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전쟁

경영 2017. 8. 2. 19:56
- 넓은 의미에서 짝퉁을 뜻하는 단어 산자이는 가짜라는 의미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음.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도적들의 소굴. 산자리라는 말의 유래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소설 수호전과 관련이 있음. 송나라 당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108명의 호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에는 이들의 주요 활동무대인 산자이가 등장
- 또 다른 설은 홍콩 기원설. 홍콩은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금같은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하지 못했다. 그저 고만고만한 수만여명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가내수공업으로 홍콩경제를 이끌던 것이 당시 상황. 심지어 지금은 지구촌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호인 리자청 조차도 홍콩 섬 외곽에서 시작안 조그마한 창장 플라스틱 완구공장을 차려 기업인이라는 명함을 내미는 수준이었다. 이때 이들이 운영한 공장은 광둥어로 산자이창, 즉 산자이 공장으로 불림. 당시 공장들이 마치 산적들이 우글거리는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산채 같았기 때문. 또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외국제품에 비해 질이 떨어지고 조잡했던 탓에 산자이훠, 즉 산자이제품으로 불힘. 멸시의 뜻이 다분했기에 자연스레 가짜, 모조품, 복제품이라는 뜻 역시 가지게 됨
- 그럼에도 홍콩의 가내수공업자들은 이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어라 산자이제품을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음. 그 결과, 70년대 접어들어 홍콩경제를 서서히 탈아시아 수준으로 견인하는 주역으로 우뚝 서게 돔. 제품의 질 역시 산자이훠라는 말을 더이상 듣지 않아도 될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됨. 그러다 이들은 78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중국의 개혁개방 바람을 맞는 행운을 누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인근 광둥성 경제특구인 선전과 광저우로 달려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때만 해도 산자이라는 말은 없었다. 생산설비 등은 이전했어도 산자이라는 말은 옮겨가자 않았다. 결코 자랑스러운 단어도 아니었다. 또 이들 밑에서 조금씩 사업을 배우기 시작한 광둥성 일대의 중국인들 역시 짝퉁이나 모조품을 만들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이 이후로도 10여년간 지속.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주의적 양심이 살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법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탓. 하지만 90년대 들어 상황은 급변. 이른바 자본주의의 전 단계인 사회주의시장경제가 더욱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부터. 돈에 눈이 먼 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과거 홍콩식의 제조업에 서서히 발을 들여 놓았던 것. 이후 짝퉁제품은 홍콩에서처럼 산자이훠로 불리다 산자이로 완전히 정착되기에 이름. 광둥성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
- 유명 브랜드의 술이 가짜가 많은데도 품질문제가 대두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한정된 수량의 최고급 진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는 회사에서 지나친 짝퉁의 범람을 방지하기위해 나름대로 수준높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짝퉁을 묵인하기 때문. 아예 일부 브랜드들은 이런 회사들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품질을 관리하는 등의 지도에 나서기도 함. 게다가 정부의 관련부처에서 이들 짝퉁의 생산과 유통, 판매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도 짝퉁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유로 꼽힘. 한마디로 중국 전역에서 유통되는 고급브랜드의 짝퉁은 진품을 제조하는 회사와 당국에서 묵시적으로 허가를 내준 물카기용 짝퉁, B급 진품이라고 할 수 있음.
- 78년 12월 덩샤오핑이 이끄는 공산당이 제11기 3중전회(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개혁개방 노선을 확정한 다음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했을 때 눈여겨본 모델은 다름 아닌 홍콩.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거의 같은 도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가까워 그 이상의 벤치마킹이 없었다. 그 결과 선전은 지난 30여년 동안 베끼기에 관한 한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던 홍콩의 경험을 그대로 흡수, 거의 똑같은 발전과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중국 최고의 짝퉁왕국, 산자이 중의 산자이 도시로 불리며 제2의 홍콩으로 우뚝섬
- 선전의 산자이는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함. 그래도 역시 유명한 브랜드의 IT제품 베끼기가 대세. 선전 중심지에서 약 15킬로 떨어진 룽강구 일대를 일별하면 상황을 이해가능. 이곳에는 선저우 같은 정식 브랜드 공장과 함께 짝퉁 브랜드 공장들이 무려 200여곳 가까이 뒤섞여 입주. 공장들의 외관은 거의 차이가 없다. 산자이 제품 생산의 현장이라는 지저분한 느낌을 주는 곳은 없다. 일부 공장은 도리어 더 깨끗한 분위기. 말쑥하게 잘 정돈된 직원기숙사, 식당을 갖추지 않은 공장은 없다.
- 선전의 산자이 IT제품 제조 및 유통에 관한 한 천하무적의 도시라는 사실은 화창베이루의 사이거 플라자를 둘러봐야 비로소 확연해짐. 선전의 대표적 랜드마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빌딩은 무려 356미터의 높이에 총 79층. 이중 IT관련 매장은 7개층에 지나지 않지만 연면적은 3만평방미터. 입주업체는 1500여개에 이름. 매출액은 300억 위안, 한화로 5조가 넘는다.
- 짝퉁과 산자이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고는 소비자들의 극단적 옹호로 이어지기도 함. 기본적으로 외국의 글로벌 브랜드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는 중국인들은 이들 제품이 제국주의 시대의 열강과 다를바 없는 다국적 기업들이 풀어놓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폄하함. 여기에는 세계적 명품들이 상징하는 우월감과 고급취향 제품들을 소비하는 선진국 부유층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뿌리깊은 반감이 서려 있음. 이 양극화의 상황을 타파하려면 짝퉁, 이른바 산자이가 등장해야 했따. 그러던 차에 마침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에서 짝퉁들이 대거 나타나기 시작. 이들은 전혀 예상치 않은 상황에 환호. 짝퉁을 만드는 기업들을 산적이 아닌 의적집단으로 부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 짝퉁이 만들어지는 곳을 산적의 소굴이 아닌 혁명군 기지로, 산자이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로빈훗이나 체 게바라 같은 혁명가가 이끄는 게릴라 군으로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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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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