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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이후의 텔레비전

사회 2015. 3. 7. 16:49

 


TV 이후의 텔레비전

저자
한국방송학회 문화연구회 지음
출판사
한울아카데미 | 2012-11-1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포스트 TV 시대’의 텔레비전 문화 탐구한국방송학회 산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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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텔레비전론은 기존의 '인코딩/생산자 - 코드/텍스트 - 디코딩/수용자'의 3원론적 코드를 과감하게 포기함. 대신에 '미디어 자본/기술 - 텔레비전 문화/장치 - 대중교통/정치'의 삼각매듭 분석 틀을 제출한다. 텔레비전은 자본주의 체제 내, 여타 영역이나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된 조건을 일정하게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주변환경의 변화를 가져오는 미디어 환경이고 원격시청의 테크놀로지가 된다. 텔레비전은 권력관계 내 특정 효과를 발휘하고 동시에 특정 전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양가적 장치다. 포트스 TV론은 이런 텔레비전을 대중교통 및 대중정치의 가능성을 배태한 장치이자 사회문화적 환경변화를 초래한 미디어 자본/기술로 간주함. 텍스트-문화적이면서 기술적-장치적이며 동시에 일상적-대중적인, 방송을 포함한 원격-시청의 현실이자 원격 광학의 현상으로서의 텔레비전이 지닌 중대성에 주목한다. 그 문화적인 효과와 사회적인 의미, 정치적인 것과의 관계를 조명하고 읽어내고자 한다. 그래서 포스트 텔레비전론의 포스트에는 너머라는 뜻과 함께 현실 동향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초병의 긴장감도 일정하게 배어 있다고 하겠다.
- 90년대 말부터 상용화된 인터넷은 방송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보거나 다운로드해 비동기적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해준다. 더 나아가 이를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맥락에서 전유하거나 공유하며 개인 혹은 집단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 06년부터는 지상파 DMB방송이 시작되면서 장소에 상관없이 이동중에도 TV시청이 가능해졌다. 08년에는 KT의 쿡TV, SK브로드밴드 TV, LG유플러스 TV 등 IPTV가 상용화되어 텔레비전 수상기를 통해 인터넷 케이블로 전송된 실시간 방송 및 주문형 비디오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됨. 또한 09년 말부터 이용이 확산되기 시작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휴대용 단말기는 개인이 DMB지원 없이도 푹, 티빙, K플레이어 등 모바일 앱에 접속하면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방송시청이나 다시보기를 할 수 있는 모바일 TV환경을 제공함. 이런 모바일 TV는 통신망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다양한 기기로 방송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게 해주는 N스크린 서비스를 기반으로 둠으로써, 시청자가 시간이나 공간의 구속성에서 벗어나 필요에 따라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더 나아가 소셜미디어와의 손쉬운 연결을 통해 '보고, 떠들고, 나누자'라는 푹의 슬로건이 말하듯 시청행위가 단순한 보기를 넘어서 대화와 공유의 행위가 될 수 있도록 도움. 또한 스마트폰처럼 운영체제를 탑재해 인터넷상에 다양한 콘텐츠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이른바 스마트TV를 선보이기 시작.
- 과거 지상파 방송이 미디어 환경의 중심축을 이루던 시절, 텔레비전은 미디어로서 희소성, 일회성, 일상성 등을 가지면서 그저 스쳐지나가는 대상이 아니라 시선을 사로잡고 우러러보는 매혹의 대상이었음. 오락과 휴식의 수단으로서, 또래 집단이 공유하는 문화적 경험으로서, 일상적 하루일과의 일부로서, 그리고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미디어로서 텔레비전은 큰 의미가 있었다. 트랜스 미디어 환경에서 텔레비전이 다양한 미디어 형식 가운데 하나로 비중이 줄어들고 텔레비전 시청 또한 다양한 미디어 기기를 통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행위와 연결되어 전개될 수 있게 되면서, 올드 미디어로서 텔레비전이 가졌던 지배적 의미가 약화되고 있음. 그런데 옹이 말한대로 트랜스 미디어 환경이 도래했다고 기존의 지배적 미디어로서 누렸던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움. 사라진다기 보다는 그 의미와 적절성이 재구성된다고 봐야 할 것. 이용자들의 시선을 끄는 미디어가 많아지고 텔레비전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겠지만 텔레비전은 여전히 화젯거리의 제공자, 편안한 휴식처, 가족 유대의 매개자, 집단적 공동감각의 생산자 등의 역할을 담당함. 일과의 일부를 차지했던 미디어 전경에서 이제는 일상의 익숙한 생활소음이나 배경으로서 습관적으로 켜놓는 공기같은 존재가 되어버림
- 멀린에 따르면 요즘 미디어 이용자들이 시청한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함. 그 이유는 이들이 메시지를 보내고, 수용하고, 태그를 달고, 트위터를 하고, 페이스북을 하고, 게임을 하고, 채팅을 하고, 코멘트를 달고, 리뷰를 하고, 편집하고, 글을 게시하고, 파일을 올리고 만들면서, 보고 있는 중이 아니라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 따라서 이런 행위는 단순한 수신이 아닐 뿐 아니라, 기존의 능동적 수용자 개념이란 낡은 틀로도 이해할 수 없음. 모든 미디어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전통적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 사이의 구분이 불가능한 트랜스 미디어 환경에서의 프로그램 시청은 여타의 미디어 활동과 연결되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독립적 행위 단위로 정의 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음. 또한 개인 시청자를 "예기치 않거나 의도치 않은 이유로 문화적 재현을 재목적함으로써 미디어의 권위에 문화적 재현의 용도를 변경함으로써 미디어의 권위에 말대꾸하는 고립된 미디어 이용자로 이해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생산자로서의 이용자를 과잉강조함으로써 미디어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일상적 경험에 대한 큰 그림을 놓쳐버릴 수 있다. 트랜스 미디어 환경에서 텔레비전 경험은 시청하기가 아닌 하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텔레비전은 공동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미디어로서의 의미를 여전히 가지며, 특히 네트워크 공간안에서는 사람들을 묶어주는 감정 공유와 친교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
- 소비산업과의 관계, 글로벌화, 전문가 중심의 프로그램 제작은 사실 기존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의 연구의 주요한 키워드임. 회전속도가 빨라진 상품에 대응하는 포스트 시대의 마케팅은 소비자 개개인의 개성과 특수성을 강조함. 이에 따라 소비자는 끊임없이 차이와 개성을 위해 소비하는데 이들의 소비에는 좀더 사회적으로 공인받은 특정한 계층을 모방하고자 하는 상승욕구가 담겨 있음. 이에 따라 특정한 계층은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며 빠르게 바뀌어감. 그런데 특정한 계층은 주로 상류층, 유행을 선도하는 서구의 몇몇 도시 및 국가로 제한되는 경향이 있음. 이에 따라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 연구는 취향을 통한 계층이동에 관심을 가짐. 특히 글로벌화 현상과 함께 이런 계층이동은 국가간 경계를 넘어선다.
- 한국에서 일반인 중심의 리얼리티쇼의 미발달은 개인주의의 저발달과 연관해 이해할 수 있음. 현재 한국사회는 상당히 나 중심의 사회임. 타인을 의식하는 것도 남을 위해서라기보다 나의 체면과 나의 존재감 때문. 그런데 나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과 개인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다름. 개인주의란 특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개인에 대한 인정, 즉 개개인의 서로 구별되는 차이에 대한 인정을 말함. 지난 300여년이 넘은 긴 세월동안 영미 유럽사회가 개인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자유민주주의 정치와 문화의 기틀로 삼아온 반면, 한국은 87년 정치민주화 때부터 개인성이 강조된 것으로 간주해도 20여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졌다. 그래서 아직 한국에서는 개인의 특이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개인을 중심으로 보는 개인주의가 집단주의나 권위주의에 대립할만큼 발달하지 못했음. 물론 2000년대 이후 세계화나 정치사회 의식의 발달 속에서 한국에서 귀농의 삶이나 친환경적인 삶, 대안적 삶의 방식이 추구되고, 변별되는 개인들의 삶을 통해 자신들의 특별함을 주저없이 드러내는 경향 역시 발견됨. 그러나 그런 사례들은 대부분 주류적 삶이나 정상성에서 벗어난 독특함으로 재현되고 이야기한다. 즉 한국사회는 아직도 이념이든 스타일이든 삶의 양식이든, 다름에 대한 사회검열이 심의나 규제뿐 아니라 온라인의 비방으로서 악플을 통해 또 손가락질이나 눈길과 같은 미세한 행위를 통해 실행된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표준화된 과정을 겪으며 집합주의 정서구조를 체험해온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나만의 가치나 나만의 원칙 및 태도를 갖기란 쉽지 않다. 또 있다고 해도 방송대중 앞에 표현된 개인들의 특이성을 있는 그대로 관대하게 수용하는 한국사회도 아님. 따라서 리얼리티쇼에 출연해서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보통 한국인으로서는 경쟁심의 표현이나 자기자랑을 극도로 삼가고 대부분 겸손해 보이려고 애쓰며 상대 경쟁자를 칭찬하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내보임. 더구나 인터넷 발달이후, 톱스타조차도 집단적 정서를 조금만 거슬려도 다음날 안티팬의 공격을 감수해야 함. 즉 한국에서 일반인 중심의 리얼리티쇼가 발달하지 못하는 까닭은 개개인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개인주의가 충분히 발달되지 못하고 아직도 개인의 차이를 도덕적 잣대로 판단하려고 하는 동질성에 기초한 집합주의가 지배적 정서로 작동하기 때문일지도 모름. 그런데 이러한 한국인의 집합주의 정서가 평등의 정서와 맞물려 독특한 정서구조를 형성하면서 한국 리얼리티쇼의 경쟁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출시킨다.
- 시청자나 제작진이 공정성을 중시하는 이유는 프로그램 자체에서 연원하지 않음. 시청자들이 리얼리티쇼에 공정성의 잣대를 대는 것은 분명 한국사회에서 경쟁의 공정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의 투사일 수 있음. 그래서 리얼리티쇼에서라도 구조적 불평등을 극심하게 경험한 경제적, 사회적 약자에게 보상이 주어져야 정당하다는 정서가 담겨 있음. 따라서 최종적으로 누가 우승자가 되는가는 최종 승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게 됨
- 니콜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내러티브의 한계에 대해서 네가지를 지적한다.
(1)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내러티브의 적극적 사용을 통해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음
(2) 논리적 주장과 하나의 주제를 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보다는 영상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이 최우선이 됨
(3) 리얼리티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주제와 캐릭터를 다루는 데에 윤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를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음
(3)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며 궁극적으로 시청자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취하도록 유도하는 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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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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