” (세네카)
- 에픽테토스의 말을 되새겨볼까요? “모욕을 주는 것은 당신을 괴롭히거나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모욕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당신의 생각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해야만 모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타인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 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으므로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무덤덤한 일입니다. 이에 관한 마르쿠스의 조언을 들어 보세요.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평가 에서 자기 의견보다 타인의 의견을 더 신뢰하는 점이 놀랍다. 사람들은 '동료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보다 더 신뢰한다.”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합시다. 모욕을 참을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 하세요. 그러면 우리는 더욱 효과적인 적절한 방법으로 반응할 것이고, 더 강해질 것이며, 또한 의지가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에픽테토스가 말했지요. “그렇다면 누가 의지가 강한 존재일까? 이성적인 선택만 할 뿐, 어떤 일에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다.”
- 사소한 일부터 시작하자. 올리브유를 쏟고, 포도주를 도둑맞았을 때 이렇게 되뇌도록 하라. ‘나는 마음의 평정심을 얻기 위해 그만한 값을 치렀다.’ (에픽테토스)
- “대부분의 시간에 침묵을 지켜라. 꼭 필요한 말만 하고 그것도 간단하게 말하라. 자주 말하지 말고 필요할 때만 말하라. 일상적인 화제나 검투사나, 경마나, 육상경기나, 음식 같은 평범한 일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무엇보다 사람들에 관해 칭찬하거나 비판하거나 비교하는 등의 소문을 전하지 말라.” (에픽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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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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