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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저자
정지훈 지음
출판사
메디치미디어 | 2014-09-3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기술을 넘어 문화로 자리잡은 인터넷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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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초에 이른바 PC혁명이 일어남. 당시만 하더라도 PC시장을 놓고 자웅을 겨룬 것은 전통의 동부에 자리잡은 컴퓨터 업체인 IBM, 마이크로컴퓨터 등과 서부의 실리콘밸리에 자리잡은 매우 작은 회사였던 애플, 탄템 등의 회사였음. 이들의 대결은 컴퓨터 전쟁이라고 불렸는데, 서부의 작은 다윗들이 동부의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리면서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전성기를 맞는 시작점이 됨. 이 전쟁에서 서부가 이긴 것을 두고 동부의 전통적 서구철학에 반대되는 서부 해커철학의 승리라고도 말함. 어떻게 서부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60년대 젊은 세대들이 동부의 기존문화 질서에 저항하던 사건부터 거슬러 올라가 살펴봐야 함. 서부,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한 거리에 모여 히피 문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그 시작. 이들은 서구 전통적 기독교 중심 가치관을 대신하여 동양의 참선과 요가를, 먹는 것 또한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하는 등 기행과 저항을 보임. 그렇게 자유와 대중을 중심에 두고, 권위와 전통을 부정하는 여러가지 운동을 펼쳐감. 하지만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대략 70년대 말이 되자 가정을 이루는 상황이 됨. 그렇게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며 가장으로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저마다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게 됨. 이렇듯 과거의 행적과 삶의 변화들이 이어져 결국 실리콘밸리 문화에 영향을 주게 됨. 스탠퍼드대 연구인력이나, 세계적 연구소로 알려진 제록스의 PARC같은 연구소들을 이끈 많은 연구인력들이 과거에 히피생활을 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
- 실리콘 밸리의 성장의 미래의 서부산업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인터넷과 관련된 네트워크 철학과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커뮤니티, 그리고 해커중심 문화에는 미국 서부에서 뜨거운 바람을 일으켰던 대항문화가 그 뿌리로서 존재. 대항문화란 60년대 기성사회 주류문화에 대해 대안적 삶의 방식과 의미체계를 제시한 사회운동을 일컬음. 대항문화는 지배문화의 임장에서 볼 때에는 일탈적 성격을 띰. 68년 시어도어 로작이 처음으로 본격적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는 소외심리, 동양적 신비주의, 환각약물, 공동체적 실험에 대한 젊은이의 관심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양식으로 대항문화를 정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차대전 이후 미국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됨. 경제발전은 소비패터을 변화시켜 이때 수많은 전자제품이 탄생. 소비자들은 풍요로움 속에서 지속적으로 소비했고, 이것이 다시 경제를 끌어올리는 순환구조를 완성. 이 과정에서 경제적 부를 끌어올리는 순환구조를 완성. 이 과정에서 경제적 부를 축적한 백인들이 교외로 대규모 이동을 하면서 반대로 도심에 남은 흑인들이 빈민촌을 만들고 이로 인한 인종갈등의 더욱 첨예하게 확대됨. 또한 공적 영역과 사적영역이 분리되며 여성차별도 심화되는 양상이 나타남. 사회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전후 자녀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부모들과 커다란 세대차이를 겪게 됨. 청년들은 상업화된 자유와 쾌락에 이내 몰두함. 기성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사회화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굴종과 노예화로 받아들임. 여기에 냉전체제와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정치사회적 이슈로서 이들의 결속을 다지게 만들었는데, 근본적으로 이들은 권력구조가 모든 삶의 의미를 전체주의적 통제하에 놓고 감시한다는 것에 저항함.
- 유닉스와 UC버클리, 그리고 MIT에서 일했던 리처드 스톨만, 그리고 리눅스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해커이다. 페이스북의 주커버그가 기업공개때 주주들에게 남긴 편지가 있는데, 그 내용 중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된 것이 바로 해커정신이다. 마크 주커버그가 언급한 해커정신이란 백마디말과 계획을 세우기보다 바로 실행해보고 혁신하는 문화. 실패를 하더라도 빨리 실패하고 거기에서 필요한 교훈을 얻어야 더 나은 서비스와 경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
- 빌 조이와 버클리 대학 등이 관여한 오픈소스 운동은 버클리 캠퍼스에서 시작된 자유언론운동의 또 하나의 변형으로 보아도 무방. 소스코드는 어찌보면 독특한 언어로 만들어진 시로 보이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기계의 언어이기도 함. 이 언어는 컴퓨터로 하여금 어떤 동작을 실행하도록 만들고, 그에 따른 변화를 다시 컴퓨터를 통해 들을 수 있도록 만든 대화의 도구임. 그리고 이런 컴퓨터들의 네트워크는 자유로운 연설과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됨. 인터넷의 힘에 의해 해방의 기운을 느낀 버클리의 해커들은 기계로서의 컴퓨터에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인간과 기계, 그리고 기계를 매개로 한 인간과 인간의 의사소통을 촉진시킴. 이것이 해커들과 자유언론운동, 그리고 오늘날의 인터넷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
- 네트워크는 새로운 네트워크의 도구를 컴퓨터 프로그래밍 코드의 형태로 분산시키고 확산시킬 수 있음. 또한 커뮤니케이션이나 정보서비스도 같은 방식으로 확산될 수 있음. 이는 네트워크 자체가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도구를 발견하거나 발명할 때마다 계속 바뀌는 미디어라는 것을 의미. 네트워크에서 동작하는 소프트웨어가 업그레이드되면 자연스레 이런 업그레이드된 내용을 전파시킬 수 있듯이 말읻.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채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인 IRC는 핀한드의 한 프로그래머가 실험 삼아 올린 것. 머드게임은 영국의 한 대학에서 시작되었으며, 시분할 기술은 MIT의 한 해커가 개발한 것임. 이들은 모두 대단히 가치 있는 기술들을 만들어냈지만 이를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공개하고 확산시킴. 이들의 공통점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가치를 나누어 가지기를 바랐다는 점. 이들이 추구한 가치는 커뮤니티에 접근하는 양이나 질을 측정해서 어떤 이득을 취하고자 한 것이 아님. 그보다는 집단지성으로 꽃 피우는 커뮤니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 인터넷은 이런 철학의 토대위에 세워진 거대한 세계임
- 팀 버너스리가 최초로 웹서버와 브라우저 개발과 관련하여 애를 쓴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인터넷을 통한 웹이 세계적 인기를 끈 것은 모자이크가 발표된 다음부터. 마크 앤드리센이 주축이 된 NCSA팀에서 94년 10월에 모자이크를 발표한 뒤 웹은 폭발적 성장을 보이며 위세를 떨쳤고, 95년 마크 앤드리센과 짐 클라크가 설립한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에서 네비게이터를 발표하면서 점차 표면화됨. 네비게이터는 비상업적 용도로 쓰는 경우라면 무료로 배포되었고, 순식간에 모든 경쟁자들을 압도하면서 웹의 황제자리에 오름. 95년 웹은 글자 그대로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PC통신 중심의 네트워크 세상을 장악해나가기 시작. 네비게이터는 웹의 상징이었고, 네비게이터를 이용해서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짐. 그만큼 다른 종류의 브라우저는 존재의 의미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됨. 이렇게 급격히 커지는 웹환경을 바라보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에 도전장을 냄
- 원래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솔라리스라는 운영체제를 탑재한 워크스테이션과 서버를 팔아서 수익을 올리는 하드웨어 회사였음. 그렇지만 오늘날 가장 많은 개발자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래밍언어인 자바를 처음 만들어낸 회사로 유명. 자바는 제임스 고슬링이 91년 시작한 프로그래밍 언어 프로젝트임. 그는 원래 셋탑박스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었는데, 어느순간부터인가 운영체제와 관계없이 한번만 코딩을 하면 어디서나 아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환경과 언어가 필요해지겠구나 생각해서 개발한 것. 처음에는 고슬링의 사무실에서 보이는 참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oak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알고보니 이미 상표등록이된 이름이었음. 전하는 이야기로는, 할 수 없이 다른 이름을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이 커피 산지 이름인 자바를 따서 정하게 됨. 제임스 고슬링은 한번의 제작으로 여러곳에서 사용하기란 개념을 중시했음. 그리하여 어떤 하드웨어나 운영체제에서도 동작할 수 있는 가상 머신을 만들어 그 위에서 동작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그가 중요시 했던 개념을 현실화. 또한 당시 가장 많이 사용하던 C/C++언어와 비슷한 문법을 가졌지만 늘상 골칫거리였던 메모리 관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어를 디자인.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자바는 선 마이크로시스템스를 통해 95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냄
- 자바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자바스크립트는 알고보면 자바와 완전히 다른 뿌리를 가짐. 자바스크립트는 넷스케이프의 브렌단 아이크에 의해 개발. 당시에만 해도 최고의 브라우저 자리는 모자이크였음. 브렌단 아이크는 모자이크를 잡기 위해 웹에 프로그래밍의 힘을 부여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 그래서 웹디자이너들이 HTML을 이용해서 홈페이지를 만들 때 웹페이지에 직접 삽입가능한 간단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고안하기로 함. 당시 가장 유명한 프로그래밍 언어는 C/C++이었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발표한 자바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었음. 그렇기에 복잡한 언어를 새로 고안하기보다는 자바의 문법을 일부 빌려와 스크립트 언어를 정의하기 시작. 이것이 바로 자바스크립트임. 자바스크립트는 컴파일러라는 것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쓸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지만, 자바와 이름이 혼동되었기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허락을 얻어야 했음. 당행히도 당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를 이끌던 가장 중요한 인물인 빌 조이가 자바스크립트의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본 덕에 수락받을 수 있었음. 쉬운 스크립트 언어의 문법에 자바의 요소가 일부 들어가고 이를 널리 확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들어 무리없이 자바스크립트라는 이름을 쓸수 있어음. 자바스크립트를 디자인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쉽게 카피 및 복사를 하여 기능을 그대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점이었음. 특히 디자이너들이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시됨. 가령 내부에서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가던 상관없이, 비주얼한 효과를 본 뒤, 해당되는 코드블록을 복사하여 이를 삽입하면 그대로 동작하는 기능과 같은 것 말이다. 이런 편리함 덕에 실제로 많은 웹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비주얼 효과를 가진 자바스크립트를 사용하면서 큰 성공을 거둠. 그러나 초창기 브라우저 전쟁에서는 자바스크립트의 강렬한 비주얼 효과 때문에 되레 지나치게 화려하고 귀찮은 페이지들도 많이 등장했고, 이에 따른 사용자들의 불만도 폭주. 그뿐만 아니라 브라우저들 사이의 호환성 문제도 발생하면서 문제점이 적지 않게 나타남. 그렇지만 이후 웹기반의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리고 브라우저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자바스크립트의 활용성은 점점 높아감. 이제는 자바스크립트를 빼놓고는 인터넷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자바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스크립트 언어로서 자리를 공고히 하게 됨
- IBM은 오픈소스 진영에 뛰어들기 이전만 하더라도 독점과 수직통합이란 전통적 기업문화를 갖고 있던 거대기업이었음. 하지만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갖고 있는 다양한 특징과 수평적 협업이란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개방성에 의한 강한 성장동력으로 기업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었음. IBM도 처음에는 지적재산권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으며, 경영진에서도 적잖은 저항이 있었음. 그러나 리눅스 운영위원회를 작동시키면서 매달 임원회의를 통해 진행상황을 평가하는 과정이 몇 달간 지속되자 오픈소스의 마법이 자연스레 사내문화로 흡수됨. 이런 IBM의 사례는 오픈소스 혁명이 단순한 사회현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혁신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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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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