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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9.30 20250930
  2. 2025.09.29 전략은 도구다
  3. 2025.09.29 아주 세속적인 철학 1
  4. 2025.09.29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5. 2025.09.29 장인을 생각한다 이탈리아
  6. 2025.09.29 이탈리아의 사생활
  7. 2025.09.29 20250929
  8. 2025.09.28 20250928
  9. 2025.09.27 20250927
  10. 2025.09.26 사이언스 쿠킹 2

20250930

Quote of the day 2025. 9. 3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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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도구다

경영 2025. 9. 29. 17:18

- 3C 분석이라는 나침반은 우리가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그리는 데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렌즈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됩니다.
먼저 '고객(Customer)'이라는 렌즈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런 점들을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집중해야 할 고객 그룹은 과연 누구일까?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떤 바람과 필요가 숨겨져 있을까? 그들은 물건을 살 때 어떤 과정을 거치고, 최근에는 또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얻고 선택을 할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고객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또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이죠.
다음으로 '경쟁사(Competitor)'라는 렌즈를 통해서는, 이런 점들을 꼼끔히 살피게 됩니다. '시장에서 우리와 어깨를 겨루는 주요 경쟁자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들이 가진 제품이나 서비스는 무엇이고,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전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가 배울 만한 강점은 무엇일까? 이 치열한 경쟁의 무대는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해갈까?' 경쟁의 지형도를 정확히 읽는 것은 생존과 성장의 필수조건이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 즉 '자사(Company)'를 비추는 거울을 통해서는 이런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 우리만의 특별한 기술이나 소중한 자원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시장에 내놓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들은 건강한 상태일까, 아니면 정비가 필요할까? 재정적으로는 튼튼한 기초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 안에는 어떤 새로운 기회가 숨어있고, 또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위험 요소들을 경계해야 할 부분은 없을까?' 스스로를 아는 것이 모든 전략의 시작이니까요.
이렇게 고객의 목소리, 경쟁의 흐름, 그리고 우리 안의 가능성이라는 세가지 창을 통해 얻은 다채로운 정보들을 한데 모으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그 윤곽을 뚜렷하게 그릴 수 있게 됩니다.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경쟁자들이 제공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해낼 수 있는 것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혹은 그 사이의 빈틈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1회를 발견하기도 하고 우리가 나아가야할 미래 전략의 방향을 설정하는 소중한 나침반을 얻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3C 분석이 우리에게 주는, 단순한 정보 분석을 넘어선 깊이 있는 통찰입니다.

- 세상을 움직이는 여섯 가지 흐름: PESTEL 분석과의 첫 만남
이 PESTEL이라는 나침반은 그 뿌리가 깊습니다. 이야기는 1967년, 프란시스 아컬라르가 "비즈니스 환경 탐색(Scanning the Business Environment)"이라는 지혜가 담긴 두루마리를 펼쳐 보이면서 시작됩니다. 그가 처음 ETPS(환경, 기술, 정치, 사회)라는 네 갈래 길을 제시한 이후, 여러 시대의 학자들이 이 길을 넓히고 다듬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섯 갈래의 PESTE[이라는 탄탄대로로 완성시킨 것이죠. 이분석의 틀은 마치 복잡하게 얽힌 세상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마법의 열쇠처럼, 기업이 직면한 거대한 외부 환경의 수수께끼를 풀고 미래를 향한 전략이라는 튼튼한 배를 건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지혜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PESTEL 분석은 기업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벼려낸 전략가의 칼과 같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기술, 환경, 그리고 법률이라는 여섯 현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변화의 파도 속에서 나아갈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다섯 가지 힘들의 상호작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맞서 싸우고 있는 경쟁자들과의 전투는 얼마나 치열하며, 승리의 깃발을 꽃기 위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한가?"
"새로운 경쟁자들이 우리 시장이라는 성벽을 넘어 들어올 가능성은 얼마나 높으며, 우리의 방어벽은 얼마나 견고한가?"
"우리가 심혈을 기율여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전혀 다른 무언가가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은 없는가?"
"우리의 고객들은 가격이라는 저울 위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으로 추를 움직일 수 있으며, 그들의 요구에 우리는 얼마나 귀기울여야 하는가?"
"우리에게 생산의 젖줄을 대고 있는 공급자들은 가격 인상이라는 고삐를 얼마나 세게 질 수 있으며, 그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 비록 MVC가 처음부터 어떤 특정 학자가 정교하게 설계한 공식적인 프레임워크의 형태로 시작된 것은 아닐지라도, 이 세 가지 근본적인 질문, 즉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우리는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진솔한 답을 찾고 그것을 조직 전체의 약속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시대를 넘어 수많은 위대한 기업들이 그 가치를 증명해 온 가장 실질적이고도 강력한 경영의 지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결국 MVC는,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행동 속에서 살아숨쉬며 기업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강력한 '살아있는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번개처럼 찾아오는 영감?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진짜 혁신은 운에 기댄 우연이 아니라, 마치 정교한 건축물을 올리듯 치밀한 설계와 끈질긴 실험 끝에 피어나는 필연의 결과입니다. 이때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Business Model Canvas)와 최소 기능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은 단순한 아이디어 스케치북을 넘어, 마치 복잡한 기계를 정교하게 조립하듯 혁신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핵심 연장과 같습니다.
이 도구들은 단순히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는 칸 채우기 놀이가 아닙니다. 이것들은 마치 숙련된 탐험가의 지도와 나침반처럼, 전에 없던 방식으로 가치를 만들어내고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길을 설계하도록 이끌며, 최소한의 자원으로 가장 빠르게 성공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똑똑한 실험실' 그 자체입니다. 이번 장을 통해 여러분은 더 이상 혁신을 막연한 기대감이나 신비로운 영감의 산물로 여기는 대신, 철저한 계획과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성공 확률을 극적으로 높이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손에 쥐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친 파도와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가치를 빛어내며 시장을 놀라게할 제품과 서비스를 탄생시키는 단단한 역량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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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세속적인 철학

인문 2025. 9. 29. 17:13

-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자유다
결국 쇼펜하우어가 문제 삼는 것은 '우리를 움직이고 고통을 배가시키는 본능과 충동이 어디에서 왔느냐입니다. 그는 이를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 의지라는 힘이 활동한다고 설정하고, 거기에서 원인을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관점에 따라 쇼펜하우어가 허구를 이야기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상당히 날카로운 허구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천재라고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어찌 됐든, 우리는 그의 책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해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를 했으니 이 책 전체가 공상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간주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저서 곳곳에서 인생에 대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비밀을 밝히는 부분은 물론, 우리가 현명하게 살기 위해 참고할 만한 조언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평안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다양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유용한 것은 역시 고독, 즉 Die Einsamkeit'에 대한 권유입니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고독이라고 하면 흔히 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평범한 교제도 없이 외톨이가 된 쓸쓸한 상황을 떠올립니다. 이것을 영어로 표기하면 Loneliness, 외로움입니다. 하지만 영어에는 고독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Solitude, (자발적) 고독입니다. 쇼펜하우어가 권한 고독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고독에는 우선 세상의 소란스러움에서 한 발짝 떨어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스스로 세상에 등을 돌리는 것이지요. 또한 세상에 범람하는 형편없는 가치관이나 투쟁에 구속당하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것은 동시에 그 의지를 속박하는 손에서 빠져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 그러나 많은 사람은 고독해지는 일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항상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따분해하죠. 자신이 팅 비어 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일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편 혼자 있는 일에 쾌적함을 느끼는 사람은 고독하고 있을 때 비로소 가장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행복을 느끼지요.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내면에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기억하세요. 고독은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출 것입니다.

- 자유를 표방하는 사회라 하더라도 사상의 자유, 기호의 자유. 직업의 자유가 무조건 존중되지 않는다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사회라도 위의 자유가 존중된다면 거기에는 인간의 자유가 있습니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자기의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는 저마다의 기호나 삶의 방식의 자유를 말합니다.
개인의 생활 방식이 비록 확실한 형태는 아니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강요되는 사회라면 거기에는 자유가 없습니다.따라서 종교에서 시작한 도덕 감정이 매우 강한 지역, 종교적 엄격주의가 공공연한 도덕이 되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는 밀이 생각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종교, 특히 기독교와 거기서 파생된 윤리 도덕에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보았듯이 기독교윤리는 사람의 자유를 속박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밀은 기독교에 대해 "이 도덕에는 행동에 대한 금지 사항이 지나치게 많으며 금욕주의를 우상화하고 있다", "기독교 도덕은 복종의 의무만 있는데, 이는 결국 기성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복종을 주장할 뿐이다", "성서의 도덕에는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지금까지 가장 고귀하고, 도덕적인 가르침의 대부분은 기독교를 모르던 사람들, 혹은 알더라도 기독교를 거부한 사람들이 만들어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밀은 기독교 윤리 외에 더욱 고상하고 보편적인 윤리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주장했지요.
* 다양성은 악이 아니라 선이다: 같은 의견으로 만장일치를 보는 것보다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 편이 전체에 유익하다. 반대 의견 안에도 반드시 중요한 정당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다양성이 선이기 때문에 자유롭고 다양한 생활 역시 허용되어야 한다: 아무리 독특한 개인 생활일지라도 비판받지 말아야 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각자의 개성 그대로 생활해도 된다.
* 개성의 자유로운 발전이야말로 개개인의 행복과 직결된다: 현재 있는 그대로의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 생활을 누려야 새로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능력의 발전으로도 이어진다.
*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막연하게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습관을 지녀서는 안 된다. 매번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이런 태도만이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자신이 처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기쁨과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

-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정년이 되어서 회사를 떠난 사람도 같은 허무를 맛봅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의 보람을 찾으려 하거나 '제2의 인생'으로 등산이나 취미생활, 문화센터안에 자신을 매몰시키려 합니다. 무언가로 자신을 가득 채워야 할 만큼 자기안에 공허가 퍼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간의 기준에 따라 실패 없이 살아왔는데 그 대가가 왜 끝없는 허무일까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살기보다는 세상에 맞춰 살았기 때문이지요.
'세상에 맞춰 살아왔다'라는 말은 세상의 상식을 자신의 상식으로 삼고, 세상의 윤리 도덕을 자신의 윤리 도덕으로 여기며 살아왔다는 뜻입니다. 사실 평범한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지요.
물론 이런 삶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들에게는 훌륭한 분별력을 가진 사회인으로 여겨지겠지요.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마음 한편에 공허를 안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의 분주함으로 공허를 덮으며 스스로 눈속임하고 있었던 것뿐이지요.
- 만약 100퍼센트 자기 자신으로 살아왔다면 허무가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는 전혀 없을 겁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입증할 훈장, 남들이 보내는 존경의 시선, 멋들어진 직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답게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테니까요.
그렇다면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흔히 자기 자신이란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옮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란 본능과 의지 그리고 능력의 가능성이 응축된 것으로, 자기 자신으로 사는 일은 이것들을 모두 해방시켜 충분히 활동하게 함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나 고양이, 아기는 항상 자기 자신으로 삽니다. 계획이나 어떤 의도 없이 그저 천진하게 살지요. 기쁨이나 웃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내일의 일은 물론이고 지금 이 순간의 손익조차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물리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는 한 계속해서 기분 좋게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누구의 제한도받지 않고 자신의 본능과 의지와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근원적인 기쁨은 그 세가지를 사용하는 일입니다.

- 우리에게 인생의 매뉴얼을 슬며시 들이미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대의 권력을 중심으로 한 지배 체제입니다. 우리는 지배를 받아들이며 행동과 사고방식이 예상되는 범위 안에만 머무르는, 순종적이고 획일적인 시민 계층이 됩니다. 획일적인 시민이 많을수록 지배 체제는 행정을 쉽게 컨트롤할 수 있지요.
이와 같은 상태는 언뜻 권력층이 시민을 보호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는 보호와 동시에 시민의 삶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다소 강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비유해 보자면 물고기를 어항 안에 가두고 죽을 때까지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드넓은 허무의 바다에 떠 있는 세계, 그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죠. 시민들은 그 또한 지배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며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내부에 있는 가치관과 윤리 도덕은 기성의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도 아닙니다. 이는 결국 떨쳐버릴 수없는 억압감으로 나타나지요.

- 니체가 전하는 지혜를 이렇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자신을 온전히 살리는,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인생이라는 춤의 스텝 하나하나를 스스로 정하며 자신만의 안무를 짜야 한다고요.
니체는 그런 일이 가능한 사람을 '초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는 니체가 살았던 19세기까지의 이름입니다. 그로부터 반세기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이 단어가 뜻하는 의미는 조금 바뀌었지요. 현재는 그런 이들을 자기실현을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언어의 분절화는 '본래 나뉘어 있지 않은 것이라도 언어로 표현하려고 하면 나누지 않을 수 없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이 현상은 도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과 성인을 나이로 나누는 일도 분절화입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모든 인간은 똑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환경이나 영양 상태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일정한 연령을 경계로 청소년과 성인을 딱 잘라 나눕니다. 이것이 바로 분절입니다.
지금 든 예에서는 무엇이 인간을 아이와 어른으로 분절했을까요? 바로 '성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이처럼 온갖 단어는 사물과 사건을 분절하는 작용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단어로 구성된 문장 또한 사물과 사건을 분절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어가 이런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보통 명확하게 나누지 못하는 현실의 모호한 것을 언어가 강제로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오른쪽과 왼쪽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비극을 낳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시로 민족 차별이 있지요. '민족'이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자신이 특정한 어떤 민족에 속한다고 여기게 되고, 바로 여기에서부터 인간은 서로 다르다는 생각이 생겨납니다. 이런 생각은 결국 차별을 부릅니다.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유대인을 열등 민족으로 간주해 대량 학살을 자행한 나치즘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차별 행위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남녀의 구별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여'라는 서로 다른 단어에 의해서 분절된 것이죠. 사실 언어상의 남녀 구별과 자연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어도 성염색체가 남성인 경우도 있고, 양쪽의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연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온갖 것이 존재하는데, 그것들을 한 가지 말로 나타내면 우리는 이들을 서로 '같다'고 간주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다르다'고 간주하지요. 이처럼 말이 차이를 낳는 것이 바로 언어의 분절화 작용입니다.

- 우리가 사는 사회는 구매욕과 서로 알맞은 상품을 교환한다는 사고방식 위에 서 있다. 현대인의 즐거움이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쇼윈도를 바라보거나 일시불이든 할부든 살 수 있을 만큼의 물건을 사는 일이다. 누구나 이와 같은 눈으로 인간을 보고 있다. 남성에게 매력적인 여성이란, 혹은 여성에게 매력적인 남성이란 자신이 찾고 있는 진귀한 물건과 같다.
(...)어찌 되었든 보통 연모의 마음을 품게 될 만한 상대는 자기 자신과 교제하는 일이 가능한 범위의 '상품'에 한정된다.
(....) 이처럼 두 사람의 인간은 자신의 교환 가치의 한계를 고려한 뒤에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품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때 사랑에 빠진다."
인간관계가 상품의 교환처럼 되어버린 이유는 물질적 성공이 가장 큰 가치를 갖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를 떠올려 봅시다. 많은 사람이 학력, 직장, 직업 등 물질적인 속성을 자신의 스펙으로 제시합니다. 그야말로 인간의 상품화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상대 자체와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교제라는 명목을 사용해서 상대의 속성과 가치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프롬이 살던 시대보다 더욱 심해졌습니다. 인터넷과 SNS를 이용해 조건에 맞는 교제 상대를 찾는 사이트가 난립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인간을 상대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사실 스펙을 읽고 비교하죠. 그런 다음 마치 상대를 이해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 나를 괴롭히는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
저는 흄의 철학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항상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상상하고, 영혼을 연속된 경험의 흐름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서서히 자아라는 관념의 속박에서 해방되면서 '무아' 상태로 들어가기가수월해졌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훈련을 해보길 바랍니다. 돌발적인 감정을 피하기가 수월해질 겁니다.
- 어느 날, 좌선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마음은 고요한 물처럼 평온한데 오랫동안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던 탓에 복사뼈가 아파서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제게 선생님은 딱 한 마디를 말씀해 주셨는데, 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복사뼈의 아픔은 복사뼈에 맡기고, 자네는 자네가 해야 할 좌선을 하게."
매우 이상한 말이었지만 당시의 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좌선을 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아픔이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아픔은 나의 아픔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나'라는 관념과 아픔'이 분리되자 아픔은 더이상 방해꾼이 되지 못했습니다. 마치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나의 아픔을 냉정히 바라볼 뿐이었지요.

- 저자는 보통 자신이 집필한 분야에 정통합니다. 많은 지식을 갖추고 있기에 아직 모르는 부분도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죠.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무지의 지가 고도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이기도 하지요.
한편, 표지 디자인에 대해서는 어설픈 지식밖에 없습니다. 무지의 지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어설픈 지식밖에 없으므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밖에 보이지 않아서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디자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아직 모르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날까요? 바로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 무지할 경우 이를 자각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간단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깨닫기란 절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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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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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비스베리님 같은 절기 식물은 토착민이 철마다 식량을 찾아 거주지를 옮길 시기를 정하는 데 중요하다. 토착민은 자신에게 맞게 땅을 바꾸지 않고 땅에 맞게 자신을 바꾸었다. 철에 맞는 음식을 먹는 행위는 풍요를 받드는 방법이다. 풍요가 도착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풍요를 맞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품 창고와 대형마트의 세계에서는 원하는 재료를 원하는 때에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주어지는 것을 제때 취하는 관습을 따르지 않고 막대한 금전적.생태적 비용을 치르며 식량을 억지로 우리에게 오도록 만들고 있다. 서비스베리님은 억지로 오지 않았으며 탄소발자국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맛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1년 중 오직 지금만 맛볼 수 있는 덧없는 여름 한 모금이니까. 자연에 피해를 끼치는 뒷맛도 없으니까.

- 인간에게도 서비스베리님의 열량이 필요하다. 토착식단에는 더더욱 중요하다. 서비스베리님은 페미컨의 필수 재료다. 페미컨은 말린 베리를 말린 사슴고기나 들소고기와 함께 곱게 빵아 정제유에 녹여 그대로 굳힌 음식으로, 에너지바의 원조다. 굶주리던 시기에 이 고농축 보존식품은 영양소가 온전히 들어 있고 쉽게 옮길 수 있으며 저장하거나 휴대할 수도 있는 식량이었다. 페미컨은 전통 교역 경제의 일부였다. 지역을 연결하고 대륙을 횡단하는 이 정교한 그물망은 생태계와 문화 곳곳에 필수영양소를 공급했다. 서비스베리님의 잉여 열량은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재화와 교환이 가능했다.
서비스베리님은 자라는 곳마다 토착 식단의 일부가 되었다. 내가 속한 포타와토미 네이션은 오대호 유역 아니시나베 부족 중 하나다. 전통 축제에서 자주색의 폰득폰득한 서비스베리 절임을 맛보았는데, 그러자 혀의 맛봉오리가 자극되어 고대 음식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서비스베리님은 포타와토미어로 보자크민님이라고 부른다. 최상급으로서 베리 중에 최고라는 뜻이다. 한 알을 혀로 음미하니 우리 조상들이 딱 맞는 이름을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블루베리님 맛이 나는 열매에 사과님의 묵직한 크기, 은은한 장미 향, 오도독 씹히는 작은 아몬드 맛 씨앗을 두루 갖춘 열매를 상상해 보라. 마트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맛이다. 

- 세상에 선물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자신이 호혜성의 그물망 안에 속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당신은 행복과 책임감을 느낀다. 무언가를 선물로 인식하면 설령 <그것>의 물리적 구성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관계가 심오하게 달라진다. 상점에서 구입한 털모자도 당신을 따뜻하게 해줄순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모가 손뜨개질해 준 것이라면 그것과 전혀 다른 관계를 맺게 된다. 당신은 책임감을 느끼게 되며 당신의 감사는 세상에서 추진력을 발휘한다. 상품으로서의 모자보다는 선물로서의 모자를 더 귀하게 다룰 가능성이 크다. 선물로서의 모자에는 관계가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물 사고방식의 힘이다. 자신이 소비하는 모든 것이 어머니 대지님의 선물임을 받아들이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된다.

- 생태경제학은 지구 자연계와 인간의 가치가 기존경제이론에 통합하는 신생 분야다. 밸러리는 경제학을이렇게 정의하고 싶어 한다. "삶을 지탱하고 삶의질을 향상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방법이지. 필요한 것을 어떻게 마련할지 궁리하는 방법이야." 나도 이쪽 설명이 더 맘에 든다.
생태와 경제 어원은 둘다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로 사는 곳을 뜻한다. 즉 관계의 체제이자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재화와 서비스다. 우리에게 기본값으로 부여된 시장 경제체제는 결코 유일한 경제모형이 아니다. 인류학자들이 관찰하고 서술한 여러 문화적 틀에서는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방법이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채색되어 있다.

- 선물 경제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재화와 금전이 아니라 감사와 연결이다. 선물 경제에는 직접적 교환이 아니라 간접적 호혜를 위한 사회적.도덕적 계약 체계가 포함된다. 그렇기에 오늘 당신을 잔치에 초대한 사냥꾼은 훗날 당신이 그득한 그물에서 물고기를 나눠 줄 거라 기대하거나 배를 수선할 때 일손을 요청할 수 있다. 공동체의 번영은 재화의 축적이 아니라 관계의 흐름에서 자라난다.
자연계를 사유재산이 아닌 선물로 이해하면 자신의 것이 아닌 풍요의 축적에는 윤리적 제약이 따른다. 선물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 남들에게 부족해지도록 하면 안 된다. 내어주어 모두에게 충분하도록 해야 한다.
선물 경제는 비공식적 관습에서 고도로 의례화된 절차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전통 토착 공동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포타와토미 부족의 회합에서는 종종 (베품giveaway'을 실시한다. 이것은 선물을 주어 관계를 다지는 의례다. 서구에서는 축하받는 사람이 선물을 받으리라 기대하지만 우리의 방식에서는 공식이 역전된다. 오히려 행운이라는 축복을 입은 사람이 선물을 줌으로써 그 축복을 나눈다.

- 선물 경제의 사례로는 북서부 태평양 연안 부족들의 포틀래치가 유명하다. 선물이 집단 안에서 돌고 돌면서 유대감을 다지고 부를 재분배한다. 전통적 포틀래치는 선물을 주는 축하연으로, 중요한 통과의례를 기념하기 위해 소유물을 듬쑥 너그럽게 나누어준다. 이 의례적 잔치는 선물하는 사람의 부를 드러내고 위신을 세우며 관계의 그물망을 엮는다. 받은 선물은 다음 축하연에서 베풀기도 하는데, 이로써 부를 순환시키고 상호 유대를 다진다. 부를 재분배하는 이 의례는 1800년대 선교사들의 영향 아래 있던 식민지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 포틀래치는 "축적이라는 문명화된 가치'에 반하는 행위로 간주되었으며 식민지 주민을 동화시키는 데 필수적인 개인 소유와 출세의 관념을 허무는 요소로 치부되었다.

- 선물 경제는 대지님이 베푸는 풍요로운 선물에서 생겨난다. 누구의 소유도 아니기에 모두에게 나눈다. 나눔은 선의의 관계와 유대를 낳는다. 그러면 이웃은 운이 좋을 때 당신을 잔치에 초대한다. 안전을 보장하려면 호혜성의 유대를 길러야 한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선물은 건네질 때마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서 새로운 영적 삶을 낳으며 이를 통해 되살아나고 새로워진
다"'라고 말했다. 고기는 자신의 식품 저장고에 저장할 수도 있고 형제의 뱃속에 저장할 수도 있다. 둘 다 굵주림에 대비하는 방법이지만, 사람들에게 그리고 먹거리를 내어 준 땅에 미치는 결과는 전혀 다르다.

- 밸러리는 생태학자들조차 극심한 경쟁이 성공적인 진화를 좌우하는 주된 힘이라는 가정을 재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개체를 진화의 단위로 간주할 때만 경쟁에 의미가 있음을 알아냈다. 집단 차원으로 초점을 이동하면 생존뿐아니라 번영에 관해서도 협력이 더 나은 모형이다. 작가리처드 파워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명체의 모든 차원 하나하나에 공생이 있습니다. 나의 존재를 좌우하는 생명체와 제로섬게임을 벌이며 경쟁할 수는 없죠"' 서비스베리님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 인간도 따라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경쟁을 기반 삼아 살아간다
모든 생명체는 다양한 지점에서 일정한 수준의 결핍을 경험한다. 따라서 빛이나 물이나 토양질소 같은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이 벌어지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없다. 하지만 경쟁이 벌어지는 조건에서는 생태계수용능력이 낮아져 개체수가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자연선택은 경쟁을 회피할수 있는 생물을 우대한다. 경쟁을 회피하는 방법은 공급이 달리는 요소를 필요 목록에서 지우는 것이다. 진화는 "네가 원하는 충분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원하면 돼"라고 말한다. 결핍을 회피하기 위한 이 전문화는 눈부시게 다양한 생물다양성으로 이어졌다. 각 종은 다름으로써 경쟁을 피한다. 존재 방식의 다양성
은 경쟁의 폐해를 막아주는 해독제다.

- 물 한 잔에 값을 치러야 한다는 건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분별한 경제 팽창으로 민물이 오염되면서 샘물과 지하수의 사유화가 부추겨지고 있다. 대지님이 거저 내어주는 선물인 단물을 얼굴 없는 기업들이 약탈하여 플라스틱 통에 담아 판다. 이제 많은 사람이 그전에 공짜이던 것을 누리지 못한다. 공공의 물을 오염시켜 사유화된 물의 수요를 창출하는 수법이 짭짤해졌다. 기업이 제조한 생수를 사람들이 사도록 만들려면 오염된 물이 수도꼭지에서 홀러나오게 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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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인 정신을 논할 때 작은 약방에서 시작해 모직업 길드로 갈아탄 후. 자본을 축적하여 은행가 길드의 맹주로 떠올라 결국에는 피렌체의 권력마저 장악했던 메디치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피렌체 교외의 작은 마을 출신인 메디치 가는 피렌체로 이주해 플랑드르(북프랑스. 벨기에. 네멀란드에 걸쳐 있는 지역)에서 양모를 수입해 가공하는 일을 시작했다. 당시 피렌체는 모직물을 값싸게 들여와 유럽에서는 구할 수 없는 동방에서 온 색색의 염료로 염색한 후 비싼 값에 유럽의 왕족들에게 재수출했다. 이를 통해 엄청난 자본을 축적했는데, 이 한가운데 메디치 가문이 있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탈리아는 섬유와 이를 이용한 패션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 피렌체 상인들은 양의 가죽도 싸게 들여와 이를 가공하여 질 좋은 가죽제품을 생산했기에 구두나 가방 등의 수공업도 발달하게 되었다. 피렌체 장인 정신의 기반은 이때부터 다져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려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16세기 중반부터 점점 그 빛을 잃어간다. 프랑스나 북유럽은 절대왕정을 다지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을 거치며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이탈리아는 작은 도시 국가로 뿔뿔이 나뉘어 계속 싸우다 보니 정치적.문화적으로 뒤처지고 만다. 결국 17세기가 되면 문화의 축이 프랑스로 옮겨지며 명품의 세계는 또 한 번의 도약을 하게 된다.

- 르네상스 도시 국가에서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명품의 근저에는 장인 정신이 존재한다.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손급히는 프라다. 구치, 페라가모, 에밀리오푸치. 로베르토카발리. 페라리 등은 모두 이탈리아 장인 가문 출신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피렌체나 밀라노 같은 도시 국가의 유구한 장인 정신을 이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들 회사의 본사가 밀라노와 피렌체에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파리와 함께 전 세계 패션의 메카로,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폐션계의 전문가들은 너도나도 밀라노로 날아간다.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내놓는 명품의 트렌드를 보기 위해서다. 프랑스 디자이너들도 로마시대부터 이어진, 뼛속까지 고급스러운 이탈리아인들의 감각은 일단 인정하고 본다.

- 밀라노는 이탈리아 통일 이전에는 북부에서 가장 강력하고 문예가 발달한 도시 국가였으며 현재는 패션산업과 이탈리아 증권가가 몰려있는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이다. 그러다 보니 이탈리아 경제력의 태반을 담당하고 있어 온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남부 지역과의 소득 격차가 거의두 배에 달해 밀라노, 토리노, 베네치아등의 북부이탈리아 도시 연합은 남부로부터 분리 독립하자는 움직임까지 있다.(토리노는 피에몬테 주의 주도로, 한때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 미우치아 프라다의 재능은 변화'에 대한 '확신'에 있다. 기성세대의 명품에 대한 모든 이미지를 뒤집어 접근한 것이다. 거기에 다양한 요소들을 서로 섞고 덧붙여 끝없이 변화하고 진화했다. 하늘 위에 고고히 떠 있는 명품은 유행에 쉽사리 몸체를 바꾸기가 어렵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그저 소극적인 시도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프라다는 유행에 자신을 맡긴다. 아니, 유행을 주도한다. 그러면서도 명품의 스타성은 유지한다. 무엇보다 일하는 지적인 여성들의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바로 그게 프라다의 매력이다.
프라다가 여성에게 준 소재의 자유는 마치 20세기 초반 코코 샤넬(코코는 예명으로 본명은 가브리엘이다)이 여성의 손에서 가방을 들어 어깨에 걸어준 것과 맞먹는다. 샤넬은 여성이 손에 들고 다니던 토트백에 긴 줄을 달아 어깨에 걸도록 해줌으로써 여성에게 양손을 쓸 자유를 주었다. 게다가 남성복을 만들턴 기지를 사용해서 여성바지 정장을 만든 것도 샤넬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20세기라는 새로운 시대가 대두하며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졌고 이를 고려한 패션이 창조됐으며, 이는 더욱더 여성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다.
여성이 변해서 패션이 바뀐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사회학적으로 좀더 연구해봐야 할 일이지만 여하튼 여성은 자유의 급물살을 타며 20세기를 보내게 된다.

- 끊임없이 규칙을 깨지만 영속의 가치를 추구하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축적된 감각이 세계무대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양차 세계대전 후 가난했던 이탈리아는 프랑스나 영국이 명품을 제조해가는 하청국가 역할을 했다. 중세부터 수공업으로 유명했던 이탈리아 장인들이 프랑스나 영국이 원하는 완성도를 보여주면서도 인건비는 싸니 인기 있는 것이 당연했다. 사실 이는 이탈리아인들로서는자존심의 문제이고 통탄해야 할 상황이었다. 중세 말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서유럽의 부를 일으킨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이자, 유럽 최고의 문화를 자랑하던 국가가 이탈리아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는 영국이나 플랑드르의 양모를 싼값에 들여와 피렌체 등에서 염색과 가공을 해 명품으로 재창조했다. 하지만 온 유럽의 왕족들이 갖고 싶어 했던 피렌체의 패션은 역사속 전설로만 남았다.
그러나 설움을 참으며 이탈리아는 착실하게 재도약할 기반을 다졌다.기술은 워낙 빼어나니, 여기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노하우만 축적하면 되었던 것이다. 장인 정신이 곳곳에 배어 있는 이탈리아는많은분야에서 가족 경영 체제의 소규모 공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패션도 예외가 아니다. 가족 중심의 기업이다 보니 시스템이 부족하고 마케팅력은 좀 떨어질는지는 몰라도 소량 생산으로 다른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고 또 빠른 변신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었다. 장인 기질에 특유의 감각이 있으니 마케팅 방법을 배워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면 되는거였다. 하청공장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간 후 이탈리아는 그동안 축적한기술로 화려하게 세계무대에 컴백했다.

- 토스카나는 장인들이 빛어내는 전통적인 키안티 와인의 본고장으로 르네상스와 거의 동의어로 여격지는 도시 피렌체를 그 한가운데에 품고 있다. 그래서 피렌체에서 조금만 차를 몰고 나가면 꽤 높낮이가 있는 구릉을 감아 돌며 포도와 올리브나무가 어우러져 끝없이 펼쳐진다. 콰트로첸토(15세기)에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많은 천재 예술가들이 이 부근 출신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가도 피렌체 북쪽으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빈치(실제로는 빈치 마을에서도 더 들어간 안키아노에 있다)에 있는데 그곳 역시 현재 키안티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미켈란젤로도 피렌체에서 동쪽으로 60여 킬로미터 떨어진 카프레세(기원이 같은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토마토 모차렐라 카프레세 샐러드에서의 바로 그 카프레세이다) 출신이다.
포도나무와 올리브가 끝없이 펼쳐진 비냐마지오 포도원은 마치 보석과도 같았다. 비냐마지오는 와인과 연극의 신 바쿠스가 재배한 포도나무 이름이라고 한다. 비냐는 이탈리아어로 포도나무이고, 마지오는 5월이라는 뜻이다. '5월의 포도나무'라니 한창 잎이 나오며 하늘을 향해 초록빛을 내뽑는 시기 아닌가.

- 카사노바는 귀족 태생이 아니었지만, 명성만으로 신분상승을 해 사교계를 드나들며 18세기 유럽 사회의 정치, 문화를 섭렵하고 귀족, 왕족. 지식인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무엇보다 여성과 자유를 사랑한 카사노바는 육체가 원하는 욕망을 존중했다.
여기까지의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타고난 인물 하나로 개천에서 용나 벼락출세한 거품 낀 연예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카사노바는 바람둥이라는 얄팍한 명성과는 달리 파도바 대학에서 그 어려운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젊은 시절 최초의 직업이 성직자였다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력도 가지고 있다. 이후 외교관과 로비스트의 길을 걸었고 음악과 비즈니스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으며, 지구를 움직이는 비밀결사 조직이라는 프리메이슨의 단원이었다고도 한다. 여기에 더해 1798년 둑스 섬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수학.의학 서적 등과 소설까지 40여 편의 책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자서전인 나의 인생은 18세기 유럽 상류층의 문화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 동방 교역의 접점인 항구도시였던 베네치아 사람들은 예부터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와인 한 잔을 앞에 놓고 떠들며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바카로 일주하기라는 전통이 있는데, 전통 주점인 바카로를 쭉 돌며 서서 마시는 것이다. 와인과 간단하면서도 맛좋은 치케토라는 핑거푸드를 함께 먹으면서 줄줄이 이웃해 주점을 전전하며 가볍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또 장소를 옮긴다. 원래 이탈리아인의 기질이 따뜻하지만, 베네치아인의 이런 전통은 좀 더 현란하다. 물길만이 인간을 이어주는 특이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베네치아만이 가진 독특한 정신상태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세상과 단절된 듯, 이곳에서는 일상성이 사라진다. '규칙이 해체된 자유'의 느낌. 파리가 주는 지극히 사회적이며 지적인 자유와는 또 다르다. 뭔가 인간의 본능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을 갖는다고나 할까. 바다냄새, 곤돌라, 미로와 같은 골목들.....

- 머나먼 동양의 끝, 중국에서 오는 각종 향료와 비단, 보석들, 그리고 비잔틴제국이나 아랍으로부터 들어오는 귀중품이 베네치아에 도착해 서유럽 곳곳으로 팔려 나갔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서유럽과 비잔틴제국 사이에서 교묘하게 밀고 당기기를 하며 독립을 유지해왔고, 생활양식에서 비잔틴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비잔틴의 반짝이는 황금빛 모자이크와 바다로 둘러싸인 자연환경으로 인해 베네치아인은 태어나면서부터 빛에 대한 감각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무 한 포기 없는 망망대해와 빛의 유희에 익숙하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형태보다는 색채적이라는 말이다. 어찌 베네치아가 유리의 그 신비로운 빛의 마술에 매료되지 않겠는가? 유리 장인의 도시로 중세부터 명성이 높았던 것도 당연하다.

- 로마시대에도 유리는 귀한 물건이었다. 귀족들이나 장신구, 향수병 등으로 소유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서로마가 멸망(4176년)하면서 유리 기술은 암흑의 중세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버렸다. 간신히 동방에서 명맥을 유지해 8세기경부터 이슬람이 모스크 사원에 쓰기 시작했고 곧이어 비잔틴의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사용되었다.
베네치아에 유리 기술이 전해진 것은 중세시대인 10세기경이다. 습지가 많다 보니 유리의 재료인 자갈과 소다의 조달이 쉬웠다. 그러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했을 때 도망친 몇몇 장인들이 베네치아로 이주했는데 이들이 부는 기법과 모자이크 기술을 들여왔다. 여기에 1453년 비잔틴제국이 오스만제국에 멸망하자 수많은 학자와 기능공이 이탈리아로 대거 피난해 왔는데, 그 안에 많은 유리장인이 섞여와 베네치아에 정착하였다. 이제 베네치아는 유리 제조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 이탈리아 요리는 프랑스에 비해 거칠다는 느낌이다. 아무리 고급 식당에 가도 뭔가 한구석이 어설픔을 지울 길이 없다. 외식이 발달하고 온 나라가 레스토랑 천지인 이탈리아에서 주요리가 20유로 이상이면 꽤 괜찮은 식당에 속한다. 하지만 호텔에서 추천받아 가보아도 뭔가 섬세함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얼마 전 친구와 대화하며 깨닫게 되었다. 그 친구 말이 내가 세련된 프랑스식 서빙과 스타일링에 익숙한데다, 요즘 한국의 외식문화 또한 국제적 수준을 자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한국의 웬만한 레스토랑 또한 정제된 스타일링에 우아한 서비스를 펼친다. 트렌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이탈리아에서 꽤 고급이라는 레스토랑에 가보아도 뭔가 부족하다 싶은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 80년대 중반 로마의 스페인 광장에 맥도날드가 처음 문을 열자 패스트푸드가 이탈리아의 식문화를 망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이때부터 피에몬테의 한 작은 마을에서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86년에는 이 운동이 체계화되어 협회까지 설립되었고 국제적으로 번지게 된다. 사라져가는 전통 식재료와 요리, 발효식품을 지키기 위해 생산자를 보호하고, 또 소비자가 전통의 맛을 잊지 않도록 교육하는데, 무엇보다 아이들의 미식교육에 공을 들인다. 이것이 발전해서 슬로라이프로, 이제는 슬로시티까지 생겼다. 이탈리아인의 일상을 볼 때, 안 그래도 모든 것이 우리보다 늦는데. 이것도 빠르다고 '느리게'를 외친다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 한국에서도 이제는 일반화된 파스타라 말은 이탈리아어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 만든 모든 것을 일컫는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소면, 중면, 라면, 수제비, 칼국수, 만두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파스타와 혼동하는 스파게티는 파스타 면의 한 종류일뿐이다.

- 나중에 알았지만, 정통 이탈리아 카르보나라에는 생크림을 쓰지 않는다. 다양한 조리법이 있으나 기본은 달갈(노른자만 쓰기도 한다), 베이컨, 양적으로 만든 치즈인 페코리노, 그리고 후추이다. 진정으로 카르보나라를 즐기는 이탈리아인들은 여기에 생크림을 넣는 데 질색한다. 아니, 이탈리아에서는 생크림 파스타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소스에 따라 크림이나 우유가 조금씩 들어가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하얀 생크림에 퐁당 빠뜨려 건져 먹는 파스타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크림은 주로 유럽의 북부 지역에서 쓰는 식재료이고, 프랑스 남부나 이탈리아, 스페인은 거의 올리브오일과 토마토 또는 아티초크(유럽에서 많이 쓰는 채소) 등을 기본으로 하는 소스를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파스타를 물에 푹 담가 건져 먹는 잔치국수나 칼국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파스타는 소스에 비벼 먹는 비빔국수에 더 가까있던 거다. 게다가 파스타는 찬물에 행구지도 않을뿐더러, 진정한 파스타의 맛을 보려면 '알 단테'로 익혀야 한다. 파스타가 너무 무르지 않고 속이 씹히는 정도를 의미한다.

- 머릿속이 온통 기계와 발명으로 꽉 차 있던 다빈치는 아마도 어떻게 하면 파스타를 좀 더 쉽게, 대량으로 생산할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넓고 두꺼운 면의 파스타만 있었던 당시 중국의 면에서 힌트를 얻어 얇고 가는 면발 뽑는 기계를 발명했고, 이렇게 뽑은 스파게티가 접시 위에서 흐트러지자 발명이 꼬리를 이어 삼지창 형태의 포크를 만든 이도 그라고 한다.
요리사 다빈치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하자면, 그는 훗날 프랑스에서 말년을 보낼 때 국왕에게 포도발을 하사 받아 직접 와인을 만들기도 했다. 기계공학자로서 일상의 많은 일을 편리하게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던 다빈치는 포도와 올리브를 압착하는 기계를 발명했고, 이 기계를 응용하여 인쇄업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주방 기구에도 관심을 보여 바비큐 기계. 꼬치구이 기계. 훈제용 오븐 등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바비큐 기계를 처음 발명한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냅킨, 후추갈이, 코르크 마개와 스크루 역시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다빈치가 발명했다고 해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마늘 빻는 도구를 지금도 레오나르도라고 부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적인 작품 <최후의 만찬> 역시 식사와 요리라는 주제에 솔깃해 의뢰를 받아들였다는 주장이 있다(게다가 그 그림은 수도원의 식당을 장식하는 벽화 아닌가!) <최후의 만찬>을 3년이나 걸려 제작한 까닭이 예수와 유다의 모델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식탁 위에 놓아야 할음식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다.

- 이탈리아 출신의 요리 중 세계 최대의 팬클럽을 자랑하는 피자는 빵 중의 왕이다. 피자는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 유래는 정확히 모르지만, 고대부터 먹어오던 빵 포카치아가 변형된 것으로 추측한다. 이 빵이 심심하다 보니 널찍하게 펴서 위에 해산물, 치즈, 허브 등을 올려 사람들의 입맛을 돋운 것이다. 18세기 이후 토마토소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피자는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19세기 들어서 나폴리 지역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피자리아(피자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는 피자의 품질을 높이는 1등 공신이 되었다. 원하는 토핑을 쉽게 무한정 조합할 수 있고 맛도 뛰어난데다 싼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피자는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먼저 나폴리 서민들 사이에서 유명해져 점심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다 보니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 된 피자가 금세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지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탈리아어에서 재미있는 것이 웬만한 단어 뒤에 끝자음에 따라 '-테리아'나 '리아'를 붙이면 그 물건을 파는 집이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커피를 팔면 카페테리아. 표를 팔면 비글리오테리아, 피자를 팔면 피자리아, 맥주를 팔면 비에리아다.)

- 여왕을 위해 만든 피자, 마르게리타
피자 중에도 재미있는 탄생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역시 나폴리에서 태어난 '마르게리타'다. 1889년 6월, 나폴리에 마르게리타 여왕이 방문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나폴리의 유명한 피자집 주방장이던 라파엘레 에스포지토가 모차렐라 치즈와 신선한 바질, 토마토를 넣은 피자를 만들어 '마르게리타'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 올린 세 가지 토핑은 각각 흰색, 녹색, 빨간색으로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한다. 이는 삽시간에 유행이 되어 여왕과 나폴리 민중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형성시켰고 이후 피자는 더욱 이탈리아의 대중 음식이 되었다. 이 피자는 '피자 나폴레타나'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에 나폴리 전통 요리로 등록되어 있다.

- 이탈리아에 가서 꼭 맛보아야 하는 네 가지를 꼽으라면 당연히 파스타, 피자, 커피, 그리고 젤라토이다. 파스타와 피자가 이탈리아의 영혼이고, 커피가 혈액이라면 젤라토는 이탈리아의 심장이라 할수 있다. 프랑스인들이 카페나 비스트로에서 친구들과 회포를 푼다면 이탈리아인들은 젤라테리아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 재미있는 것은 유럽인의 아이스크림 소비량 통계이다. 이탈리아인은9.3리터를 먹는다고 하는데, 이는 유럽인의 평균치인 8.7리터보다 크게 많은 것은 아니다. 반면에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아이스크림을 엄청나게 소비한다. 그중에서도 챔피언은 산타클로스와 자일리톨의 나라 핀란드로 연간 소비량이 13.3리터나 된다. 그런데 왜 유럽인의 중간치 조금 웃도는 소비량을 보이는 이탈리아가 아이스크림의 상징국가가 되었을까?
바로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낸 아이스크림을 소비하는 데 비해 이탈리아는 장인이 직접 만들어낸 아이스크림을 더 선호한다. 물론 이탈리아에도 공룡만한 아이스크림 대기업이 있지만, 토끼 같은 장인의 아이스크림집과 힘겹게 경쟁을 한다. 아이스크림 시장의 55퍼센트가 수제로 이탈리아는 역사, 점유율, 신선도, 품질, 따를 수 없는 전문성, 최고의 재료 등으로 승부하는 아이스크림 공방의 나라이다.
젤라토를 영어로 하면 아이스크림이라고 했는데 이 둘은 좀 차이가 있다. 생크림을 기본으로 해서 얼린 미국식 아이스크림과는 달리, 이탈리아인들은 너무 느끼한 유지방분은 혀에서 젤라토의 신선함과 충돌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생크림이 전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지방 함유량이 18~26퍼센트 정도 낮고 설탕 함유량도 훨씬 적다. 또 우유 베이스와 과일 베이스의 두 종류가 있는데 바닐라. 초콜릿, 피스타치오, 모카 등은 우유 베이스이고 딸기, 망고, 파인애플 등의 천연 과일을 사용하며 우유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게 과일 베이스다. 게다가 미국은 양을 부풀리기 위해 공기를 넣는데 비해 젤라토는 공기가 들어가지 않아 더 부드럽다.

-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에스프레소는 일종의 박카스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커피 맛을 음미한다기보다 바에 서서 그냥 한두 모금에 쭉들이키고는 가버린다. 에스프레소가 핏속에 흐르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카페는 주유소와도
같다. 즉 이탈리아인들은 카페인을 섭취하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거다.

- 한국에서 드립 커피라고 하는 것은 커피 중물에 녹는 수용성 성분만을 우려내는 것이다. 반면에 에스프레소는 압력을 가해서 뜨거운 증기로 수용성 성분뿐 아니라 원두 속의 모든 맛과 향까지 추출해낸다. 이는 진하고 그육한 향이 담기기는 하지만 끝까지 쥐어짜낸 맛이어서 인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의 커피 전문가들이 드립커피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런 데서 연유한다. 구수하고 부드러운 드립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은 나름의 철학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드립 커피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 환경이 에스프레소를 탄생하게 했을 수도 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의 물에는 석회질이 많다. 그래서 더 진하게 우려 물을 보완해주는 것이다. 여기에 에스프레소에는 보통 커피보다 카페인이 많을 거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에스프레소용으로 볶을 때 카페인이 더 많이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 커피와 와인은 닮았다. 그래서 시음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시각적인 면, 맛과 향미의 차이, 입에서의 지속성 등... 여기에 산도, 쓴맛, 과일향, 부드러움이 조합되어 맛을 구성한다. 좋은 맛을 내려면 커피콩의 품종과 품질, 블렌딩도 중요하지만 포인트는 어떻게 볶느냐이다. 여기에 들이는 정성과 시간, 화학적 지식 등이 맛을 좌우하므로, 산업적으로 대량 생산한 커피와 작은 공방에서 장인이 볶는 커피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 이 모든 것을 한 잔의 커피에 구현해내는 것이 바리스타의 능력이다.
에스프레소는 짙은 갈색에 크레마라고 하는 황금빛의 거품이 위에 떠 있다. 이 거품의 성분은 커피 기름과 단백질, 그리고 당분이다. '에스프레소'라는 이름에 걸맞은 커피가 되려면 적어도 물 100밀리리터당 볶은 커피 7그램이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일반커피는 5그램).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쓰지만, 덮거나 쏘는 맛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각설탕을 넣어 휘젓지 않고 천천히 쓴맛에서부터 단맛으로 진행하며 마시는 것도 즐겁다.
에스프레소와 함께 이탈리아 커피의 또 하나의 상징인 카푸치노는 증기와 섞인 우유 거품으로 커피를 덮는다. 잘뽑은 카푸치노잔 가장자리에 커피의 갈색 띠가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가운데 떠 있는거품은 하얗고 아주 밀도 있어야 한다. 액체와 기체 상태가 완전히 혼합되어 쫀쫀하고 매끄럽게 혀를 스윽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거품이 방글방글 생겨 밑의 커피와 섞이면 이는 곧 카페 라테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카푸치노는 아침의 커피이다. 거기다 이탈리아 카푸치노에는 시나몬이 없다. 한국의 짜장면이 중국과 다르듯이.

- 이탈리아는 전국 방방곡곡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인의 손맛이 나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포도원이 많다. 산업적으로 배양된 표준 효모가 아니라 집집이 자연 효모를 쓰기 때문에 바로 옆 동네에서 만들었는데도 그 맛이 전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 이탈리아 와인의 대명사, 키안티
이탈리아 와인의 전통적 명산지는 피렌체가 있는 중부의 토스카나와 토리노가 있는 북부의 피에몬테 지방이다. 토스카나 지역의 키안티는 한국에 와인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부터 외국에 나갔다 오는 사람들이 신기해서 사가지고 오던, 밑둥을 짚으로 싼 호리병 같은 와인병으로 인상 깊다. 아쉽게도 이제는 인건비 등 원가가 너무 비싸서 일반 병에 담아 유통하지만 말이다.
토마토 파스타와 마치 한 몸인 듯 잘 어울리는 국민 와인 키안티는 상큼한 맛을 주기 위해 청포도를 20퍼센트 정도 섞는 것이 전통이자 법적 규제였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이탈리아 내에서는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프랑스 고급 와인은 발뒤꿈치도 쫓아가기 어려웠다. 중세 때부터 상업으로 이름 높았던 피렌체나 피사의 후예답게 토스카나는 과감히 국제적으로 마음을 열고 혁신을 시도한다.
결국 토스카나의 600년 된 유서 깊은 포도주 가문 안티노리 세에는 프랑스의 최고급 와인만큼 품질을 높이겠다는 신념으로 토착 품종에 안주하지 않고 잘나가는 프랑스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농 등을 들여와이탈리아 버전으로 멋지게 키워냈다. 물론 보수적인 이탈리아 정부는 전통을 어기고 외국 품종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 와인에 등급을 주지 않고 막술인 테이블 와인급으로 분류해버렸다. 그런데 그 맛이 기가 막혀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아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소문은 금방퍼서 값이 엄청 뛰었고 이 와인은 슈퍼 투스칸이라는 멋진 이름을 달고 세계적인 와인이 되었다. 마침내 이탈리아 정부도 고집을 꺾고 중반에 이 와인의 급을 DOC로 올려주었다.

- 이탈리아 남성의 상징 그라파
"포도는 포도주를 남기고 포도주는 그라파를 남긴다"라고 이탈리아인들은 말한다. 또 40도를 웃도는 독주이다 보니 "그라파는 아침에는 납이고, 점심에는 은, 저녁에는 금이다"라는 속담도 있다.

- 우리나라에서도 막걸리를 만들고 나면 찌끼미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도를 압착해서 포도주를 만들고 나면 껍질, 씨. 잔가지 등이 남는데 이를 ' 비나키아라고 한다. 요즘은 이것으로 화장품도 만들고 포도씨유도 짜지만, 옛날에는 그라파를 만들었다. 커다란 찜통에 넣고 열을 가해 찌는데 , 물이나 다른 성분을 첨가헤서는 안 되며 오직 포도 찌꺼기만을 사용한다.
당연 그라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껍질 부분이다. 껍질 속의 성분이 그라파의 중요한 향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포도 찌끼미가 상하거나 곰팡이가 끼지 않도록 신선도를 유지하여 최단 시간 내에 증류하는 것이 그라파의 품질을 결정한다. 찌끼미는 당분이 많거나 아니면 이미 발효가 되어 있어 산소와 접촉되는 순간 산화가 일어나 향이 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포도주 100병을 만들고 남은 찌끼로 간신히 그라파 한병이 나온다니 참으로 막술치고는 귀한 술이다

- 연금술이 발달시킨 생명의 물, 증류주
증류주는 나라마다 많이 나는 재료로 만든 술을 증류하며 발전하였다. 포도를 재배하여 포도주를 생산하는 나라는 코낙을, 옥수수나 보리가 많이 나서 맥주를 생산하는 나라는 위스키를, 쌀로 술을 만드는 동양은 소주나 고량주를 증류한다. 코낙의 일종인 그라파는 14~15세기의 문헌에서부터 언급되고 있지만, 대중적인 술은 아니었다.
증류 방법의 발견은 고대의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증류는 독주를 만들기 위해 개발된 게 아니었다. 연금술적으로 의약품인 발삼이나 어떤 물질의 에센스를 뽑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각종 꽃이나 약초에서 에센스를 뽑아 발라 미모를 유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세를 지나며 아랍과 유럽의연금술사들은 회색 금속을 황금으로 변화시키거나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기율였다. 물론 이는 실패했지만 그 와중에 증류방법이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중세부터 증류주는 생명의 물이라 하였고 16세기에는 이를 환자에게 처방하였는데 어린이도 마셨다. 그것도 아침 공복에 마시는 것을 권했다.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는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증류주에 꿀이나 무화과, 견과류 등을 넣어 처방하기도 하였다. 알코올이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고 순간적으로 기분을 좋게 하여 낫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인 남자에게 1/4리터를 처방했다니, 이래서는 죽은 사람인들 안 깨어나겠는가 말이다.
가난한 자들의 음료로 여겨지턴 포도찌끼미 술에 그라파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세기 때 일이다. 20세기 후반까지도 그라파는 남성들이 노동 후에나 마시는 거친 싸구려 술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디저트나 식후주로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포도주가 자리 잡아가던 1960년대, 그라파 만들기에도 기계화가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과거의 단식 중류 방식이 아닌 연속 증류 방식이었다. 과거 장인들이 하던 증류는 비연속 증류로 요즘의 산업적인 연속 증류와는 달랐다. 그러다 보니 장인들이 소규모로 만드는 그라파는 가격 경쟁이 되지 않아 타격을 입은 장인들의 양조장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20세기 초에는 수천 개 정도의 양조장이 있었지만 현재 남은 곳은 90개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 이탈리아 치즈는 다른 나라와 달리 염소와 양의 젖을 많이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치즈 제조기술을 정립하고 전파한 로마시대부터의 전통이다. 목초지가 풍부한 포 강(이탈리아 북부를 관통하며 흐르는 강) 유역은 소를 기르기에 적당했지만, 산맥이 가파른 다른 지역에서는 양이나 염소를 치기가 더 쉬웠다. 그래서 소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지역은 아직도 양젓으로 치즈를 만드는 전통이 이어져오고 있다. 양젖으로 만드는 치즈를 통틀어 페코리노라고 부르는데, 지역별로 맛과 모양이 다양해 같은 이름의 치즈라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또한 날씨가 추운 북쪽 지역에서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이탈리아 치즈의 왕이라 불리는 거대한 바퀴형 치즈)같이 수분을 빼서 딱딱한 경성 치즈가 발달했고, 따뜻한 남쪽은 모차렐라로 대변되는 말랑한 생치즈 종류가 유명하다.
전국에서 나름대로 치즈를 생산하다 보니 무려 450여 종이나 되는데, 이중 일부는 와인이나 프로슈토처럼 정부와 유럽연합에서 DOC 제도하에 목축 지역과 제조방법, 사료 공급지 등을 엄격히 관리한다.

- 리코타는 재탕하다는 말에서 나왔다. 다른 모든 치즈는 우유가 엉겨 붙은 것을 건져 만드는 데 비해, 리코타는 남은 물을 다시 가열하여 생기는 고형물을 모아 뭉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치즈 찌꺼기를 재활용한 작품이다. 찌꺼기를 모아 형태를 만들다 보니 질감이 크림처럼 부드럽다. 그래서 장에서 금방 사는 것이 아니라면 보통은 용기에 넣어 판매한다.
이 리코타 치즈를 보면서 나는 북부에서 만나고 온 그라파와 한 배에서 태어난 이복형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라파는 와인을 만들고난 찌끼미를 모아 증류하여 만든 술이니 말이다.

- 리코타가 편안하면서 광범위한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치즈라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아주 공들여 생산하는 귀족적인 치즈라고 할 수 있다. 유명 피자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요리 위에 솔솔 뿌려서먹던 초록색 통 속의 가루 치즈인 미제 파르마산(원래는 이탈리아 파르마 지방에서 만든 치즈.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와 같다고 여기나 좀더 광범위한 의미이다)이 치즈의 대명사이던 시절, 조금 한다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는 진정한 파르마산 치즈의 모양과 품질을 증명하기 위해 셰프가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였다. 커다란 북같이 생긴 치즈 덩어리를 엎어놓고 가운데를 파서 파스타를 비벼주는 것이 유행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미국에서 생산한 파르마산 치즈로 더 친숙한 이 유명한 이탈리아산 명품 치즈는 로마시대까지 언급할 정도로 기원이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12~ 13세기에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 파르마산 중에서도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에밀리아로마냐의 꼭 찍어 한정된 지역에서만 생산되어야 한다. 이 지역을 흐르는 포 강 유역은 경사지가 많은 다른 지역과 달리 소를 기르기에 좋은 목초지가 형성되어 있어 특별한 토양과 기후대로 분류한 것이다. 파르마산 치즈 중에서도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그야말로 이탈리아 치즈의 귀족이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여러 곳에 산재한 소규모 생산자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마케팅하고 판매하는데, 장인 정신으로 무장된 유대를 바탕으로 정말 엄격하리만큼 법적으로 제한된 과정을 지키며 생산한다. 어린 풀이나 알팔파 말린 것만 사료로 줘야 하며, 우유 역시 젖소의 자연적인 수유기에 나오는 것만 써서 천천히 1년에서 3년간 숙성해야 한다. 게다가 소의 품종도 엄격하게 제한한다. 또 저녁과 새벽에 처리한 우유만을 사용하며 그 어떤 화학적 약품 첨가도 금지되어 있다. 이 치즈 1킬로그램을 만들려면 포 강 유역의 특별한 목초지에서 기른 소에서 나온 우유 16킬로그램이 필요한데, 한 덩이가 지름 35~45센티미터에 높이는 18~25센티미터로 20~40킬로그램이나 나가니 정말 귀한 치즈라 아니할 수 없다.

- 이탈리아에는 프로슈테리아라는 가게가 있다. 이는 한국에도 이제 많이 수입되고 있는 돼지고기를 생 으로 말려 숙성시킨 프로슈토에서 파생된 단어로, 돼지고기로 만든 각종 가공품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이다. 프로슈테리아에는 프로슈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각종 부위의 가공품을 총망라해 취급한다. 프로슈테리아를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보지 못했던 식품들이 많아 흥미롭다.
고린 냄새가 나는 각종 소시지나 가공품들이 가득한 가운데, 고개를 천장으로 올리면 말린 돼지 뒷다리가 통째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게 바로 '프로슈토'로 스페인에서는 '하몽'이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장봉 '이라 하는 고급 돼지 가공품이다. 처음볼 땐 조금 징그럽기도 하고 냄새도 나지만 우리의 육회처럼 유럽에서는 아주 오래도록 먹어온 전통 식품이다.

- 돼지고기 가공품이 많다 보니 이탈리아어에서 이들을 지칭하는단어들에 익숙해지는 데꽤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중에서도 살루미와 살라미 때문에 한참을 헤맸다. 한끝 차이로 전혀 다른 뜻이다. 살루미는 돼지고기 가공식품의 총체를 말하는 단어로, 통째로 날것을 말리는 생햄이면 프로슈토나 프로슈토 크루도, 통째로 익히는 가열햄이면 프로슈토 코토, 다져서 지방이나 향신료와 섞어 날것으로 말리면 살라미. 살라미를 익히면 소시지, 이런 가공식품을 연기에 그을리면 훈제가 된다.
생햄을좀 더 세분해서 돼지의 볼살만 떠서 숙성시키면 구안찰레, 돼지 옆구리 살로 베이컨을 만들면 판세타라고 한다. 또 돼지 뒷다리 중에서도 질 좋은 한쪽 허벅지의 최상의 부위만 말린 것을 쿨라텔로라고 한다. 앞의 것들과는 종류가 조금 다르지만 한국 음식과 비슷해서 깜짝 놀라는 것도 있는데, 머리고기 치즈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돼지머리를 삶아 살과 연골을 발라내 한데 모아눌러 기름을 뺀 후연골 등에서 나오는 젤라틴을 굽혀 덩어리를 만드는 것이 한국의 돼지머리 편육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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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이탈리아의 사생활

인문 2025. 9. 29. 07:42

- 5분의 의식
이탈리아인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아주 간단하다. 맛없는 커피를 주면 된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커피는 후식이 아니라 의식이다. 하루의 출발이자 쉼표이며, 에너지이고, 고유의 취향을 보여주는 정체성이기도 하다.
30밀리리터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순간만큼은 모든걸 잊고 여유를 누린다. 즐기는 시간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단 5분이라도 여유로워야 한다. 커피의 향부터 바닥의 거품까지 완전히 즐긴 다음, 잔을 내려놓을 때까지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애연가들이 바쁜 일과 중에 담배 한 모금으로 잠시나마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에 비유하면 될까?

- 커피와 함께한 도시의 역사
이탈리아는 커피가 발견된 나라도 아니고, 커피 문화가 처음 시작된 나라도 아니다. 커피를 만드는 방식 자체는 세계적으로 베트남식, 그리스식, 터키식 등 다양하다. 그러나 유독 커피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자부심이 대단한 이유는 현재 세계인들이 가장 널리 즐기는 커피의 형태와 문화가 전부 이탈리아식이기 때문이다. 제조 방식부터 커피 머신, '에스프레소' '카페라테' '카푸치노' 등의 이름까지 이탈리아어이지 않은가?
커피가 이탈리아에 처음 들어온 건 17세기 무렵이다. 국제 무역이 활발했던 베네치아를 통해서였다. 당시 가톨릭교회에서 이검은 액체를 두고 '악마의 음료'가 아니냐며 경계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당시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직
접 커피를 시음하고는 훌륭한 향기와 맛에 반해 친히 '세례'를내렸고, 이후 커피는 빠르게 확산됐다. 기록에 따르면, 1720년 베네치아 시내 산마르코광장에만 카페가 30개였고, 베네치아 전체에는 170개나 있었다고 한
다. 당시 카페는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주로 지식인들이 모임을 갖거나 작품을 집필하는 곳이었다. 지금 한국의 카페 문화, 커피를 마시며 공부하고 일하고 토론하고 미팅하는 문화가 바로 18세기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 나폴리의 아주 유명한 커피 문화 중에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가
있다. 한국말로 하면 '보류된 커피'다.  이탈리아는 옛날부터 커피를 서서 마시는 데다 주문하면서 돈을 내는 게 아니라, 여럿이 우르르 몰려가서 함께 마시고 일부가 먼저 나가면 총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르는 일이 흔했다. 그러면 계산하는 사람이 넉넉하게 실제 마신 것보다 한두 잔 더 계산하게 되는데, 이렇게 커피 값이 남게 되면 다음 손님에게 '넘겨주게' 됐다.
이것이 지금은 나폴리 특유의 훈훈한 문화로 남아, 기분좋을 때 커피 하나를
더 계산해서 '누군지 모를' 다음 사람에게 커피를 대접한다. 좋은 일이 생긴 손님이 두잔을 마시고 석잔값을 지불하면 웨이터가 '카소스페소 하나'라고 써 붙인다. 그러면 다음에 들어오는 행운의 손님은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있다.

- 이탈리아에는 아이스커피, 즉 얼음을 넣은 커피가 없다. 얼음은 커피 본연의 맛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 이유와 같다. 여름에 먹는 차가운 커피는 따로 있다. 카페 프레도와 카페 샤케라토. 카페 프레도는 아침 일찍 커피를 뽑아 놓고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미리 넣어둔 다음, 원하는 손님들에게 따라주는 것이다. 차가운 에스프레소다. 샤케라토는 이탈리아어로 '흔들다'라는 뜻이다. 얼음과 설탕, 에스프레소를 섞은 후 투명한 잔에 따르면 커피와 크레마 거품이 층을 이룬다.
달콤한 한국식 마키아토를 생각하고 이탈리아에서 마키아토를 주문했다가 사약을 받은 줄 알았다는 우스개를 가끔 듣는다. 본래 마키아토는 묻히다, 점 찍다'라는 뜻이다. 달콤함과는 상관이 없다. 이탈리아에서 마키아토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를 살짝 묻혀' 준다.
카푸치노도 오해하기 쉬운 메뉴다. 카푸치노 하면 시나몬 파우더를 떠올리는 한국인들이 많은데, 아마도 미국식인 듯하다. 본래 이탈리아의 카푸치노는 카페 라테보다 거품이 부드럽고 풍부한 에스프레소일 쁜, 시나몬 과우더가 들어가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먹는 아포가토는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메뉴인데, 이탈리아어로는 좀 무서운 의미다. '물에 빠지다' '침몰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익사를 '아포가토'라고 한다. 아이스크림이 커피에 익사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익사하는' 아이스크림에는 초콜릿과 바닐라, 두 가지가 있다.
저녁 식사 후또는늦은 밤에 마시는 에스프레소에는 술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카페 코레토라고 한다. 주로 허브로 제조한 이탈리아 술이 들어간다.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에스프레소에 몇 방울 떨어뜨려 마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레세긴이라는 방식인데, 베네치아 사투리로 '행구다'라는 뜻이다. 진한 에스프레소를마시고 나면 잔의 밑바닥이 얼룩지고 크림이 남기도 하는데, 이를 술로 헹구는 것이다. 에스프레소를 다 마시고 웨이터에게 아무 말 없이 빈 잔을 내밀면, 알아서 술을 따라준다. 딱 '헹굴' 만큼만 준다. 보통 40도 이상의 독한 술이라 숙면에 딱 좋다.
이밖에 에스프레소 중에 가장 묽은 룽고, 머그컵을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키아토 인 타차 그란데, 유리잔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로키노 등도 있다.

- 도시국가 전통이 스며든 음식 문화
이탈리아 사람에게 '이탈리아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만큼 어려운 게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탈리아인들도 '이탈리아 음식'이 된지 모른다. 흔히 피자와 파스타를 떠올리지만, 실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한두 시간만 떨어진 곳에 가도 메뉴판의 80퍼센트를 모른다면 믿겨질까? 이탈리아는 통일된 지 16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 도시국가였던 지역별로 음식이 발달했다. 이런 문화적 특색을 먼저 알아야 이탈리아 음식 문화에 비교적 '사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탈리아가 장화처럼 위아래로 길게 펼쳐져 있고, 음식은 기후에 따른 재료가 바탕이 되므로, 우선 북부와 남부로 음식을 분류할 수 있다. 북부 요리의 밑바탕은 버터다. 날씨가 줍고, 올리브 나무가 많지 않은 대신 가축을 많이 길러 버터가 맛있고 저렴하다. 추운 지역의 음식이 대개 그렇듯 이탈리아 북부 음식 또한 무겁고 칼로리가 높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남부는 반대다. 간은 더 강하면서, 가볍고 신선한 음식을 주로 먹는다. 요리의 밑바탕은 버터가 아닌 올리브 오일이다. 남부는 쌀농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리소또도 많이 먹는다. 북부에서는 쌀 대신 옥수수 가루로 만든 죽인 폴렌타를 먹는데, 남부 사람들이 북부 사람을 놀릴 때 '폴렌토니' 폴랜타 먹는 녀석들'이라고 한다. 남부 사람들의 쌀에 대한 자부심이다.
남부 사람들은 한국인만큼 매운맛에 강하다. 칼라브리아 지역 명물인 페페론치노가 유명하다. 

- 외식, 3시간 동안먹거나, 코스를 줄이거나
이탈리아의 식사는 기본적으로 코스 요리'다. 한 끼니에 먹을 요리가 동시에 식탁에 올라오지 않고, 차례차례 하나씩모습을 드러낸다.
우선 안티파스토가 처음 나온다. 식전에 먹는 간단한 애피타이저다. 주로 빵 위에 토마토를 얹은 브루스케타나 모짜렐라 치즈처럼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나온다.
그다음은 프리모 '첫번 접시'라는 뜻이다. 간단한 파스타나 리소또, 수프 같은 탄수화물이 나온다. 결혼식같은 특별한 자리라면 프리모만 두세 가지가 나오기도 한다.
그다음에는 메인 요리인 세콘도가 나온다. 메인인 만큼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고기 중심으로 먹을지, 생선중심으로 먹을지. 안타까운 건둘다 먹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고기냐 생선이냐에 따라 와인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샐러드가 나오는데, 반찬 같은 개념이다. 샐러드는 어디까지나 '곁들이는 것'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때 샐러드를 개별 메뉴로, 그것도 꽤 비싸게 파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따로 주문하지 않더라도 애피타이저로 샐러
드가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놀랐다. 샐러드가 입맛을 돋우기에는좀 약하지 않은가? 이탈리아의 샐러드 중에는 한국의 나물 반찬과 비슷한 게 많다. 소금, 후추 등으로 무치는 방식부터 다진 마늘이 들어가는 것까지 똑같다. 참기름 대신 올리브유가 들어간다.
메인 요리를 다 먹으면 치즈, 디저트, 과일, 커피(물론 에스프레소!) 순으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남자들의 경우 허브로 담근 술을 한 잔 마시기도 한다.

- 가정식: 간단하게, 재료의맛을살려서!
가정에서는 코스를 다갖춰 먹긴 어렵다. 당연히 순서를 줄인다. 메인 요리 하나를 선택한다. 파스타만 먹거나 리소또만먹거나. 또는 프리모만 먹거나, 세콘도만 먹거나.
기본적으로 빵이 늘 있다. 주식으로 먹는 빵은 한국돈 1,500원이면 킬로그램을살수있다. 물, 밀가루, 효모,소금만 들어간다. 설탕은 넣지 않는다. 한국에서 빵 하면떠올리는 달콤하고 다채로운 빵과는 개념이 다르다. 주식이므로 모든 가정에서 매일 아침 갓 구운 신선한 빵을 사는데 그날 산 빵은 그날만 먹는다. 일요일에는 빵집이 문을 닫으니까 토요일에만 예외적으로 유통기한 이틀짜리' 빵을판다.이를 파네 도메니칼레라 부르는데, 직역하면'일요일 빵'이다.

- 한번 만들면 오래 먹을수 있어서 엄마들이 선호하는 요리중 '인살라타 디 리소'라는 게 있다. '쌀샐러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에서 엄마들이 한번 만들어놓고 일주일간 집을 비우실 수 있다는 곰탕 같은 존재다. 게다가 곰탕처럼 만들기 번거로운 것도 아니고 훨씬 쉽다. 쌀을좀되게, 덜익혀서 차가운 물에 바로 넣었다 건진뒤 아무재료나 넣는다! 올리브, 소시지, 버섯, 파프리카등넣고싶은 재료,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을 다넣 고소금과 올리브오일을 뿌려 주면끝. 차갑게 먹는 음식이므로 이 상태로 냉장고에 넣어두고 며칠씩 먹는다. 여름에 특히 즐겨 먹는 가정식 메뉴다.
사실 이탈리아 요리 대부분은 정말 간단하다. 어떤 요리든 각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재료가 복잡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 셰프에게 '오늘의 메뉴'를 물어라
이탈리아의 레스토랑을 이야기할 때, 로마나 밀라노 시내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레스토랑과 이탈리아인들이 가는 레스토랑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관광 도시 한복판의 레스토랑은 대체로 고유한 특색이 없는 편이다. 이런 곳에서는 간혹 파스타와 피자를 함께 팔기도 한다. 특별한 전통도, 자부심도 없고, 훈련되지 않은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경우도 많다.
반면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레스토랑은 서비스를 중요한게 생각하기 대문에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직원이 있으며 매일 메뉴가 바뀐다. 주인이 아침에 시장에 가서 재료를 고를 때, 가장 신선하고 상태 좋은 재료가 그날의 메뉴가 된다. 그래서 이런 식당에서는 메뉴판보다는 셰프에게 '오늘의 메뉴'를 물어보는게 더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메뉴판에 따로 없어도, 예를 들면 "우리가1인당 5유로를 쓸수 있는데 안티파스토는 먹지만 프리모는 생략하고 싶으니 세콘도에서 좋은 메뉴를 추천해주세요"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적극적으로 주문할수록 만족스러운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진짜' 이탈리아 식당을 즐기려면 웨이터와 셰프를 충분히 이용하는 게 좋다.믿고 맡기면 셰프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한다.

-  파르티콜라레라는 단어가 있는데, 한국말로 '독특하다' 정도가 된다. 한국에서는 음식을 두고 "독특하다"라고 말하면 썩 긍정적인 느낌이 아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델리카토'하면서도 창조적인 맛, 색다른데 매우 조화롭고 맛있다는 표현이 된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부오노' 외에 맛있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면, 이 두 표현을 사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긴 배낭여행 중이라 행색이 꼬질꼬질한데 고급 레스토랑에 갈 기회가 생겼다 해도, 망설일 필요가 없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스스로 불편할 수는 있다. 정 마음에 걸리면 웨이터에게 여행 중이라 편하게 왔다. 이해해 달라"라고 한마디 하고, 맛있게 식사하면 된다.
다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셰프의 자부심이 엄청나다. 이 자부심은 엄격한 매너를 요구하는 자부심이 아니라, 만든 요리를 손님이 최상의 상태로 즐기고 최대한 만족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메인 요리틀 여러 개 시켜서 테이블 가운데 두고 나눠 먹는 것은, 가급적 피하는게 좋다. 최상의 재료로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맛없게 먹는 쫄이 되니까 셰프가 보기엔 너무나 아까운 것이다.

- 통일성 없이 많은 메뉴를 한꺼번에 시키는 게 곤란한 또 이유는 와인 때문이다. 각 요리에 맞는 와인의 종류가 따로 있고, 이 '조화'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기류와 해물류를 같이 주문하고 나면, 무슨 와인을 추천해 줄지 몰라 난감해하는 웨이터의 얼굴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 정도가 매너라고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에 가서 운 좋게, 관광지 식당이 아닌 진짜' 이탈리아 전통 식당을 찾았다면, 먼저 자기가 돈을 얼마나 쓰고 싶은지 말하고, 거기에 맞는 요리를 추천해달라고 해보자. 최고급 레스토랑을 제외하고, 20~30유로면 썩 훌륭한 식사가 가능하다. 그리고 서비스를 완전히 맡겨 보자. 메뉴판보다 셰프를 완전히 믿는다는 의사를 전달하면, 셰프는 더욱 적극적으로 실력을 보여준다. 

- 저녁 먹기 전에 일단 한잔
이탈리아의 저녁 시간에 독특한 게 있다. '저녁 먹기 전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를 '아페리티보'라고 한다. 풀이하면, 식전주를 먹는 시간이다. 식사 전에 애피타이저를 먹듯이 저녁 식사 전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입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한잔 마신다. 물론 바쁜 일이 있으면 건너뛰기도 하지만 대개 일상적이다.
저녁 6시쯤 되면 친구에게 너 오늘 아페리티보가?"라고 묻거나,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아페리티보하고 들어갈게"라고 말한다. 6시쯤 만나 술을 한잔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밥 먹으러 집에 간다.

- 아페리티보 이후 콤파니아
한국인들이 이탈리아에 가서 많이 헷갈려하는 '술집'이 바라는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바가 그냥 술집인데, 이탈리아의 바는 하루 종일 커피와 식사를 할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페리티보를 팔고, 아페리티보 이후에는몇가지 술을 더 팔지만, 밤12시면 문을 닫는다.

- 한국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레스토랑에서 낯설게 여길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맨 마지막 순서로 디제스티보가 나오는 것이다. 직역하면 소화제 술 정도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주로 40도 이상의 독한 술이다. 진짜 소화를 돕는지는 잘모르겠지만 보편적인 문화다. 딱 한잔만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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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2025. 9. 26. 07:06

- 1912년,프랑스 출신의 의학 연구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의 발견은 요리 과학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는 단백질의 구성단위인 아미노산과 설탕이 만나면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분석했다. 나아가 고기와 견과류, 곡물, 그리고 채소와 같이 단백질을 함유한 음식이 140'C의 열에 노출되었을 때 일어나는 복잡한 연쇄 작용을 밝혀냈다.
오늘날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부르는 분자의 변화 과정은 음식이 조리 과정에서 왜 갈색으로 변하고 맛이 풍부해지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불에 살짝 익힌 스테이크와 바삭한 생선 껍질, 먹음직스러운냄새를 풍기는 빵 껍질, 그리고 구운 견과류와 향신료는 모두 마이야르 반응 덕분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두 가지 요소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각 요리 특유의 군침 도는 냄새가 완성되는 것이다. 마이야르 반응을 완벽하게 이해하면 보다 다양한 조리법을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다. 마리네이드에 과당이 풍부한 꿀을 넣으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 끓인 우유에 크림을 넣으면 우유 단백질과 설탕이 만나 버터 스카치와 캐러멜 맛이 살아난다. 또는 페이스트리 위에 달걀 푼 물을 바르면 단백질이 더해져 껍질의 색깔이 더욱 진해진다.

- 고기의 종류는 셀수 없이 다양하다. 하지만 기본 구성요소는 모두같다. 모든 고기는 근육과 결합조직, 그리고 지방으로이루어져있다. 이 세가지 조직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와 고깃덩어리 안에어떤 종류의근육조직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따라 고기의 맛과 식감, 나아가 고기를 먹는 경험이 달라진다. 동물
이 움직일 때 쓰는 근육은 붉은색 또는 분홍색을 띠는데, 고깃덩어리의 대부분이 이러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70~85%가 수분인 고기는 조리과정에서 수분을 그대로 유지해야 육즙이 풍부해진다. 근섬유를 감싸고 있는 결합조직은 근육과 뼈를 연결한다. 조리 과정에서 천천히 분해되면서 고기에 살살녹는 맛을더한다. 하지만 고온에서 오그라들어 수분이 고기 밖으로 빠져나간다. 조리하기 전에는 딱딱하고 아무맛도 안나던 지방이 조리 과정을 거치면서 지방 세포가 열려 풍부한 고기맛이 살아난다.

- 고기의 색깔만으로는 신선도와 품질을 헤아리기어렵다.
근섬유에들어있는 미오글로빈은 산소를 나르는 적색색소로, 고기가 자연적으로 붉은색을 띠는 이유가 바로 이 미오글로빈 때문이다. 동물마다 미오글로빈 수치가 다른데, 붉은살고기는 흰살고기보다 미오글로빈 함유량이많다. 또한동물의 나이가 많을수록 미오글로빈의 양이 많다.
고기를 진공 포장하면 산소가 빠져나오므로 보라색을 띤다. 하지만 고기가 공기와 접촉하면 미오글로빈의 색이 변하면서 고기색이 선명한 붉은색을 띠게된다. 도축과정에서 가축이 심한 스트레스를 느낄 경우 고기 색이 계속해서 보라색으로 유지되기도 한다. 이런 고기는 퍽퍽하고딱딱하다.정육점에서건조숙성한 고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짙어지고 맛이 깊어진다. 또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고기가 수축한다. 갈색이라고 해서 못먹는고기는 아니다. 따
라서 직접 손가락으로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 먹어도 좋은 고기인지 확인해 봐야한다.

- 풀을 먹고 자란 소에 오메가-3 지방산 훨씬 더 많다. 풀을 먹인 소는 곡물을 먹인 소보다 지방이 4%정도 적다. 또한 지방이 근육 주변에 마블링 형태로 자리 잡지 않고 가죽 바로 밑에 형성되어있다.
풀을 먹고 자란 소고기는 지방이 적지만 몸에 좋은 오메가-3 지방산이 곡물을 먹인 소보다 더 풍부하다. 물론 기름기가 많은 생선과 비교하면 오메가-3 함유량이 적지만, 풀을 먹인 소가 곡물을 먹인 소보다는 영양가가 약간 더 높다.

- 시어링한 고기는 빨리 마른다.
강한 불에 고기를 재빨리 굽는 테크닉을 가리켜 시어링이라고 부르는데, 흔히 바삭한 겉면이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적 이론을 살펴보면 이와는 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한 불에 빠르게 그슬린 스테이크의 겉면은 방수 기능이 없다.실제로 그슬려 구운 스테이크는 그렇지 않은 고기보다 휠씬 더 빨리 마른다. 고기를 갈색으로 만드는 데 필수적인 강한 불 때문에 고기 안쪽의 수분이 더욱 빨리 증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색빛을 띠는 그슬린 고기 겉면은 맛이 매우 뛰어나다. 높은 온도가 마이야르 반응을 촉진시켜 입안을 촉촉이 적시는 풍부한 맛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요리하는 슬로우 쿠킹을 통해 질긴 고기를 녹아내릴 듯한 육질로 바꿀 수 있다.
오랫동안 낮은 온도로 요리하면 단단한 고기안의 질긴 콜라겐이 흐물흐물한 젤라틴으로 바뀐다. 온도가 65~70"C일 때 이러한 반응이 일어난다. 액체 안에서 분해된 젤라틴은 깊은 맛을 내는 지방을 더욱 진하게 유화시켜 풍부하고 감미로운 육즙을 완성한다. 조리 후에는 고기를 액체 안에 넣은 상태에서 식혀야 더욱 촉촉해진다. 흡습성이 강한 젤라틴이 액체를 빨아들인다. 지방이 적은 근육은 빨리 익으므로, 결합조직이 적은 고기를 천천히 요리하면 퍽퍽해질 수 있다.

- 육즙을 끼었으면서 고기를 구우면 고기의 맛이 한층 더 향상된다.
흔히 고기를 구울 때 육즙을 계속해서 끼얹는 베이스트 테크닉을 사용하면 촉촉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사실이 아니다. 물론 고기에 육즙을 뿌리면서 구우면 고기의 맛과 육질이 나아지는데 , 표면의 온도를 높여 마이야르 반응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고기 특유의 맛이 더욱 진해지고 껍질이 바삭해진다. 같이 반짝거릴수록 고기가 촉촉하지만, 기름은 조리 속도를 높이므로 바깥층이 푸석해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 거위, 개구리, 뱀, 거북이, 도롱농, 그리고 비둘기에서 모두 닭고기 맛이 난다! 여기에는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
붉은 살 고기에서는 특유의 맛이 난다. 하지만 흰 살 고기를 처음 먹으면 주로 닭고기의 맛이 떠오른다. 단서는 동물 근육의 종류에 숨어 있다.
닭은 지구적 운동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닭고기는 대부분 창백한 패스트 트위치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근육을 이용해 날개를 퍼덕이는 것과 같은 짧고 강력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패스트 트위치 근섬유는 부드럽고 맛을 더하는 지방이 없는 살코기라서 맛이 밋밋하다. 비둘기와 개구리와 같이 닭과 비슷한 맛이 나는 동물 대부분은 이러한 창백한 근육을 비슷한 비율로 가지고 있다. 반면, 붉은 살 고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더 어둡고 붉은색을 띠는 슬로우 트위치 지구근에는 특유의 맛을 내는 물질과 지방이 더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이러한 고기는 맛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각 고기에 들어 있는 맛 분자는 동물의 종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과학자들이 고기 맛이 어떻게 유전되는지를 분석한 결과, 우리가 오늘날 먹는 동물의 대부분(돼지고기와 소고기, 사슴고기를 제외한)이 닭과 비슷한 맛이 나는 조상을 가지고 있다.

- 굴은 왜 생으로 먹을까?
조리과정에서 살코기의 단백질이 분해되는데, 이는 굴과같은 연체동물에게는 치명적이다. 대부분의 재료는 조리과정을 통해 맛이 풍부해진다.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서 미각을자극하고녹말은 단맛을내는 설탕으로 해체된다. 단단한 섬유질이 부드러워지면서 촉감은 탱탱해지고 불필요한 수분이 날아간다. 하지만 굴과 가리맛조와같은 조개류는 정반대다. 조리과정이 1분씩늘어날때마다 맛이 사라진다.
대부분의 생선과는 달리 조개류는 글루타메이트와같이 맛을 내는 아미노산을 활용해 짠바닷물에서 탈수되는 것을 방지한다. 글루타메이트는 감칠맛을 감지하는 혀의 미각수용기를 자극하므로 짭짤하고 풍부한 맛이 난다. 하지만 조리 과정에서 굴과 조개에 들어있는 맛분자가 서로 엉키고 근육단백질이 응고하면서 훌륭한 짠맛이 사라진다.
맛분자를 다시 느슨하게 만들려면 단백질이 분해될 때까지 오랫동안 요리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요리시간이길어지면 식감이 마치 고무탄처럼 질겨진다.

- 여름에는 되도록 굴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예전에는 충분히 근거 있는 이야기였다. 5월에서 8월 사이의여름에는 굴을 먹으면 안 된다는 영국의 오래된 속담이 있다. 아마도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여름에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는 해조류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독성 물질로 바닷물을 가득 채운다. 여름이 되면 조류의 수가 증폭하면서 해안이 붉은 파도'로 넘실댄다.
여름에 굴을 피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굴이 이 시기에 번식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오면 굴은 모든 에너지를 알을 낳는 데 할애한다. 그래서 크기가 작고 부드러우며 잘 찢어진다. 맛 또한 다른 계절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 여름에는 굴을 피하라는 말은 이제 옛이야기다. 시중에서 파는 대부분의 굴은 잘 관리된 물속에서 기른 양식 굴이다. 상업 양식장은 또한 산란기가 굉장히 짧은 굴을 선별하거나 아예 알을 낳지 못하도록 만든다. 요즘은 일 년 내내 맛있는 굴을 생으로 즐기거나 요리해서 먹을 수 있다.

- 굴의 높은 아연 함유량이 정력에 좋은 이유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아연은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생산하는 미네랄이다. 즉, 굴을 통해 부족한 아연을 섭취할 수 있다. 하지만 아연이 풍부한 다른 음식과 비교하면 굴을 통해 얻는 아연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다른 동물에는 없는 굴의 독특한 두 가지 성분이 성호르몬 생산에 도움을 준다. 바로 아스파르트산과 NMDA이다. 하지만 쥐를 대상으로 이 두 가지 물질을 실험한 결과는 뚜렷한 결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아연이 지나치게 많으면'만족 호르몬인 프로락틴이 과다 분비되어 오히려 성적 충동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 저지방 유제품으로도 좋은 요리를 완성할 수 있을까?
저지방 제품으로 조리할 때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우리가 맛과 식감, 그리고 입맛을 느끼는 데 지방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지방 함유량이 적은 재료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어렵다. 지방구는 맛을 내는 분자를 잡아 재료 곳곳으로 퍼뜨린다. 음식을 통해 입으로 들어온 지방이 혀를 덮어 오랫동안 혀끝에 맛이 남아 있는 것이다. 저지방 소스에 열을 가하면 덩어리지는데, 치즈케이크와 같은 디저트에 저지방 크림치즈를 사용하면 케이크를 굳히기 어렵다. 저지방 유제품으로 맛이 풍부한 요리를 만들 때는 향신료와 양념을 더한다. 마늘이나 양파, 허브, 또는 향신료를 요리에 추가하거나 짠맛과 쓴맛, 신맛, 단맛을 내는 재료를 더해 최대한 미각을 자극해보자.

- 가공 치즈는 피해야 할까?
가공 치즈는 천연 치즈와 비슷한 재료로 만든다. 하지만 원재료 자체와는 거리가 멀다.
1800년대 중반, 미국 최초의 치즈 공장이 뉴욕에 들어서면서 맛이 밋한 체더치즈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1916년에는 사업가 제임스 L. 크래프트가 잘게 자른 자투리 치즈를 활용해 처음으로 가공 치즈를 만들었다. 그는 자투리 치즈를 살균해 녹인 다음 구연산과 카세인(커드) 단백질로부터 칼슘을 분리하는인산염이라는 물질을 섞어 커드를 응고시켰다.
오늘날 가공 치즈는 여러 치즈와 우유의 유청 단백질, 소금과 향신료, 그리고
유화제(기름과 물이 섞이도록 만드는 물질)를 넣은 혼합물이다. 천연 먹거리를 선호한다면 가공 치즈는 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공장 밖에서 만든 치즈로는 햄버거 사이로 마그마처럼 흘러내리는 번질거리는 치즈 토핑을 만들기 매우 힘들다.

- 미정제 곡류는 왜 좋을까?
쌀겨가 들어 있는 미정제 곡류는 주요 영양분이 풍부하다. 호밀빵과 통밀빵 같은 미정제 음식은 쌀겨와 배아를 포함한 곡물과 곡류로만든 것을 가리킨다. '갈색' 밀가루는 쌀겨 함유량이 적은 반면 잡곡, '맷돌로 간' 또는 '밀 100%라고 쓰인 밀가루에는 영양분이 가득한 배아와 쌀겨 일부가 들어 있다. 쌀겨는 풍부한 맛과 뛰어난 영양소를 자랑한다. 쌀겨의 섬유질은 소화되지 않지만, 음식의 부피가 커지도록 해 포만감을 준다. 섬유질의 5분의 1은 용해성' 성질을 가지고 있어 위 안에서 끈적끈적한 젤처럼 변한다. 음식으로부터 설탕과 콜레스테롤이 흡수되는 속도를 늦춘다.

- 어떻게 하면 콩을 먹은 후에도 배에 가스가 차지 않을까?
먹고나면 속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건강에 좋은 콩은 많이 먹을수록 좋다.
섬유질과 단백질, 필수영양소풍부한 콩은 전적으로 건강에 좋은 음식이다. 하
지만 평소에 고섬유질 식품을 많이먹지 않는 사람이라면, 콩을 먹은후에 뱃속가스를 생성하는 균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도 있다. 이런균은 우리가 소화하지 못하는 섬유질을 소화하는데, 그 부산물로 가스를 만들어낸다. 건조한콩을 물에 불린후 물기를 빼내면 뱃속가스의 주범인 수용성 섬유질을 어느정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불용성 섬유질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큰 효과는 없다. 이보다는 적은양의 콩과 두류를 주기적으로 섭취해 가스를 생성하는 균의 수가 상대적으로 급증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 더바람직하다.

- 많은 사람들에게 건조 파스타는 생파스타의 저렴한 대안이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이 둘을 완전히 다른 재료라고 생각한다
건조 파스타는 대개 생파스타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질이 낮은 재료는 아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건조 파스타 생산을 꼼꼼하게 규제하고 있다. 오히려 대량 생산된 생파스타는 질감이 끈적끈적하며 수제 생파스타를 흉내 내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에서는 건조 파스타와 생파스타를 목적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활용한다. 달걀을 넣어서 만든 생파스타는 건조 파스타보다 농도가 부드럽고 버터 맛이 진해 크림 또는 치즈 소스와 잘 어울린다. 반면 씹는 맛이 도드라지는 건조 파스타는 알단테로 요리하기에 알맞다. 질감이 탄탄하기 때문에 고기가 들어간 기름진 소스를 곁들이면 좋다. 단, 볼로네즈는 옛날부터 생탈리아텔레
파스타를 사용한다. 어떤 파스타를 선택하느냐는 결국 파스타 종류보다 재료에 달렸다.

- 특유의 맛이 나는 버섯류는 질감이 고기와 비슷하다. 다른 채소와 과일보다 단백질이 훨씬 더많이 들어 있다. 아미노산은 짭짤한 감칠맛을 낸다. 주로 동물성 식품을 통해서만 섭취할수 있는 비타민D와 B12도 함유하고 있다. 원래는 햇빛을 받아야만 비타민D가 생성되는데, 주로 실내에서 재배
되므로 햇빛을 통한 '샤인 비타민 함유량이 적다. 버섯은 재배 후에도 계속 숨을 쉬므로 강한 햇빛을 30분 정도 쐬이면 껍질이 충분한 양의 비타민D를 만들어낸다.

- 채소를 요리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프라잉과 보일링을 통한 영양 손실이 가장 크다. 물은 열을 재료로 빠르게 전달하지만 그 과정에서 채소의 영양소가 물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스티밍은 영양소 보존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채소에 따라 적절한 조리법이 달라진다. 예컨대 대부분의 채소의 경우 스티밍보다 보일링이 영양 손실이 크지만,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애호박, 당근은 수증기로 찔 때보다 물에 넣고 끓이면 카로티노이드가더 많아진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또한 수비드조리법이 영양소를보존하는 데 효과적이다.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영양소가 밀폐 봉지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 소금이 끓는 물의 온도를 살짝 높이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채소가 소금물에서 더 빨리 익는 것은 아니다. 끓는 물에 들어 있는 소금 외에 다른 미네랄 또한 채소에 중요한 영항을 미친다.
세포의 단단한 벽은 딱딱한 리그닌과 셀룰로오스 섬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에 식물이 쓰러지지 않고 꼿끗하게 서 있다. 조리하는 과정에서 나무 같은 이 섬유가 부드러워지면서 채소가 연해진다.하지만 가스레인지의 불이 이러한 역할을 하기 전에 먼저 식물 세포를 고정하는 화학적 접착제'인 펙틴과 헤미셀룰로오스가 분해되어야한다.
조리물의 산성과 소금 수치, 미네랄 함유량은 접착제를 단단하게 유지하는 분자결합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킨다. 소금은 접착제가제 역할을 하도록하는 펙틴 가닥을 갈라놓는다. 소금의 나트륨은 펙틴 분자 사이의 연결 고리를 방해하기 때문에 채소를 익힐 때소금을 더하면 채소가 더 빨리 익는 것이다.

- 자른 과일의 갈변을 막는 데 레몬즙은 어떤 역할을 할까?
대부분의 과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갈변 반응을 일으킨다. 과일에는 겉으로 드러난 속살을 물렁거리는 갈색으로 바꿔 해층이나 기생충. 세균을 저지하는 효소와 화학 물질이 들어 있다. 이러한 갈변을 늦출 수는 있지만, 90C 또는 갈변 효소를 영구적으로 비활성화하는 온도에서 채소를 요리하지 않고는 완전히 막기 어렵다 이 외에 갈변 반응을 지연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른 과일이나 채소 위에 레몬즙을 살짝 뿌리는 것이다. 레몬즙의 산이 갈변을 일으키는 효소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또는 자른 과일이나 채소를 물이나 시럽에 담가 산소와의 접촉을 막거나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해 자기방어적 화학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막는 방법도 있는데, 레몬즙보다는 효과가 떨어진다.

- 짙은 붉은색의 않은 사프란 가닥은 사프란 꽃의 미세한 암술머리다. 직접 손으로 일일이 따야 하는 사프란은 꽃봉오리마다 암술머리가 3개뿐이다. 놀랍게도 향신료 450g를 만드는 데 10만~25만 송이의 사프란과 200시간이 넘
는 노동이 필요하다.
이 귀중한 식재료의 맛을 내는 물질은 150여 개가 넘는다. 매일 저녁 밥상에 어울리는 요리를 할 때는 강황을 대신 사용하면 비슷한 노란색을 낼수 있다.하지만 강황은 사프란보다 맛이 더 강해 달콤한 요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다른 향신료와는 달리 사프란의 맛 분자는 기름보다 물에 더 잘 녹는다. 사프란을 20분동안 물에 담그면 사프란 가닥이 다시 물을 흡수해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반드시 사프란을 물에 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프란의 맛을 충분히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150여 개가 넘는 맛을 내는 물질 덕분에 사프란은 매우 독특한 맛을 낸다."

- 올리브유를 만들려면 먼저 수확한올리브를 갈아 황갈색의 반죽으로 만든다. 옛날에는 삼베를 담근프레스로 짜내어 올리브유를 완성했지만, 요즘에는 주로 올리브유 반죽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회전시켜기름을 자낸다. 공기접촉을 줄이고 속도도 빨라 완성된 올리브유의 품질이 뛰어나다. 반죽을 데우면 기름을 더 효과적으로짜낼수있지만, 열기에노출되어맛과향이날아가고기름이산패하는 과정이 촉진된다는 단점이있다.
콜드프레스 또는 냉압착'이라고 쓰인 기름은 27도이하의 저온에서 추출한 것으로 가격이 더 비싸다. 가장 좋은 품질의 올리브유를 고르려면 버진이 라고 표시된 제품이 좋다. 신선한 우리브를 압착하거나 한 번만 회전시켜가장 좋은 기름을 짜낸다. 산성 농도를 보면 압착 과정에서 올리브가 훼손되어 지방분자가 지방산으로 분해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고품질의 버진 오일은 산성이 낮다.
"버진 올리브우는 신선한 올리브를 압착하거나 한 번만 회전시켜 가장 좋은 기름을 짜낸 것이다. 사실 한 번 이상 압착한 버진 올리브유는 없다. '퍼스트프레스(최초 압착)리는 표현은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다."

- '화학' 간장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간장은 대개 효모균을 넣지 않은 '화학적 유사품이다. 기름을 만들고 남은 고체 콩찌꺼기를 강력한 염산과 섞어 만든다. 탄수화물
과 단백질이 설탕과 아미노산으로 분해된다. 그런 다음 탄산나트륨을 넣어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산성을 완화한다. 옥수수 시럽을 넣어 맛과 색을 낸 화학 간장은 대개 맞이 고약하다. 그래서 진짜 간장을 조금 섞는다.

- 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콩과 볶은 밀을 섞어야 한다. 그런 다음 두 번에 걸쳐 발효시키는데, 처음에는 탄수화물을 설탕으로 분해하는 아스페르길루스라는 곰팡이를 넣어서 3일 동안 발효시킨다. 그런 다음 소금과 효모균, 그리고 젖산균을 넣어 6개월 동안 놔두면 설탕을 분해해 톡쏘는 만들어진다. 진간장은 더 오랫동안 발효시키기 때문에 맛이 더욱 발효 과정에서그외 다양한 미생물이 밋밋한 간장 성분을 우리가 알고 있는 간장맛 분자로 한한 발효한 간장에는알코올이 2% 정도 들어 있다. 결정적으로 단백질이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타민산으로 분해되는데, 그 결과 간장 특유의 감칠맛이 완성된다. 시중에서 파는 대부분의 간장은 일본식간장이다. 밀을 넣지않은 중국식간장보다 맛이 달고 농도가 진하다.

- 밀가루를 체로 치는 이유는?
옛날부터 제분한 밀가루를 매우 고운 가루로 만들기 위해 체로 치는 방법을 활용했다. 요즘에는 밀가루 입자를 제분해서 0.25mm보다 작은 체로 친다. 하지만 케이크를 만들 때는 여전히 밀가루를 사용하기 전에 다시 체로 거르는 것이 중요하다. 밀의 탄수화물을 분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비닐 포장 안에서 짓눌러져 덩어리진 입자가 분리되도록 공기를 통하게 하기 위함이다.
케이크 믹스의 가루 재료를 체로 치면 골고루 홀어지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밀가루의 부피 또한 커진다. 체로 치지 않은 밀가루는 작게 덩어리져 물을 더하면 더 큰 덩어리로 뭉치기 때문에 거품기 등으로 저어야 한다. 이 덩어리가 기포벽을 더욱 두껍게 만들어 반죽이 무겁고 밀도가 높은 스펀지처럼 변한다.

- 왜 무글루텐 빵은 덜 부풀어 오를까?
글루텐은 빵을 풍성하게 부풀릴 뿐만 아니라 탄수화물을 함유한 음식을 더 잘 결합하고 빵이 바스러지지 않도록 돕는다.
밀은 활용도가 매우 높다. 특히 물에 섞으면 두 종류의 단백질이 뭉쳐 글루텐을 형성한다. 단단하고 잘 늘어나는 글루텐은 기포를 가두고 빵을 팽창시킨다. 밀이 들어 있지 않은 가루는 글루텐이 만들어지지 못하므로 완성된 빵이 납작하다. 이러한 빵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대개 크산탄 검과 같은 끈적끈적한 시크너를 넣는다. 크산탄 검을 물에 섞으면 걸쭉하고 끈적한 젤로 변하는데 단단해서 기포를잘 가둔다. 지방과 물에 섞어서 사용하는 유화제 역시 기포 주변으로 잘 뭉친다 영양소와 질감 면에서 밀을 대체할 수 있는 탄수화물은 없다. 대부분의 무글루텐 밀가루는 영양소와 농도를 밀가루와 비슷하게 하기 위해 탄수화물을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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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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