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 조절에 유독 고생했던 아이들은 나중에 학교를 중퇴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더 높았다. 반대로 감정 조절에 능숙했던 아이들은 훗날 경력을 잘 가꾸어 나가고, 더 많이 저축하고, 은퇴에 성실하게 대비하고, 신체적으로도 더 건강했다. 심지어 뇌영상 촬영과 생리학적 검사 결과에서는 이들의 뇌와 장기가 더 천천히 노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기 초기의 감정 조절 능력은 개인의 발달에 매우 강력한 요소로 작용했으며, 앞날을 예측할 때 아이의 가족이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이나 아이의 지능 수준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더니딘 연구팀의 성과들은 감정 조절 능력이 우리 삶의 행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 데이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진실이 숨어있다. 살면서 언제부터 감정관리 능력을 키우기 시작했든, 누구나 이 방면에서 더 나아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의 명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감각과 감정적 기억이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소설의 서두에서 화자는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고 차를 한 모금마시는 순간 의도치 않게 어떤 기억에 완전히 협싸인다. 프루스트효과 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감각을 통해 활성화된 감정적 기억이 뇌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설의 화자는 레오니 고모와 함께했던 아침을 몇 년간 한 번도 떠올리지 못하다가, 버터 향이 가득한 마들렌을 베어 문 순간 지난날의 벅찬 즐거움이 밀려오는 경험을 한다. 어린 시절에 느낀 사랑과 경이로움, 온몸으로 느낀 기쁨, 형용할 수 없는 순수함 등 지난날의 긍정적 감정이 마들렌의 맛과 향에 완전히 융합되어 그 감각경험이 되살아나는 것만으로도 단번에그감정들을 떠올릴수 있었다.
이소설에서 프루스트는 종종 긍정적 감정의 원천이 되는'감각의 자전적 기억 경로sensory autobiographical memory pathway'를 활용했다.
나만해도 옛사진을 보거나, 건즈앤로지즈의 음악을 듣거나, 할머니의 수프를 먹으면 향수의 소용돌이로 곧장 빨려들어간다. 실제로 프루스트적 행복의 순간이 스트레스와 관련된 생리적지표는 개선하고 긍정적 감정은 강화한다고 밝혀졌는데,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 정반대의 상황도 있다. 불쾌한 기억 역시 감각과 연관됐으며, 순식간에 우리를 고통스러운 경험 속으로 다시 몰아넣는다. 예를들어, 자동차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기름 냄새나 플라스틱이 타는 냄새만 맡아도 공포와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다. 냄새나 맛이 부정적 반응을 유발하는 현상을 가르시아 효과라고 하는데, 과학자 존 가르시아가 쥐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구토를 유발하는 방사선에 노출시키자 쥐들이 그 음식을 피하게 됐다는 실험 결과에서 비롯한 개념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감각을 통해 학습된 회피는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위험을 알리는 신호는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단 한번의 아찔한 경험도 즉시 기억되고 미래에 일어날 비슷한 일에 대
비할 수 있도록 한다.
- 감각을 활용하여 감정 전환을 피하는 방법은 아득한 옛날에 만들어진 신경 경로에 편승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면 감정 전환이 상당히 쉬워져 무의식적으로도 가능해진다. 감각은 인지적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기도 전에 감정을 움직이게 만든다.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은 밀리초 단위의 순간에도 감정적 영향을 미치며, 턱이나 관자놀이를 문지르는 등 자신의 몸을 쓰다듬을 때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촉각을 느끼면 신경이 거의 즉각적으로 반웅해서
옥시토신이나 도파민처럼 기분을 좋게 만드는 화학물질이 뇌를 가득 채운다." 미각은 처리까지 약 200밀리초가 걸린다. 반면에 공포와 연관된 트리거는 뇌 네트워크에 워낙 순식간에 접속하므로 그 감각을 인식조차 못 할 때도 많다. 한밤중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운전하는데 난데없이 사슴이 도로에 뛰어들었다고 해보자. 당신은 아마'사슴'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채 떠오르기도 전에 운전대를 확 꺾을 것이다. 용케 충돌을 피합지, 도로를 이탈하게 될지는 운에 달렸겠지만 말이다. 뇌영상을 분석한 몇몇 연구에서는 피실험자들이 무서운 이미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감정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 상처에는 시간이 약이다
주의를 분산시킬 때 주로 이용하는 것이 우리 안에 내장된 감정 조절 장치, 바로 심리적 면역 시스템이다." 일반적인 면역 시스템이 신체가 받는 물리적 위협에 대응한다면, 심리적 면역 시스템은 심리적 위협에 대응한다. 심리적 면역 시스템을 이루는 다양한 구성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인간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따라 흘러간다. 고통을 유발하는 심란한 사건으로부터 점점 멀어질수록 날카롭던 감정의 날도 차슴 무더진다. 물론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경험들은 우리를 좀처럼 떠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절정에서 결정이 점점 가라앉아 우리가 그 경험과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핵심은 충분히 오랫동안 자신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시간이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연구자로서 경력을 시작했던 초기에 나는 거리 두기 방법이 몇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벽에 붙은 파리가 되어 자신의 문제를 관찰해 보라. 명상하라. 여력이 된다면 여행을 떠나라.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들 말고도 다양한 거리 두기 방법이 있었다. 예를 들어, 만일 당신이 여러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다중언어 화자라면 말 그대로 혀끝에 이점이 하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우리의 모국어와 감정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모국어는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고 세상에 대해 사고할 때 사용하는 언어이다. 처음으로 겪는 인생의 크나큰 승리와 쓰디쓴 패배도 모두 모국어로 경험한다. 그 결과, 감정은 나중에 습득한 제2 언어보다 모국어를 쏠 때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욕설은 더 큰 타격감이 있고, 금기는 더 께름칙하며, 부끄러
운 사건들은 더 민망하게 느낀다. 우리는 감정을 모국어로 배우기 때문에 어떤 감정 경험과 그를 언급할 때사용하는 모국어 단어는 매우 강력한 연관성을 가진다.
이와는 반대로, 제2언어로 이야기할 때는 단어의 감정적 무게로부터 영향을 덜 받으므로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더 쉬워진다. 실제로 사람들이 외국어로 사고하면 더 객관적으로 추론하고, 의사결정에서 편향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현상을 '외국어 효과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다중언어 화자라면, 당신의 뇌에는 제2 언어라는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바로 접속할 수 있는 감정 조절 입이 설치돼 있는 셈이다.
설령 당신이 다중언어 화자가 아니라고 해도 여기서 우리는 언어와 감정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언어의 작은 전환으로 우리가 자신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고 결과적으로 감정 조절 방식까지 변화시킬 가능성을 보여준다.
- '거리를 둔 자기 대화'는 다른 면에서도 유용하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거리를 둔 자기 대화'는 사회 갈등에 대해서도 더욱 지혜로운 추론이 가능하도록 도왔다. 연구팀은 1개월간 연구를 진행하면서 피실험자들에게 일기를 쓰게 하되, 이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자신의 문제를 1인칭 언어로 적게 하고 다른 집단은 '거리를 둔 언어'로 적게 했다. 나중에 일기들을 모아서 살펴보니, '거리를 둔 언어'를 사용한 집단에서 현명한 추론의 증거가 더 많이 목격됐다. 이들은 더 개방적인 태도로 타인의 관점을 잘 수용했고, 지적 겸손함의 신호도 더 많이 보였다.
- 감정을 발산하고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면 인간관계를 탄탄히 다지는 데는 좋을 수 있다. 시간을 들여서 기꺼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고, 누군가에게 시원하게 속을 터놓는 일이 당장은 기분 좋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밝힌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했을 때 유년의 애착 본능이 활성화되면서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찾아가게 된다고 한다. 곁에서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회적:정서적 지지를 받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강해진다는 생각은 우리 안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심리이다. 이것은 인류가 태곳적부터 지녔던 본능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사람들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기분좋다. 2012년,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신경과학자 다이애나 타미르와 제이슨 미첼이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연구 결과로 입증했다.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면 뇌의 보상 회로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됐다.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섹스처럼 쾌락적 경험과 연관된 '기분좋은' 도파민 경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똑같이 활성화됐다. 심지어는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에 대해 털어놓는 일이 돈을 받
는 것보다 더 큰 보상이었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톱 씽킹 (0) | 2025.11.09 |
|---|---|
| 라이프 코드 (0) | 2025.11.03 |
|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0) | 2025.10.10 |
| 회복탄력성의 뇌과학 (0) | 2025.10.10 |
|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0) | 2025.10.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