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 드럭스

etc 2021. 1. 20. 21:04

- 19세기의 문학은 아편틴크에 푹 빠져 있었다” 라고 한 역사가 는 썼다. 그리고 아편의 매력은 인텔리겐차를 훨씬 넘어서까지 마수 를 뻗쳤다. 19세기 중반의 영국에서 아편은 진만큼 저렴하고 담배보다 더 널리 보급되어 노동자, 농민, 빈민층에까지 확산되었다. 여성들은 삶의 지루함에서 잠깐 벗어나기 위해 아편을 사용한 다음, 자녀들에게 건네줌으로써 허기를 달래고 울음을 그치게 했다. 남성들은 고통을 가라앉히고 말썽을 잊기 위해 아편을 사용했다. 만약 수중에 남은 아편이 있다면, 농장의 동물들에게 던져줘 (도축하기 전에) 살이 피둥피둥 찌게 만들었다.
- 1825년부터 1850년 사이에 영국의 아편 판매량은 매년 4~8퍼센트씩 증가했다. 영국 정부는 국민들의 늘어나는 아편 선호를 충족하기 위해 인도에서 양귀비 플랜테이션을 장려했고, 그것은 곧 전 세계 공급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동인도회사는 아편을 전 세계에 선적하는 사업에 뛰어들었 다. 아편을 재배·가공·운반·판매하는 것은 큰 돈벌이가 되었고, 영 국은 그 시작일 뿐이었다. 만약 아편이 영국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다. 면, 다른 나라들에 더 많은 아편을 사용하라고 부추길 경우 무역상들에게 얼마나 많은 부를 가져다줬겠는가? 인도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영국령 인도제국의 신민臣民들에게 빈틈이 없기를 바랐다. 지구상에는 다른 나라들 이 많았으므로, 굳이 인도를 표적으로 삼을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인도를 발판으로 삼아 다른 나라들로 아편 거래를 확대할 경우 영국에게 더 큰 이익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나라의 국민들이 아편에 중독되어 약화될수록 유리했다. 그 래서 영국은 지구상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중국의 청조Celstial Empire를 겨냥하게 되었다.
- 최초의 획기적인 발견은 1806년, 독일의 약사 견습생 프리드리히 제르튀르너Friedrich Serturner에 의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조잡한 실험실에서 나 홀로 연구에 몰두하다가 아편의 정수精髓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여러 달에 걸친 집요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세심한 가열과 용해를 통해 끈끈한 원료물질을 분리해내어, 다 양한 용매와 증류 방법을 이용하여 정제했다. 그런 다음 정제된 증기 를 냉각하여 액체로 만들고, 액체를 건조하여 결정화한 다음, 그 결 정을 새로운 용매에 다시 용해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르튀르너는 수백 가지 새로운 제제를 만들어냈다. 그는 떠돌이 개를 대상으로 아편 제제의 효능을 테스트한 다음, 몇 명의 친구들을 거쳐 마침내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테스트했다. 제르튀너는, 아편은 단일 성분이 아니라 수많은 성분의 복잡한 칵테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들은 알칼로이드alkaloid라고 불리는 화합물군群의 구성원으로, 모두 몇 가지 흔 한 분자구조와 속성을 공유했으며 하나같이 쓰디쓴 맛이었다. 결론 적으로 말해서, 아편에는 서너 가지의 주요 알칼로이드 화합물과 수 십 가지 자질구레한 화합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르튀르너는 아편의 알칼로이드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최초로 정제하여 비록 거칠었지만 연구했는데, 아편의 효능 중 대부분은 그것에서 비롯되었다. 천연혼합물에서 분리된 화합물은, 같은 무게의 아편보다 열 배 강한 효능을 발휘했다. 그는 그 물질을 라틴어로 프린시피움 솜니페룸principium somniferum(수면의 원리)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을 기면성 혼미drowsy stupor에 빠뜨리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중에 모르피움morphium 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그 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 모르페우스 Morpheus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모르핀 morphine이라고 부른다.
- 제르튀르너의 연구에 이어 알칼로이드에 관한 연구가 붐을 이루었고, 1820년대에는 다른 '더 유명한 과학자들이 모르핀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 오래된 독일의 제약사가 모르핀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능숙해졌다. 당신도 머크Merck" 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오늘날 그 회사는 수많은 의약품을 생산하지만, 모르핀은 그 제국이 건설되는 데 초석이 되었다. 원료물질을 분리해내고 정제하여 그 유효성분active ingredient을 연구하는 능력은 유기화학organic chemistry ( '생명의 분자'에 관한 연구)이라는 새로운 과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유기화학과 제약은 함께 성장 했다. 19세기를 통틀어 다른 연구자들은 아편 칵테일을 더 많이 분리하여, 원료의약품 속에 들어 있는 다른 알칼로이드들을 정제했다. 그 결과 많은 알칼로이드가 쏟아져 나왔다. 1832년에 분리된 코데인codeine은 모르핀보다 진통 효과가 떨어지지만 탐닉성을 덜 초래했 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것은 오늘날 진해시럽 cough syrup에 널리 사 용되고 있다. 뒤이어 아편성 알칼로이드opiate allkaloid 의 목록에는 테바인 hebaine, 노스카핀noscapine, 파파베린papaverine, 나르코틴narcotine, 나르세 인narccine이 추가되었다. 알칼로이드 화학자들의 기술이 더욱 향상되 면서, 코코아, 담배, 커피, 마전자 nux vomich, 기나피 bark of the cinchona tree와 같은 식물에서 더 많은 알칼로이드 ( 코카인, 니코틴, 카페인, 스트리 크닌strychnine, 퀴닌, 아트로핀tropinem)가 분리되었다. 알칼로이드의 목록은 계속 확장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화합물 그룹에 속하 는데, 생체활성bioactivity 이 있으며 맛이 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만약 의학과 약학의 뒤얽힌 역사에 영향을 미친 약물을 딱 하나만 들 라면, 나는 서슴없이 아편을 택하겠다. 효능이 강력하고 역사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편은 다른 어떤 약물보다도 약물의 이중성격ual nature을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설명해준다. 모든 약물은 한편으로 큰 혜택을 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엄청난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사실 '악'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선'을 얻을 수는 없다. 모든 과학적 발견은 양날의 검이어서, 그 혜택은 신체적·심리적 위험과 불가피하게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혜택만 보고 얼씨구나 하고 덤벼 들었다가 위험을 뒷감당하느라 허둥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 쁨을 주는 식물', '신이 내린 의약품'으로 일컬어지는 아편이 그 대표적인 예다.
- 터키 사람들의 기법은, 피부(보통은 팔)를 피가 날 정도의 깊이로 단순히 긁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 상처에 바늘 끝만한 양의 천연두 물질을 묻힌다. 그러면 그 '물질'이 경미한 질병을 초래했고, 질병이 다 나은 후 어린이는 더 이상 천연두에 걸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 레이디 메리는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그녀는 오랫동안 주목할만한 삶을 살았고, 동시대의 위대한 인물들과 어울렸고(위대한 시인이자 수필가인 알렉산더 포프가 그녀를 극찬했으며, 세간에서는 그녀가 포프를 압도한다고 평했다), 베네치아의 멋진 백작과 사랑에 빠졌고(그녀는 남편을 버리고 그를 택했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지속적으로 작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그녀의 아들(콘스탄티노플에서 접종을 받았던 소년)은 실망스러운 삶을 살다 노름꾼이 되어 가산을 탕진했다. 메리의 딸(런던에서 의학적 시범 사례가 된 소녀)은 장차 영국의 수상이 될 인물과 결혼했다.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태규는 1762년 세상을 떠난 후 의학의 개척자'로 칭송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녀의 위대한 성과 유럽 에 인두법을 최초로 도입함 는 최근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세 상의 관심과 영예는 그녀 대신 에드워드 제너(접종소에서 끔찍한 경험을 한 후 절치부심하여 '백신의 아버지'로 유명해진 소년)에게 돌아갔다.
- 제스티의 수많은 친구와 지인들 중에 존 퓨스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우두 접종을 담당한 지역의 의사였다. 퓨스터는 소젖짜는 여인과 우두 간의 관계'에 대한 지역사회의 믿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한때 런던에서 ‘우두가 더 위중한 질병(천연두)을 예방할 수 있다'라는 내용의 강연을 한 적이 있었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퓨스터가 그 아이디어를 이론화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실행 에 옮긴 사람은 농부인 제스티였다. 1774년 유행한 천연두가 그 지 역을 위협할 때, 그는 자신의 몸을 염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두에 걸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과 어린 두 아들은 우두는 물론 천연두에도 걸린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인근에서 유행하는 천연두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제스티는 자신이 보유한 방어력을 처자에게 제공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주변을 수소문하여, 이웃의 젖소 떼 중에서 우두에 걸린 젖소 한 마리를 찾아냈다. 그는 가족을 인솔하고, 들판을 가로질러 감염된 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고는 젖소의 젖에서 '우두 물질'을 채취하여, 아내와 아들들의 팔을 짜깁기용 바늘로 긁은 다음 재빨리 밀어 넣었다. 이러한 '동물 → 인간 전달'은 처음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듯 했다. 아내의 팔이 세균에 감염되었는데, 여의치 않아 의사를 불러 치료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이 사실을 안 이웃들은 그를 비웃으며 야유 했고, 급기야 “신을 모욕했다” 라며 진흙과 돌멩이 세례를 퍼부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멋지게 성공하여, 그의 가족 세 명 모두 경미한 우두를 앓은 후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나중에 마을을 휩쓴 천연두 집단 감염은 그의 가족을 건드리지 않았다. 제스티는 마을 사람들의 생명도 살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겸손한 사람이었으므로 우쭐대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는 농사일로 되돌아갔다. 제스티의 스토리는 나중에 가서야 알려져, 장차 종두법yaccination으로 불릴 접종법을 최초로 실행한 인물'로 기억되었다(종두법은 소라는 뜻의 라틴어 바카vacca 에서 유래한다. 종두법이라는 용어는, 제스티의 실험이 행해진 후 몇 년 후 그 성과를 독차지한 사람에드워드 제너의 발명품이었다. 제스티가 들판을 터덕터덕 가로지른 지 수십 년 후인 1790년대에, 제너는 신중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우두를 이용한 신식 접종(종두법)'이 ‘천연두를 이용한 구식 접종(인두법)' 보다 유의미하게 안전하고 효 율적”이라는 사실을 납득시켰다. 그 생각은 처음에 공격을 받다가 결국 인정을 받아, 제너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줬다.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나중에 말한 것처럼, “과학에서 명성은 '아 이디어를 최초로 떠올린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납득시킨 사람'에게 돌아간다.
- 백신을 접종받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면역력 없는 사람'의 풀Pool 이 커지므로, 감염이 확산되는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이유는, 충분한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받고 나니 (다른 동물숙주를 보유하지 않은) 천연두가 증식할 곳을 찾지 못하고 우 물쭈물하다, 결국 확산되지 못하고 소멸해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충분한 사람이 백신을 접종받는다면 감염 위험이 0에 접근하는데, 이게 모두 집단면역herd immunity 덕분이다. 천연두에 대한 승리는 어렵게 얻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예방된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수억 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피했다. 오늘날 다른 킬러들(이를 테면 폴리오)도 박멸의 사정권 안에 있다. 독립심, 위트와 영향력, 인내심을 지닌 레이디 메리가 이러한 기적의 문을 여는 데 기여했다. 우리는 그녀의 업적을 되돌아봄으로써, 그녀의 상식, 용기, 주도면밀함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 우리는 오늘날 수백 가지의 향상된 수면제와 이완제relaxant를 보유하고 있으며, 범죄자들은 더욱 다양한 약물을 희생자의 술에 섞는다. 클로랄은 아직도 처방되어 사용되지만(무엇보다도, 마릴린 먼로와 애너 니콜 스미스의 목숨을 앗아 간 약물 칵테일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는 주류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그러나 그것은 의학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했다. 클로랄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전합성약물의 원조로서 신기원을 이뤘다. 그리하여, 실험실에서 시험관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만든 약이 자연이 만든 약과 맞먹거나, 그것을 능가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그것을 열렬히 받아들였고, 잠 못 이루는 대중들은 그것을 열광적으로 사용했으며, 심지어 언론은 그 것이 충격적인 범죄에 사용된 사례에 주목했다. 이 모든 것은 실험 실에서 만든 약물들을 탐구하는 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리비히와 뵐러의 과학적 계승자들, 즉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에 등장한 여러 세대의 유기화학자들은 (인체에 작용하는) 분자들을 만지작거리며, 몇 개의 분자를 여기에 첨가하고, 몇 개의 분자를 저기서 끄집어내고, 특정한 목적으로 분자들을 재단하는 장인匠人이 되었다. 그들은 더 많은 화합물을 만들어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테스트했고, 어떤 화합물이 건강에 이롭고 어떤 화합물이 건강에 해로운지를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화학 산업이 전반적으로 붐을 이루게 되면서, 몇 명의 화학자는 새로운 합성약물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데 헌신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빅파마'라고 부르는 거대 제약사 군단은 녹아웃 물약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바이엘이 약물 쪽으로 방향을 튼 직후, 젊은 화학자 중 한 명인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n 이 노다지를 두 번 캤다. 1897년 여름, 그 역시 분자에 아세틸기 aceryl group 를 붙이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는 흰버드나무껍질willow bark (버드나무껍질은 오랫동안 열병 환자를 치료하는 약초로 사용되어왔었다)에서 분리된 물질에 아세틸기를 붙여, 새롭고 효과적인 해열진통제를 탄생시켰다. 회사에서는 그가 만든 의약품에 바이엘 아스피린 Bayer Aspirin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음으로, 그가 동일한 아세틸기를 모르핀에 붙이자, 수십 년 전 런던의 화학자 가 이미 테스트한 후 폐기했던 것과 동일한 분자(아세틸화된 모르핀)가 생겨났다. 그러나 바이엘은 그 분자를 버리지 않고,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테스트한 후 그 결과를 더욱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들은 심지어 공장에서 몇 명의 젊은 노동자를 선발하여, 인간을 대상으로 약물의 효능을 테스트했다. 그 결과는 경이로웠다. 독일의 노동자들은 호프만의 새로운 약물을 복용해보고 '기분이 매우 좋다' 라고 보고했다. 아니, '매우 좋은 기분이 아니라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들은 행복하고, 든든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영웅적인 느낌이 든다고 했다.
- 헤로인은 부분적인 천연물 아편에 함유된 천연 알칼로이드 중 하나인 모르핀의 유도체 인 동시에 부분적인 합성물로, 천연분자를 만지작거리며 몇 개의 원자를 첨가하고 삭제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헤로인을 반합성 아편제제semisynthetic opiate drug라고 부른다. 1900년 이후 많은 연구실은 (새로운 반합성 헤로인을 창조하기 위한) 바이엘의 작업을 반복했다. 그들은 아편의 알칼로이드 모르핀, 코데인, 테바인 등에서 시작하여, 그것들의 유효성분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 분자들은 연구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예컨대 모르핀은 다섯 개의 원자 고리가 결합된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 어떤 연구실에서는 거기서 가장 작은 유효성분을 떼어낸 다음 그 성분을 산산조각 내어 분자의 심장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러고는 그 조각들을 만지작거리며, 상이한 원자를 대체하고 측쇄를 첨가하여 반합성물로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즈음, 비중독성 진통제nonaddictive Painkiller라는 성배를 찾던 화학자들은 수백 개의 반합성 유도체 를 만들어 테스트했다. 그중 몇 가지가 시장에 출시되었지만, 성 공한 것은 극소수였다. 1920년 코데인은 약간 수정되어 히드로코돈hydrocodone (이것은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 과 혼합되어 오늘날의 비코 딘Vicodin이 되었다)으로 거듭났다. 1924년 모르핀도 코데인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히드로모르폰hydromorphone 으로 재탄생하여 특허를 취득 했고, 오늘날까지도 딜라우디드 Dilaudid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되고 있 다. 1916년 화학자들은 코데인을 개조하여 옥시코돈xycodone을 만들 었는데, 이것은 매우 강력한 반합성물로서 퍼코셋Percoce (지금은 옥시콘틴Oxycontin 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서방형 제제time-release formulation 로 악명이 높다)의 핵심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반합성 아편제들은 모두 효과적인 진통제이지만, 사용자를 약간 멍하게 만들며 여전히 중독성이 있다.
- 노벨상 수상자인 화학자 파울 에를리히 Paul Ehrlich가 개척한 '의약품으로서의 염료dyes-as-medicines'라는 접근 방법은 충분히 납득할 만 했다. 에를리히는, 일부 염료들이 동물의 특정한 조직을 염색하면 서 다른 조직은 무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컨대 메틸렌블 루methylene blue 의 경우, 신경에 특별한 친화성affinity을 갖고 있었다. 얇은 근육 절편을 메틸렌블루로 염색한 다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바탕에 깔린 미세한 파란색 섬유망에서 신경들이 도드라졌다. 메틸 렌블루는 신경만 염색하고 근육은 내버려뒀다. 그 이유가 뭐였을까? 에를리히는 염료의 장인匠人으로, 새로운 염료들을 발견하여 '어 떤 것이 어떤 조직을 좋아하는지’ 테스트한 다음, 그 이유를 이해하 려고 노력했다. 그는 '일부 염료가 인간의 세포보다 세균에 우선적으로 잘 달라붙는다'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는데, 이 지식은 영리한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이 세균 특이적 염료bacteria specifie dye를 무기로 사 용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독소를 염료에 부착하여, 그것을 유도 미사일guided missile 로 삼아 세균에 특이적으로 달라붙은 다음, 주변의 인간 조직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세균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인체 내부에 생긴 세균감염을 그런 식으로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신종 의약품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차우버쿠겔 른Zauberkugeln, 즉 마법의 공magic ball 이라고 불렀다. 
- 에를리히는 자신의 영감을 의약품에 적용하느라 많은 세월을 보냈다. 수백 가지 화합물을 만들어 테스트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1909년 최소한 한 가지 세균을 물리치는 염료 기반 의약품ye based medicine을 만들어내 살바르탄 Salvartan 이라고 명명했다. 살바르탄은 염료 비슷한 핵심에 비소arsenic라는 독소를 연결한 터프가이로, 심각 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그러나 비소보다 더 끔찍한 킬러인 매독yphilis 을 중단시켰다. 살바르탄이 등장하기 전에는 이 점점 더 흔해지는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과학 실험실에 서 현대적인 하이테크 치료법이 탄생한 것이었다. 에를리히가 만든 살바르탄은 그다지 훌륭한 마법의 탄환이 아니 었지만 정상 조직에 대한 독성이 너무 강하고, 한 가지 질병밖에 치 료할 수 없었다, 과학자가 새로운 치료용 화합물을 설계할 수 있 으며, 그게 나름 효과가 있다'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영화를 한 번이라도 관람한 사람이라면, 의무병이 병사의 상처에 백색 분말을 미친 듯 살포하는 '긴장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 가루약이 바로 설파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설파제는 게르하르트 도마크가 초창기에 목도했던 끔찍한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미국의 제약사들은 1943년 4,500톤 이상의 설파제를 생산했는데, 그것은 1억 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독일의 제약사들은 부분적으로 도마크의 지속적인 연구에 힘입어 수천 톤의 설파제를 추가로 생산했다. 그리고 그 항생제는 효과를 발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상처감염 때문에 죽은 병사의 수는 제1차 세계대전 때에 비할 바 아니었다. 상처감염의 광기와 싸우겠다던 도마크의 꿈이 실현되었던 것이다.
- 바야흐로 항생제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1950년대 말 항생제는 중요한 세균질환들을 거의 모두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매 년 수십만 명의 목숨을 예사로 앗아 갔던 유행병은 과거의 일이 되었 다. 2차대전이 끝난 후 20년 동안, 소아질환의 사망률은 90퍼센트 이 상 하락했고,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10년 이상 연장되었다. 약물이 일으킨 이러한 상전벽해 같은 변화를, 인구통계학자들은 “사망률 대전환he great mortality transition”이라고 부른다. 그 기폭제가 된 것은 설파제였다. 살아 있는 생물에서 만들어진 다른 항생제들과 달리, 설파제는 연구실에서 창조되었다. 그러나 설 파제는 여느 항생제와 동일한 목적(에를리히의 마법의 탄환처럼, 인체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세균만 선택적으로 살해한다)을 달성했으며, 의학적 관심사를 갱신하여 더 많은 항생제를 발견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설파제는 그 이상의 일을 해냈으니, 더더욱 강력한 약물을 발견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으로 가는 길을 제시했다.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바이엘은 기업적 접근 방법corporate approach 을 채택함 으로써 '최초의 현대적 제약회사' 중 하나라는 입지를 공고히 했다. 바이엘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장기적인 사고', '도박할 용의', '클라러의 영리한 분자 조작 기술', '도마크의 효율적인 검사 시스 템', '의학 전문가들의 통제하의 헌신적인 연구실과 동물 실험 설비 구축' 덕분이었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의 거대 제약사들을 위한 청사진이었다. 외로운 천재의 예감에 의존하는 신약개발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신약개발은 표적화된 문제 targeted problem에 몰두하는 과학자들의 팀워크에 의해, 화학구조를 지침으로 삼아 이루어진다. 신약개발은 '기술'에서 '산업적 과학'으로 진화했다. 설파제는 신약을 개발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안전성을 확보하는 규제 방법까지도 바꿨다. 엘릭시르의 대량 오염 사건과 (FDA를 현대 화한) 1938년의 FFDCA는 오늘날의 법적 시스템의 토대가 되어, 신약의 안전성과 효능을 보장하고 라벨링(유효성분 기재) 제도를 확립했다. FFDCA는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 RP-4560은 환자들의 수면을 도왔지만 표준 수면제와는 달랐다. 그것은 환자들을 녹아웃시키지 않았고, 들레의 표현을 빌리면 “달콤한 무심함sweet indifference에 휩싸이게 했다. 다시 말해서 환자들은 의식이 있고 의 사소통이 가능했지만, 광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상태에는 종종 추론능력이 수반되어, 많은 환자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정신 혼동mental confusion 이 감소하고 일관성이 향상되었다. 드니커와 들레는 셍탄느에서 증상이 가장 심각한 환자들을 선별하여 임상시험에 착수했는데, 그중에는 난치병 환자, 수년 동안 감금 되었던 환자, 심각한 우울증·긴장증·조현병 환자, 다른 치료법에 반응하지 않는 그 밖의 모든 정신질환자가 포함되었다. 모든 증례에서, RP-4560은 강력하고 선택적인 진정 효과salming effect 를 발휘했다.  심각한 정신병 환자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의사들이 그들에 게 말을 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면 치료 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혁명은, 탄느의 많은 전부는 아니었다. 환자들이 의사들과 대화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났다. 그들은 재치를 되찾았다. RP-4560은 환자를 진정시키는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그것은 섬망delirium과 환각hallucination을 녹여버렸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환 호성을 질렀다.” 다른 의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RP-4560이 환자에게 미친 영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의료진에게 미친 영향이었다. 뒷 병동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간헐적인 소동과 비명을 동반한) 소음에 익숙했던 정신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새로운 세상훨씬 더 조용하고 차분하며, 발전이 가능한 곳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환자가 치유되지 않는다' 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지만, 갑자기 환자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그들의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으며,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게 된 자신을 발견했다.
- 들레와 드니커는 1952년 5월부터 10월 사이에 발표한 여섯 편의 논문에서, 수십 명의 환자들(조증, 급성 신경병, 불면증, 우울증, 초조) 을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시험 내용을 상세히 기술했다. 그러고 나니 큰 그림이 그려졌다. 그것은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데 중요한 진보였으며, 특히 조증, 혼동, 그리고 (아마도) 조 현병에 유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우울증에는 효과가 없는 것 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모든 약이 그렇듯 부작용이 있었으니, 장기연 용하면 나른하고 무심하고 정서적으로 무감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좀비처럼 된다. 는 것이었다. 점점 더 많은 의사가 실험약 샘플을 요청하자, 제조사인 롱프랑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RP-4560은 프랑스 전역에서 임상시험을 거쳐 유럽 전체에 보급되었다. 유럽 각지에서 놀랍도록 광범위한 효능이 보고되었으며, 그중 상당수는 정신과 영역을 벗어난 것이었다. RP-4560은 수술을 앞둔 환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마취제의 효능 을 향상시킴으로써 용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한 불면증, 멀미, 임신부의 구역질과 구토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에 더하여 모든 의사는 그것이 매우 안전하 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롱프랑은 이 모든 희소식을 제품화에 반영하느라 노심초사했다. RP-4560의 효능이 워낙 다양해, 세일즈 포인트sales point 를 뭘로 잡아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1952년 가을 RP-4560을 출 시하며, “새로운 신경조절제 new nervous modifter” 라는 애매모호한 카피를 내걸었다. 그것은 마약, 수면제, 진통제, 마취 보조제를 하나로 뭉 뚱그린 개념이었는데, 이 모든 것은 정신질환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 휘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외과의사, 산과의사, 정신과의사 모두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당신 같으면 그런 약물에 무슨 상품 명rade name을 붙이겠는가? 왠지 애매하면서도, '뭔가 큰 것'을 암시하 는 이름이어야 했다. 결국 RP-4560은 프랑스에서는 메가펜Megaphen, 미국에서는 라각틸Largactil("큰 작용large action” 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시판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것을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 (CPZ)이라는 화학명으로 불렀다. 정신과 의사와 다른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수십 년 동안 '기적의 약'을 기다려왔는데, CPZ가 정신질환에 한 일은 항생제가 감염병에 항히스타민제가 알레르기에, 합성인슐린이 당뇨병에 한 일에 비견된다. CPZ야말로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약인 것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충분한 동물실험', 'CPZ가 인체에서 작용하는 메커니즘 규명', '장기적인 안전성 확인이 행해지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 CPZ는 1952년에 등장한 최초의 정신약으로, 오늘날 우리가 항 정신병약a tipsychoics 이라고 부르는 약물군의 효시다. 항정신병약의 2번 타자는 1955년 등장한 밀타운 Miltown 으로, 경미한 불안증을 치료하기 위해 매일 복용하는 신경안정제 ranquilizer였다. 밀타운은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페니실린의 보존제를 찾던 연구자가 '실험용 시궁쥐 중 일부가 무사태평하다'라는 사실을 눈여겨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밀타운은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마 티니 속의 알약” 으로 불리며 할리우드 스타 그로부터 몇 년 후, 제 리 루이스는 오스카상 수상식의 사회를 보며 밀타운에 대한 조크를 던졌다, 최고 경영진, 도시 유부녀의 애용품이 되었다. 다른 자질 구레한 신경안정제(예: 리브륨Librium, 바리움Valium)가 그 뒤를 이으며, 롤링스톤스가 “어머니의 작은 도우미Mother's Little Helper" 라고 부른 알약에 대한 대중적 열광의 서막을 열었다. 그다음, 1950년대 초 결핵 치료제를 연구하던 스위스의 한 연구자가 “우울증에 걸린 결핵 환자 중 일부가 실험약 중 하나를 복용한 후 복도에서 춤을 춘다” 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약물의 이름은 이프로니아지드 iproniazid 로, 최초의 항우울증제antidepressant 중 하나로 등극하여 1950년대 말 시장을 강타했으며,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쏟 아져 나온 푸로작Prozac을 비롯한 항우울제 군단의 원조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최악의 정신장애를 치료할 방법이 전무했지만, 이제 정신과의사들은 갑자기 등장한 다양한 신약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그와 함께 정신약리학psychopharmacology 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가 탄생했다. 제약사들이 펼치는 공격적인 마 케팅(예: SKF의 토라진)의 와중에서, 신약들은 자이거 사이클에 따라 영고성쇠榮枯盛衰를 거듭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간판은 신경 안정제였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항우울제가 블록버스터로 이름을 날렸고, 오늘날에는 세로켈Seroquel, 아빌리파이 Ability, 자이프렉 사Zypreta 등의 항정신병약 그룹이 미국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휩쓸며, 날로 그 위세를 더해 가고 있다. | 이 모든 정신약이 1950년대에 갑자기 등장한 이유가 뭘까? 그건 아마도 제2차 세계대전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해결할 사회적 필요성 또는 아이젠하워 시대의 획일성에서 벗어나고픈 욕망과 관련이 있 었던 것 같다. 이유가 뭐였든 간에 새로운 정신약은 미국인들의 약물 복용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이제 의약품은 심각한 건강 문제와 싸울 때만 복용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일과 후에 긴장을 해소해야 했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일상적 현실에 어떻게든 대처해야 했다. 1950 년대의 정신약은 1960년대에 들이닥칠 여가용 약을 위한 장場을 마 련했다. 1960년대에는 마약이 더욱 다채로워졌고 의식을 확장하는 환각제가 유행했는데, 그게 가능했던 것은 1950년대의 정신약이 미국의 문화를 바꿨기 때문이었다.- 항정신병약들은 정신병원을 비우고 정신의학의 관행을 바꾸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문을 옆으로써, 자아 개념(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뒤흔들었다. 1950년대를 관철한 빅퀘스천은 'CPZ의 작용 메커니즘은 무엇 인가?'였다. 그 의문을 해결하는 데는 10년간의 연구와 '뇌 기능을 바라보는 관점'의 커다란 변화가 필요했다. CPZ가 등장하기 전,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뇌를 전기 시스 템 예컨대 메시지가 전선(신경)을 통해 흐르는, 매우 복잡한 배전 반witchboard ?으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전선이 엉망이 될 경우 문제 가 발생하고, ECT와 같은 치료법은 전기 시스템을 재부팅한다고 생 각되었다. 그리고 엽절개술이란 배선wiring의 고장난 구간'aulty section 을 도려내는 것이었다. CPZ가 등장한 후, 과학자들은 뇌가 배전반보다는 화학실험 실 hemical laboratory에 더 가깝다'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CPZ의 비결은, 마음속에 있는 분자들 간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정 신질환은 '뇌 속의 화학적 불균형’, 다시 말해서 이런저런 화합물들 의 부족horrage 또는 잉여surplus로 재정의再定義되었다. 정신약은 화학적 균형을 회복함으로써 작용했다. 다년간에 걸친 고강도 연구에서, CPZ는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er 이라고 불리는 분자군의 수준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신경전달물질은 자극이 하나의 신경세포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이동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제 연구자들은 CPZ와 같은 약물들을 도구 로 사용하여, 100여 개의 상이한 신경전달물질들을 확인했다. 예컨대 롱프랑에서 발견한 CPZ는 도파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경전달 물질들의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제약사의 연 구자들은 더 많은 항정신병약을 발견하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은 '상 이한 신경전달물질들에 '제각기 다른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 로 나타났다.  1990년대 말, 일련의 새로운 항정신병약들이 아빌리파이, 세로 켈, 자이프렉사와 같은 상품명을 내걸고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위 2세대 항정신병약들second generation antipsychotics 은 1세대(CPZ 포함)와 전혀 다르지는 않았지만, 지연성 이상운동증을 초래할 위험이 약간 낮았 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위대한 혁신great breakthrough' 이라는 선전 문구와 함께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또한 더 많은 의사가 다소 안전하다는 이유로 더 많은 환자에게 안심하고 처방했으며, 종종 FDA 의 승인을 받지 않은 질병(재향군인의 PTSD, 어린이의 섭식장애, 노인 의 불안과 초조)에 대해 적응증외로 처방했다. 너싱홈, 교도소, 위탁가 정foster home에서는 그런 약물을 이용해 수용자를 진정시키고 통제했 다. 2008년, 항정신병약은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거의 전적으로 사 용하던 특수 의약품pecialty drug'에서 '글로벌 베스트셀러 의약품으로 성장했다. CPZ와 같은 정신약이 더 많이 연구될수록, 뇌의 화학적 미스터 리를 파헤치는 길은 더욱 활짝 열렸다. 그리고 우리가 휴대하는 '무지막지하게 복잡한 뇌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모르는 것은 더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복잡하기로 소문난 면역계 가 무색할 정도로 복잡하다. 우리는 의식을 이해하는 머나먼 여정에서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아마도 문화적 시각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의문은 “항정신병약 들이 '우리는 누구인가'와 '우리는 의약품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 가'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바꿨는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 리의 기분, 감정, 정신능력이 본질적으로 화학적hemical 일 뿐이라면, 우 리는 화학 즉, 약물을 이용해 그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신 상태는 더 이상 '사람의 됨됨이가 아니며, '치료될 수 있 는 증상'에 불과하다. 만약 우리가 불안감을 느낀다면 항불안제를 복 용할 수 있고, 만약 우울증을 경험한다면 항우울제를 복용할 수 있다.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집중력 강화제를 복용하면 된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정말 그런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 비아그라의 흥망사는 몇 가지 교훈을 제공한다. 첫째, 제약회사들은 생존하기 위해 비아그라와 같은 특급 블록버스터를 필요로 한다. 성 공적인 신약은 매우 드물어, 임상시험에 진출한 잠재적 의약품 중 극 히 일부가 FDA의 승인을 받고, 그중 3분의 1이 시장에 출시되어 개 발비를 회수하는 데 충분한 수익을 안겨준다. 여기서 핵심 사항은 개 발비인데, 오늘날의 신약은 개발된 지 평균 10~20년 후 시장에 출시 되어 약국의 진열대에 놓이기까지 5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에는 그 비용이 10배로 늘어났다. (제약사들이 이 비용을 계산하여 보고하는 방법과, 제약사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수치는, 제약사들이 제시한 수치의 절반 정도라고 보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든, 성공적인 신약을 개발하려면 무지막지하게 큰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제약사들은 다른 모든 실패작의 비용까지 만회할 수 있는 소수의 '잠재적 필승 카드'에 집중할 수밖 에 없다. 비아그라는 그런 필승 카드 중 하나였다. 이와 마찬가지 원 리에서, 화이자의 차기 베스트셀러 후보인 관절염 치료제 쎄레브렉 스Celebrex-- 이 역시 나이 드는 베이비부머'를 겨냥했다는 비아그 라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줬다. 이익을 늘리고 주주들을 행복 하게 해주기 위해, 제약사들은 블록버스터를 필요로 한다. 둘째, '장기집권하는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만병 통치약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방금 언급한 화이자의 두 가지 블록버 스터의 공통점은 기저질환을 치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발기장애와 관절병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주지만,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비아그라와 쎄레브렉스는 질병이 아니라 증상을 치료한다. 증상을 치료하는 삶의 질 개선제'는 끊임없이 처방될 수 있다. 만약 환자가 복용을 중단한다면 증상이 재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삶의 질 개선제는 제약사(그리고 의사)에게 끊임없이 수익을 안겨 준다. 엄청난 신약개발 비용을 감안할 때, 제약사들이 그런 식으로 수지타산을 맞추는 이유를 이해하기는 쉽다. 이윤 추구는 개발될 약 물의 종류를 왜곡시킨다. 이쯤 되면 제약사들이 인류가 절실히 요 구하는 신규 항생제를 등한시하고 노화의 증상을 치료하는 약물에 큰돈을 쏟아붓는 이유를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거대 제약사들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의약품을 완전히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환자 특히 암환자의 생명을 살리려고 분투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비아그라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삶의 질 개선제'는 더더욱 필 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비아그라는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의 선봉장 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 이다. “지금껏 출시된 그 어떤 약물보다도, 비아그라는 미국의 문화 가 갈망하고 동경하는 것 손쉬운 해결책은 말할 것도 없고, 영 원한 젊음, 성적 기량 을 더 많이 제공했다.” 한 에세이스트는 이런 의견을 개진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완벽한 의약품이다.
- 미국의 아편제 소비량은 오스트리아·독일·이탈리아의 소비량을 합친 것의 15배인데, 그중에서 정당한 의학적 이유로 사용되는 것은 겨우 20퍼센트에 불과하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미국 의료 전문가의 거의 4분의 1이 은연중에 아편제를 선호한다고 한다. 이 문제는 1913년 한 신문에 보도된 것을 시작으로, 100년이 넘도록 과학 연구, 사회적 프로그램, 정부 발표문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의혹이 해명되기는커녕 점점 더 눈덩이처럼 커져왔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5퍼센트 미만인 미국인들이 전 세계 아편유사제의 80퍼센트를 소비하고 있다. 아편유사제 합성물과 비합성물 모두 포함 에 대한 처방은 1992년부터 2015년 사이에 두 배로 늘 어났고, 같은 기간에 과다 투여로 인한 사망자 수는 거의 다섯 배로 늘어났다. 오늘날 아편유사제는 자동차 사고와 총기 살인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이 일익을 담당했다. 중독성 없는 진통제를 찾던 제약사들은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더욱 많은 진통제 더욱 강력 하고, 더욱 표적지향적인 아편유사제들이 발견됨으로써 가용 아 편유사제와 관련 의약품(속효성/지효성速效性(遲效性 진통제, 서방형徐放型 진통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코팅된 진통제, 모든 수준의 통증에 대한 맞춤형 진통제 등)의 총수總數가 매년 늘어났다. 그런 진통제들 외에, 아편 유사제 중독을 치료하는 약물(메타돈과 부프레노르핀buprenorphine), 아편 유사제의 작용을 역전시키는 약물(날록손 등), 아편유사제와 관련된 변비를 치료하는 약물, 환자들의 원기를 북돋움으로써 치유를 돕는 약물, 혈기왕성한 환자들을 진정시킴으로써 수면을 돕는 약물 등도 개발되었다.
아편유사제의 유행을 부추긴 또 다른 요인은 '돈'이다. 처방용 아편유사제의 시장 규모는 연간 100억 달러이고, 2017년에 발행된 진통제 처방전은 3억 장으로 항생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아편유 사제에 수반되는 떡고물(보조 약물ancillary drug로 인한 수입, 음지에서 오가는 불법 자금, 번창하는 재활원·갱생원·중독치료 사업에서 올리는 수입)이 짭짤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거대한 산업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장 참가자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되는 사업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지난 한세기 동안 그래왔듯이, 제약사들은 새로운 중독 방지용 제제'를 선전하고, 재활센터들은 더욱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약속하고,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을 발표한다. 아편유 사제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노력들 중 대부분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익숙하다.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가 최 근 내놓은 '마약 밀매자들을 사형에 처한다'라는 발상은 1950년대의 공산주의자들이 써먹었던 그리고 어느 정도 효과를 봤던 것과 똑같다. 그런 유類의 프로그램들은 서구 민주주의보다는 중앙집권화된 전체주의에 훨씬 잘 어울린다. 제약사가 새로 내놓은 제제, 재활센터가 새로 설계한 프로그램, 정부가 새로 발표한 계획은 아무리 많은 혜택을 약속해도 '빛 좋은 개살구', '속 빈 강정'일 뿐이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돈은 계속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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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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