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대가

사회 2014. 10. 12. 20:56

 


문명의 대가

저자
제프리 삭스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2-09-2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위기의 미국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빈곤의 종말][커먼 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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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경제 위기의 뿌리에는 도덕적 위기가 존재. 즉 정치와 경제의 엘리트층 내부에서 시민적 미덕이 쇠퇴한 것. 힘있는 자와 부자들이 사회전체와 세계에 대해 정직하며 사려깊고 동정적 태도를 갖지 않은채, 사회가 시장과 법률, 선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모순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시장사회를 발전시켜 왔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적 미덕은 내팽개침. 사회적 책임의 정신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유의미하고 지속적인 경제회복은 있을 수 없음.
- 현대 혼합 자본주의의 5가지 핵심사상
* 시장은 사회의 희소한 자원을 할당하기 위한 꽤 효율적이 제도이고, 높은 생산성과 평균적인 생활수준을 낳음
* 그러나 효율성은 소득분배의 공정성(혹은 정의)을 보장하지 않음
* 공정성을 위해서는 시민들에게, 특히 사회의 가장 부유한 성원들로부터 가장 가난하고 가장 취약한 성원들 쪽으로 소득을 재분배할 정부가 필요
* 체계적으로 시장은 인프라와 환경규제, 교육, 과학연구같은 특정한 공공재를 지나치게 적게 공급함. 이런 공공재의 적절한 공급을 위해서는 정부가 필요
* 시장경제는 금융적 불안정성에 취약. 이 취약성은 금융규제, 올바른 방향의 통화 및 재정정책 등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을 통해 완화될 수 있음.
- 자유시장 옹호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 역사에서 사실상 모든 사회들은 극빈층에 대한 원조를 보장할 경우 정부차원의 수단을 조직했음. 대다수 사회는 부자들에게 그들 몫을 내야 할 책임을 부과했음. 그러나 지난 2세기전까지만 하더라도 가난은 너무나 광범위했기에, 응급구제조치(이를테면 기근이 발생했을 때처럼) 외에는 사회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음. 엄청나게 풍요로워진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음. 실제로 빈곤의 종말에서 가난한 자들의 교육과 보건,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과 관련해 부자들이 자기 몫을 받아들일 의지만 있다면 이 극심한 빈곤은 우리 세대에 단번에 끝낼 수 있다고 주장.
- 자유시장은 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공정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세대들을 위한 지속가능성도 보장해주지 않음. 여기엔 두가지 이유가 있음. 첫째, 사회의 자연자본(공기, 물, 기후, 생물다양성, 숲, 바다 등)은 사회전체의 공유재산이고, 따라서 정치적 선택에 의해 적절히 관리되지 않으면 남용되기 쉽다는 점. 예를 들어 현재 대기는 지구의 기후를 위험하게 변화시키는 이산화탄소의 공짜 쓰레기장임. 세계의 주요 강어귀들은 수백만 농장에서 흘러나오는 화학비료의 공짜 쓰레기장임. 이 화학비료는 큰 강으로 흘러들어 이 강을 거쳐 바다로 나감. 세계의 정부들이 환경 공유재 사용을 규제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민간경제활동은 이 중요한 생태계를 약화시킬 수 밖에 없고 결국에는 파괴하게 될 것임. 두번째는 시장이자율이라는 작은 문제임. 사람들은 미래의 소비보다 현재의 소비를 선호. 즉 인내심이 없기 때문에, 이자율은 양수가 됨. 소득자들의 인내심이 떨어질수록 소득은 현재의 소비에 더 많이 사용되고 저축은 줄어들며, 따라서 이자율을 밀어올림. 그러나 양의 이자율 때문에 이윤지향적인 자원보유자들(목재나 어장 혹은 담수원 등의)은 미래보다는 현재를 위한 생산쪽으로 기움. 현재 1달러의 가치가 미래 1달러의 가치보다 높기 때문.
- 다수의 상황에서,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에는 상충관계가 전혀 없음. 두가지 목표가 실은 서로 일치하기 때문. 공정성에 대한 약속은 효율성 역시 높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음. 많은 경우에 빈곤층에 대한 지원은 그저 단기적 소지를 위한 소득이전이 아니라, 가난한 가계들의 장기적 생산성 향상을 가능하게 하는 정부 보조금으로 이루어짐. 이러한 정부 프로그램 중에서 핵심적인 몇가지를 들자면, 어머니와 어린아이들의 영양상태, 유치원 교육비, 대학 등록금, 직원 훈련비에 대한 지원 등임. 이들 각각은 인적자본에 대한 정부의 투자이자, 특히 가난한 가계들이 장기적 생산성을 높일 방법들임. 그러면 빈곤층을 돕기 위한 부유층에 대한 과세는 결국, 부자들의 호화로운 소비를 줄여 고수익 인적자본에 투자하는 것을 뜻하게 됨. 그 성과는 보다 공정할 뿐 아니라 더 효율적이기도 함.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와 밀턴 프리드먼 같은 강력한 자유시장 옹호자들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교육에 대한 공공재정의 필요성을 인정해왔음. 그들은 시장 혼자서는 우리의 젊은이들, 적어도 충분한 수의 젊은이들을 교육시키지 못할 것임을 인지했음. 오늘날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해졌음. 교육비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정부가 나서서 만인을 위한 양잘의 교육에 재정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가난한 이들의 삶은 뒤처지고 쉽사리 빈곤의 함정에 빠질 것임.
- 80년대 초 이래 워싱턴은 국가경제문제 해결자로서의 역할을 중단. 앞선 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주요한 국가적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연방정부는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 30년대의 실업감소, 40년대의 전쟁승리, 50년대 국가인프라 건설, 60년대의 빈곤과의 투쟁, 70년대 환경과 에너지 위협에 대한 정면대응 등이 그 사례임. 주요 경제문제는 정책적 지도력과 연방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당연시 되었음. 그런데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삶은 달라졌음. 레이건은 정부가 미국 경제적 질병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정책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고방식의 서막을 열었음. 만약 당신이 보통의 미국시민이라면, 워싱턴이 당신의 관심사를 다루어주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그러나 당신이 특수한 이해관계자라면, 규제를 다루는 협상 테이블 앞에 와서 앉으라. 규제는 철폐되거나 혹은 당신의 필요에 맞게 다시 작성될 것이다. 지구화, 기후변화, 금융 불안정, 치솟는 의료비 등 새로운 과제가 제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무대의 중심을 흔들림없이 차지해온 것은 국가적 이해가 아니라 특수한 이해관계임
- 30년대와 40년대에 미국인들은 한마음이었음. 대공황. 그리고 다음으로 2차대전을 겪으며 그러했음. 이 역사적 사건들은 합의로 나아가기 위한 혹독한 시련의 장이었음. 냉전기 또한 공통의 위기의식과 책임감을 일구어냄. 따라서 해리 트루먼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케네디, 그리고 존슨 모두 적어도 65년 무렵까지는 자신들이 어떤 기준들을 공유하는 사회를 이끌고 있다고 여길 수 있음. 그러나 이 의식은 60년대 초에 해체되기 시작하여 80년대에는 완전히 소멸하기에 이름.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따져보기 어려울 정도. 몇가지만 들자면, 냉전기의 긴장이 잦아들면서 역설적이게도 사회내의 들끓는 긴장이 분출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었음. 합의와 겉치레 아래서 억압되기 보다는 그런 사회적 긴장이 안정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 2차대전과 산아제한의 산물이자 여성들을 고등교육과 취업으로 이끈 경제상황의 결과물로서,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 급격히 변화. 이런 변화의 결과 새로운 사회적 분업이 창출되고, 결국 문화적 가치에 대한 대립으로서 60년대부터 줄곧 이어진 문화전쟁의 한 원인이 됨. 베트남 전쟁은 나라를 매파와 비둘기파로 분열시켰고, 이 분열은 이후의 갈등에서도 계속 나타남. 60년대의 반문화운동은 전통적 가정으로 하여금 좀더 실험적 생활양식에 맞서도록 했으며, 성에 대한 변화하는 관습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논쟁을 일으킴
- 남북전쟁이후 1세기 동안 미국의 국가권력은 북부 특히 북동부와 중서부에 집중되어 있었음. 거의 모든 대통령이 북부 출신이었음. 산업도 북부에 집중되었고, 부, 역시 마찬가지. 남부는 남북전쟁에서의 패배라는 명백한 한가지 이유 외에도 여러가지 복합적 요인 때문에 성장이 지체됨. 공업보다는 농업에 더 적합한 생태, 뒤처진 과학기술, 열악한 공공교육, 그리고 황열병과 말라리아, 십이지장충 같은 열대성 질병에 대한 부담 등이 그것. 이 모든 요인들 덕분에 경제력은 여전히 북부에 편중되어 있었음. 그런데 엄청난 정치적 변화가 찾아옴. 앞선 1900~1960년에는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대통령이 북부인 스노우벨트 지역 출신이었음. 그러나 1964년부터 2008년 오바마까지 모두, 남부인 선벨트 지역에서 대통령이 배출됨. 민권운동은 스노우벨트 대통령 시대와 선벨트 대통령시대 사이에서 확연한 구분선을 그었음. 오바마에 이르키까지 단 두명의 민주당 후보(카터와 클린턴, 둘 모두 선벨트 출신)만이 현재는 강력한 공화당 지지지역인 곳에서 당시 극소한 표를 얻을 수 있었음. 북부의 민주당원들은 남부 백인 중산층의 반대라는 장벽에 직면하곤 했고, 따라서 당선가능성이 희박했음. (저소득층 백인 유권자들은 민주당 지지 대열에 잔존하는 경향을 보였음.) 그러나, 60년대 이후 선벨트가 대통령을 배출할 힘을 갖게 된 것이 단순히 민권운동에 대한 반발의 결과인 것만은 아님. 2차대전 이후 남부의 경제력이 점진적으로 상승한 것 역시 한가지 주요한 배경임. 전화, 냉방, 공공 인프라 투자(서부의 댐과 대규모 수자원 사업 등), 의료 및 교육의 상당한 개선 등 이 모든 것 덕택에, 고비용에 노조 조직률이 높은 북동부에서 저비용에 노조가 없는 선벨트로 섬유 및 의류 같은 산업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 이처럼 스노우벨트에서 선벨트로 산업이 이동한 것은, 많은 면에서 미국에서 저임금인 아시아로 산업이 이전하게 되는 흐름에 대한 예행연습과 같았음. 선벨트 경제가 번창하고 미국인구(본토 태생 및 히스패틱계 이민자 포함)가 점점 더 선벨트에 정착함에 따라, 정치궈녁의 무게중심도 점점 더 선벨트쪽으로 기울게 됨
- 미국이 그간 새로운 지구화가 몰고온 도전과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함. 공장과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하면서 제조부분이 위축됨. 노동자 계급이 특히 압박을 받음. 경제정책은 무대응으로 손 놓고 있었다기 보다 오히려 기대와 정반대로 대처.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삭감했고, 증대하는 대외경쟁에 직면한 제조업 부문을 방치함. 연준의 느슨한 화폐정책과 서브프라임 대출로 건설업 고용이 일시적으로 자극을 받았지만, 이런 임시방편은 서브프라임 거품이 꺼진 07년까지만 지속되었을 뿐. 따라서 08년 금융위기는 곧 철저히 잘못 관리된 지구화의 위기였음. 미국은 장기적인 제조업 경쟁력 상실에 주택경기부양이라는 미봉책으로 대응. 이후 그 붐이 붕괴하자 실업률이 치솟았고, 미국식 단기주의의 공허함이 만천하에 그대로 드러났음. 그러나 거품 붕괴후에도 워싱턴은 제조업 경쟁력에 대해 장기적이고 진지한 대책을 마련하기는 커녕, 이전에 실패했던 것과 똑같은 정책조합으로 회귀. 느슨한 화폐정책과 감세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낳았고 2011년부터는 교육과 인프라, 과학기술, 즉 장기경쟁력을 위해 투자가 절실한 분야에 대해 정부지출을 삭감
- 오늘날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진정한 민주주의라기보다는 두 지배정당의 안정적 이원적 독점이라고 할 수 있음. 이 두 정당의 구성원들은 때때로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업과 부자, 군대의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이슈에 관해서는 많은 경우에 동일한 입장을 취함. 이들은 힘센 기업과 부자들의 도구임. 양당제 선거에 관한 이론서에서 제시하듯이, 중산층 유권자들을 겨냥하기 보다는 두 정당 모두 고소득 선거자금 기부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중도 우익쪽을 겨냥. 공화당의 경우에 이것은 쉽고 자연스러움. 한편 표면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하는 민주당의 경우, 이는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 같은 정당 지도자를 의미하게 됨. 이 두 대통령은 앞뒤 가리지 않고 월스트리트와 부자들 편을 들고, 그들의 지지층에는 끊임없이 변명을 늘어놓음
- 기업지배체제는 피드백 루프의 전형적 사례. 기업의 부는 선거자금 기부와 로비, 정부와 산업간의 회전문 인사를 통해 정치권력으로 전화됨. 정치권력은 감세와 탈규제, 정부와 산업간의 특혜적 계약 등을 통해 더 큰 부로 전화. 부는 권력을 낳고, 권력은 다시 부를 낳음. 미국 경제의 네가지 핵심부문은 이 피드백 루프의 실례임. 먼저 군산복합체는 아마도 가장 악명 높은 사례. 아이젠하워가 61년 1월 그 유명한 고별연설에서 경고했듯이, 군대와 민간산업의 결합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정치권력을 창출하여, 그 이후로 미국은 군사화와 쓸모없는 전쟁, 수십조 달러에 이르는 재정낭비의 늪에 빠지게 됨. 두번째 강력한 로비부문은 월스트리트-워싱턴 복합체임. 이 복합체는 금융시스템이 정치적으로 힘 있는 몇몇 월스트리트 기업들에 의해 제어되도록 유도해왔음. 특히 골드만삭스와 JP모건 체이스, 시티그룹,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소수의 금융 기업들이 상당한 발언권을 행사. 금융과 워싱턴의 긴밀한 결탁은 무분별한 탈규제와 그에 이은 정부감시의 철저한 결여를 야기했고, 결국 08년 금융위기와 거대 구제금융으로 이어짐. 월스트리트 기업들은 여러 행정부에 걸쳐 워싱턴에 최고위 경제정책 입안자들을 공급. 레이건 행정부의 도널르 리건(메릴린치)과 클린턴 행정부의 로버트 루빈(골드만 삭스), 부시 주니어 행정부의 행크 폴슨(골드만 삭스) 등이 이에 해당. 오바마 정권에도 윌리엄 데일리와 래리 서머스, 진 스펄링, 잭 류 등 월스트리트와 연관된 고위 공직자들이 많음. 세번째 부문은 거대 석유-수송-군산복합체임. 이 복합체로 인해 미국은 심각한 석유 수입 의존과 중동의 심화되는 군사적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함. 1세기전 석유와 록펠러와 스탠더드 오일트러스트의 시대 이래, 거대 석유회사는 미국의 정치와 대외정책에서 그 존재감이 엄청났음. 대형 석유업체는 자동차 산업과 연합하여, 미국을 대중교통에서 벗어나 국비로 운영되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석유를 잡아먹는 자동차쪽으로 이끌었음. 그리고 원자력과 풍력, 태양열을 포함한 비석유 에너지원이 그들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싸워 성공을 거둠. 그들은 국방부 편에 서서 미국이 페르시아 만으로 가는 해로를 지키도록 만들었고, 연료에 대해 매년 1000억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지출하게 했음. 뿐만 아니라 거대 석유회사는 기후변화를 미국의 의제에서 배제시키기 위한 싸움에서 악명 높은 역할을 담당해 옴. 특히 엑슨모빌과 코크인더스트리스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은 미국 대중을 혼동시킬 목적으로 반과학적 선전을 위한 비용을 댐. 네번째 거대한 산업-정부간 결탁은 의료산업임. 이것은 GDP의 17%를 차지하는 오늘날 미국에서 최대의 단일산업임. 정부가 산업과 한통속이되어 체계적인 감독과 통제 없이 비용을 지불해주는 것이 이 부문의 주목할만한 핵심임. 제약회사들은 특허권의 보호하에 가격을 아주 높게 책정.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민간 보험사들은 의사와 병원측에 원가가산 방식으로 보상해줌. 또한 미국 의사협회는 미 의과대학들의 현장실습을 통제함으로써 신규의사 공급을 제한함. 이같은 유사-시장 시스템의 결과, 고비용과 민간의료부문의 막대한 수익을 초래함. 반면, 개혁에 대한 정치적 의지는 소멸됨.
- 성인 1인당 추정 TV시청시간은 스위스인의 하루 약 167분부터 미국인의 놀라운 297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함. 시청시간이 비교적 적은 집단(스위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과 중간수준인 집단(프랑스, 독일,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가 있고, 마지막으로 시청시간이 가장 많은 미국이 있음. 여기서 우리는 TV시청 시간이 사회적 신뢰수준과 강한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이를테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시민들은 TV 시청시간이 매우 적고 사회적 신뢰수준은 매우 높음. 한편 부패인지도에서 보듯이 TV 시청시간과 정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 이탈리아는 두 척도 모두 매우 높은 점수를 기록.
- 우리 두뇌가 끊임없이 재형성된다는 점과 조작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 때문에, 광고에 찌든 경제가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를 깨달을 필요가 있음. 우리는 인간이 조작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점점 더 잘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이 취약성을 먹잇감으로 삼는 방대한 광고와 홍보산업을 발전시키기도 했음. 신경과학자들은 광고와 대중소비주의가 우리에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는 네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1) 우리의 뇌는 가소적임. 과학자들은 우리가 선택하는 행동방식과 우리가 받는 자극의 종류에 따라 두뇌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기술하기 위해 신경가소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함. 일례로 명상이 우리가 평정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면, TV시청은 이런 평정심을 깨뜨릴 수 있고, 이는 어린아이들에게 특히 더 그렇다는 것.
(2) 동물행동학자들이 강조하듯, 초정상 자극이라는 것이 존재. 이것은 단순히 색상 신호와 성적 자극, 또는 매우 복잡한 행위를 유발할 수 있는 기타 감각정보를 의미. 하버드대 심리학자 디어드리 배릿은 동물에 관한 놀라운 발견에 비추어 인간도 생물학적으로 특정 신호에 강력하게 반응하도록 설정되어 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했음. 식품 산업은 우리가 선천적으로 갈망하는 기름진 음식과 정제된 당류로 우리를 유혹함. 마케터들은 자동차와 맥주, 담배 같은 것을 판매하는 모델의 성적인 포즈를 통해 그 제품을 사도록 쉽게 유인. 물론 이런 유혹들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는 광고의 편재화를 통해 그것이 봇물처럼 쏟아질 문을 열었음
(3) 마케터들은 우리가 중독에 취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특히 어린아이들을 일생동안의 소비 및 과소비에 쉽게 중독시킴. 비유하자면 우리 사회는 밀매자들의 사회임. 마약 갱단 같은 것이 아니라, 광고속의 수많은 유명 이름들을 강매한다는 점에서 그러함.
(4) 우리의 많은 결정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짐. 종종 우리는 특정한 제품을 우리가 왜 구매했는지 또는 왜 그것에 혹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함. 두뇌는 눈앞의 구경거리와 냄새,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자극들로 쉽게 채워짐. 그리고 이런 자극들은 구매자 자신조차 명확히 알지 못하는 이유들로 제품을 사도록 유인함
-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도전은 언제나 다양성이라는 현실이었음. 이것은 나라를 그 시작부터 분열시켜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이어지게 했고, 그 이후 약 1세기 동안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사회를 존속시켰으며, 20세기 민권운동의 시대에는 아래로부터 가장 극적인 사회변화를 낳았음. 민권운동 시대의 여파는 그 뒤로도 계속 반향을 일으켰음. 따라서 새천년 세대가 이전 세대들보다 더 넓은 포용의 징후를 보이는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함. 실제로 그들은 종교와 성, 인종에 대한 모든 뜨거운 이슈와 관련하여 차이를 존중하고 좀더 너그러움. 새천년 세대는 덜 종교적이고, 특정한 종파에 속해 있는 경우가 더 적음. 복음주의적 경향이 덜하며, 주일예배에 참석할 가능성도 크지 않음. 또한 압도적인 비율로 동성애를 받아들임. 근소한 차이로 다수가 낙태는 대부분 혹은 모든 경우에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믿음. 타 인종과의 관계 및 인종간 결혼에 대한 우호적 태도 역시 민권운동 시대가 일군 성과 이후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에 걸맞음. 결과적으로 새천년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의 문화전쟁에 의해 분열될 가능성은 거의 없음. 그들은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것임. 보다 적극적인 정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환경적 요구에 더 잘 적응할 것임. 이 모든 것은 깨어 있는 경제를 향함. 물론 그 전제로 새천년 세대의 포용과 낙관주의의 치유력이 집합적인 정치적 실천을 위해 동원되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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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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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저자
노엄 촘스키 지음
출판사
시대의창 | 2014-01-0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촘스키의 목소리 최근 6년간의 중요한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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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대전 직후, 미국 국무부의 정책 입안자들이 세계지배라는 전반적인 틀 내에서 세계의 각 지역에 고유한 기능을 책정했을 때 아프리카는 중요하지 않은 지역으로 분류되었음. 당시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이었던 조지케넌은 아프리카를 유럽에 넘겨주어 유럽재건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짐. 아프리카의 자원은 다른 국가에 넘겨주기에는 너무 소중함. 특히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워 확장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함. 가난한 소말리아가 기아와 빈곤으로 붕괴하더라도 그런 결과는 거대한 지정학적 구상에서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며 중요한 사건도 아님
-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세계를 지배할 권리를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음. 그러나 이제는 미국지배의 시대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음. 남미는 얼마전부터 미국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단계를 밟음. 이제 이 지역의 국가들은 독립의 필요조건인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심각한 내부문제, 특히 부자이며 주로 백인인 소수가 대다수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전통적 문제에 대해 고심하고 있음. 남남관계 또한 강화되고 있으며 브라질과 남아프리카와 인도가 연대를 맺었고, 중국의 경제력이 급성장하면서 중국이 서구지배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름. 한동안 국제경제는 북미와 유럽과 동북아시아를 주축으로 한 삼극체제였지만, 이제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의 경제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 미국은 여전히 한 부문, 즉 폭력의 수단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음. 미국이 여기게 쏟는 비용은 나머지 나라들이 투자하는 비용을 전부 합한 것과 엇비슷하며, 과학기술에서는 월등함. 그러나 다른 부문들에서 세계는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해가고 있음.
-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전통적 방법은 폭력과 경제제재임. 언젠가부터 두 방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하는 듯하지만, 미국은 그 전통적 방법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음. 08년 3월 미국 재무부는 전 세계 금융기관들에게 이란의 주요 국영은행과 거래하지 말라고 경고. 미국 페트리어트법의 한 조항을 근거로 워싱턴은 미국의 지시를 어기는 모든 금융기관이 미국 금융체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경고는 강력하고 효과가 있을 수 밖에 없음.
- 부시의 선택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일관되게 추진된 일반적인 원칙, 즉 권리는 힘에 기여한 몫만큼 부여된다는 원칙을 충실하게 따른 것. 팔레스타인은 가난하고 약하며, 지리멸렬하고 친구도 없는 나라임. 따라서 팔레스타인에게는 어떤 권리도 인정되지 않음. 반면에 사우디는 막대한 에너지를 가진 국가이며, 이집트는 강력한 힘을 지닌 아랍국가임. 이스라엘은 부유한 서구국가인데다 미국을 제외한 나토 강대국들보다 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훨씬 강력한 것으로 알려진 공군력과 기갑부대뿐 아니라 수백기의 핵무기까지 보유한 중동지역 최강국임. 게다가 선진화되고 군국화된 경제는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 따라서 미국이 의도하는 유산의 윤곽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음.
- 과장된 수사들을 배제하면 냉전은 미국과 소련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폭력과 파괴를 자행하며 각자의 영역을 지배하자는 암묵적인 협약이었음. 그래서 러시아는 동유럽을 지배했고, 초강대국인 미국은 그 외의 세계를 지배했음. 인간사회는 그런 냉전 시대의 부활을 다시 인내하며 견뎌야 할 필요가 없고, 다시 견뎌내지도 못할 것임. 합리적인 대안이 있다면 그것은 클린턴이 거부하고 부시가 훼손한 고르바초프의비전임. 이스라엘 외무장관을 지낸 역사학작 슐로모벤 아미는 이런 맥락에서 레바논 베이루트의 영자신문 데일리 스타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조언. 러시아는 미국과 진정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모색해야 할 것이고, 미국은 러시아를 배제하고 멸시하면 러시아가 세계 전역에서 중대한 훼방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임. 냉전이 종식된 이후로 미국에게 무시당하고 굴욕을 맛보았지만, 러시아는 반 서구적 대립전략을 버리고 부활한 강대국으로서 온전한 대접을 받는 신세계 질서의 일원이 되어야 함
- 금융자유화는 경제영역을 넘어 막대한 영향을 미침. 금융자유화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강력한 무기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져왔음.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면 일부 경제학자의 표현대로 투자자와 채권자로 이루어진 가상의회가 형성됨. 이런 가상의회는 정부면책을 면밀하게 감시하면서 정부정책이 비합리적이라 여겨지면, 즉 자신들이 아니라 국민전체를 위한 정책이라 여겨지면 그 정책을 반대함. 투자자와 채권자는 자본도피, 통화공격 등 금융자유화로 얻은 수단들을 동원해서 반대의사를 표명. 이런 이유에서 미국과 영국이 제2차 대전 후에 도입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통화규제를 제도화하고 자본통제를 허용했던 것.
- 오바마의 선거운동에 깊은 인상을 받은 홍보업계는 어드버타이징 에이지에서 애플을 간단히 제쳐두고 오바마를 08년 마케터로 선정. 홍보산업의 주된 과제는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한 소비자가 불합리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해서, 소비자가 충분한 정보를 갖고 선택한다는 시장이론을 훼손하는 것. 따라서 홍보산업은 똑같은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해서 이익을 얻음
- 제국주의 지배의 전통적 방식, 즉 폭력과 경제전쟁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 라틴아메리카는 이제 진정한 선택권을 손에 쥐게 되었음. 워싱턴은 라틴아메리카가 독립하면 서반구 지배만이 아니라 세계지배까지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 공화국이 탄생한 첫날부터 미국 외교정책의 목표는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하는 것이었음.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하지 못하면, 71년 닉슨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칠레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의 절대적 중요성을 논의할 때 결론내렸듯이, 미국은 세계 어디에서도 질서를 바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칠레에서 잠깐 꽃피웠던 민주주의는 사그라들고 말았음. 주류 학계에서도 인정하듯이, 워싱턴은 전략적이고 경제적인 이익이 있을 때만 민주주의를 지지해왔음. 이 정채은 역대 모든 행정부를 거쳐 지금까지 변함없이 추진되고 있음. 이처럼 이해관계를 좇는 반민주적인 행태는 도미노 이론의 합리적 형태인데, 때로는 더 정확하게 좋은 선례의 위협이라 불림. 이런 이유에서 완전한 순종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존재의 위협으로 여겨져 가혹한 응징을 받는 것임. 라오스 북부 지역의 외딴 마을들에서 조직된 농민운동, 그레나다의 어업 협동조합 등 세계 전역에 유사 살례가 있음. 이제 막 자립의 길에 들어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적어도 세 방향으로 통합이 추진되고 있음. 첫째는 지역 통합. 지역통합은 독립의 필요조건임. 지역통합이 이루어지면 서반구의 주인인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하나씩 고립시켜 억압하게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 둘째는 세계 통합. 남남관계를 확립하여 시장과 투자를 다변화하는 것. 특히 중국은 서반구 문제에서 의미있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확대해나가고 있음. 셋째는 내부통합으로 가장 중요. 라틴아메리카는 부와 권력이 극단적으로 집중된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국가의 안녕에 대한 엘리트 특권층의 책임의식이 부족. 라틴아메리카는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나 권력자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위한 국제통합, 즉 진정한 세계화 시대를 예고하고 있음.
- 황금시대 후의 금융기관들에 거의 전적인 책임이 있는 07년 붕괴가 있기 직전까지 금융계는 엄청난 경제력을 과시하며 기업이익에서 그들의 몫을 세배 이상 불림. 금융시장이 붕괴된 후에야 상당수의 경제학자가 오로지 경제적 관점에서 금융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 노벨상 수장자 로버트 솔로는 금융이 전반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결론지으며, 금융의 성공은 실물경제의 효율성에 거의 혹은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반면에, 금융이 붕괴되면 부가 납세자에게서 금융업자에게로 전이된다고 말함.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겨우 남은 것마저 찢어발김으로써 금융기관은 파괴적 과정들을 계속 추진할 토대를 놓았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그 고통을 침묵으로 견딘다면 금융기관들의 탐욕은 계속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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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 사회

사회 2014. 10. 12. 20:54

 


팔꿈치 사회

저자
강수돌 지음
출판사
갈라파고스 | 2013-04-09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경쟁이 어떻게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최고의 가치가 되었나? 끊임...
가격비교

- 골드소프 등의 연구에서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태도를 크게 세가지로 구분했는데, 첫째는 성취지향성, 둘째는 연대적 지향성, 셋째는 도구지향성임. 첫째는 노동자들이 기업 위계 등 일정한 질서 속에서의 인정과 성취를 통해 상층부로 상승하는 것을 통해 의미를 찾으려 한 경우고, 둘째는 조직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과 정서적, 감정적 유대감을 갖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경우. 전자가 승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경우라면 후자는 친밀한 인간관계(신뢰, 충성)를 우선시하는 경우. 끝으로 도구적 지향성은 노동을 다른 무엇보다도 생활수준 향상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 첫째와 둘째가 노동안에서 내재적 만족을 지향한다면, 셋째는 노동 밖에서 외재적 만족을 지향. 골드소프 등의 실증 연구는 60년대 말 영국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노동에 대한 태도를 분석한 것으로, 당시 대부분의 응답자는 노동에 대해 도구적 입장을 보여줌. 즉 노동자들은 노동에서 내재적 의미(자아실현, 성취감, 도전감, 유대감)를 찾기보다는 단지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소득과 고용에 주로 관심을 갖는 것으로 나타남. 특히 위계질서의 하층부, 즉 하층 노동자 집단으로 갈수록 도구적 지향성이 강했음. 이 연구결과는 서양에서 프로테스탄트(특히 칼뱅주의) 노동윤리 이래 형성된 근대적 노동관에 일정한 변화가 있음을 암시. 원래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란 주어진 과업을 신이 내린 소명이라 여기고 근면과 성실로 부를 축적함으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태도임. 따라서 노동은 구원의 길이요, 자아실현의 길이었음. 이것이 약화한 것은 한편으론 임금과 소비에 의한 구심력이, 다른 한편으론 무의미한 노동에 의한 원심력이 동시에 작동한 탓
- 어릴적부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채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 충족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부모와 잘 소통하지 못하고 따뜻한 지지도 받지 못하면서 자란 경우, 특히 좋은 학교 성적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성과주의식 삶의 태도를 반복하며 자란 경우, 요컨대 성장과정에서 조건없는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 한국과 같이 전형적인 일중독적 특성이나 일과 삶의 불균형이 상대적으로 극심하게 나타날 수 있음. 그것은 하이데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어린 시절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을수록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면서 사람들은 생존의 두려움을 특히 강하게 느끼기 때문. 그럴 때 대개 생존전략으로서 강자와 동일시를 하게 되고 이것이 곧 성과주의적 삶의 지향이나 강방적 노동관념으로 연결되기 쉬움. 그렇게 자란 어른들은 어린 시절의 좌절감을 보상받기 위해, 또는 그러한 내면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은폐하기 위해, 일이라는 일종의 중독물에 빠져듦으로써 견디기 어려운 심적 고통을 피해가고자 함
- 우리는 대개의 경우 내가 일하는 기업이, 내가 만드는 상품이, 내가 사는 나라가 세계에서 최고가 되기를 원함. 그래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불철주야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국민의 자세라 배움. 강자만이 살아남는다고 하는 다윈의 진화론을 편협하게 해석한 적자생존 및 약육강식 논리를 인간사회에 기계적으로 편협하게 적용한 결과, 사회적 다윈주의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거의 지배하게 되었음. 그리하여 우리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참된 느낌을 억압하고 기업과 국가가 요구하는 경쟁력 논리를 그 빈자리에 채워놓음. 앞서 말한 정서적 프롤레타리아화가 전개되는 방식.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강자와 동일시를 하게 되는 사회적 조건이고, 또한 이것은 자연스럽게 경쟁을 내면화하는 심리적 토대가 됨. 그렇게 되면 이제 경쟁을 벗어나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체념적 토대가 됨. 나아가 경쟁이야말로 인간 및 사회발전의 효과적 방법이라는 지배자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경쟁을 합리화함
- 문제는 이런 강자와 동일시 및 경쟁의 내면화와 더불어 우리는 자신의 참된 내면과 점점 더 멀어짐. 그리하여 겉으로는 살아있으되 속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또한 겉으로는 부와 권력과 명예, 외모와 건강을 과시하되, 속으로는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과 불만족에 시달리는 표리부동한 삶을 살게 됨. 그렇게 되면 한마디로 우리는 제아무리 보약을 먹고 오래 살아봐야 헛살기 쉬움.
- 경쟁이란 자본의 지배를 위한 수단. 그래서 경쟁과 지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음. 경쟁과 지배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명제, 즉 생존경쟁은 자본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라는 명제는 박수치기 게임의 비요나 선착순달리기의 비유 또는 자상한 남편의 비유(중국 영화 홍등에 나오는, 서로 질투하며 경쟁하는 부인들을 여럿 거느린 남편이 극도의 자상함을 통해 효과적으로 여러 여성들을 동시에 관리하는 모습)를 통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음.
- 어느 누구도 자신의 중심이 탄탄하게 서 있고 주변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면 별로 경쟁할 필요도 느끼지 않고 경쟁을 하더라도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음. 재미삼아 경쟁을 하는 경우라도, 만약 그 사람의 내면에 열등감이나 공허감이 크다면 꼭 내가 이겨야 한다는 강박 또는 집착에 시달리기 쉬움. 손상된 자아존중감. 즉 자존감을 되찾고 싶기 때문. 그래서 경쟁에 반대한다라는 책을 쓴 알피 콘 선생은 이렇게 말함.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기 때문에 경쟁을 하며, 결국 낮은 자존감에 대한 보상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경쟁에서 승리하여 자기존재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
- 치열한 경쟁사회라는 시스템 조차 영원한 자연법치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감. 현재의 자본주의 역시 수억년 인간의 역사중 불과 500년 내외의 특수한 현상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의미. 경쟁사회를 만들고 소장하는 세력은 따로 있음. 한마디로 기득권 세력임. 자본주의 경쟁사회가 탄생한 데에는 이미 봉건주의 사회를 깨면서 급부상한 자산가들, 상공인 계급들이 단결하고 혁명을 일으킨 과정이 있었음. 그 이후 수백년간 기득권의 아성을 확고히 쌓으면서 경쟁 이데올로기를 중간층이나 기층 민중이 스스로 내면화 했다는 점. 경쟁질서가 만들고 강화하는 사다리 질서 자체를 문제삼기 보다는 그 질서를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 더 많이 차지할 것인가, 하는 기득권 경쟁의 덫에 빠져버린 것. 일부 성공한 강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적 과정도 숨어 있음. 그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 위신과 외양에 좌절한 결과 선망하고 집착하게 되는 것임. 기득권 층은 기득권에 중독되어 변하지 못하고 비기득권층은 기득권을 동경하고 강박적으로 집착하기에 변하지 못함. 이 모든 현상은 개인적 차원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우리 모두가 병들어감을 암시. 경쟁의 승자가 겉보기에는 폼 나는 승리에 도취될지 모르나 그것은 일시적이며, 진정한 내면의 평화나 행복의 관점에서는 결코 인생성공이 아닐 수 있음. 남들을 다 누르고 자신이 최종 승자가 되려는 과정에서 남들을 울리고 자신을 억압할 수밖에 없기 때문.
-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의 압박이 증가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진정성을 갖고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님. 그들은 대개 세가지 전략으로 대처. Deny, Delay, Dominate 전략임. 먼저 부정전략이란 기업이 책임질 직접적 대상이나 상황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 상황자체가 존재한다고 해도 대개 인과관계를 부정하거나 책임을 다른데로 돌림. 다음으로 지연전략은 책임을 져야할 대상이나 상황자체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경우 그 해결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펼치는 것. 아직 문제 자체가 심각한 상황이아니라거나 그 해결을 위한 역량이 미처 구비되지 않았다는 식. 오랜 시간을 끌면서 저항세력이 지치게 되거나 세력관계가 뒤바뀌면 포장만 달리하여 자기들의 의도를 관철함. 끝으로 지배전략이란 어차피 부정도 못하고 지연도 못할 조건이라면 문제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기업이 장악하려는 것. 문제 상황의 규정 자체를 기업에 덜 불리하게 한다거나, 우호적인 학자나 전문가를 초청해서 토론회를 열어 해결방식을 기업에 유리하게 끌고가는 식. 그리하여 전화위복을 꾀함. 대단한 위기에 휘말린 기업이 오히려 그 위기를 딛고 더욱 번창하게 되는 것은 이 지배전략이 효과를 낸 결과. 지금까지의 결험과 판단으로 앞에서 이야기한 3D저략에 두가지를 부가해 5D전략이라 명명. 하나는 왜곡(distort)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기만(deceive)전략임. 왜곡전략이란 문제상황을 비틀어 더이상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보상적 문제로 치환하는 것. 특히 건설이나 개발과 관련된 사례에서 두드러지듯, 처음에는 사업 그 자체를 할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가부문제로 시작하지만 대개 끝은 보상문제로 귀착. 다음으로 기만전략이란 전문가회의 등을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를 준수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뇌물, 감투, 암약 등을 통해 대 사회적 사기를 치는 것. 서류조작, 자료조작, 통계조작, 수치조작이 기본임
- 자본과 권력은 경기가 좋으면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겁을 주고, 경기가 나쁘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겁을 준다. 사람들은 경기가 좋아도 힘들고 나빠도 힘들다. 이에 우리의 과제는 위기감이나 두려움에 기초한 선전선동의 허상을 낱낱이 벗겨내는 것이다.
- 우리들의 모든 삶의 과정이 상품화한 것이 바로 오늘날 서비스 경제라 불리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사람 사이에서 친밀함과 우정, 환대, 사랑의 관계를 만들고 확인하고 나누던 행위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서비스 경제라는 이름으로 돈벌이 수단이 됨. 예컨대 아이를 잉태하거나 낳는 행위, 아이를 키우는 행위, 의식주 등 살림살이 행위, 어려울때 돕기, 문화향유, 여가, 소통, 그리고 심지어 사랑행위까지도 온통 서비스 경제 속으로 편입되고 있음. 그 결과 서비스는 있되 참된 봉사는 없고, 학교는 있되 참교육은 없음. 또 고급 아파트는 있되 참살림은 없고, 레스토랑은 있되 참 먹을거리는 없음. 사실이 이럼에도 오늘날 주류경제학에서는 서비스경제, 즉 3차산업이 발전할수록 선진국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지배하여 현실 삶을 피폐하게 함.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이런 환상에서 탈피하여 삶의 자율성, 삶의 친밀성, 삶의 직접성을 복원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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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사라진 세계  (0) 201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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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

저자
이옥순 지음
출판사
서해문집. | 2012-09-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고대부터 현재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게으름에 관한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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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름이 폄하되고 근면이 장려된 것은 근면이 힘이나 권력과 깊이 연계되기 때문이었음. 힘을 가진 계급이나 집단이 권력관계를 만들고 스스로를 근면한 존재로, 주변부 사람들을 본질적으로 게으른 그들로 규정. 하층민에게 일하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가르친 건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서임. 하층계급은 게으르다는 신화는 그들을 경멸하는 동시에 게으르지 않은 자신들, 왕, 귀족, 부르주아, 지주를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만드는데 이용됨. 게으름은 국경을 넘어 작동한 국제간 권력관계에도 배어들었음. 게으름이 야만과 후진성으로 상징되면서 근면하고 역동적인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게으른 동양에 대한 침투와 정복을 정당화. 게으름은 식민지가 된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의 천성으로 여겨졌고, 나아가 국민적 특성으로 규정됨. 그들을 지배한 식민지배자들은 일개미처럼 식민체제에 순응한 사람을 근면한 사람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은 자들을 나태하다고 간주.
-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햄버거를 퍼뜨리듯 게으름이 악이라는 개념을 전 세계에 퍼뜨린 나라는 미국. 게으름이 나쁘다는 걸 대중에게 보급해 덜 일한 것에 죄의식을 갖도록 만든 인물로는 미국 프랭클린이 으뜸임. 자동차의 왕이라 불린 헨리포드도 마찬가지. 그들은 게으른 자에게 문명은 없고, 게으른 사람은 행복할 기회를 막는 실패자라는 청교도적 이상을 강조.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적 영향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죽도록 일하지 않는 사람을 게으름뱅이라고 낙인찍는 분위기가 세상을 지배하게 됨
- 그리스 문화와 민주정치는 여유로운 자유민 없이는 불가능했고 자유민의 삶은 노예 없이는 불가능했음. 노동을 중하게 여기지 않은 아테네 시민을 대신해 노예가 모든 일을 담당. "진정 사유로운 사람이란 언젠가 한번쯤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한 사람은 로마의 키케로였음. 로마공화정 시대의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자신의 수고와 근면을 팔아넘기는 행태는 천박스럽고 혐오스러운 짓이다. 돈때문에 자신의 수고를 제공하는 것은 자신을 파는 것이며, 노예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 키케로의 나라 로마에서는 그리스의 여유라는 말이 있었음. 로마 초기에는 이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 농사일을 하지 않고 시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며 놀러 다니는 시민의 비생산적 삶을 그리스의 여유에 빗댐. 그러나 국가가 강성해지고 노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로마에서도 육체노동이 낮은 평가를 받게 됨. 생산의 의무가 없는 시민이라면 부자는 물론 가난한 사람도 게으름을 피웠음
- 고대부터 술이 나쁘게 여겨진 것은 아님. 바빌로니아에서는 빈민들에게 먹을 음식과 마실 맥주를 배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 북유럽에서는 남자는 물론 여자와 아이들도 맥주를 많이 마셨다고 전해짐. 영국의 역사가 맘즈베리의 윌리엄은 음주는 보편적 습관이었음. 사람들은 밤이고 낮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셨다며 11세기 평민의 생활풍습을 설명. 종교개혁 이후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트가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짐. 프로테스탄트는 카톨릭보다 술에 엄격했고, 음주를 금지해 신자들이 욕망이나 게으름에 미혹되지 않도록 통제. 특히 19세기 영국에서 부상한 감리교는 자유와 즐거움을 인정하지 않았고, 당연히 음주도 받아들이지 않았음.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술을 마시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여러 문제가 생겨났음. 음주는 산업화의 걸림돌로 여겨졌음. 금주에는 정치도 의도도 섞였음. E.P.톰슨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영국의 술집이 부당한 노동조건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의 주요 모임 장소가 됐다고 설명. 그에 따르면, 19세기 말 시작된 금주운동엔 노동자들의 음주를 막아서 술취한 노동자들이 야기할지도 모를 위험을 미리 막으려는 의도가 포함됐음. 음주의 결과는 일을 못하는 게으름이었음.
- 영국에서 티타임이 생긴 것은 산업현장과 관련 깊음. 19세기 초 영국 노동자는 하루에 열다섯 시간 노동. 일의 강도가 떨어지는 오후 4시에 설탕을 넣은 카페인이 많이 든 홍차는 지친 노동자들에게 에너지를 보급하고 기운을 북돋우는 흥분제로서의 이중 역할. 일본 학자 가와키타 미노루의 설탕의 세계사를 보면, 산업혁명 이후 영국 도시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은 빵과 설탕을 넣은 홍차를 아침에도 먹음. 빠른 시간에 아침식사를 준비할 수 있고, 에너지 공급원으로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 한탄 기호식품이 세계의 역사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 영국에서 차를 마시는 습관이 널리 퍼지자 영국은 비싼 중국차의 수입대금을 결제하려고 식민지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몰래 들여갔고, 이에 분개한 중국이 조치를 취하면서 1820년 아편전쟁이 일어남.
- 인도에서 생겨난 불교와 힌두교는 물론, 중국의 유교는 게으름뱅이가 게을러서 가난뱅이라고 여기는 서구유럽과 다른 입장. 아시아권의 종교는 대체로 가난과 청빈을 나쁘게 여기지 않음. 인도에서는 구걸을 도를 닦는 한 방법으로 여김. 구걸하는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도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으로 인식. 불교가 다른 문화권에 전파되면서 구걸의 개념은 약간 달라짐. 구걸을 나쁘게 여기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나 구걸을 게으름의 한 형태로 판단
- 우리는 소비사회에 길들여짐. 모든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물질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음.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는 그 욕망의 윤활유로 돌아감.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먹고 오래살며 좋은 물건을 갖고 싶은 욕망을 위해 일하고 벌고 소비함. 특히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욕망함. 글로벌 기업들은 불안감과 손을 잡은 인간의 욕망을 간파하고 이용함
- 게으름이 세상의 모든 비난을 다 받고 노동과 근면이 칭찬을 독점하는 건 옳지 않음. 게으름의 장점은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것. 삶이 어디로 가는지 짚어보게 함. 자신이 낸 성과와 실수를 따져보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낼 시간을 줌. 여름날 풀밭에 누워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공격성을 키우는 사람은 없음. 말이 많은 사람이 말없는 사람보다 실수가 많은 것처럼, 인간과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바쁜 사람이 문제를 야기함.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이렇게 말함. "시간은 금이라는 말은 귀중한 시간을 쓸데 없이 사용하면 금전적 낭비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사용됨. 느림은 무능력이나 게으름을 뜻하는 것이 아님. 시간을 급하게 다투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느림은 게으름의 동반자임 느린 사람이 다 게으른 것은 아니지만 게으른 사람이 서두르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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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그들이 세상을 지배해왔다

저자
알랭 소랄 지음
출판사
갈라파고스 | 2013-01-0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금융권력, 제국의 지배는 계속될 것인가 국가가 반란을 일으킬 것...
가격비교

- 부르주아지는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 어디에서나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 환경을 모두 파괴했다. 연민의 감정이라곤 전혀 없는 그들은 인간을 우월한 자연적 존재에 연결시켜주던 여러 특성의 봉건적 관계들을 가차없이 차단시켰다. 인간과 인간사이에 철저하고 노골적인 이해관계, 가혹한 완전지급의 관계 이외에는 어떠한 관계도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신성한 전율의 감정과 경건한 열의, 기사도적 열정, 거친 자연에서 느끼는 우수, 이런 모든 것을 이기주의적 계산이라는 차가운 물속에다 용해시켰다. (마르크스)
- 대부분의 존경받는 주류언론들, 그리고 비주류 중에는 크라푸이요(1915년 1차대전 참전용사들이 직접 구상하고 편집한 잡지. 정치현안들을 풍자적으로 다루며 비판)가 시간이 갈수록 숨은 권력층이 일으킨 스캔들 정보들의 보도비중을 점차 줄이고 있음. 그 숨은 권력층이란 프랑스의 민주정체 위에 은밀히 군림하고 있는 프리메이슨임. 그 이유는 아마도 이제는 싱크탱크의 유형의 빌더버그, CFR, 트라이래터럴 커미션같은 새로운 프리메이슨 조직들 내에서 우리의 국가와 관련된 사항이 결정되기 때문. 이들은 초계급을 위한 세계적 차원의 조직들임. 지금 그 조직들에 돈을 지불하는 권력층은 과거의 권력층과는 달리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음. 하지만 마침내 용감한 언론인들이 그 권력층을 비판하려 함
- 이국가의 국민이 금융과 화폐 시스템과 관련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반대의 경우라면 제가 생각할 때 내일 아침이 되기도 전에 우리는 혁명의 상황과 마주할 겁니다. (헨리포드)
- 초기에는 왕권, 맨처음에는 왕이 직접 화폐를 찍어내는 권한을 지녔음. 그러나 세계가 농업경제에서 차츰 벗어나 자본주의 경제로 변화하면서 돈에 대한 통제권이 중앙은행의 정치권력을 이용해 경제적, 정치적 지배를 확대할 수 있는 열쇠가 됨. 그렇기 때문에 나누어 가진 권력이지만 일반인들의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 내에서 금융은 상하 질서를 역전시키기 위해, 특히 돈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음. 역사적으로는 중앙은행이 민영화되면서 금융이 권력을 장악했음. 그들과 공모하는 언론은 이를주고 중앙은행의 독립이라고 말하지만 그 의미는 중앙은행이 마침내 왕의 권력에서 벗어났다는 의미. 곧 중앙은행이 모든 권력과 정치적 통제력에서 벗어나기에 이름. 금융은 점차 모든 정치권력에서 해방되고 있고, 실제로도 중앙은행의 화폐량, 이자율 등을 조정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는 숨은 정치권력이 되고 있음. 이런 이유로 당연히 모든 사회적 제약에서도 벗어나고 있음. 공식적으로는, 그리고 언론이 보도할 때는 금융정책으로 인해 사회와 사람들이 받을 영향 곧 투기, 탈공업화, 공장이전, 실업 같은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건 항상 왕과 정치인들이었음.
- 본질적으로 인간을 제물로 삼고 추상적 숫자(사변)에 근거해 작동하는 금융은 모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제약에서 벗어났고(중앙은행의 독립) 나아가 정치나 언론의 무대에서 은폐되고 보호받고 있음. 돈이 정치와 언론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 이런 논리때문에 금융은 점차 완전한 약탈과 폭력의 근거지가 되고 있음. 그 경영진과 고위간부들의 이데올로기가 이런 폭력을 합리화하는 동시에 더욱 가중시킴. 그들은 대부분 인간을 폄하하는 구약의 불평등 주의를 받아들이며 인격이 형성된 사람들임.
- 중앙은행을 민영화한다는 것은 왕이나 근본적으로 왕과 같은 권력을 지닌 정치로부터 금융에 대한 권력을 빼앗아온다는 것을 의미. 이전에는 대규모의 공공투자, 즉 국가발전 계획을 실천하거나 인프라를 건설하거나 사회적 정치활동 등을 하기 위해 국가의 통제아래 국영은행이 돈을 발행한 다음, 이 돈을 무이자로 국가에 빌려주게 하던 권력이 정치권에 있었음. 이 돈은 완전히 새로 찍어낸 돈이지만 국가가 채권을 발행하며 그 가치를 보장했음. 그리고 은행이 순수한 예금과 투자를 위해 경영되던 때처럼 그 채권은 만기에 이르면 실제적인 부가 되었음. 국가는 이렇게 공공투자를 통해 실제적인 부를 만들고 여분으로 생겨난 통화량도 흡수할 수 있었음. 곧 인플레이션이 아닌 발전이 생겨난 것. 진정한 의미의 인플레이션은 정치권력이 선거를 위해 조폐기를 이용하기 시작할 때 발생함. 그리고 금융시스템에 아무런 변화도 가하지 않은채 그 시스템을 민영화하기 위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돈을 만들어내는 권한을 상업은행들에게만 부여하기 위해 이성이 동원됨. 그런데 중앙은행이 민영화되면서, 더구나 금융시스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국민들 몰래 민영화가 시작되면서 이제부터 모든 정부들은 개발정책에 필요한 돈을 자본시장에서 이자를 주고 빌려야 하는 상황.
- 1910년 이미 국가경제를 불안정하게 하던 금융권력층(1907년 금융공황)을 청산하려던 미국 의회는 은행들을 통제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대 금융가들인 록펠러, JP모건, 밴더리프(당시 뉴욕 내셔널시티은행장), 파울 바르부르크(유대계 은행가, 독일 함부르크 바르부르크가 출신)를 거쳐 유럽인 로스차일드로 구성된 비밀모임을 조직. 칼 마르크스가 처음 사용한 유명한 문구대로 닭장을 지키는 일을 여우에게 맡긴 것. 그 결과는 오래지 않아 나왔음. 1913년 12월 1차대전이 발발하기 1년여전에 우드로 윌슨(금융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독창성이 없던 인물) 정부때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창설됨. 은행의 은행인 이 기구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과 달리 준비제도도 아니었고, 연방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특별한 미국적 성격을 갖는 것도 아니었음. 오히려 10여개의 큰 상업은행들인 베어링, 햄브로서, 라자드, 에를랑제, 슈로더, 셀리그먼, 로스차일드, 모건, 록펠러가 세계적으로 형성한 카르텔이었음. 이 은행들은 당시 협력하며 영업하고 있었고 이때부터는 기축통화 달러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됨.
- 1913년 미 연방준비제도가 창설되면서 폭력적인 통제권과 전문적인 거짓 행태들이 펼쳐짐. 더불어 노동임금에 대한 과세제도가 생겨남. 이는 우연이 아님. 국가가 생산적 투자를 위해 무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권한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당연히 노동임금에 과세해야 했음. 노동임금에 대한 세금, 시간이 지나면서는 이른바 사회를 위한 세금으로 정의되는 이 세금은 순전히 금융이자를 지불하는데 사용됨. 약탈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약탈하는 금융이 국고와 국가를 매개로 시민노동의 결실을 강탈하기에 이른 것. 이때부터 달러에 대한 자유재량의 통제권을 가지며 권력을 쥔 금융은 1차대전이 5년 동안 이어진 것에 대한 책임이 있음. 모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대로 그 가상의 화폐, 허구이지만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화페가 대량공급되지 않았다면 당시의 금융제도 때문에 무작위로 찍어낸 것이 아닌 진정한 돈을 빌릴 수 없었언 참전국들인 프랑스, 독일, 영국은 원리금을 지불할 수 없어 적어도 2년은 더 빨리 전쟁을 종결했을 것임. 그리고 금융은 20년대의 조작된 번영과 논리적으로 이 번영에서 기인한 29년 금융위기에도 책임이 있음. 은행은 거품의 금융전략을 시행하며 대규모 액수의 돈을 대출하고 결과적으로 과다 채무사태를 일으킴. 이렇게 시민의 부를 부풀린 다음, 위기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그 부를 앗아가는 전략 때문에 대공황이 일어남. 당시 투기로 몰렸던 수백만의 소지주와 소기업인들은 파산했고, 이어서 천만여명의 임금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어 거리로 내몰렸음. 이런 일은 위기를 계획해 풀린돈을 다시 회수하며 이윤을 획득하는 금융만을 위해 발생했음.
- 어느 대통령보다도 금융에 복종한 대가로 당선되었던 우드로 윌슨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역사와 미국 국민앞에서 어떤 기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언급. 그는 그 기관이 창설된 것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며 짓눌릴만큼 큰 고통을 느끼고 있었음.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제 자신도 모르게 조국을 황폐화시켰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훌륭한 산업국가는 그들의 대출시스템에 따라 통제될 겁니다. 우리의 대출시스템은 민영화되어 있고, 이런 이유로 국가의 성장은 물론 우리의 모든 활동이 어떤 소수계층의 손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자신들에게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경제적 자유도 침해하고 파괴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문명화된 세계의 정부 가운데 가장 악한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된 정부, 가장 많은 통제를 받게 된 정부, 가장 크게 굴복한 정부 중 하나가 됐습니다. 더 이상 자유로운 여론의 정부, 다수에 의해 선출된 신념의 정부가 아니라 나라를 지배하려는 인간들로 구성된 어떤 작은 그룹의 냉정한 의지에 굴복한 정부가 된 것입니다."
- 링컨, 잭슨, 케네디처럼 제국 내에서 일어난 일이건 아니면 드골, 사담 후세인처럼 제국바깥에서 일어난 일이건, 역사는 우리에게 금융에 도전하는 자는 누구든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려줌.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내일은 아흐마디네자드(이란 석유부 장관)나 차베스가? 만일 그가 미국인이라면 목숨을 잃는 대가를 치러야 하고, 만일 그가 동맹국 소속이 아니라면 자신의 삶을 잃는 것과 함께 조국이 악의 축에 포함되는 걸 봐야 한다. 42년 히틀레에 맞설 공동작전을 마련코자 비밀리에 모인 미국, 영국, 소련의 참모들은 뉴욕의 연방준비은행 내 사무실에서 회의를 했음. 20세기 정치는 금융에 반대하는 자들을 악인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요약해도 과장이 아님. 또한 금융은 그 자신의 시스템을 지켜주는 최고 심급으로 미국 군사력을 두고 있음. 그래서 후세인이 03년 석유를 유로화로 거래하겠다는 안건을 내놓자 미 군대는 대량살상무기라는 그 유명한 위조증거를 내세우며 이라크에 폭탄을 퍼부음. 즉각 이 메시지를 이해한 OPEC는 의제에서 오일유로 사항을 삭제. 사담 후세인은 나치의 고위간부들처럼 교수대에서 생을 마감. 달러의 위상을 보호하고 이로써 연방준비은행의 특권을 보호하는 일, 최종적으로는 이런 일들이 미 제국 군대의 궁극적 임무. 금융은 새로운 과두정치로 이해할 수 있음. 그 소수지배층이 이자가 붙는 대출제도의 권한을 손에 쥐고 있고 이 제도자체는 거짓말과 폭력을 통해 유지되기 때문. 이 소수지배층은 르네상스 때의 지배층과 달리 결코 경제발전을 이룩한 적이 없음. 오히려 연방준비은행과 골드만삭스의 능력을 이용해 부를 창출하려는 모든 시도를 막아왔음. 이 계층은 순전히 기생하는 존재이자 고립되었어도 완전한 특권을 소유한 존재임. 이들은 과거의 지배층과는 다르게 더 이상 신의 존재도 내세우지 않음. 대신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경제합리성을 내세우고 통계수치의 효과를 아주 적절히 잘 이용. 특권을 가진 이 소수의 금융가들은 이런 방법으로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의 보편적 노동으로부터 이자를 거두어 살아감. 또 자금과 배타적 대출권을 가졌으므로 과거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특권을 내세우며 토지를 소유하고 농노들의 노동으로 살아간 귀족계급과 정확히 같은 성격의 존재임.
- 처음에 반카톨릭의 지향한 금융은 유럽 신정군주제에 승리를 거두기 위해 이성에 의지. 이어서 자신의 파괴적 공격전략 때문에 발전을 성취하는 동안 차츰 반인문주의적 본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게 됨. 시민평등은 그리스도교적 박애와 마찬가지로 금융의 본질적 원칙과 대립하는 것. 금융은 점차 이성과 계몽에서 등을 돌림. 그 이성과 계몽은 실제로는 금융이 지배자가 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이용한 것일 뿐. 그리고 오늘날 금융은 자유로운 부르주아니의 민주적 제도를, 이전에는 왕과 그리스도교적 신의 사회에 승리를 거두는 데 이용한 제도들을 명백히 청산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음. 자신들의 불균형한 논리 때문에 약탈할 공간을 새로 찾아야 하는 금융은 앞으로 인도와 중국 같이 일신교,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세계를 정복해야 할 것임. 이미 서구사회에서 성장할 대로 성장했지만 그 성장을 지속시켜야 하는 이 지배시스템은 이제부터 유라시아 지역과도 맞닥뜨릴 것임. 이 결과 45년 이후 미국이 일본에 그렇게 한 것처럼 그곳을 지배하거나 아니면 굴복할 것임. 아마도 중국과 대면할 경우에는 굴복하게 될 것임. 다른 한편 그 한정되고 포화된 현재의 공간내에서 금융이 택할 수 있는 일은 파산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금융시스템을 할 수 없이 포기하는 것. 서구사회의 국민들이 차츰 금융을 기생적 존재로, 불합리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 만일 전자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지배시스템이 붕괴하면서 소수 지배층은 사라질 것임. 만일 후자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금융은 일단 살아남음. 하지만 그 소수지배층은 오늘날과 같은 민족적이거나 문화적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불가능.
- 사회주의 투쟁은 바쿠닌, 프루동과 마르크스, 엥겔스의 대립부터 시작해 노동계층의 사회주의와 자본의 부르주아지의 대립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전문혁명가들을 조종하고 자금을 지원한 세계적 대자본들이 일으킨 싸움으로 이해해야 함. 이분법적 대립이 아닌 오히려 더 타락한 삼각투쟁임. 전문혁명가들은 대개 국제주의 경향이 있던 부루주아지 출신이었음. 부루주아지에 대항해서 노동자들이 단결해 이른바 투쟁을 벌인다고 선전하고 모호한 변증법 이론을 펼치던 그들은 돈을 받고 활동. 그들은 국경을 아랑곳 하지 않고 투기를 벌이던 상류층 부루주아지와 한곳에 정착해 활동하던 기업가들인 프티부루주아지를 전면적으로 혼동시켰음. 이렇게 함으로써 자본의 권력에 대항할 진정한 혁명적 힘을 지닌, 국내 프티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의 민중주의적 결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음. 신비화된 프롤레타리아와 삶의 터전에 뿌리를 내렸지만 부당하게 비판을 받은 중산계급, 세계주의 이념을 지닌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로 하여금 중산계급에 대항해 투쟁하도록 조종한 역사, 이 종과 공모의 역사가 노동운동의 숨겨진 역사임. 그러나 70년대부터 혁명적이라고 자처하던 국제주의자들이 세계화된 자유주의와 궁극적으로 결탁하면서 그 거짓과 국제주의자들이 세계화된 자유즈의와 궁극적으로 결탁하면서 그 거짓과 조작행위가 역사적 진실로 드러나게 됨.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통제하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정치적 자유를 위한 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미국에서는 신보수주의자들이라 불린 사람들의 지배 아래서 그 결탁이 이루어짐.
- 노마드적 자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음. 임금노동자들의 세계와 그 세계의 단체들을 어떻게 조종하건 간에 그 자본의 변치 않는 목표는 항상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넘어 중산계급을 청산하는 것. 중산계급이 독립적이고 권력에 저항하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 처음에는 세계주의적, 사회주의적 선동가들을 이용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중산계급을 상류층 부루주아지와 한 부류로 묶어 그 계급을 고립시켰음. 이렇게 함으로써 중산계급을 노동계급의 심판대에 올려놓을 수 있었음. 하지만 파리코뮌 이후 중산계급과 노동계급은 동일한 민중이었음. 특히 노동을 한다는 의미에서. 이어서 규모의 경제에 불가피한 인수합병 전략을 통해 중산계급을 임금을 받는 중산층으로 대체. 독립적인 소기업주들을 고분고분한 중견간부들로 만든 것. 끝으로 금융이 주도하는 금융위기를 이용한다면 아마도 완전하게 중산계급을 청산할 수 있을 것임. 금융과 공모하는 국가가 중산계급에 세금을 과잉부과하고 은행이 그 계급의 기업운영에 불가피한 단기대출을 끊으면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임. 생산활동을 하고 명철하며 독립적 중산계급을 이렇게 궁극적으로 청산하는 일은 본성상 고향을 두지 않는 자본이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모든 것을 청산하려는 제국의 프로젝트에 상응. 금융의 제국적 권력과 임금생활자들로 이루어진 대중들 사이에 자유롭고 의식을 지녔으며 독립적인 것은 결국 어떤 것도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임
- 기자의 일은 진실을 말살하고 주저없이 거짓말을 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황금의 소유자들 앞에서 천박해지고 굽실거리고 매일의 밥벌이를 위해서 결국 같은 뜻이지만 달리 말하면 봉급을 위해서 조국과 민족을 파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만큼 알고 있다. 그러니 누가 독립된 언론 운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장막 뒤에 서 있는 부유한 자들의 꼭두각시이자 가신들이다. 그들이 끈을 잡아당기면 우리는 춤춘다. 우리의 시대, 능력, 가능성, 생활이 그들의 것이다. 우리는 지적인 매춘부다. (존 스윈턴, 뉴욕타임즈에 작별을 고하는 연설 중에서)
- 저희는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즈, 타임 그리고 여러 큰 언론사들에 감사의 정을 느낍니다. 그곳의 경영자분들께선 40여년 전부터 저희가 모임을 갖는데 도움을 주셨고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도 어기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그 기간 동안 우리의 모임이 언론에 노출됐담녀 우리는 세계를 위한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세계는 세계정부의 시대로 진입하는 데 더 적합해졌습니다. 확실히 지저거 엘리트층과 세계주의 금융가들이 초국가적 주권을 갖는 오늘날이 한 국가와 그 국민이 독립적 결정권을 갖던 지난 세기들보다 바람직합니다. (데이비드 록펠러, 트라이래터럴 커미션, 1991)
- 프랑스 혁명에 의해서건 혹은 이것의 대체적 모델인 영국 입헌군주제에 의해서건, 서구사회에서 형식적인 권리의 평등만 존재했던 민주주의가 강요되어 생겨난 지 200년이 지났음. 결국 이 민주주의는 항상 다음의 두가지 것을 가리키기에 이름.
* 의회민주주의 : 프리메이슨이 교육하고 양성했고, 금전이 매수했거나 혹은 매수하고자 궁리하는 정치전문인들로 구성된 의회가 국민 앞에서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광경을 연출함.
* 시장민주주의 : 실정법을 통해 자본이 최대한의 자유를 갖는 것을 방임하는 체제. 이는 현실적이자 즉각적으로 자본에 완전한 권력을 부여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 금전 민주주의가 해결해야 할 유일한 문제는 어떻게 국민이 환상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가임. 국민은 시민평등 사상의 결실인 투표권을 갖고 있어 민주주의 체제의 알리바이인 동시에 중재자임. 국민으로 하여금 금전에 의한 불평등이 생기고 상업적 이데올로기를 따를 수밖에 없는 현재 체제가 과거의 다른 체제(신정군주제)나 다른 경쟁적 체제(공산주의, 파시즘)와 비교할 때 가장 평등하고 가장 자유롭기 때문에 가장 덜 해로운 체제라고 믿게 해야 함
- 지배전략의 측면에서 효율성 있는 일은 다음과 같음. 국민으로 하여금 시장의 권력, 궁극적으로 금융의 권력인 민주주의가 국민의 권력이라고 계속 믿게 하기 위하여 여론 민주주의라는 공감대를 산업적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 그리고 초기부터 금전과 이성을 은밀히 결합해 구체제를 쓰러뜨린 민주주의는 이후로도 모든 작업에서 이성이 금전권력의 이성으로 쓰이도록 유도. 먼저 모랄리스트, 문인, 지식인, 예술가 등 지성인으로 불리던 민주주의 전도사들인 그 이성적인 인간들을 조작하고 종속시키고 굴복시키는 작업이 진행됐음. 우리가 이미 보았듯, 혁명과정에 필요했던 이성으로 지성인들이 사제들에게 승리를 거두었음. 민주주의의 토대인 계몽의 이데올로기가 구체제의 토대인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승리를 거둔 것임.
- 지성인들 대신 방송인들이 부상하면서 필연적으로 시민은 소비자의 지위로 내려가게 되었음. 이때부터 지성인들의 지위를 차지한 방송인은 저항적 정신을 송두리째 뿌리 뽑음. 그리고 선배인 계몽에 의해 널리 전파된 이성의 특성을 하나씩 파괴하는 역할을 맡음. 그럼으로써 정보를 왜곡할 뿐 아니라 주체내면의 비판능력을 파괴할 것임. 볼거리를 이용해 이성을 슬그머니 파괴함. 이전에는 이 이성이 주체를 해방시켜 시민이 되로고 만들며 민주주의 사상이 종교권력에 승리를 거두는데 도움을 주었음. 그런데 이때부터 이성은 시장에 의해 시장의 지배에 불길한 것으로 간주돔. 이전에 그리스도교적 운명에 굴복하지 않은 프로메테우스적 희망과 의지의 도덕이 이렇게 욕망으로 대체되고 있음. 즉 우리는 충동적으로 욕망을 좇고 있는 것이다.
-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자유주의는 엘리트층, 즉 노마드적 초계급과 새로 지위가 향상된 계급에게는 유리하지만 경제적 측면이나(기업의 규제완화, 공장의 해외이전)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만연한 성범죄, 민족간 갈등) 서민에게 점점 가혹한 것이 되는 동시에 앞으로는 차츰 보안의 자유주의로 변화할 것임.
보안의 자유주의 : 자유주의 체제는 세계주의 부르주아지를 위한 것이고 국가를 약화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조장함. 나아가 보안체제는 국민에게 문제가 되는 범죄자나 범죄조직이 아니라 세계주의 엘리트층에 반항할 능력이 있는 임금노동자와 중산계급을 감시의 대상으로 삼음. 보안 자유주의 체제는 스스로가 유발시키고 계속 가중시키는 문제들(사회의 불안정, 시민의 불안)을 두세가지 형식적인 법을 통해 해결하는 척하지만, 결국 그 법들은 항상 시민들만을 처벌함. 왜냐하면 시민들은 벌금을 계속해서 지불할 수 있기 때문. 도로법규는 조직적인 강탈행위로 변했음. 공중보건이라는 명목으로 담배, 술과 같은 여러가지를 금지하는 일이 일반화됐고 소수집단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의사표현들을 검열하는 일이 증가했음. 보안체제는 임금노동자들을 감시의 대상으로 삼고 실제로는 최하위층과 약탈자들인 엘리트층의 범법행위는 결코 다루지 않음. 궁극적으로 경찰과 소비의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임. 이 세계는 우매한 소비자에 대해선 관용적이지만(성, 도박 등) 유럽 세계주의자들의 지휘 아래서 생산활동을 하는 시민에 대해선 억압적임(과잉규제, 수많은 영역에서 거둬들이는 세금과 벌금 등)
- 헬레니즘, 그리스도교의 인문주의를 도구화한 것, 네트워크들이 공화국을 대상으로 공작을 펼친 것, 계급갈등을 심화시킨 것, 여론 민주주의를 조작한 것. 지금의 모든 현상은 지배를 위한 히브리스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 무르익을 만큼 성장한 금융의 소수특권층에 의해 18세기부터 시작된 긴 과정이 마지막 지점에 다다랐음을 가리킴. 수많은 도정, 곧 베니스에서 시작해 프랑크푸르트와 런던을 거쳐 뉴욕에 이르는 도정을 통해 전달되고 계획된 프로젝트가 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님. 그런데 오늘날 그것이 완성단계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임. 두세기 이상 동안 비밀스런 작업을 진행한 이후 마침내 그들이 제 이름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 이 신세계질서를 통해 그 탐욕스런 소수특권층은 이제부터 부시부자와 같은 우파의 하수인들이나 로카르, 스트로스 칸 같은 좌파의 하수인들의 입을 통해 자신들의 손에 완전한 권력이 놓이기를 요구할 것임. 세계를 운영하는 일이 시민의 선거권보다 더 중요해지도록 요구할 것이고, 국가들이 해체된 자리에 생겨날 세계정부를 위기에 대한, 기근에 대한, 고의적으로 조장된 전쟁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며 세계정부의 존재를 요구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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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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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사라진 세계

사회 2014. 10. 12. 20:47

 


리더가 사라진 세계

저자
이언 브레머 지음
출판사
다산북스 | 2014-02-2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글로벌 리더십의 진공 상태, 세계 경제는 길을 잃었다! 제2차 ...
가격비교

-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국제적 영향력을 휘두른 최초의 근현대 국가는 사실 미국이 아님. 영국, 그리고 이후의 대영제국은 18세기가 동틀 무렵 이미 세계적 수준의 해상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었고, 1815년에 마지막으로 나폴레옹을 무찌르면서 이후 한세기 가까이 세계를 지배해왔음. 그리고 그 기간동안 영국은 세계적으로 유용한 공공재, 즉 누구나 사용하고 이익을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서비스들을 제공. 예를 들어 영국은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세력균형을 조율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기여. 그리고 자국의 독보적 해군력을 기반으로 국제항로를 확보해 나가면서 세계 경제의 개방화를 촉진했고, 자본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었으며, 금본위 제도를 확산하는 데 기여. 당시 영국 파운드는 세계 금융시장의 주요 준비통화로서 충분한 기능을 했음.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독일과 미국의 성장은 영국의 지배력을 약화시켰고, 유럽 국가들 간의 협력이 와해되면서 이는 결국 1차대전으로 이어짐. 그러나 세계적인 리더로서의 영국의 위상을 완전히 무너뜨린 사건은 2차대전이었음. 그리고 이 두번의 전쟁에서 연합군이나 적국 동맹들보다 타격을 훨씬 적게 입은 미국이 글로벌 리더 자리를 넘겨받을 만큼의 충분한 역량과 의지를 갖추고 국제무대에 등장. 그리고 이후 수십년에 걸쳐 미국은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
- 선진국들이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보다 일자리 창출과 무역수지 균형, 인플레 억제에 더 신경을 쓸 때라면, 항공모함이나 군대, 탱크보다 시장 접근성, 투자방식, 통화정책에 대한 통제력 같은 경제적 도구가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임. 분명한 것은 리더가 사라진 세계에서 각국 정부들은 석유와 가스, 금속, 광물, 심지어 농산물까지도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점. 천영자원 및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한 경쟁에서 산업스파이들이 정부의 비밀병기로 활약하면서, G제로의 세계에서 중대한 세력 싸움은 실제 전쟁터가 아닌 사이버 공간에서 더욱 자주 일어나고 있음. 동시에 신흥국들은 금융, 이동통신, 인터넷 표준 시장에서 서구사회의 기존관념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으며, 각국 정부들은 국경을 초월해 일어나고 있는 아이디어, 정보, 인재, 자금, 상품 및 서비스의 흐름을 국가 차원에서 다시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음.
- 이제 우리는 그동안 알고 있던 세상으로부터 아직 상상하기 힘든 세상으로 이동하고 있음. 그리고 이러한 어마어마한 변화 뒤에는 반드시 거대한 후폭충이 따르기 마련. 물론 이러한 변화의 시기는 언젠가 끝이 날 것임. 선진 세력과 신흥세력들간의 불신과 반목은 분명히 수많은 심각한 문제들을 양산할 것이기 때문. 앞으로 10여년 동안 몇몇 신흥국들은 선진국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려 할 것이고, 다양한 문제들이 야기하는 혼란상황으로 인해 강대국들 간의 동맹처럼 새로운 차원의 협력을 만들려 할 것임. 만약 그러한 협력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앞으로 벌어질 혼란은 자원과 지역 내 세력을 둘러싼 분쟁을 심화시키면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을 것으로 보임
- 미국의 지배체제는 유럽에서는 독일,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군부세력 부활 가능성에 대한 인극 국가들의 우려를 덜어줌. 그리고 일본과 독일도 국방에 지출해야 하는 엄청난 비용부담을 덜 수 있었음. 그 결과, 일본 역시 독일과 마찬가지로 10년 만에 경제의 발전소로 떠오를 기회를 잡았음. 40년대 후반 미국정부는 일본의 산업적 잠재력을 되살리기 위해 하루 평균 100만달러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음. 56년에 이르러 일본 정부는 그들의 국민들이 전후 재건의 시절에서 벗어났다고 선언. 60년대 후반 일본은 연평균 11%의 성장률을 기록. 그리고 68년 서독을 제치고 세계 두번째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으며, 2010년에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그 자리를 지킴. 일본의 재건은 성공적인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만은 아니었음. 일본 경제산업성은 다양한 차원에서 자국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 중국이 지난 몇년간 보여준 통화정책과 상당히 유사하게, 당시의 일본은 엔회를 달러에 비해 고의적으로 낮게 고정해 놓음으로써 수출산업을 장려. 20세기중반 여러 총리들과 더불어 경제산업성 고위관료들은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함. 일본의 도약은 전통적 아시아 제국들도 서구의 자본주의적 가치를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하게 입증. 일본이 점차 강력해지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헤게모니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 오늘날의 중국 정도는 아니겠지만, 당시 일본의 경쟁우위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비교적 조화를 이루는 정치적, 경제적 체제에서 나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전후 미국의 영향력에서 어느정도 벗어났지만, 그래도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가치는 이들 국가의 이익과 여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음. 75년에 미국, 일본, 영국,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의 선진국들은 G6를 이루었고, 1년뒤 캐나다가 합류. G7 내부의 경제적, 문화적 경쟁구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유시장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과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집단적 공포심을 바탕으로 확고한 목표를 공유하고 있었음.
- 사실 OPEC은 초기에 국제적으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음.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유전들이 계속해서 발견되는 가운데, 서구기업들이 그 이익의 상당부분을 가져갔고, 결과적으로 유가의 상승은 개도국이었던 산유국들에게는 정작 많은 부를 가져다주지 못했던 것. 그러던 중, 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간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OPEC은 처음으로 석유 통상금지 조치를 발동했고, 이는 큰 혼란으로 이어짐. 하지만 이를 계기로 그 카르텔의 위상은 높아지기 시작. 60년대에 걸쳐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일일 생산량을 1300만 배럴로 높였으며, 이는 그 10년 동안 전세계 소비 석유 증가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양이었음. OPEC회원국들은 그들의 영토안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서구기업들로부터 이익의 더 많은 몫을 요구하기 시작. 그리고 72년에는 카타르와 인도네시아, 알제리, 리비아, 아랍에미리트, 나이지리아까지 OPEC에 가입. 급기야 석유를 둘러싼 생산국과 소비국의 역학관계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 71년 3월 텍사스는 이미 최대 생산량에 도달했고, 이제 생산량을 늘려서 가격상승을 저지하는 시도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됨. 당시 미국의 하루 석유 수입량은 320만 배럴 정도였으며, 이후 5년 동안 그 규몬느 거의 2배로 뛰었음 그리고 OPEC은 석유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게 됨. 매년 OPEC의 생산량 합의는 유럽과 미국에서 석유 및 휘발유 가격 안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 73년 10월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의 분쟁인 4차 중동전쟁은 OPEC이 또 다시 자신들의 무기를 시험해보는 계기가 됬고, 이는 다시 한번 전환점으로 작용. 그 과정에서 OPEC회원국들은 그들이 강대국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음.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의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OPEC 회원국들은 미국에 대한 석유 수출량을 줄였으며, 세계시장 전체적으로도 점차 그 공급량을 줄여나감. 전쟁과 통상금지가 시작되기 몇주전 배럴당 2.9달러였던 석유가격은 그해 말에 무려 네배로 뜀
- 미 정부가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밀어붙였던 세계화의 흐름은 미국의 세력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신흥세력들의 성장을 자극. 그리고 이들 개도국 지도자들은 국제정치 무대에 살짝 올라서봄으로써 보다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다소 느슨한 형태의 협력을 맺었음.이 국가들은 국제적 영향력을 갖기를 원함. 그리고 자신들이 이룩한 경제발전의 성과가 세계무대에서 보다 정당하게 대접받기를 바람. 하지만 이런 신흥세력들은 글로벌 리더십에 따르는 위험과 부담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음. 다만 자국의 경제발전과정에서 각각의 단계에 대처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임. 이런 소극적 태도가 바로 G제로 세계의 핵심적 모습
- 아시아에는 강력한 국가들이 너무 많은 반면, 협력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 향후 중국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겠지만, 인도 역시 2인자에 머무르기에는 너무 덩치가 큼. 게다가 일본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높은 나라들 중 하나이고, 한국은 주도적인 신흥세력이며, 인도네시아는 경제적 외교적으로 중요한 존재로 떠오르고 있음. 아시아 지역들에 있어 분쟁지역과 세력다툼보다 더 핵심적인 문제는, 많은 국가들이 미국과의 안보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무역관계를 확대하고자 한다는 사실. 그러나 이러한 노선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음. 경제적 영향력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중국이 그런 나라들에 더욱 압박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비자 시장이 힘을 얻고 있는 반면 미국인들의 구매력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그리고 중국과의 무역관계를 확대해나가기 위해 서두르고 있음. 실제로 신화통신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의 최대무역 교역국이자, 단일 최대 수출시장 자리를 차지. 그리고 2010년부터 아세안 회원국들과 중국간의 협정이 발효되었는데, 여기에는 역사상 그 어떤 무역협정들보다도 많은 인구가 포함되어 있음.
- G제로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식량문제는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세계적 경쟁으로 인해 그 권력이 소비자로부터 생산자로 넘어가는 데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음. 이런 권력주체의 변화가 다양한 형태의 식량보호주의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 사실 이런 현상은 이미 시작됐음. 07~08년 사이에 콩을 포함한 곡물가격이 3배로 뛰었을 때, 러시아와 아르헨티나는 밀의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국내가격을 낮게 유지해 자국의 식량공급을 안정화하고자 했음. 그리고 곡물을 수출하는 다른 나라들 역시 비슷한 정책을 폈음. 동남아의 쌀 공급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베트남은 수개월에 걸쳐 쌀 수출을 전면 중단한 바 있음. 이에 빈곤하고 주로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국가들은 혼란에 빠져, 어떻게든 곡물을 들여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음. 이처럼 곡물수출국의 정부들은 자국내의 공급부족 사태와 사회적 혼란을 우려하여 수출을 중단하기도 함. 중국과 한국, 사우디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은 안전한 식량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그중 특히 아프리카에서 농지를 매입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회적 혼란과 지역간 마찰을 자극하기도 함. 식량부족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옆 동네 주민들이 다른나라로 수출하기 위해 곡물을 트럭에 싣는 모습을 목격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짐. 예를 들언 08년 대우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에서 벨기에 국토의 절반에 이르는 농지를 임대해 옥수수 경작 사업을 시작하자, 지역사회의 분노가 고조됐음. 그리고 이는 결국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기여. 2010년에는 심각한 가뭄으로 주요 곡물생산국인 러시아가 수개월동안 곡물의 전면적 수출중단을 발표. 러시아 농민들은 해외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고, 국제곡물가격은 크게 상승했으며, 식량문제는 세계 곳곳에서 더욱 심각하게 불거졌음. 식량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선거기간 동안 사회적 동요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이러한 수출중단의 주된 이유였음. 이로 인해 러시어에서 곡물을 수입하는 국가들 중 하나인 모잠비크에서는 무시무시한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했음.
- 오늘날 러시아는 1차대전 이후 외세로부터 가장 여유로운 시절을 즐기고 있음. 러시아 정부에는 구소련 영토에 걸쳐 세력을 다시한번 집결해야만 하는 경제적이고 전략지정학적인, 그리고 국내의 정책적 이유가 있음.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와 더불어 우크라이나를 관세동맹에 합류시키기 위한 푸틴의 끈질긴 노력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 G제로 시대 초기에 서구국가들은 러시아의 이러한 움직임에 개입할 여유가 없을 것임. EU는 주변국들을 경제저긍로 지원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어, 러시아의 그림자 국가들을 새로운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으로 보임. 게다가 많은 유럽국가들을 에너지 수입의 상당부분을 러시아에 기대고 있음. 08년 부시행정부가 러시아와 조지아간의 전쟁에 실질적으로 아무 개입도 할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 오랫동안 미정부는 러시아의 세력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간섭하기 힘들 것임. 이는 러시아에게 있어 G제로 시대의 긍정적 측면임. 이에 반해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러시아 정부와 기업들이 중앙아시아에서의 주도권과 상업적 계약들을 놓고 중국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점은 부정적 측면임. 그리고 터키나 카자흐스탄 같은 중심축 국가들이 점점 세력을 키워가면서 러시아의 움직임을 크게 제한할 것임. 국내적 요인을 살펴보면, 세계 석유가격과 그것이 러시아의 재정건전성에 미칠 영향은, 앞으로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안정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임. 유가하락은 러시아 경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내부세력들 간으 파벌싸움을 자극할 수 있음. 반면 유가가 상승하면 현재의 엘리트 체제가 더 공고해지고, 정책 결정자들은 석유와 가스 추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 상황에서 다각화된 산업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늦추게 될 것임. 다시 말해, 단기적 승리가 장기적 실패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음.
- G2 공조체제는 그다지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아님. 첫째, 중국은 G2를 원치 않고, 나중에라도 그러한 역할을 맡으려 할 것으로 보이지 않음. 더욱 책임있는 역할을 맡으라는 국제사회의 최근 요청에 대해 중국 정부는 두가지 측면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음. 우선 30년 이상 지속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아직 개도국에 불과하며, 이에 따른 약점과 문제점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주장. 복잡하고 불안정한 다음의 경제개발 단계를 앞두고, 중국 지도부는 너무도 많은 장기적 과제들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책임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고 함. 다음으로 중국은 국제정치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미국이 정의하도록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음. 최근 많은 국가들이 G2체제를 기대하고 있지만, 중국의 생각은 다름. G제로 시대의 위기들도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음.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두 세력들 사이에 지속가능한 다차원적 협력관계가 형성되었던 전례는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두 세력이 전혀 다른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낮아짐. 중국이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단행하거나 국가자본주의를 포기해야만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장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임. 그리고 중국은 개혁과 변화가 실패한다면,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비난의 대상을 찾으려 할 것이고, G2 체제의 유지는 더욱 힘들어질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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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정부: 미래사회편

저자
이리유카바 최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08-04-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계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는 그림자정부의 음모와 야욕을 파헤쳐 ...
가격비교

- 결국 이야기의 초점은 래리 베이츠가 말했듯이 전세계의 경제권을 불과 몇 사람이 쥐고 있다는 사실. 그들은 돈을 많이 풀어 모두가 흥청망청 즐기도록 하다가 다시 거두어들임으로써 반복적으로 공황을 조작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농락당해 파멸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고, 전쟁을 일삼는 양측에 돈을 대주며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임. 과거에는 경제권을 장악한 엘리트들이 국가단위로 이런 계획을 세웠으나, 1,2차 대전을 거쳐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한 국가를 과거의 개인회사 정도로 여기게 됨. 그래서 그들의 공작단위는 국가가 아니라 전세계로 확대된 것.
- 우리가 아는 범위내에서 환전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미로마의 줄리어스 시저때부터 환전꾼들과의 세력투쟁이 있었으며, 시저는 환전꾼들에 의해 희생됨. 시저가 살해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암살당한 이유는 별로 알려지지 않음. 기원전 200년 경 이미 로마에서는 2명의 황제들이 환전꾼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고리대금업 금지법을 만듬. 그런데 이 황제들이 모두 암살당함. 시저는 당시 유일한 화폐였던 동전 만드는 권리를 환전꾼들로부터 되찾아 정부가 직접 관리하게 함. 그리고 그동안 환전꾼들에게 돌아가던 막대한 이익금으로 콜로세움 같은 거대한 공공건물을 세우고 상하수도 시설을 설치하는 등, 로마인들의 생활향상에 힘썼음. 그 결과 일반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은 반면 환전꾼들로부터는 미움을 샀던 것.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바로 이 때문에 시저가 암살당했다고 주장. 그리하여 우리가 아는 사실은 시저가 죽고 나서 동전을 만드는 권리가 다시 환전꾼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부패가 만연했다는 것, 환전꾼들이 통화량을 90%까지 줄인 결과, 로마인들은 많은 땅과 재산을 잃게 되어 가난해졌다는 것. 즉, 환전꾼들이 경제공황을 조장했던 것. 이런 일이 있은 후로 로마에는 정부의 고관들을 불신하는 풍조가 생기게 됨. 이처럼 로마인들이 정치가들의 허황된 소리에 동조해주지 않은 것이 결국 로마가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 근본적 이유가 되어, 우리가 말하는 소위 암흑시대가 시작됨
- 유대인이 살던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였음.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의 신앙을 괴상하다고 여기며 몹시 싫어함.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태양신을 신봉해왔기 때문. 유대인들이 신을 모시고 종교행사를 갖는 신전에는 로마황제의 흉상이 새겨져 있는 로마은전을 갖고 들어갈 수 없었음. 마귀를 섬기는 사람들의 우상이 새겨진 돈을 어떻게 신성한 신전에 들여놓는단 말인가. 유대인들은 그러한 행위가 신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생각. 그래서 유대인들은 신전 밖에서 그들이 만든 다른 은전으로 바꾸어 지금의 세금에 해당하는 봉헌을 하도록 자체적으로 법을 만들었음. 그리하여 유대인들 중에서 금은 세공기술자들이 은전을 만들고, 신전을 방문하는 다른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가서 로마은전을 지불하고 그 가격만큼 유대은전을 구입하게 됨. 그때 금은 거래상들이 로마은전과 같은 양의 은으로 유대은전을 만들어 교환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임. 하지만 그들은 훨씬 적은 양으로 만든 은전을 바꾸어 줌으로써 많은 이익을 남기게 되고, 결국 부자가 되어 시장을 독점. 여기에서부터 환전꾼이라는 호칭이 생김.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가 성전에 들어가 처음으로 완력을 사용하여 환전꾼들의 상을 뒤엎고 그들을 내쫓으며 강도에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옴. 이렇게 환전꾼들은 고대에서부터 사회의 거머리며 남의 재산을 앗아가는 강도와 같은 존재로 여겨져 왔음.
- 부분지준은 제도는 있지도 않은 돈을 빌려간 고객이 사회에 유통되는 돈을 긁어모아 은행에 바쳐야 하는 것으로, 사기성이 농후한 제오. 또한 결과적으로 일반 대중을 가난하게 만드는 처사일 뿐만 아니라 남의 돈으로 부를 챙기는 매우 부도덕한 상행위. 한편 중세 금거래상들은 이미 시중에 유통되는 돈을 때때로 넘쳐나게 또는 부족하게 만들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 금거래상들은 돈을 많이 만들어 쉽게 빌려쓰게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상업행위를 활발히 하게끔 했다가, 어느 시기에 가서는 갑자기 돈을 거두어들이고 융자받기 어렵게 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취함. 시중에 돈이 귀해지면 융자를 받은 이들은 장사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만큼 빚진 돈을 갚기도 어려워지므로 돈을 빌려준 금거래상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됨. 그러면 금거래상은 약속 불이행을 문제삼아 상대의 담보물을 헐값으로 빼앗는 것.
- 17세기 말엽에는 영국이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한 처지에 있었음. 50여년에 걸친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전쟁으로 국고를 탕진한 영국 정부는 다급해진 정황을 타개하고자 환전군들과 타협하게 됨. 이때 환전꾼들은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개인 소유의 중앙은행을 만들어달라고 요구. 자신들이 정부의 제재를 받지 않고 화폐를 발행하기 위해서였음.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세계 최초의 개인소유 중앙은행. 이런 과정에서 국민들 앞에 입장이 곤란해진 정부는 개인 소유의 중앙은행을 마치 정부기관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고심. 그 결과 영국은행이란 명칭을 붙임. 그리하여 여느 개인기업과 마찬가지로 영국은행도 주를 팔기 시작. 그러나 다른 개인기업과 차이점은 투자자가 누구인지 밝ㅎ지 않았다는 것. 또 당시 총 125만 파운드의 금전이 필요했으나 거둬들인 돈은 75만 파운드에 불과했다는 것. 그런데도 영국의 이 중앙은행은 1694년 정식으로 의회 심의를 통과한 국법에 의해 창립됨. 이때부터 영국은행은 실제 갖고 있는 돈의 몇배를 융자해주고 이자를 받는 사업을 시작. 그리고 이런 권리를 특정 개인에게 부여한 정부는 재정이 부족할 때면 언제나 중앙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음 이렇게 빌린 돈을 갚는다는 보증으로 국민들의 세금을 내세웠던 것
- 독일이 히틀러 지도하에 눈부신 국가산업을 일으키고 있을 때 미국의 국민들은 소위 대공황을 맞아 헐벗고 굶주렸다는 사실. 29년 미국 뉴욕증시가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사상 유례없는 경제대공황 때문에 북미대륙 전체가 직업을 얻기 위한 방랑객들인 호보라는 거지아닌 거지들로 가득 찼으며, 그 당시의 비참한 모습은 한국전쟁 직후보다 더 심할 정도였음. 이처럼 로스차일드는 명실공히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의 주요 국가들과 미국에 각각 책임자를 지정해 그들을 재벌로 만듬. 그리고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은 자원을 공급하고 생산품을 소모하는 지역으로 여김. 남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세실 로드라는 사람을 보내 다이아몬드 광을 위주로 막대한 돈을 벌고 정치권을 장악하게 함으로써 원탁회의(누상정부 조직 가운데 하나)의 주동자로 삼음. 한편 남미에서는 미국 사업가들을 앞세워 점령시켰으며, 각국의 중앙은행을 모두 소유하게 만듬. 더욱이 로스차일드는 이스라엘 건국의 기둥일 뿐 아니라 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건국에 필요한 모든 재정적 도움을 주었고, 그후로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임. 특히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조직으로 손꼽히는 모사드(이스라엘 비밀 첩보국)의 예산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음.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케네디가 두형제의 암살을 자행. 다음과 같은 일화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권력규모를 짐작케 함. 프랑스에서 남작이 된 야콥 로스차일드는 파리 동부 쪽 교외에 페리에라는 이름의 거대한 저택을 지음. 이를 보고 독일황제 빌헬름 1세는 "왕도 못가질 저런 거대한 궁전은 로스차일드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평했으며, 19세기 후반 한 프랑스 논평가는 "유럽에는 단 하나의 권력이 존재할 뿐이다. 그 권력은 로스차일드다"라고 말하기도 했음
- 일개 식민지인 미국에서 제대로 된 화폐의 역할을 터득한 것에 긴장한 나머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미국의 지폐 제도를 없애버려야 겠다고 생각. 그렇지 않으면 유럽 각국에서도 미국의 사례를 따르게 될테도, 그에 따라 자신들이 조종할 수 있는 범위도 크게 좁아지리라 판단. 그 결과 1764년 영국 의회는 식민지에서의 자체적인 화폐발행을 금지하는 화폐법을 서둘러 통과시킴. 아울러 식민지가 영국에 내는 세금도 금전이나 은전으로만 지불하도록 명령. 이는 곧 금본위 제도로의 강제환원을 의미. 환전꾼들은 그렇게 해야만 식민지 미국의 자립을 사전에 막을 수 있으며, 미국의 지폐제도가 유럽의 다른 나라에까지 미칠 영향도 차단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이러한 영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프랭클린은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 만일 영국 정부가 식민지인 미국의 자체 화폐 발행권을 앗아가지 않았다면 식민정부는 차 등 다른 품종에 대한 세금제도는 기꺼이 낼 용의가 있었음. 그러나 화폐법에 의거한 영국의 조치 때문에 식민지에서는 많은 실업자들이 양산되어 그들의 높은 원성을 샀음. 이처럼 조지 3세와 국제금융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한 우리 자신의 돈을 만들 수 없게 된 일이 미국 독립전쟁의 주원인이 되었던 것임.
- 잭슨이 비록 사설 중앙은행을 분쇄하긴 했어도 그 뿌리마저 없애지는 못함. 환전꾼들의 가장 유용한 무기인 부분지준은 제도는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주 단위 은행에서는 여전히 가진 돈의 몇배를 융자해주고 이자를 받는 악덕 고리대금업을 계속할 수 있었음. 이러한 환전꾼들의 장난은 곳곳에서 경제불안을 초래. 그나마 미국에는 전국을 관장한느 중앙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남북전쟁이 있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번영을 누림. 그러는 동안 다시 묵가의 중앙은행을 만들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던 환전꾼들은 마침내 가장 강력한 수법을 쓰게 됨. 전쟁을 부추겨 각 정부로 하여금 갑작스럽게 돈이 필요하도록 만들고 양쪽 정부에 돈을 꾸어준 뒤 노예로 만드는 공작을 펴기 시작. 그러면 환전꾼들 소유의 중앙은행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세워질 수 있었던 것.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역사가 바로 남북전쟁임
- 미국 지명을 살펴보면 프리메이슨과의 연관성이 좀더 확실해짐. 먼저 뉴욕이란 지명은 흔히 연상되듯 영국 요크지방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세운 새로운 도시란 의미가 아니라 프리메이슨인 요크 라이트가 건너와 새로운 근거지로 삼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 다음으로 수도 워싱턴의 D.C는 District of Columbia라고 하여 컬럼비아 지역이라는 의미. 이 명칭은 프리메이슨의 한 계파로 현세대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일루미타니의 컬럼비아파라는 이름에서 기인. 다시 말해 미국이라는 국가관념보다 컬럼비아라는 조직의 통치지역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물론 이 통치지역이 바로 전 미국의 수도이므로 결국 미국을 통치하는 곳이란 의미로 해석됨
- 미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독일 비스카르크는 이렇게 말함. 미국을 분단하여 비슷한 세력의 연합체를 만든다는 결정은 실제로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유럽의 막강한 금융세력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 금융가들은 미국이 초대형 단일국가로 유지되면 세계의 경제 금융권을 독점하여 자신들의 영역까지 위협할 것이라고 염려했던 것이다.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난 약 한달후 환전꾼들은 프랑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에게 2억 1천만 프랑의 돈을 주어 멕시코로 진격하도록 했음. 그리고 자신들의 원하는 막시밀리안을 멕시코 황제로 즉위시킨 뒤 미국 남단에서 진을 치도록 함. 그와 동시에 영국은 2만 3천 명의 병력을 캐나다에 투입하여 미국 북쪽 국경에 집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 해군 함대에 비상대기 명령을 내림. 링컨은 이처럼 남북전쟁을 일으킨 배후세력이 누구인지 간파하고 있던 터라, 남부에 대한 북부의 승리만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일미국, 통일미국을 강조.
- 링컨이 남부의 해상을 봉쇄하여 영국과 프랑스의 참여를 막는 데 성공한 것은 틀림없으나, 이를 이용하여 막대한 돈을 번 무리들가지는 어떻게 하지 못함. 그래서 당시 민간인의 신분으로 배를 여러척 소유하고 생필품을 밀수하는 이들이 생겨남. 그들 중 대부분은 북측의 해군에게 저지당해 통과하지 못했으나, 일단 통과된 밀수품은 엄청난 이익을 가져옴. 그렇게 해서 남북전쟁으로 일약 거부가 된 사람으로는 토머스 하우스가 유명. 그의 아들 만델 하우스는 장차 우드로 윌슨을 대통령직에 앉혀 놓고 꼭두각시처럼 조종하여 마침내 1913년 국제금융가들이 염원하던 중앙은행인 연방지급준비제도를 만드는 데 성공. 그로써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을 몇 개인이 소유하게 되고, 미국과 전세계를 무대삼아 경제공황과 붐을 마음대로 조작하게 됨
- 링컨대통령의 남부해상 봉쇄는 당장은 실효를 거두었지만 사실 실패는 시간문제였음. 선박 제작력과 강한 해군력을 자랑하는 영국과 프랑스가 링컴의 해상봉쇄를 물리치고 남부를 위해 전쟁에 참가한다면 북군에게는 전혀 승산이 없었음. 그래서 링컨은 유럽에서 동맹국을 찾아야 한다고 믿음. 그러한 처지에서 볼 때 동맹국으로 러시아보다 더 적절한 나라는 없었음. 러시아는 유럽국가인데도 중앙은행이 없었고 국제금융가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미국의 입장에 동정적이어서 1861년 7월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국 외무장관에게 러시아 황제의 각별한 위로의 뜻을 전하고 도움을 제의한 바도 있었음. 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를 충분히 막아낼만한 해군력도 소유하고 있었던 것. 그러나 링컨은 러시아의 국민들에게 미국을 돕고자 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음. 그리하여 러시아 황제가 1861년에 공포한 러시아의 농노해방선언에 맞먹는 미국의 노예해방선언을 서둘러 공포하고 러시아 인민의 동조를 구했던 것.
- 링컨의 돈에 대한 정책은 주효했음. 그래서 풍부한 자금력으로 북군은 전쟁에서 계속 승리했고, 이에 힘입은 의회는 1863년에도 정부가 그린백을 발행하는 일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던 것. 그리하여 링컨은 정부소유의 중앙은행을 창설해 돈을 발행하도록 함으로써, 정부가 완전히 통제가능한 이자없고 빚없는 화폐를 발행하게 되었음. 그린백은 계속 통용되면서도 그 통화량이 늘어나지 않아, 인플레 없이 안정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 또 가장 중요한 점은 이때부터 미국의 화폐공급이 완전히 이자도 없고 빚도 없는 유가증권, 즉 정부공채의 발행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 이에 대해 미국 역사가 갤브레이스는 다음과 같이 평했음. "연방정부는 전쟁이 끝나고도 여러해 동안 계속하여 대규모의 흑자재정을 유지했음. 하지만 공채를 모두 거둬들이거나 다른 빚을 청산할 수는 없었다. 빚을 모두 청산한다는 것은 정부권을 화폐로 뒷받침하는 공채가 사라졌다는 뜻이며, 빚을 모두 갚는다는 것은 화폐공급을 파괴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여하튼 미국의 화폐제도는 1875년 금태환법령의 제정으로 변화를 맞게 되었음. 그 법령은 그린백이란 지폐를 금으로 바꾸어주는 것으로, 1879년 1월 1일부터 그린백을 갖고 은행에 가면 금으로 교환할 수 있게 된 것. 그후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이 중지시킬 때까지 그 법령은 계속 시행되었음.
- 남북전쟁 이후에도 링컨의 의도대로 그린백 정책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심한 경제침체를 피할 수 있었을 것임. 하지만 그 대신 통화 수축정책을 펼침으로써 의회로 하여금 은행 중앙통치 제도로 바꾸는 법안을 만들도록 압력을 가하게 되었고, 이런 정책은 마침내 1913년 연방지급준비금제도라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결과를 낳았던 것. 당시 환전꾼들이 원한 것은 두가지였음. 하나는 중앙은행을 완전히 그들의 소유로 만드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화폐제도를 금본위 제도를 환원시키는 일이었음. 그들은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중작전을 펴기 시작. 첫번째 방법은 반복적으로 경제공황을 야기시켜 미국국민들에게 환전꾼들이 관장하는 중앙은행이 있어야 경제가 안정될 수 있다는 사고를 심어주는 것이었고, 두번째 방법은 시중에 통화되는 돈을 거둬들여 전 미국을 극심한 빈곤상태에 몰아넣음으로써 정치에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나 중앙은행 설립에 반대할만한 기력을 빼앗는 것.
- 만일 사회주의가 부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부를 통합하여 통제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초특급 부자들이 사회주의를 지원한다는 것이 패러독스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임. 또한 이 모든 것의 숨겨진 이치를 순식간에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사회주의자 권력을 잡으려는 과대망상증에 걸린 자들의 완벽한 도구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임. 공산주의, 좀더 정확하게 사회주의라 부르는 것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핍박받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운동이 아니라 경제 엘리트들이 만들어낸 운동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함
- 자본주의 금융세력은 자신들의 힘이 구석구석 미치도록 계획을 세우고 있음. 그들의 계획은 바로 절대적인 세력으로 각 나라의 정치체제를 통솔하고 전세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만들 수 있는 세계 단일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이 세력은 봉건시대 절대군주의 통치방법대로 중앙은행을 통해 수많은 비밀회담을 벌이면서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세계 정사를 지휘하고자 함. 이 세력의 정상에는 스위스 바젤의 BIS가 군림. BIS는 사설 회사인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로 구성된 개인은행. 그리고 각 중앙은행은 소속된 국가의 경제활동 척도를 조정하는 외환거래 관리 권한을 갖고 여신업무를 통솔함으로써 해당 국가의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이에 호응하는 정치가들에게는 그에 응당한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대신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임.
- "연준은이 창설된 이후 통화량과 물가의 생산량은 그 이전보다 확실히 안정적이지 못한 편이다. 가장 불안정했던 때는 물론 1920~1921년, 1929~33년, 1937~38년의 통화수축을 포함하는 2번의 큰 전쟁의 시기다. 미국 역사상 20년이란 기간 동안 이렇게 3번이나 극심한 통화수축을 겪은 적은 없었다. 이런 현상은 1차세계 대전 중이나 그 직후 일어난 물가상승의 최소한 3분의 1에 대해서 연준은에 그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며... 3번에 걸친 통화수축의 심각도는 항상 연준은에 의한 일련의 조치에 기인한 것이었다. 어떠한 제도에서건 소수의 특정 개인에게 그러한 막중한 권리와 재량권을 주게 되면 이유야 어떻든 이는 옳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된다. 정치 체제 관행상 올바르게 점검되지 않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권한을 주기 때문이며...이것이 중앙은행에게 독립된 주권을 줄 것이냐 아니냐 하는 갑론을박 정치 토론의 가장 웅요한 초점인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프리드먼-
- 돈이라는 것은 중앙은행에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물건이다. -클레망소-
- 미국은 6조달러가 넘는 정부부채가 있지만 수년내에 이 빚을 다 갚고 인플레나 디플레도 없고 실업자들이 없는 낙원을 만들 수 있다고 보는 타락하지 않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있음. 과거 링컨 대통령이 보여준 것처럼 이자를 지불하는 공채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에 이자없는 화폐를 직접 정부가 찍어내는 것이다. 물론 돈만 찍어내고 현재의 부분지준은 제도를 유지한다면 어마어마한 인플레를 조장하게 됨. 이에 대해 프리드먼은 어떻게 인플레나 디플레 없이 국가의 부채를 완전히 없앨 때까지 어떻게 통화량을 조정할 수 있는지를 설명. 즉, 재무부가 공개시장에서 현금으로 공채를 사들이면서 은행이 무에서 창출해내는 통화량을 조정해 나감으로써 시중 통화량이 변하지 않도록 조정. 정부가 이렇게 공채를 사들임으로써 부채를 줄일 수 있는 한편 공채를 매입하는 데 쓴 현금이 국민 개개인에 의해 은행으로 입금되므로 은행은 자동적으로 보유금을 늘려갈 수 있게 됨. 이런 방식으로 정부가 발행한 화폐로 공채를 모두 사들였을 때에는 부분지준은 제도는 사라지고 대신 보유금을 기준으로 하는 제도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앙은행은 다만 통화량을 조정하는 기구로 그 역할이 바뀌게 되며 모든 은행의 금고는 공채를 넣어두는 곳이 아닌 현찰을 쌓아두는 창고가 됨. 그러면 미국의 연방지급준비제도는 자동적으로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고, 정부는 재정에 관한 권한을 되찾게 될 것임. 중앙은행들은 통화량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장난을 더이상 하지 못할 것이며, 때문에 인플레나 디플레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안정된 경제사회를 이룩할 것임.
- 사회가 공황을 겪을 때마다 사회전체의 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중산층이나 빈민층의 자산이 소수 상류층에게로 이동함. 이와 관련해 체이스 맨하탄 은행의 총재이자 세계에서 손꼽히는 환전꾼인 록펠러의 말을 인용해 보자. "지금 지구상의 변형이 막 일어나려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에 적당한 주요 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며, 이를 기화로 전세계 모든 국가들은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 발언은 얼마 안 있어 유사 이래의 큰 공황을 일으키겠다는 의미.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사상 초유의 거대한 공황이 다가오는 것이 기정 사실.
- 정부가 이자를 더 내지 않고 빚을 줄이기 위해서 돈이 되는 국가의 쌈지 꾸러미를 하나라도 더 모아 요긴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을 꾸어준 외국인들에게 빚을 갚기 위해 국민들이 낸 혈세로 만든 쌈지 꾸러미를 팔아 바치게 되는 것. 국가의 빚이 내국인에게 대한 빚이라면 다만 없는 자의 주머니에서 있는 자의 주머니로 돈을 옮겨놓는 결과를 만들 뿐이지만, 우리가 적절한 인물을 기용하여 국가에 대한 융자를 바깥 세계와 연결지어 국외로 빼돌릴 수 있게 하면, 그 국가의 부는 그곳에서 빠져나와 우리의 금고로 옮겨지게 되며, 모든 고이들은 국민들의 부를 뽑아 우리에게 바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 자유무역에 대한 정리
(1) 자유무역은 강한자가 약한자의 집에 침입해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는 제도
(2) 다국적 기업이 있는 국가의 세금으로 소위 원조라는 것을 벌여, 그것을 구실로 못하는 국가에 가서 그들만의 카르텔 조직을 공고히 하는 방편을 일삼음
(3) 이러한 제도에 의존할 수 있는 각 국가의 자유를 말하고, 이렇게 의존하는 국가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자유를 가리키는 것.
(3) 고임금의 선진국에서 제3세계의 원주민을 야만적으로 착취해 일을 시킬 수 있는 지역으로 생산지를 마음대로 옮기는 자유
(5) 자국의 식량을 생산하는 농토를 빼앗고 산업을 파괴시키며 이미 개발된 국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빼앗는 자유
- 자유무역이라는 제도를 실행함으로써 그들은 각 사회에 분노와 절망과 분열을 조장하여 당파 싸움을 일으키게 하고 동시에 그들을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 결국 2차대전이 끝난 후부터 20세기의 역사는 자유무역의 전개과정이라 할 수 있음. 브레턴우즈의 세계은행 결성과 함께 GATT를 위시하여 WTO라는 기구를 거쳐 앞으로 닥쳐올 자유무역 통제헌장이라 할 수 있는 완성품인 MAI(다자간투자협정)가 이제 21세기 초에 OECD라는 조직을 통해 막 소개되려는 참.
- 다국적 기업 입장에서 보면 많은 국가의 농업 정책이 실패하면 할수록 유리. 국민들이 가난하여 배가 고프면 그만큼 통솔하기가 쉽고, 일단 가난하게 만들어 기근이나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인구조정에도 도움이 됨. 그리고 일정한 때가 되면 산업을 육성하여 국민들을 잘 살게 했다가 다시 경제공황을 조작하여 그동안 축적한 부를 빼앗아가는 것이 그들의 일반적 방법. 그리고 경제공황으로 인한 빈곤 때문에 범죄가 만연하고, 국민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질병에 쉽게 걸리게 될 것임. 엘리트들은 여러가지 전염병을 고안해 냄. 에이즈 바이러스, 탄저열, 발진티부트, 라사, 한타, 에볼라, 마벅 등 세균전을 위해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배양한 균들을 사용하여 인구를 줄이려 하고 있으며, 이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실험적으로 사용한 적도 있음.
- 60~70년 대에 소위 푸른 혁명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가난한 국가의 기아를 막기 위한 것으로, 농업방식을 개량하여 단위 경작지에서 수확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주요 골자 중 하나였음. 그러나 그 혁명을 주도한 엘리트들의 진정한 목적은 재래 종자를 없애는 대신 자신들이 개량했다고 주장하는 신종 식물을 비료에 의존하여 경작하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그들이 특허권을 갖고 있는 접종법에 의해 개량된 종을 팔아 돈을 버는 것. 이렇게 화학비료에 의존하면 식물은 필요한 영양을 직접 받게 되지만, 화학비료뿐 아니라 살충제와 제초제 등으로 토양에는 유기질과 미생물 등이 모두 살지 못하게 됨. 토양이 여러가지 유기물질과 미생물을 포함한 벌레들과 상호의존관계를 유지하면서 식물에 영향을 공급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있음. 그런데도 비료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을 세뇌시킴. 그리하여 새로운 재배법으로 농부들은 매년 더욱 많은 비료를 사용해야 하며, 예전에는 자작 종자를 받아 농사를 했지만 이제는 매년 씨앗도 사야하는 경우가 많음. 결국 이대로 가다다는 증가하는 생산비 때문에 농부들은 농산물 가격을 매년 점점 더 올려야만 타산이 맞게 됨. 유럽공동시장 보고에 의하면 1986~91년 동안에 유럽 전체의 비료 소모량이 63%나 증가했다고 함. 이렇게 재배한 농산물은 비록 외양은 보기 좋을지 몰라도 영양가는 떨어져, 오래 섭취하면 영양실조에 걸리게 됨. 이제는 재래종 씨앗을 구하는 일조차 점차 어려워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재래종 자체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름
- 소말리아의 경우. 80년대에 IMF의 구조조정 세례를 받고 나서 정해진대로 화폐의 평가절하를 당했음. 그리고 IMF는 정부지출을 줄여 임금을 삭감하고 감원을 시켰을 뿐만 아니라,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있던 그들에게 북미와 유럽의 잉여 농산물을 잔뜩 가져다 주어 농산물 가격을 떨어뜨림으로써 농업을 파괴시킴. 세계은행의 보고에 의하면 80년대 말 소말리아 공무원의 평균 수입은 월 3달러 수준. 그리하여 89년 국가공무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정부의 복지기관은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학교교원이나 의료전문직 종사자들은 임금이 너무 적어 도저시 생활을 연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름. 이런 난관에 봉착한 소말리아 정부에 대해 IMF는 미국 등 선진국의 운영 컨설턴트를 고용하여 운영방법을 알려준 것. 이 컨설턴트들은 임금이 너무 적어 생활을 해나가기 힘드니 임금 수준을 인상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잉여 노동력은 없애고 능력있는 자만 고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 그러자 정부는 컨설턴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임. 전체 지출은 변동시킬 수 없으니 전직원의 25%를 감원시키고, 남는 돈으로 나머지 직원의 임금을 5달러로 올림. 그리고 이 컨설턴트들에 대한 비용은 IMF의 원조자금으로 충당되어 결국 소말리아의 부채에 포함됨. 이처럼 믿기 어려운 처방은 여러 서방국가 정부의 기록에 남아있음. 결국 구조조정은 국가단위로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는 경제체제를 파괴하고, 단위사회의 기본조직을 파괴하며, 해당 국민들과 국가를 가난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인 것. 하지만 IMF는 이런 구조조정을 주도한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음. 소말리아는 가뭄과 정치적 파벌싸움 때문에, 유고슬라비아는 민족간 분쟁때문에 국가 상황이 그러하다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음.
- 유고슬라비아가 거시경제라는 멋진 용어로 인해 농락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80년대 후반 유고슬라비아에서 연달아 화폐를 평가절하해 오던 IMF는 89~90년에는 더욱 과감한 화폐평가 절하를 시행. 그와 동시에 연방정부에서 주 정부에 주던 돈을 일시에 동결시켜 버리고 그것을 채권자인 서방 국제금융기관의 몫으로 돌린 것. 이는 유고슬라비아 중앙정부의 연간 회계제도를 사실상 파괴시킨 것으로, 경제적으로 고립된 각 주는 더 이상 중앙정부와 유대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져 저마다 독립적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음. 마침 각 주는 거의 민족별로 구분되어 있었고, 따라서 주나 또는 민족 사이에 마찰이 생기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 그리고 IMF는 파산제도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제도를 소개. 그때까지 공산국가였던 구소련 연방국가들은 모든 기업을 정부가 관리했기 때문에 파산이란 개념을 잘 몰랐으나, 시장겨제로 변환된 다음에는 사정이 달라짐. 경제적 능력이 없는 회사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로 배워야 했음. 그래서 IMF가 소개한 것이 부실기업 정리였음. 그들은 산업체 명단을 보면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기업체들은 부실기업으로 낙인직고 정리하여 다른 기업에 넘겨주거나 해체시켜 버림. 이미 잘 정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법률적 단계를 거쳐 부채가 너무 많은 사업체가 도산신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부에서 비능률적이라고 판단하면 하루아침에 부실기업으로 몰리게 되는 것. 이처럼 IMF가 고의적으로 산업을 해체하고 정리하는 바람에 89년 중반에서 90년 중반까지 약 1년 동안 100만명의 실업자가 양산됨. 유고는 발칸 지역의 산업센터 역할을 하던 국가로서 이미 훌륭한 사회보장 제도를 실천하고 있었고, 자동차, 철강 등 중공업의 틀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대단히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던 인텔리 국가였음. 이러한 곳을 평균 노동자 임금을 월 10달러 정도로 떨어뜨린 것. 뿐만 아니라 세계은행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의료복지국가였던 유고의 병원 의료비용이 1인당 월 8달러면 족하다며 수준을 격하시키고, 아스피린 등 약품의 가격은 북미나 유럽 수준으로 팔게했음. 70년만 하더라도 벨그라드 병원에서는 1달러 만으로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의료보건 제도가 훌륭했다는데, 이제는 다만 기억 저편의 일이 되어 버림. 과거 공산치하에서 능률은 떨어졌지만 타국의 원조없이 현재보다 훨씬 여유 있는 생활을 했는데, 더 좋다는 시장경제로 바뀌고 나서 오히려 이처럼 가난과 혼란을 겪게 된 것. 공산주의의 제도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닌데도 모든 제도가 하나씩 붕괴되고 있는 것이 현실임
- 한국에서는 정경유착이라고 하여 정치인들과 재벌들을 동격으로 보거나, 정치인들이 재벌들보다 우위에 있는 관계로 생각. 하지만 세계사적인 안목에서 보면, 재벌들이 정치인들을 장악해 원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관리하는 것.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필요 이상의 죄인을 많이 만들어내는 법조문임. 다시 말해 정부는 법적으로 죄인을 만드는 법을 제정하여 고의적으로 법을 어겨 감옥에 갈 이유를 조작해 내는 것. 예를 들면 고질병이나 참기 어려운 통증 때문에 순진한 의사의 지시하에 진통제를 사용하다 마약 중독자가 되어 마약상과 중독자로 전락되는 일, 이에 따른 자질구레한 잡범과 살인범 양산, 유사 이래 항상 존재해온 매춘업을 불법화하여 범죄의 소굴로 전환시키는 일, 의학적 효능이 입증되었는데도 대마초 같은 것을 불법화시키는 일 등이 대표적. 특히 대마초의 불법화는 비교적 근래에 정해졌음.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 때까지만 해도 삼베가 가장 싼 옷감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베옷을 많이 입고 다녔음. 아마 60세 이상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기억할 것임. 그러던 삼베가 어느덧 가장 비싼 옷감으로 둔갑하여, 가난한 집에서는 장례식 때 입을 삼베로 된 상복을 마련하는 것마저 어려워짐. 이렇게 된 이유는 미국의 신문황 허스트 가문과 섬유왕 듀폰가문 때문. 허스트 가문은 미국 각지에서 막대한 산판(목재, 펄프용 산림)을 소유. 그는 삼베로 만든 종이가 훨씬 질기고 좋은 줄 알면서도 자신의 원목을 비싸게 팔기 위해 공해를 많이 일으키는 공정으로 만든 나무섬유만 사용하길 원했음. 또한 듀폰가문은 자신들이 개발한 나일론이나 데이크론같은 화학섬유를 보급하기 위해 값싼 삼베옷을 불법화하길 원했음. 그래서 고안해낸 아이디어가 바로 대마에서 마리화나란 환각제 성분이 나오므로 대마 생산을 금지시키는 것이었음. 37년 법으로 마리화나를 마약으로 규정짓고 대마생산을 금지시켰으며, 이런 영향이 뒤늦게 한국에 미쳤던 것. 그런 조치에 따라 원래 삼베를 원료로 만들던 리바이스 청바지는 모양만 그대로일 뿐 수명이 훨씬 짧아져 버림.
- 미국 정보부가 마약거래를 시작한 것은 2차대전이 끝날무렵 CIA전신인 OSS가 프랑스 마르세유 항의 공산계 부두노동자 세력을 분쇄하기 위해 부두의 깡패조직과 손을 잡으면서 부터. 그후 줄곧 헌법상 불법적인 일을 해내고자 막대한 돈을 정부 예산외로 모으려는 목적으로 미국 CIA와 이스라엘 모사드가 주동이 되어 마약거래를 해옴
- 미국 정부로서도 정부군이나 정부 직원을 직접 외국 현장에 투입하는 대신 이런 사설 군대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이로움. 외국에서 떳떳하지 못한 정부의 책략을 이행하는 데 되도록이면 정부가 관련되었다는 인상을 덜 주게 되어 비난받을 확률이 적어지고, 타국끼리의 분쟁에 미국군이 참여하여 필요없는 미국 국민의 희생을 초래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음. 또한 어설픈 평화유지라는 명목으로 외국에 군대를 파견하는 대신 이들을 보냄으로써 미국 정부는 마치 외교적으로만 문제를 해결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는 것. 국무부나 국방부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피해 없이 외국의 불만스러운 인사를 체포하거나 암살하는 데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도구인 셈. 때문에 앞으로 이 분야는 소리소문 없이 급성장할 것으로 보임
- 고이들은 그들끼리 항상 뿌리깊은 불협화음의 근원을 없애지 못하고 자멸하기 때문에 우리의 안녕은 염려할 바가 없음. 우리는 미리 고이들끼리 개인적, 국가적, 종교적, 인종적으로 반목하고 그 반목이 더욱 증대되도록 지난 20세기 동안 공작해 왔기 때문에 어느국가도 우리를 향해 무기를 드는 일이 없었음. 우리에게 대항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하는 국가들이 없었던 것은 그러한 것들이 자신들에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우리의 힘은 너무 강해 아무도 우리의 세력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어떤 국가든 우리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자기들끼리 협상하고 합의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우리가 진행하려는 안건에 대해 정치적 원칙에 입각하여 찬성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산업문제라는 새로운 정치적 안건을 내놓으면 한동안 자기네들끼리 멍청하게 토의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새롭게 과거의 것과 비슷한 안건을 내놓으면 대다수는 새 안건이 과거의 것과 대동소이하다고 느껴 별다른 저하을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곧바로 우리를 향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흥행거리, 오락, 장난, 소일거리 등을 마련하고 언론을 통해 계속되는 운동경기, 공연 따위에 정신을 팔게한다. 그리하여 점차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창안하거나 비판할 사고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점차 우리의 공작과정에 장단을 맞추는 생각과 말을 하게 될 것이며, 그들 자신은 우리의 보조에 발을 맞추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 고이들의 수중에 있는 모든 산업을 완전히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미 발전, 보급시킨 사치를 조장한다. 욕심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끝없이 요구하고, 이것은 끝내 자멸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도록 부추긴다.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면 동시에 우리가 생필품 가격을 올릴 수 있으므로 사실상 노동자를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그 원인을 농업의 황폐화나 낙농의 비능률 때문이라고 발뺌한다. 또한 노동자들의 불복종, 무질서, 과음 등의 방법으로 생산원천의 차원에서 교묘하게 여러가지 난제를 계속 창조해 내고 산업이 더욱 황폐하도록 만들어 고이세력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 동시에 우리는 산업과 무역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투기성 산업을 장려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산업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며, 투기성이 없는 산업은 개인의 손에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은행에 빚으로 담보 잡힌 토지를 되찾아 그들의 경제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는 산업이 토지나 노동세력과 자본 면에서 곤궁해 투기성 사업을 함으로써 거래가 있을 때마다 세계의 돈이 우리 수중으로 들어오게 하는 일이며, 이는 결국 모든 고이들을 무산계급 대열에 속하게 만들어 우리 앞에 허리를 구부리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생존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는 한 절대 우리에게 굴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방법이다.
- 엘리트들의 세계 정복계획이나 칙훈서의 내용에 의하면 젠타일(유대인 외의 모든 인간)들을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나옴. 한국인도 젠타일이기 때문에 다시금 가난해져야 하는 것. 가난하게 만들려면 있는 것을 빼앗아야 함. 아프리카나 남미에는 빼앗을만한 풍부한 자연자원이 많아 그들에게 부자가 될 기회를 줄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일본을 비롯한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은 자원이 거의 없어 일단 생활수준을 높여줄 필요가 있음. 그래서 가난했던 과거에는 어떤 요소나 물건들이 없어도 필요한 줄 모르고 살 수 있지만, 일단 잘살던 생활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예전 수준을 회복하려 발버둥치는 게 인간의 본능. 이 본능 때문에 일단 잘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하고 그러면 그만큼 그 국민들을 노예로 만들기가 더 쉬워짐. 경제공황이라는 것이 항상 그랬듯이 경제붕괴는 모든 것이 풍부하고 돈벌기가 쉬워 태평성대를 누리며 그 세상이 영원할 것이라고 모두가 믿고 있을 때 일어남. 그래야 빼앗아갈 것이 많아지고 배고픈 사람들을 더 부려먹기가 쉬워지기 때문.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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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저자
노엄 촘스키 지음
출판사
시대의창 | 2013-12-09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촘스키, 미국이 쓴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벗기다 제2차 세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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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무역은 경제학 또는 신문사설에서 다룰 때나 그럴듯해 보일 뿐, 현실에선 정/재계 인물 그 누구도 자유무역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음. 이는 미국이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부문이 자본집약적 농업(소위 기업식 농업), 첨단산업, 제약, 생물공학 등 주로 국가가 보조하는 부문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음. 다른 산업국가들도 마찬가지. 미국 정부는 각종 연구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이들에게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군사무기라는 낭비성 생산품에 대한 시장을 보장해 줌. 그러다가 어떤 상품이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민간부문에서 이 상품을 차지. 이렇게 공공보조금과 사적 이윤이 결합된 체계가 소위 말하는 자유기업의 정체임
- 전후세계를 기획한 케넌 같은 사람들은 다른 서방 산업국들이 전쟁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미국 기업의 번영을 위해 미국 생산품을 수입하고 미국 기업에 투자기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음. 그러나 중요한 건 이 국가들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재건하는 것. 즉 전통적 우파질서를 부활시키고 기업이 우윌르 차지하게끔 하는 한편, 노동자는 분열시키고 약화시켜야 했음. 그리고 재건에 따른 부담은 전적으로 노동자 계급과 빈민층에게 전가해야 했음. 이 과정에서 미국이 부닥친 가장 큰 어려움은 반파시스트 저항운동이었음. 미국은 전세계에 걸쳐서 이 저항운동을 진압했고, 그 자리에 종종 파시스트나 나치 부역자들을 들어 앉힘. 때로 이 과정에서 미국은 극단적 폭력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선거결과를 뒤집거나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식량보급을 늦추는 등 한층 부드러운 방법을 사용하기도 함
-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님. 민주주의의 결과를 미국이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 없는 한, 미국은 이들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일관되게 반대. 미국이 보기에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문제는 각국 정부가 미국 투자가들의 요구보다도 자국민의 요구를 쉽게 따른다는 것. 런던 왕립문제연구소가 발행한 미대륙 국가들간의 구조에 관한 연구가 내린 결론은, 미국은 말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자본주의 사기업 옹호에 발벗고 나선다는 것. 만약 투자가들의 권리가 위협받게 되면 민주주의를 그만두어야 함. 다시 말해 투자가들의 권리만 철저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면 살인범과 고문자들이 권력을 쥔다 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음. .53년 이란, 54년 과테말라, 63년과 65년 도미니카공화국, 64년 브라질, 73년 칠레,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의회정치 국가가 미국의 지원과 때로는 직접적인 내정간섭으로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거나 전복됐음. 미국이 엘살바도르나 지구상 다른 수많은 지역에서 펼친 정책도 늘 마찬가지였음.
- 전쟁직후의 정책담당자 가운데는 좀더 긴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조지케넌이 그런 사람이었음. 그는 미국이 일본의 산업화를 촉진시켜댜 한다고 제안하면서도 한가지 조건을 달았음. 바로 미국이 일본의 원유수입선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되면 일본이 미국의 정책노선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 미정부는 그의 조언에 따라 일본에 대한 원유공급과 정유시설을 통제해옴. 이 때문에 일본은 70년대 초까지도 자국에 필요한 원유의 10%만을 통제할 수 있었음. 미국이 서남아시아의 원유에 그토록 비상한 관심을 쏟았던 것도 마찬가지. 사실 미국 자체적으로는 이 지역의 원유가 전혀 필요치 않았음. 68년까지만 해도 북미의 원유생산량은 전세계에서 선두를 차지. 하지만 미국은 세계를 움직이는 이 조종간을 계속 장악하고서 그 이윤을 영국과 확시리 나누어 갖기를 원함. 미국이 아직까지 필리핀에 군기지를 둔 이유도 이때문임. 이 기지는 서남아시아를 겨냥한 세계적 차원의 미군개입 시스템의 일환으로 서남아에서 급진적 민족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
- 군부는 미국경제고문들의 처방을 그대로 자국에 적용했다가 대개 국가경제를 파탄에 빠트렸고 그 해결책은 민간에 떠넘겨 버리곤 했음. 예를 들자면 IMF를 끌어들이는 것 말이다. 이처럼 새롭게 이용할 수 있는 통치방법이 있다면, 공공연하게 군부통치를 할 필요가 없게 됨. IMF는 자금을 빌려주는 대신 자유화를 강요. 즉 해당국의 경제에 외세의 개입과 통제를 허용하도록 가용하면서 사회보장예산은 무자비하게 삭감할 것을 요구. 이는 부유층과 외국 투자가 세력을 더욱 확고하게 함. 이 때문에 제3세계의 전통적 양극화, 다시 말해, 한편에서는 최상층과 다른 한편에서는 가난과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대다수 국민으로 나뉘는 경향이 강화됨. 민중세력이 정치적으로 도전하여 군부가 안정을 회복시켜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군부통치가 남겨놓은 부채와 경제혼란 때문에 이 나라들은 보통 IMF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 없음. 브라질이 대표적 사례. 브라질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고도로 발전한 산업덕분에 마땅히 부유한 국가가 되어야 했음. 그러나 64년에 발생한 쿠테타와 그 이후의 요란했던 경제기적 탓에 오늘날 브라질 국민 대다수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 비견할만한 비참한 환경에서 살고 있음. 이는 브라질이 동유럽에 비해서도 더 열악한 상황에 놓였다는 이야기
-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이 벌인 전쟁도 일반적으로 동일한 패턴을 따랐음. 48년 국무부는 호치민이 이끄는 반프랑스 저항운동인 베트민이 베트남의 고유한 민족운동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 하지만 베트민은 그 지역의 소수 토착지배자들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았음. 또, 이들은 자주적 발전을 선호하고 외국투자가들의 이익을 무시. 베트민이 정권을 장악하게 될 경우, 미국은 정책 담당자들이 수년동안 거듭 사용했던 용어를 빌리자면 썩은 사과가 퍼지고 바이러스가 그 지역을 전염시킬까 봐 두려웟음. 바이러스에 걸리면 보통 어떻게 하는가? 먼저 그 바이러스를 제거한 후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하여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게 함. 바로 이것이 제3세계에서 미국이 취한 기본 전략. 가능하다면 그 지역의 군대가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함. 만약 이들이 하지 못하면 미군을 투입해야 함. 물론 비용도 더 들고 모양새도 좋지 않지만, 때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음. 베트남이 바로 그런 경우였음. 60년대 후반까지 미국은 이 분쟁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모든 시도를 가로막았음. 심지어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 사이공의 장군들이 추진했던 협상까지도 그랬음. 만약 당시에 정치적 해결이 이루어졌다면, 베트남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성공적으로 발전했을 것임. 하지만 미국은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음. 케네디 정부는 처음엔 남베트남에서 대규모 국가테러를 자행하다가 점차 노골적 침략으로 사태를 악화시킴. 케네디에 이어 존슨은 대규모 원정구을 보내 남베트남에서 일어난 전쟁을 인도차이나 전역으로 확산시킴. 그 결과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거했는데, 이러한 피해를 입은 인도차이나가 100년 안에 원상복귀될 수 있다면 정말 운이 좋은 것이리라. 미국은 베트남에서 발병한 자주적 발전이라는 병을 뿌리뽑는 와중에도 65년 수하르토가 이끈 인도네시아 쿠테타, 72년 페르난도 마르코스의 필리핀 민주정부 전복, 한국과 타이의 계엄령 등을 지원하면서 이같은 병의 확산을 막음. 서방은 65년 인도네이사에서 일어난 수하르토의 쿠테타를 환영. 왜냐하면, 대중적 기반이 있는 유일한 정당인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제거됬기 때문. 쿠테타는 단 몇개월 동안 7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희생자의 대부분은 토지가 없는 농민들이었음. 뉴욕타임즈의 주요 논객 레스턴은 이에 대해 아시아에 서광이 비친다고 만족해하면서도, 미국도 이런 성공에 한몫했다고 떠들었음. 수하르토가 그러한 범쥐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일부 털어내자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온건한 지도자라고 그를 묘사했고 서방은 그와 함께 사업을 하게 된 것을 매우 흡족해했음. 런던의 저명한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엄청난 살인마를 마음속 깊이 자비로운 인물이라고 독자들에게 강조. 물론 서방 다국적 기업에 대해 그가 보인 적극적 태도를 두고 한 말이었음.
- 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정책의 주목적을 자신드링 저지른 폭력으로 황폐화된 나라들이 더 큰 고통을 겪도록 하는데 두었음. 그 잔인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로 경악스러웠음. 메노파 교도들이 캄보디아에 연필을 보내려고 하자, 국무부는 이를 막으려 했음.
- 호주외무장관은 세계란 힘으로 남의 것을 뺏은 사례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매우 불공평한 곳이라고 일축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과 병합을 정당화함. 인도네시아가 티모르의 풍부한 원유를 약탈할 당시에 자신들도 끼어들어 한몫 챙겨던 사실도. 그러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에 대해서는 강대국이 이웃 약소국가를 침공하도고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며 요란한 성명을 냄. 서방은 동티모르 문제에서는 냉소적 태도를 보였으면서도 이라크 문제에서는 도덕군자로 행세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음.
- 미국에게 외교라는 것은 자신의 총부리 아래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한 달갑지 않은 것임. 미국이 추구하는 목적은 제3세계 대중들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 미국이 지배와 착취구조를 강요하려드니 그리 놀랄일도 아님. 그런데 외교적 해결이란 협상상대의 이익도 어느정도는 보장해주어야 함. 미국같이 그다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입장에 있다면 이는 곤란한 문제. 이 때문에 미국은 보통 협상을 피하려고 함. 미국은 협상을 선호한다고 그럴듯하게 선전하면서도 실상 미국은 동남아와 서남아, 중앙아메리카에서 오랫동안 협상을 피해옴.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부시정부가 제재나 외교보다는 군사력을 주요한 정책 수단으로 삼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미국은 현재 제3세계에 질서와 안정을 강요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비용을 남들로부터 충당해야 함. 이는 필수적인 것임. 다들 알지만, 누군가는 주인에 대해 합당한 보답을 해야하기 때문. 걸프에서의 원유생산 이익금을 경비로 충당하기도 하지만, 국제적 기업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들이 권고한대로, 독일이 이끄는 유럽과 일본도 미국이 용병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마땅히 자신들의 몫을 치러야 하는 것.
- 미국과 소련 양국은 상대방을 그저 간단히 없애버리길 원했을 것임.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했다가는 양국 모두 전멸할 것인 확실했기 때문에 냉전이라 부르는 세계관리체제가 등장. 통념에 따라 해석하면, 냉전은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두 강대국 사이의 분쟁. 따라서 미국은 그 분쟁에서 소련을 억제하고 세계를 그들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것. 만약 이런 시각이 신학교리라면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음. 그러나 역사에 빛을 조금만 밝힌다면, 이런 주장의 사실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음. 단, 아주 간단한 점을 유념해야 함. 즉, 냉전을 이해하려면 냉전중에 발생한 사건들을 살펴야 한다는 말. 그러면 냉전에 대해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됨. 소련쪽을 보면 그들이 냉전중에 저지른 사건들은 동유럽에 대한 끊임없는 간섭이었음. 그 결과 동베를린, 부다페스트, 프라하에 소련 탱크가 진주했음. 이런 간섭은 금세기 세번이나 외국이 러시아를 공격하고 파괴할 때 이용했던 통로를 따라 이루어졌음.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비록 소련의 국경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그 통로에서 벗어난 예임. 미국쪽을 보면, 역사상 최초의 세계권력으로서의 위치를 반영하듯, 그들이 자행한 간섭의 범위도 전세계적이었음. 국내적 측면에서 보자면, 냉전 덕분에 소련의 군-관료 지배계급이 권력기반을 굳히자, 미정부는 국민들에게 첨단산업에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변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생김. 그러나 이러한 구실 모두가 국민들에게 쉽게 먹혔던 것은 아님. 그래서 사용한 기술이 오랫동안 의지해왔던 방법, 즉 무서운 적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냉전은 그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었음. 소련이 그 낙지같은 발로 서방의 목을 조인다는 발상은 너무 터무니없긴 했음. 하지만 악의 제국은 실제로 악마이자 제국이었으며 잔인했음. 이 두 강대국은 상대방이 저지른 범죄들을 들추어내 공포를 야기함으로써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적, 즉 자국국민들을 통제했음. 그러므로 핵심적인 측면에서 냉전은 소련과 미국 사이의 무언의 협정과도 같은 것이었음. 소련의 지배세력들은 그들의 제국내부와 동유럽의 위성국들을 확고히 장악할 수 있었고, 미국은 제3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유럽의 동맹국을 통제할 수 있었음. 양국은 각각 자기세력권에서의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을 이용했던 것.
-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사회주의란 용어는 최소한 다음을 의미. 자본주의 기업이냐 전체주의 국가냐에 상관없이 생산에 대한 관리를 노동자들 스스로 하는 것 말이다. 즉, 노동자를 지배하고 모든 결정권을 손에 쥐고 있는 소유주나 경영자들이 생산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 소련을 사회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교리적인 이중화법이 쓰인 재미있는 경우. 1917년 볼셰비키 쿠테타로 레닌과 트로츠키는 국가권력을 손에 넣음. 이들은 몇달전 일어났던 민중혁명을 계기로 이미 성장하고 있던 초기 사회주의 제도돌, 즉 공장위원회와 소비에트, 그 밖의 모든 민중 통치기관들을 재빨리 해체. 그리고 노동자들을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이른바 노동군으로 바꿔버림. 사회주의라는 용어의 진정한 의미에서 본다면, 볼셰비키는 당시 존재하고 있던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일거에 파괴한 것. 그 이후로는 어떤 사회주의적 일탈도 허용하지 않았음. 결국 전위당과 그 지도자들 손에 권력을 집중시킬 것이라고 레닌의 교리를 오랫동안 비판해왔던 지도적인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은 이런 상황 전개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음. 혁명이 있기 몇십년 전에 아나키즘 사상가 바쿠닌은 혁명과정에서 새롭게 출현할 지식인 계층은 다음 두가지 중 하나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으. 하나는 스스로 국가권력을 쥐고자 대중의 투쟁을 이용한 뒤에 잔인하고 억압적인 붉은 관료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혁명이 실패하면 이들이 국가자본주의적 사회의 관리자나 그런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수호자가 되리라는 것이었음. 이 예견은 두 측면 모두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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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정부: 정치편

저자
이리유카바 최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08-04-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계는 보이지 않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권력인 누상정부,즉 프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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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을 행하는 사람은 우선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믿어야 한다. 이데올로기, 그것은 정의의 실현이라는 악마의 행위를 발생시키고, 악마의 행위자에게 필요한 신념과 결심을 갖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본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비치고, 따라서 그들은 비난이 아니라 찬사와 명예로운 소리만 듣게 되는 것이다. (솔제니친)
- 드 몰레 템플 기사단장은 숨을 거두면서 예언하기를, 클레멘트 교황이 40일 이내에 죽어 그와 함께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 필리프 왕은 그해(1310년)가 끝나기 전에 죽을 것이라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역사적 기록은 전함. 프리메이슨은 이 일로 인해 프랑스에 복수의 칼을 갈게 되었고, 마침내 프랑스 혁명을 일으켜 유럽 최초로 왕조를 마감시키고 공화국을 세우게 됨. 프랑스 혁명은 프리메이슨의 여러 조직 중의 하나인 일루미나티의 공작에 의한 것임. 필리프 왕은 프랑스에 있던 템플기사들을 모두 잡아가두지는 못했음. 행정조직에 서로 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에는 미리 정보를 얻어 피신했고, 상당수의 템플시가들이 귀족이고 고관들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이때부터 프리메이슨 조직은 지하로 들어가 비밀조직화 됨. 그리고 자기가 프리메이슨이나 템플기사단이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릴 수 있는 암호를 만들었고, 그들만의 악수법 따위를 통해 서로의 신분을 확인. 프리메이슨 조직은 지하에서 암약하게 되었지만 계속 확장되어감. 영국에서는 1348년 가터교단이 조직되었고, 프랑스에서는 1352년에 성단, 1430년 브루고뉴 지방의 영주 부르고뉴 공작이 만든 금양모단, 1534년 로욜라가 사제이면서 기사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템플기사단을 모방하여 조직한 예수회가 생겨남. 이 예수회가 지금은 너무 유명해진 카톨릭의 예수회 사제단이라는 조직. 이조직의 원래 목적은 개신교의 교리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프리메이슨 조직의 계보를 따랐기 때문에, 교황과 자주 갈등을 빚음. 프랑스의 필리프왕에게 박해를 받게 된 템플기사단은 대거 탈출하여 스코틀랜드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로 흩어짐. 스코틀랜드로 건너간 템플기사단으 소위 스코틀랜드파를 만들어 현대 프리메이슨 조직의 기초를 세웠으며, 포르투갈로 건너간 기사단은 아메리카 대륙을 자주 왕래하여 결국 미국이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되는 기초를 마련.
-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국내에서의 한국전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으로 다음 다섯가지로 요약됨.
(1) 기아로 인해 공산중국은 민중봉기의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오히려 국민을 단결시켜 통솔할 수 있도록 중공을 도와준 꼴이 되었음.
(2) 미국은 조그만 북조선이란 나라 하나도 격퇴시키지 못한 종이 호랑이라는 명성을 얻는데 이바지
(3) 미국은 수만명의 미국인의 생명을 허비했으며, 열심히 싸우기를 원치 않은 UN때문에 수십억 달러의 돈만 낭비한 꼴이 되었음
(4) 미 국민들에게 미군은 앞으로 UN의 지휘아래 놓일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음
(5) 역사상 최초로 미국군대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함
- 어떤 형태건 독재자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언젠가는 국민들이 그 독재가 끝나기를 원하며, 민주주의가 자기 나라에 실천되기를 바라는 게 통례임. 다시 말해, 독재자 밑에서 사는 국민들은 자신들이 독재자 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 독재자에 항거하는 운동을 일으킨다는 말임. 왕정대신 세워진 사이비 민주정권은 한 사람 대신 몇 사람이 절대 권력을 나누어 갖고는 마치 인민에 의한 정치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뿐임. 그들은 부패를 무기로 삼고, 언런의 위력을 십분 활용하여 선거과정을 조종함.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사건들을 조작하여 국민의 심리를 조종함으로써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 따위들을 원하는 대로 선출함. 그리고 언론이나 교육, 홍보 등을 통하여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이 진실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세뇌공작을 함. 그래서 프랑스 혁명 역시 왕권의 독재 체제를 타도하여 다른 형태의 독재체제로 바꾼 것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꿰뚫어보는 사람은 몇명 안되는 것임. 그들의 첫번째 상투적 수단은 인위적인 경제공황을 창조하여 민심을 뒤흔드는 것. 단순한 경제파동으로 시작할수도 있고 전쟁을 통해서도 할 수 있으며, 그 밖의 여러 방법을 사용할수도 있음. 그리하여 국민들을 빈곤과 불황으로 인한 절망적 심리상태로 몰아넣고, 정치가들의 우왕좌황하고 부패한 몰골을 국민앞에 드러냄으로써,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누군가가 나서서 이런 상황에서 구출해 주었으면 하는 절실한 욕망을 갖도록 만들어감. 민심이 흔들리면 이들은 드디어 국민을 구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지지를 얻어냄. 그 문제라는 것이 원래 자기들이 연출해낸 것이기 때문에 해결방안 역시 간단함. 이런 방법은 아직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다시 이론적으로 정돈하면 문제야기->충분한 반응->해결, 즉 문제-반응-해결의 수순을 밟는 것임.
- 러시아 공산혁명은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노동자와 농민을 너무 탄압하고 돌보지 않은 나머지 굶주림을 못 이겨 일어난 자연발생적 반정부 폭동이었고, 그것이 공산혁명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음. 또한 소련이 유대인을 학대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는 프랑스 혁명과 마찬가지로 그 진실은 따로 있음.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의 석유와 경제권을 휘업잡기 위한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다툼과 관련된 사건임. 19세기 후반, 미국의 드레이크가 처음 유전을 발견하여 기름을 뽑기 시작하면서, 미래에는 석유라는 상품이 몹시 중요한 경제적 수단이 될 것이라고 예상됨. 록펠러는 1863년 2명의 동업자와 함께 스탠다드 오일사를 세우고 정유사업을 시작하여, 1872년에는 미국 정유업계의 25%, 1879년에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정유분야 사업의 90%를 독차지. 그 당시는 미국만이 기름을 갖고 있어서 미국 시장을 차지하면 세계 시장을 차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 그러나 미국의 독점은 오래 가지 않음. 러시아의 카스피해 해안가에 있는 바쿠 평야에도 유전이 발굴되었기 때문. 러시아 황제는 1883년 흑해로 빠져나가는 철로를 부설하는 한편, 유전개발을 위해 노벨 형제와 로스차일드 그룹 사람들을 초청하여 경제적 도움을 청함. 그리하여 록펠러 그룹과 로스차일드 그룹이 세계 석유사업 분야에서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됨. 로스차일드의 도움으로 러시아의 석유사업은 대단히 급속하게 발전해, 1888년에는 미국의 생산량을 앞지르게 됨. 당시 러시아의 경제는 아직 농경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유럽 전체에서 가장 뒤떨어진 나라 중 하나였음. 그러나 1907~17년 사이 러시아의 산업성장률은 엄청나게 뛰어올라 당시의 산업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 영, 독 같은 나라들을 능가할 정도가 됨. 따라서 1917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피폐한 경제상황 때문에 터진 것이 아님. 우리는 혁명이 반세기 정도의 줄기찬 경제발전 끝에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경제발전의 혜택이 주로 사회의 중산층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함
-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이 선제공경을 해오도록 유인했으며,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함대의 군함들을 모두 진주만에 집결시켜 일본을 유혹. 진주만을 공격하도록 미끼 작전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40년 6월부터임. 일본과의 전쟁이 곧 독일과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이런 계획이 세워졌으며, 루스벨트, 마샬, 스톡 등 세사람은 최소한 공격 21시간 전에 일본의 기습사실을 알고 있었음. 킴멜제독과 쇼트장군의 후손들은 지금도 명예회복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렇게 증거가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스벨트를 비롯한 참모들이 그때 일본의 기습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믿음 (진주만의 마지막 비밀)
- 1952년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에서 외교사를 가르치는 찰스 텐실 교수는 전후 5년 동안 국무성에서 전쟁사를 연구한 사람으로서 전쟁의 뒷분이란 책을 썼음. 652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일반사람들이 모르는 중요한 사실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어떻게 2차대전에 개입하게 되었는지 명백히 드러나 있음.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측근 탈무디스트들의 만족을 위해서만 일했다는 것이 나타나 있음. 루스벨트는 미국의 탈무디스트들에게 계속 지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독일과 전쟁을 해야함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 이로 인해 현재까지 미국이 중동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또한 그 일에 지대한 공을 세움. 탈무디스트의 사주에 따라 이스라엘 독립전까지 연 80만명이라는 전투병력을 팔레스타인에 집결시킨 뒤, 그들이 무장봉기하고 국가라고 선언하자 이를 즉시 인정함으로써 중동문제의 원인을 증폭시킴. 45년 루스벨트의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트루먼은 4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거의 병적인 집념에 사로잡혀 있었으.ㅁ 그러나 그가 당선될 가능성은 낮았음. 그는 시온주의 탈무디스트들의 막강한 조직을 등에 업었고, 매번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던 그들의 절대적 도움으로 대통령에 당선됨. 트루먼이 시온주의자들에게 어느정도 좌지우지당했는가는, 탈무디스트들이 48년 5월 14일 밤 12시에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하자 바로 11분 후에 백악관에서 이를 승인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음. 그는 미국민이 낸 세금 수십억 달러를 탈무디시트들에게 건네주어 이스라엘을 막강한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무장봉기해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해가며 억지로 만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미합중국의 특권을 이용해 평하를 사랑하는 나라라면서 UN에 가입시킨 사람이었음. 그 당시 UN에서는 이스라엘 가입문제를 표결에 붙였는데, 두표가 모자라 가입이 좌절될 것으로 예상되었음. 찰스실버라는 탈무디스트는 스펠만추기경을 밀사로 파견하여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남미 두나라를 설득시켰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당당히 UN의 회원국이 됨
- 68년 미국 CIA는 바트당을 지원하여 정권을 잡도로 하고 사담후세인이라는 독재자를 국가 원수로 만들어줌. 그래서 후세인은 CIA를 자기 은인이기도 하지만 속말을 할 수 있는 친구이자 항상 자기를 지원해주는 듬직한 상대로 생각해옴. 그러던 중 미국과 영국의 정보조직에서, 이란의 호메이니 정권이 혁명을 일으켜 국가질서가 엉망이나 이 기회를 틈타 쳐들어가면 곧 이란을 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후세인에게 던져줌. 후세인은 이 말에 솔깃하여 결국 이란과 전쟁을 벌였는데, 이란은 미국, 영국이 알려준대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어서 결국 양쪽 다 전쟁 때문에 8년이란 긴세월을 허비하고는 기진맥진해버림. 그런데 호메이니가 혁명을 일으키기 전 "샤"를 권좌에 앉힌 것이 CIA였고, 샤에게 쫓겨 프랑스로 망명을 간 호메이니를 돌봐준 것도 CIA였던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시한변 곰곰이 생각해볼 일. 결국 미국과 영국은 후세인을 감어이설로 꾀어 이란과 이라크를 싸움붙여 놓고는 8년 동안 무기를 잘 팔아먹은 데다가 기름장사로 돈도 벌고, 은행들은 군자금을 빌려주어 이렇게 저렇게 돈을 흠뻑 빨아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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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정부: 미래사회편

저자
이리유카바 최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08-04-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계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는 그림자정부의 음모와 야욕을 파헤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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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장의 동물처럼 아무 의심없이 국가의 명령을 따르고 자유와 권리를 내어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인의 평생기록을 만드는 계획이 이미 시작됨. 펜타곤에서는 국방성과 함께 첨단국방기술연구계획국(DARPA)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음. 이들은 라이프로그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모든 사람의 기록을 수집하고 자신들이 원할 때에는 그 누구의 기록도 뒤져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함. 여기에는 주고받은 이메일, 전화통화 기록, 사진찍은 기록, 즐겨 청취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방문한 웹사이트, 읽어본 잡지내용, 병상기록 등이 포함됨. DARPA의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가시전투지역이란 것이 있음. 시가전을 할 때 그 도시 안에 있는 모든 차량의 움직임을 추적해서 이를 분석하여 전투에 활용하겠다는 것. 아직 일급비밀에 속한 이 기술은 모든 차량의 크기, 색깔, 모양, 번호판, 운전사와 승객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보통사람들이 알지못하는 거대한 장비과 기능을 가진 시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 궁극적인 예가 에셜론 같은 것들. 지난 03년 초 여름에 미군이 도/감청 방지기능을 가진 퀄컴이란 회사에서 만든 휴대폰을 들여와 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SKT에 신청했다가 거절당함. 이를 허락하면 다른 휴대폰들은 모두 도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 이는 한국정부가 이를 허락했든 안했든 일단 보도에 따르면 도청 가능한 것을 인정한 꼴임. 휴대폰 도청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북미에서 3만달러 정도면 누구나 디지털 주파까지 도청가능한 장치를 집에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임. 심지어는 라디오 수신기 스캐너를 갖고 있는 사람은 200달러 정도의 회로판을 라디오 쇅 전자가게에서 사 달면 대부분 주파수의 휴대폰을 도청할 수 있는데, 어떤 것은 40달러 짜리도 있음.
- 미국은 02년 말에 국토안보봅이란 것을 의회에서 통과시킴. 이는 미국 전 국민의 모든 신용카드 사용기록, 모든 잡지 예약기록, 모든 처방조제기록, 모든 웹페이지 방문기록, 주고 받은 이메일 기록, 모든 학업성적, 모든 은행구좌 입출기록, 모든 여행기록, 회의나 행사에 참석한 모든 기록 등등을 국방성에 있는 거대한 데이터 베이스에 입력한다는 것. 물론 여기에 여권기록, 면허기록, 고속도로 톨게이트 통과기록, 범죄에 관련된 경찰기록, 이웃에서 경찰에 보고한 기록, 혼인관계 기록 등 평생기록은 기본이고, 정부에서 설치한 몰카기록까지 개인정보 파일에 기록하게 됨. 특히 일시에 은행에서 많은 현찰을 인출하거나, 무기를 사거나, 편도표를 끊어 여행을 떠나거나 화학약품이나 시약 또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물을 구입한 흔적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큰 관심사가 될 것임. 미국은 9/11 이후 신속하게 여러가지 법률과 기관을 만들었음. 국토안보법을 위시해서 애국법, 외국첩보감시법 따위를 입법하고 포인덱스터 제독의 기획하에 정보관리청을 만들어 스스로 책임자로 앉는가 하면, 아들 부시 대통령 밑에서 법무장관을 하던 애쉬크로프트는 TIPS라고 부르는 테러정보 및 예방체제를 만들려고 하다 시민들의 강렬한 저항 때문에 포기한 일도 있었음. 미국 빅브라더스 중 맏형격이 되는 포인덱스터의 펜타곤 사무실에는 지식은 힘이다라는 푯말이 있음. 분명 그가 말한 지식은 개인의 수치스러운 사정부터 모든 것을 아는 지식일 것이고, 이 지식으로 국민 개개인 위에 완전 통제자로 군림하겠다는 의미일 것임.
- 인체와 전기에 관한 권위자로 알려진 벡커 박사는 GWEN은 사이클로트론 공명과 조화시켜 사람들의 태도를 조종하는 아주 탁월한 시스템이다. 미국은 지역에 따라 평균 지구자장의 세기가 각각 다르다. 따라서 어떤 생물체 내의 이온을 공명시키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지구자장에 맞는 특정 주파수의 전파가 요구된다. 그래서 그 지역의 자장 상태에 따라 그 지역에 어울리는 전파를 발송하기 위해서 200마일 간격으로 GWEN탑을 세울 필요가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 그런데 신체 또는 생물체 내의 이온을 공명시킨다는 개념은 과학계에서 논란이 많은 주제. 사이클로트론 공명은 신체 내의 아주 작은 양의 물질을 EMR에 노출시키면 그 물질이 자극되어 실제 양보다 수천배가 체내에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것. 모든 물지은 그 물질을 형성하는 원소의 원자가에 따라 전자의 운동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물질의 특유한 전자파를 발산함. 그런데 이 전자파가 공명작용을 일으키는 다른 전자파를 만나게 되면, 그 진동은 어마어마해짐. 전자파는 결국 진동이기 때문. 그래서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적은 양의 독극물이 존재한다 해도 사이클로트론 공명을 사용하면 갑자기 치명적 독극물로 둔갑. 이것은 전쟁에서 그 효용가치가 아주 높음. 아죽 극소량의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적군이 안심하고 행동할 때 적진을 향해 송신기를 이용하여 전자파를 쏘면 적군을 전멸시킬 수 있는 가공할 무기라 될 수 있기 때문.
- 어떤 사람들은 전자장에 매우 예민 20세기 초 라디오가 처음 발명되어 보급될 때 인구의 약 1%는 라디오 때문에 정신상태가 불안정하게 되었다고 불평했는데, 그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불평을 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묵살. 그런데 뉴멕시코 대학의 연구결과로는 실제로 항상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음. 조사결과에 따르면 인구의 약 1~3%정도가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르게 영향을 받음. 우리 인체는 모두 일종의 변환기로서, 에너지를 다른 형태로 바꾸는 장치이며, 그 정도는 인체의 화학적, 물리적 구성요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전자기장에 매우 민감한 것이 사실. 현대인들은 20세기 초 라디오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보다 약 2억만배나 더 많은 전자장 속에 살고 있음. 그런데도 쉽게 견디고 있음. 그 이유는 설탕때문이라고 함. 설탕에 감각을 무디게 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
- 세계를 정복하려는 이들의 계획 첫째는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여 몸과 마음을 조종하는 것. 이 단계에서 마인드컨트롤이란 기술을 개발하여 인간을 끈을 매달아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전락시키고, 결국엔 지구를 거대한 인간농장으로 만들어 인간재배를 한다는 것. 또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방법도 세가지로 분류하여 생각할 수 있음. 예를들면 약물을 이용하여 화학적으로 심경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고, 최면술을 걸어 자의가 아닌 타인의 최면력에 의해 행동하도록 체계화하는 분야도 있고, 현대에 와서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수에 관계없이 전자기파로 대중을 동시에 조정하는 방법이 있음.
- 90년대 초,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 미국에서는 학교를 통해 선생들에게 수업태도가 좋지 않은 학생들의 명단을 만들어 보도록 하고, 이 학생들의 부모들을 불러 상담을 하면서 향정신성 약을 복용시키도록 했음. 정도가 심한 학교에서는 선생들이 수업태도가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약을 복용시키지 않으면 집으로 보내는 일까지 있을 정도였음. 그런 약들 중에는 리탈린이라는 상품명이 가장 유명했고, 한국에서는 메칠페니데이트라는 화학명으로 공부잘하는 약으로 알려짐. 다행히도 9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의식있는 사람들의 투쟁으로 이 약은 사라졌음. 그런데 요즘 발륨, 옥사제팜, 프로작 같은 약을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우울증, 스트레스, 피곤증, 집중력결핍증, 불안, 현기증, 근육동, 금연, 금주 등에 처방하고 있음. 그런가하면 피해망상증이나 광폭한 사람들에게 핼돌을 투여하기도 함. 사람들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약들을 복용하면 원래의 성격과 다른 행동과 사고를 하게 됨. 인간이 약물을 이용하여 정신상태아 사고와 판단력을 변화시키는 일은 고대부터 있었음. 이집트나 아즈텍 사회에서 종교적 차원으로 여러 약물을 사용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상식. 근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이를 통치수단을 사용하고자 조직적인 실용화 연구가 시작됨.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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